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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를 보면 천하의 무림비급을 훔쳐보기 위해 소림사의 장경각에 침입하는 장면이 감초처럼 등장한다. 국내 무협작가라면 무엇보다 우리 해인사 장경각을 그런 천년 전부터 내려온 무림비급의 소장지로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천년의 나이를 지닌 팔만여 장의 대장경 목판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기울여야 할 때다.
대장경은 2500년 전 부처님이 했던 말씀들을 담은 큰 그릇이다. 고려대장경은 세 가지 판본을 통칭한 것이다. 1011년(고려 현종 2년)에 판각한 초조(初雕)대장경과 의천이 주창하여 판각한 속장경, 그리고 1251년에 완성된 현재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재조(再雕)대장경이 그것이다. 초조대장경의 저본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이고, 그 인쇄본은 현재 일본 교토 남선사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재조대장경은 초조대장경(국본)과 거란의 대장경(단본), 북송의 개보대장경(송본)을 정교하게 대조하고 교정하여 조성한 교정대장경으로, 조선 초기까지는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다.
대장경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0세기 목판대장경이 출현한 이후다. 이전에는 '일체경'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저자는 대장경과 삼장을 구별한다. 고려대장경에는 불교의 경율론 삼장에 속하지 않는 문헌들 가운데 인도와 서역에서 저술한 문헌 68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갈국의 왕 미란과 나선 비구의 토론을 기록한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 대표적이다. 남전불교에서는 『밀린다팡하』(밀린다왕의 질문)란 제목으로 전승된 문헌이다. 다른 종교의 문헌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금칠십론(金七十論)』과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은 소위 외도(外道)의 문헌들이다. 『금칠십론』은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수론종(數論宗), 상키야 학파의 문헌이고, 『승종십구의론』은 역시 육파철학의 하나인 승론종(勝論宗), 바이세시카 학파의 문헌이다.
재조대장경은 편역자를 표기할 때 개보장이나 초조본과는 달리, 편역이 이루어졌던 시대의 왕조 명, 편역자의 출신 지역, 그리고 이름을 나란히 병기하고 있다. 재조대장경 삼백여 명의 편역자 가운데 약 85% 정도에서 이런 규칙성이 나타난다. 가령 개보장에서는 '삼장법사 사나굴다역'이라고 한 데 비해, 재조대장경에서는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역'이라고 표기한다. 고려대장경의 편집자들이 편역자의 활동시기와 출신 지역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출신지역을 보면 강거국, 계빈국, 안식국, 오장국, 부남국, 남해 파릉국, 우전국, 황룡국 등 낯선 이름이 줄줄이다.
한문대장경의 스타 번역가는 구자국삼장 구마라집과 당삼장 현장이다. 구마라집은 『반야경』과 『대지도론』 등 중관 계열의 문헌을 주로 번역하여 이른바 삼론종이라는 종파를 개척한 이다. 반면에 현장은 유식 계통의 문헌에 밝아 훗날 법상종을 개창한다. 구마라집과 현장, 이 두 사람이 중원 불문의 양대문파를 개척한 원조들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하나조노대학 국제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한일 공동 고려초조대장경 디지털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인터넷으로 초조대장경본 이천여 권에 대한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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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은 방대한 불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는 ‘장(藏)’을 ‘그릇’이라고 하였다. 그릇 안에 어떤 물건을 담아 간직하듯 부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겠다. 부처가 처음 가르침을 베풀 때는 그 가르침을 문자라는 그릇으로 못하였고, 오로지 사람의 기억이라는 그릇 안에 담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그릇의 역할을 한 제자가 아난이다. 아난은 부처가 열반에 들 때까지 곁에서 온갖 수발을 들은 제자로 유명하다. 아난 개인의 기억 속에 있던 가르침은 가섭을 필두로 한 오백 나한 제자들의 기억의 그릇으로 옮겨지고, 그 많은 기억들은 문자라는 그릇으로, 또 세상 각지의 그릇으로 옮겨지면서 부처의 가르침은 양적, 질적으로 방대해졌다. 그렇게 방대하게 된 가르침, 즉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을 모으고 모아 목판이라는 그릇에 새겨 넣은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장경이다.
고려대장경이라고 하면 보통 해인사에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고려 현종 때 판각한 초조대장경과 의천이 주창하여 판각한 속장경, 그리고 현재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재조대장경을 합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이 침입해왔을 때 불력(佛力)으로 적을 물리쳐 나라를 보호하겠다는 기원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원하자 거란군이 물러났고, 마침내 불력으로 적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팔만대장경도 초조대장경이 그랬던 것처럼 불력을 몽골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해 당시 강화도에 퇴각해있던 최씨 무인정권에서 판각한 것이 지금까지 보전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장판각과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참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자랑이 과장이 되어서 마치 세계 최초의 대장경이고, 웅혼한 구양순체로서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씨체가 똑같고, 그 팔만 장이 넘는 판각 안에 오직 단 한 글자만의 오자만 있다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이며, 고려의 초조대장경은 그 개보장을 엎어놓고 똑 같이 베껴 새긴 것이며,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엎어놓고 다시 베낀 것이 사실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 동안 유일무이하고 세계 제일이라고 자긍심을 갖고 있던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 실제로는 모조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랑스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알자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 인징은 우리 대장경을 보고 ‘진미(盡美) 진선(盡善)한 만국(萬國)의 무쌍(無雙)’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당나라의 현장은 직접 천축, 즉 지금의 인도에까지 가서 수많은 불경을 가져와 한역(漢譯)을 주도하여 삼장법사로 이름이 알려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바로 현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오장법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 오장법사는 바로 대각국사 의천을 가리킨다. 의천은 왕자의 몸으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였고, 30세 무렵에 남송에 가서 수많은 불교 서적을 수집하여 돌아와 속장경이라고 알려진 교장(敎藏)을 판각한다. 초조대장경이 지금의 팔만대장경과 비슷한 규모였고, 의천의 교장이 또 그와 비슷한 규모였다고 하니 두 대장경을 보관하던 대구 부인사의 장경각은 아마도 어마어마한 규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몽골 침략군이 불을 질러 없애버렸으니 너무도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의천이 수집하고 출판한 덕분에 많은 불교 서적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하니 이는 또한 다행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 시대의 주인공 의천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때 불경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은 목판이었다면, 현대의 가장 좋은 그릇은 인터넷이다. 고려대장경은 이미 인터넷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대장경을 전자화한 수많은 노고가 이 책 속에 담겨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사실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대장경의 진실한 면목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의천이라는 인물을 새로 발견한 것 같아서 기뻤다. 올해가 고려대장경이 새겨지기 시작한지 천 년 째 되는 해라고 한다. 이 책이 참으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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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희 님의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은 고려의 ‘초조대장경’ 조성을 시작으로 했던 순간(1011)으로부터 천년이 되는 순간(2011)까지의 대장경의 의미와 방대한 역사를 밝힌 책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웠던 책들 중 하나이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자가 천하에 천하를 담는 대장경이란 큰 주제를 다루면서 거기에 천년의 역사를 함께 다루려는 어마어마한 내용의 분량을 한 책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노력은 놀랍다. 대장경을 포함한 불교 문헌들에 대한 박식함이 글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고 경전 사본 역사와 대장경 교정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대장경에 대한 애정과 이를 연구하고 알리고자하는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대장경에 대한 천년의 기억들을, 그리고 고려대장경의 자랑할 만한 큰 의미를 책으로 한국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어 감사한 마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대장경의 일반적인 의미와 그 의미를 설명한 후 목판인쇄술로 대장경을 필사하고 이에 대한 교정본출판에 이어 현대의 디지털 전산화 작업에 이르는 천년의 기억의 여정을 소개한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가 그릇이라고 표현하는 “장”은 대장경(大藏經)이라는 말 안에 있는 장(藏)이라는 글자 역시 그릇이라는 어원에서 비롯되었기에 대장경(大藏經)은 ‘큰 그릇 안에 담긴 큰 말씀들’을 말한다. 대장경은 경ㆍ률ㆍ논(經ㆍ律ㆍ論)의 삼장(三藏)과 법장을 포함한다. 한문 대장경의 도표에서 보여주듯이 고려의 초조대장경은 송의 개보장에 이어 두 번째일 정도로 빠른 문헌이다. 옛 선인들의 경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가치는 일본의 승려 인장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완전한, 만국에 비길 데가 없는 완전한 경본”이라고 극찬할 정도의 작품이기도 하다.(115쪽)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팔만대장경의 교정의 폭과 디지털 전산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경위와 의미를 설명한다. 팔만대장경의 전산회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미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듣게 되었다. 이제 전산화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팔만대장경의 교정의 특성들을 연구하는 긴 과제가 학자들에게 남겨져있다. 이 책을 통해서 생소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각국의 대장경과 불교문헌의 종류들을 맛배기로 엿볼 수 있었다. 일본 대정신수대장경안에 중국 당나라때의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 경전이 포함된 점은 동서양 경전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던 당대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무엇보다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한문대장경들이 전산화되어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보도 얻게 되어 기뻤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나서 몇가지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는다. 가장 먼저 대장경의 의미를 잘 아는 저자가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송나라 짝퉁이라는 표현으로 폄하하는 대목은 이해가 안된다. 짝퉁이란 진품을 모방하여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는 목적이다. 경전이란 전통을 최대한 보존하며 그 뜻을 전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송나라의 대장경을 베낀 것이 짝퉁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본다. 경전을 필사하는 작업이 원본을 복제하고 그 과정에서 수정과 첨가의 교정도 함께 수행하면서 원래의 말씀 혹은 원본과 가장 가까운 사본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대장경이 송의 이는 모방하여 제 2의 가짜 진품을 만들어 이것이 진짜인양 행세하려는 목적과는 분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경전을 다루고 사본학이 무엇인가를 아는 학자가 경전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명품 가방이나 시계 등의 모방에 경전 필사를 대비하면서 짝퉁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좀 경솔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책을 읽고 나서 이토록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홍보와 관심에 대해 한국정부에 대해 약간 실망스럽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고려대장경의 전산화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2백만 자 규모의 입력자료를 고려대장경연구소에 조건없이 기증한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를 생각해보면 고려대장경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고려의초조대장경은 우리나라에 없고 일본 교토의 남선사라는 사찰에 보관되어 있고 1960년대나 되어서야 한국학자들이 그 정체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은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승려 인징이 그토록 극찬한 그 대장경을 한국 국민들의 대부분은 이름 이외에 거의 모르고 있다. 이 것이 전산화되어 이제 그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만큼 많은 연구와 홍보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자랑스런 유산으로 그 내용이 공유되길 바란다.
장천하어천하 (천하를 천하에 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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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때 대장경이라고 하면 팔만대장경이라고 고려시대때 만들어지고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외우기만 하였던 기억이 난다 시험을 위한 문제로 취급하고 이 대장경이 얼마나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위대한것인지는 알고 싶지도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이 살아온 역사에 대한 관심이 드는것을 보면 삶이 고단하던지 아니면 진짜로 나이를 많이 먹기 시작하는것 같다
사실 대장경이 천년이 되었는지도 몰랐는데 요즘에 TV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신문에서도 나와서 그때부터 그렇게 오래된것이 있는데 왜 이제까지 몰랐지하는 무지에서 관심이 표명되었다. 그런데 책을 접하면서 참으로 누군가의 희생이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돈을 억만큼 준다고 몇 십년동안 그고생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할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전에는 신념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요즘에는 그런 강한 신념을 가진 분이 몇명이나 될까 손을 꼽아도 내 주위에는 거의없는 듯하다 너무 물질에 길들여져 있는 나자신을 책망하짐나 어쩔수 없다는 채념부터 나오지 참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고려 초조대장경을 비장(秘藏)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초조대장경이 일본의 한 사찰 수장고 안에 감춰진 채 오랜 세월 동안 그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남선사(南禪寺)라는 사찰이다. 바로 그 남선사의 비장(秘藏)에서 초조대장경의 일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산질되어 전하던 초조대장경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눈으로 봐야 가장중요한 진실에 접할 수 있다 요즘에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거기서과 진실을 사실에 입각하는것이 조작을 하는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유혹에 쉽싸이게 된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일을 하는데 역사학자들과 몇몇 고고학자들이 돈때문에 역사를 조작하고 힘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때 진실한 우리 천년 물이 그런 거짓된 유물과 함께 취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몸서리쳐진다.
참으로 귀중한 국보물을 잘 보존하고 계승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이해하면 노력하는 자세가 없이는 천년은 고사하고 100년도 지키지 못함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역사는 진실이라는 사실이 변함 없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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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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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은 천 년의 해를 여는 즈음에 만나게 되는 이 책, 이 안에 담긴 이야기들로 말미암아, 고려대장경이 아니었다면 영영 잊혀졌을 기억들, 그 천 년을 이어온 글자들과 더불어 천 년의 세월과 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꿈과 미래를 느껴본다. 그리고 더불어 앞으로의 억겁의 꿈같은 미래를 고려대장경, 그 장(藏)이라는 그릇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교과시간에 배웠던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의 모습을 기억해보면, 불교국가였던 고려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 불교를 더 흥하게 하기 위함과 불교국가로서의 위엄을 떨치기 위함. 그리고 국난을 불교의 힘으로 타개해보려하고자 '고려대장경'에 국가가 나서서 시행할정도의 의미를 두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합천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보존능력에 현재의 과학으로도 놀라울정도의 과학적인 보관법에 다시한번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2011년에는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이 초조대장경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재조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지 천 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것이다.
사실,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이 짝퉁이다'.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그 안에는 성경이 들어있다' 는 말들이 돌아다니기도 했었던것을 들은 기억은 있다. 하지만,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이 짝퉁이면 어떠랴. 하물며 그 안에 성경이 들어 있다한들 '그 천 년의 세월앞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사실은 사실대로, 거짓은 거짓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는가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을 했었지만,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이 확실한 증거와 함께 중국의 대장경을 베낀것이라고 하는것에는 다소나만 실망감이 현실로 다가오기도 했다. 굳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것은 귀를 막으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사실이 거짓이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스스로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저자인 오윤희님이 책에서 나타내었듯이 단순한 '재조대장경'이 아니라 '교정'이라는 가장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부분. 바로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이 '교정대장경'이기 때문이다. 교정을 하다 보면 미심쩍은 일도 생기고 선택이나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들도 생기기 마련이요. 최선의 선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차선을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 개선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개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 교정작업이다. 아무리 애를 쓰고 정성을 들여도 엉성한 문맥과 오자는 남기마련이다.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교정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 천 년 전 책을 만들던 사람들의 생각, 그들의 선택과 결단, 고밈ㄴ과 정성의 흔적을 찾아가는 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천 년을 맞이하는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에 대한 예의를 갖춘 책이었다고 밝혀두고 싶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기위해 믿음의 뿌리가 단단하고 그 마음이 소박하고 바르며 몸에 병의 고통이 없으며 늘 부지런히 정진하고 외우려는 마음을 갖추었으며 마음에 교만함이 없으며 정(定)과 혜(慧)를 성취하며 들은 것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능력을 갖추었던 아난이라는 사람이 다문장(多聞藏)의 역활을 수행했던 것처럼 또 다른 장(藏)의 모습인 대장경(大藏經)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었던 옛 사람들의 지혜와 신앙심,애국심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과 함께, 더 큰 그릇인 또 다른 장(藏)의 모습인 '소프트 파워'를 통하여서, 인간이 살고 있다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중에서 체력에 의존하는 개인의 생명과 개인의 체력이 아닌 100년 단위로 계산되는 국력을 중심으로 한 나라의 시간 그리고 1,000년 단위로 계산되는 국력을 넘어선 문화의 힘, 또는 종교의 힘인 '소프트 파워' 즉 천년만년 억겁의 영원의 삶을 살 수 있는 각각의 종교를 뛰어넘어 셋속에서 백 년도 못사는 인간들에게 만 년의 꿈을 줄 수 있는 종교를 초월한 '소프트 파워'의 힘을 느껴보며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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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우리의 역사 앞에 다시 한 번 나 스스로 겸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대장경에 대해 친숙함을 갖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지식 또한 전혀 없었다.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인 이 대장경에 아무런 감흥도 지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알아가는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운 생각도 함께 들었다. 대장경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듯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이제 대장경은 우리나라만의 자랑 거리라기보다는 세계인의 자랑거리요. 지켜야 할 유산인 것이다.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대장경은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대장경은 부처의 가르침이 담긴 문장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불교와 관련 한 정신과 사상 또한 함께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것이 더 위대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양성을 함께 포용하고, 한 데 모은 것이 이 대장경이기 때문이다. 이 책안에는 대장경을 만들기까지의 과정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대장경의 조판 배경, 조판 과정, 교장 과정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장인의 옆에서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가지고 있는 대장경에 대한 애정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이 대장경에 함께 푹 빠질 수 있게 만들었다. 대장경은 이제껏 천 년의 세월을 지나왔다. 그러는 동안 어쩌면 나와 같은 우민들에게는 의미 없는 천년이 되어 흘러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책을 통해 대장경은 다시 해석되고, 다시 천년을 흐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천년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깊게 음미하고 이해함으로써 대장경에 대한 나름의 정서적 반응과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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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큰 그릇의 대장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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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을 읽고 세계 3대 종교 중의 하나인 불교! 고타마 싯타르타(=석가모니)가 모든 영화를 박차고 나와서 수많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나서 돌아다니면서 불법을 전했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차별받고 어려웠던 민중들을 하나같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한 형제로 대했던 불법들이 널리 퍼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불법은 2형태로 나뉘어져 이웃 나라로 전파가 된다. 먼저 북방 불교(=대승 불교)는 네팔, 부탄 등을 통해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남방 불교(=소승 불교)는 스리랑카를 거쳐 타이,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등에 전해져서 오늘 날에도 많은 신도들이 섬기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으로부터 삼국 시대에 들어오게 되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호국 불교로서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들의 한마음으로 화합하는 모토로 삼게 되었고, 수많은 화려한 불교 문화유산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는 바로 고려로 이어져서 고려 시대 내내 국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특히도 외적의 침입 등을 바로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자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은 그대로 정성껏 불경을 새겨 만드는 대장경 판각 조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바로 그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진지 올해가 천년이 된다고 하니 이 세계 역사상 이런 인연과 전통이 얼마나 있는지 잘모르겠다. 우리들이 가끔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판각을 가서 보아도, 아니면 오래된 서원이나 각종 오래된 사찰이나 향교 등에 보관되어 있는 글씨를 새긴 판각들 보아도 솔직히 잘 알지 못한다. 그 유래나 글씨들을 바로 해설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천년을 이어온 고려대장경의 기록이 없다면 영원히 잊혀졌을 수많은 기억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천 년을 이어온 대장경에 새겨진 한 자 한 자의 글자들은 소중한 기억들이고 역사인 것이다. 동아시아 지식의 보고인 고려대장경의 천 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을 지낸 저자가 속시원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그 동안 약 20 여년 동안 대장경에 대한 공부를 해오면서 공부하고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밝혀놓고 있어 많은 느낌을 같이 공유할 수 있었다. 2,500년 불교의 역사, 글자 하나, 장이라는 글자, 광대한 기억의 바다를 흘러 다니던 글자 하나를 싸고돌던 생각들, 그런 생각들에 기대어 꿈꾸었던 일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력과 함께 자비의 인간상 확립에 노력하는 불교의 모습에 공감하면서 고려대장경 천 년을 맞아서 또 한 번 천 년 이후까지 이어가는 대장경의 역사가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불교의 역사와 흐름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