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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e "착한 초콜릿" 감상(http://home.ebs.co.kr/reViewLink.jsp?command=vod&client_id=jisike&menu_seq=1&enc_seq=3006588&out_cp=ebs)
![]() <당시 발표수업 잘한 모둠에게 선물한 초콜릿> 이 경험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와 초콜릿의 세계를 알고 싶었다. 식품영양학적 접근이 아닌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경제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이 주제와 관련한 서평단 모집이 있었고 나는 주저 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다. 제목도 ‘나쁜 초콜릿’. 초콜릿에 대하여 역사적, 문화적, 경제학적으로 풀어헤친 양서(良書)이다. 읽는 내내 방대한 지식의 접목에 지적 충만을 느꼈다. 아마도 갈증을 느끼던 차에 부어진 지식(정보) 덩어리들이 나의 뇌세포들은 행복의 고성을 지르며 벌컥벌컥 받아들인 탓이리라. 초콜릿은 판형 과자 상품으로 개발되면서 널리 대중화되었다. 그 전에는 카카오라는 원두 자체에 단맛을 가미하여 식음료로 대부분 음용했던 음식이다. 카카오 하면 떠오르는 땅은 아프리카이지만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 기록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카카오의 역사 또한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식미지화 하면서 본격적인 역사로 남겨진다. 카카오가 유럽의 귀족을 중심으로 인기 절정의 음료가 되면서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이 꾀하던 시기와 맞물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식품으로 상품화된다. 카카오 자체로 팔리는 것이 아닌 가공하여 보관과 유통이 편한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초콜릿이라는 것도 유럽식 이름으로 카카후아틀이 변형된 것으로 승자인 유럽인의 손을 거치는 순간 초콜릿은 맛과 영양적 가치가 아닌 통화적 가치로 변신하게 된다. 초콜릿의 통화적 가치가 올라갈수록 자본가들의 탐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초콜릿 산업이 거대화로 더욱 쉽게 아이들과 여성들이 초콜릿의 단맛을 탐닉했고 남자들은 정력적인 음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자비한 파괴와 착취와 비리다. 저자는 카카오에 대한 역사를 중심으로 서술하다가 20세기 이후부터는 카카오 가공 기업으로 초점을 바꾸며 경제적, 정치적 접근으로 서술 전환을 한다. 다국적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지 카카오 생산 과정의 비윤리적 부분까지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는 정치력으로 덮어 버리면 된다. 그러나 기업들인 소비자들이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을 방관했다. 소비자와 NGO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그때부터 다국적 기업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담합과 카르텔을 더욱 굳건히 하되 자본력을 바탕으로 정치가들을 이용하여 자기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 또는 제정되어지도록 방어한다. 기업들이 왜 카카오 생산 현장까지 기업이 신경을 써야하는가에 대해 시민단체나 소비자에게 되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달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에 정작 무릎 꿇고 빌어야 된다. 그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농장 형태의 카카오 재배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농장은 다국적 기업에게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은 단칼에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드러낸다. 보호자가 없는 어린 아이를 호랑이가 잠시 앞치마를 두르고 다정한 엄마 노릇을 하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 싶으니 앞치마를 찢으며 그들을 잡아먹으려 하는 딱 그 행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카카오 원두를 수입하는 다국적 기업이 제시하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카카오 농장에서는 생산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어린이 노동착취(이 책에서는 ‘노예노동’ 문제로 주로 다룬다)와 카카오 주요 수출국 정부의 부정부패가 자행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다. 카카오 생산에서 선순환 구조는 없다. 악순환만 심화될 뿐이다. 그래서 우리 손으로 건너온 초콜릿은 나쁜 초콜릿이다. 아프리카를 보면 항상 가슴이 아프다. 아프리카는 국가적 개념이 아닌 부족 개념이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의 노예무역으로 시작된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는 후에 식민지까지 겪으면서 온갖 자원 수탈, 강제적 문화유입, 그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직선의 국경들이 지금의 슬픈 아프리카를 만들어 냈다. 서양 국가들이 약육강식 논리로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은 책임회피다. 반성이 필요한 시기이고 인류가 함께 살아야 할 때인데, 우리는 아직도 검은 대륙을 떠올리면 어떻게든 쥐어짜서 한 푼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검은 대륙이 별 볼일 없는 나라들만 모여 있는 것 같지만 아프리카가 조금만 기침을 해도 이제는 전 세계가 독감이 걸리는 시대가 왔다. 리비아나 이집트 사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들의 조상이 노예로 취급받았던 적이 있지만 끝난 역사가 아니다. 아직도 현대판 노예가 존재한다. 하지만 본인들이 이 비유에 대하여 서양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며 매우 거북해 한다. 자발적으로 농장에 들어간 것이지 자기들은 노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아동 노동착취를 취재하는 저널리스트들이 거의 서양인들이기에 그들의 잣대로 봤을 때는 그것은 무임금 노동 또는 노동학대가 명백하기에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이라고 말한다. 어쨌거나 문제의 본질은 제대로 된 카카오 원두 값만 지불되어진다면 카카오 농민들이 아동 노동을 쓰지도 않을 것이고 자녀들을 교육도 시킬 수 있을 것이며 빚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국적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 생산국 정부가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들은 이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긴 독재와 부패로 사적 군사력 확보와 재산 축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쓰러져가는 국민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들에겐 국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족만 중요할 뿐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아프리카와 너무 먼 곳에 있는 내가 뭘 한다고 해서 그 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진 않다. 그러면 대안이 아예 없는 것인가. 저자는 지금까지의 경험적 대안은 공정무역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윤리적인 소비자층이 들어나면서 건강하고 바른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간접적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듯하면서 半(反아님) 윤리적이라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유기농을 찾으면서도 싼 유기농을 찾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좋은 의도로 출발했던 유기농 기업들이 결국 소비자들의 이 소비패턴에 무너져 다국적 기업에 흡수되고 있다. 자본력이 클수록 싼 제품을 내놓을 확률이 높아지기에. 초콜릿의 역사는 그 색깔만큼이나 오랫동안 어두웠다. 불의가 지속적으로 자행되어 온 산업이기에 아마도 이 구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듯 하다. 악순환 고리의 시작을 잘라버리려니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이제는 너무 희미해져버렸고 대충 어림짐작으로 잘라버리려 해도 너무 거대한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현실이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소비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윤리적 경영, 사회적 기여를 기업에게만 바라지 말고 소비자 스스로 의식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뻔한 결론만큼 원칙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도 없다. 실천이 있으려면 알아야 한다. 알 권리를 주장 하기 앞서 알려고 노력하는 소비자들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 ![]() 공정무역 상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게 된 품목이다. 아는 언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샀던 컵과 커피...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 : www.goodistore.co.kr (예스24에서도 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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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책에 리뷰가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유럽의 제국주의가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 등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고사시키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생산자들은 유럽인의 입맛을 위해 농사를 짓지만
가공해서 수출할 수가 없어 소득이 늘지도 않고, 가격을 결정할 권한도 없다.
그리고 그들은 가공품인 초콜릿을 평생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다.
대신에 자신들의 먹을 것은 완제품으로 수입해야하는
'불공정한 삥뜯기'를 '무역', 또는 '자유무역'으로 불리운다.
하지만 결론은 개인적인 소비자의 문제에 귀착되고 만다.
싼 가격만 찾을 경우에 결국 우리의 동료들(생산자)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것인데
비조직의 개인이 거대 자본의 집요한 꼬드김(싼 가격)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인지...
완벽한 가격, 설탕과 권력. 커피가 돌고 세계가 돌고 등 관련 서적으로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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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의 씨앗은 뿌려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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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입니다. 이 스펙타클한 제목과 초콜릿빛깔의 책디자인과 두꺼운 하드커버는 아주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오늘이 화이트데이인데 이런 날 리뷰를 쓰는 책이 <나쁜 초콜릿>이라니! 너무 다큐스럽다고 생각되시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아이러니와 동시성이 오히려 비극이 숨어있는 시트콤스럽다고 생각되실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얼마전에 본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중국 있는 세계최대의 OEM업체 팍스콘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뉴스였죠. 직원이 120만명이라죠. 충격적이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임금에 자살률도 높은 곳이죠. 게다가 직원들은 아이패드를 제대로 본 적도 별로 없고 말이예요. 완제품을 처음 만져보고 신기해하는 여성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패드 열풍때문인지 수백명씩 우르르 뽑은 신규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참 입맛이 씁니다.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이폰과 문명의 이기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낸 것이라니 말이죠. 설마 삼성의 구미공장도 저런 식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
위의 뉴스는 이 책 <나쁜 초콜릿>에 대한 오마쥬와도 같습니다. 이 책은 150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온두라스에서 카카오를 처음 본 이래로 남미에서 카카오가 어떻게 아프리카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초콜릿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이후 초콜릿은 숭배와 중독의 대상이 되었죠. 그저 달기만해도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초콜릿 산업을 조명하고 있는데 다국적 초콜릿 제조기업과 아프리카 정부, 유럽과 아프리카 조폭단체가 어떤 시스템으로 엮여있는지를 보여주죠. 무엇보다도 그 달콤한 초콜릿이 지구 반대편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단맛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판 노예제도를 보는 듯 하더군요. 카카오산업의 아동노예제를 알리려던 기자는 암살당했고 오죽하면 2001년 미국의 엘리엇 엥겔 하원 의원은 모든 초콜릿 제품에 '슬레이브 프리(slave free)' 문구를 넣는 법안을 발의했을까요. 이곳에서 카카오에 독성있는 제초제와 곰팡이 살균제를 뿌리는 아이들은 말합니다. "카카오로 뭔가를 만드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요. 초콜릿요? 그게 뭐예요?" 그들은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을 찾자면 초기의 초콜릿기업인 '허시'입니다. 밀턴 허시는 초대박으로 거둬드린 돈으로 제과공장안에 '어떠한 빈곤도 폐단도, 악행도 없는' 온정적 자본주의 공동체를 세우려했죠. 허시는 공장안에 호수크기의 수영장과 놀이공원, 대리석 로비의 대극장과 야외음악당,골프장,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정원과 전차까지 운행했죠. 가로등은 키세스초콜릿모양이고 메디컬센타는 물론 직원을 위한 단독주택과 사립학교, 보험과 퇴직연금도 주고요. 하지만 허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합니다. 왜 그랬냐고요? 아주 간단합니다. 밀턴 허시는 노조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처럼 말이죠. 결국 밀턴 허시는 자비심많은 독재자였던 셈이죠.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결시킨 최초의 기업은 그렇게 쓰러져갑니다.
저자인 캐나다의 다큐 기자, 캐럴 오프는 코트디부아르와 말리등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뛰어따니면서 초콜릿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카카오를 따는 손과 초콜릿의 은박지를 벗기는 손사이의 거리는 참 멀더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나쁜 초콜릿>은 음식에 관한 미식가의 책이 아니라 인권과 정의에 대한 책이죠. '달콤하고 값싼 즐거움이 과연 정당한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초콜릿이 달콤하다고만 여길 수 없는 이유와 '공정무역'의 비공정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신의 음식이라 불리우는 초콜릿, 사드후작은 초콜릿중독자였다고 하죠. 그 당시에는 그나마 건강에 좋았겠지만 요즘 초콜릿에는 엄청난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씁니다. 독성 농약중에서도 최악으로 손꼽히는 몬산토가 만든 미국산 농략인 '라운드업'을 쓴다는 군요. 인종이나 세대,종교와 상관없이 보편적인 사치품,간식이 되어버린 이 농약음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화이트데이입니다. 무엇보다 아이패드 구경도 못해본 중국 애플 공장 근로자들에게도 '화이트데이'란게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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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는 원 생산지가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남부 울창한 열대우림에서 자란 열매나무다. 라틴어로 테오브로마 카카오라 부르는 일명 "신의 음식"이라는 이 나무에서 추출이 되는 카카오열매는 인류의 시작이 되는 올멕인들로부터 같이 생활을 해 왔고 이들의 뒤를 이어서 마야족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뒤를 이어서 카카오에서 내리는 추출물과 그들의 주식인 옥수수를 이용해서 흥분제, 영양제로 사용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먹었던 것은 아니고 일부 지배계층, 특히 몬테수마2세는 이를 식후에 항상 마시던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의 온두라스 지역엔 금.은이 흔하게 널리 퍼져있으면서도 정작 그들은 그것의 가치를 몰랐고 이들을 정복한 코르테스는 이들이 이것을 귀족층에선 통화로 사용됨을 주목하게 된다. 당시 에스파냐의 왕이었던 카를 5세는 정복의 야망과 맞물려서 이 음식의 가치를 보았고 뒤를 이은 아들마저도 양심적인 수도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세계정복에 필요한 자금으로 이를 활용하게된다. 몬테수마가 숨지고 이를 다스리게된 코르테스 이후의 이주민들은 유럽에서 당시 알고있었던 약제로도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하에 수요가 폭발, 마야인들은 그야말로 노예의 생활로 접어들게된다. 이후 카카오는 유럽에서 계몽사상가들의 생각과 시대 흐름에 맞추어 오늘 날 카페라고 불리어지는 곳에서 애용이 되고 이는 곧 중앙아메리카의 소리없는 고통의 보상으로 주어진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카카오의 전염병으로 인해서 재배에 영향이 미치게 되자 강대국들은 이후부터 흑인 노예를 이용하거나 쿨리라고 불리는 계약노예제를 이용한 중국인, 인도인들을 동참시켜 재배에 열을 올리게 되고 재배지가 차츰 아메리카에서 황금해안, 이후엔 코트디부아르란 나라에 주목을 하게 된다. 이 나라의 기후 조건에 딱 맞는 카카오는 이후 프랑스로 독립을 하게되고 초대 대통령이었던 우푸에부아티의 결정에 따라 호황을 누리게 되고 나라의 살림에 도움을 주게 된다. 일손이 모자라자 이웃나라인 말리와 브르키나소파의 국민들 일부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국민들이 재배를 하지 않는 카카오 산업에 이들을 이용하고 토지경작에 대한 암묵적 혜택을 주게 되지만 얼 마 후 자신의 권력탐욕에 빠져들어 그가 죽게 되자마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후 남, 북의 종교와 이민자들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과 노골적인 위협, 경작소유권 탈취, 총기를 사용해서 죽이는일이 벌어지게 되자 이들은 땅을 등지고 고향으로 , 아니면 떠돌이 신세를 면치못하는 생활을 하게된다. 이 와중에도 카카오의 요리법은 도미니크 수도사들에 의해서 그 진가를 알아가게되고 스페인에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지만 새로운 추출법은 일대 변화를 겪게 되면서 오늘 날 허시와 M&M사로 알려진 다국적 기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들은 이득을 얻는 교묘한 상술을 발휘하게 되고 자기들이 카카오를 수입해가는 나라 대표격인 코트디부아르의 농장에서 말리의 어린이를 이용한 노동력 착취, 임금지불 거부에 대한 고발이 연이어서 이어지자 회유의 일환으로 일부 기금을 내놓거나 이들의 교육, 병원같은 시설에 투자함을 알리는 고도의 상술을 발휘한다. 일부 온두라스에서 자신들만의 고유 농지법으로 옛 카카오 재배를 하고 있던 마야인들의 농법을 이용해서 다시 다국적 기업들의 공정무역이란 타이틀 아래 판매되고 있는 유기농 카카오는 소비자들의 손에 다시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원 재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기업이 갖고가는 이윤에 비하면 아직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 책은 흔히 동화책이나 영화, 어떤 특별한 날(생일, 프로포즈,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서, 그도 아니면 얼마간의 돈을 주고 어디서든지 사고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의 달콤함의 이면에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 내용이다. 우리가 ,아니 우리 어린아이들조차도 이런 초콜릿이 탄생되어 우리의 손에 넘어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수 많은 같은 또래의 우리자식같은 아이들의 손이 여기서 비롯된 노동의 댓가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아주 미안함을 느끼게되는 목록으로 올라서게 됬다. 신세계를 탐험한 그 때부터 인류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을까? 순수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을 고수했던 마야인들을 무참히 그들의 이익에 맞추어 노예로 부리다시피한 열강의 추악한 행태는 이미 여러 책에서도 나온 바 있지만 카카오의 나무를 두고도 돈의 가치로 생각한 그들의 악랄한 경영기법엔 여전히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열강들의 아프리카 지배에서 다시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 억지로 땅을 분리한 결과 같은 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살게 됨으로써 오늘 날 여전히 분쟁의 소재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바로 카카오를 두고서 다투는 코트디부아르의 사태로 이어져 여전히 그 힘을 뻗치고자 하는 강대국(프랑스)의 이기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카오의 추악한 비밀조직과 그 연관된 정치계의 무기구입, 비자금회수같은 것을 폭로한 자국민의 살해사건을 두고서도 자국의 이익을 먼저 주판알 튀긴 나라의 행동과 하나의 힘 없는 개인의 가족들과 친구들, 판사가 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목은 피를 말리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블루다이아몬드와 같은 어린 아이를 이용한 노동착취는 아직도 근절되지않고 아무리 범 세계적인 구호활동 조직의 활동이 있음에도 여전히 힘에 부치는 현실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공정무역의 의도에 대해서도 작가는 할 말이 많은 듯 하다.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지켜가고 있던 마야인들의 재배법을 유기농이란 것에 착안해 계약을 하고 제품이 나오는 과정에서 마야농민들이 겪어야하는 서류상의 지켜야하는 절차는 이들을 더욱 자신들만의 좀 더 나은 부의 세계로부터 간격이 멀어지게 하는 역설을 말한다. 물론 공정무역에 의한 확실한 서류구비가 서양인들 자신의 근거에 맞춘 방식에 기준을 맞추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할 순 있겠지만 원 재배자에게 얼마큼의 소득분배를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한진 않고 자신들(거대 기업)의 고도술수와 회유에 의한 정책 무마로 인해서 원재배만 넘겨야하는 그들의 고단한 교류방식에도 헛 점이 있음을 작가는 간파하고 이의 개선을 주장한다. 하지만 뭣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책임감은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표현하자면 작가의 말처럼 일단 소비자들의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안다해도 제품을 대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부차적인 것을 떠나서 제품을 낮은 가격에 향유하려는 것에 있단 대목에서다. 나부터도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이는 비단 나 하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의 말리에서 단지 자전거 하나를 사기 위해서 일하려고 이웃 나라에 간 것이 인신매매 내지는 가혹한 매맞음, 굶주림, 혹독한 노동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 작가 또한 음식에 관한 초콜릿에 대한 역사가 아닌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인류가 당연시 알고 누릴 권리조차도 권력의 지위를 누리고자 피를 맛보고 있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발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같은 시대를 살고는 있지만 자신들이 거둔 카카오에서 나오는 열매가 어디에 쓰이는지, 초콜릿의 맛조차도 못보는 어린이가 있기 때문에 이들 세계 너머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초콜릿의 진실을 담담히 보여주기에 이 책은 다시금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이들이 불행을 최소화하는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다국적기업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다양한 정치계의 사람들을 이용한 경제법안 발의 유보라든가 자신들의 이중성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행동, 그 이면에 이런 혜택을 주고 있다는 기업가들의 나눔의 보여주는 행동은 꼭 초콜릿 뿐만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소비자로서 ,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시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각 나라별로 취재한 현장감과 아이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족장들의 인터뷰는 인상에 깊이 남는다. 카카오에 연계된 정부의 비리 고발을 계기로 자신의 목숨을 잃은 앙드레 키에페르의 얘기, 말리 총영사로서 자국의 아이들을 구출하고 또 노력을 했지만 오히려 나라로부터 직위를 잃은 전직 영사의 얘기는 가슴이 아픔을 전해온다. 지금 이 시각에도 힘없이 농장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감시에 시달리는 어린 고사리 손을 가진 어린이들이 힘겹게 카카오 나무 열매를 따고 있단 생각을 하니 참으로 편하다고만 할 수 없는 시간이란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단 제품을 즐겨하진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이들에게 미안함을 던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으려나... 초콜릿의 제품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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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나 커피등은 우리에게 달콤 쌉싸름한 맛과 기쁨을과
아주 기분 좋은 행복감을 주는데 비해서 카카오의 열매 바로 그 뒤에 피나는 땀과 노력등이 숨어있는것이 가슴의 먹먹함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같은것이 생기는데 과연 그가치부터 알아보면 유럽지식인들의 노력은 프랑스와 북미 식민지에서 일어난 맹렬한 민주주의 주장속에서 결실을 맺었다.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을 긍정하는 선언들이 발판이 되어 기권 인권의 보호 를 주장하는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 졌다. 식민지에서 1차 생산을 맡은 수백만의 비참한 사람들이 있었다.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카카오를 수확하고 있다 초콜릿은 역사에 등장한 순간부터 지위가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의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초콜릿의 역사는 수많은 세대의 피와 땀으로 쓰였다 카카오의 약효는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고 혈관을 팽장시키는 테오브로민과 카페인등이 함유하고 있어서 우울을 완화시키는 신성화학물질이 들어있어 날씨변화가 심한 영국사람들이 즐겨먹을수 밖에 없다고 했다. 무제한의 노동력과 카카와와 설탕이 끊임없이 공급되자 초콜릿 소비는 더욱 늘어 날수 밖에 없었다. 에스파니아을 넘어 유럽의 관심을 끌게 되고 특권층은 어디든 가든 가지고 다녔고 무자비한 권력층의 종교재판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초콜릿을 마셨다니 그 효능과 그시대를 대충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흑백의 명암이 뚜렷한것은 코트디부아르 농민들의 아이들은 굶다시피하고 밤중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 합숙소에서 자고 수시로 매를 맞았다. 등과 어께엔 끔찍한 상처들이 있었지만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겐 달콤한 초콜릿은 부와 권력을 주었다. 경찰은 뇌물을 받고 일부러 모른척하고 어린이 인신매매단이 있었다. 어린이 착취에 대처하는 그어떤 프로젝트도 결국 눈속임일뿐 그들이 통제할수 없는 한가지 요인은 바로 전쟁이다. 1940년대 허쉬제품이 전쟁성 군납품으로 들어가 10억여개의 초코바가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조그만 갈색 원두를 향한 망상은 그 값어치와 가능성은 그들의 욕망을 충분히 채웠다. 테일러의 방정식= 카카오+무력=권력 이러한 공식이 그만의 전유물이 정부군의 재정을 카카오 수익에 기댔고 군사적으로 성공하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했다. 국가 최고의 환금작물인 카카오를 생산하는 가난한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는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는 계획안의 실상을 폭로했다. 농민들은 카카오 가격이 높을 때 더 깊은 빈곤에 빠져들었다. 언제나 고통의 몫은 생산자인 농민이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 농민들의 돈을 유용하면서도 실상은 농민에게 아무런 혜택이 가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 농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하면서 그들은끊임없이 무기상과 거래를 한다. 우리는 초콜릿이 어떤과정에서 나오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달콤한 초콜릿이 우리의 입맛을 사로 잡고 발렌타이데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과연 그 뒷면의 아픈 이야기속을 생각하면서 먹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힘들게 생을 마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진실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줄것인가. ??? 이렇듯 오랫동안 지속된 불의가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란 어려울 듯 하다. 오늘도 가슴아픈일이 너무도 많다. 세상의 하루하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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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신에게 바쳐지는 신성한 음식이었고 화폐로 통용되는 귀중한 상품이었지만, 전통적으로 하층민의 노동을 착취해서 생산되고 지배계급만이 향유하는 불공정한 음식이었다. 무바지한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지배권을 얻어내면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카카오는, 여전히 그 불공정한 상품으로서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삼각무역"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대규모의 노동력을 이용해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플랜테이션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유럽에서 실어온 무기와 각종 상품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교환되고, 다시 노예로 채워진 배는 카카오, 설탕, 럼주등을 실고 다시 유럽지역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