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6%
  • 리뷰 총점8 68%
  • 리뷰 총점6 12%
  • 리뷰 총점4 4%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보이지 않는]나는 내가 아니듯 진실은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나는 내가 아니듯 진실은 저 너머에" 내용보기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렸을 적부터 알아 왔던 사람과 평생을 가기도 하고 최근에 만난 사람이 그 어느 누구보다 마음을 교감하기도 하게 된다.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도 달라진다. 마치 미로처럼 알 수 없는 길에서 길의 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인생은 어떻게 펼쳐
"[보이지 않는]나는 내가 아니듯 진실은 저 너머에" 내용보기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렸을 적부터 알아 왔던 사람과 평생을 가기도 하고 최근에 만난 사람이 그 어느 누구보다 마음을 교감하기도 하게 된다.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도 달라진다. 마치 미로처럼 알 수 없는 길에서 길의 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인생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알 수가 없으니 무엇하나 정의내리지를 못하겠다. 지금보다 났다는 보장도 못하겠고 지금보다 못할 수도 있으니.

어느 날 애덤 워커에게 다가 온 루돌프 보른과 마고처럼 말이다.

1967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문학도 애덤은 어느 파티에서 프랑스인 커플인 루돌프 보른과 마고를 만나게 된다. 헨리 왕자의 죽음을 노래한 음유시인인 베르트랑 드 보른처럼 악마의 기질을 갖고 있는 보른은 애덤에게 문학잡지를 창간에 참여하라며 거액의 수표를 떼어주고 전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고 컬럼비아 대학 신문사에서 서평을 쓰던 워커는 그의 제안에 솔깃해 같이 하기로 하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보른과 어울리면 위험스러운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직감했으면서도 그의 매력과 지성, 유머를 거부할 수 없어 삶에 들였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마고와의 만남도 그에겐 치명적이었다. 한 흑인 소년의 죽음과 그것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그에게 어떤 일들을 당하게 했는지. 평생 사랑했던 누나 그윈과의 뉴욕에서의 일들은 과연 진실인지, 자신이 원했던 상상의 이야기 인지  마치 보른처럼 위험스럽고 매혹적이었다.

워커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애덤 워커의 이야기인 이 책은 1부에서 1인칭,  2부로 넘어가며 2인칭으로 바뀌고  또한 3인칭으로 전개된다. 워커가 말하는 1967년의 이야기는 진실인지 진실을 위장한 꾸민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매혹적인 이야기를 나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름을 바꿔 다른 사람으로 바꿔 말하는 이야기이고 진실이되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버린다.  

작가가 말해주지 않는 진실.
작가가 말하는 결말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마무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 다시 앞페이지를 뒤적거려 보았다. 그래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이 한 편의 소설로 인해 나는 아마도 한동안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찾아 읽을 것 같다.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도 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1.04.27. 신고 공감 6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불친절한 오스터씨!
"불친절한 오스터씨!" 내용보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독자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그 의도하는 바를 너무 막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폴의 신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연휴기간에 책을 읽었다. 폴의 어떤 작품보다 흡입력이 있어서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incest를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오래 전 마광수 교수의 판금조치가 떠올
"불친절한 오스터씨!" 내용보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독자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그 의도하는 바를 너무 막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폴의 신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연휴기간에 책을 읽었다. 폴의 어떤 작품보다 흡입력이 있어서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incest를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오래 전 마광수 교수의 판금조치가 떠올랐다. 마교수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것인지 이상한 작가로 낙인이 찍힌 반면 폴의 소설은 19금도 붙지 않고 그대로 출간이 되었다. 시대가 좋아진 것이겠지.

 

 서사구조는 중간까지는 술술 읽히다가 결말부분에 가서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아니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서사 위주로 보는 나로서는 그 심오한 schema를 알 수가 없다. 추리 소설이 아니라서 어떤 반전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단지 책을 읽으면서 작년 초에 보았던 영화 다우트(doubt)가 생각났다. 차라리 소설이 다우트처럼 독자에게 누가 진실인지 판단하게 했으면 나았을 텐데. 책 소개 기사에서 보이는 폴이 강조하는 우연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꾼다는 것은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으니 이번 책에서 굳이 또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과하면 지겹다)

 

 대개의 독자는(특히나 여성) 이 책을 읽고 불편한 느낌을 가질 것 같다. 워커가 굳이 어떤 의도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고백했는지 논하기에 앞서 동서양을 떠나 incest를 언급하기에는 꺼림직한 무엇인가 있는 것이다.(문득 파엘로의 11이 생각난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선물했는데 나중에 책을 읽고 나서 괜히 선물했구나 하는 기억이 있다.) 역자 후기에 보이는 편지 1,2,3에 보이는 인칭의 변화를 통한 울림은 그다지 큰 것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못 찾는 나로서는 서사에 만족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서사마저 다른 소설보다 못했다.

h*****e 2011.02.06.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011⑦ 보이지 않는 -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2011⑦ 보이지 않는 -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영미권 소설은 즐겨 읽지 않는 편임에도 폴 오스터만은 대체로 예외였다. 더구나 요즘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독일 소설에서 좀 벗어나 지평을 넓혀보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라 폴 오스터의 신간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필수' 코스나 마찬가지. 그런데 폴 오스터의 이번 이야기는, 재미는 있으나 끝까지 '보이지 않아'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어제 여행
"2011⑦ 보이지 않는 -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내용보기

영미권 소설은 즐겨 읽지 않는 편임에도 폴 오스터만은 대체로 예외였다.

더구나 요즘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독일 소설에서 좀 벗어나 지평을 넓혀보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라 폴 오스터의 신간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필수' 코스나 마찬가지.

그런데 폴 오스터의 이번 이야기는, 재미는 있으나 끝까지 '보이지 않아'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어제 여행에서 돌아오는 내내 애덤 워커의 행적과 그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곰곰히 곱씹어야만 했다. 대체, 폴 오스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1967년 봄,

컬럼비아대 2학년으로 작가(시인)를 꿈꾸는 애덤 워커는 한 파티에서 묘한 프랑스인 커플을 만난다.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인 루돌프 보른은 지적이며 쾌활했고, 곁을 지키던 마고는 말 없이 묘한 매력을 풍기는 여성이었다.

보른의 독특함과 마고의 매력에 끌린 애덤 워커는 우연한 기회에 보른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게 된다. 투자를 할테니 제대로된 문학잡지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마냥 기뻐하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기회였기에 애덤은 다소 망설였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보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불행한 사건이 이어진다.

보른의 이상한 부추김 속에 애덤은 보른의 여자인 마고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어쩐 일인지 보른은 추궁 대신 귀찮았던 마고를 정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후 잡지 제작에 앞서 보른과 축하파티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애덤은 살인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길을 걷던 보른과 애덤에게 총을 겨누며 돈을 요구하던 흑인 소년을 칼로 물리친 보른은 애덤이 구급차를 부르러 간 사이 사라지고, 다음날 신문에는 공원에 버려진 흑인 소년의 시체를 누군가 열 두번 씩이나 찔렀다는 기사가 난다. 두려움에 떨던 애덤은 한참 후에야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보른은 이미 뉴욕을 떠난 후였고, 애덤은 그 후로 오랫동안 괴로워한다.

 

다음 장은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후, 애덤의 친구인 소설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시절,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누던 애덤이 갑자기 사라진 후 짐은 유망한 소설가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에게 암에 걸린 애덤 워커가 편지와 일종의 '회고록'을 보내온다.

<봄>, <여름>, <가을> -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이후 30년 동안 애덤 워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순수했던 젊은 날 양심에 상처를 입은 그가 '보이지 않는' 악인처럼 여겨지는 루돌프 보른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게 된다.

누나와의 근친상간, 루돌프 보른을 향해 '맨주먹의 백병전'을 펼치기 위한 몸부림, 양심의 가책을 씻기 위해 변호사가 되어 詩로부터 정의로 방향을 선회했던 삶까지...

인칭의 변화는 물론, 또 다른 증언자인 세실 쥐엥의 일기를 감당하며 애덤 워커의 삶을 조각조각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애덤 워커의 이야기들은 모두 진실인가, 진실이 아니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폴 오스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정말로, '보이지 않는' 미궁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이야기 중간중간, 폴 오스터는 다양한 메타포를 보내지만 하나로 묶어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어떤 책을 엉뚱한 자리에다 꽂아 놓으면 20년 이상 실종되어 버리고 떄로는 영구히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야.'

 

'세상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은 가시적인 것이고

또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현실이 치명적이라고 믿는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에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듯,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단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으로 일단은 나 자신과 타협을 했다.^^

한 순간 욕망에 눈이 멀어 내린 결정이 삶을 송두리째 흐트려 놓을 수도 있다,라는 요약은 구역질나게 교훈적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나 힘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라고 요약하자니 손이 부끄러울만큼 유치하다. 다른 한편,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내 앞에는 불모의 땅이 뻗어 있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회색 바위들로 어수선한 불모의 땅. 먼지가 이는 땅이었다. 그 땅의 돌들 사이에서 50명에서 60명가량의 남녀가 흩어져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한 손에는 끌을 잡고서 큰 돌이 둘로 쪼개질 때까지 두들겨 댔다. 둘로 쪼개진 돌은 더 작은 돌로 쪼개질 때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더 작은 돌이 자갈로 줄어들 때까지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중략)...

그것은 주로 사슬에 매인 수감자들이나 할 법한 일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사슬에 매여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고, 돈을 벌고 있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돌들의 음악은 화려하면서도 치열한 것이었다. 50개 혹은 60개의 망치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각자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장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망치 두드리는 소리는 내 몸에 스며들어 내가 그곳을 떠난 오랜 뒤에도 내 안에 머물렀고 심지어 지금 대양을 건너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다. 그 소리는 앞으로 나와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내 여생 동안,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 소리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함께 있을 것이다.

 

루돌프 보른이라는 권력자 혹은 악인에 의해 애덤 워커의 삶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지만, 그 속에서 그는 젊은날의 꿈은 물론 수치마저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삶이 아니라 돌들의 음악처럼 화려하고 치열한 삶,

폴 오스터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믿어 본다.

p********e 2011.02.2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내용보기
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삶을 회고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질적인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이다. 이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다. 삶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르거나 더 깊은 내용을 담아나기 위한 성찰의 기회이기에 생을 마감하는 시점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을 회고한다면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건이나 사고 등
"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내용보기

무엇을 회고할 것인가

삶을 회고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질적인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이다. 이는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다. 삶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르거나 더 깊은 내용을 담아나기 위한 성찰의 기회이기에 생을 마감하는 시점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을 회고한다면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건이나 사고 등 회고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고 많겠지만 그 모든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일 것이다. 한사람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 사람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사람들을 회고한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폴 오스터의 작품 ‘보이지 않는’는 생의 마지막에 지난 삶을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7년 예순 살을 맞이한 주인공 워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다. 그는 인생을 회고하며 ‘봄’, ‘여름’, ‘가을’이라는 세편의 글을 남긴다. 이 세편의 글은 각기 시점을 달리하며 나, 너, 그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봄’은 그의 인생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청춘의 시절을 보내던 시기 자신이 재학하고 있는 대학에 프랑스에서 교환교수로 온 보른과 그의 연인 마고를 만나면서부터 시작하여 보른이 살인을 저지르고 프랑스로 돌아가기까지 세 사람이 겪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살인을 목격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한 워커는 이로부터 굴곡 많은 인생행로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여름’은 혼란스러운 삶의 격동기를 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른과 마고가 떠난 뒤 워커는 누나 그윈과 함께 여름을 보낸다. 둘은 오래전에 죽은 동생을 추모하며 어린 시절 함께한 위험한 실험을 생각해내고 서로 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금기이며 터부시되어온 일을 벌이며 폭풍 같은 여름을 보낸다. 이 여름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훗날 누나 그윈에 의해 부정되는 등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제공한다.

 

‘가을’은 워커가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에 해당된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 워커는 마고를 떠올리며 만나게 되고 우연히 보른과 마주치며 또 다른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대학교수라지만 정체가 의심스러운 보른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의해 추방되기까지를 그려가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세편의 이야기는 40여년이 흐른 뒤 워커에게 연락은 받은 대학친구에게 전해지고 그로부터 누나 그윈이나 프랑스에서 알고 지냈던 세실과 연락하게 되고 그로부터 워커가 남긴 이야기의 세편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해가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사람의 회고록이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 사실이라고 확인되지만 유독 여름에 해당하는 내용은 그 당사자로부터 부인된다. 이는 이해할만하다.

 

이 작품은 특이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세 명이며 40년을 건너뛰며 진행된다. 회고록의 주인공인 자신, 그의 친구의 시각 그리고 40년 전 짧게 만났지만 깊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이 주인공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신선함 느낌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 의붓딸에게 자신의 회고록 컴퓨터 파일을 지울 것을 유언으로 남기면서도 친구에게 사본을 보내는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어쩜 이런 것이 삶이 아닌가도 싶다.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이성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며 확인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 이것은 바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시기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이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어떤 규정을 내릴 수 있을까? 자신의 삶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의 삶을 볼 때는 어떨까?



m*****8 2011.08.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폴오스터식 '개인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폴오스터식 '개인의 이야기'" 내용보기
[소설]보이지 않는(invisible) Paul Auster 作   내가 언제나 검색하는 2명의 작가중 한 명인 폴 오스터.처음 접한 '달의 궁전'은 내 독서인생의 충격으로 다가왔다.우연에 의해 뒤틀린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은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여주려던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주인공 삶 그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임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폴오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폴오스터식 '개인의 이야기'" 내용보기

[소설]보이지 않는(invisible) Paul Auster 作

 
내가 언제나 검색하는 2명의 작가중 한 명인 폴 오스터.
처음 접한 '달의 궁전'은 내 독서인생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연에 의해 뒤틀린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은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여주려던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주인공 삶 그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임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폴오스터의 소설은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저 개인의 이야기에 가까운 형태로 전개되는데
이번 소설 '보이지 않는'또한 주인공 워커가 한 파티에서 우연히
루돌프와 그의 연인 마고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이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전 여러 소설들에 비해 좀더 담담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역시 폴오스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시 후속작을 기대하게 된다.

ps.간만에 글을써서 손발이 오글오글 ㅜㅜ

s******8 2011.02.2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내용보기
만약 그녀의 고통이 너의 고통만큼 크지 않다면, 지난 한 달 동안 너희 둘이 살아온 저 자그마하고 완벽한 우주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리라. –p161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의 신작 소설이라는 이유로 출간되자 마자 주문을 해서 읽는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것이 폴 오스터 소설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책 치고 아주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내용보기
 

만약 그녀의 고통이 너의 고통만큼 크지 않다면,

지난 한 달 동안 너희 둘이 살아온 저 자그마하고 완벽한 우주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리라. –p161


보이지 않는...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의 신작 소설이라는 이유로 출간되자 마자 주문을 해서 읽는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것이 폴 오스터 소설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책 치고 아주 쉽게 읽힌다.

 

***

 

소설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주인공 애덤 워커는 심성착한 청년이다. 대학 시절 어느 지루한 파티에서 루돌프 보른과 그의 연인 마고를 알게 된다. 루돌프는 대학 교수이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으로 작가를 희망하는 애덤에게 돈을 투자해 줄테니 잡지를 하나 창간해보라고 권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애덤은 루돌프와 교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줄만 알았던 루돌프의 이면에는 끔찍한 악마적 본성이 숨어 있고, 이를 목도한 애덤 워크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일생일대의 사투(혹은 속죄)가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라면, 노년의 애덤이 백혈별으로 시한부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 노트를 친구에게 맡기면서 친구의 시점에서 2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루돌프가 결혼하고자 했던 또 다른 여인의 딸의 글이 3부를 장식한다.

 

소설의 화자는 '너'와 '나'를 오가고, 화자가 바뀌면서 어떤 것이 현실의 일인지 아닌지 경계도 모호해진다.

제목 그대로, "보이지 않는"이다.

 

***

 

이 소설은 스토리 그 자체로서는 제법 흡입력 있게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저자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그다지 공감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며 좀 불편한 대목은 근친상간에 대한 부분이다.

권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미화에 가까운 묘사는 글쎄...
세상에 널린 많고 많은 소재 중에서, 작가는 왜 이런 항목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오.



c*******e 2011.02.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말 보이지 않는다
"정말 보이지 않는다" 내용보기
<뉴욕 3부작>,<공중 곡예사>등으로 국내에 탄탄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그동안 수없이 많은 찬사와 지명도로 인해 상당히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는 <보이지 않는>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면서 화자가 일정치 않고 1967년 베트남전쟁의 한
"정말 보이지 않는다" 내용보기

<뉴욕 3부작>,<공중 곡예사>등으로 국내에 탄탄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그동안 수없이 많은 찬사와 지명도로 인해 상당히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는 <보이지 않는>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면서 화자가 일정치 않고 1967년 베트남전쟁의 한복판에서 방황하는 미국 젊은이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사랑을 접목시켜 개인적인 회고록인듯 하면서 당시 시대상을 그려내려는 작가의 의도는 별 무리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워커의 이야기인지 보른의 이야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결말부에 등장하는 세실의 고백인지에 대한 모호성과 결말을 알 수 없는 종결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적어도 큰 틀에서 기승전결이라는 대전제를 파괴해버린 작품이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특히 종결부의 세실의 일기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생계를 위해 돌을 쪼개는 흑인들의 노동장면은 갑작스런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이해도를 한층 더 안개속으로 접어들게 한다. 번역가는 이런 모호하면서 미완성으로 매듭짓는 것이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가 만만치는 않다. 냉전시대의 첩보원이나 흑인소년의 죽음에 진실 그리고 친누나와의 근친상간적인 비극적인 소재를 눈에 거슬리지 않게 이끌어 가는 내러티브의 포스는 물론 뛰어나고 등장인물(특히 보른의 악마성)의 빈틈없고 한결같은 성향의 유지가 돋보이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결론을 알 수 없게 의도적인 장치를 동원했으리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져보지만 왠지 그 뒷맛은 정말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한편으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동안 그의 후광에 존재했던 명성에 비해선 다소 빛을 퇴색시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학작품에 대한 저급한 이해도와 작가에 대한 무지를 차치하더라도 편안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물론 폴 오스터의 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론 마지막을 세실의 일기 기록으로 마무리한 점이 오히려 작품 전체의 틀을 훼손시키지 않았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l******e 2011.03.22.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어떻게 말하느냐의 문제
"어떻게 말하느냐의 문제" 내용보기
소설가로서 폴 오스터는 능수능란하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독자를 애태우는 방법을 잘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스펜스가 없으면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마는데, 폴 오스터의 작품은 첫 장부터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장르소설같은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사건이 펼쳐져서라기보다 어떤 사건이 펼쳐지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활용할 줄
"어떻게 말하느냐의 문제" 내용보기

소설가로서 폴 오스터는 능수능란하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독자를 애태우는 방법을 잘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스펜스가 없으면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마는데, 폴 오스터의 작품은 첫 장부터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장르소설같은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사건이 펼쳐져서라기보다 어떤 사건이 펼쳐지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활용할 줄 아는 덕이다. 즉 플롯의 효과를 기교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작가의 노련함에서 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신작 <보이지 않는(Invisible)>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독창적인 플롯을 통해 스토리를 통제한다.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닌 척 하는 액자식 구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조차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소설은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외화 속에 주인공 워커의 삶에 대한 본래 이야기를 삽입시킨다. 이 소설의 외화는 내화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한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내화와 상호보완하며 본래 이야기 속 감추어진 진실을 추적하는 역할까지 한다. 사실 사건 속의 진실을 파헤치는 설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랄 수도 있다. 소설의 본질은 어차피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의 화자는 '진짜 이야기'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파헤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허구이면서 허구가 아닌 척 시치미를 떼며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이 독특한 구조에 의해 이야기는 탄탄한 긴장감을 획득한다.

 

소설 흐름상 전체 이야기를 통제하고 있는 서술자는 2부에서 등장하는 소설가 제임스 프리먼이다. 어느날 대학 동창 애덤 워커가 보내 온 신비한 경험담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그 미완성 원고의 나머지 부분을 채워넣기 위해 애덤 워커의 삶을 추적한다. 애덤 워커가 보내 온 원고에는 범죄와 사랑, 욕망과 집착 등 인간의 원초적 심리가 혼재된 일련의 사건들이 서술되어 있다. 애덤 워커의 경험담은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제임스 프리먼의 관점에서 파헤쳐지는 진실에 의해 더욱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애덤 워커의 진술과 다른 인물들의 증언 간의 불일치는 진실을 신비스럽게 왜곡시키고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소설이 추적하고 있는 진실은 두 인물의 삶에 있다. 애덤 워커와 루돌프 보른. 이 두 인물의 우연한 만남과 이로 인해 묘하게 뒤틀려 가는 인물의 운명이 소설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 그런데 이들의 운명은 하나의 책임감 있는 서술자에 의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각각의 운명은 여러 시점을 오가며 남겨진 자들의 증언과 소설 속 또 다른 텍스트를 통해 한 차례 걸러진 채로 전달된다. 이 책의 전체를 구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제임스 프리먼은 애덤 워커가 남긴 그의 삶과 세실이 남긴 루돌프 보른의 삶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역할로 작가의 통제 안에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작가는 제임스 프리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는다. 제임스 프리먼이 워커의 원고와 세실의 일기를 얻게 된 과정을 그리는 것이 작가의 유일한 개입이다. 이 때문에 뉴욕에서 추방당한 보른과 파리에서 추방당한 워커의 의도적이라 할 만큼 대칭적이고 작위적인 운명조차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한다. 서술자는 심지어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이며 지명도 왜곡된 것이라는 능청스러운 고백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데, 이 시치미 떼기의 궁극적인 효과는 본 이야기 속 서스펜스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보이지 않는>은 현대인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심리를 세밀하고 지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참된 매력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부각된다.  <파이이야기>,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사랑의 역사> 등과 같이 구조적인 기교를 통해 재미를 더하는 소설들은 약간의 모호함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는 특징이 있다. <보이지 않는>이 보여준 시점의 혼용과 역동적인 구성 방식도 이야기 자체의 흥미를 한층 더해줄 뿐 아니라 오랜 여운을 남긴다. 

z****0 2011.06.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흡인력 있는 스토리, 하지만 아쉬운 시점 변화
"흡인력 있는 스토리, 하지만 아쉬운 시점 변화" 내용보기
폴 오스터의 소설로는 [달의 궁전] 이후 몇 년만에 읽은 책이다. 폴 오스터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 냉소적인 시각은 이번 소설에서도 가득 느낄 수 있다. 아래는 간단한 줄거리.     애덤 워커는 1967년의 한 파티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프랑스 커플 루돌프 보른과 마고를 만난다. 워커가 다니던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교수로 재직 중인 루돌프 보른은 어딘가 위협적이고 냉소적
"흡인력 있는 스토리, 하지만 아쉬운 시점 변화" 내용보기

폴 오스터의 소설로는 [달의 궁전] 이후 몇 년만에 읽은 책이다. 폴 오스터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 냉소적인 시각은 이번 소설에서도 가득 느낄 수 있다. 아래는 간단한 줄거리.

 

 

애덤 워커는 1967년의 한 파티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프랑스 커플 루돌프 보른과 마고를 만난다. 워커가 다니던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교수로 재직 중인 루돌프 보른은 어딘가 위협적이고 냉소적이지만 특유의 자신감으로 워커를 압도한다. 그의 연인 마고는 워커보다 10살 가량이 많은 여성으로 남다른 분위기의 매혹적인 여성이다. 모든 이야기는 위험해 보이는 두 커플과 워커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파티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 어느 바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보른은, 워커에게 문학잡지 창간을 제안한다. 보른 자신은 상속 받은 유산이 있으며 투자자로서 워커에게 넉넉한 연봉과 1년치 잡지 출판 비용을 대겠다는 것이다. 위험해 보이는 제안임을 알지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워커는 이를 수락한다.

 

 

 

함께 하게 된 것을 축하할 요량으로 보른은 워커를 집으로 초대하고, 다시 만난 마고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워커는 두 커플 사이에서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는데 보른의 수상하고 위협적인 행동은 더욱 거세다. 그 후 보른은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로 프랑스에 가게 되고 그 기간동안 워커와 마고는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다. 미국으로 돌아와 이를 알게 된 보른은 워커를 원망하기는 커녕, 이미 알고 있었다는듯 마고를 쫓아내고 그럼에도 워커와의 출간 계획에는 변동이 없을 것임을 확인해준다. 하지만 한 가지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된다. 워커는 보른과 함께 산책을 하다 권총을 든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소년이 위협하자 보른은 망설임 없이 소년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보른의 위협에 워커는 망설이고,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 경찰에 신고했을 때 보른은 이미 프랑스로 도주한 후였다. 이후 워커는 프랑스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보른과 마고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워커는 보른을 응징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작가는 1부를 워커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워커가 두 커플을 알게 되어 의심스러운 제안을 받고, 마고에게 빠지는 스토리, 그리고 보른의 살해 장면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비겁한 선택을 하는 내용, 그리고 그런 본인의 모습에 자책하는 것까지 꽤나 빠르고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하지만 2부에서 갑자기 화자가 달라진다. 워커의 대학 시절 친구인 짐이다. 1부의 내용이 워커가 쓴 소설의 <봄>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이 내용을 친구 짐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여름>에 해당하는 부분은 짐의 조언에 따라 워커가 2인칭으로 쓴 누나 그윈과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가을> 부분은 워커가 사망한 뒤 짐이 워커의 메모 등을 참고해서 쓰게 된다.

 

 

 

시점의 변화가 꼭 필요했던 것인지는 글쎄...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는 작가인만큼 1부에서의 분위기를 끝까지 끌고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 덕에 상당히 독특한 형태의 소설로 완성되기는 했지만(책을 읽은 뒤 찾아보니 폴 오스터가 자주 쓰는 기법이라고) 1부 <봄>에서 느낀 이야기의 매력이 다소 반감되는 느낌이다. 오히려 몰입이 방해 되기까지 하고 (짐과의 대화를 통해 시점을 고쳐가는 부분, 세실의 일기를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 등) 쓸데 없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서 산만하다.

 

 

 

서로 다른 화자가 한 사건을 다르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시점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의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마지막 장 짐의 묘사 때문에 실제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의심까지 든다.(그게 작가가 의도한 바라는 의견도 있음) 흥미로운 스토리에 반해 작가 자신이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는데 여기에 시점 변화까지 더해지니 온통 초점이 거기에 맞춰지는 느낌이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던 만큼 아쉬움도 남은 소설.

 

 

 

i***e 2022.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호한,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진짜 소설 같은
"모호한,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진짜 소설 같은" 내용보기
때론 글감이 손에 잡힐 듯 빤히 그려지기도 한다. 당장 장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글이라고 끼적거리겠다 싶지만, 차근차근 구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벽을 느끼고 만다. 고저장단도 없는 매끈한 권선징악형 스토리에 이쁘기만 한 문체라는 자가진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작을 읽은 연후엔 더욱 심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자
"모호한,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진짜 소설 같은" 내용보기

때론 글감이 손에 잡힐 듯 빤히 그려지기도 한다. 당장 장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글이라고 끼적거리겠다 싶지만, 차근차근 구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벽을 느끼고 만다. 고저장단도 없는 매끈한 권선징악형 스토리에 이쁘기만 한 문체라는 자가진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작을 읽은 연후엔 더욱 심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자책하며 펜을 던지기 일쑤다. 비록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라 해도 작가가 되려면 이런 수준의 글은 쓸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속에선 분열이 일어날 지경인 것이다.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도 그렇게 좌절감에 빠지도록 만든, 도무지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 작품 중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은 크게 두 가지 텍스트를 짜깁기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애덤 워커가 친구인 소설가 짐에게 보낸 원고와, 한때 워커를 좋아했던 프랑스 소녀 세실 쥐앵의 일기를 액자식으로 짜 넣고 그 사이 짐의 견해를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시점이 흔들리고 서사구조에 대한 회의를 끊임없이 유발하며 모호하게 흘러간다. 하여 어느 선까지가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혹은 필자의 창작인지 구별할 수 없게끔 혼란스럽다. 읽는 동안 내내 오스터의 구성방식에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경탄했다 할까? 좋은 글이 되려면 이 정도로 짜임새 있고 독자의 상상과 추리를 유발하는 것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던 것이다. 더구나 오스터는 이 모든 난해한 스토리 전개 방식과 곳곳에 깔아둔 미묘한 장치의 설정 연유까지 친절하게 밝히고 있어서 더욱 대단해 보였다. 혼란스런 사태 앞에서 짐은 주인공과 장소, 사건, 심리구조 전반에 대해 의심을 품는데, 그렇게 꼬이고 만 연유를 몇 가지 암시하며 결코 맥락 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 첫째는 글의 뼈대가 되는 텍스트의 원저자 애덤 워커의 심신 쇠약에서 찾고 있다. 명료한 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급조한 것이기에 서사가 흔들리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 차원에서 말이다.


“끝의 세 페이지에 이르면, 지리멸렬한 서술의 붕괴는 거의 완벽해진다. 워커는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있으며, 그의 생명이 육체로부터 빠져나가는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끝마치려고 애쓴 것 같다. (250쪽)


또 하나는 워커가 쓴 작품의 소재가 금기의 벽을 깨는 파격적인 것이어서 관련 당사자들이 애써 부인하고 있는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워커와 누나 그윈의 플라토닉을 넘은 에로틱한 사랑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고 절절하여 하나도 추하지 않고 짠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걸 워커는 아마도 가감 없이 진솔하게 그렸을 터다. 그러나 그 불장난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들 생애 전 기간에 걸쳐 내내 가위눌림으로 작용했을 밖에.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워커의 그 내밀한 이야기를 누나 그원은 그의 염원에서 비롯된 상상의 결과물이라 치부해버렸다. 그 아릿한 얘기가 한 순간 워커의 환상이 빚은 픽션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긴가 민가 갸웃거리게 될밖에.


다른 하나는 검열을 의식한 픽션화 전략을 슬몃 제기하고 있다. 세실 쥐앵에게 자서전 집필을 부탁한 루돌프 보른은 자신의 얘기가 발간되면 국가 기밀 누설에 해당될 것이므로 프랑스 정보 당국이 제재를 가할 것을 우려하였다. 하여 세실이 창작한 소설 형식으로 자서전을 출간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소설 속 모든 얘기도 필자의 상상에서 비롯된 허구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이런 연유들이 중첩되어 글은 사실과 환상,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여 혼란스러우면서도 정말 소설답다는 감이 절로 든다. 글의 말미에서 작가는 이 모든 모호한 얘기의 홍수 속에 사실인지 환상인지 구별 못하고 나른하게 취해 있는 세실, 짐, 아니 모든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실의 소리를 들려주며 깨어나게 만든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직접 온몸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소리였다.


“그 망치 두드리는 소리는 내 몸에 스며들어 내가 그곳을 떠난 오랜 뒤에도 내 안에 머물렀고 심지어 지금 대양을 건너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다. 그 소리는 앞으로 나와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내 여생 동안,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 소리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함께 있을 것이다.” (326쪽)


하여 폴 오스터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사실인 듯 아니기도 한 세계를 그리다 불현듯 현실임을 벼락같이 깨우치는 구성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런 작품 한 편을 온전히 쓸 수 있었으면, 그러나 가다듬고 보니 너무 멀어 보인다. 폴 오스터는 구름 위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비스무리하게 흉내라도 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히는 듯도 했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의 서사구조에서, 다양한 장치들에서 여러 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의욕이 생겼다 할까. 하여 [보이지 않는]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던 내게 새삼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북돋운, 구체적인 전략을 이렇게 세워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성장 촉진제였다 하겠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내게 아련하게나마 북극성을 발견하게 해주었으니.



a*****7 2011.06.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