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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은 분명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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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의 기원에 대한 최고의 개론서”로 찬사를 받는 피터 디어교수의 <과학혁명>의 내용을 짧지만 정확하게 요약한 글을 책표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의 핵심은 지식과 실천의 긴밀한 연관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과학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것은 16, 17세기 유럽 과학에서 일어난 변화, 바로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거대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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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의 기원에 대한 최고의 개론서”로 찬사를 받는 피터 디어교수의 <과학혁명>의 내용을 짧지만 정확하게 요약한 글을 책표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의 핵심은 지식과 실천의 긴밀한 연관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과학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것은 16, 17세기 유럽 과학에서 일어난 변화, 바로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거대한 지적․문화적 전환이다. 이전의 과학이 자연데 관한 철학적 탐구였다면 이 시기의 과학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실용적․실천적 시도가 더욱 중요해졌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문제는 ‘왜’에서 ‘어떻게’로, ‘관조적 삶(vita comtemplativa)’에서 ‘실천적 삶(vita activa)’으로 이동한 것이다.”

 

유럽 학문의 뿌리는 그리스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발전한 다양한 분야의 학문은 로마로 넘어가면서 르네상스의 바람이 일 때까지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이를 추종하는 경향으로 오히려 퇴보해 가고 있었습니다. 흔히 르네상스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동양에서 처음 확립된 기술이나 학문적 성과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르네상스기를 지나면서 서양에서는 학문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온 반면 동양에서는 침체일로를 걷고 말았습니다. 서양에서 학문, 특히 과학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1,500년에서 1,700년에 이르는 시기에 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디어교수는 스티븐 셰이핀이 1996년에 출간한 <과학혁명>이라는 개론서를 통해서 “과학혁명 같은 것은 없었다.”라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하여 “과학혁명은 분명 일어났다.”는 내용을 담은 반론을 2001년에 “Revolutionizing the Sciences"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서 내놓았습니다. 번역을 하신 정원교수는 원저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자 <과학혁명>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1500년은 르네상스운동이 무르익어가던 시기입니다. 르네상스시기에는 엘리트계층을 훈련시키던 학교와 대학에서 고대의 고전시대, 즉 그리스․로마시대의 학문적 결실을 다시 해석하여 복원하는 움직임이었던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과학혁명시기에는 고대를 복원하는 방법을 통해 자연에 관한 지식을 증진시켜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고대의 업적을 단순하게 모방한 수준에서 벗어나 그것을 뛰어넘으려 부단하게 노력했기에 이룩한 성과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과가 바로 이 시기에 급진전 할 수 있는 배경을 디어교수는 따로 지적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세워졌던 대학이 유럽대륙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연구성과를 놓고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점과, 두 번째로는 1450년 구텐베르크에 의해서 발명된 인쇄술로 인하여 학자들의 연구업적을 단 기간에 광범위하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점이라 하겠습니다. 필사에 의해서 한정된 사람들만이 연구성과를 볼 수 있는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과학혁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술을 통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절대불변의 진리로 받들어져 왔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처음 확립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어스의 천문학에 따라 천동설이 정설로 굳어져 왔지만, 그리스시대에 이미 히케타스라는 사람을 비롯해서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정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69쪽). 다만 그들이 자신의 가정을 뒷받침할 근거를 내놓지 못했거나 프톨레마이어스만큼 유명하지 못했던 탓에 정설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코페르리쿠스의 지동설처럼 대부분의 혁명적인 과학적 사실처럼 대단해보이지 않는 단서들이 축적되어 오는 과정에서 혁명적 사고를 하는 과학자가 이들 단서들을 하나로 꿰어 맞추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새로운 정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전공이 전공인 만큼 브뤼셀출신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의학분야에서 성서로 모셔왔던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의 해부학관련 저서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밝혀낸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스 시대에도 사람을 해부할 수 없었던 탓에 갈렌은 원숭이를 비롯한 동물을 해부한 결과를 토대로 인체구조에 대한 저술을 남겼던 것인데, 베살리우스는 방대한 양의 인체해부를 직접 시행하여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인체해부학교과서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출판하여 의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어 우뚝 서기를 바라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승이 쌓아놓은 업적을 따라가다 보면 제자가 스승이 도달한 경지에 보다 빠르게 도달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새로운 경지를 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은 싹수있어 보이는 제자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한다는 각오로 교육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출어람이라고 하는 사자성어가 있는 것처럼 제자 역시 각고의 연구를 통하여 스승을 뛰어넘는 것으로 도리를 다한다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디어교수는 연금술부문의 파라켈수스, 천문학의 갈릴레오와 케플러, 의학의 토마스 하비 등이 고대 과학관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고, 뉴턴과 데카르트가 고대과학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물이었던 과학을 실험적 접근으로 입증하는 실천적 과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실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구조, 즉, 왕립학회 혹은 개인적인 후원자들이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조성되었고 과학발전에 기여하였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y*****2 2011.02.20.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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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의 성립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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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일어난 근대의 '과학혁명'이란 것이 무엇이며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어떤 인물이 중심이 되었고 어떤 사상이 주류가 되었으며 중세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어떻게 사고방식을 바꾸게 했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중세와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 이야기는 그럭저럭 이해가 갔으나 18세기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과학이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학문으로 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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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일어난 근대의 '과학혁명'이란 것이 무엇이며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어떤 인물이 중심이 되었고 어떤 사상이 주류가 되었으며 중세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어떻게 사고방식을 바꾸게 했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중세와 16세기에서 17세기 초반 이야기는 그럭저럭 이해가 갔으나 18세기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과학이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학문으로 변함에 따라서 끙끙거리며 읽어야 했다. 아마도 이과와 문과가 갈라진 것도 이즈음이 아닐까 싶다. 수학이나 물리, 천문학에 관심 있고 잘 아는 이과생이라면 읽기에 그다지 힘겹진 않을 테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수학, 물리, 미적분을 멀리하며 산 뼛속까지 문과생인 사람으로선 무척 어려웠다. 학문이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과정을 이 한 권에서 나도 단계적으로 잘 느낄 수 있었다.
 중세와 과학혁명 시기의 차이는 대략 학문에 대한 연구 방식, 학문을 하는 장소, 우주관 셋으로 갈라지는 듯하다.
 우선 학문에 대한 연구방식을 놓고 둘을 비교하자면 16세기 이전의 중세인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반면 16세기 들어와 나타난 새로운 철학자들은 성공적인 예측과 통제를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중세는 중세 대학에서 발전한 스콜라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중심으로 신학이 학문의 여왕이었으며 실용적 지식보다는 신념에 호소했다. 또한 자연에 관한 지식을 추구했던 분야는 '자연철학'이라 불렀는데 자연철학은 자연세계의 모든 면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관련저작들이 많이 활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설명이 목적으로 왜 사물들이 지금의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내서 사물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고 해서 이미 보편화된 경험에 의존해 자연철학이 다른 목표들보다 설명에 집착하게 했다. 발견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지는 않았다. 학자는 발견을 해야 한다는 관점은 17세기 퍼졌다고 한다. 중세는 실제 연구보다는 알려진 현상에 대한 설명을 강조했는데 이와 반대로 17세기는 실험에 많이 의지하게 된다. 실험적 연구는 자연이 일상적으로 스스로 무슨 일을 벌이는가보다는 자연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자연의 작동방식을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즉 '과학혁명'은 도구주의 또는 조작주의다.
 또한 저자는 '과학혁명'이란 용어는 17세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 앞단계는 즉 16세기는 '과학적 르네상스'라고 부르겠다고 말한다. 르네상스는 15세기 말엽에서 17세기 초엽까지로 모방해야 할 모델을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라고 여겼던 인물들이 이끈 문화적 운동으로 고대의 철학적인 전통과 저술들을 중시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인 '과학혁명'에서는 17세기 고대를 복원하는 방법으로 자연에 관한 지식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관두고 새롭게 발견한 지식이 고대 업적 모방을 뛰어넘게 되었다는 인식으로 바뀐다.
 과학에 대한 사고방식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중심이 되는 장소도 중세와 중세 이후는 다르다. 아직 중세가 이어진 1500년경은 대학이 유럽의 지적 세계를 지배했고 대학이 처음 설립된 13세기에 마련된 전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16, 17세기 들어오면서 유럽의 지적 세계는 대학에서 귀족 밑에 있는 학자들, 살롱, 왕립학회 같은 것으로 다양하게 퍼져갔다. 아무래도 대학은 그 당시에도 지금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맥이란 게 강했는지 새로운 학문 연구를 하려면 대학을 벗어나야 했나 보다. 갈릴레이도 그렇고 데카르트도 그렇고 대학보다는 귀족이나 왕족 밑에서 연구한 학자였다. 지금 다시 대학이 학문의 중심이 된 걸 보면 세상은 돌고 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체관도 중세와 16세기 이후는 달라진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스콜라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중심으로 구형의 지구가 중심에 자리한 둥근 모양의 우주로 세상을 설명했다. 달, 태양 같은 관측되는 천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에 붙박여 지구 주위를 회전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16세기로 들어와서 천체에 대한 생각도 차츰차츰 변한다. 지금의 천체관으로 확 바뀐 건 아니고 차츰차츰 여러 단계를 거치며 바뀌었다. 조금씩 천체관이 변하면서 세상의 변화도 따라갔고 또 그 세상의 변화 덕택에 천체관은 또 새롭게 바뀌었다. 그렇게 학문과 세상은 떨어지지 않고 물고 물리면서 바뀌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과학혁명'은 현재도 계속 되고 있는지 아니면 또 새로운 단계로 돌입하려는지 궁금해졌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도구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환경파괴 문제가 불거지면서 오히려 중세의 자연철학이 되살아나고 있진 않나 싶기도 하다.  

a****o 2011.03.0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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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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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살펴보면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인류의 과도한 과학발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과학발전이란 기술적 발전을 의미한다. 과거 신의 섭리, 자연의 법칙을 말그대로 발견하고 그 원리를 증명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법칙을 이용한 새로운 인류의 부산물들은 인류 자체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지금의 환경파괴의 문제가 그렇듯 말이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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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살펴보면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인류의 과도한 과학발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과학발전이란 기술적 발전을 의미한다. 과거 신의 섭리, 자연의 법칙을 말그대로 발견하고 그 원리를 증명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법칙을 이용한 새로운 인류의 부산물들은 인류 자체의 삶을 위협하게 된다. 지금의 환경파괴의 문제가 그렇듯 말이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생명윤리를 말한다’에서 그가 기술력 자체의 문제를 비켜서서 감정적인 인식전환의 대안을 내세운 것처럼 우리는 과학기술부문과 윤리(과거에는 종교에 지배받는 윤리였을 것이다)의 분리를 주장해야 할까. 과학의 연구 자체를 침범하지 않고 우리의 윤리적 인식과 충돌하는 바와 완전히 분리해야 옳은 것일까.

 

적어도 과학혁명 이전까지는 신의 섭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무신론과의 대립이 아니라 신의 존재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대립은 극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익히 갈릴레오의 재판을 잘 알고 있는데 이렇게 신적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으로 읽혀지는 가설이 등장하기 전에는 말이다. 과학르네상스와 혁명의 시기를 2세기에 걸쳐 지내오면서 과학의 발생이 교회와의 유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분명 교회의 권력정도와 과학에서 거론되거나 권위를 가지게 되는 연구도 극한적이었을 것이다. 고대 마야 등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문자와 천문학 등의 자연섭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종교와도 같은 권력층의 독점적 도구이기도 했다. 나는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과학혁명 시기 중 소소하지만 묻혀있거나 널리 전달되지 않은 사실들까지를 살펴봄으로써 과학계와 다른 사회계의 유착관계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과학혁명의 과정을 읽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의 부제인 유럽의 지식과 야망은 그 시대의 야망 뿐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하는 ‘앎’에 대한 허영을 자극하는 듯하다. 과거 유럽에서 그 지식에 대한 야망은 신의 섭리를 수학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의미했을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 편(2008년)에서 유적 속에서 주인공들이 발견한 것은 거대한 크리스탈 해골을 가진 외계유해였다. 그들이 과거에 지구의 생명체에게 전수한 것은 엄청난 지식이었고 주인공의 대립세력은 그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안타고니스트가 되었다. 재페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리메이크 편을 보면 주인공들은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부활의 지식을 욕망하여 신체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게 된다. 진리를 알아간다는 것은 아무래도(이 또한 인간들의 믿음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욕망, 야망, 위험성, 신의(혹은 교회) 권력에 대한 도전 등으로 해석되어 온 인류의 인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지식에 대한 욕망을 생각하게 된 듯하다.

독서 중 저자의 객관적 기술에서마저도 느껴지는 저자의 과학혁명에 대한 관점을 보는 데 치중하려 애썼다. 그에 의하면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주의와 언어적 논리가 통념화되면서 등장한 비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사물을 중요시여긴 베이컨, 왕립학회, 데카르트, 갈릴레오 등의 연구에서 뉴턴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이 (그의 용어에 의하면) 과학적 르네상스의 과정과 그 연장성의 과학혁명 과정이라 할 수 있다.(앞의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데카르트주의와 뉴턴주의가 그렇듯 공통적 분모가 여전히 존재하고 그래서 극렬하다고는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대립은 어쩌면 피상적인 것일 수 있다. 알려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일 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갈릴레오 이전의 코페르니쿠스의 존재에 대해 알았을 때의 충격처럼 여전히 그러한 사실은 존재했고 계속해서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한번도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법이 진리의 방법의 획득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에 대해 의심을 품은 이들에 의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논의가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대체로 일반화의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삼단논법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부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삼단논법에 대한 각각 다른 반론들이 가장 큰 나의 흥밋거리였다. 베이컨과 섹스투스, 데카르트와 가상디 등의 학자들에 의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바로 과학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왜 전제되는, 진리라고 여겨지던 것들에 진리성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을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배우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자연철학계 뿐 아니라 모든 논지의 방법론에 있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저 수용식의 학습에 내가 너무 익숙해져 온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을 중시했다면 데카르트, 뉴턴 등은 형이상학과 정신을 강조하면 정신과 육체의 구분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이후 이 부분이 공격당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공격을 받았듯 이후의 이론이라고 모두 완벽한 이론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쟁들이 중요한 것은 보다 과학적인 논증의 과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가설에서 시작 되었다기보다 선행된 논리에 대한 의구심과 논증의 사이에서 증명과 실험의 과정에서 완성되어 간다. 이렇게 증명되는 이론 또한 통념화되다보면 다시 반론을 반복하게 되고 현재까지도 우리는 이러한 자연철학계의 랠리덕분에 알려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과학혁명 이후의 이성주의, 합리주의적 중요성에 힘을 실어준 계기는 되었을 것이다. 이에 무신론적 관점과 결합한 지금의 과학적, 수학적이라는 용어의 인식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기술적 발전도 과학혁명 이후의 그러한 인식에서 신의 섭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출발점이 되었을게다.

 

이 책은 이렇게 과학사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현대인류와 과학을 대하는 인식론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객관적 진술들 마저도 여러 궁금증을 유발시켰는데 일단 첫째로 여러 과학자들 뿐 아니라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를 정리했다는 토마스 쿤에 대해서도 알게 했고, 패러다임 대체로서의 쿤의 ‘과학혁명’ 용어에 충실했는지, 아니면 어떤 면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앎’의 범위를 넓혀가게 한다. 그 ‘앎’이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먼지보다 작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앎에 대한 만족감은 그보다 클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평소에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던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으며 데카르트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독자에게도 추천하고싶다. 사실 책의 상당부분이 데카르트의 전후 자연철학사로 느껴지기도 했다. 또 뉴턴의 인력에 대한 논증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과 인력의 증명과정으로도 보이니 뉴턴주의에 대한 입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패러다임변환, 그러니까 저자가 과학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가시적인 완성으로 뉴턴과 무한우주에 대한 증명의 모든 배경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적 진술로 설명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미 말했듯 너무 성실했던 저자의 참고문헌과 등장인물, 읽을거리, 용어설명 등은 한권의 문고판 책이어도 손색이 없다. 아마 과학에 무지한 나는 과학의 패러다임, 혹은 과학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당분간은 이 책의 색인을 들춰보게 될 듯하다. 이 책을 덮고 나서는 가끔 잘 기억나지 않는 내용에 대해 색인을 찾아보곤 했는데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된 내용을 가진 역사서 중 색인을 참고하는 것이 얼마나 일대기적 정리에 도움이 되는지 경험했다. 저자는 이 방대한 내용의 과학혁명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조사 및 수집을 해왔을 듯 하다. 저자가 지식 자체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여 더 소중하게 생각되고 두고두고 몇 번이고 읽어야 할 것같은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저자의 글이 주관적인 평가 등이 지극히 배제되고 객관적 서술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저자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다. 이미 저자에게 설득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그의 어투가 (우리가 역사를 기술한 내용들을 그다지 의심없이 받아들이듯) 이 책을 교과서적으로(사실적 진리) 받아들이게 한다. 이 책이 내게 주었던 ‘의심과 반론적인 가설제시, 그리고 반론에 대한 연구가 생각의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저자의 언어에 이미 동조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의 엄청난 성실성을 볼 때 그의 철저한 조사 아래 이루어진 역사적 고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수동적인 동조가 많이 억울한 것은 아니다. 감탄의 다른 표현일 뿐.)

과학혁명의 시기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가. 앞에서 여러번 거론했듯 현대과학의 탄생적 모습이라는 과학혁명시기를 살펴보고 그 이후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나 다른 혹은 틀린 선택적 과학을 보아왔는지 꼭 생각해볼 일이다.

f*****5 2011.02.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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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유럽지식의 보고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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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유럽지식의 보고를 만나다시간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코 멈추는 일이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편리한 사고를 위해 단위를 설정하고 구분하여 때와 때 사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역사의 긴 흐름에 묻힐 수도 있는 특정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그 시간대를 규정하는 특정한 단어를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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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유럽지식의 보고를 만나다
시간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코 멈추는 일이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편리한 사고를 위해 단위를 설정하고 구분하여 때와 때 사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역사의 긴 흐름에 묻힐 수도 있는 특정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그 시간대를 규정하는 특정한 단어를 떠올릴 때면 그 유용성을 대한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과학의 산물에 대해 이렇게 특정한 시간대를 설정하고 그 시대를 특징짓는 일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얻어낸 사람들의 업적에 대한 규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하는 시간대 역시 규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소 편향적인 치우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러한 치우침은 인류 역사에 대한 평가를 할 때 현재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특정한 지역에 편중된다는 점이다. 인류가 이룩한 철학, 과학, 사상 등 굵직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할 때 서양의 관점에서 모든 인류의 업적을 바라보는 점이 바로 그러한 치우침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던 서양의 업적을 무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던 당시 동양의 철학, 사상, 과학 기술 등에 대한 평가절하를 하지 말자는 의미다.

‘과학 혁명’은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특정한 시기인 16~17세기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럽의 이 시기는 르네상스로 대표하는 다양한 철학, 사랑, 과학, 문화, 예술 등의 업적과 성과를 이어받고 보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도전의 결과가 집약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의 규정을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피터 디어는 16~17세기에 일어난 혁명적 전환을 ‘과학적 사유와 실천의 근본적 전환’으로 규정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과학자들로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등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는 지난 시기 사회를 규정하고 있던 사상의 변화를 필두로 하여 사고의 전환이 혁명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실천적으로 이끌었다는 특징을 들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대 전환이 이뤄졌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 시대의 파악을 16세기를 '과학적 르네상스'로, 17세기를 과학적 혁명의 시대로 보고 있다.

갈릴레이의 ‘운동에 대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하여 인류 과학사의 커다란 변환이 이뤄진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이렇듯 그동안 과학의 관심이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에 있었다면 이 시기부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이뤘다는 점이다. 이는 사고의 혁명적 변화였다. 즉, 과학이 차츰 실용적 지식에 집중하게 되면서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왜,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한다. 오늘날 인문학이라 부르는 학문들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무엇이었고 그 학문들이 상호간 영향을 미치면서 성과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자체가 변화했다고 파악한다면 그야말로 16~17세기 유럽의 지식을 총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발간 목적을 대학에서 강의에 사용되도록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과학의 다양한 주제와 쟁점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중요한 업적과 성과를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분명 처음 과학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이면서 개론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다.

인문학 특히 과학이나 철학 사상 등이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으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입문서가 아닐까 싶다.



m*****8 2011.02.2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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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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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를 과학혁명이라고 명명했을까,과학의 원천은 무엇일까등을 염두에 두고 결코 쉽게 읽혀지지 않을 도서를 찬찬히 읽어 가노라니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와 함의를 이해하고 이론적인 딱딱하고 연구라는 굴레를 벗어난 담론 형식이어서 뒤로 갈수록 과학혁명에 대한 수학,물리학자들의 이론과 당대의 이론이 독자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계승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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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이면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를 과학혁명이라고 명명했을까,과학의 원천은 무엇일까등을 염두에 두고 결코 쉽게 읽혀지지 않을 도서를 찬찬히 읽어 가노라니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와 함의를 이해하고 이론적인 딱딱하고 연구라는 굴레를 벗어난 담론 형식이어서 뒤로 갈수록 과학혁명에 대한 수학,물리학자들의 이론과 당대의 이론이 독자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계승하기도 하고 보완적인 면을 띠는 점도 눈에 띄게 되어 서술이 생생하고 흥미롭게 다가옴을 느꼈다.

 16세기 이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등이 자연을 탐구하고 자연에 의하여 그들의 독특한 사상과 사유를 확장시켰으며 16세기는 과학적 르네상스와 더불어 17세기 혁명의 시대의 전성기였음을 알게 된다.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의식은 18세기 유럽인에 의해서였고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부터 뉴턴의 우주와 보편중력을 이끄는 세계  시스템이 확립된 18세기초에 경탄할 만한 과학적 이론이 탄생되고 이를 '혁명'의 기간으로 간주하게 되었던 것이다.즉 16세기이전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철학과 이론이 학문을 연구하는 과학도에겐 그의 사상의 노예였는지도 모른다.또한 중세의 스콜라주의 자연철학자가 새로운 발견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강요받을 만한 의식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자연철학의 목표 변화는 17세기 대규모 사상적 변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발견 자체는 지리학 용어를 사용해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로버트 후크의 현미경에 대해,극히 작은 세계에서 발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하며 베이컨등도 발견의 이미지를 자주 부각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도전하고 그것을 교체하려는 노력과 극미의 입자,원자과 관련된 자연적 과정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플라톤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수학적 형식주의를 제안하기도 하는등 정교한 실험들에 입각하여 사상과 이론을 내놓기도 하며 이는 도구주의 및 조작주의라는 용어가 가장 적절하게 들린다.

 저자는 자연에 관한 사상들,자연에 대한 지식 추구의 올바른 목표들,지식을 획득하는 방법들에 대해 전반적 내지 심오한 구성을 삼으려 하고 있으며 14세기말엽에서 17세기초를 광범위한 문화를 포괄하는 인문주의 르네상스 시대로서 권력자나 식자층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었고 과학적 르네상스는 수학을 포함한 고대의 철학적인 전통과 저술들을 중시했음을 알게 된다.

 17세기에는 고대의 건축물,시,자연학,수학,천문학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토대로 새롭게 발견되고 발전한 지식이 고대의 업적을 모방하는 단계를 벗어나 초월하는 단계로 진전되었다는 사실이다.고대의 권위있는 저술들을 따르지 않고 혁신적으로 새로운 이론과  사상으로 독보적으로 나아갔던 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케플러,갈릴레요,데카르트,하위헌스,아이작 뉴턴등이 과학 혁명에 어울리고 이들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고 자연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학문적 프로그램을 진전시키려는 야망과 '방법'의 논의를 통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정당화하던 주장과 경쟁해야 함도 알게 되었는데 데카릍와 베이컨의 사례에서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자연에 관한 지식과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론의 변화를 그 이전과 구분하여 '과학 혁명'이라고 지칭하고 있다.16세기 이전의 고대 자연철학과 사상을 기본으로 삼고 있지만 응용물을 생산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가 자연철학이라고 하고 단지 작업결과물로만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해당하는지를 파난하는 기준으로까지 삼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j******6 2011.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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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있다? 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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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그 중심에 오래도록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빚어진 피조물이었고, 인간은 신의 손짓이 만들어낸 하나의 미물이었다. 무슨 뜻에서였던가, 신은 이 작디작은 생명체에게 자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었고, 그렇기에 지구는 만물의 중심에 놓인 것으로 당연시 되었다. 첨단을 달리는 최근에도 종교의 힘은 지대하며 특정 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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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그 중심에 오래도록 놓인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빚어진 피조물이었고, 인간은 신의 손짓이 만들어낸 하나의 미물이었다. 무슨 뜻에서였던가, 신은 이 작디작은 생명체에게 자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었고, 그렇기에 지구는 만물의 중심에 놓인 것으로 당연시 되었다. 첨단을 달리는 최근에도 종교의 힘은 지대하며 특정 신을 믿는다는 인구의 비율은 상당하다. 그렇지만 500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의 세계와 비교를 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경험했다. 예전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많은 질병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나도 가벼이 다루어지고 있다. 원인을 알지 못해 영적인 무언가의 힘을 빌려 해석하려 들었던 많은 영역이 베일을 벗고 우리 곁에 다가와 앉았다. 최근으로 올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세상이 급변했던 건 아니다. 가속도가 붙은 시점이 언제인가를 논하자면 아마도 16세기 정도가 가장 적절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의 시기를 과학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점으로 보았다. 역사는 하나의 흐름이고, 물이 흐르다 갑자기 멎지 않듯 역사 역시 끊기는 부분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과학‘혁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일컫을 만한 이유가 있을까?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던 고전에 대한 강렬한 의문 제기가 그맘때 행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날처럼 전문화라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 고대인들은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힘은 다방면에서 막강했는데, 그의 사후에도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 동안 그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했다. 이전에도 아마 의문의 제기는 있었을 것이다. 그저 개별적으로, 미미하게 제기되었던 의심이 16세기 무렵부터 세상에 변화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노라고 저자는 보았다. 그저 무시되기 바빴던 다른 관점에 대한 이해의 시도가 바로 이 시기에 행해졌던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보았던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은 ‘유레카’를 외칠 만큼 혁신적이었을 것 같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 없으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한 마디의 말로 더욱 유명해진 갈릴레오의 생도 이 시기에 걸쳐 있었다. 진실로 여겨지던 것들에 대한 의심과, 기존의 지배적인 관점에의 변화 그 자체는 작은 듯해 보이나 그 모든 게 일으킨 파급효과는 실로 컸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과 신이 제 위치를 바꾼 것도 바로 이 시기가 아닐지 조심스러운 짐작도 해 본다.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데카르트주의와 뉴턴주의 간의 논쟁은 분명 또다른 지배적인 사고의 붕괴로 이어졌을 것이다. 산산이 부서지는 아름다움이 여러 차례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혁명이라 부를 법한 변화와 만나게 된다. 1500년경부터 200년가량의 시간은 권력 구조만을 놓고 보면 전근대적으로 보여질 따름이다. 학문을 위해서는 왕의 후원이나 비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당시의 시대상이라든가 연구의 업적 역시 왕의 소유물로 치부되던 시대적 분위기 등은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과학사에서 일어난 변화는 그 폭이 심히 컸다. 에테르라는 단 하나의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세상에 대한 다른 시야가 고개를 치켜들었고, 천문학에서는 지구 이외의 별에 대한 인식에의 진전이 있었으며, 하비와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인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를 혁명으로 부르지 아니한다면 그 무엇도 혁명으로 부를 순 없으리... 하지만 이 시기에 두드러진 몇몇 천재들은 오랜 세월동안의 축적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생각도 한 편으론 든다. 뉴턴주의가 실제로는 뉴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연구와 사상이 혼합된 잡종(이상 p306)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q*****2 2011.02.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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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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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디어의 <과학혁명> (Revolutionizing The Sciences)은 16세기, 17세기 유럽에서의 과학적 발견과 과학에 대한 사고의 변화에 대해 가볍지 않게, 그러면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옮긴 정원 교수가 제목을 짓는데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책은 '과학혁명'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정작은 '과학'을 바꾸어가는 과정(혁명)에 대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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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디어의 <과학혁명> (Revolutionizing The Sciences) 16세기, 17세기 유럽에서의 과학적 발견과 과학에 대한 사고의 변화에 대해 가볍지 않게그러면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옮긴 정원 교수가 제목을 짓는데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책은 '과학혁명'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정작은 '과학'을 바꾸어가는 과정(혁명)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걸 그대로 '과학혁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것이고, 그래서 원제도 Scientific Revolution이 아니고 Revolutionizing The Sciences인 셈이다. 

 

 200년간의 과학혁명으로 동양과 서양의 과학나아가 전체적인 역량의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면 그 시기의 유럽 과학자들이 무슨 생각으로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대하고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여기서 서술하고 있는 과학적 발전으로 향후의 동서양 발전의 차이 모두를 환원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의 역량이 그 국가내지는 지역의 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어떤 과학 업적이 어떻게 전개되고어떻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대신 그러한 과학 업적의 배경과 그 바탕이 되는 사상적 기반에 대해서 더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그러한 사상적 기반에 대한 탐구로 16세기와 17세기의 과학 작업이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밝힐 수가 있다, 16세기에는 중세에 대한 반발로 고대 (가장 중요하게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적 과학이었다면,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과거의 단절을 통해 실질적인 과학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바로 이17세기의 과학혁명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의 과학 활동도 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과학적 활동에 대해 적지 않은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는데그 중 하나는 실험에 대한 것이다지금은 실험 (자연의 조작)을 통해서 가설을 검증하고인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그런데 당시에는 그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상당했다는 것이다자연을 자연 그대로 파악하지 않고조작을 통한다는 것은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뉴턴도 이런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는데 일면 타당해 보이는 이 비판은 다시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사색적 활동만으로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물을 수 밖에 없다사실은 지금도 이에 대한 고민은 있다예를 들어 생물학에서 in vitro (시험관 내실험이 과연 생물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in vivo 실험이라고 하더라도 생물체를 모방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동물 실험을 하더라도 그것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사실은 맥락을 비슷하게 갖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그 당시의 과학의 발전이 과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사실 나는 이게 가장 궁금하다내가 하고 있는 과학 활동이 나의 밥벌이를 제외하고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늘 궁금하고 고민이 된다비록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대로 된 자연철학이란 인류 복지의 증진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들의 작업이 어떤 의미에서 거기에 이바지했는지 궁금하다물론 베이컨을 따르는 왕립학회의 활동이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았지만실용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그게 어떤 방식이었는지 나는 또다시 궁금하다. 즉 '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정말 알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런 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 연구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고 이미 읽었던 몇 권의 책을 내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리처드 웨스트폴의 <프린키피아의 천재

스티븐 호킹 편저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피터 앳킨스의 <갈릴레오의 손가락

오래 전에 읽었던 책들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한 정도를 넘어선다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다시 내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을 날이 올 것이다그 때 다시 <과학혁명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16.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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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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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얼마 후, 대부분의 분야가 문화라는 통합점을 필두로 정립되어 가던 16세기에서 17세기를 훗날 학자들은 '과학 혁명'의 시기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학설이 그렇듯 바로 그 '과학 혁명'을 인정하는 자와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부류가 나뉘긴 했어도, 그 시기 과학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문화와 예술이 다른 분야를 감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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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얼마 후, 대부분의 분야가 문화라는 통합점을 필두로 정립되어 가던 16세기에서 17세기를 훗날 학자들은 '과학 혁명'의 시기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학설이 그렇듯 바로 그 '과학 혁명'을 인정하는 자와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부류가 나뉘긴 했어도, 그 시기 과학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문화와 예술이 다른 분야를 감싸며 발전하는 르네상스가 그랬듯 과학 또한 유럽의 갖가지 물결들을 통해 통합되었는데 바로 이 시기의 과학은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도, 또 실체적으로도 엄청난 발전과 대립을 불렀다. 과학 혁명 이전에는 모든 것이 신과 종교로 귀결되던 시대였으니 과학이라 해도 실험과 경험에 근거하기 보다는 단순이론이나 설명에 의존했기에 논의나 다툼을 별반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3세기 이후 이탈리아 등에 세워진 대학과 인쇄술의 발달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추구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이들의 빛이었다. 이때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의 개념정립과 정리는 과학 혁명의 시작이 되었고, 과학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대대적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과학 혁명이 학문상 정립된 용어인지는 모르지만 번역자 또한 한국어로 이렇게 옮길 수밖에 없었음을 필력하니 제목으로서, 과학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꽤 중요한 용어임이 분명하다.

 

많은 것이 부존재하던 시대의 의견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분별하고 다양했다. 우리가 익히 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깨어나오는 과정은 철저하고 놀라웠다. 언급되는 많은 철학자와 수학자, 과학자를 논외로 하고도 관념 속에 머무르는 철학으로서의 과학(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같은 것)을 실증적인 경험과 객관적 연구로 탈바꿈시키는 여러 방면의 이론들은 그야말로 혁명일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었지만 과학과 철학이 뒤엉킨 탓에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내 얕은 지식 탓이라고 해도, 읽어내는데 기본적인 과학과 철학 지식이 필요한 책이었기에 흘러내린 부분이 꽤 되는 점이 아쉽다. 그러고보면 모든 분야의 초기지식은 언제나 철학이었다. 고대나 중세에는 전부였던 철학이 현대로 오면서 점점 뒤로 물러나는 후퇴 학문이 됐는데 모든 것의 뿌리가 철학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은 쓸모없는 학문이고 과학은 실천적 학문이라면, 이처럼 그 뿌리를 철학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되는 학문들을 어떻게 기초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날 과학자를 만들어 내는 건 실험적 경험과 자연철학이 반반씩 섞인 통합적 지식일 것이다.

 

오늘날 통신의 발달을 그럼 과학 혁명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정립된 꼬리를 물고 늘어져 발달해온 경험과 실험으로 표출된 시대가 과학 혁명의 시대라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과학에의 새로운 연구성과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과학 혁명이 단지 과학의 발전만은 아니었듯, 모든 분야가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맞물려 발전해야 한다는 대전제의 명제만을 얻게 된다. 내겐 어려웠지만, 그래서 유익했다. 과학 혁명 뒤에 관념적 사유나 철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자체도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던 이론들을 뒤엎으면서 새로운 학자의 연구결과가 나올 때 그때 한걸음 발전하는 거란 이론이 언제나 자기네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을 잊게 해준 것 같다. 오늘날 과학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행위 자체로 인식된다. 과학의 발전이 곧 인류의 미래를 저당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적 과학으로 나아가게 된 과학 혁명의 여러 시기들을 경험하게 해준 것에 고마움을,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좀 더 유연함을 가르쳐준 것에 감사함을 보탠다.  

s*****d 2011.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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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과학으로 우뚝 선 그 때, 과학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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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혁명이라는 말은 급진적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것을 뒤집는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다. 혁명은 흔히 정치적인 말로 사용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과학의 역사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과학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다른 시각에선 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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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혁명이라는 말은 급진적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것을 뒤집는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다. 혁명은 흔히 정치적인 말로 사용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과학의 역사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과학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다른 시각에선 이 시기를 '과학 혁명'이라는 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피터 디어가 말한 17세기는 가히 혁명적으로 과학이 발전한 셈이다. 아니 과학이 철학이 아니 과학이 될 수 있었던 기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아도 혁명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것같다. 중요한 것은 '혁명'이라고 부르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17세기에 이루어진 과학의 존재가 당시로서, 현재로서, 그리고 미래로서 무게있는 존재감을 가진다는 점이다.

 

과학이 '자연 철학'으로 불리우고 실험이나 관찰 등 경험적인 것보다는 이해와 설명에 치중해 있던 이른 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인 고대시대의 과학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들의 과학은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에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느낌을 더 많이 갖는다. 물론 당시에도 주류를 이룬 이들의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러한 자연철학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피터 디어는 이 시기를 '과학적 르네상스'라고 불러 17세기와 구분지었다. 16세기 역시 17세기와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한 과학적 활동들이 있었지만 '르네상스'라는 말이 알려주듯이 '고대의 부활'에 대한 의미가 크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피력했지만 그것 역시 고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연철학자가 아닌 천문학자로서 입장을 국한시켰다. 그는 단지 아리스토텔레스를 대신하고 싶었을 뿐, 자연철학과 천문학, 수학을 대등하게 취급하고픈 야망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과학 혁명'의 시대는 달랐다. 그 동안 인정받지 못한 수학, 의학, 천문학 등 지금 우리가 능히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자연철학의 영역과 대등하게 인정받게 된다. 또한 사색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험을 통한 특정한 활동을 중시하게 되는 등 현대의 과학과 거의 근접하게 된다. 이는 베이컨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 뉴턴에까지 이르게 될 정도 많은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또 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낳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현대를 생각한다.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현대의 그리고 미래의 우리를 조망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사실 지금의 과학 발전 속도를 보면 현대도 과학이 정말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손바닥보다 작은 세상에 인간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시대, 삶의 의미를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에서 찾는 시대,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 어쩌면 피터디어의 말(과학혁명)을 인용하자면 지금의 시대는 과학혁명2기일지도 모른다. 또 미래엔 3기,4기가 이어질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과학 혁명'이라는 말의 의미가 퇴색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17세기의 과학은 현대의 과학에 근접하는 급진적 시기임에는 분명하니 이름짓는 것에 굳이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책을 읽으며 편집상의 문제인지 독해력의 문제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명확하게 시기를 구분하여 16세기 과학의 특징과 17세기 과학의 특징을 좀 더 명료하게 기술하여 독자의 이해력을 도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개정하면서 연금술사나 장인, 수학, 철학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였다고 하는데 그 점은 신선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통일성이 좀 결여되어 더욱 이해에 방해가 되었다. 17세기 과학혁명의 시대보다 기타 등등이 더 부각되어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타일까?

p227- 9째줄

이런 책들의 대부분은 학회에 출판된 게 아니었지만, ----->해는 무엇일까요??

t****3 2011.0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