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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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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정확히는 교회)와 대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요즈음에 이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났다. 서보명 저자의 『대학의 몰락』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현재 대학의 위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책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여러 폐단이 발생하고 있고, 자본주의 논리는 어느새 교육으로까지 들어오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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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정확히는 교회)와 대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요즈음에 이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났다. 서보명 저자의 『대학의 몰락』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현재 대학의 위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책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여러 폐단이 발생하고 있고, 자본주의 논리는 어느새 교육으로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서열화된 대학의 모습과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대학의 노력들에 대해서 저자는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교육에 있어서의 평가에 대해서 저자는 '교육과 배움의 과정을 인격과 깨달음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기술적 차원에서 질적으로 양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것(p.39)'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을 평가하고 교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저자의 견해와는 달리 나는 교육행정상에 있어서도 평가를 통해 환류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가는 점수를 매기거나 수치화하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평가를 통해 학습동기 유발과 자신이 몰랐던 내용을 확인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평가를 통한 학습이 이루어진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내용이 교육적 목표를 수행하였는지를 확인하고, 평가를 통해 아이들의 이해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교육에 있어서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노력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교육의 질적인 향상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적 시각이라며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는 교육행정상에 있어서도 '교육에서의 질 관리를 위한 평가'는 적절한 방향이고, 심지어 대학 내의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는가, 대학의 행정은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대학을 평가하는 메타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지금의 평가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하는 기준과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것이고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평가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논의로 이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재 대학에서의 교육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이 학문을 위한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상품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안한 사회적 상황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교육의 역할 중에는 사회화도 있는데, 때문에 대학 교육이 사회의 필요에 맞는 인재를 기르게 되는 것은 교육의 사회화로 바라볼 수도 있는 일이며 그렇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 대학 자체의 문제로만 지적하기 보다는 현재 사회의 구조로 확장시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 대학의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논리가 교육에도 들어오게 되면서 공급 경쟁을 통해 수요자의 질적인 선택을 보장하게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이 늘어나면서 각 대학들이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광고를 하거나 홍보를 위한 노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은 애초에 설립 이념과 목표를 등한시하고 운영에 급급한 나머지 자본 체제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 체제에서 비슷한 문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특목고,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자공고),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 학교 체제를 다양화하여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이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고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는 일반고에 비해 다양한 자율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바로 등록금 책정권과 학생 선발의 자율권, 교육과정상의 자율권 등이었다.

 

 그러나 교육적 목적을 뒷받침하는 제도 없이 시행되어 발생한 폐단들은 이러했다. 등록금 책정권의 자율로 학생들은 일반고의 3배 이상의 교육비를 부담하게 되었고, 학생선발의 자율권은 자사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가 우수 학생을 독점하게 하여 입시 경쟁에서 좋은 결과를 거둠으로써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서열화를 야기하였다. 애초에 고교 입시의 부정적인 문제들을 지적하여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으로 제기된 이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가 오히려 고교 서열화를 부활시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상의 자율권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현하는데 편성·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입시 교육에 도움이 되는 과목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획일적인 교육을 야기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통해 우리나라의 의식적 개선 없이, 그리고 정책 목표에 알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 없이는 주어지는 자율이 악용되는 폐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지금의 대학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인화를 비롯하여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제도의 시행이 앞서 언급한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맥락을 같이하는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와 다른 결과를 가지게 될 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대학은 별개의, 세속적 논리와는 다른 학문적 터전이 되고 비판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 반은 동감하고 반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대학은 사회에서 논의하지 않고 배제되는 의견들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학은 상아탑처럼 현실 사회와 따로 떨어진 위치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그 교육적 터전을 공고히 해야 한다.

 

 저자는 신학적인 내용을 많이 언급하면서 세상과는 다른 그 무엇에 대해 신앙을 인용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신앙이 정말 세속과 다른 곳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실 사회에 적응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이 별개의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기반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지 못했던 현재 기독교도들이 신앙과 세상에 대한 이 이원적 괴리는 칸막이 현상을 낳아 신앙의 영역과 일상 생활의 영역을 분리시켰고, 교회에서만 믿는 크리스천 그런데 세상에 나가면 일반인보다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자본의 논리대로 행동하는 역설적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칸막이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신앙, 그리고 현실을 기반으로 한 교육의 터전이 더욱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 현실을 세속으로 분리하고 인간을 절대 타락자, 절대 죄성으로 바라보는 중세적 인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을 확립하고 스스로 사고하면서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오래된 교회의 믿음은, 오늘날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학문이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세상을 향한 공통된 목적의식과 통합성을 지닐 수 있는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p. 197)

 

 신앙적인 관점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 속에서 신앙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보다 알맞은 접근 방법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심지어는 몇 번 세속으로도 언급되었던)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이와 분리되려는 노력을 계속 확인할 수 있었는데 부정적인 폐단이 있다면 이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을 통해 현실과 이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서에 기반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진정한 현실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쓰임받을 수 있는 길이다.  



p****p 2014.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