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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유가 중 가장 교조적인 입장으로 꼽히지만 형이상의 세계를 논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본류에서 이탈한 성격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가의 조종인 공자 본인부터가 "괴력 난신"을 말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리학적 세계관이 완전히 사상 조류와 사회 윤리 도그마로 자리잡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도, 오히려 정계의 주류는 성리학의 틀 안에서 여전히 주기론 쪽으로 기울었던 것입니다. 완고한 주리론을 주창했던 쪽은 중앙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남인이었습니다.
사실 성리학은 불교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수입되었으나 중국으로 들어온 후 고유의 개성을 더하며 오히려 독특한 깊이를 이뤄 낸 것이 대승불교인데요. 여기에서 심오하게 발전시킨 게 "불성론"입니다. 만물에는 모두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어, 각각이 수련 정진하고 마음으로부터 티끌을 걷어내면 성불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논의가, 마치 조선 후기 충청 노론과 경기 노론의 대혈전이었던 이른바 "인물성동이론"의 주된 줄기와 얼마나 유사한지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합니다.
이 오묘한 "불성론"에 대해 현대적 시각으로 철학적 재평가와 대 집성을 시도한 분은 라이용하이(賴永海. 뇌영해) 난징대 교수입니다. 이 중국어 저작을 우리말로 번역하신 분은 법지 스님이고, 남경대 불교 관련 저널 편집위원과 절강성 사회과학원(두 시설 간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객좌교수를 겸임한 고명한 학자이시기도 합니다. 바로 이 뇌영해 교수님을 직접 사사한 학문후속세대이기도 하죠.
만약 만물에 불성이 깃들었다면, 비록 꾸준한 수행(점수. 漸修)을 거쳐야만 하겠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도를 깨달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돈오(頓悟)는 불성론의 논리적 귀결일 뿐 아니라, 궤를 달리하는 입장의 공자 역시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궁극의 진리란, 미망에 사로잡힌 우리들이 현세의 허울만 걷어내면 한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근년 들어, 고 성철 스님 같은 분은 생전에 아예 "돈오돈수"까지를 논하셨으니 말입니다.
특히 선종의 후기 경향인 조사선(祖師禪)은 철저히 이 돈오론에 충실한 입장입니다. 어떻게 보면 선종의 핵심은 돈오론이고, 현대, 특히 대승 불교의 본체적 지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헌데 더 먼 근원을 "불성론"에서 파악하고, 이처럼이나 철학적 깊이를 치밀히 추구한 방대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건 정말 놀랍습니다. 책 서문에 보면 "... 가히 중국불교사 전체에 나타나는, 불성론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제를 다루고 있다"는 대목이 있는데, 저 역시 이 책을 다 읽어 내며 오히려 불교사개론 한 권을 완독한 듯 조밀한 학문적 깊이를 전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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