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내용이 끊임없이 변하는 책이다. 저자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π)처럼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내가 이 책을 읽고 파악한 내용이 아니다. 그저 저자가 이 책에 숨겨놓은 저작의 의도를 발견해서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파악한 것은 무늬만 추리소설인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점과 액자식 구조를 띄어 퍼즐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앞에는 분명 추리소설로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파트에선 추리소설이 아닌 미스터리 소설로 변모한다. 그리곤 소설 속에 소설을 집어넣는 액자식 구조를 쓰더니만 나중에 퍼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도록 상황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끝까지 해답을 찾으려 했던 난 다 읽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나 이외의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의 미스터리를 풀지 못할 것이다. 폐쇄미로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놨으니 어떻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출구 없는 미로 같은 소설을 읽는 줄 알았으면 난 앞장을 여러 번 넘겨가면서 내용을 맞춰보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날 고생하게 만든 저자가 살짝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해준 저자에게 고맙기도 하다. 이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추리소설 무늬를 띈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초반 부분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난 이 책이 추리소설인 줄 알았다. 시작하는 내용이 딱 전형적인 추리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 소설을 삼류 추리소설로 치부해버렸다. 분명 내용은 추리소설인데 일본 추리소설 중 어느 소설을 베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등장인물들의 추리가 너무나 어설퍼 삼류소설이란 결론을 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다음 파트를 읽으면서 난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 책을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첫 번째 파트에 이은 두 번째 파트부터는 추리소설이 아닌 미스터리 소설로 책의 종류가 변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첫 번째 파트의 내용은 형편없는 삼류 추리소설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두 번째 파트의 내용은 180°달랐다. 두 번째 파트의 내용은 앞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과거사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치밀한 구성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앞의 어설픈 내용은 다 계산된 설정이었단 말인가! 저자는 분명 독자가 이렇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방식의 구성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난 저자의 수작에 놀아난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은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퍼즐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 나가다보면 서서히 윤곽이 잡혀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구조를 띠더니 종국에는 의문만 잔뜩 남긴 채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즉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채 그냥 마무리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이야기가 완벽하게 미스터리로 끝나버려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 모든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들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독자를 이토록 가지고 놀 수 있는 국내 작가가 또 있을까? 난 없을 것 같다. 정말이지 대단한 소설을 써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비유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대개 독자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 혹은 낯선 이야기를 할 때면 작가들은 비유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독자가 잘 모르는 내용을 금방 와 닿게 하기 위해서 이런 식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도 대개의 작가들처럼 독자가 낯설어 할 만한 내용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비유를 들어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 비유하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분명 글을 읽었는데 마치 화면을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매번 비유를 들어서 이해를 돕는 바람에 낯선 내용이 단번에 이해되었고 상황이 금방 파악 되었다. 어쩌다 한 번 비유를 들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경우는 여러 번 겪어봐서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저자처럼 어떤 내용이 나올 때마다 비유를 들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경우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겪어봤다. 처음엔 그저 비유를 잘하는 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해서 비유하는 문장을 접하자 나중엔 정말 대단한 작가 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렇게 뛰어난 표현을 한 두 번이 아닌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표현의 마술사 혹은 비유 종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로 저자의 비유력과 표현력은 대단하다. 이토록 비유를 잘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가 국내에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문학의 발전가능성을 저자를 통해 본 것 같아서 흐뭇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간질에 대해 자주 언급한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간질이 있는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엔 평소 저자가 간질 환자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 소설에 넣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저자는 등장인물을 바꿔가면서 혹은 같은 등장인물인 것 같은데 비슷하게 해서 간질 환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고 있다. 음악이나 미술 이외에도 간질에 대해 많이 연구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저자의 간질 환자의 발작 묘사는 실감난다. 전에 이와 유사한 장면을 실제로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간질 환자에 대한 묘사가 단지 허구가 아닌 실제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해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난 간질 환자를 두 번이나 목격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체육시간이었다. 그때 날씨가 추워서 체육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대다수의 애들이 축구나 농구를 하길 원해서 체육시간을 가졌었다. 당시 우리 반만 운동장을 썼기 때문에 운동장에 다른 반 아이들 혹은 선배들은 없었다. 일은 체육시간이 다 끝날 무렵에 발생했다. 한창 신나게 뛰어놀고 나서 이제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서 교단에 정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 중 한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운동장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 친구는 우리가 TV에서 본 간질 환자처럼 발작을 일으킨 것인데 거품을 물고 그대로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이를 보고 침착하게 대응해서 바로 양호실로 업고 갔는데 그 친구는 깨어나서는 자기가 왜 쓰러졌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아예 쓰러졌던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지라 지금도 난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 녀석은 S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는데 밟는 도중에 S그룹에 스카웃이 되어 지금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1때 그 사건 이후 발작증세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친구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발작이라는 게 그렇게 어쩌다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개 간질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알려봤자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세상에 알렸다가는 벌레취급 혹은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발작이 일어났어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학 때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또 목격했다. 이번엔 과 후배였는데 병명은 빛에 의한 간질 발작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특이한 경우로 어떤 빛에 노출되었을 때만 발작이 일어나는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전에 친구 녀석이 발작을 일으켰을 땐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내가 도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발작을 일으켰을 땐 옆에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응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발작을 일으킨 녀석은 보통 사람이 취할 수 없는 이상한 자세로 몸을 꼬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는 것은 친구 녀석 때와 같았는데 내 친구는 몸을 꼬진 않았다. 그런데 후배는 몸을 상당히 심하게 꼬면서 괴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이런 상태로 내버려두면 나중에 후유증이 클 것 같아서 난 사지를 잡고 몸이 꼬이는 것을 막았다. 워낙 힘이 좋은 녀석인데다가 정신까지 놓아서 통제하기 무척 어려웠는데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한분이 도와주셔서 같이 몸을 잡고 비트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몸을 비틀기를 마친 녀석은 최종적으로 거품을 위를 향해 뿜어댔는데 그게 잘 흘러나와서 기도를 막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119에 신고해 내가 보호자가 되어 인근 병원까지 함께 갔는데 다행히 녀석은 이상 없이 깨어났다. 하지만 전에 내 친구가 겪었던 것처럼 후배는 자기가 왜 발작을 했는지 그리고 정말 자신이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오게 된 것인지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퇴원 후에도 이 녀석은 처음에 자긴 간질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번 발작을 일으킨 것에 불과하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나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간질이 맞다고 실토를 했다. 이 후배는 대학졸업 후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증권회사에 입사했으나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좀 더 편한 증권회사로 옮겨갔는데 지금은 그 회사에서 아무 일 없이 잘 다니고 있다. 이 녀석 또한 분명 언제 비슷한 발작을 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굳이 남에게 얘기 해봤자 자기한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간질 발작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곁에서 지켜본 사람까지 충격에 빠지게 만든다. 직접 한번 발작 증세를 본 사람은 죽어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 정도로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이 간질이다. 그리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또한 간질이다. 간질은 예고를 하고 발생하지도 않고 어떤 징후를 보이며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발생해 본인과 지켜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저자는 간질 발작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처럼 환자를 등장시키는데 자기 소설이 간질을 앓는 환자처럼 한번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고 독자가 절대 예측할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게 저자의 의도였다면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엔 애초에 출구라는 게 없었다. 나처럼 퍼즐을 하나하나 찾으며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해나가는 사람을 골려주기 위해서 저자는 처음부터 출구 없는 미로로 독자인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그런 저자의 의도를 알길 없었던 난 미로에서 출구 찾기에 열중했고 결국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무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허무함과 같이 느낀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포부대로 정말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것이다.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인상적인 글귀 “역시 깨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야.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제멋대로이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 줄 아나? 두려움의 대상과 하나가 되는 거야.” “인생이란 게 서너 번쯤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면 좋을 텐데, 딱 한 번뿐이라는 건……부조리해.” “미친개에게 물린 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광견병이 옮는데.” “내면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외면도 중요한 겁니다.”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어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모든 건 연결되어 있어.” “기억이라는 놈은 나이를 먹을수록 합리성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이잖아요.” “진실을 말하는 건 단순한 반복이지만, 거짓말을 하는 건 창조적인 과정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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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또 다른 세상! <퀴르발 남작의 성>을 통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신인 작가의 등장에 넋을 놓았었다. 뒤이어 접한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실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과연 리뷰다운(?) 리뷰를 정리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감상이 어떠한 지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이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래서 읽으면 읽을 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늪과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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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잘 꾸는 편이다. 괴한이나 괴물이나 악령에게 쫓기는 꿈, 모두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만 남게되는 꿈,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몹쓸 큰 일이 일어나는 꿈, 갑자기 나타난 벼랑에서 휙 떨어져버리는 그런 꿈은 항상 나를 괴롭히며 자주 내 잠을 방해한다. 쫓아오는 악의 무리들은 초고속으로 내게 달려들지만 언제나 내 다리는 초저속의 슬로우모션이다. 그럴때의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꿈이라는것을 알고도 항상 당한다. 내 꿈은 정확성이 현저히 낮은 이른바 개꿈의 유형이다. 얼마전 종영된 <시크릿가든> 이라는 드라마에는 꿈이 항상 잘 맞아떨어지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런이들은 꿈꾸는게 얼마나 두려울까를 생각해보며, 내꿈은 그저 그런, 꾸고나면 1분이내에 바로 잊혀져 버리는 꿈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술가들은 그런 꿈으로 책도쓰고, 가사도 쓰고 한다지만, 내꿈은 보통 정신사나운게 아니라서 아름다운 가사보다는 괴기에 가까운 가사가 탄생될지도 모르고, 작품성이 좋은 글보다는 테러에 가까운 졸작이 나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주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내 품에 안긴 이 책은 네개의 단락으로 엮어져 있다. 그중에 첫번째 단락이 <여섯번째의 꿈> 이다.작가는 아주 친절하게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위한 조각난 사운드트랙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나를 폭설에 갇힌 산장으로 안내한다. 상대가 잠들면 내가 죽는다는 설정은 꿈속에서 사람들을 살인하는 어렸을때 봤던 <나이트메어>와 비슷하다. 혹시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봄직도 한게, 아주 무서운 노래에 이유가 있다. 영화<나이트메어>에서 꿈에 온것을 환영하는 듯한 노래가 나온다. 어린소녀가 아주 고요하게 부르는 노래지만 결코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고 무서움에 온몸이 오그라들어버리는 노래가 말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인현장에 도착한것을 알리는듯한 노래. 지금도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이책의 네단락은 서로 다른듯 하면서, 결국 서로 다 엮여있다. 첫번째 단락에서 살인이 있었다면, 그 다음 단락은 그들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복수의 공식>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다 서로 인연이 아닌듯 하지만 결국엔 서로 얽혀있는 인연들이다. 위의 조각난 사운드 트랙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의 가사를 보면 왜 눈이 일곱개일까 궁금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는 어렸을적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를 읽었었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귀여운 고양이를 상대로 저렇게 무서운 글이 나올리 없다. 고양이는 세마리인데 눈이 일곱이면 누군가 또 있는것이다. 알수없는 또 한명, 바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는것을 알수있다. 샴 쌍둥이다. 몸은 따로지만 정신적으로 얽혀진 이 정신적인 샴쌍둥이.
P165 (태식) 깡마른 연놈이 판박이처럼 닮았더라고. 손전등 불빛에 드러난 희멀건 팔다리가 나무뿌리처럼 뒤얽혀있는데, 해괴한 광경이었어. 몸이 달라붙은 샴쌍둥이 같기도 하고 머리 둘 달린 돌연변이 괴물 같기도 하고. 샴쌍둥이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누군가를 죽일만한 사연들이 제각각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던가. 멀리 돌아볼것도 없다. 최근 몇주전 나는 속으로 살인을 한차례 저질렀다. 마음만으로는 나도 연쇄살인자나 다름없으니 난 이미 그들과 엮어버리게 됐음을, 나또한 그들의 공범임을 순순히 자백하지 않을수없다. 작가는 공범이 된 나를 끌고 또 다른 살인의 세계로 이끈다.
네 단락중, 서막으로는 죽음을 보여주고 다음 단락에서는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이 이야기의 책이 나온다. 여기에는 또다른 형태의 인큐버스가 나오는듯 하다. 인큐버스란 꿈속에 나타나 정기를 흡수하는 요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꿈속에서 정기를 흡수한다기 보다 밤마다 이어지는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로 <여섯번째의 꿈>을 번역하는 남자를 이끌어, 정기가 고갈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끝이없는 이야기의 미로. 바로 <π> 라는 무한소수 끝이없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어렸을때 엄마가 잠자리에서 일러주었던 그런 이야기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자리에서 나누는 달콤한 밀어도 아닌데, 그 남자는 왜 그 이야기에 빠져버렸을까? 아마도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죄책감이 있다. 친구를 놀리고 그 죄책감에 가출할 결심을 하게 만드는 그런 감정. 내 사소한 잘못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을때,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부족한것만 같아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그런 감정들 말이다. 살아오며 죄책감은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럴수도있지 뭐. 라는 말로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리기도 하고 못본척 애써 외면하기도 하지만 죄책감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몰래 쳐놓은 거미줄에 독자가 어떤식으로, 얼마나 빨리 걸려드는지를 지켜보고있을 작가의 의도대로 난 이미 즐겁게 거미줄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해먹에 매달리듯 대롱대롱 거미줄을 즐기고 있다.
이책의 소재는 정말이지 신선하지 못하다. 공포물에 항상 등장하는 외떨어진 산장. 고양이를 내세운 무서운 노래. 밤마다 이어지는 무서운 이야기. 호러영화에서 봄직한 등장인물의 정신분열,미스테리한 환상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항상 진리는 그렇듯 옛적부터 써온 구태의연한 그 소재들은 공포계의 피라미드에서 최고정점에 존재한다. 매번 같은 소재에 식상해 하면서도 결국엔 꼭 걸려들게 만드는 그런 흡입력 강한 소재. 그래서 항상 무서운 이야기에는 이런 소재가 빠지지 않고 매번 약방의 감초처럼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 네번째 단락에서는 왠지 김이 빠진듯 하다. 읽으라면 읽기야 하겠지만 환상처럼 나타났다 환상처럼 사라져버린 책,<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에 관해 서술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글의 흐름을 떨어뜨린다. 앞의 세단락의 에필로그쯤 되는 부분이기도 한 이 부분은, 지금까지 작가가 쳐놓은 함정에 모두 걸려서 허우적 대며 즐거웠던 나는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다 가이드와 일행을 잃어버리고 혼자 외톨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빠져나올수 없는 이야기의 미로속에 단 하나의 출구를 찾기위해 책을 파고들었던 나에게 그 외줄을 싹뚝 잘라버리고 이야기의 미로에서 갑자기 다른곳으로 공간이동을 해버린듯한 괴리감을 떨칠수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앞에 놓여졌던 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다. 차게 식은 커피는 쓰디 쓰다. 마치 이 책을 다 본 지금의 내 심정이랄까?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뜨이는 부분은 <나비효과>다. 나비의 아주 약한 한번의 날갯짓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풍이 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참 낯설지 않다. 내가 한 행동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다시한번 새겨보기도 한다. 살아온 날만큼이나 살아갈 날들이 많은 나에겐 꼭 다시 새기고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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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쉽고 쓰기는 어려운 책이 있다. 아니다. 읽기는 재미있고 쓰기는 어려운 책으로 바꿔야 맞다. 그런 책을 읽었다. 그런이라는 말을 최제훈의 책은 충족시켰다. 최제훈은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선보이더니 이번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네 편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픽스업 소설의 형태를 취했다. 읽을 때는 '대단하다'는 말로 고개까지 끄덕였지만 막상 쓰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난감하다.
이 책엔 주인공이 딱히 없다. 등장 인물이 많아서다. 그러나 설사 누군가를 주인공이라 여긴다해도 그에게 고정되기는 힘들다. 주변부의 이야기가 주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보통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긴 했지만 최제훈은 독창성에 관한한 거의 독보적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여섯 번째 꿈'의 첫 장을 넘기며 나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전작으로 최제훈의 글에 대한 감을 잡은데다, 추리소설의 전형인 밀실살인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차례로 죽어가는데 범인은 누군지 알 수 없고, 게다가 내부 분열로 서로에 대한 의혹은 증폭되니, 오로지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만 범인의 흔적을 좁혀갈 수 밖에 없다. 분명히 범인에 대한 정보는 나오는데 범인의 발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연쇄 살인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실버해머'의 열혈 회원 6명은 카페 주인장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모인 것이다. 이들을 초대한 카페 주인장의 모습은 계속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면 누가 범인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제훈은 범인에 관심이 있지 않다. 생존자 둘은 이제 어떻게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해야 살인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염려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침과 동시에 살인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자들.
살인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는데 범인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죽은 자들은 꿈속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꾼 자들이고, 그들은 이제 말이 없다. 살아있는 자들은 직감한다. 잠을 자면 안된다는 것을. 누가 악마일까? 카페의 주인장일까? 아니면 자신들 안의 살인 욕구일까? 최제훈은 이미 딜레마를 통해 답은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복수의 공식'에는 자그마치 5편의 이야기가 대기하고 있다. 5편의 이야기는 연쇄적이다. 1과 5가, 2와 4가 연결되어 있고, 3은 다른 중편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과 연결되어 있다. 『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틀어놓고 죽음을 미리 선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남자, 나비문신의 건달에게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생을 망친 남자, 샛강모텔에서 눈을 뜬 무명의 여배우와 킬러, 코스모스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 평생 되는 일 하나 없는 남자에게 끔찍한 우연으로 날아든 새로운 인생 등,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진실은 이야기하는 화자에 의해 조금씩 왜곡되고 변형되어 진짜를 가늠할 수 없는 상상의 늪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출판사 리뷰 』 이 이야기들 속에도 죽음은 짙게 깔려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제거해버리고 싶은 그 죽음이 결국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종착지이며, 생과 사를 나누는 결정적 요인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삶의 허망함을 최제훈은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상황이 너와 나라는 거리를 통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고 취급되는지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자세히 보여준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자웅동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거리는 지극히 가까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최제훈은 사실화처럼 그려낸다.
세 번째 이야기 'π'는 중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자인 M은 번역자로 어느 날 부터 책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갈수록 자신의 행위는 대담해 지고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 속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 그로부터 발생된 이야기등 몇 개의 이야기가 혼재돼 미로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π'의 화자인 M은 '여섯번째 꿈'의 등장하는 폐쇄미로라는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책에 흔적을 남겼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도 결론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르겠다. 장자의 호접몽을 여기서 만나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는 표제작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이다. 앞서 봤던 인물이나 상징이 여기서도 슬금슬금 나온다. 책 안의 책에 나오는 미미라는 삼류 배우는 '복수의 공식' 3에 나오는 여자를 연상케 한다. 살로메를 연기하는 미미는 한물 간 연극 배우다. 이제 나이도 적잖고 더 이상의 희망도 없이 연극판을 기웃거리다 잡은 역이 살로메다. 그녀에게도 팬이 있었다. 그녀가 모르는 팬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던 팬이라 불리는 스토커는 더 이상 아름답게 피어나지 않는 그녀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미미가 운전하는 차에 뛰어들어 그녀를 유인해 집으로 데려온 후, 성폭행하고 죽이려 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편 화자인 나는 중간 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서관에 연체를 하게되면서 책을 빌려가지 못하게 된 이야기부터 망막 박리로 21일 동안 앞을 못보게 된 이야기까지.
최제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끝이면서 또 다른 시작이고, 개별적 이야기면서 연결되고 확장된다. 꿈에서 일어난 살인으로 사람이 죽고, 살인자가 피살체가 되며, 그 꿈을 조종하는 존재 또한 나인지 타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열린 결말은 과연 최제훈 답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고도 최제훈은 닫혀 있던 세상의 봉인을 풀어준다. 현실과 꿈이 만나며, 안과 밖이 하나 되고, 책 안의 책과 바깥의 책이 우리 몰래 나누는 밀약을 우리는 들을 수 있다. 놀라운 한 이야기꾼의 탄생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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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히 리뷰를 쓸 수 없다. 더 정확히,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다. 리뷰를 여기에다 바로 쓰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런데 나는 감히 바로 쓰고 있다.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의무감은 있어서다. 책을 읽었으니 뭐라도 남기겠다는 의무와, 무슨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난감한 이 교차점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과감히 포스팅 창을 열었다. 이 이야기만큼이나 장황하되 논리적인 회로에 맞춰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것은 이미 포기상태다. 과연 이 이야기를 리뷰로 풀어낸다는 건 어떤식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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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이 글을 쓰는 업에 종사하지만, 사람들마다 각기 나름대로의 특색과 한계가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계'라는 말에 주제넘다는 생각으로 발끈-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큰 나라도 국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어떤 훌륭한 작가도 다 그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좁은 땅덩어리인 탓에 국경이 동서남북 어디로 가나 쉽게 만나지는 나라처럼 쉽게 눈에 뜨이는 경우가 있고, 러시아처럼 광활하여 좀처럼 작정하고 덤비지 않으면 쉽사리 그 국경의 끝에 도달해지지 않아지는 이들이 있는 것 뿐이리라. 최제훈이라는 작가는 그 넓이가 넓은지 좁은지가 잘 헤어려지지 않은 복잡한 국경선을 가진 나라를 상상하게 한다. 이를테면 중간에 바다가 가로놓여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바다 건너편에서 이어지고, 무심코 허허벌판을 정처없이 걷다보면 어느틈엔가 국경을 넘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뭐 비유가 썩 알싸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런 분위기다. 솔직히 이 작품 하나만 가지고 그를 잘 평가 못하겠다. 기발하고 재기넘치는 글솜씨는 충분히 독자들을 매료시킬만 하지만, 그것 너머에 존재하는 정서적 여운은 어딘지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느낌도 솔직히 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마치 동일한 소재를 대상으로 여러편의 단편(또는 중편)소설이 연작으로 쓰여진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안에 연결고리를 하나씩 끼워넣어 여러편의 단편을 그 고리를 매개로 연결시켜 묶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를테면,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있는 색깔이 서로 다른 색연필이 한 묶음 쯤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어딘지 어정쩡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습작 미완소설 같은 향기를 풍기면서도, (솔직히 살구색이나, 옥색같은 색깔의 색연필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쓰임새가 없어 낱개로는 잘 팔리지 않는다. 다른 색과 함꼐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서 팔려나간다) 그것이 서로 묶여가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세련된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추리소설과 미스테리 장르를 넘나드는 소재를 다룸에도 이 소설은 오히려 판타지 장르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테리소설이 요구하는 정치한 인과적 연결구조나 극적인 반전이 이 작품에는 없다. 의도적으로 산만하게 흩어뿌린 듯한 이야기 전개가 독자의 말초신경을 정신없이 자극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고는 있지만, 숨을 고르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댄 다음 다시 살피면 어딘지 허전한 구석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것이 무한히 변형되어 반복되는 순환구조나, 독자의 상상력에 남은 지면의 여백을 넘기는 열린 결말, 또는 파이(π)와 같은 무리수에 의해 상징된 끝이 없고 불확실한 복잡계(Complex System)로 포장되어 현란한 겉치레를 하고 있음엔 틀림이 없지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양파의 속살 처럼 벗겨내다 보면 마침내는 텅 빈 손을 쳐다보게되는 느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이 준 가장 인상적인 되먹임(피드백)은 사람의 기억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가 흔히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기억의 상당부분이 자의적인 해석과 편견에 의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은 자연스레 보여준다. 자신에게는 감미로왔던 첫 키스의 추억도 상대방에게는 불쾌한 기억으로 무의식의 한 구석에 쳐박혀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의 기억이라고 착각하는 어떤 사건이 사실은 책이나, 매체 속 사건, 또는 지인들의 경험이 뒤섞여 전혀 다른 형태로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새삼스런 사실의 환기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보다 최제훈이라는 작가에 대해 더 강한 '끌림'을 느꼈다. 약간은 시니컬하면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했으며,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독백 속에서 묻어나는 삶에 대한 상념들이 재미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왜 일류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작가의 길로 들어섰는지가 대충은, 함부로지만 짐작이 간다. 시간을 내어 그의 데뷰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 이라는 단편집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장르(그것이 추리건, 미스테리건, 아니면 심지어 판타지건 간에)의 한계 상 작품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목소리를 더 선명한 울림으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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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본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보니 꿈에서 봤던 일이 현실의 결과로 남겨져 있다. 내가 정말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사실은 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실은 다른 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서의 살인마가 나였을까?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꿈의 실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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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픽스업'이라는 장르로 1년여에 걸쳐 연재된 소설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났다. '픽스업'은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으로, 연작 소설과는 개념이 다른 장르란다. <퀴르발 남작의 성>의 작가 최제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간직한 중편 네 개를 커다란 틀 안에서 하나의 장편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루어냈다. '픽스업'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았는데, 이렇게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것을 읽으면서, 최제훈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어 보지 못한 터라 더 그럴 것이다. <일곱개의 고양이 눈> 정말 묘한 이야기다. 왜 제목을 읽으면서 고양이 한 마리가 일곱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 p.294(일곱개의 고양이 눈중)
네개의 각기 다른듯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꿈을 통해 구현된 살인 - 여섯번째 꿈, 광기와 집착이 불러낸 복수 - 복수의 공식, 작품 속에 자신을 유폐시켜놓은 작가의 영원한 미스터리소설 -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뇌를 자극하는 환상 - 일곱개의 고양이 눈. 이렇게 네가지의 서로 다른것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분명 하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음에도, 다른 이야기를 읽을때 마다, 앞에 이야기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일한것은 아니다.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 독립되면서도 연관이 되어지는 이야기.
산장에 모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끼는 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에서 선택받아 초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페 주인인 ‘악마’의 부름을 받고 모인 자들은 함께 모여 ‘악마’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는 나타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실재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된다. 위험을 감지한 자들은 마치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그것이 곧 또 다른 위험이 되어 서로를 압박한다. <여섯번째 꿈>을 필두로, 최제훈의 가공할 만한 상상력이 시동을 건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범인은 밝혀졌는데, 나만 알수가 없는것 같았다. 그 이야기가 연속되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돌아서 보여진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앞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비틀어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면서도 작품 간의 연결고리들이 매우 치밀해서 한 장 한 장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 꿈속에서, 당신은 어디에 있었죠?”
연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받아 만들어지는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을 이번에 국내 최초로 종이책 안에 담았다. 각각의 중편이 시작되는 곳에 삽입된 QR코드는, 네 편의 중편이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것을 모티프로 삼아, 네 편의 연작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준단다.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아서, 각편마다 앞장에 나와있는 이미지와 음원을 들을 수가 없다. 이미지와 작곡, 연주, 믹싱등의 음원이 들어있는것 같은데, 친구의 스마트폰을 사용해봐야겠다. 아직 듣지 않아 알수는 없지만, 새롭다. 이젠 책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즐길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안에도 소설이 있고, 소설 밖에도 소설이 있는 <일곱개의 고양이눈>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새로움에도 낯설지 않고, 읽힌다.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니, 이젠 종이책이 이렇게 진화되는 듯 하다. 진화의 현장에서 책을 읽는 새로운 경험. 흥미롭고도 하나의 장을 열어가는 새로운 경험에 동참할 수 있어서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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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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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 인셉션을 본 느낌이다. 누군가의 리뷰에서 액자형 구조를 띈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같다. 누구나 그렇지만 리뷰를 적기 전에 머리 속에서 책을 정리 해 봤다 전혀 정리가 안 된다.
여섯번째 꿈
지난 토요일 저녁 한 산장에 여섯 명의 사람이 모인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악마라는 닉 네임을 가진 이의 초대를 받은 실버해머의 멤버이다. 산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색함을 쫓기 위해 각자 가지고 있는 방대한 양의 연쇄 살인 범에 대해 일광설을 나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각장에 방에 들어간 여섯 명은 한 여인의 비명에 의해 영수가 살해 당하는 것을 알게되고, 그 모습을 목격한 여자의 꿈에서 봤다는 말에 의해 세나를 의심하며 결박한다. 하지만 그녀마저 싸늘한 죽음을 맞이한다.
복수의 공식
1
한 남자가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틀어놓고 꼼짝 않고 누워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자신이 그 남자를 결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은 10살때 자신도 알지 못했던 간질을 앓게 되었고, 그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에게 자신을 지키는 것을 알려줬다고, 처음 미안하고 고맙던 마음이 자신의 병의 증거가 되어 슬펐다고,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강도가 와서 동생을 성폭행 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고 오랜동안 발병하지 않던 간질이 다시 발생했다고 말했다.
2
자신의 외모가 별로라는 것을 안 남자는 어릴 때 부터 공부에 대해 신경 쓰게 되고 남들도 부러워 할 학부를 가진 남자가 된다. 그런 그에게 이자벨 아자니를 닮은 미대생 여자 친구가 생겼다. 남들은 다 공부를 위해 연애를 미루지만 목표 의식을 다지기 위해 그는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 그러다 공원에서 괴한을 만나게 되고 그때 부터 잘 다져있던 탑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3
낯 모르는 남녀가 함께 모텔에 머물렀다. 아마 클럽에서 처음 만난 듯 하다. 남자가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에 대해 말을 하자고 하며 자신의 얘기를 한다. 자신은 킬러고 그러기 위해서 복수의 대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는 연습을 한다고, 그러자 파트너였던 여인이 입을 연다. 자신에게 쌍둥이 남 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왔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렸다.
4
한 여인이 여행을 왔다. 그녀는 시골 길을 걸으며 보바리 부인과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헷갈려 하는 중이다. 그러다 나비를 보게되고, 나비부인을 좋아한다고 판단한 남편의 미스 사건을 떠올리다 예전 남자를 떠올린다. 자신에게는 체온을 0.5도 올릴 남자가 필요했지만 조건만 맞았던 옛 남자를 어떻게 떼어 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사건이 발생한다. 치한이 나타나 그들의 사이를 망친 것이다. 그녀는 치한이 나타나자 오히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해였다.
5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한탄 중이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좋아했던 고모가 심어 놓은 잣나무가 벼락을 맞는다. 그 후부터 자신의 인생은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분명 뭐가 잘 못 됐다고 판단한 그는 점 집을 찾아간다. 그랬더니 죽은 놈이 찾아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게 헛 소리만이 아니였다. 자신의 사주는 바로 부모님이 애지중지 했던 첫 째가 낳은지 한 달이 안 되 죽은 이후 출생 신고를 자신이 이은 것이다.
파이
M은 마술사에 의해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마술을 체험하고 혼자 관람차를 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하루를 죽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전화 그가 맨번 반복되는 전화에 큰 마음을 먹고 무슨 소리냐고 따져 물으면 전화는 어김없이 끊어진다. 그에 대해 생각을 하던 M은 작은 술집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달의 여신을 닮은 여인을 만난다. 모든 남자가 침을 흘렸고, 자신도 그러했다. 그러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단념하고 있는 M에게 그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M과 그 여인은 함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M에게 여인이 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며 M에게 주인공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그 말에 M은 하루라고 말하고 그때 부터 하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루는 빈 집 떨이 범이다 그런 흔한 빈 집 떨이 범은 아니고 자신의 물건과 상대 방의 물건을 맞 바꾸는 그런 일련의 행사 같은 그런 일을 한다. 그러다 안경을 맞추러 간 그는 안경사의 집을 떨기로 했다. 그 곳에서 그는 샛강 모텔 314호 키를 놓아두고 니콘 카메라를 가져온다. 잘 쓰지 않는지 그 카메라는 흡집이 많다. 잘 해결 됐다고 생각한 하루는 집에서 잠을 자다 꿈을 꾼다. 안경사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악몽을 그래서 안경사에 집에 찾아간 그는 안경사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아마 이 책의 작가인 듯하다. 그는 망막 박리에 걸리기 전 도서관에 갔다가 자신이 데려온 송충이에 의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미스테리 클럽 Q의 제 1권. 왠지 눈길을 끄는 제목에 덥석 집은 책은 한 여자와 형사가 취조하는 장면부터 나온다. 그 형사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술을 조금 마시고 운전하던 중 남자를 치었고, 그 남자의 요구에 따라 그의 집에 가게된다. 의문을 품은 형사는 왜 그를 따라 갔냐고 다그쳤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몰랐냐는 말에 그녀는 자신의 잘 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무턱대고 밀쳐낼 상황이 아니였다는 설명을 한다. 그 정도 읽은 남자는 책을 대출하려고 하지만 하루코의 발이라는 책을 반납하지 않았다는 말에 다른 책에 살포시 책을 숨겨둔다. 그 이후 망막 박리 수술 때문에 그는 암흑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도서관에 찾았지만 그 책은 찾을 수 없었다.
혼돈. 이 책을 읽지않은 사람은 어찌 끝 날 지 알 수 없는 혼돈. 폐쇄 미로에 갖혀 버린 생쥐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처음 이야기인 여섯번째의 꿈에 나왔던 그들의 인생군상이 그대로 다음 챕터에 반영 되었고, 유일하게 반영 되지 않았던 인물 또한 파이라는 챕터에 오롯이 들어 가있다. 이어 질 것 같지 않던 사건도 이어지고 반복 되어 어느 것이 주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세심하고 날이 서있는 필력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