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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중국소설을 읽었었다. 일본문학이나 영미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중국문학은 새로운 느낌을 주어서 자주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회가 닫지 않아 많이 읽지를 못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쑤퉁은 중국 문단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작가라고 한다. 영화화된 작품도 많고 그의 신간들도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담고 싶은 책들이다. 또 내가 즐겨 읽는 성장소설이기도 해서 더욱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1970년대 중국 강남 유역의 참죽나무길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저자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어디를 가나 이제 성년에 진입하기 전의 아이들은 많은 방황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울분을 어디엔가는 토해내야 하기 때문인지도. 밝고 톡톡 튀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 세 아이들의 저돌적인 생각과 삶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세 개의 커다란 굴뚝이 있는 성북지대에 사는 학교에서 제적당한 다성, 쉬더, 홍치 그리고 쩔룩이의 이야기이다. 뒷골목에서 놀다가 병 세척공장으로 돈을 벌러 다니던 쉬더는 유부녀에게 빠져 헤어나올줄을 모르고 옆집 여자아이 메이치를 강간해 감옥으로 들어간 홍치와 그런 홍치를 빼내기 위해 메이치에게 홍치에게 유리하도록 증인을 서달라고 하는 홍치의 엄마 이야기도 씁쓸했다. 강간을 당한 메이치는 자꾸 죽으려고 하고 그런 메이치를 바라보는 엄마 웨치의 마음들도 그러했다. 홍치의 엄마나 메이치의 엄마 그리고 뱀꾼의 딸이었던 다성의 엄마 텅펑의 이야기도, 같은 여자를 놓고 아버지와 아들인 쉬더가 싸웠던 일들도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여자들의 삶과 어려운 1970년대의 생활상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성장소설이라 하면 대부분 청소년 시절의 방황을 많이 다룬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소설들을 많이 읽다가 [성북지대]의 결말을 읽게 되니 조금은 마음이 좋지 않다. 그들이 그 동네에서 이름을 날렸던 일들이 그들의 가혹한 삶과 함께 허무하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내게 당원들이 정치적으로 발언하고 주민위원회에서 그들을 벌하는 걸 보면서 아,,,, 중국소설이었지 하고 이념에 대해서 생소한 느낌을 갖기도 했다. 저자의 다른 소설들이 많이 나와 있던데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샨사의 측천무후와 쑤퉁이 바라보는 [측천무후]도 비교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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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여과되지 않은 감정, 날것의 삶 그대로임으로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해학, 아마 이것이 쑤퉁(蘇童)소설의 특징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너저분하게 포장하고 수식하지 않은 질박(質樸)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왠지 짙은 처연(悽然)함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세 개의 큰 굴뚝은 성북지대(城北地帶)의 상징이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이미 암울한 도시 서민의 애환, 피폐한 환경 등 소외되고 버림받은 그 무엇들, 애달픈 사연들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혁명이라는 과도한 중공업정책, 사회주의 계급투쟁이 강조되던 1970년대의 소도시 끝자락, 툭하면‘무산계급 전제정치’를 노동자들의 무슨 권위라도 되는듯이 떠벌리는, 그러나 이념과, 권력투쟁과는 무관한, 또한 희생자일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투영되고 있다. 화학공장이 뿜어내는 분진과 쏟아내는 오염물질로 회색빛깔을 한 마을과 썩은 강물이 흘러 악취가 나는 도시, 참죽나무 없는 참죽나무길과 길에 피어나는 꽃들은 기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저 피고 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되어 다가온다. 운치와 정감있는 마을길들의 이름과는 달리 그 역설의 해학을 피해갈 수 없게 하는데, 참죽나무길에 대해 실로 경악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明⋅淸시대 죄수를 수감하던 북대옥(北大獄)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성, 쉬더, 쩔룩이, 홍치 라는 네 명의 불량소년과 그들이 팽개친, 아니 그들을 포용할 수 없었던 “줄곧 살인, 방화의 상징으로 유명”한 동펑중학교가 더해지면서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괴리되고 반항하는 삶들을 목격하게 된다. 몇 푼의 돈에 딸을 팔아넘긴 뱀 장수, 이유도 모르고 낯선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했던 여인‘텅펑’, 이들의 아들‘다성’, 여기서 분명 비애감을 느껴야 할 것 같은데,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전거를 멈추지 못해 트럭에 돌진해 비명횡사하는 다성의 아버지‘리슈예’의 하루는 오히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죽음을 미소짓게 하는,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소시민의 애환이 몽땅 담겨있음에 바로 심각한 얼굴의 모드로 돌아오게 하는 절묘한 재주가 있다. 한편 과부, 홀아비, 오쟁이 진 무능한 남자, 고작해야 공장노동자들과 이들의 무력함에 저항하는 방치된 아이들,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도 어떤 소명의식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회, 절망만이 팽팽하게 흐르는 황폐한 시간만이 썩은 물이 흐르는 해자와 같이 휘감아 돈다. 절제와 공존, 배려와 사랑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씩 사회에서 사라져간다. 순간의 욕망으로 이웃집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인민재판에서 해충처럼 처단되는 열여덟 살‘홍치’, 강간의 수치와 주위의 폭력적 시선과 언어에 마침내 강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어린 소녀‘메이치’, 폭력의 패자가 되겠다는‘다성’의 어이없는 죽음, 아비와 아들이 함께 탐하는 유부녀인 탕녀‘진란’, 건달패들의 추행에 저항하다 살해당한 쩔룩이의 누나, 온통 채 피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축축한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여느 막장 드라마 이상으로 음울하게 그려지고 있다. 인민의 삶과는 이격된 권력자들의 이념투쟁과 정책들은 등장하는 호적 담당 경찰관이나 유리병 세척공장 당 간부의“무산계급 전제정치가 그깟 화냥년 하나 다스리지 못하겠어요?”하며 호기를 부리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서 문화혁명기의 좌절된 사람들의 허탈과 분노를 읽게 된다. 이 작품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저녁에 피어 아침에 지는‘야반화(夜飯花: 일명 분꽃)’라는 꽃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키우는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아는 것이 꽃”이며, “만일 꽃을 키우는 사람이 그 화초들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면 가지와 잎이 자라는 소리와 꽃봉오리가 마음껏 웃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에 이르러서야 어느 샌가 참죽나무길에 빠른 속도로 퍼져 피어나는‘태양화’를 이해하게 된다. 어두운 밤에서 밝은 낮의 꽃이 피어나는 곳이 되는 것을. 절망과 무기력에 절고 상처받은 부모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갈등과 혼란의 사회가 귀 기울여주고 보듬어주지 못했던 중국의 1970년대는 50살 중년이 된 오늘의 그들에게 안타깝고 눈물겨운 기억으로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성북지대’, 무지막지함만이 그득해서 어딘가로 벗어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곳,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곳에서 아이들의 삶의 뿌리 내리기가 처연한 아름다움의 문장으로 그려진 성장소설의 걸작 중 걸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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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데다 마오쩌뚱, 소련-미국 회담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 1960년대후반에서 70년대의, 양쯔강아래 강남 성북지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씨비가]의 배경으로 나왔던 '참죽나무길'이 다시 나오는 터라 같은 곳인가 싶었지만, 글쎄 이건 작가가 그리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으로 작가는 개발에서 뒤쳐진 외진 곳,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장소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p.402~403에 있다)으로 상징된다. 어제저녁에 한번 작가 쑤퉁에 대해서 찾아보았는데, 여러 뛰어난 상의 수상자뿐만 아니라 장예모 감독의 영화[홍등]의 원작소설 [처첩성군(妻妾成群)]의 저자자이기도 했던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폐쇄되고 한가지 원칙과 사상을 강요하며 인간본성을 무시하던 혼란스러움을 조심스레 이 참죽나무길의 소년들을 통해 더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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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매우 리얼하지만, 죽은 메이치의 유령이 나타나 붉은 하트를 붙이고 다니고, 텅펑이 뱀의 존재를 느끼는 등 뭔가 옛날 이야기와 비슷한 정서를 보인다. 옛날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정말로 리얼한 실제를 뭔가 비이성적 믿음 등으로 버무리지 않는가.
아직 20세도 되지않은 소년들이지만, 이들의 인생은 녹녹치않다. 홍치는 메이치를 겁탈하고 감옥에 가고, 다성은 홀어머니 텅펑의 바람과는 반대로 폭력으로든 뭐든 이름을 내고싶다고 다니고, 쩔뚝이는 대장장이의 개를 죽여 가죽을 팔지않나 걱정하는 누이 진홍에게 거칠고 손버릇이 나쁜데다, 쉬더는 이발소주인의 아내인 진란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자신의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화씨비가]에 이어, 당최 저런 행동에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가 익숙치않았다. 특히나 자신을 걱정하는 진홍에 대한 쩔룩이나 몽정을 일으키는 죽은 메이치 때문에 당황하여 고양이를 죽이는 다성 등. 근데 읽다보니 약국주인이었다가 문화혁명으로 쓰레기를 줍게된 신분으로 끌어내려진 캉씨가 왜 학교에서 예의범절을 가르치지않고 정치사상만 가르치는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p.169).
아무리 거칠어도 경찰에 끌려가다가 군고구마 냄새에 '나 한입만'(p.179)을 말하는 부분에선 웃음이 나면서도,
...정치 관련 일들은 한번 기록되고 나면 평생 그 오명을 짊어지고 살아야한단 말이야...p.190
..소련 수정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도 평화회담을 하는 마당에 어째서 두사람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p.361
가장 정치와 무관한 듯, 이발소 가위를 들거나 빈병을 닦는 이들의 입에서 저런 정치적인 이야기가 언급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생활의 규칙이나 절제를 가져오는, 도덕적 가르침은 무시되고 간과되어 생활의 비참함으로 이어진다. 개발에 소외된 '참죽나무길'은 마치 정치적으로 전국민의 사상화를 이루려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길을 무시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심으로 타인을 욕보이는 보습 와중에서도 아주 조금씩 부드럽게나마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는 인물들이 있어 아직 사람사는 모습이 보이긴하다. 다만 [화씨비가]보다는 덜 긍정적이지만.
작가의 자전적소설이라는데, 과연 그는 저 '참죽나무길'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게 궁금했다. 자전적 소설이라 소개했으면, 좀 작가에 대한 얘기가 후기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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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일대의 날씨는 잠시잠깐 시원하고 상쾌할 것이다. 그러나 장마는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가리라는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다.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려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장마가 지나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또 찾아올 것이고, 한 해가 지나고 또 다음 해가 와도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은 늘 찾아오는 것을.
1970년대 중국 강남 유역의 작은 도시,,, 카본 블랙과 시멘트 가루가 칠월의 뜨거운 바람 속에 날아들어 세 개의 화학공장 큰 굴뚝이 이 도시의 상징인 성북지대,,, 이곳 소시민의 일상과 기댈 곳 없는 약자들의 삶을 작가 쑤퉁은 장마가 막 지나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그 때,,, 성북지대의 다성, 쉬더, 홍치, 쩔룩이,,, 아직 채 성장하지 않은, 이제 청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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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의 첫줄에 나는 이렇게 쓸 작정이었다. ‘지금 현재 청춘임에도 삶이 너무 버겁고 암울하다면 절대로 이 책을 읽지 마시오.’라고. 당신이 기대하는 위로나 희망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할테니까라는 글로 시작을 알리려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런 사람들에게 더 추천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자신보다 더 비참하고 힘든 이들을 보면서 그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꽤나 괜찮은 ‘내 인생’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을 읽으라고 또 강력히 권고하게끔 만드니 결국 선택은 독자의 몫이라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성북지대’라는 책 제목 때문에 한국소설이 아닐까 오인했는데(나는 성북동에 가까운 서울시민이니까^^)쑤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니 좀 낯선 느낌의 중국작가라는 냄새가 확 난다. 물론 이 작가의 작품도 처음이기에 도대체 어떤 분위기의 글일지 좀처럼 예상을 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다는 책 소개처럼 그들의 삶은 현재 나의 삶과는 많이 동떨어져있었다. 마치 6,70년대의 흑백영화를 보듯이 연상되는 성북의 어두운 모습과 투박한 그들의 삶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쉽게 동화되지 못하게 막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줄거리는 또 어떤가? 아직 자라나는 청춘의 성장소설이라기에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암울한 미래만이 앞에 떡하고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이 넷이 성북지대에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인생사는 검고 탁한 연기가 앞을 막은 것처럼 뿌옇고 질식할 것만 같다. 도대체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변변치 않을 것 같던 쩔룩이는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삶의 한 면일 뿐이다. 희망이 없어서 두려울 것이 없었던 소년들이라고 해야 할지 날카롭게 날이 선 모습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 졸이게 만들었나보다.
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는데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춘이 있지도 않고 열정 가득한 젊음의 패기도 보이지 않는 이 소설이 유독 가슴 한곳을 찌르르하게 하는 건 어쩌면 그 어둡고 긴 터널을 건너가는 이들의 삶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청춘이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 나가야 하는 청춘이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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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쑤퉁'은 국내에 10여 종의 소설들을 쏟아내며 나름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다. 그와 함께 중국문학의 기수로 꼽는 작가 '위화'는 굵직한 작품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로 대표된다면, 여기 쑤퉁은 그 스펙트럼이 다소 넓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사소설부터 해서 섬세한 필치로 그린 여자의 이야기, 가열하고 비루하고 잔혹한 가족사, 그리고 그 시절의 청춘 이야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레시피를 얹어 놓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그리고 이번에 접하게 된 쑤퉁의 작품은 바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쓰린 유년시절을 떠올리듯, 우리시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성북지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청춘의 이야기가 그냥 교과서적인 룰을 따르는 게 아닌, 이야기의 파괴성을 보듯 청춘들의 잔혹사를 그리며 읽은 이로 하여금 또 다른 기분이 괴어오르게 했다. 과연 성북지대에 올망졸망 모여사는 인간 군상들, 특히 여기 청춘들의 가열했던 봄날은 어떠했는지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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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쑤퉁 작가의 책은 <측천무후>였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했던 여황제의 삶을 조명했던 쑤퉁 작가는 ‘성북지대’라는 가상의 공간에 네 명의 발칙한 청소년 성장기를 욱여넣는다. 우선 쑤퉁 작가는 성북지대(城北地帶) 참죽나무길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를 투영한다. 장소가 준비되었으니 그 공간을 채울 캐릭터를 만들 차례다.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서 퇴출당한 네 명이 바로 그들이다. 화냥 진란과 바람이 나서 그녀의 고향 칭다오로 줄행랑을 치는 선쉬더, 철사꼬챙이로 동네 개를 날름해 버리고 모른척하는 쩔룩이, 이웃집 소녀를 겁탈하고 ‘푸른잔디길’에서 9년을 복역하게 된 홍치 그리고 언젠가 영웅적 삶을 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다가 저탄장에서 비운의 삶을 마친 리다성에 이르기까지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비범한 캐릭터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설 소재로 써먹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지만, 참죽나무길에 사는 이들의 운명은 하나같이 가혹하기만 하다. 우리네 소시민들의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 가운데, 아이들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소를 순례하고 어른들은 이웃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눈과 귀를 집중한다. 도무지 희망이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곳이 사회주의 이상국가 중국이란 말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화냥 진란과 관계하고, 십수 년째 홀로된 아버지를 부양한 딸의 귀가가 늦었다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가 봉변을 당하질 않나, 과부가 된 딸은 뱀장수 아버지를 매몰차게 내쫓아 결국 한겨울에 동사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막장드라마 뺨치는 수준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성북지대>를 수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것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학교 교육은 오수가 터져 흐르는 참죽나무길의 진창처럼 엉망이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할 의욕마저 상실했다. 교내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말썽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선 총기와 실탄이 필요하다고 교사들은 자조 섞인 농담을 날린다. 이렇게 쑤퉁 작가는 전체주의 국가와 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대신 인민들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욕망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찌질한 이 네 청춘이 그렇다고 나중에 극적인 반전을 도모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불행의 선순환은 억울하게 죽은 메이치의 유령처럼 참죽나무길을 휩쓴다. 쉬더, 쩔룩이, 홍치 그리고 다성 이 네 악당의 우정의 깊이는 얇은 종잇장보다도 가볍다. 이들에게 진지함이란 다른 별나라의 이야기고 오로지 말초적인 즐거움만이 지고의 선이다. 신세를 망치고,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도무지 뉘우치는 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얼마만큼 더 망가져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하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중국어를 전혀 몰라 과연 어떻게 번역이 되었는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를 번역하는 건 우리말과 같은 표음문자인 영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몹쓸 공상을 해봤다. 읽으면서는 재밌고 즐거웠지만, 다 읽고 나서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결말에 마음이 좀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중국 소설치고는 너무 한자가 없어서 오히려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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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걸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고 나이에 해당하는 역할이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게 순리라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 조금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준 쑤퉁의 글은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부단한 어둠을 드리워주고 있다. 읽기 전에 조금은 어두운 성장소설 이라는 스포일러가 있었기에 내내 생각을 하고 읽어서 인지 읽는 동안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주기를 바랬던건 어쩌면 읽는 이들의 희망을 보기 좋게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여러 생명이 마치 가을 길목에 핀 야반화처럼 한순간에 시들어 떨어져갔다. 지금은 봄이지만, 사람들의 죽음이 봄이라고 다르겠는가?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 가득한 연둣빛 계절에 그 불쌍한 영혼들에게 불의의 화살이 날아들어, 그들을 정들었던 참죽나무길과 영원이 이별하게 만들었다. /p311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러나 어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들은 피하고 싶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잔소리 같고 자신들의 상상과 생각대로만 살고 싶은 아이들...그러나 삶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한 순간의 선택이 그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떠밀고 가기도 한다. 글의 문체가 잘 읽어지는 반면 마을의 분위기와 아이들이 처한 주변상황의 부연설명들이 자세해서 마을의 윤곽이나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는 지문들이 많아서 더 어둡고 처연하게 느껴졌던 글일지도 모르겠다. 참죽나무길 전체가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다 할 인물 하나 없고, 생기 넘치고 흥미로운 곳도 없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만한 어떤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p371 피해자도 가해자도 가릴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 어쩌면 그들 주변의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이들에게 살아가며 누구나 잠깐이라도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이 있다고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닌 조금 더 밝고 환한 세상도 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위험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어쩌면 누구보다 더 환하고 밝게 빛나고 싶었을 청춘들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지극히 감상적인 글들이나 책을 찾아 읽다 보니 책장을 덮은 지금..조금은 먹먹한 마음에 한동안 이 작가의 책은 읽기 힘들 것 같다. 삶이란 때론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 아닌 조금은 희망적인 면도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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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성장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참혹했다. 도리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현실고발을 하는 사실주의 문학이다. 암담한 경제적 현실 앞에 휘둘리는 인간군상, 그 속에 있는 비극의 다양한 형태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어떻게든 변화해야 하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우습기조차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결코 변할 수 없는 힘든 세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어린 10대들의 불운을 담은 소설이다. 해방구 없는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은 암울한 현실을 살고 있고, 성숙한 어른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어른들이 역시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이 그냥 아빠, 엄마가 된 것뿐이다. 그냥 나이만 먹었을 뿐, 그들을 위로해줄 수도 없음은 물론 그런 여력도 마음의 준비도 없는 공간인 성북의 참죽나뭇길은 그래서 비극을 양산시키고 순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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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은 텅펑의 종이우산 위로 떨어지고, 우리들의 참죽나무길 위로도 떨어졌다. 성북 일대의 날씨는 잠시잠깐 시원하고 상쾌할것이다. 그러나 장마는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가리라는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다.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려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장마가 지나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또 찾아올 것이고, 한 해가 지나고 또 다음 해가 와도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은 늘 찾아오는 것을'p398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이라는 타이틀은 은근 독자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내 입장으로 봤을때 글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 작가의 어린시절이 궁금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보다시피 표지도 왠지 익살맞은 일러스트와 층진 집들이 작가의 어려웠던 시절을 말해주는 것 만같다. 그래! 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 멋진글이 나오기도 하는거지! 하면서 혼자 감탄하면 페이지를 펼쳤다. 아니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랬다. 역시 내맘대로 상상이나 편견은 과감히 버리고 읽을 걸 그랬다.
'세개의 큰 굴뚝은 성북지대의 상징이다.'
성북지대는 작가가 실제 살았었던 성북지대의 변두리인 참죽나무길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부자동네는 아니고 아주 가난한 소시민들의 삶을 그린다. '가난하다' 라는 의미와 '소시민' 이라는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삶은 공장지대에서 흘러나온 매연으로 인해 먼지가 낀 창문처럼 막막하고 지워도 지워도 다시 쌓이는 어떤 지긋지긋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걸핏하면 퇴학에, 강간과 도둑질,간통 게다가 비명횡사까지 세상의 모든 나쁜일은 이 성북지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아이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나름 충격이긴했다.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참죽나무길 사람들인 것이다.
전에 읽었던 그의 작품들도 그랬지만 그의 문체는 복잡하지 않고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볍지만 묵직하게' 던져준다. 성북지대 역시 밖에서 보기엔 그들이 사는모습이 처참하고 우악스럽고 뻔뻔하게 보일지라도 그들 나름의 방식의 희노애락이 있다. 의리도 사랑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청춘'이 있다. 남들보다는 많이 거칠지만, 어떤 빛을 띄고 있든 청춘이니까.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인 쑤퉁이 자신의 자전적 성장소설을 들고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무척 자유롭고 생생하기 그지없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사는 건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어서 만나보라 하고 싶다. 성북지대 변두리 참죽나무길 사람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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