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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들고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
"청진기 들고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 내용보기
烈士가 된 醫師들      가요계에서 역주행이라는 말이 있다.어떤 노래가 발매 되었을 때는 반응이 미미하다가 몇 년 지나서 히트를 칠 때를 말한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역주행의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독립운동을 하신 분들한테 감히 이런 말을 써서 송구하지만 ^^. 읽다가 그랬다기 보다는, 음악들을 듣다가 무언가 영감처럼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의사교육
"청진기 들고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 내용보기

 

      烈士가 된 醫師

 

 

 

 

가요계에서 역주행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노래가 발매 되었을 때는 반응이 미미하다가 몇 년 지나서 히트를 칠 때를 말한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역주행의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한테 감히 이런 말을 써서 송구하지만 ^^.

 

읽다가 그랬다기 보다는, 음악들을 듣다가 무언가 영감처럼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의사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신 분들.

그분들은 청진기를 들고 조국의 독립에도 투신하셨다.

 

이태준, 김필순, 박서양, 황에스더.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숱한 의사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의 헌신적이었던 삶, 끝내 희생으로 삶을 마치셨던 삶.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이야기들.

누군가는 38, 41세에 순국하셨다.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뭉클해지고 벅차오른다.

  

  

책을 사 둔 것은 2년도 더 전이었다.

만화여서 인지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이 학교에서 배운 바가 없었기에, 신기하게, 유익하게 읽었다.

 

독립운동가 분들의 책을 읽으면

1차적으로 사실 History를 아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점차 어떤 멘토 다가오기 시작함을 느꼈다.

 

지금은 다행히도 식민 점령을 당한 조국이 아니다.

여전히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간헐적 일본의 역사 침략 속에 살지만

예전 강점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독립운동가 한분 한분이

그냥 교과서 속에, 역사책, 박물관에 박제된 감이 없지 않다.

 

천관웅의 밀알을 들으며 흥얼거리다가

황에스더의 신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래서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일제 강점기에 여러 여성들이 신교육을 받았고 그 중에 의사, 간호사 의료인이 적지 않았다.

 

김마리아 라는 분과 함께 황 에스더는 여성 의사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옥고를 치르시고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셨다가

돌아오셔서 해방을 맞고 1971년에 소천하셨다.

 

그분의 생활신조가 이랬다고 한다.

 

 

1. 네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성불성은 불문이다.

2. 선악간에 내가 심은 것은 언제든지 거둔다.

3. 이상이 위대할수록 그 실현의 때는 멀다.

4. 밀 한 알이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를 뚫고 지나 오면서

온 몸으로, 정신과 영혼으로 겪으신 것을 알기에

글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이태준은 몽골로 망명하여서 그곳에서 의술을 펼쳤다.

 

기술이 뛰어나서 수많은 이들이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결국 몽골 왕실의 주치의, 어의 御醫가 되셨다.

실력은 물론이요 인품이 너그러워서 몽골에서 이태준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밀정드라마 이몽은 김원봉을 소재로 했다.

 

의열단에는 헝가리인 마자르 가 있었다.

이 책으로 처음 안 것은, 마자르를 김원봉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이태준 이었다는 것이다.

 

  

 

 

일제는 집요하게 이태준을 감시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당시 소련의 한 정치 세력을 이용했다.

 

이태준은 의사였던 만큼 왕진을 다닐 일이 많았다.

드넓은 몽골에서 왕진을 다니는 일은 고되고 험한 일이었다.

또한 눈에 쉽게 띄는 행색일 수 밖에 없었다.

 

일제와 결탁을 해 사주를 받은 소련 군 부대가 이태준을 암살했다.

선생님의 나이는 38세 였다.


 

 

 

김필순은 안창호, 이회영과 함께 신민회 활동을 했다.

 

조선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1909년에 의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박서양도 같은 전임교수였다.

 

조국 땅에서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것도 고귀한 일이었다.

허나 김필순은 친구들 중에 독립운동가가 많았고, 기울어져가는 조국을 마냥 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중국 서간도로 망명길에 올랐다.

 

김필순은 독립운동을 위해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그래서 치치하얼에 이상촌을 건설하는데 착수한다.

 

책을 읽으며 감동하는건

의사 독립운동가 분들이 실력도 뛰어나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가 공식 의사가 되거나, 지역에서 선임하여 공무 公務로 의료를 도맡았다.

 

독립운동가들이

단순한 애국심, 격정적인 흥분으로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전문적인 지식으로 활동했다는 걸 자세히 알게 된다.

 

 

또한 그분들 대다수는 검소하게 살았고, 아니 이말로는 부족하게 가난하게 사셨다.

책에 나온 의사들은 나름대로 특권층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의사이기 전에,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독립 운동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기득권은 모두 버렸고, 몽골, 중국에서 난민처럼 떠도는 생활을 하셨다.

 

독립운동가들의 일가족, 친구들이 하나같이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그야말로 동고동락 했다.

 

 

저 분들의 실력, 독립운동에 헌신한 모습, 청빈한 생활, 따뜻한 인품까지.

어느 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눈물이 나게 감사했다.

 

  

 

그랬기에

이태준, 김필순이 일제의 계략과 밀정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을 때 너무도 통탄스러웠다.

눈물이 흘렀다.

 

지금의 나보다도

그때 이태준, 김필순의 가족, 그분들을 알았던 이들의 비통함이 느껴졌다.

 

 

만화의 형태를 통해서

실감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얼굴 표정이 감동을 배가시킨다.

 

지면에서 박서양은 다루지 못하지만

다음 기회에 자세히 쓰고 싶다.

 

  

 

 

이태준, 김필순, 박서양, 황에스더.  1944년에 순국한 김마리아는 김필순의 친척이었다.

 

 

이분들을 포함한 의사 독립운동가 분들.

 

자신의 거처, 진료소, 병원을 독립 운동의 거점으로 쓰면서 사생활이 거의 없었다.

 

의사라는 직업, 병원 공간이 오픈되어 있다 보니

일제의 타겟트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어 순국하시기도 했다.

 

책 한 장 한 장을 읽는 게 전부 감동이고

벅찼던 시간이었다.

 

 

먼 과거의, 나와 거리가 먼 의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삶에도 삼고 싶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신 분들.

 

 

독립운동은 나라를 위한다는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이웃들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한 생명을 구하는

 

개인 개인들의 사명감에 보다 가까웠다.

 

 

 

 

 2019

 Aslan

YES마니아 : 로얄 b********5 2019.11.0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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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심장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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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중에 의사였던 분들을 조명하는 역사 만화이다.박운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기획은 대한의사협회에서 했다.  청진기 들고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의사들. 그들의 이야기다.처음에는 단 네 분을 담고 있어서 단출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한분 한분의 삶과 투쟁이 뜨겁고 고귀했기에 책이 꽉 차고 남는다는 걸.) -->  이번에는 두 명의 독립운동가를 먼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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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중에 의사였던 분들을 조명하는 역사 만화이다.

박운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기획은 대한의사협회에서 했다.

 

청진기 들고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의사들. 그들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단 네 분을 담고 있어서 단출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한분 한분의 삶과 투쟁이 뜨겁고 고귀했기에 책이 꽉 차고 남는다는 걸.

 

이번에는 두 명의 독립운동가를 먼저 살펴본다.

김필순, 그리고 박서양.

 

두 사람은 공통분모가 있다. 제중원 의학교 졸업생이라는 것이다. 1908년 제1회 졸업생 7분이 배출되었고 두 사람은 동기동창이었다. 둘 다 나중에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책에는 나오지 않으나 1기 제중원 졸업생 거의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필순은 능력이 출중했다. 어학 습득 능력이 빨라서 의학교에서 원장 에비슨과 함께 의서를 번역했다. 졸업한 후에 교수로 부임해서 후배들을 양성했고 해부학 강의는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일제가 조선 군대를 해산했을 때 많은 조선군이 봉기했을 때 다친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치료하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은 궁핍하고 압제받으며 살아가는데 자신은 학교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에 죄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의학교를 떠난다. 에비슨은 그가 뛰어난 인재였기에 안타까웠지만 제자의 결심을 전적으로 응원하며 떠나보낸다.

 

1911년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일제는 조선에서부터 김필순을 감시했었고 만주에까지 감시의 손길을 뻗쳤다. 그래서 김필순은 1916년 러시아와 가까운 치치하얼로 거처를 옮긴다.

이때 조선과 일본에 있는 가족과 일가친지들을 모두 불러모은다.

김필순은 만주에서 이상촌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그곳에서 의사일을 계속하면서 조선인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할 꿈을 꾼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을 모색한다.

 

이 책을 읽으면 역사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이 서로 친분이 있고 서로 동지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 것들이 역사를 단절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게 느껴지게 한다.

김필순과 박서양이 동창이었고, 김필순은 도산 안창호와 절친이었다. 정확히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또한 지금 리뷰하지 않으나 이 책에서 담은 이태준도 김필순과 친구였다.

영화 밀정에는 헝가리인 무기제조업자가 나오는데 이는 실제인물이었다. 이 헝가리인을 김원봉에게 연결시켜준 사람이 이태준이었다.

 

김필순은 뛰어난 영어실력, 의술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병원이 있는 2층은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소의 역할을 했다.

 

이상촌의 설립에는 중국인의 도움도 있음을 알았다. 김필순의 인품을 신뢰한 지역의 군벌인 사람이 엄청난 규모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탄탄한 도움을 바탕으로 김필순은 조선인들의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했다.

 

그런데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는 나중에 죽음에도 연결되게 됨에 가슴이 아팠다.

이상촌은 생계회라는 이름의 자치조합이었다. 이곳은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때 김동우라는 수상한 인물이 김필순을 찾았다.

김동우는 영어교사로 왔는데 숙소가 없었고 김필순은 자기 집에서 머물라고 도와주었다.

 

그런데 김동우는 돈에 눈이 먼 인물이었고 일제에 끄나풀로 자처해 중국의 일본영사관을 찾아갔다. 보수를 받기로 하고 김필순의 집에서 기밀을 훔쳐 제공한다.

 

김필순은 19199월에 동료인 일본인 의사가 주는 우유를 간호사로부터 전해받았다. 아무런 의심없이 그 우유를 마시고는 김필순은 복통으로 쓰러졌고 1시간후에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은 1932년 한 영화배우의 기자회견에서 밝혀졌다. 그는 김염. 중국의 영화황제이며 김필순의 삼남인 김덕린이었다.

 

박서양은 백정으로 태어나서 제중원 1기 의사가 되었다. 그는 다른 운동가들에 비하면 격렬하거나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도 실력이 우수해서 졸업과 동시에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했다.

박서양에게는 남들과 다른 또 하나의 투쟁이 있었다. 그것은 백정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인한 거였다.

 

박서양의 아버지 박성춘은 당시에 갑오개혁 이후에 신분 철폐 운동에 적극 앞장섰던 인물이다. 미국 선교사는 조선인 활동가들과 함께 고종에게 직접 찾아가서 백정을 철폐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내무대신인 유길준이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조선에서 백정이라는 최하층 신분이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가 생긴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박서양이 의학교에서 의술을 가르칠 때도 여러 학생들이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을 통해 박서양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은 그가 무척 재능과 끼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거였다.

그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스물 무렵까지 백정으로써 차별을 가장 밑바닥에서 체감했다.

그러면서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평안도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아이들을 위한 사립학교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물리, 화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박서양이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음은 처음 알았다.

 

책에서는 신기한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지금 애국가를 작사한 인물은 두, 세 명의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윤치호, 안창호 그리고 김인식이다. 김인식은 어느날 민족학교의 교가 작사를 의뢰받고 생각하는 중에 박서양이 노래부르는 황실가를 들었다. 그 황실가의 가사가 현재의 애국가와 무척 비슷한 후렴을 공유한다.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동락하세.

 

같이 공부했던 김필순, 이태준은 경술국치 직후에 바로 중국으로 향했다. 박서양은 1917~8년에 중국으로 향했다. 바로 북간도였다.

작년에 제중원을 다룬 어린이 학습만화를 읽었었다. 그 때 가슴이 두근거린 부분이 북간도 라는 지명이었다. 북간도. 시인 윤동주의 고향이다.

박서양은 구세의원 이라는 병원을 열었는데 이 시기가 윤동주의 10대와 겹친다. 분명 윤동주는 그 병원을 알았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하면 박서양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사건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백정 출신으로서 20대를 거친 것만으로도 그가 직면한 세상은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느껴졌다.

 

또한 그의 마지막은 여러 가지 역사적은 상상을 하게 한다.

1930년까지 그는 간도에서 대한민국회 군 사령부에서 군의관으로 정식으로 임명되어 종전했다.

만주사변을 치르고 황해도에서 병원을 열어 활동했다. 그러다가 1940년에 서울 은평구의 지금의 수색역 자리로 이사를 했다. 그해 연말에 갑자기 사망했다.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 그가 어떤 병이나 사고로 죽었다는 기록도 없었다.

 

박서양은 중국에서부터 불령선인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랬기에 박서양의 죽음도 석연치 않았다. (나의 생각이다).

 

역사 만화로서 무척 뛰어난 작품이었다.

지난주에 박시백의 <35이라는 일제 시대를 다룬 역사만화를 읽었었다.

 

만화의 형태라고 해서 일반 역사책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나머지 분들인 이태준, 황에스더를 살펴볼 계획이다.\

황에스더는 여성으로서 의사이면서 도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이태준은 의사이면서 작년 광복절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일 처음 거명한 분이기도 했다.

YES마니아 : 로얄 b********5 2018.04.15.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