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글쎄. 이 나이에 또 결혼한다니 우습지 않을까. 난 그저 살고 싶을 뿐이야, 피파. 그건 내 권리야. 당신은 지난 몇 년간 날 매장해오고 있었어. 입안에서 흙이 씹힐 지경이야. 마치 당신이 내 죽음을 고대해온 것 같다고."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언제나 늙는 게 역겹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 나라고 예외겠어? 당신이 내게 연민을 느끼고 두려워한다는 걸 난 느꼈어. 당신은 말이지, 이미 내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어. 안 그런가? 좀 솔직해져보라고." "그래요, 난 당신이 늙어가는 게 두려워요. 죽어가는 게 두렵다고요. 누구나 그걸 두려워해요. 그게 정상 아닌가요?" "난 정상이고 싶지 않아. 살아 있는 동안 애도받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가 귀신인가? 난 살고 싶다고.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몰라. 당신도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단 말이야. 난 그냥 살아 있고 싶어. 나를 늙은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당신이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허브." 피파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늙었어요." (pp.327-328)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이 책을 읽으면서 두서 없이 떠올랐던 작품들이다. 이 책은 일정 부분 위의 작품들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글쎄... 적어도 내 생각에 이 작품에 대한 리뷰는 이 문장 하나면 족할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노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늙어간 게' 아니라 그냥 '늙었다'고 해야 할까?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의 쓸쓸한 정서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
이미 영화화됐다는데, 영화를 아직 안 봐서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만들 때 더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분량이 좀더 적었다면, 분산된 이야기들을 좀더 압축하고 집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측면에서 2시간 정도 분량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이런 소소한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덮을 만큼의 여운이 있다.
음...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역시 이 작품처럼 은퇴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무대인데... 한 노인이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 넣고 자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이 가장 극적으로 『에브리맨』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늙는다는 것의 두려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극한의(혹은 극단의) 외로움 같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장면이 쓸쓸하면서도 매우 충격적이었었는데, 레베카 밀러 역시 그렇다. 평가하고 분석하기 전에 어떤 먹먹함 같은 것이 먼저 밀려온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했던 필립 로스의 문장이 떠오르는 그런 기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노년뿐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가 그런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대학살 같은 것, 그게 레베카 밀러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
|
제목에 끌려 골랐지만 사실 책의 표지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
|
얼마 전까지 한창 사랑을 받았던 미드 <위기의 주부들>이 문득 생각났다.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주부들의 묘한 로맨스. 남자 한 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질투 작전이나 바람피는 주부나, 가정에 너무 완벽해 숨이 막히는 주부..... 이들의 공통점은 각기 다른 개성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누구도 겹치는 것 없이, 한자리에 모이면 이들은 하나의 자아가 된다.
약물 중독인 엄마의 모습에 쇼크를 받아 삐딱하게 나아간다. 극기야 선생님을 사랑하다 탈로나 집을 나가게 된다. 그렇게 험난한 인생을 겪으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 이런저런 경험들을 다 겪고나서야 겨우 자신을 뒤돌아보는 피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을 만나 결혼이라는 안정적 보금자리에 안착한다. 그렇게 화목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나 싶었는데 드디어 상처들이 터져나오기 시작.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몰라 허우적거린다.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피파.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한다.
마음과 생각의 차이, 그것은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즐기게 된 피파. 나이나 주변 시선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
|
엄마의 청춘에 대한 단상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브라보, 아빠의 청춘~ 하는 노래가 있다. 쉽게 말하면 고단한 일상 속에서 지친 아빠들이 청춘을 찾자는 가사인데, 들을 때마다 아빠의 청춘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주름도 없고, 머리도 검고,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을 아빠. 그 패기에 찬 모습은 어쩐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엄마의 청춘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될까. 남들에겐 온후하고 우아한 엄마에게도 천방지축 어쩔 줄 모르는 시절이 있었을까? 엄마의 약한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어쩌면 불편하기까지 한 우리에게 엄마의 청춘을 상상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려운 문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쉽사리 마음으로 상상이 되지 않는 지점. 거기에서 피파 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는 조금 미묘하다. 싸울 땐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는 듯이, 다시는 보기 싫다는 듯이 싸우면서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고 애틋한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렇게도 드라마틱하다. <엄마를 부탁해>, <친정 엄마> <엄마의 말뚝> 등의 드라마가 크게 공감을 얻고 롱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딸, 그 극단의 사이는 어째서 벌어지는걸까. 그리고 극단의 끝에 서 있는 두 여성의 삶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걸까.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엄마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읽고 싶다.
피파 리의 엄마는 약물 중독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뚱뚱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약을 먹었고, 언제나 약에 취해 살았다. 그런 어머니를 그저 반항심으로 바라보던 피파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하고, 쾌락에 이끌린 생활을 하게 된다. 계기는 물론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사랑이었다.
어머니가 된 피파는 어느 날 몽유병을 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완벽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힘써왔던 지난 날들의 자신은 결국 피파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개인 사이의 삶은 상충되고, 그 급격한 골짜기에서 피파는 길을 잃고 만다.
그 모습을 피파의 딸은 지켜본다. 유독 엄마의 사랑에 대해 질투심이 많았던 딸. 피파는 자신과 엄마의 관계가 다시 이어질까 딸을 조심하고 멀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를 지켜봐 주고, 이해해주는 이는 딸이다.
어쩌면 너무나 닮아 있기에 서로 멀리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녀관계가 서로 의지가 되는 것은 아이에서 소녀, 여인, 어머니로의 변화를 겪으며 느끼는 고유의 감정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손 맞잡는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관계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에 심리에 대해 어찌 이렇게까지 천착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놀라운 소설이다.
|
|
몇 주 동안 벼렸던 베란다 청소를 했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도 말끔히 청소를 하고 나니 어찌나 속이 개운하던지. 갑자기 내가 머물러 있는 이 공간이 무척 평안하게 느껴졌다. 책이 가득한 거실하며, 휑하지만 온전히 책을 볼 수 있는 안방, 심지어 먹을 게 없어 텅텅 빈 냉장고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주말이면 햇살 가득 들어온 거실에 누워 뒹굴 거리며 책을 보는 것이 최고의 여유로움으로 느껴지는 사실이 무척 감사하다. 이런 평안함이 무너져 버릴 거란 불안감 없이 이 공간에, 내 삶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으면 싶었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만족스러울 때,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걸로 비춰진다.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의 피파 리가 아마 그런 인물이 아닐까? 나이 차이는 나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편집자 남편, 잘 자라고 있는 쌍둥이 자녀, 그런 가정을 잘 돌보고 있는 피파 리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현재의 그녀는 무척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그녀가 반추하는 과거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그녀가 현재의 그녀와 동일한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판이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그녀가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는 큰 사건이 있었다. 그녀로 하여금 하나하나 타고 올라오는 기억은, 평탄하지 못했던 가정생활과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는 일까지 모두 펼쳐진다. 최근에 몽유병이 다시 도지면서 현재의 안락함과 안정감이 조금씩 무너져 아픈 과거까지 모두 떠올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 각성제에 시달리며 자신에게 집착하는 어머니, 피파도 결국 각성제를 복용하기도 하고, 유부남인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현실을 뒤로 하고 뉴욕에 사는 고모네로 왔지만 그곳에서도 평탄하지 않았다. 결국 고모네에서도 나오게 되고, 미술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섹스 파트너로 남아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피파의 삶을 돌아보면서도 안심이 되었던 것은 현재의 만족스러운 삶 때문이었다. 과거는 그러했을지라도 현재는 전혀 다른 그녀가 되어 있기에 과거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 거북스럽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도 분명 순탄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불편하게 그려지지 않아 평상심을 유지한 채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몽유병과 이웃의 아들 크리스와 자꾸 얽히는 것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서히 엄습했다. 현재의 남편을 얻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다시는 과거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그녀였는데, 그녀에게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수록 균열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현재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분명 크리스는 피파가 당면한 혼란스러움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긴 했으나, 그로 인해 결혼생활에 누가 될까 되레 내가 더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혔던 불안감은 피파가 아닌 의외의 곳에서 드러나게 되었고, 책 제목의 ‘로맨스’ 때문에 그녀에게 다른 사랑이 찾아와 혼란을 줄 거란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녀의 삶에서 로맨스는 빼 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것이 더욱 더 특별한 로맨스가 되었다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깨닫게 되었다. 또렷한 대상이 있어야만 로맨스가 형성된다는 안일한 생각. 그 생각을 깨트려 준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피파의 로맨스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로맨스가 중점이 되어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로맨스는 피파의 삶을 그리고 이 소설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고, 오히려 한 여성의 삶을 통해 가정안에서의 어머니의 역할,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의지와 노력, 그럼에도 주어진 삶에 순응해 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독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정을 뛰어넘어 변화된 다양한 삶의 한 구석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피파의 삶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발견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