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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공공미술이란 구체적으로 거리 곳곳에서 마주하는 조각들을 가리키는데, 소극적인 테두리에선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조각품인 ‘조형예술품’을 뜻한다. [p. 5]”
그렇다면 ‘공공미술’이 하나의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언제, 무엇 때문일까? 일단 시기적으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게임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높으신 분들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를 열어야 하는데 보여줄 것이 없(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에서 ‘조형예술품’은 아주 적절한 대안이었다.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작가들의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정부는 그 비용을 거의 민간에게 돌렸다. [p. 10]” 때문에 건물주는 새로 생긴 이 ‘준(準) 조세’를 가능하면 부담을 적게 들이고 해결하고자 했고, 그 결과 공공성도 예술성도 모두 잃어버리는 사례가 속출했다.
물론 그런 편법에 기대지 않고 예술적 가치에 비중을 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공공미술은 공공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수준[p. 20]”에 그치게 된다.
공공성과 예술성의 조화
예술성에 치우칠 경우, 그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공간과 유리되어 하나의 이물질로 작용하기 쉽다. 그 경우 당연히 공공미술 작품이 놓인 장소를 오가는 대중들에게도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소위 ‘안구를 테러 하는’ 시각공해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런 시각공해물의 대표적인 예가 클레스 올덴버그(Class Oldenburg, 1929~ )의 조형물 ‘스프링’(2006)이다. 그는 2006년 기자회견에서 물과 빛 등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즉, “청계천에서 샘솟는 물을 표현하기 위해 하단부에 샘을 만들었고 밤에는 조형물 앞에 설치된 사각 연못에 원형 입구가 비쳐 보름달이 뜬 것처럼 보이게 했다”(http://news.donga.com/3/all/20060929/8356326/1#csidxfd99040130ea75d9d9ae2c328a3df2c)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자회견문 어디를 보아도 청계천이라는 장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라니까 아마도 작품 자체는 예술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을 찾아보지도 않고,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청계천 복원’이라는 단순한 키워드만으로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품을 만드는 무신경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일이다. 즉, 환경친화적 작품을 만든다면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소도시 사카이미나토[境港]는 이와 반대로 공공성을 중시했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 출신의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 1922~2015)의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에 나오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도시 자체에 요괴 마을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그 결과 도시 곳곳에 만화의 캐릭터를 이용한 동상 등 각종 조형물이 조성되었는데, 이들 조형물도 하나의 공공미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예술성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과 어우러져 하나가 된 모습은 보기 좋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있는 조너선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1942~ )의 <해머링 맨>은 예술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이룬, 공공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해머링 맨>의 진정한 가치는 도시인들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넘어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없는 현대인의 천편일률적 인간상을 보여주는 데 있다. 대로변에 세워놓은 것도 관찰자에게 사고의 환류를 일으키게 하는 장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머링 맨>은 단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건물의 장식에 머물렀던 조형물을 ‘시민들과 동반’하는 공공미술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를 심어주었으며, 실제 공간(장소)에서 대중과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 ‘검은색 자이언트 사나이’가 안고 있는 진정한 덕목은 미술관 밖을 벗어난 미술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개입하면서 일으키는 물리적 파동이 불특정 다수의 삶에 스며들어 변화를 불러오는 것에 동의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p. 30]”
공공미술의 공공성, 그 실현과 유지를 위해
“공공미술은 곧 ‘소통’이다.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먼저 ‘교감’해야 하고, 교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술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장소와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주민이나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소극적 공공성에서 벗어나 도시 경관의 부속물을 물론 조경 분야까지 포괄하는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 [p. 21]” 왜냐하면 “공공미술의 목표는 결국 사회성을 지정하고 그 사회성은 사람들에게서 발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장소에 작품을 놓거나, 거기에서 행해지는 예술은 당연히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변경하는 것이라면 공공미술은 그것을 육성하고 촉진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그곳에 살고 있거나 그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소통’과 ‘교감’이 원만할 때 미술이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참여하고 개입하여 유익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접근[pp. 262~263]”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제대로 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서라면,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세금으로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의 경우에는 행정당국의 사후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공공미술 작품은 결국 흉물로 전락하여, 겨울철 보도블록 교체공사와 같은 세금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드로잉과 사진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우리가 잘 아는 공공미술 작품들을 사진이 아닌 그림, 정확하게는 드로잉 작품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점 때문에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책에서 흔히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개하는 방식과 달라 낯섦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기억이 머무는 풍경>, <펜으로 그린 베이징> 등 건축물을 설명하는 책에서는 펜화 등을 통해 대상을 소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공공미술’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소개하기에는 이런 낯선 방식이 더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