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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 사사키 도시나오 / 이연 / 아카넷] 신문과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대중매체)는 그 역할과 영향력으로 인해서 막강한 권력을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신문에 기사가 나고 방송에 소개가 되면 그것은 곧 정답이고 최선,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매스미디어의 횡포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거기엔 사회의 다변화(자유)와 인터넷(IT)이라는 소통도구가 한 몫을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일부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일본은 2011년에 정보통신법 시행과 디지털방송 시작이라는 미디어변혁이 일어난다. 이와 맞물려 일본에서도 많은 신문사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되고, 공중파 텔레비전의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흐름에 맞춰본다면 우리나라도 2014년경이면 위와 같은 과정을 겪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의미하는 것은 신문과 텔레비전이 더 이상 닫힌 상태가 아닌 열린 상태가 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문과 방송의 여건이 급변할 것이고, 위기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와 같은 매스 미디어의 위기에 대해서 우리는 그 사례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의 몰락은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는 일본의 경우를 분석하여, 지금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붕괴 과정(경제, 사업적 측면에서)을 소개하며 앞으로 신문과 텔레비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매스미디어 위기의 근본 원인은 1)더 이상 대중(mass, 매스)이 기존의 신문과 텔레비전을 가까이 하지 않고, 그래서 2)미디어의 영향력(파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왜 대중이 미디어에서 멀어졌는가. 저자는 미디어의 구조가 변했기 때문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저자가 제시하는 ‘3층모델’을 살펴보자.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 즉 콘텐츠가 한 층을 차지한다. 그 콘텐츠를 담고 있는 형태, 컨테이너(플랫폼)가 또 한 층. 콘텐츠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로, 컨베이어가 또 한 층이다. 이것을 신문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신문 기사(콘텐츠) - 종이 신문, 지면(컨테이너) - 신문 판매점(컨베이어) 이것은 기존의 구조다. 신문사가 기사를 생산해 내고(콘텐츠), 그것을 종이 신문으로 제작해서(컨테이너), 신문 배급소나 가판대에서 판매(컨베이어)하는 형식을 띄었다. 신문사가 3개의 층을 모두 지배하기 때문에 막대한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었고 대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종이 신문은 발행부수가 점점 줄고 있다. 다른 경로를 통해서 신문의 내용이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 기사(콘텐츠) -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 daum 등(컨테이너) - 인터넷(컨베이어) 신문사의 광고 수입은 신문사 경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컨테이너와 컨베이어를 다른 곳에 빼앗긴 신문사는 예전만큼 광고를 수주할 수 없고, 그래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다. 이런 변화 속에 일부 신문사들이 후발주자로 컨테이너(자사의 사이트와 유료화)와 컨베이어 부분에 뛰어들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번엔 텔레비전의 사정을 살펴보자. 텔레비전의 3층모델은 다음과 같다. 방송 프로그램, 동영상(콘텐츠) - 텔레비전(컨테이너) - 지상파, 위성방송, CATV(컨베이어) 이것은 기존 방송국의 3층모델로서, 방송국이 3개 층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IT 단말기의 발달은 신문과 마찬가지로 컨테이너와 컨베이어를 다른 사업자에게 넘겨주었다. 광고수입과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방송국도 뒤늦게 컨테이너와 컨베이어 사업에 뛰어들지만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신흥 사업자들에게는 역부족이다. 지금의 3층모델은 다음과 같다. 방송 프로그램, 동영상(콘텐츠) - 유튜브 등 사이트(컨테이너) - 인터넷(컨베이어) 유튜브와 구글, 야후(포털) 등은 기존의 신문과 텔레비전이 지배하고 있던 컨테이너를 빼앗았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신문과 텔레비전은 과거의 명성과 영향력을 내놓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매스미디어의 위기 요인을 다시 살펴보면, 1)대중의 소멸, 2)TV, 신문의 영향력 감소, 3) 신문, TV의 광고 효과 저조, 4)신문사, 방송국의 편성, 편집권 소멸, 5)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그룹 등장, 6)독자, 시청자의 이탈 등을 들 수 있다. 신문과 텔레비전의 위기는 정확히 말해서 신문사와 방송국의 사업 위기다. 그것은 다양한 컨테이너의 등장과 새로운 컨베이어의 등장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미 음악분야에서 3층모델의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CD와 음반판매점이 아이튠 같은 사이트와 인터넷 거래로 바뀐 것이 그 예다. 신문과 텔레비전의 뻣뻣한 자세가 그런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 매스미디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붕괴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서 신문과 텔레비전은 사업 모델을 변환해야 한다. 한 가지는 빼앗겼던 두 개의 층, 컨테이너와 컨베이어를 되찾아오는 일인데, 그것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는 철저히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서 컨테이너 사업자와 컨베이어 사업자에게 제공하면서 정보제공자(프로바이더)가 되는 것이다. 또 매스미디어의 규모를 미들미디어 또는 스몰미디어로 축소해서 변화에 맞서야 한다. 기존의 신문사는 인재를 살려서 미들미디어 분야로 파고들어 간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신문사는 정보취재(통신), 논평(블로그), 환경감시(신문)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여기에 정보지도를 제작하고 조직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 방송국은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 수준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 제공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 방송국과 신문사는 제작자, 기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전문성이 강화되면 콘텐츠의 수준은 높아지고 해당 미디어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일부 신문사가 시도했던 컨테이너 탈환은 실패로 돌아갔다. 만약 여기에서 성공했다면 신문은 제 2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컨테이너(플랫폼) 사업자가 가는 길은 가시밭길 이지만 열매는 크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는 열매는 작지만 견실한 길을 간다. 신문사가 갈 길은 플랫폼 사업이 아닌 콘텐츠 사업이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와 컨베이어는 이미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권한과 영역이 다른 사업자의 손에 넘어갔다. 콘텐츠 생산자는 신문과 텔레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분야에서 입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매스미디어라는 플랫폼(컨테이너)이 소멸하더라도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은 필요하며, 기업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광고의 역할과 사회 감시 기능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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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전반이 급속도로 다변화되면서 매스미디어가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 되었다. 특히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아왔던 신문과 텔레비전이 갈수록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기사를 쓴 지 심지어 몇 초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으니 제 아무리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종이신문을 배달한들 신문사가 독자들의 외면을 이겨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또 하나의 확실한 루트를 통해 흘러간 프로그램을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으니 시간맞춰 연속극이나 뉴스를 볼 필요가 없어진 오늘날 방송국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게 된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미디어 시장의 빅뱅은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해결책은 과연 없는 것인지에 주목했던 사사키 도시나오는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을 통해 일본의 신문사와 방송국의 종말론을 내세우며 그들에게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1. 매스미디어(신문/텔레비전) 구조의 변화
신문과 텔레비전은 대중을 위한 매체로써 3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구조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신문은 컨텐츠(신문기사)-컨테이너(신문지면)-컨베이어(판매점)로 이루어진다. 기자는 기사를 작성하고, 인쇄소는 지면을 제작하며, 판매점은 신문을 배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제작환경일뿐, 소셜매체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이러한 전형적인 구조는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컨베이어가 인터넷으로 바뀐 것이 그 출발점이다. 컨텐츠는 변함이 없지만 컨베이어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나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컨테이너는 종이신문에서 신문사 사이트, 온라인 뉴스, 검색엔진, 불특정 다수의 블로그로 다양하게 변모했다. 물론 아직도 종이신문은 여전히 일정한 매수를 자랑하며 판매되고 있지만 정보의 파급력이나 효과 면에서 새롭게 등장한 매체들에게 권력을 빼앗긴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컨텐츠(프로그램)-컨테이너(텔레비전)-컨베이어(지상파,위성방송) 시스템은 역시나 컨베이어가 변화하면서 신문의 경우와 똑같이 컨텐츠만 유지될 뿐이다. 컨테이너가 텔레비전에서 휴대폰, 게임기, 컴퓨터로 바뀌어 버렸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해 얼마든지 TV프로그램을 동영상처럼 여기며 편하게 즐길 수가 있으니 텔레비전 앞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가족과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소박한 즐거움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었다. 매스미디어가 창조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경로가 이렇게 다양해지면서 그들은 자연스레 미들미디어(야휴나 유튜브 등 혜성같이 등장한 새로운 컨테이너)에 완전히 무릎 꿇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과거의 방식대로 광고수입을 올릴 수가 없어졌고 결국 부실한 신문사나 방송국은 죄다 소멸되거나 흡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2. 변화에 대처하는 매스미디어와 그 한계
그러나 그들은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이미 굳어진 체제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신문사들은 판매부수를 유지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대형 마트에서 주부들에게 각종 경품을 제공하고 상품권이나 생활용품을 미끼로 신문구독을 선전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아파트나 주택을 방문하여 통사정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텔레비전은 또 어떠한가.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과 같은 진부한 설정을 거듭하여 시청자들의 외면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를 줄기차게 양산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뉴스와 같은 공익프로그램에 이용하는 등 한마디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는 것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바람직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 누구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더이상 구시대적인 사고로 변혁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 (저자는 사실상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는 해결책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수익을 거두고 있는 일본 매스미디어의 미온한 대처에 강력한 펀치 한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말하자면, 뜨거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분히 경고하는 듯한 인상으로 글을 전개하는 방식을 택한 것. 종말론을 내세우며 이같은 선언적 메시지로 그들이 각성할 것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3. 21세기에 신문과 텔레비전이 살아남는 법
명성을 날렸던 과거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아마 신문도, 텔레비전도 영원히 다시 부활하기는 힘들 것이다. 종이신문의 위력을 다시 드높이기 위한 것처럼 진부한 사고로는 절대로 그들의 위상을 되찾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종이신문을 즐겨 읽지 않으며 본방시간에 맞춰 TV프로그램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스미디어의 수입을 넘겨받은 미들미디어가 참신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그들이 여전히 판매와 홍보에 집착하여 컨테이너를 빼앗으려는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미디어의 본래적 기능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제 아무리 각종 업체들이 경로를 넓히고 전달방식을 다양하게 만든다고 해도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미디어는 여전히 신문과 텔레비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극적인 기사나 단순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그것을 편집하고 전시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면, 이제 매스미디어는 진정한 컨텐츠 제작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
같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전문적이고 독창적인 수준으로 새롭게 쓴 기사나 프로그램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환영받을 수 밖에 없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작금에 창조적인 컨텐츠가 조명되고 각광받는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기까지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고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기에 지금껏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미디어가 원래 해야하는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낸다면 설령 그것이 유료서비스라고 해도 사람들은 기꺼이 볼 것이다. 또한 그것을 전파하고 연결하는 중간매체들이 다시 그들의 판권을 따내기 위해 자세를 낮출 지도 모를 일이다. 물이 없는 강이나 바다란 있을 수 없듯, 컨텐츠가 없는 매체들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강이나 바다가 아무리 드넓고 멋있어도 물이 더럽다면 사람들은 결국 깨끗한 물을 찾으러 나설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빠른 속도로 매체가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이제는 매스미디어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각자 의미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화한다. 그렇다면 매체의 종류나 홍보의 영향력 못지 않게 정보의 원천이 다시 중요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들이 진부한 컨텐츠를 계속 양산해 그것을 지배하는 몇몇 매체들에 휘둘리는 것은 자명한 결과라는 것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도 정보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할 것이다. 사사키 도시나오가 언급하고 있는 일본의 신문사와 방송국들은 지금 종편과 지상파, 온라인 사업까지 진출한 복합 미디어 기업이지만 종말을 논의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도 상황이 다르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책에서 경고하는 것들은 한국에서도 대단히 의미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 당한다는 어느 방송프로그램 멘트가 피부에 와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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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방송등의 일부에서 종사했던 내게 있어 이책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거대 방송집단과 (웃기게도 우리회사는 거대 방송집단의 자회사이다.) 거대 신문사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바탕으로 사회의 여론과 권력의 중심에 서있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이책은 그러한 매스미디어의 종말을 고하고 있다.
해당 업계에서 기자와 집필을 계속해온 저자의 통찰력(?)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먼저 신문의 예를 들자면, 더 이상 사람들은 주요 일간지를 읽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며 공짜로 뿌려지는 무가지를 들고 출근을 하고 업무 중간 중간에 인터넷을 통한 주요 제목을 중심으로 한 기사의 읽기가 아마 뉴스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로 인해 신문을 통한 광고수입을 줄어들고 있고 거대 신문사 조직을 유지하기가 점점더 어려워진다. 물론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보고자 자체적인 플랫폼과 유료 전자신문의 시장을 개척해보려하고 있지만 저자가 보는 미래는 암담하다.
방송 또한 세가지의 시프트(place, time, style) 가 이미 진행되어 더이상 시청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보기 위해 집안 거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티비 앞에 모일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방송은 바보상자를 넘어서 자신이 바보가 되고 싶을때 잠깐 잠깐 보는 그런 매체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로 인해 시청률조사를 이용한 방송광고의 매력도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라 할수 있다.
위의 신문과 방송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매스미디어가 살아남기 힘들다면 앞으로는 어떤 매체가 큰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제 대중매체(mass media)가 소중(personal media)나 분중(middle media)로 변화되고 있고 그리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전체 국민을 위한 신문과 티비가 아닌 특정 영역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한 그러한 매체 중심으로 타켓팅이 된 그러한 정보가 필요하단 얘기다.
그리고 또하나 이제는 방송이나 전송방식등이 문제가 아닌 컨텐츠 중심의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서 그러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상당수의 수익을 챙기겠지만 그래도 방송과 신문이 살아 남을수 있는 방식은 양질의 컨텐츠(신문의 경우는 양질의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방송과 신문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며 그들이 가진 절대 권력에 만족하며 사람들을 통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펼치지 않는다면 멀지않은 미래에 지금의 방송과 신문은 사라질 것이라는 논거를 펴고 있다.
이책의 또다른 읽을 거리는 한국의 실정에 맞게 더해진 보론부분이다. 이책의 저자가 일본인인 관계로 일본의 예에 맞추어 쓰여진 감이 있다. 이를 보충하고 한국의 현실을 더 잘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모처럼 만에 이 업계에 있으면서도 그냥 흐르는 대로 안일하게 살고 있었던 내게 통찰의 힘과 시대의 흐름을 읽게 해준 책을 만난듯 하여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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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제 돈 다 지불하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면서 게이트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스포츠 신문을 집어들거나 사우나에서 지겨우니 말라버린 신문지 펼쳐들고 특이할 것도 없는 신문 내용 보면서 시간떼우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옷장 정리하면서 습기 방지용으로 깔거나 젖은 신발 말리기위해 신발 속에 구겨넣기도 하고 아이들 마음껏 낙서하거나 찢기 놀이하는 용도로 딱이다. 혹은 시장에서 국수 주문하면 쟁반을 머리에 이거나 양손으로 받쳐들고 가면 먼지가 묻을 수 있어 덮고가기에 제격이다. 이처럼 신문은 정보의 전달이라는 본래의 용도보다 다른 용도에 더 충실해왔던 것 같다.
그렇다면 흔히 텔레비전이라는 콩글리쉬로 불리는 TV는 어떻한가? 중3, 혹은 고3 수험생들에게 TV는 시간잡아먹는 바보상자이니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며 심지어는 부셔버리라고 까지 말을 한다. 근데 정작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집에 가셔서 아무생각없이 9시 뉴스를 시청하시지는 않으신지? 한시간 빠른 8시 뉴스, 9시에 하는 정규뉴스 그리고 마감뉴스...별다를 것이 없다. 똑같은 내용에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다. 그냥 뉴스를 전달하기에는 차별성이 없어보이는지 재미있는 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희안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시청자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TV드라마도 왠만해서는 시청자들을 유인할 수 없어서 남녀 배우가 불필요하게 신체를 노출을 하는가 하면 사극이라는 이름을 빌려 역사를 각색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한다. 역시나 인기몰이를 위해서인지 남녀 사랑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과거에 88올림픽이 한창 일때 우리는 TV나 신문 말고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활약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터미널 근처나 심지어는 가전제품 대리점 근처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나오는 경기를 지켜보느라 만원일때가 많았다. 요즘은 대부분 핸드폰으로 DMB 방송을 보거나 인터넷 다시보기 등으로 느긋하게 시청을 하고 있다. 굳이 TV를 보지 않아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정보를 접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망할놈의 핸드폰이나 인터넷(포털사이트나 SNS) 때문에 신문이나 TV가 고전을 면치못하고 심지어 위기설까지 나오는 것일까? 글쎄, 자업자득이라고나 해야할까? 진작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시청자나 소비자의 입장에 섰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너무 무감각 했던 것은 아닐까? 소비자들이 똑똑해지다보니 신문이나 TV를 맹신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례로 지역신문들을 보면 내용이 거의 없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접했던 정보를 다시 보는 것인데 별다른 차이가 없어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로 둔갑하여 아이들의 장난감 소품으로 전략해버리기 일수이다. TV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집에서는 지상파 방송은 아예 이용하지 않기도 하는데 시간대에 맞추어서 TV를 보아야만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예전에(20년쯤 전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프로가 할 때에는 동네 슈퍼에 손님이 없는 것은 물론이며 길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시청자의 의식 수준도 높아진만큼 다양한 장르의 수준높은 프로그램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소멸되고 있는 것이 신문과 TV밖에 없을까? 책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보다 많은 종류의 책들이 쏟아져나온다. 물론 그만큼 알아야될 지식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인 것도 원인중 하나이지만 너나 할 것없이 책을 펴내기 때문인 것이다. 신문이나 TV가 소멸된다며 대책을 논할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영 읽는 것이 찜찜하다. 생소한 야후제팬이니 NHK는 와닿지 않을 뿐더라 연봉이 400만엔이라고 하면 은행홈페이지나 포털에서 한화로 환산해서 읽어야 하는 것인가? 번역을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옮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게 각색하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다간 책의 머리말과 보론만 읽고 중요한 본문은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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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신문방송쪽은 욕만했지, 제대로 아는건 하나도 없었다. TV 광고를 보면서 물건값이나 올리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엄마와 매일 채널 다툼을 하기도 했고, 정치와 엮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신뢰성없는 정보들이라 생각했고, 수신료 인상 소리에 쯔쯔쯔 혀를 차기도 했다. 신문보라면서 현금봉투 찔러주는 아저씨들이 불쌍하기도했고, 저래서 남는게 있나 했고, 무료 조간신문들 보며 어르신들 폐지모으기 쉽겠군이란 생각했었고, 딱지접고, 추울때 덮고 자기엔 최고란 생각도 했다.
그러나 좋은점도 많았다. TV에서 툰드라, 법정스님,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주면 재밌게 봤었고, 동행이나, 승가원 천사들, 풀빵엄마를 보며 같이 울기도 했다. 책소개 프로그램을 보며 책을 사기도 했고, EBS를 보며 학원도 과외도 없는 우리마을에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 신문에 실린 논설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우기도 했고, 이신문 저신문 비교해가며, 한가지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사고를 할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신문과 텔레비전의 좋은점들도 아주많았다.
그런데 신문과 텔레비전의 소멸이라니.. 이게 무슨말인가? 이 책은 저자가 일본인 이기때문에 일본과 관련된 미디어시장의 위험성에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일본도 미국을 따라가기 때문에 곧 미국의 미디어 시장 붕괴와 위험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은 잠잠한 한국의 미디어시장 위험성을 경고하는것 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인터넷 시장이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손쉽게 앉은자리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본방사수를 하지 않고, 활자신문을 읽지 않아도 된다. 다시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보거나, 신문도 인터넷이되는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무료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것 처럼 말이다.
그러니 광고수익으로 살아가는 미디어가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시청률을 통해 기업은 광고비를 결정하고 시청연령같은걸 고려해서 소비자 욕구에 따른 적절한 광고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의 욕구는 다양해져서 한가지 광고로만 만족될 수 없고, 더 이상 시청률이 믿을만한게 아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광고에 그런게 떴다. 전국의 XXX 이름을 가진 고객님이 주문한 물건들, 혹은 특정 연령대나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잘팔린 물건들이라는게 뜬다. 그런걸 보면 인터넷은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똑똑한 인터넷 앞에 우리의 미디어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물론 판매부수로 영향력의 정도를 따질게 아니라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부수만 찍고 인터넷과 매개해서 다른 시장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해결책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차별화를 두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의 신문과 텔레비전은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역사의 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가족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도 했고, 일상 생활의 대화 소잿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미디어가 사라진다면 많이 섭섭할것이다. 역기능도 많다지만, 순기능도 많은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좋아하던 프로그램인 김혜수의 W가 종영되고, TV 책을 말하다도 종영됐다. 그후로 TV를 잘보지 않았는데,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바보들이 보는 상자가 아닌 바보들이 나오는 상자가 아닌 텔레비전을 만들기 위해선 신중해야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지금도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영되고 있지만..
우리가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들이 결국은 매스미디어에서 비롯된다. 인터넷 정보들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신문이 없어진다면, 텔레비전이 없어진다면 과연 그때도 인터넷은 옳은 정보가 넘쳐날까? 단순히 정보의 홍수만 만들진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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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mass media)는 신문,잡지,영화,텔레비전처럼 많은 사람에게 대량으로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를 일컫는다.신문의 원시적 형태는 로마시대의 <악타 디우르나 >이다. 1609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주간신문인 <렐라치온 >과 <아비소 >가 나왔고, 1935년 영국의 쉡베르그가 텔레비젼 시스템 개발했다.1600년전 카타로그가 잡지의 기원이며,세계 최초의 영화는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열차 도착’이다.추적해보면 매스미디어의 등장은 그렇게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매스미디어는 인류문명을 상당히 빠르게 많이 진보시켰다.하지만 개인의 소외화 현상과 정보의 홍수화,부와 권력의 편중현상등 부정적인 면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인류문명을 집어삼킬듯 위세를 떨쳤던 매스미디어도 인터넷의 보급으로 존폐의 기로에 섰다.세계 최초의 컴퓨터는1642년 파스칼에 의해 개발된 것을 보면 그 기원은 매스미디어와 비슷하다. 매스미디어의 위기론은 1800년대부터 이미 시작됐지만 2000년대에 와서 그 정체를 드러냈다.2011년 현재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빅뱅은 시작됐다.블로그로 대변되는 미들미디어가 급속도로 팽창하도록 매스미디어라는 공룡은 드라이아이스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감지했다.그래서 매스미디어의 앞날은 혹독하다. 이제 권력은 매스미디어에서 미들미디어로 옮겨가고 있다.신문과 텔레비젼이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동안 양질의 콘텐츠는 인터넷으로 이동을 했고,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컨테이너의 역할을 거머쥐었다."무료로 우유를 마실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소를 사려고 생각한단 말인가?".(P120) 매스미디어의 소멸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든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는 한때 일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했고,IT업계를 10년동안 취재했다.그는 매스미디어의 소멸을 매스미디어 환경의 자업자득과 콘텐츠,컨테이너,컨베이어 3계층의 변화라는 사회구조적인 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는 현재 미국과 일본의 매스미디어위기를 주목하여,매스미디어의 소멸을 예고하는 현상을 분석하고,매스미디어가 자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텔레비젼은 스마트TV라는 앞날이 있지만,신문은 현재 대안이 없다.저자는 자신이 몸담았던 신문의 붕괴를 보는 것보다는 화석화를 지켜봐야 하는 복잡한 마음을 담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신문이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일본에서도 신문은 딜레마(dilemma)에 빠졌다.우리나라 역시 불보듯 뻔하다.우리나라의 신문과 텔레비젼도 화석화 되지 않으려면 딜레마적 상황을, 패러독스(paradox )상황으로 대처하는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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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 제목이었다. 총 4장
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금 우리의 매스미디어가 처해있는 현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하며 설명하고 있다.
‘나는 얼마나 자주, 우리집으로 배달되는 신문들을 보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TV시청에 할애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그동안 내가 대답하기를 꺼렸던 이유는 배달되는 신문은 제목만 읽으며 종
이를 넘기곤 했었고, TV시청은 분명 독이 되는 소재로 여기며 기피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인터넷은 얼마나 사용하나’
이미 필수품이 되어버린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 어쩌면 나는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통한 신문기사는 분명 종이신문
보다 내 눈에 띄었고, 세상의 소식들을 더 이상 신문이 아닌 인터넷으로 알 수 있게 되었
다. 또, 정해진 시청시간이 있는 TV보다는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며
편하게 시청할 수 있는 인터넷 동영상사이트를 더 자주 이용한다. 이는 분명 내가 너무나
도 잘 느끼고 있는 매스미디어 소멸의 현실이며, 이 책에서는 그 소멸에 대해 심도있게 다
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책에서 눈에 띄는 문구는 ‘3C’이다. 예전에는 하나의 신문사에서 콘텐츠, 컨테이
너, 컨베이어의 세가지 역할을 모두 했다면, 지금은 신문사의 역할이 굉장히 많이 축소되
고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편집권이 빼앗긴 신
문사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없다. 실제로 신문에서 중요한 기사가 인터넷에서는 구석에 게
재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종이미디어의 현실이 이리도 각박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신문사가 인터넷신문에 비해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독자층 확보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기존 독자층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신문사도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셈이다.
젊은 10대 20대층을 위한 기사는, 갓 탄생한 뉴미디어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
나, 보기드문 신문사의 독자 타깃팅 성공사례도 있다. R25를 컨테이너로 설정해 무료 인쇄
물 배부를 통해 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사례이다.
이 책의 제목들은 정말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단순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시대
에서 벗어나, 글로 기록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제는 그것이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로 진
화한다. 신문사가 어떤 방향을 취하고 있는지, 방송사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 정확히 짚
어주고 있다.
신문과 텔레비전의 소멸을 읽고, 발전하는 뉴미디어의 행보에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무엇
보다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던 형형색색의 텔레비전, 종이신문을 이용해 했던 어린시
절의 다양한 활동들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또, 머지않아 지금의 뉴미디어도 곧 과거의
미디어로 변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미디어시장의 빅뱅,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요동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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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 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스마트 폰으로 신문을 보거나 뉴스, 드라마, 영화, 스포츠 방송 등을 보는 것이다. 예전처럼 큰 신문을 반으로 접어가며 보거나, 옆사람 신문을 힐끔거리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언제든지 찾아서 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 공급자가 제공하는 일방향적인 정보를 수용해야만 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특성은 시대에 뒤쳐진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과 텔레비전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정보, 즉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나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제는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온라인에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자신들이 누린 독점적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며,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인다. 지은이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단순히 신문과 텔레비전의 비중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멸해 버릴 것이라며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다소 과격한 주장이긴 하지만 지은이의 주장 자체가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어서 따로 신문을 구독하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실시간 방송을 보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은이는 4장에 걸쳐서 신문과 텔레비전이 붕괴되는 현실을 알아보고, 현재 미디어는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돌파구는 없는지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먼저 1장 ‘매스 시대는 끝났다’ 에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매스미디어 붕괴는 매스미디어의 ‘매스(mass, 대중)’가 소멸하기 시작하였고, 미디어의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는 철저하게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앞으로는 기사 그 자체인 콘텐츠(Content), 그 기사를 운반하는 용기인 컨테이너(Container), 컨테이너를 배달해주는 시스템인 컨베이어(Conveyer) 중 컨테이너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2장 ‘신문의 패배’에서는 신문사 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장밋빛 시절에 머물러 있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며, 신문사의 주 수입원이었던 광고는 이제 크레이스리스트와 Shufoo!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무료광고 등으로 인해 점점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고, 매스미디어에서 미들미디어로 시장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포털사이트의 급성장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편집권이나 편성권을 위협하는 정도에 이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제는 멸망 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3장 ‘텔레비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에서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의 경우도 매스의 붕괴와 미들미디어의 대두로 텔레비전의 광고효과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마네키 TV' 소송, 지역 방송, 밥 딜런의 부활과 같은 사례들을 곁들여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텔레비전 시장을 살펴보고, 텔레비전이 맞고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4장 “벼랑 끝 미디어 전쟁”에서는 지금 현재의 상황이라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게 남겨진 선택은 두 가지, 즉 플랫폼이 되든지 아니면 콘텐츠 제공자로 남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나 양질의 오락, 그리고 국민으로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뉴스에 확실히 접할 수 있는 미디어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 후기와 역자 후기, 그리고 ‘신문의 미래는 콘텐츠와 전문화이다’, ‘종말론 시대의 한국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제목으로 보론이 실려있다. 책 본문 만큼이나 알찬 내용들이어서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글들이다. 짧은 글이지만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신문과 텔레비전 시장에 대해서 써놓고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다. 지은이의 이야기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 시대가 가져온 구조적인 변화나 환경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매스미디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저 나온 것은 아니다. 붕괴되기 전에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공룡처럼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난 신문과 텔레비전 조직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화석이 될 운명이다. 화석이 되기 전에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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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도 전에 나는 신문 한부 보라고 집에 찾아온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 지국장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다 보고 있어요.” 그 때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속도의 광랜이 아니라 누르고 한숨 자고 일어나야 하는 모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데 과연 신문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데 살아남았다. 책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와 그에 반응하는 대중들에 의해 곧 이 거대 매체들이 소멸될 것이라고 아주 공격적으로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가 겨냥한 일본과 우리나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물론 그것이 미국의 뒤를 이어가는 일본처럼 우리도 몇 년 후에 똑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양대 거산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텔레비전 쪽에서는 일본보다는 아직까지 우리의 상황이 더 좋아보이기는 하다.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어 전세계에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이쪽에 들어가고 있는 돈들이 많아 보이고 그것은 계속 그러한 컨텐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들은 요즘 종편 방송국 티켓을 따내서 따로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안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뉴스의 편집권은 이미 포털이 쥐고 있다. 편집권은 권위를 상징하는데 신문사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뭐 그동안 오만방자하게 세상 모든 지위를 누려왔으니 이제 좀 내려놓는 것도 필요해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포털로 넘어간 뉴스의 수준이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저속하기 그지없다. 클릭을 노리는 그 센세이션한 헤드라인들이란...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뉴스들이 도배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으로 건너온 텔레비전은 UCC라는 이름으로 끊이없이 해체되고 복제된다. 문화비평가 제임슨 프레드릭의 말처럼 “원본은 없고 유사품만 복제하는 게” 대중문화의 속성이 기술의 발달 시대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신문과 텔레비전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텔레비전의 등장에도 영화가 여전히 건재하듯 이들도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신문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희망은 있어 보인다. 이것은 보론을 쓴 심영섭 교수의 말대로 복제만 하는 대중의 복제 대상이 될 원본을 아직은 이들이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생산해내는 아우라를 가진 작품들은 마땅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런면에서 아직까지는 우리나라텔레비전은 선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소재의 고갈과 열악한 제작비의 현실에서 무너져 내려버린 일본 텔레비전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소위 출생의 비밀과 불륜이라는 단순구조로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막장드라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도 곧 이런 현실이 닥치리라는 예언을 감히 해본다. 신문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저자의 말대로 신문은 편집권을 포털에 빼앗기고 심지어 광고도 빼앗겼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양한 종류의 무가지가 지하철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오프라인으로 발행되지 않는 수십개의 신문사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위 메이저 신문사에서 같이 취재도 못하겠다던 이 신문사의 힘은 이제 자신들을 무시했던 그 신문사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조작된 여론에 휘둘리기만 하는 대중들이 아니다. 수많은 똑똑한 개인들은 소셜 네트웤을 통해서 이들 신문사들을 또 감시하고 있다. 수많은 블로그와 개인 홈페이지들은 점점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 신문사는 일본의 그들처럼 현실이 깨닫지 못해보인다. 아무래도 높은 학력과 높은 경쟁률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나 싶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더해온다. 우리에게 이 매스 미디어는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이들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궁핍해질 것인가? 도대체 뭣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인력과 돈이 그곳에서 움직여야만 하는가 에 대한 답변, 이 거대 매스미디어가 생길 당시의 초심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시 정립하지 않는다면 이 공룡들이 없어진들 누구하나 촛불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디지털시대에 여전히 변하지 않는 지극히 아나로그적인 것. 그것은 사람 그 자체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셜미디어도 결국 사람의 그것을 자극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것인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나 적는 겉돌기만 해서는 결국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마음을 의지할만 한 곳으로 떠나고 말 것이란 이야기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러브스쿨”이 지금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진심을 파고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던 것들은 결국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 뻔하다. 구글의 괴짜 창립자들의 말처럼 “기술이 먼저다” 하는 것은 너무도 성급한 결론이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세월이 가고 세상은 변해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똑같다.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초의 힘.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대중들은 결국 그것을 주는 곳에 안착할 것이다. 또 아는가 그것이 신문이고 텔레비전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