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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는 <호텔 르완다>에 등장하는 폴과 같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자기 극복 실화이다. 주인공 데오는 브룬디 내전의 피해자이다. 브룬디에서 의대를 다니던 중에 내전의 시작되고, 쫓기다가, 구사일생 끝에 운 좋게 살아남고,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영주권 없이 미국에서 살아가기는 어려웠다. 브룬디에서 나름 엘리트였던 그는 미국의 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완전 바닥생활을 하게 된다. 주목할 사실은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그를 도와 준 많은 사람들 덕분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데오를 도울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데오가 꿈이 있는 젊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중단된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자 했고 자신의 마을에 병원을 지어 주민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싶다는 강한 소망으로 미국에서의 비참한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 브룬디가 처한 상황을 보면 르완다와 매우 비슷하다. 국가의 85%를 차지하는 후투족, 14%를 차지하는 투치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같은 언어와 같은 종교를 가지며, 문화의 대부분을 공유하며, 외모마저 비슷하다. 브룬디는 독일에 이어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식민 지배국은 두 종족 간에 차별화 정책을 통해 소수를 차지하는 투치족에게 유리하게 특권을 많이 주고 이들로 하여금 후투족을 지배하도록 하는 고단수의 간접 통치를 하였다. 대다수이면서도 투치족에 비해 더욱 더 핍박 받던 후투족은 분노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고, 그 칼 끝은 결국 뒤에서 조정하는 강대국이 아닌 투치족을 향하게 된 것이다. 데오는 작가인 트레이시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래요. 벨기에인들이 나라를 망쳐놨지요.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칼로 이웃을 죽일 수가 있었던 거죠 ”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선과 악, 인간성과 신의 본질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대학의 철학 수업을 듣는다. 한 철학 교수님은 강의 중에 짐승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오직 인간만이 이성적이라는 말을 하면서 짐승은 먹기 위해 죽이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데오는 그 말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그는 소와 민병대 중에 어느 쪽이 더 이성적인지 묻는다면 당연히 소라고 대답할 터였다… 그는 교수에게 말했다. “… 짐승들이 먹기 위해 죽인다면, 늘 그러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그들이 인간보다 더 이성적인 거지요. 르완다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죠?” (247쪽)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해답을 데오는 과연 얻었을까. 소를 치면서 마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던 데오와 그의 가족들에게 단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칼을 든 사람들에 대해서 데오는 이렇게 말한다. “배 속에 기생충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다가 죽을 때까지 기생충을 친구 삼아 사는 거죠. 그런 삶을 상상할 수 있어요? 끔찍하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어요. 고통이 만연해 있는데. 그러니 그들이 서로를 학살한 것에 대해 비난하기도 힘들죠. 난 항상 사람들을 비난하지만요. 그때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예요. 정신이 나갔던 거지요.” (251쪽)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복수해야겠다는 생각대신 그냥 그 때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님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그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고통과 분노를 승화시킨 것 같다. 부룬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많이 아껴주었던 부두디라 주교의 “가난한 사람들의 몸에는 가난이 들어가는 길이 많다.” 는 말을 떠올리고 가난하고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지 항상 고민한다. 그리고는 의료와 보건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만든 단체 ‘건강의 동반자(Partners In Health, PIH)’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가난한 나라에 현대 의술과 공중보건의 도입을 위해 힘을 모은다. 데오는 외로움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가장 지독한 외로움은 ‘병마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니까요. 게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말도 할 수가 없어요. 나약한 인간 취급을 당하거든요. 그러니 아픔을 친구 삼아 견디는 거죠.” (204쪽) 가난한 자의 아픈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데오는 결국 자신의 오랜 염원인, 브룬디의 카얀자 마을에 병원을 건립에 착수한다. 카얀자 마을은 투치족인 데오 가족의 생활 터전이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을 주민의 99%가 후투족이다. 미국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던 데오가 동시에 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데오는 다니던 학교를 중단하고 고향에 귀국해서 벽돌 하나하나를 직접 쌓으면서 병원 건축에 직접 동참한다.. 한 늙은 환자는 민병대에 가담하여 투치족을 죽였노라고 데오에게 고백했다. 온몸의 흉터가 그걸 증명했다. “나도 이런 일을 하며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가 탄식했다. “더 살 수만 있다면 남은 시간 동안 여기서 일하고 싶소.” (342쪽). 어느 날 옛날 일에 대해 사죄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 온 여인에게 데오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우리 병원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비극일랑 과거에 묻어두고요. 기억을 들춰봐야 아무한테도 이로울 게 없으니까요.” (343쪽) 브룬디 내전 당시에는 종족 간의 분노와 살상의 무기였던 정글칼은 카얀자에서는 모두가 병원을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길을 내는 도구가 된다. 이곳이야말로 ‘중립지대’이자 데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화해의 장소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면 모든 싸움은 차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종족, 국가, 이념, 성별, 종교, 계급 등의 차이 그리고 이를 이용한 권력 다툼이 불화의 씨앗이 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더 돈을 많이 벌고 더 편하고 더 떵떵거리고 더 거들먹거리고 싶은 욕심이 싸움을 빚어내는 것이다. 차별 받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야를 넓게 보면 우리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잘못은 덮어주고 용서하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확고한 꿈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당신을 삼키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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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작가인 트레이시 키더의 논픽션.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태어난 데오는 가난한 가정형편을 딛고 열심히 공부하여 부룬디 의대에 들어간다. 1년 내내 단벌 바지로 버틸 정도로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한 데오가 졸업 후 의사의 꿈을 꾸며 인턴으로 근무하던 1993년,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 '브룬디 대학살'이 벌어진다. 그는 6개월간 학살을 피해 도망치다 가족과 연락도 끊긴 채 부유한 친구의 도움으로 단돈 200달러만 들고 미국 뉴욕으로 간다. 고국 브룬디에서는 의대생에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가진 인텔리였던 데오. 미국에서는 영어를 몰라 최하층 노동자생활을 하며 저임금에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테오. 그러나 그는 센트럴 파크에서 노숙하는 와중에도 서점에서 서서 책을 보며 영어를 익힌다. 이렇게 삶의 희망을 놓지 않던 데오는 다행히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의대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간다. 물론 그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으며 악몽과 불면증 등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안정된 삶을 꾸리는 대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한다. 2005년 현재 그는 부룬디에서 ‘마을 보건 사업Village Health Works’을 창립하고, 병원을 세운 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진정한 의사로 살고 있다.
위의 내용은 정말 간략히 추린 것이다. 그동안의 파란만장한 데오의 삶은 정말 일일이 다 옮길 수가 없다. 영화처럼 스포일러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 아니다. 매 순간순간이 피냄새 화약냄새 풍기는 처절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평화롭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 아름다운 부분은 잠시일뿐. 책을 받자마자 밤 새워 한 호흡에 다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뭐 내 리뷰 주욱 봐온 친구분들은 예상하셨겠지만, 나는 데오의 고국 부룬디의 역사배경이 궁금해졌다. 브룬디라니?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브룬디가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몰랐다. 아프리카 최소국이라, 왠만한 축적의 지도에는 브룬디가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세계 지리책을 찾아 보니 브룬디는 콩고민주공화국과 탄자니아 사이, 르완다 아래에 있는 나라였다. 르완다 내전은 종종 외신으로 들어왔지만 브룬디도 같은 참상을 겪고 있는 줄은 몰랐다. 벨기에의 식민지배를 받던 브룬디는 1962년 왕국으로 독립했고, 1966년에는 대통령제 공화국이 되었다고 한다. 르완다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주민은 후투족, 투치족, 트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투족과 투치족의 상호 학살전은 1972년에도 발발한 적이 있었다. 문제의 근원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편이성을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임의로 그어 놓은 국경과, 종족간의 반목을 조장하며 소수 지배인텔리에게 특권을 부여했던 식민지배의 역사이다.
이 중요하고도 명백한 역사 배경이 이 책의 2/3이상을 읽어가도록 서술되지 않아, '역시 미국인의 입장에서 쓴 논픽션인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뒤로 가서야 조금 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제국주의 국가 국민의 후손으로서, 어떠한 부채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서구인답게, 데오의 개인적인 입신양명과 금의환향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매우 못마땅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 조상들의, 아니 현재 자기 나라 정치인들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저 미개하고 못사는 나라들은 또 내전이군'이라는 논평이나 가볍게 해대며 몇 푼 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류애를 과시하는 선진국 국민들을 보면 화가 난다. 어찌 되었든 과거의 영화 덕에 오늘날 부강하게 살고 있는 과거 식민모국의 국민들은 좀더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반성하며 그 반성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흥분했군,,, 워,워,,, -_-)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연을 쫓는 아이> 생각을 했다. 제국주의 세력이 그 지역 패권을 장악하러 원주민 종족 갈등을 이용, 조장하여 내전의 씨앗을 이미 뿌렸다는 점에서 데오의 고국 브룬디와 역사 배경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을~>의 경우 탈출과 조카의 구조로 끝나는 결말이 아쉬워서인지 나는 같은 작가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더 좋았었다. 이 책의 데오 역시 고향으로,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전과 갈등의 역사를 봉합하는 진정한 의사가 되려 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흔한 탈출기보다 내겐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1994년 여름, 데오가 노숙하던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같은 시간대에 내가 거닐었다는 점을 알고 참 가슴 아팠다. 나는 주위에 널린 흑인 노숙자들을 경계하느라 돈이든 백팩을 앞으로 돌려 꼭 잡은 채로 그 공원을 걸었다.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혹시 그 곳에서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았을까. 혹시 나는 굶주려 장염에 시달리는 그 앞에서 우아하게 공원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지나 않았을까.,,, 혹은, 오늘 지하철에서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동남아 이주 노동자는,,, 지금 서울에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데오들이 있을까,,,
결국, 이 책 덕분에 나는 내 주위를 좀 더 자세히 돌아 보고 소소한 실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책으로 사실과 전후 전개과정을 정확히 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생생한 경험을 전하는 논픽션을 읽는 것도 나를 예민한 각성상태로 이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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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붙여진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라는 서술형식의 긴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힘든 역경속에서 내가 살더라도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그 고통이 나를 삼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 고통을 이겨내고 그 고통보다도 더한 것을 이루어 냈다는 그 모든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소설 아닌 사실을 위주로 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빛은 내이름' 도 그랬고 '망고 한조각'도 그러했다. 두 책의 주인공들은 둘다 공통점이 있다. 둘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그 나라들은 내전이 심한 나라들이었고 그 전쟁으로 인하여 자신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었고 그렇지만 그 힘듦을 참아내고 결국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의대에 입학해서 의사가 되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전쟁에 휘말려 단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운이 좋아 사람들을 잘 만나게 되고 친구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의 나라를 떠난 그는 미국에 도착하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 배우고 자란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해 그곳에서의 정착도 어려워진다. 겨우겨우 배달일을 맡아서 하게 되지만 할렘가에서 사는 것이 힘겨워 노숙자의 길에 접어들게 되지만 배달일을 하게 되면서 만난 인연의 도움으로 영어공부도 하게 되고 대학에도 들어가게 된다. 나는 세계 정세에 큰 관심은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보다 못한 지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새삼 감사하게 된다. 물론 내가 감사함을 얻기 위해서 이런 책들을 읽는다하면 그들에 대한 무시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감사함은 저절로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려면 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아직은 그 지경에 이르지 못했나보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감사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부룬디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를 한다. 나는 실제로 이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다. 옆에 있는 르완다는 요즘 뉴스에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부룬디라는 나라는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책을 통해서 서계정세를 좀더 잘 알수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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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속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책의 주인공인 데오와 이태석 신부와의 차이점은 많다. 데오는 자기 민족을 위한 일을 했고, 이태석 신부님은 민족을 떠나 봉사를 하셨다는 것이다.
책의 호흡이 긴 편이라 읽어가면서 조금 힘이 들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었다.
데오는 참으로 불행했던 사람이다. 나랑 연배가 비슷한것 같다. 내가 태어난 해에 아기였다 했으니..
데오는 브룬디에서 수재였다. 데오의 학창시절 이야기들이 나에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마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그런듯 하다.
가난하고 자식이 많지만,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부모님 덕분에, 먹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교육을 받았고, 다행히도 데오는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의과대학에 진학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이, 브론디에서 두부족간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도 잔혹하게 서로 죽여가게 된 것이다. 특히나, 데오는 그 많은 잔인함을 스스로 느끼면서 직접 보기도 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데오는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영특했던 자신의 학력과는 상관없이, 아주 하층민 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브론디에서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라는 선진국까지 가서 노숙자가 된것이다. 가진돈도 없고, 영어를 하지 못한게 가장 큰 이유이다.
미국에서도 도움을 받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어쩌면 데오는 참으로 행운아 일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에 진학해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도 데오는 고향과의 연락을 끊지 않았고, 다행히도 부모님의 생존 소식을 접하고 또 하나의 희망의 끈을 잡게 된다. 물론, 다른 가족들의 사망소식도 함께 접하지만...
데오는 자신을 단단히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예전에 브론디에서 세우려던 병원을 다시 세운다. 그 이름은'카얀자 병원'
그곳은 이제 전쟁의 이어짐이 아니라, 전쟁했던 두 부족이 함께 섞일수 있는 중립지대가 되어 있다고 한다.
데오의 절실함이 이룬 결과다.
데오는 자신이 전쟁속에서 봤던 참상의 악몽에 아직도 시달리고, 미국에서 가장 하층민인 노숙자 생활에, 영어를 할줄 몰라 받았던 수모 등... 어쩌면 평범한 사람은 이겨내기 힘들었을 일들을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이루고자 하는 힘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 카얀자 병원을 세울수 있었던것 같다.
데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고..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혹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뭔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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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상처를 딛고 아이비리그 졸업, 다시 희망의 증거로 돌아가기까지"라는 책의 광고문구를 읽으면서, 왜 어려움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데오가 직접 자신의 책을 쓰지 않았을까? 왜 다른 필자의 힘을 빌려 책이 삼인칭으로 서술되고 있는지,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아프리카인의 희망이 된 주인공이라면 자신있게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브룬디의 내전과 학살을 피해 프랑스인 친구의 도움으로 받은 비자를 가지고 단돈 200달러를 들고 뉴욕공항에 도착해서, 프랑스어만으로 어렵게 소통하면서 일단 배달일과 노숙자생활을 시작하는 데오. 주위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모습과 함께, 그의 과거 이야기가 서서히 전개되면서 왜 저자가 데오가 아닌 트레이시 키더인지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무수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근 6개월을 도망쳐다니는 그의 모습은 정말 개인적으로는 돌이켜보기엔 너무 끔찍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죽어있는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를 외면하고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데오의 절박함은 한 인간이 버티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미국에 온 후 생활이 좀 안정된 이후에도 과거의 잔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지만, 그의 고통은 부유한 서구의 정신과 의사가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르완다의 비극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르완다의 접경지인 브룬디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 르완다 사태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Sometimes in April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충격받았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는데(기사만으로도 너무 끔찍해서 아무리 잘만든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 데오도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다가, "4월"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다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미국인들에게도 자존감을 지켰던 데오는 의대진학을 위한 공부외에도 철학공부를 통해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것도 고난이지만, 달러의 땅에서 가난한 인종으로 사는 건 고난의 맨 밑바닥이다" "그는 자신의 무지의 무게를 느꼈다, 단순히 글자에 대한 무지만이 아닌 삶에 대한, 사업에 대한, 인간에 대한 무지, 수십년, 수백년동안 축적된 나태함, 회피, 서투름이 그의 손과 발을 묶었다" W.E.B. 뒤부아의 "흑인의 영혼"을 통해 위안을 받았던 그는 지하철에서 자기도 모르게 글을 암송하게 되지만, 같은 칸에 홀로 앉아있던 다른 이용객은 그를 피해서 다른칸으로 자리를 옮긴다. 데오에게는 미국에서의 생활보다는 학살이 벌어지기전의 고국에서의 삶이 훨씬 행복했지만, 더이상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에 Partners in Health의 폴 파머 박사를 만나, 현대의학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세계의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되고 결국 부모님 계시는 지역에 병원을 짓고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데오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의 삶에서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해주면서 학살에서 벗어나게 해준 난민캠프의 후투족 아주머니, 자신도 가진게 없지만 데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한 샤론, 아들처럼 데오를 받아준 낸시와 찰리, 현대의학의 혜택을 못받는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PIH의 폴파머 박사.
이미 퓰리쳐상을 수상한 작가 트레이시 키더가 뉴욕에서의 삶을 먼저 쓰기로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브룬디와 르완다의 잔혹한 학살은 글로만 읽기에도 너무 힘들었다. 키더와 데오는 다시 브룬디로 돌아가 데오가 도망다녔던 루트와 죽을 고비를 넘겼던 장소를 둘러보기도 하는데, 이또한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브룬디와 르완다에서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끔찍한 대립은 벨기에의 식민통치와 연장선상에 있고, 세월로 잊혀지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남겨 아직도 분쟁의 씨앗은 남아있다. 너무 참혹해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지만 꼭 알고 넘어가야할 사태, 데오의 병원사업이 잘 진행되길 바라며 브룬디와 르완다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Bonne chance,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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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들어 집으로 데려온 책인데 너무 빨리 책속으로 내가 들어가버렸네요 브룬디에서 엄청난 일을 겪고 데오는 미국뉴욕에 와서 겪은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항상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향을 그리며 내 가족을 생각하는 데오.. 브룬디에서 벨기에대학의 장학금을 받던 데오였지만 미국에서는 식료품 배달원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최고의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다... 요즘같이 새해의 포부가 조금씩 누그러갈때쯤 읽기 좋은책인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