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모든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선합니다. 폭군의 통치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라고 표현하는 신학자(몰트만)도 있습니다. 어떠한 표현이든 하나님의 선한 다스림은 모든 영역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을 때 가장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샬롬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없더라도, 부강한 나라는 여전히 약한 나라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박합니다. 진정한 샬롬은 모든 관계의 화목을 전제로 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친밀하게 어우러집니다. 결국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샬롬이 뒤따르게 됩니다. 복음을 믿는 공동체는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메시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평화, 화해, 정의, 환대의 삶을 사는 것이 곳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된 삶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한 명이 도로시 데이(Dorothy Day)입니다. 도로시 데이의 삶을 직간접적 목격하여 기록한 이 책 『환대하는 삶』의 저자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그는 도로시 데이와의 만남을 서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와의 감동적인 만남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자만심과 오만, 특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자는 도로시 데이와의 영적 교감과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을 회고합니다. 도로시 데이의 젊은 시절은 자유 자체였습니다. 매우 급진적이었던 그녀는 어떤 면에서 방탕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이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급진주의 신문 '가톨릭 일꾼'을 펴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녀는 대접하는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의 구분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녀는 '환대의 집'을 엽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여, 작은 부분부터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녀는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했습니다. 평화를 빼앗긴 자들에게는 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아픔과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몸을 통해 사랑을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드러내는 삶에서 극복하고 던져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무심함인 것이죠. 자신만을 위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배려나 공감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도로시 데이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세상 가운데서 낮아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들과 부대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함께하며, 위로하며, 기꺼이 자신을 던졌습니다. 참으로 헌신적이었지만, 매우 진실한 사람이었던 도로시 데이. 그리하여 논쟁거리도 많지만, 우리는 그녀의 삶을 통해 베풀고 나누며, 샬롬을 위해 자신을 던진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진 사람과 마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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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삶>의 주인공 도로시 데이는 이 땅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준다. 그녀는 가톨릭 수녀로서 자신의 생애를 공동체를 위해 바쳐왔다.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을 나에게 하듯 대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환대의 집'이라는 쉼터를 운영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어떤 이들은 도로시 데이에게 "훌륭한 일을 하신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당신의 일이 인정받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진저리가 난다"고 표현한다. "훌륭한 일을 하신다"는 극찬이 나쁜 이유는, 그 안에 화자는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훌륭한 일"로 치부해버림으로써 자신은 그 역할에서 살짝 비껴난다. 나는 도로시 데이가 "진저리가 난다"는 거친 단어로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함께하기 위해 마땅히 서로를 돕는 것이다. 남을 돕는 일이 "훌륭한 일" 또는 "칭찬받아야 할 특별한 일"로 치부될 경우, 이는 곧 "보편적이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칭찬받거나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닌, 공동체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수녀인 동시에 <가톨릭 일꾼>이라는 진보적인 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인이고, 사회적인 발언을 통해 대중을 만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종교에 귀의한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와 비슷한 모습을 우리나라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가끔 보수 신문들은 "종교가 정치를 한다"는 말로 가톨릭의 정의구현사제단을 공격하곤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셨다. 나는 이 말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가 서로의 나무가 되어주어야 함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가난한 자가 "나 여기 있다"고,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상황이라면 얼른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내가 함께하겠다"고 연대하는 것이 공동체의 몫이다. 교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라면, "가난한 이들에게 나에게 하듯 대접하라"고 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기도했다면, 오히려 종교인일수록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도로시 데이와 정의구현사제단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이를 "훌륭한 일"로 치부하며 주체에서 벗어나거나, "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라며 근엄함을 지키는 것 모두 결국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80여 년의 삶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나갔다. 도로시 데이에 대해 좀더 공부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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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먼저 카톨릭을 믿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책은 로버트 콜스가 도로시 메이라는 카톨릭 교도를 만나고 쓴 인터뷰이다. 개인적으로는 도로시 메이라는 사람을 처음 들어 보았다. 수녀는 아니다. 그냥 교인이다. 도로시 메이가 젊을 적 사회주의자로서 삶을 거쳐 카톨릭 교도로 회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생각의 변화가 잘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알 수 있었다. 첫째, 행동하는 믿음이다. 둘째, 회의하는 믿음이다. 셋째,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일치다. 그녀가 사회주의자로서 삶의 대안으로서 카톨릭으로 회심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전반기 삶과 후반기 삶의 불일치를 찾을 수 없다. 일관되게 낮은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희생하는 삶이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자신과 교회에 대한 회의다. 끊임없이 묻는다. 자신은 교만하지 않은가. 또 흔들린다. 또 묻는다. 그 회의는 거대 권력이 되어 버린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살면서 교회라는 권력과 갈등한다. 책읽기를 좋아했고, 명상을 좋아했으며,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나, 평생을 공동체 속에서 딸을 키우며 낮은 사람들과 어울려 그녀 자신이 낮은 사람이 되어 살았다. 불교수행을 하며, 불교수행을 단지 기술적인 문제로 생각하다가, 다시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정도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계, 정, 혜 삼학.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종교적인 삶과 종교적이지 않은 삶의 경계는 무엇일까. 진리와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 종교와 비종교의 울타리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도로시 메이의 삶에서 진정한 삶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종교와 비종교라는 이분법 한참 너머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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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로시 데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녀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로버트 콜스라고 하는 한 정신분석학자가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만만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도로시 데이가 얘기하고 있는 가톨릭 용어들이 섞인 영성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런 이유로 읽기에 버거웠다는 지루한 서두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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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젊음을 바쳤고, 어떤 운명에 이끌려 가톨릭 신자가 된 뒤에는(회심이라고 한다) '가톨릭 일꾼'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해 '환대의 집'을 운영하여 수많은 가난한 자들의 삶의 동반자로 평생을 살다간 평화운동가였다.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그녀가 살았던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보건데, 그녀의 행보는 온통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산업사회로 진입한 당시 미국에는 흑백 인종 문제 뿐만 아니라, 빈곤의 문제, 반전 운동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고, 그녀는 불과 스무 살이던 1917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과 함께 행진을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갈 정도였다. 당시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지금 이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젊은 시절,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던 열혈 사회운동가였던 도로시는 딸이 태어나던 해인 1927년,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다른 행보를 택한다. 물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 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심리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콜스는 찾아내려 한다. 당시 가톨릭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기 보다는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하거나, 부자 편에 서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많았는데, 이상주의에 빠져있던 도로시가 왜 하필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는지는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의문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나 그녀가 딸을 세례받게 하는 바람에 이혼하게 된 남편 포스터 배터햄이 그녀에게 '누구지? 당신을 가톨릭으로 몰아간 사람이?"라고 물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종교란 인민의 아편이 아니었던가?
"나의 회심 말이지요? 나의 회심은 내가 자신에게 말을 하는 방법이었어요. 내가 어딘가로 가려 한다는 걸 알고, 남은 인생 동안 그곳에 가려 노력하면서, 정처 없는 짧은 여행이나 소풍에 정신이 산란해지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에게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회심은 과거 관점으로부터의 극적인 전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새롭게 긍정한 사고방식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었다. 예수의 삶과 예수의 설교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교회에 발을 들여 놓기 오래 전에 지지했던 이상과 조화를 이루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에 회심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가톨릭에 귀의한 후에는 '가톨릭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동료 피터 모린과 단돈 57달러로 시작한 <가톨릭 일꾼>은 공동체주의, 평등주의, 민중주의를 제시하며 아무도 관심없어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한다.
"우리가 기본 원리로 삼은 것은 노동자의 생산수단 소유, 조립 라인 폐지, 공장의 분산, 수공업의 회복과 토지 소유를 추구하는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 경제에서 농업과 지방을 강조한다는 뜻이며, 도시에서 지방으로 중점을 옮긴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C.더글러스 러미스가 주장했던 중간기술, 불교경제와도 맥이 닿는 것들을 주장했던 것. 역시 최고의 생각은 최고의 사람들끼리 통하는가 보다. 특히 '가톨릭 일꾼 운동'의 주요 사업중 하나였던 <환대의 집>은, 노숙자를 비롯해 가난한 이들에게 흔히 무료 급식소에서 하듯 줄을 서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풀기보다는 그들을 손님으로 맞아 먹을거리와 잠 잘 곳을 대접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로시 데이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있었다. "가톨릭 일꾼 운동이 비현실적이며 그것으로는 이 나라가 가진 문제점의 99퍼센트에 어떤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리라"의 비판적 견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문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환대의 집'에서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상의 실천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루 24시간을 '지역' 현장에서 민중을 만나며 함께하는 것이 그녀가 택한 '혁명'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태도, 도덕적 삶, 인간으로서의 총제적인 윤리적 목표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전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이 대하는 사람들의 위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도로시 데이의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 그것은 '행세하는 태도'였다. 조금은 병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시 데이는 로버트 콜스와의 대화에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책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혹한 자기 검열이었다. 그런 엄격함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수의 모습을 닮아간 것 아닐까 싶다. 요즘처럼 남의 말 하기 좋은 시대에 도로시 데이의 삶은 내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말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삶은 나의 이상에 맞닿아 있는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내 삶은 지향점이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녀의 자선전을 먼저 읽고 접했으면 더 좋았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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