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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정치 이야기를 한다. 아니면 경제 걱정을 한다. 하나 같이 애국자다. 그렇게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라는 이 모양 이 꼴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선거철이라도 되면 물 만난 고기들 같다. 가끔은 침까지 튀기며 목소리를 높인다. 언성이 높아지다 못해 서로 공방전이 오가기도 한다. 어쩜 그렇게 정치, 경제에 박학다식한지 그 지식의 원천이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루는 지나가는 말로 내가 물었다. "이런 얘기 말고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하면 안 돼? 남자들은 왜 맨날 모이기만 하면 지치지도 않고 똑같은 이야기만 해?"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건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수컷끼리의 신경전이나 탐색전일 수도 있고. 남자들은 자기 이야기 잘 못해. 솔직히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그런 주제 상당히 어려워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오픈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개 중 몇 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몇 명은 '이 여자가 왜 물을 흐리지?'하는 표정이다. 난 그런데 그 남자가 꽤 솔직했다고 본다. (한국) 남자들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그에 앞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참 곤혹스러워 한다. 정치나 경제 같은 데 매몰되어 있는 편이 그들에게는 편안하다. 그게 남자다워보이기도 하고 있어 보이기도 하니깐. 문학이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남성 작가들은 거대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워하고 약간은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도 있는 듯하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문학의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역으로 한없이 가벼워지는 경우는 있어도 소소한 일상이나 사적인 고민이나 감정 등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작가는 드물다. 그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타인들의 눈을 의식하는 건지(타인들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재익은 좀 특이하다.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늘 일상을 흐른다.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 또는 친구, 혹은 동네 주민 중 누구의 이야기라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으나,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 건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구. 공기처럼, 문화처럼 그런 거라구. 강남 좌파는 좌파 아니냐구? 뭐 이런 항변을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런 모든 것들을 떠나서, 작품만 두고 보자면 잘 읽히고 쉽게 이입이 된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대개는 남자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또한 매우 독특하다. 수많은 연애소설들이 양산되지만, 대개의 경우 여성 작가에 의해 씌여진 여성의 심리 위주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사랑의 반쪽이라면, 이재익은 그 나머지 반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오해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린다. '남자들은 이럴 때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남자들은 여자가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때 이런 기분이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 물론 사랑에만 전념하는 남자, 가능할까? 의구심도 들 수 있다. 개인을 둘러싼 거대담론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오롯이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 그런데 이재익은 욕을 먹든 돌을 맞든 자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전념한다. 그건... 여전히 정치적인 사회에서 매우 용기 있는 행위일 수 있다. 남자라면 이러이러해야한다거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거나 지식인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데서 스스로 자유롭다. 그런 것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각자 각자가 소우주라면, 그 인간들 개개인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인간들 사이의 교감이나 교류를 이해하는 것도 어떤 큰 담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정치만큼 사랑도 중요해. 밥만큼 사랑도 중요해. 돈만큼 사랑도 중요해.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뭔데? 누군가 질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게. 이재익이 말하는 사랑은 지극히 이상적이다. 그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조건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에 회의를 품는다. 사랑이 뭐지? 그는 항상 질문하고 궁구한다. 그건 너처럼 다 가져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나 사치 아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물질적인 아쉬움 없이 다 가져보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바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건, 누구나 갈구하는 것 아닌가?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은 할 수 있다지만, 사람들이 사랑에서 갈구하는 것 중 하나는 소통과 이해일 것이다. 온전히 이해받기. 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귀담아 들어주고 받아들여주고 품어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그게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바람이 아닐까 싶다. 소통에의 갈구. 이해에의 갈구. 따라서 겉으로 완벽해보이는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마음 속 어떤 결핍에서 기인한 이러한 애정 추구는 어찌 보면 경우에 따라 애정결핍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재익의 경우 독특한 것은 적어도 그에게는 그것이 애정결핍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기는 하지만 능동적으로 직접 찾아나서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그 사랑이, 그 사람이 찾아오기를. 그런데 그것이 꼭 수동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릴 수 있다는, 찾아올 것이라는. 호들갑스럽지 않고 쿨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딱 심장의 온도만큼 따뜻한 것은 그 내면에 그런 인간다움,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나같은 독자가 ‘남자’의 사랑이야기, 사랑에 전념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즉, 이재익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어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을 궁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고 그를 통해 소우주인 타인(들)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게 '레몬'이다.
* ‘레몬’은 『카시오페아공주』에 수록된 단편들 중 하나이다. 나는 오디오북으로 접했다. 러닝 타임이 65분이 조금 넘는데, 성우들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되어 좋았다. 스토리 위주의 작품엔 지나치게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드는 것보다 이런 제작 방법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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