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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부의 달인이란? [공부의 즐거움]
"진정한 공부의 달인이란? [공부의 즐거움]" 내용보기
저자와 살아온 시대나 집안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지 나는 어렸을 때 부모나 주위 어른들로부터 공부를 방해받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자처럼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필요한 교재나 참고서, 독서용 책이 부족했을 뿐이다.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 학교 도서관에는 읽을만 한 책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쓸만한 도서관을 갖춘 학교도 초등학교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리스,
"진정한 공부의 달인이란? [공부의 즐거움]" 내용보기
저자와 살아온 시대나 집안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지 나는 어렸을 때 부모나 주위 어른들로부터 공부를 방해받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자처럼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필요한 교재나 참고서, 독서용 책이 부족했을 뿐이다.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 학교 도서관에는 읽을만 한 책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쓸만한 도서관을 갖춘 학교도 초등학교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리스,로마신화와 고전 몇 종, 자연과학 관련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는 교실이 있었지만 그곳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험공부를 하는 ’특별한 장소’일 뿐이었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일부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그곳에서는 수험공부만 할 수 있었다. 도서관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고전 시리즈와 일부 교과서 이외의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책을 읽지 않았고 읽으라고 권하는 선생도 없었다.
 
저자와 나의 나이 차이가 대략 20년 정도 되었지만, 책 속에서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50년대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70년대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나마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저자는 한국전쟁 와중에 학교를 몇 번 옮기면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중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나는 큰 장애없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국가의 교육 시스템, 교사의 질, 교과목, 공부에 대한 개념은 50년대와 70년대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 역시 어느 누구에게로부터도 공부란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하는지, 인생과 공부는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중,고등학교라는 학제 시스템에 이끌려 ’당연히’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고 진급할 뿐이었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는 그 부적절하고 부족했던 교육시스템과 교사 문제, 교과과정, 공부개념이 더욱 악화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뿐더러 사교육 시장에 휘둘리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공부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살아 온 경험을 기초로 어렵게 공부를 접하였지만 역으로 그 어려운 과정이 저자의 창조력과 학구열, 공부의 질과 욕구를 더 높여 주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즐겁고 신나게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면서 현재 가정과 학교, 대학과 국가의 공부에 대한 관념과 태도,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이야기. [창고에 갖힌 도둑] 조선 전기의 문신 사숙제私淑齊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쓴 글 중에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도자설'을 통해 커다란 곤경을 겪으면서 터득한 기술이나 방법이야말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래야 대가를 이룬다는 교훈이다. 저자는 이 옛 이야기를 자신의 공부과정에 빗대어 여러 번의 곤경을 겪으면서 저자 스스로가 공부하는 법과 자신의 앎을 세워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이야기. [인삼과 산삼] 할아버지의 반대에 의한 학교 중퇴, 종교에 대한 경험, 개인적인 학습 노력의 과정에서 주어진 조건과 시스템에 의한 공부가 아니 스스로의 학습법에 의한 공부야말로 '인삼'이 아닌 '산삼'이 되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셋째 이야기. [교실 안과 교실 밖] 저자는 자신의 독립적인 공부가 청주공업고등학교 입학과 졸업에 큰 도움이 되었고, 독자적인 물리학 입문과 학교 밖을 활동을 통해 스스로 학습법이 효율이 컸음을 말한다. 이런 현장은 강도와 깊이는 다소 다르더라도 우리 세대 역시 비슷하게 겪은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과목의 경우,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서 교사로부터 배운 내용보다는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참고서, '정석' 또는 '성문종합영어'를 스스로 학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이야기. [방황과 모색]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대학 교과과정은 저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했고 배움도 얻지 못하게 되면서 교과과정에 있어 '자동차 조립론'이 아닌 '송아지 사육론'의 타당성을 제기한다. '자동차 조립론'이란 교과과정이 교양과목과 전공과목 모두 세부적으로 교양과 전공을 나누어 분절적으로 가르친 후 나중에 종합하는 방식이고 '송아지 사육론'이란 송아지 사육처럼 처음부터 교양이나 전공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나간 후 점점 뼈대와 살을 붙여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스스로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대성이론' 등 최신 물리학 이론을 접하면서 철학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고 철학과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섯째 이야기 [앎의 되새김질] 저자는 서울의 공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3년간의 국방의 의무를 마쳤는데 사관생도에 대한 강의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앎으로 생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을 '되새김질'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물리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을 이야기한다.
 
여섯째 이야기 [물질에서 생명으로] 결혼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어한 이후 저자는 생계와 공부의 연장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에 입학한다. 저자의 지도교수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연구를 했던 유진 위그너 교수의 제자인 캘러웨이 교수임을 밝히면서 은근히(?) 아인슈타인의 학문 계보를 이은 느낌을 가졌음을 고백하기도 한다.(실제로 저자는 아인슈타인 이후의 흐름이 '야생학풍'이었음을 지적하고 한국식 학계의 '계보'에 대해 비판한다.) 대학원 과정을 진행하던 중, 저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한국인 유학생을 통해 처음 DNA를 접하면서 생물학과 생명에 대한 지적 자극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일곱째 이야기 [학문과 등산] 저자는 학문은 경쟁이 아님을 강조한다. 따라서 학문을 '경주'보다는 '등산'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과학과 협동과정, 자연과학기초론 등의 교과과정을 개설하는데 참여하고 오랜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강의를 진행하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학 1학년 때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물리학 개론'과 '화학 개론'을 수강하였는데 내 기억에 저자의 강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과목에 해당하지 않아 접하지 못했다. 내가 당시에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면 이후의 내 삶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90% 이상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답일 것이지만...^^
 
여덟째 이야기. [가르침과 깨달음] 저자는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교수 및 교사의 교습법, 학습법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후, 저자의 물리학과 철학,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 학문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지구상의 개별 생명체들은 자체로 소중한, 그렇지만 홀로 생존할 수 없는 '낱생명'이며 지구의 자연과 태양, 달은 '낱생명'과 함께 엮어진 '보생명'이고 '낱생명'과 '보생명'이 한데 어우려저 '온생명'을 이룬다.
 
아홉째 이야기. [오래 묵혀둔 과제] 저자는 서구의 자연과학과 물리학에만 의존하는 동양과 한국의 세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하면서 자신의 족보상 선조인 조선시대 선비 장현광張顯光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현광은 16세기 중엽에 태어나 <우주설宇宙說>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안에 자연과학과 우주론에 대한 이론이 들어있다. 저자는 서울대 재직 중 장현광의 '우주론'을 연구한 바 있다.
 
열째 이야기. [녹슬지 않은 배턴을 넘기기 위해] 저자는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최대한의 충실을 기한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자신의 내면을 뚫고 들어가 끝없이 자신의 깊이를 되새기는 일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삶이 일종의 이어달리기 이므로 후손들에게 '녹슬지 않는 배턴' 넘기기 위해 앎을 향한 자신의 노력을 끝까지 경주할 것을 다짐한다.
 
1950~80년대 한국은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분단과 한국전쟁, 전쟁의 폐허와 기아, 생필품 부족과 빈곤, 국가주도 경재개발 및 재벌경제 시스템... 그 고난의 시기에 대부분 저자 혼자 힘으로 공부의 길을 개척하고 유학을 떠나고 물리학과 철학까지 학습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한국의 물리학과 학문간 통합을 주도해가는 저자의 모습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저자보다 한결 나은 형편과 조건에서 학업을 해온 내가 부족한 점과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배우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저자가 공부해온 과정, 삶의 여정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자세와 태도를 엿보게 해준다. 주어진 조건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자세,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으려는 모습, 지식과 지혜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정신... 그러한 자세와 태도가 지금의 장회익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비록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조건과 과정이 우리세대와 또 지금의 10대나 20대와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저자와 같은 자세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에 속하는 소수에 해당한 것 같다. 삶과 우주에 대해, 사회와 세계에 대해 저자 만큼 알고 있으면서 특별한 물리적, 정신적 어려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평생하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과학자 집단이 다른 학문집단, 또는 다른 직업군보다 행복지수가 높다고 지적했지만 장회익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실제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글을 쓴 의도는 알고 있고 그래서 이 책이 보여주는 일정한 한계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글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 저자가 살아온 조건과 독자들이 살고 있는 조건이 무척이나 다른 점을 고려한다면 독자들이 저자와는 또 다른 역경 속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 방법론을 가지고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단초를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자서전 같기도 하다. 서문 말미에 "한평생 공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살매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드린다"에서는 일부 독자들이 약 올라 하고 짜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책 속의 문장
- 나는 성경 자체가 나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성실하지만 불완전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일 수 있다. 그리고 고의로 거짓저술을 했다기보다는 잘 몰라서 혹은 그런 형식 밖에 빌릴 수가 없어서 오늘 우리가 보기에 부적절한 내용들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단 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유지하되, 제도화된 기독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도신경’을 강요하는 기독교와는 결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p.170)
 
- 요즈음은 가히 경쟁만능 시대라 부를 만큼 모든 것을 경쟁에 맡겨야한다는 생각들이 만연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학문은 기여이고 협동이지 결코 경쟁이 아니다.(p.282)
 
- 학문하는 일을 바둑에 비기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장거리 경주에 비기기도 하지만, 학문은 역시 등산에 비기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바둑이나 경주와는 달리 등산은 승부에 매달리지 않고 경쟁을 조장하지도 않는다.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목표를 정하고 자기 흐름에 따라 걸음을 조정할 뿐이다.(p.301)
 
- 우리가 지금까지 ’생명’이라 생각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생명이 아니라 이것의 한 부분인 ’낱생명’이었으며, 이것이 생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밖에 있는 이것 못지않게 본질적인 존재인 ’보생명’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함께해서 진정한 의미의 생명 구실을 하는 그 전체가 바로 ’온생명’이라는 이야기다.(p.330)
 
[ 2011년 5월 3일 ]
c****n 2011.05.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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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에서 공부의 즐거움에까지
"공부도둑에서 공부의 즐거움에까지" 내용보기
생기 발랄한 학창시절엔 어쩜 그렇게도 공부하기가 싫었던지..... 누가 공부해라~ 공부해라~~ 말하면 무던히도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청개구리처럼 공부와는 반대인 모든것을 즐기고 탐했던 시기.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법... 공부도 때가 있음을 지금에서야 알게된다. 특히 지금 아해들은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엄마의 욕심이 부채질한 사교육은 아해들의 꿈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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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발랄한 학창시절엔 어쩜 그렇게도 공부하기가 싫었던지.....

누가 공부해라~ 공부해라~~ 말하면 무던히도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청개구리처럼 공부와는 반대인 모든것을 즐기고 탐했던 시기.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법... 공부도 때가 있음을 지금에서야 알게된다.

특히 지금 아해들은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엄마의 욕심이 부채질한 사교육은 아해들의 꿈과 목적의식과 자아정체성까지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그야말로 보이기 위한 스팩을

쌓기위해 아해들은 오늘도 쉴틈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간다.

그럼 정말 하고싶은 공부는 뭘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자칭 '공부도둑'이 있었다.

30여년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정말 자신만의 공부에 올인했던 장회익 교수님의

<공부의 즐거움>이다.

 

 

그가 왜 공부도둑이 되었을까?

조선 전기 문신인 사숙제 강희맹의 도둑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아들을 훈계하기위해 쓴 글  다섯편 가운데 하나다.

이야기의 맥락은 도둑이란 본래 남의 창고에 들어가 물품을 훔쳐 달아나는 짓인데,

공부 또한 함부러 범접할 수 없는 학문의 창고 속에서 그 내용물을 꺼내가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꺼내가는 수법이 두가지가 있다.

배움의 엄정한 규칙을 지켜 스승이 꺼내주는 것만 공손히 받아가는 모범적인 방식과, 이 규칙을 무시하고 겁없이 창고 속을 드나들며 제 가져가고 싶은 거을 멋대로 가져가는 무례한 방식으로,

모범적 방식을 두고 도둑이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례한 방식의 수법.. 바로 '공부도둑'이라 감히 빗대어 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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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부도둑'의 길을 어렸을때부터 그리고 지금 70중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서도 열심히

공부중....  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열의가 탐났고 부러웠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항상 갈급하고 부족할때 사람들은 온전한 것을 더 추구하는 법.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하고 싶을때 할 수 있는 공부와 스스로 지혜와 지식의 샘을 날마다

구하는 삶. 진정으로 공부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싶다.

 

 

저자의 공부도둑으로서의 학문을 들여다보면 감히 범접하기 힘들만큼 난해하고 방대했음을 알 수 있다.

물리학 교수답게 수학을 물론 역학에 자연과 생명에 이르는 학문까지....

 이런 학문들을 어렸을때부터 혼자만의 경험과 실험속에서 터득한 공부가 대부분이라니....

정규학교 과정을 밟은것은 늦은 중학교때부터인데.. 그것도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거부와 만류란 힘든

고비를 넘고....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간절함과 소망이 공부도둑으로 만든 것 같아 그저 읽는 내내

'와우... 대단하시다' 타고난 공부꾼과 학문도둑이 된것은 어쩌면 공부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하신

할아버지 때문이었음을 입증한 셈이다. 

한 우물만을 끊임없는 열정과 열심으로 성실하게 파 나가니 이것이 인정받게 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할터... 이런 성실함이 없으면 타고난 '꾼'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더 느낀다.

 

 

"남에게 배운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원숙하게 만든다.

이제 지혜의 샘이 트였으니 다시는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제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한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많이 투영되어야 되는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도 누가 공부를 못하게 한다면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저자.

그는 정말 공부에 제대로 미친 분이다.

 

 

한 분야에서 제대로 미친다는 것은

감히 타인이 넘볼 수 없는 자신속에 자신만의 내재된 에너지가 분출된 분화구이며 경쟁력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정말 자신의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공부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면 평생 자신의 삶에 희소가치가 있을 것이다.

공부 하는 즐거움만을 어디에서든지 빼앗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공부라면 울 아해들도 느껴봤음 좋겠다.

그리고 나도 공부하는 즐거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에서야 공부란 것에 유연해졌고, 하면할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것에 아는 즐거움까지 느껴지는 그 공부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l*****5 2014.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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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평생의 벗이었다. - 공부의 즐거움
"공부의 평생의 벗이었다. - 공부의 즐거움" 내용보기
공부에 평생을 바쳐온 학자의 이야기 – 공부의 즐거움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 책의 소개를 이렇게 시작을 한다.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순수한 공부의 길을 걸어간 삶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이자, 국내 최초 대안대학 '녹색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는 등 온몸으로 실천하는 지성의 삶을 살아온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이 '공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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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평생을 바쳐온 학자의 이야기 공부의 즐거움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 책의 소개를 이렇게 시작을 한다.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순수한 공부의 길을 걸어간 삶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이자, 국내 최초 대안대학 '녹색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는 등 온몸으로 실천하는 지성의 삶을 살아온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이 '공부도둑'으로 살아온 자신의 공부인생이 녹아든, 겸손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회익 교수가 스스로를 공부 도둑이라 칭하는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배워서 학습을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깨우치는게 가장 좋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1장에서 나오는 도둑 아버지가 아들에게 도둑을 가르치는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스스로도 그 도둑 아들처럼 독학으로 수많은 시간을 공부를 해왔다고 소회를 밝히는 이 노학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 것 라는 생각을 한다.

 

70을 넘긴 나이에 60년 이상을 공부하고 책을 본 저자의 생각은 단순하다. 누구에게 지식을 배우는 수동적인 지식의 탐구는 오래가지 못하고, 남에게 배우기 전에 스스로가 터득을 하고, 자기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만 진정한 공부가 되고, 진정한 공부만이 공부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서 자기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문의 문을 여는 마스터 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문의 마스터 키가 있다면 어떤 분야의 학문도 두렵지 않고 잘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학문을 찬찬히 쌓아 올리면 어느날이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책은 이 생각을 그동안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배경으로 진솔하게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자신을 미화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경험한 애기들을 좀더 솔직하고 표현을 한 부분이 많다. 자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정규과정이 아닌 형태로 졸업을 했으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입학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음을 정확히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0장의 구성이다.

첫째 이야기. 창고에 갇힌 도둑

둘째 이야기. 인삼과 산삼

셋째 이야기. 교실 안과 교실 밖

넷째 이야기. 방황과 모색

다섯째 이야기. 앎의 되새김질

여섯째 이야기. 물질에서 생명으로

일곱째 이야기. 학문과 등산

여덟째 이야기. 가르침과 깨달음

아홉째 이야기. 오래 묵혀둔 과제

열째 이야기. 녹슬지 않은 배턴을 넘기기 위해

 

그러나 이 책에서는 머리말을 보면 이 책에서 장교수님이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 그 몸으로 체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수님의 학문의 길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 이책은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부터 사교육 시장에서 잘 양성된 아이들이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 아이들이 다시 명문대학교 혹은 외국의 명문대에 입학을 해내는 형태를 본다. 이런 현실을 투영을 한다면 장교수님이 말하는 스스로 앎을 깨우치는 길은 부모가 배팅을 하기에 무서운 길일 것이다. 솔직히 필자도 교수님의 오랜 길을 반추하시는 글로 수필로 이글을 읽게 되었지, 내 주변의 학생에게 권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j***m 2011.04.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