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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책
"타인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책" 내용보기
대학시절, 학보사의 학생기자 활동을 했었다. 취재활동도 좋았고, 동기들과 쌓는 추억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기자활동의 묘미는 잡지와 정기간행물을 공짜로 구독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한겨레21」이나, 지금은 폐간된 월간 「말」과 같은 잡지가 그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인권」지도 있었다. 행정기관에서 의례적으로 발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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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학보사의 학생기자 활동을 했었다. 취재활동도 좋았고, 동기들과 쌓는 추억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기자활동의 묘미는 잡지와 정기간행물을 공짜로 구독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한겨레21」이나, 지금은 폐간된 월간 「말」과 같은 잡지가 그것이었는데, 그 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인권」지도 있었다. 행정기관에서 의례적으로 발행하는 기관지가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냐며 기대를 않고 펼쳤던 잡지에서 내가 모르던, 하지만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이웃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많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성장하면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나는 아직도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그림자를 보고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며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였다.

 

 장편소설 『빛』을 읽고 팬이 되어버린 김곰치 소설가의 르포·산문집인 『지하철을 탄 개미』는 사실, 『빛』에 비해 나의 애정을 받지 못한 책이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자하면 이웃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내 자신과 다시 조우해야하는 고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인권」지에 르포식의 인터뷰 기사를 싣게 된 글과 프레시안, 녹색평론과 같은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은 『지하철을 탄 개미』는 엄연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소설처럼 읽힌다. 마치 김곰치 소설가의 소설이 현실처럼 재미나고 맛깔지게 읽히듯, 그가 바라본 현실도 소설과의 괴리가 없이 구성지고 맛깔나게, 그러나 진중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일본의 원폭 피해자였던 김형율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엮을 생각을 감히 꿈꾸지 않았을 거라는 김곰치 소설가의 말이 있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재밌고 귀하게 읽혔다. 개인적으로는 뒤르켐과 한나 아렌트를 탐독하는 시크한 탈북 청소년 박일의 이야기도 재밌었고(「시간에 지쳐 울지는 않겠다」), 노숙자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가 담긴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본능은 꿈틀댄다」편도 웃고 울면서 읽었다. 노숙자 아저씨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무게의 삶을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로 겪어내고 있었던 아저씨의 일상을 읽어내며, 오늘 내가 길에서 마주한 그와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남루한 모습의 사내무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삶과 인생이야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가가기 힘든 그들의 말투와 행색으로 나는 은연중에 그 사람들과 나를 구별지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몹시도 부끄러웠다.

 

 김곰치 소설가의 글로 인한 나의 참회는 다른 책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수준에서 그치지않는다. 어떤 표현이 적합할지 잘 모르겠으나 ‘경이로움’, ‘놀라움’이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자주 놀라워한다. 도대체 저건 뭐냐며, 노랗기에 예쁘고, 너무 파랗고 아름다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비슷한 것 같다.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을 바라보며 늘상 놀라워 할 수 있는 자세. 그것이 부끄럽지 않게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된다. 「인권」지에 기고한 그의 글이 인간의 권리를 설파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놀라움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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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눈부신 빛 같은 사람들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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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는 귀한 작가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한겨레문학사, 1999년)에는 대학을 다니고 잡지사를 다니며 꿈을 키우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러 낙향하는 기자 이야기가 나온다. 출세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대신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서울을 떠나는 모습에서 작가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이후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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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는 귀한 작가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한겨레문학사, 1999년)에는 대학을 다니고 잡지사를 다니며 꿈을 키우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러 낙향하는 기자 이야기가 나온다. 출세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대신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서울을 떠나는 모습에서 작가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이후 작가는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며 르포․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 2005년)을 냈고, 두 번째 르포․산문집인 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르포․산문집은 한결같이 낮은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취재하여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하고 겸손한” 문장으로 살려냈다.


왜 작가는 두 권의 르포․산문집을 연달아 냈을까.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하고 또 가장 겸손한 어떤 것을 르포 글쓰기가 잘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소설이나 시로써 차마 담아낼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향해 작가의 발은 나아가는데 르포라는 장르가 그렇듯이 사람들의 눈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이다. ‘다수’의 의견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수’거나 어떤 경우에는 ‘극소수’를 찾아다니며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지향점은 르포의 글쓰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성과물을 내놓는 출판에서도 이어지니 작가는 지역작가로 살며 책도 지역 출판사에서 낸다. 두 번째 장편소설 『빛』(산지니, 2008년)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에 공감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불쾌한 말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일거에 흔드는 순간과 만난다. 그 ‘순간’에 대해 쓴 것이 본문에 처음으로 나오는 산문 「한 사람」이다. 작가가 만난 ‘한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그렇게 흔들렸을까.


얼마 전이다. 나는 집 근처 도로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엠피쓰리의 이어폰을 귀에 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내 앞에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들은 공사장 인부처럼 보였고, 40대 초반, 중반, 후반으로 잘 나뉘어 있었다. 그중 키가 큰 40대 초반의 사내가 내게 묻는 것이다. …… (중략) …… 묻고 답하던 짧은 시간, 나이 많은 사내는 시선을 비낀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별다른 사물이 없었다. 땅바닥의 보도블록이 있을 뿐이다. ‘막내’가 길을 묻는 도안, 그는 그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관심 없는 듯이 서 있었다. 생전 처음 도시란 곳에 나왔고 도시의 모든 것에 수줍어하는 시솔 소년의 모습이 아닌가. (11 - 13쪽)


몸으로만 살면서도 조금의 공격성이나 이기성이 없는 노동자한테서 “참 눈부신 빛 게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을 작가는 본다. 그리하여 그이에게서 “희망이랄까 작은 구원을 만”났다고 여기며 마침내 “사내는 나무와 꽃 못지않은 사람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정말 구원 같은 인연이 아닌가. 잘 살아야겠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글을 끝맺는다. 실상 사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자 세상을 보는 눈의 도약이라 할 만한 사건이다. 이러한 작가의 사람관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이며 르포 대상은 “참 눈부신 빛” 같은 노동자와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몸에 원폭 피해를 가지고 원폭 피해자 문제에 모든 것을 걸었던 김형율 씨, 강북재개발의 개발이익을 나누는 사람들과 싸우는 서울 한양주택 노인들, 탈북 청소년, 국립마산병원의 결핵 환자들, 호스피스, 부산역 노숙자 들이 모두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접근하면 감동적인 사연이 꼭 있다. 하물며 “하빠리” 노동자한테서 빛을 발견한 작가가 품을 팔아 기록한 사람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하빠리” 노동자도 읽을 만하게 문장도 순연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읽다가 턱턱 막히는 부분이 있다. 조금 더 쉽게 쓰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원규 시인의 시「별똥별과 소원」을 읽고 전율 이상을 겪었다고 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하여 옮겨 적었다. 적어도 잡지와 단행본에 인용하여 발표할 시라면 원본을 확인하고 옮겨 적어야 하지 않을까. 엉뚱하게 옮겨 적어 유통되는 시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점 이전에 원본을 확인하고 옮기는 것이 전율 이상을 준 시인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작가를 진정 좋아하기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잔소리까지 이렇게 보탠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1.09.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