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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라는 제목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아이들 때문에도, 직장 생활에도 너무도 마음을 쏟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아주 과하게. 한참 아이들을 키워야 해 교육비 때문에도, 그리고 다른 것들 때문에도 많은 걸 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 욕망들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저자가 책의 시작과 끝에 언급했던 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의 글을 보자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두 명의 '굶주는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와 리틀 헝거(Little Hunger). 리틀 헝거는 배를 채울 음식을 원하지만 모든 배고픈 자들의 으뜸인 그레이트 헝거는 의미에 굶주려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깊고 극심한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들에게 의미 없는 이생을 맡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때 또는 욕망하지 않을때 행복을 얻을수 있다는 말이다.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는 삶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 도의 수행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고 덜어내고 덜어내면 마침내 무위에 이른다. 무위에 이르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세상에 대한 진정한 숙달은 일들이 자연적인 순서로 이루어지도록 허락할 때 얻어진다. 간섭으로는 결코 얻어지지 않는다. ~~~~~ 78페이지 노자의 <도덕경> 중에서 육체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대하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두고 신의 손에 맡긴다는 저자의 말이다. 버려야 할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쌓아놓고 있는 욕심을 버리라는 말같아 뜨끔해진다. 이처럼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의 구절들을 많이 인용해서 얘기한다. 전부터 <도덕경>을 읽어보겠다고 리스트에 담아 놓았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서 구입하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저자의 이름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에 자기계발서들을 기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좀더 나이를 먹고 십년쯤 지난후 인생을 조금씩 정리해야 할 때 읽으면 더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도 더 가슴깊게 사무치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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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볍게 읽고 책을 덮었다. 그냥 예상했던 무언가가 없다고 생각되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조용히 책을 밀쳐두었다. 그리고 다른 책들과 놀다가 한켠에 밀어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성급하게 무언가를 얻으
려고 급하게 넘겼던 책장에서 읽지 않은 빈 공간이 생각났다. 글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 노자의 도덕경이라면 알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저자가 하려는
말을 가려버렸다. 마음을 닫고서 읽어간 것이다. 당연히 글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그저 인쇄된 활자만 눈 아프게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욕망에서 의미로 넘어가라는 말은 굉장히 상징적이면서
많은 의문을 던지게 한다. 대부분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도시의 힘든 삶을 벗어
나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세상에 마음을 주지도 말고
욕망을 무시하고 의미로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당부를 한다. 의미가 도시의 삶에서
의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 혹독한 경쟁이 난무하는 삶에서
어쩌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욕망마저 채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광고에서
이끄는대로 소비하고 삶을 계획하고 진정 자신에게 필요한 진실한 욕망은 알지도
못한다. 웨인 다이어의 삶속에서 일어났던 심경의 변화 삶의 변화된 모습들을
간간히 스케치하듯이 보여준다. 그는 어떻게 욕망을 중심으로 두고 살았던 삶에서
의미에 이르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고백한다.
자아가 이끄는대로 욕망이 요구하는 대로 축적하고 쟁취하고,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서는 대신 버리는 길을 택했을때 어떤 변화가 왔는지 그는 말해준다. 그 변화
가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워서 아침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일어난
다는 자랑을 한다. 동양의 도가사상을 서양의 과학적인 접근법에 의해서 면밀하게
통찰하고 나름대로의 해석법을 제시한 그의 이 글은 독특한 개성을 뿜어낸다. 솔직
한 그의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이 이 이론에 힘을 실어주면서 읽는 이의 궁금증과
만족감을 채워준다. 아, 이러한 사상에 근접한 삶이 이렇게 펼쳐지는구나라는 대리
만족과 선행학습을 통해 독자는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까하는 기대도 품게 된다.
그리고 솔직한 그의 내면의 대화를 엿보면서 내게도 그런 자아와의 다툼이 있는데
다르지 않구나하는 공감과 안도감을 하게 된다. 이것이 또한 그의 글의 매력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몸과 마음의 힘이 자연스럽게 빠지면서 비워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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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500만부가 판매된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나 역시 읽었다. 이런 타이틀이 붙는 이기주의자라면 불려도 좋을만큼 이기주의자라는 단어가 좋아지게 만드는 책이었는데, 그의 다음 책인 [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 역시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상에 마음주지 마라....니~!!10대나 20대엔 동의하지 못했을 제목이 사회에 나와 시련을 겪고 사람 무서운줄 알게 되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주지 않는 법이 다치지 않는 법임을 깨닫게 되지만 100% 마음 주지 않고 살 수 없는 현실에 슬퍼질 무렵 책은 내게 다가와 있었다. 다 지난 후에 깨달은 한가지 라고 말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내 인생은 아직 다 지난 후가 아니라는 거다. 아직은 지나고 있는 삶을 살고 있기에 누군가의 깨달음은 내게 당면과제처럼 오늘도 적용할 수 있는 팁이 되어 남는다. 웨인 다이어가 어린 시절 위탁부의 죽음을 통해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접하는 순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그 죽음이 그의 인생에 참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오리라는 것을.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삶에 대한 생각은 종이 한 장 차이, 동전의 양면 같은 차이만 지니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골똘이 생각해 보는 이는 적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웨인은 삶을 육신을 가진 여행으로 비유하며 악착같이 모았던 것들이 사실은 버려야 할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융의 심리학에 기초한 개념으로 필연적인 우연을 뜻하는 '공시성"이 그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만남을 낳아놓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아의 영향력이 터무니없고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때가 오는 것처럼 유턴을 해야하는 순간도 온다는 사실은 또 다른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이 자아가 우리를 잡아두고 있는 장소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책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새기면서 욕망이 아닌 행복을 향한 유턴을 시작했다. 많이 가지기 위한 욕심이나 꼭 가져야 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돌려 나 자체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는 일도 나 자신을 버리는 일도 아닌 나 자차로 돌아가는 일이기에 훨씬 자연스럽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 또한 배움이고 깨달음의 결과였다. 내게도 그와같이 공시성의 인연이 주어졌는데, 그의 강연을 듣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준 웨인 다이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인간인지라 욕심은 하루에도 열두번 생겨난다. 그때마다 자문해 본다.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인가. 나는 오늘도 불필요한 것들을 끌어안으며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내 곁에 두고 있진 않을까. 라고. 그러면 놓는 순간의 마음이 참으로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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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 저자를 알고 제목을 보면서 궁금증이 내 마음속에 밀려왔다. '다 지난 후에 깨달은 한 가지'라는 말이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다. '왜 세상에 마음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주지 말고 내가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책을 펼처보게 된다.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두번째는 현재이다.
마지막은 미래이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보여준 나의 멘토와 같은 '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 결국 세상에 마음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모두 주어버리는 것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아마도 저자 또한 모든 것을 다 주고 나서 줄 것이 없음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책을 작성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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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다이어의 책을 한번 읽어버고 싶었는데 서점에 가니 세상에 마음주지 마라 이 책이 눈에 뛰었답니다. 이 책의 화두는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로 시작이 되지요.. 묘한 감정이 생기면서 난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답니다.
『세상에 마음주지 마라』는 영화 '시프트'와 더불어 의미와 목적 없는 삶을 벗어나 의미와 목적으로 가득한 삶에 다가가는 여행이 어떤것잊지 알려주어요.
웨인 다이어는 어떻게 하면 의미와 목적 있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는 지를, 의미와 목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를 총 4장에 걸쳐 설명해주어요.
1장 어디에서 이 책에서 작가는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첫 입자였던 아주 작은 원형질 알갱이가 미래를 견인하는 힘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라고 답을 하지요. 그것은 태아로, 신갱아로, 유아로, 어린이로, 사춘기 소년으로, 청년과 장년에 이어 중년 남자로 그리고 70년 가까이 살아온 노인 으로 전환된 셈이다. 이 모든 전환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입자로 물리화한 뒤에 비로소 내가 된 태초의 에너지 속에 내제해 잇었다. 어떤것으로 전환한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서 없다가 지금 여기에 있는 셈이다. 우리는 모든 근본적으로 일시적인 육신을 지닌 영적의 존재다. 이거싱 우리의 본질, 우리의 근원이다. 라고 작가는 생각을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그런것 같기도 하네요. 난 엄마 뱃속에 있기전, 어디에 있었을까? 과연 작가말대로 어디에도 없다가 지금 여기에 내가 태어나고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그랫을지도 모르지요. 어디에도 없다가 엄마 뱃속에서 갑자기 생겻을수 도 잇을테니까 말이지요. 이렇듯 1장에서는 인간이 ‘정신’과 같은 무형의 장소에서 출발했으며, 우리의 근원에는 생과 사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영속적이며 영적인 존재가 있음을 설명해주어요.
잘못된 자아의 여섯 가지 거짓말 성인이 되면 더 크고 비싼 장난감이 성공을 대변한다. 그런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위태로워지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더 많은 것을 얻을 형편이 안 되거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곧 나의 소유물이라면 가진 것이 없을 때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나는 곧 내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욕심, 그중에서도 특히 ‘더 많이 하라’는 표현에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일으키는 현실적이고 문제적인 면을 따져보아야 한다. 3. 나는 곧 남이 생가하는 나다. 4. 나는 남과 다르다. 5. 나는 내가 잃은 것과 분리되어 있다. 6. 나는 신과 분리되어 있다.
마지막 3장과 4장은 우리가 향해야 할 새로운 인생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욕망’에서 우리의 근원, 즉 ‘의미’를 향해 돌아서면 내면의 역량이 커지고, 타인과의 유대를 느끼며, 비판이 줄고 이해와 용서가 늘어나게 됨을 보여주며 삶의 유턴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그릇된 자신을 버리고 모든 거짓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답니다.
“나는 평생 대단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눈부신 성공과 부의 축적, 사람들의 존경은 결코 자아실현의 결과물이 아니다. 의미와 목적이 충만한 삶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고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잇었고, 아~ 그거야~~ 하면서 이해를 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었답니다. 이 책에서는 이지적인 자아가 아니라 이타적인 자아의 한부분을 통해 의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합니다. 법정스임의 무소유,,, 이 책의 저자가 바라는 마음도 무소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면...'무엇일까? 두 아들이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나의 이름을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내 인생에서 난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삶을 ㅅ할아보고 싶네요, 나의 인생에서 의미 찾기 힘들지만 올 한해 찾아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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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많은 책을 써왔던 작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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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자이자 자기계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자이자 강연자이다. ![]() 그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그리고 "의미와 목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답이다. 책의 구성은 1장~4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우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인 것이다. ![]() ![]() 제 1 장: '어디에서' (From)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누구인가', '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죽음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온 곳을 아는 것은 '기억'이 하는 역할이며 우리는 바로 지금 존재의 근원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가지 않고는 우리의 영적인 기원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다. 우리의 진정한 근원은 침묵하고 갈등을 버리고 평화를 느끼는 것.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한 관용을 기억하는 것. ![]() ![]() 제 2 장 : 욕망에서 (Ambition) 욕망은 우리가 시작한 영적인 장소와 대립하는 자아를 갖게 되는 단계, 이때의 자아는 그릇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물, 성과, 명예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 제 3 장 : 어디로 (To) 우리가 마음의 어떤 장소에 도착하는 것. 의미와 목표의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아를 길들이는 방법을 설명한다. "어디로"는 전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향하게 되는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상징한다.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릇된 자신을 버리고 인생의 오후와 저녁으로 돌아 설때 모든 거짓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 ![]() 제 4 장 : 의미로 (Meaning)
그릇된 자아를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방식에 따라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향해 움직일 때, 모든 전환이 존재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된다. 새로운 태도는 좋은 기분을 가져다 준다. 의미는 자아의 욕망보다 우월하다.
이렇게 4장으로 나누어서 "의미와 목적으로 충만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데, 은유적인 표현들도 많이 있어서 약간은 명쾌하게 읽어 내려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이야기하듯이 "나는 평생 대단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경험담이말해 주듯이 성공과 욕망의 축적은 결코 자아실현의 결과로 나온 것들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자아의 욕망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지만 그래서 이룩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평생을 쌓아 올린 것들은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와 목적이 충만한 삶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에서 벗어나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고자 할 때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 따라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 그 자체"만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은 변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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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얇은 페이지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난해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의미 있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깊은 인생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세상살이에 고뇌하고 있다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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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이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루는 경우는 처음 보는 듯 하다. 하기사 삶을 살면서 수많은 타인들을 만나지만 정작 스쳐가는 그 인연들보다 나를 힘겹게 하는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삶 속 매번 반복되는 자잘한 실패나 고민으로 인한 상실감과 함께 나를 위로한다고 꺼낸 카드인 궁핍한 변명일것이다. 그만큼 나는 나 자신을 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나란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자아' 범주 밖의 일인 것이다. 자아..... 도대체 왜 이토록 곤고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다 지난 후에 깨달은 한가지 <세상에 마음주지 마라>책에 납득 가능한 답이 나와있다.
매우 철학적이면서 심오한 문장들로 인해 읽을때마다 이해 불가능하게 할까봐 덜컥 겁이 난 책^^ 한번더 소심함이 겉으로 살짝 드러날까 긴가민가 했는데... 의외로 문장의 흐름이 좋았고 저자가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게해주는 깔끔한 책이었다. 처음엔 북미에 사는 저자의 문체가 남미 브라질의 신비하고 오묘하면서 다분히 철학적인 '파울로 코엘료'와 어조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읽을수록 책에 빠져드는 속도와 흡입력은 분명한 차이인 것 같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읽어 본 나의 주관적인 견해에서 비교 자체가 발칙한데^^ 그럼에도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의미면에 파울로 코엘료의 글들은 또 나름 진중하고 깊이가 있는 글들 같다.
<세상에 마음주지 마라> 책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의 '자아' 에 대해 '날센 조금은 공격적인 어조'로
말하고 있다. 절대 호의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적이지는 않다.
책의 주된 흐름은 삶에서의 '나'인데, '나'에 대한 존재를 명확히 인식시켜준다. '내가 어디에서 왔느냐'란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또 나와 연결된 '신성'에 대한 물음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있는 '신'과 내 속에까지 '신'이 있으니 '신'과 나란히 있으라.... 그리고 늘 부딪히게 되는 그릇된 자아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경계한다. 이런 경계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 속 '자아'와 결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실천이지만 그릇된 자아와 욕망 속에서 이젠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 방향을 제시해준다. 바로 우리네 근원적인 고향과 물음으로 다시 '유턴'해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해답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때 우리가 보는 사물이 달라진다'
내면의 역량이 커지고 타인과의 유대를 느끼며, 도덕과 평화 생활의 질을 통해 동기를 얻고, 인생의 기적을 기대하며 명상 수행을 추구하며, 자신이 아름답고 정교한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비판이 줄고 이해와 용서가 늘어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은 사라질 것들, 손에 넣고 나면 한낱 환영에 불과한 것들을 얻으려고 발버둥치고 안달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 깨닫는 단계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단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외적인 영역에 있는것을 열망하다가 방향을 돌려 신에게서 그것들을 찾는다' (p170)
책에선 동양사상과 기독교사상, 불교와 이슬람교.... 종교적인 기운들이 감돈다, 특히 무위 자연을 주장하는 노자와 성경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옛 성현들의 지혜를 이해하고 마음에 담는것만큼 벅찰수가 있을까? '내려놓기'란 말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되고, 정작 그릇된 자아의 욕망으로부터 '내려놓기'를 하게되었을때 더 가까이 느끼게 되는 힘겨움과 부담감과 엄습하는 두려움과 당장 직면하게 될 문제들이 눈에서 보이기 시작할터... 이 험난한 산들도 다 지나가고.... 옛 본성의 자아가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기쁨으로 조우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겸손, 신뢰, 내려놓음' ... 난 아직 해당사항이 없는데... 내 자아가 아직 팔팔하게 살아있음에^^ 그럼에도 공감이 가고 기대를 하는것은 아직 내 삶의 진솔한 의미를 부여하는 여행이 시작되지 않았음이여...^^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삶의 우선순위와 진정한 내 자아를 향해 심하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을 만난 듯 싶다. 그래서일까? 아프리카 부시팬의 이야기가 많이 와닿는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진정 나를 나되게 하며, 그 속에 행복과 삶의 목적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두명의 '굶주린 자' 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와 리틀 헝커(Little Hunger). 리틀 헝거는 배를 채울 음식을 원하지만 모든 배고픈 자들의 으뜸인 그레이트 헝거는 의미에 굶주려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깊고 극심한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들에게 의미있는 인생을 맡기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영혼에 위안을 주는 것들 중에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큰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미다. 의미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자기 일에 의미를 찾는다면 행복해도 불행해도 괜찮다. 그는 만족을 느끼며, 신(神)안에서 외롭지 않다.
-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