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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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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천연자원 보유국,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 소련은 왜 100년도 못 가 무너졌을까? 1960~1961년에 최초의 미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공부했던 로렌 R. 그레이엄은 표트르 팔친스키의 ‘유령’을 통해 답을 찾는다. 그는 “팔친스키의 ‘유령’은 나로 하여금 소련 기술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산업화가 소련 인민들에게 부과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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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천연자원 보유국,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 소련은 왜 100년도 못 가 무너졌을까? 1960~1961년에 최초의 미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공부했던 로렌 R. 그레이엄은 표트르 팔친스키의 ‘유령’을 통해 답을 찾는다. 그는 “팔친스키의 ‘유령’은 나로 하여금 소련 기술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산업화가 소련 인민들에게 부과한 거대한 비용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라고 말한다.(p. 15) 그로 인해 나오게 된 책이 바로『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이다.

 

이 책은 왜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 논의는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러시아 엔지니어의 인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소련 산업화 초기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다. 팔친스키의 이야기는 이 책 후반부에 다루게 될 산업과 기술을 대하는 소련의 태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우화로 활용될 것이다. 기술 오용과 인간 에너지의 낭비에 대한 팔친스키의 비판은 소련이 1991년 패망할 때까지 이 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p. 10)

 

표트르 팔친스키는 1928년 4월 갑자기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곧바로 총살형에 처해진다. 팔친스키의 체포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해가 지난 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수용소 군도》에서 간략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로렌 R. 그레이엄은 팔친스키가 처형되고 62년이 지난 1991년 1월 어느 날 팔친스키에 관한 파일을 찾아낸다.

 

나는 소련이 해체되고 있는 와중에 이 문서들을 읽어나가면서 그 안에 소련사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해명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비에트 연방은 왜 초창기의 인상적인 기술 근대화의 혜택을 완전하게 누리지 못했는가?     (p. 23)

 

소련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중앙 집중식 계획 경제의 한계라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진실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소련식 계획 경제는 세계 2위 규모의 산업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수십 년 동안 소련은 그 힘을 바탕으로 히틀러 군대를 격퇴한 후 지속적 확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힘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인간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소련 인민들이 그들의 시스템에 신뢰를 갖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의 상실과 그에 뒤따른 실패는 기술을 이용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던 것이 아닐까? 표트르 팔친스키의 삶과 기술에 대한 생각들은 이 수수께끼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p. 25)

 

그래서 이 책은 표트르 팔친스키의 삶과 기술에 대한 생각들을 상세하게 다룬다. 나중에는 소련의 엔지니어들로 확장한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소련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인 체르노빌 폭발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일련의 정책 결정 결과로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p. 171) 

 

체르노빌에서 재앙이 발생한 이후 핵 잠수함, 운송(선박 및 철도 사고), 환경 재난 등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기술적 실패가 줄을 이었다. 엔지니어가 아니라 변호사 출신인 고르바초프는 그 원인으로 ‘인간 요소’를 들었다. 오래전에 팔친스키가 사용한 용어와 같았다. 고르바초프는 기술에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학, 안전, 노동 조건, 환경 위험, 심리, 사회 요소들을 고려한 경영 등 사회적 맥락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지어 역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엔지니어는 점차 소외되었다. 협소한 기술 교육과 사회적 사안을 무시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를 경고하던 표트르 팔친스키의 유령이 돌아와 소련을 괴롭혔던 것이다.     (p. 172~ 173)

 

표트르 팔친스키의 유령은 비단 소련만 괴롭히고 사라졌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가 경고하던 사고나 파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비판한 기술 오용과 인간 에너지의 낭비는 현재진행형이다. 더 늦기 전에 처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의 경고를 귀담아듣는 건 어떨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i 2017.10.08. 신고 공감 6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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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정의는 항상 함께 가야한다.
"효율성과 정의는 항상 함께 가야한다." 내용보기
간혹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의문이 드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예를 들자면 4대강사업이나 원전 사업과 같이 대규모 산업시설 혹은 건설사업을 벌일 때이다. 물론 국가사업이라는 것이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함의를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에 있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기술적인 사항과 함께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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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의문이 드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예를 들자면 4대강사업이나 원전 사업과 같이 대규모 산업시설 혹은 건설사업을 벌일 때이다. 물론 국가사업이라는 것이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함의를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에 있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기술적인 사항과 함께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사회적, 환경적인 측면 그리고 혹시 모를 위험성에 대한 대안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검토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공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고려까지 이루어진 다음에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필요하고 또 그들의 자문 내용이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주기도 한다. 물론 제대로 이루어진 자문일 경우에 한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과연 자문단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가지고 자문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왜 말도 안되는 자문을 하고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기본적으로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항상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던 차, 이 책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으면서 희미하나마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MIT 명예교수이자 최초로 미소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모스코바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한 로렌 R. 그레이엄이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표트로 팔친스키라는 러시아 엔지니어의 삶을 추적하여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소련 초창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있다. , 소련이 왜 근대산업국가가 되지 못 했는가를 팔친스키의 삶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팔친스키는 소련 혁명 전 제정러시아의 엘리트공과대학 중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업학교를 졸업하고 탄광 운영 문제에 대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05년 혁명이 일어나자 아나키즘에 경도된 그는 재판에 회부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1907년 시베리아에서 탈출하여 서유럽으로 건너가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1913년 차르정부로부터 사면을 받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왕정이 무너지고 세워진 임시정부에서 공직을 맡기도 했으며, 10월혁명 당시 포로로 체포되었으나 산업관련 직무 전문가들을 고용하는 새로운 정책에 따라 석방되어 소비에트 정부의 컨설턴트로 일을 했다. 자신의 서유럽사회에서의 경험을 살려 조국 러시아의 근대화에 기여하기를 원했던 팔친스키는 러시아의 이익은 지지했지만 공산당의 이익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여 종종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엔지니어였기에 컨설턴트 자격으로 국가계획위원회의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었다.

 

  팔친스키는 혁명 훨씬 이전부터 사회주의자였고, 1차세계대전 중에는 군수산업의 행정가로서 계획경제적 발상에도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중앙계획의 개념에는 동감했지만 지역에 따른 변형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관련자료를 모두 검토하기 전까지는 평가를 내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혁명 이후 소련은 근대화를 위하여 미국식 기술과 관리기법인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에 팔친스키는 서구의 기술과 관리기법도 좋지만 그와 더불어 노동자교육과 복지증진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률적인 당의 정책에 의문을 표하였다. 스탈린이 절대권력을 갖게 되는 1920년대 후반부터 팔친스키와 공산당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스탈린은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고, 목표는 지역을 무시하고 중앙에서 설정했다. 또한 산업시설은 가능한 한 최대규모로 건설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농촌지역의 주민을 이주시켜 노동자로 활용했다. 이에 대해 팔친스키는 노동자교육과 복지증진이 없이는 재해발생율이 높아지고 제품의 질 역시 조잡해진다고 비판한다. 결국 팔친스키는 정부를 전복하고 자본주의를 복원하려는 반소련세력의 지도자로 1928년 체포되어, 반역죄로 재판없이 사형선고를 받고 비밀리에 처형당한다.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고 소련의 기록은 그에 관해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팔친스키를 비롯한 엔지니어들의 숙청으로 비게 된 자리는 선배들과 같은 운명을 가능한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사회주의 산업은 노동자와 지역주민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팔친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내세웠던 엔지니어링 원칙들은 완벽하게 무시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이후 소련 엔지니어들은 팔친스키가 엔지니어링 활동에 내재되어 있다고 믿던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소련 당국 역시 공학교육 과목을 끊임없이 세분화하여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분야 이외에는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소련 엔지니어들은 두려움 때문에 논쟁을 하지 않았고 그저 공산당 지도부가 하달하는 과제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하는 그 순간까지 소련의 산업화 프로그램은 비용과 대안을 검토하지 않고 계획 목표를 채우기 위한 맹목적인 정책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소련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난들이 결국 이러한 공산당과 엔지니어들의 사고가 빚어낸 결과라고 주장한다. 팔친스키는 소련 산업화 초기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그의 비판을 외면한 소련은 패망할 때까지 기술 오용과 인간 에너지 낭비라는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링에 대한 팔친스키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있다. 엔지니어링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임을 주장했던 팔친스키. 그는 고도로 훈련된 노동자와 노동자의 사회적, 경제적 필요가 충족될 때 성공적인 산업화와 높은 생산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테크놀로지는 경제발전이나 생산력의 핵심요소로써 국가적 위신 내지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복지와 편의를 증진시킨다는 근원적인 개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오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오류들이 발생하고 또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엔지니어 또는 경영자는 인간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팔친스키의 조언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효율성과 정의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산업화는 어떠한지, 우리의 정책과 이를 수행하는 엔지니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k*****1 2017.11.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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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과학 산업은 어떻게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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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부제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제목부터 퍽 살벌한 책이었다. ^^; 논픽션인 본서가 다루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볼세비키 혁명기를 거쳐서 1928년에 사형을 당한 비운의 과학자. 광산 엔지니어 출신으로 러시아의 기술산업을 부흥시킨 표트르 팔친스키  Peter Pal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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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부제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제목부터 퍽 살벌한 책이었다. ^^; 논픽션인 본서가 다루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볼세비키 혁명기를 거쳐서 1928년에 사형을 당한 비운의 과학자.

광산 엔지니어 출신으로 러시아의 기술산업을 부흥시킨

표트르 팔친스키  Peter Palchinsky 이다.

 

두 주 동안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었다. 어떤 곳에서는 괜시리 표지 제목을 가리고 읽기도 했다. 공포 추리 소설 읽는 줄로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공포 영화 못지 않은 삼엄한 때였다.

 

미국의 과학자 로렌 그레이엄은 작가 본인이 러시아 유학을 했었다.

그 때 표트르 팔친스키에 대해서 알게 되어 이후에 꾸준히 자료를 찾아서 이 책을 집필했다. 작가의 열정 또한 인상적이었다. 요즘처럼 검색 몇 번에 알짜배기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냉전 시대에 모스크바에서 발품을 팔아서 조사를 했다. 무려 1960년 대에.

 

처음에 표트프 팔친스키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때는 차르 체제가 무너진 1910년대. 그리고 혁명의 열기가 휘몰아친 1920년대. 팔친스키는 광업 엔지니어가 본업이었다.

그런데 지식이 풍부하고 식견이 뛰어나서 점차 산업계와 과학자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인물 자체가 생소해서 이해하기에 다소 시간이 소요되는 독서였다. 그러나 러시아 시대가 어려웠지 작가의 화법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과학 기술 얘기였음에도 편안하고 이해가 되게 잘 읽혔다.

 

주인공인 팔친스키의 죄목이라면 엔지니어가 개념이 있었다는 거였다. 혁명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공산주의 건설에 기여하기를 맹렬히 원했다.

표트르 팔친스키는 사회주의자였긴 하지만 맹목적으로 정부와 공산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계보를 밝히라면 크로포트킨 이라는 사상가의 이념을 계승했다. 크로포트킨은 아주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이다. 표트르 팔친스키는 아내 니나 Nina 와 신념의 동지였다. 팔친스키는 볼세비키 혁명 전부터 독자적인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다가 투옥을 여러번 당했다. 이 때 아내 니나는 헌신적으로 남편 옥바라지를 했다.

 

팔친스키가 다소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으며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건 맞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팔친스키를 갑자기 처형시켜 버린 것은 나도 쉬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다 지나고 시간이 흐른 지금 보면 팔친스키가 뭐 그렇게 소련에 위협적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구체적인 혐의도 없고 그저 불온한 사상을 가졌을 뿐인 일개 엔지니어를 공산당이 그렇게 무참하게 처형한 것은 그만큼 팔친스키가 옳았다는 반증이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이상적인 비전으로 보이기도 했다. 팔친스키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동조했다. 토지를 나라에서 소유하고 공장을 나라에서 소유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있어서는 공산주의 정부와 대립하는 지점이 자주 발생했다.

 

요즘 우리나라 극우에서 노동조합을 좌파의 한 징표라고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소련 공산주의는 무척 의외였다. 당시에 한 지방의 광산 노동자들이 부당한 처우에 파업을 했다. 그런데 공산당은 노조원들을 무참하게 징벌했다.

몇 명을 사형시키고 대부분을 유배를 시키고 10년의 형량을 때렸다.

이러한 노조 탄압이 공산주의에서 벌어졌는데 어떻게 현대의 노조가 좌파라 할 것인가.

 

이 책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은 부당하게 징계를 당하고 심지어 처형까지 당한 팔친스키라는 한 기술자를 통해 소비에트 시대의 잔인한 내막을 알리고 있다.

 

작가 로렌 그레이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팔친스키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최후는 그저 20년대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렌 그레이엄이 보기에 이 일은 상징적이었고 이후에도 소련 당국은 과학자들을 체제에 이용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소련은 산업 경제적으로 상당한 강대국의 위상을 이뤘다. 소련은 국토만 넓은 게 아니라 광대한 땅에 천연 자원이 풍부했다. 이들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기술도 뛰어나서 세계에서 가장 중공업이 발달했다. 아마도 이러한 기초 산업이 있어서 우주 개발도 가능했을 것 같다.

1991년에 소련 연방은 해체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과학 기술도 쇠퇴했는데 이는 꼭 영토 때문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로렌 그레이엄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소련에서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을 말한다. 공산당의 주도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시도한 개발들은 실패를 맛보았다. 그 중 몇 번은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하였고 이 영향은 고스란히 소련 민중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고 무고한 국민들의 목숨이 희생당했다.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케이스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태였다. 로렌 그레이엄은 표트르 팔친스키 때부터 시작된 과학 기술 정책이 체르노빌 로 이어졌다고 진단하였다.

 

 

체르노빌이 작은 프로젝트보다는 거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강조하고 지역 조건에 민감한 계획 대신 중앙 집중식 계획을 선호하며 안전보다 결과물을, 인간보다 기술을 중요시하고 비판적 토론을 압살하는 닫힌 의사 결정 방식을 체택하는 소련 산업화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지적한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p.168)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1993년 씌어진 책이다.

소련과 동독은 무너졌지만 냉전의 분위기는 있던 때다. 그래서 팔친스키의 죽음을 고발하고 소련 공산당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작가가 무슨 의도가 있는 건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93년 책이라서 다분히 논조가 흥분된 건 좀 있었다. 그렇지만 작가의 집필 동기를 점차 이해할 수 있었다. 적국인 소련을 까려는 의도가 아니라 소련의 산업과 과학이 왜 몰락했는가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거였다.

 

미국 소련 관계에 민감한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소련의 산업이 쇠퇴한 것이 안도되기도 했다. 소련이 강대하고 미국도 그러했다면 정말 한번쯤 전쟁이 났을 것 같고 그러면 가장 먼저 한국이 피봤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러한 남한 사람의 시선을 뒤로 하고 봤을 때는 팔친스키의 인생은 안타까웠다.

공산당은 정말 뛰어난 인재를 어이없이 죽였다. 하긴 뛰어난 인재여서 위협적이었을 테지만.

 

책이 다루는 시대가 1920년대이다 보니 1차 산업과 2차 산업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요즘은 서비스 산업이 대다수이고 IT 산업만 중시되다 보니까 잊고 있었다.

20세기 초반에는 경공업을 시작으로 한 중공업, 화학, 건설, 철도, 천연자원의 시대였다.

그러한 주도적인 경제의 흐름에서 소련은 변방이 아니라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심국이었다.

 

중공업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나라에서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이해하느라 중간에 진도가 느려졌다. 이해하고 부터는 훅 빨려들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우리가 러시아 걱정을 할 때인가 싶긴 한데. ^^; 러시아는 지금이라도 팔친스키를 무고하게 처형한 그 죄악을 반성하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팔친스키를 비롯해서 순수한 과학자들을 탄압한 소련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대부분 동조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유익하게 읽었다.

그런데 미국이 그런 만행은 없었기에 과학적으로도 우월하다는 듯한 논조는 조금 불편했다.

뭐 그런데 증거가 없으니. 미국의 과학을 비판하려 한다면 그 내막을 아는 다른 나라 사람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인의 시선이긴 하지만 1920년대 소련의 과학계와 기술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소련과 미국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읽을거리가 풍부했다.

 

 

 

 

 

 

 

   

 

YES마니아 : 로얄 b********5 2017.10.08.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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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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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제목이네요.무슨일로 엔지니어를 처형했고 또 유령으로 남았다니요..이 책은 소련에 관한 내용입니다.그것도 1920년대 한창 5개년 계획이니 뭐니 하면서 소련이 무시무시한 발전 속도를 자랑하던 시절을 다뤘습니다.스탈린은 1929년 55세의 엔지니어 표트르 팔친스키를 처형했습니다.그는 자본주의를 복원하려던 반소련 세력의 지도자로 이른바 산업당의 영수로 지목되어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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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제목이네요.
무슨일로 엔지니어를 처형했고 또 유령으로 남았다니요..

이 책은 소련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것도 1920년대 한창 5개년 계획이니 뭐니 하면서 

소련이 무시무시한 발전 속도를 자랑하던 시절을 다뤘습니다.

스탈린은 1929년 55세의 엔지니어 표트르 팔친스키를 처형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를 복원하려던 반소련 세력의 지도자로 

이른바 산업당의 영수로 지목되어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비명 한번 못지르고 사라져 버린 이 엔지니어를 찾아내어 복원합니다.

복원된 팔친스키는 러시아의 광산학자로, 

소비에트연방 초창기 기술·산업 정책을 이끌었던 엔지니어였습니다.


러시아 제국에 반항했으나 임시정부에서도 일했고 

이후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도 그다지 담탁치 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끝까지 비판적 시각과 판단력을 유지했으며 

그것때문에 파멸했습니다.

그런 그가 한창 미친듯이 개발에 몰두했던 소련의 정책에 비판할수밖에 없었고 
그런 비판에 무자비했던 소련이 어떤 대응을 했을지는 짐작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비판을 무시한 결과가 어떤 결과를 낳았으냐는 것입니다.

충분히 조사와 논의가 없이 어설픈 기획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우리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1970년대 통일벼 하나에 의존하여 밀어 붙인 농업 정책은 쌀자급 하나만 달성했으나 
지역간의 격차와 다른 부분의 자급도가 떨어졌으며 쌀도 결국 남아도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4대강 사업이 남긴 휴유증은 또 어떨까요?

소련은 더 거대하고 관리가 안될 정책을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팔친스키와 같은 엔지니어가 나오지 않도록 편협한 분야만 훈련시킨 엔지니어를 양성했습니다.

소련은 결국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를 이 책은 몇가지 사례로 드러내주었습니다.

소련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그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피와 땀으로 헌신했습니다.
그 헌신이 선전했으나 문제는 그 헌신은 잘못된 방향으로 더욱 빨리 달리게 만든 결과만을 낳았습니다.

이걸 보노라면 키를 쥔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희생을 치룬 이들이 자신의 헌신을 정당화하고자 쉴드를 쳐대지만
그 결과는 결국 피해를 더 크게 만들 뿐 입니다.

분량이 작지않고 우리 사회에 시사점이 많다는 점에서 읽어 볼만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18.05.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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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엔지니어링'을 다시 돌아보다
"'인간적 엔지니어링'을 다시 돌아보다" 내용보기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원제: 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로렌 R. 그레이엄 지음 | 최형섭 옮김 | 역사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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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원제: The Ghost of the Executed Engineer)

로렌 R. 그레이엄 지음 | 최형섭 옮김 | 역사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 찰스 디킨스 도시 이야기 중에서

 

소설 제목과도 같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읽은 책을 덮으며 서서히 떠오른 것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도시 이야기 문장이었다. 이율배반적인 삶의 역설과,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 사회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문구를 떠올리며, 아마도 문장은 인류가 존재하는 어느 시대이든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미국의 역사학자가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 초반 미국 최초로 구소련에 교환학생으로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이후 관심을 갖게된 소련 엔지니어의 삶과 스탈린 치하의 사회상을 추적한 기록이다. 저자가 관심을 갖고 추적한 사람은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구소련 엔지니어이다. 그는 1875 10 05,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2 전에 태어나 1929 5 54세의 나이에 산업당 사건이라는 역사의 사건을 통해 다른 엔지니어들과 함께 소비에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숙청당했다. 책의 저자는 처음 팔친스키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를 통해 폐쇄적이던 구소련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팔친스키는 어떤 사람이었나

표트르 팔친스키는 평범한 가정의 12 형제 장남으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 슬하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도서관의 책을 많이 접할 있었던 환경에서 자랐다. 장남으로서 사실상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자력으로 엘리트 공대에 입학해서도 생활비를 벌기위해 다른 부유한 동급생과 달리 다양한 일을 병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로서 정치와 예술에 또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에 이끌려 온건적인 아나키스트였던 표트르 크로포트킨과도 교류를 했다. 러시아 혁명 당시 급진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여 스탈린이 집권한 20년대 이후 소련 공산당과의 마찰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팔친스키의 경우, 지도자급의 엔지니어로서 글쓰기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한 행동을 통해 체포와 석방을 여러 반복하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팔친스키의 엔지니어링 철학을 인간적 엔지니어링으로 간결하게 요약한다. ‘기술과 노동자 모두 최적의 상태여야 한다라는 팔친스키의 주장이 보여주듯 기술 대한 신뢰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삶의 조건 주목한 점에 주목해야한다. 소련의 중앙집중식 프로젝트에서도 엔지니어의 의사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필요가 충족된 상태를 의미했다. 인간의 요소는 나아가 인간을 위한 사회정의 기술과 동시에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기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고양하는데 활용되어야한다는 가치에 충실한 철학인 셈이다. 당대에 국가 주도의 소련 산업구조 속에서 개별 인간에 대한 가치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는 점은 현대의 고도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편 팔친스키의 엔지니어링 철학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경험들을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분명 다른 많은 당대의 엔지니어들과 다른 폭넓은 식견과 인간의 가치를 주목할 있게 배경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족도서관에서 경험한 독서체험, 그리고 성장해서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성공한 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며 다양한 삶의 양식과 문화를 접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울러 엔지니어로서의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정치와 예술에 관심을 갖고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있었던 인문적 교양 형성의 결과가 아닐까.

 

【스탈린 치하의 사회변화와 엔지니어의 역할

1920년대 중반 스탈린이 집권을 이후, 숱한 정치적 숙청이 이루어지던 20년대 후반 유능하지만 공산당에 비판적이었던 팔친스키는 스탈린에게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특히나 현재의 시각으로 인문적 교양 지닌 팔친스키는 자신의 비판적인 시각을 글쓰기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후 팔친스키는 스탈린의 비밀경찰에 납치되어 20년대 후반, 비밀리에 숙청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팔친스키의 숙청과 관련한 산업당 사건 스탈린 치하의 폭압적인 정부아래 어떻게 지식인들이 억압을 받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된다. 팔친스키의 체포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묘사해놓았다고 하니 이후에 보다 자세한 면모를 구소련체제 내에서 바라본 지식인의 시각으로 살펴볼 있을 것이다. 시기에 많은 지식인과 정적이 숙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도 고통을 받게된다. 30년대에 우즈베키스탄 등의 황무지로 강제이송당한 고려인들의 기억은 팔친스키가 처형당한 이후, 구소련의 암울한 시기와 병치되고 있음도 상기해볼 있다. 

 

팔친스키가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인하여 숙청된 이후, 스탈린은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들을 생각하지 않는기술자들로 만드는 국가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스탈린 시대에 비로소 엔지니어의 인문 교양의 습득 전통이 소멸해버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었다. 타임머신 작가 H. G. 웰스 스탈린을 인터뷰한 아래 대목에서 스탈린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느낄 있다.

생산 조직가인 엔지니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받은 대로 따라야 한다. (…) 기술 지식 계급이 독립적 역할을 있다고 생각해서는 것이다.

(84, Bailes, <Technology and Society>에서 재인용)

 

더욱 경악스러운 부분은 스탈린 집권 이후 엔지니어 양성과정이 지나친 전공 세분화라는 특징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계 공학 전공엔지니어가 아니라, 기계 종류별 압축기 담당 엔지니어를 양성한다던지, 구리와 구리합금을 다루는 전문가가 별개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모스크바에 자료조사차 갔을 , 근교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가 자신을 제지공장 볼베어링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상황을 믿기지 않는 듯이 묘사한 대목도 이런 소련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스탈린의 목표대로 과도한 전공 세분화는 팔친스키와 같은 생각할줄 아는엔지니어가 아닌 거대한 전체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기술자를 양성해내었다. 저자는 스탈린이 뿌린 이러한 씨앗의 재앙이 여전히 팔친스키의 유령으로 소련 내에 출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스탈린의 중앙집중식 산업화 방식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레닌이 도입한 미국식 산업경영기법 (포드주의 테일러주의 기반한 경영방식) 결합되어 이루어졌다고 이해해볼 있겠다. 시기의 사회 건설 실험은 노동자를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기계 부속품으로 만들어 효율성(생산성)만을 추구하게 하는 강력한 추동을 제공했다. 나아가 금융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여기에서 나아가 인간이 하나의 상품으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버렸음을 상기해볼 있을 것이다. 

 

스탈린이 성취(?) 중앙집중식 산업화의 사례를 가지 떠오려보자면, 나는 백해운하 건설 프로젝트 예로 들어보겠다. 발트해-백해를 잇는 운하 건설은 스탈린 치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이면은 참혹한 진실이 가려져 있었다. 백해운하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는 거의 대부분인 정치범인 죄수들이었기에, 이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듯하다. 표트르 팔친스키와 동료 엔지니어들이 제시한 엔지니어링 원칙이 철저히 무시되었고, 폭압적으로 인권이 유린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2 미만의 공사기간 동안 20만명이 사망하여, 매달 평균 명씩 사망한 참혹한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스탈린식 산업화와 사회주의의 진실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전문가/엔지니어들이 정치적 폭압으로 인하여 전문가로서의 소견 표명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차단되는 경우, 또는 폭압적인 정치체계나 정치가들의 견해에 심지어 동조하게 되는 경우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생각하는엔지니어의 역할로서 팔친스키는 어떤 국가의 프로젝트에 대한 결정을 , 경제적·사회적·윤리적 관점 포괄적으로 검토를 거쳐야하며 특히 산업에서 노동자와 지역주민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주장한 팔친스키의 유령은 국내에서도 여기 저기 출몰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건설과정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그리고 성주 사드 배치 과정 등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인간, 특히 지역 주민을 고려한 사회 정의는 아예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알아볼 있다. 특히 지역주민이 완전히 배제된 의사결정 과정과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관점 등에서 검토되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된 엔지니어링이 초래하는 대가는 우리의 후손들이 짊어지고 부담이 것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건설이었나? 결국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졸속 국가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링 양상은 스탈린의 무리한 중앙집중식 산업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찾기 힘들다.

 

 【책을 덮으며】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나에게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기술 어떤 결과를 초래할 있는가  그리고 생각하는엔지니어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당당히 말할 없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있는가 하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나는 주제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모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 팔친스키가 엔지니어들은 정치와 경제를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점과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 오늘날의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인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과학기술인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면 안되는가? 과학기술인들도 역시 정치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이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있는 사회가 더욱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스탈린 치하 국가 주도의 거대한 실험은 분명히 실패했다. 하지만 사실이 행여나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일방적 우월이라는 엉뚱한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책은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언급하듯 국가의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수혜자로서 입장을 대변하는 언급하고 있다. 부분은 물론 거슬리긴 하지만 나는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통해 스탈린 치하의 사회상을 잠시 살펴볼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사상에 동조하는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결국은 정치적 숙청을 당한 팔친스키의 삶과 당대의 사회상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데 시사하는 바가 많음을 상기해본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17.10.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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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로렌 R. 그레이엄-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로렌 R. 그레이엄-" 내용보기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로렌 R. 그레이엄-   용감했던 한 엔지니어의 삶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은 왜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면서 책을 시작한다 불과 100년전만 해도 소련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2위의 강대국이지만 지금은 면적만으론 세계 1위일지는 모르지만 GDP(Gross Domestic Product)기준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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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로렌 R. 그레이엄-

 

용감했던 한 엔지니어의 삶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은 왜 소련이 근대 산업국가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면서 책을 시작한다

불과 100년전만 해도 소련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2위의 강대국이지만

지금은 면적만으론 세계 1위일지는 모르지만 GDP(Gross Domestic Product)기준으론 세계 11위이다

참고로 GDP기준으론 한국은 세계 12위다

소련은 드넓은 국토(세계1), 많은 인구(14-세계9-2017년기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 하였지만 왜 뒤쳐졌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소련 시절 엔지니어에 대한 무관심 혹은 박해로 인해서 촉발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한가운데표트르 아키모비치 팔친스키라는 엔지니어가 있고 그의 삶을 통해서 옛 소련의 모습을 역 추적해본다

1900년대 소련은 소련식 계획 경제로 세계 2위 규모의 산업을 일구는 데 성공 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수십 년 동안 소련은 그 힘을 바탕으로 히틀러 군대를 격퇴한 후 지속적 확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힘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인간을 지구 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표트르 아키모비치 팔친스키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였고 수준 높은 고등 교육을 마쳤다

그는 기술과 사회의 유토피아적 관계가 도래할 것을 믿기는 했지만 정치 운동으로서의 아나키즘에 헌신하지는 않았다 또한 광산 운영으로 서유럽에서 성공한 산업 컨설턴트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엔지니어링 계획들을 평가 할 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였다

팔친스키는 왕정이 무너진 이후 세워진 임시정부 열렬한 지지자로써 1917년 감옥에 투옥 1918 3월 석방 그리고 3개월 후 다시 체포 9개월간 투옥으로 총살을 당할 위험에 처했지만

스위스의 사회민주주의자 카를 모오르가 레닌에게 보낸 탄원서로 다시 1919 3월 석방 되었다

석방 후 광산학교의 교수가 되어 여러 프로젝트의 컨설턴트로 활동을 통해서 능력을 인정 받아 정부 계획 기관 여러 곳에서 부탁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엔지니어로 부상하였고 러시아기술학회 회장 및 전러시아엔지니어협회 최고간부회의 임원직을 역임 하였다 하지만 1922년 팔친스키는 크로폿킨을 공개적으로 추모함으로써 젊은 시절의 아나키스트 성향을 드러냄으로써 두 달 동안 투옥 되었지만 이번에는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의 도움으로 석방

그는 평생 총 3번 투옥 되었고 3번 석방 되었다

그는 국가로서 러시아의 이익은 지지 했지만, 공산당의 이익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1920년대 후반 스탈린이 절대 권력을 갖게 되면서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주요 쟁점은 정치적 권위 문제로써 공산주의자들은 팔친스키가 상정한 엔지니어들과 같이 폭넓은 역할을 수행할 만한 자율성을 전문가 집단에 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엔지니어링 전문가가 기술보다 인간의 욕구를 우위에 두고, 공산당 지도자가 기술을 가장 강조했다는 사실 자체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요약해준다

스탈린은 기술 지식 계급이 잠재적인 반혁명 분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엔지니어의 생각의 폭에 제한을 두고 압력을 행사했다

1920년대부터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을 전세계에 과시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수력 발전소, 세계 최대 제철소, 백해 운하였는데

3가지 모두 팔친스키는 회의적은 반응을 피력하였지만 그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결국 3가지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서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의 희생과 막대한 재원 낭비로 이어졌다

1930년대 초 대규모 숙청 이후 소련 엔지니어들은 정부와 논쟁을 피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노동자의 안전이나 주거 환경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1930년 이후 소련은 어느 나라보다 엔지니어를 많이 양성 하였지만

그 목표는 오로지 생산량 증대를 위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국책 산업(바이칼-아무르 철도, 체르노빌, 돈바스 광부)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엔지니어들의 요구의 묵살과 엔지니어들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인하여

점점 퇴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서 팔친스키의 결정이 합리적이었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끝까지 용감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을 하면서 책을 마무리 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c*********g 2017.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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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링의 유령 - 로렌 R.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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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제국 소련의 몰락과 대한민국의 노동자와 농민      이 책은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한 엔지니어의 생애 연구를 통해서, 세계에서 천연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20세기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으로 부각하던 소련이 왜 한 세기도 가기 전에 무너졌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리고 소련이 노동자와 농민을 사회 주체로 내세우면서 혁명에 성공했지만,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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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과 대한민국의 노동자와 농민

 

 

 

   이 책은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한 엔지니어의 생애 연구를 통해서, 세계에서 천연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20세기 세계 최고의 기술 강국으로 부각하던 소련이 왜 한 세기도 가기 전에 무너졌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리고 소련이 노동자와 농민을 사회 주체로 내세우면서 혁명에 성공했지만, 노동자와 농민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고 했다. 저자는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엔지니어링이 가지는 위험성을 드러내면서, 테크놀로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다.

   팔친스키는 엘리트 공과대학 가운데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업학교를 다녔다.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사망한 후에는 학생수당과 방학 동안에 노동하여 번 돈으로 학업을 이었다. 팔친스키는 1900년 전후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러시아 젊은이들처럼 사회를 개선하려는 급진적인 정치노선을 받아들였다. 1899년, 저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가문 출신 니나 알렉산드로브나와 결혼했다. 

   그는 1901년에 석탄 생산공장에 석탄 생산이 줄어드는 원인을 파악하는 조사위원으로 파견되어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에 대해 깊이 관찰했다. 노동자들의 생활 여건이 생상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으로 인해 유배를 떠나듯 시베리아로 가야 했고, 경찰의 감시하에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1907년 경찰의 감시를 피해 우크라이나로 갔고, 1908년부터는 서유럽에서 생활했다. 1913년 차르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아 팔친스키 부부는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니나와 팔친스키 부부는 정치적인 면에서 급진적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학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 관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일반적인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편안한 생활에서 개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었다.(42)

 

   팔친스키는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투옥과 석방이 반복되었다. 그가 공산당과 함께 생산재건을 위해 일을 했으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공산당이 장악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고, 노동자는 고용된 일꾼으로서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구를 갖춘 창의적 개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후반, 스탈린이 정치 및 경제 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자 팔친스키의 인간적인 엔지니어링 이론은 스탈린의 거대 경제 계획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팔친스키는 1928년에 비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비밀리에 처형당했다.  

 

   저자는 3~5장에 걸쳐 소련 경제가 몰락한 이유를 탐구했다. 1930년대 이후 소련의 엔지니어들은 정치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성과를 중시하는 생산 현장보다는 개인의 잘못이 잘 드러나지 않는 연구소를 선택했다. 그 자리에는 생산량 증가만을 목표로 삼는, 새로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이 부임했다.

   스탈린 시기 이후 소련 교육에서 인문 분야는 거의 말라 죽었다. 기술 교육에서 교양 교육은 반복되는 마르크스주의 주입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전문 분야 교육도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전인적인 엔지니어들을 양성하지 못하였다고 실패 원인을 밝혔다.

   마지막 5장에서는 대형 프로젝트 사업과 '빨리빨리'를 내세운 성과 위주의 노동 독려를 경제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노동자와 농민을 생각했다. 비록 대한민국이 생산량과 소득 면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국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들이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창의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리고 대형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나 댐 건설에서 인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엔지니어링을 설계하는지도 의문이다. 당장 4대강 사업으로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다. 또, 고령화되고 버려진 집이 늘어나는 농촌은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 책이 그에 대해서 많은 답을 제시하고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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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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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각종 공업기술이 확대일로를 걸으며 일취월장하고있었는데 영국과 독일이 앞장서면서 제정 러시아도 그 뒤를 쫓고 있었다.광산의 광물과 석탄채굴, 제철소의 제련기술 등이 그 국가의 위상과 경제력을 견인하는경쟁력의 원천이었다.독일이 비스마르크의 강한 프로이센제국의 바통을 이어 받아 기술혁신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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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각종 공업기술이 확대일로를 걸으며 일취월장하고

있었는데 영국과 독일이 앞장서면서 제정 러시아도 그 뒤를 쫓고 있었다.

광산의 광물과 석탄채굴, 제철소의 제련기술 등이 그 국가의 위상과 경제력을 견인하는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독일이 비스마르크의 강한 프로이센제국의 바통을 이어 받아 기술혁신을 이루는 동안

이 책의 주인공 팔친스키로 대변되는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 과학인들이 표진되어 있던 제정 러시아는 러일전쟁 등 각종 전쟁에

따른 군비지출과 정보의 유출, 부정부패 등 폐혜에 따른 왕정의 붕괴 우려 등 그 인적 자원

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2등 국가로 뒤처지고 있었다.

국가전복 또는, 반란혐의 등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유럽의 다른 국가로 피신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의 선진 산업기술을 접하고 체득하면서 자신의 조국에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방대한 자료와 기술력으로 러시아 산업기술의 토대를 쌓아 올리기도 했으나 자신의 지나치리 만큼 강직하고 자존심 강한 성품 탓에 번번이 구금되거나 좌절하고 가로막히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 등 나무랄 것이 없었지만 타협을 모르는 성격과 견제와 의심이 난무하는 볼세비키 혁명세력 수뇌부의 정치적 성향을 의식하지 않고 정치에 문외한인 순진한 과학자입장으로서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불운하다고 할 것이다.

레닌 시절엔 어느 정도 합리적고 국가의 체제와 발전을 점진적으로 해 나감으로 선진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비전아래 일정한 정도의 자율권과 연구개발 등 권한이 주어졌었지만 그 기간이 길지 못했고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갔다.

더욱이 멘세비키 혁명후 지도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주도적으로 러시아의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보려던 노력은 강력한 힘의 진공상태가 지속되며 사방에서 요구사항과 개선사항이 빈발하면서 나라전체의 치안과 정책의 혼란을 가져와 결국 급진적인 볼셰비키 혁명을 불러오는 결과가 발생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역사에는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멘셰비키 혁명세력이 안정을 찾고 그 추동력으로 국가건설이 되었더라면 동구권의 공산화와 소비에트 연방식의 역사적 후퇴는 없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 본다.

스탈린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럽 및 미국 등 선진제국과의 교류와 협력으로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수뇌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대결에서의 압도적 승리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기술력 혁신이나 제고 보다는 사상이나 성향에 집중하면서 선진국가 등극이라는 과실은 애시당초 싹도 키워 보지 못하고 고사하게 된다.

물론, 팔친스키외에도 러시아에는 수많은 과핛기술자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선진문물을 접해본 팔친스키와 그의 합리적인 사회주의 동료들은 배척되거나 제거대상이 되었고 이념에 충실한 공산당 과학자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그저 맹종하는 무비판적인 구성원들만 남게 됨으로써 창의적이고 진일보한 기술을 추구하는 과학자의 수는 급감했을 것이다.

책 내용에 나오는 드네프르강의 수력 발전소 계획이나 마그니토고르스크의 제철소도 결국엔 외부의 다른 국가와의 이념대결에 의한 명분으로 가장 크고 웅대하게 건설하는 것에만 방점이 찍혔지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나 노동자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는 소위 인민을 위한다는 혁명의 논리와도 정면으로 모순되는 정책으로 일관되었기에 엔지니어 집단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세계적인 공황으로 자본주의의 침체가 가속되고 정부주도의 강력한 개발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이념적 우위에서의 자신감이 팽배해 있었을 것이다.

팔친스키의 올곧은 특히,근로자 등 인간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고 기술개발은 그 수단과 발판이 된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대규모 건설과 설비, 국영농장화 등으로 세를 과시하려는 스탈린의 대규모 이주정책 등 현실과 동떨어진 조급증 환자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물은 고스란히 국가의 발전이 정체되고 퇴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공업우선의 정책으로 엔지니어를 양산했으나 특정 분야에만 한정된 기능인력으로 성장시켜 나무와 숲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긴 안목의 과학 엔지니어로 만들지 못한 것이 소련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졌고 마침내 1990년대 초반 고르바초프 대통령 때 연방이 붕괴되고 복속국들이 대거 독립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에 공감을 한다.

시공을 달리해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압축성장을 하던 시절 강력한 국가 주도의 중공업 육성정책을 시행해 소득 하위권 국가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성장을 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발과 성장 논리에 매몰되어 발전이 정체되어 선진국과 후발 주자 등의 사이에 끼어 위기를 느끼는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팔친스키로 상징되는 온건 실용주의파들의 역할이 필요한 때가 다시금 도래하고 있다는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리뷰를 마친다.

 

리뷰는 yes24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햇습니다.

p*******3 2017.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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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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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은 거의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네요. 미국과 함께 G2 불리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중국도 이미 정치 체제만 공산주의일뿐 경제는 자본주의로 빠르게 전환되었습니다. 냉전 초기만 해도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면서 기술적으로 앞서기도 했는데 언제부터 몰락이 시작되었을까요.'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이라는 책에서는 소련의 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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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은 거의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네요. 미국과 함께 G2 불리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중국도 이미 정치 체제만 공산주의일뿐 경제는 자본주의로 빠르게 전환되었습니다. 냉전 초기만 해도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면서 기술적으로 앞서기도 했는데 언제부터 몰락이 시작되었을까요.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이라는 책에서는 소련의 엔지니어였던 팔친스키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데, 당시 소련의 기술 수준이나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 등도 알 수 있네요. 책을 쓴 미국인 저자는 기술사를 전공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연구하기도 하였는데 팔친스키의 이름을 듣고 본격적으로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합니다.


소련에서는 팔친스키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싶었나봐요. 겨우겨우 자료를 찾았는데 복사 신청을 해도 안될것 같았지만 다행히 담당자가 관심이 없어서인지 사본을 구할 수 있었고, 이를 미국으로 보냄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담당자가 급하게 자료를 돌려달라고 한것을 보니 당시 대출이 거절되었다면 여전히 문서 속에 묻혀 있을것 같네요.


팔친스키는 스스로의 실력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유명 광업 학교에 합격을 합니다. 졸업 후 엘리트의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비밀 경찰에게 잡혀 부인도 모르게 처형이 되었을까요. 졸업 이후 처음에는 탄광 현장으로 발령을 받아 석탄의 채굴의 채산성이 낮은 이유를 분석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광부들의 삶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였네요. 탄광 노동자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 항상 배고프고, 바람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집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삶에 눈을 뜨게 되면서 투쟁을 하기도 하였는데 처음에는 공산당 지도부에 반발했지만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초기에 이뤄낸 성과를 보면서 조금씩 정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몇 번을 잡혔다가도 풀려나고, 풀려나자마자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적 때문에 정부에 협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찰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네요.


만약 공산당에서 팔친스키와 같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 기술자들을 존중하고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면 소련이 붕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기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주도하고 결과를 내세우기 위해 강압적으로 할당을 함으로써 결국 기술자들도 몸을 사리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었고 정해진 일만 하였네요. 기술이 몰락하면서 형식적으로 흐르게되자 전공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는데 제지공장용 볼 베어링 엔지니어를 별도로 배출한 것이 그 예입니다.


팔친스키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는데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간 개인의 삶을 통해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볼 수 있었네요. 어려운 내용이 없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는데 과거의 사례를 오늘날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달의 사락 p***s 2017.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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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 로렌 R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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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렌 R. 그레이엄은 소련 기술사를 연구하는 대표적 지식인으로,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소련 엔지니어를 탐구하며 근대 소련의 산업화와 기술 발달이 비효율적이고 정체된 원인을 찾고자 한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에 대한 소개글을 접했을 때 '표트로 팔친스키'라는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라 생각했고,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과 <1984>에서 사용한 것처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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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로렌 R. 그레이엄은 소련 기술사를 연구하는 대표적 지식인으로,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소련 엔지니어를 탐구하며 근대 소련의 산업화와 기술 발달이 비효율적이고 정체된 원인을 찾고자 한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에 대한 소개글을 접했을 때 '표트로 팔친스키'라는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라 생각했고,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과 <1984>에서 사용한 것처럼 주인공을 등장시켜 소련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자 하는 글일 것이라 짐작했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표트로 팔친스키는 1875년 대가족의 맏이로 태어나 엔지니어의 삶을 살다 1929년 처형당한 실존 인물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광업학교(현재의 대학)에 입학했지만 생활비 조달을 위해 철로, 공장, 광산 등에서 일해야 했다. 서유럽을 휩쓸었던 산업화의 물결에 뒤늦게 동참한 러시아의 노동환경은 극도로 열악했고, 그것을 직접 경험한 팔친스키는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 환경 개선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광업학교를 졸업 후 팔친스키가 부여받은 과업은 탄광의 노동자 문제였고 이 임무를 수행하며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통한 기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겼으며, 그의 사상은 전제정권의 위험요소로 인식되어 1905년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유배 중에도 엔지니어로서 광산 운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1908년 서유럽으로 도피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산업 컨설턴트로서 이름을 떨치고 성공적 삶을 살다가 1917년 왕정이 무너지자 소련으로 돌아온다. 임시 정부에서 일하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세력에게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꿈꿨지만 1917년 10월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임시 정부 수뇌부로 찍혀 체포된다.


 다행스럽게도 산업, 과학, 기술 분야의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던 소련의 정책에 따라 1919년 석방된다. 팔친스키는 뛰어난 기술적 능력으로 인해 여러 정부기관에 자문을 해주고 국책사업을 돕는 역활을 하면서 볼셰비키의 계획 경제 체제에 매력을 느낀다. 그는 광산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댐 건설, 철도와 광업 건설, 지도 작성, 항만 건설 등 소련의 발전을 꿈꾸는 엔지니어로서 사명을 다한다.  


 팔친스키는 지역적 특성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지역 계획'을 옹호하고 주장했으나 공산주의 하에서 엔지니어에게 주어진 임무는 의견의 제시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됐을 뿐이다. 조국의 발전을 꿈꾸며, 계획 경제 하의 산업화가 필요하고 그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의 자율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지만 이 또한 공산주의라는 벽에 부닥친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자 처우 개선, 교육 강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배분과 조화 등을 주장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절대 권력을 갖고자 했고 엔지니어의 자율성이나 노동자의 복지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팔친스키가 인간의 내부에서 생산성 향상을 찾은 반면, 스탈린은 기술이 생산성 향상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스탈린에게 엔지니어의 임무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스탈린의 정적 중 한 명이 엔지니어 단체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자, 정치적 이유를 빌미로 정적과 엔지니어를 탄압하고 숙청한다. 팔친스키는 소비에트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1929년 처형된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산업발전을 꿈꾸었던 팔친스키는 그가 장점이라고 착각했던 체제의 모순(이상적 사회주의와는 동떨어진 모습)에 부딪혀 죽음에 이른 것이다.


 스탈린은 실용성을 고려한 엔지니어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 과시하기 위한 전시행정을 추구하고, 엔지니어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자 국가 기간 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산업화는 점차적으로 힘을 잃는다. 객관적이고 사실적 조언을 하던 동료 엔지니어들이 숙청되거나 투옥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입바른 엔지니어는 사라지고 말도 안되는 공사나 사업일지라도 정권이 지시한 바를 이행하는 정도로 자신들의 역량을 축소시킨다.


 엔지니어는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사고에 힘을 쓰는 대신, 자신들에 주어진 생산 할당량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소련 정부는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교육에서 인문, 사회, 정치, 경제를 제외한 단순 기술직능 인력의 생산을 추구했고, 직능을 극도로 세분화함으로써 '제지 공장용 볼 베어링 엔지니어 학위'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체계로 나아간다. 전인교육과 다양한 지식으로부터 배제된 엔지니어는 사회발전에 대한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없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 공산당의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이 20세기 중후반 소련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편협한 교육 때문에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 무지했고, 전시성 사업이나 무모한 사업에 국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련의 8천만 노동자는 이 나라의 자연자원보다 훨신 주요한 생산력이지만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팔친스키의 말처럼 소련의 산업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적 엔지니어를 지향해야 한다는 팔친스키의 주장을 거부하고 단순한 테크니션을 쏟아내는 데 치중한 소련은, 반 세기가 흘렀을 때 붕괴를 맞이한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소련의 탄생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 전제주의 타파를 위한(솔직히 말하자면 빙자한)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 레닌의 사후 1924년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정적을 숙청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러일전쟁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러시아에 끼친 영향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지오엘의 <동물농장>이 소련의 공산주의를 알고 봤을 때 웃을 수 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6.25 전후 한국사를 알고 봤을 때 주인공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 또한 러시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소련의 탄생과 붕괴까지의 대략적인 과정을 그려봤을 때 제도의 중요성, 특히 교육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공산주의 하에 전시성 사업에 치중하고 다양성과 인본주의적 시각을 잃어버린 테크니션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 기술이 어디에,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이것이 결국 팔친스키를 죽이고 그 나라 자체를 죽인 원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소련과 소련의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도 발생 가능한 편협한 시선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도, 교육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진정한 엔지니어가 처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17.09.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