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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가는 길...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산사를 찾아갈 때 걸어올라가야 하는 그 길이 좋은 까닭이다. 짧든 길든 절에 이르기 위해 가야하는 그 길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이때다 싶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테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산사가는 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절이 속세로 내려오고 있는 듯 하다. 중생이 속세의 번민을 내려놓기 위해 절을 찾아가는 것이 도리일텐데 왠일인지 그 중생을 찾아 절이 환속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절은 산에 있어야 제 맛이다. 그것도 자연과 함께 어울어져 하나의 몸체처럼 느껴진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무소유를 화두로 삼았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절이 존재한다면 굳이 속세로 내려올 필요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꾸만 속세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다.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 싶은 욕심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일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서글프게도 지금은 '옷깃만 스쳐도 베인다'라는 말로 변해가고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산중의 절을 찾아가는 지은이는 인연을 말한다. 因緣... 내가 오려고 결심했던 것이 인因이라면 나를 오게 한 그 무엇은 연緣이 아니겠는가. 인연을 생각하면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 지은이가 말할 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똑같은 절을 찾아가는데도 어떤 절은 언젠가 한번은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가하면 어떤 절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저 휭하니 둘러보기만 하는 곳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인연일 것이다. 왠지 기시감이 들 때 우리는 흔히 전생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이었나봐, 하는 식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자연과의 일체감이 깊은 절일수록 그 기시감이 커진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습게도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한그루 나무였거나 산사의 한쪽 구석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잡초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지은이가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절은 남도의 작은 절들이다. 순례길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다가온다. 그 중에서 내가 찾아가 본 절도 몇 되고, 그 중에서도 능가산 개암사와 청량산 문수사는 지금까지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절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절들은 동네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장소가 많다는 거다. 관광안내지나 관청에서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더 쉽게 말한다면 그다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절인 모양이다. 능가산 내소사는 알아도 개암사를 찾아가는 이들은 드물다. 또한 문수사 역시 교통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절들을 찾아나선 지은이의 발길을 따라 운달산 김룡사와 사자산 쌍봉사, 영구산 운주사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요즘은 찾아가는 절마다 불사가 한창인 곳이 많다. 경기도의 이름있는 절을 찾았다가 관음전 불사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는 통에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 전각들에 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던 것이 그렇게 만든 이유였다. 궁금하면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니 어찌하랴! 불사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지은이의 말처럼 기왕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연과 하나로 어울어진 산사를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지은이는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으로 표현해 주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절이 안고 있는 포근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지은이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안내판을 좀 정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무키'라고 하면 될 것을 '수고'라 하고, ''나무둘레'라고 하면 될 것을 '흉고둘레'라고 한다. '수령'을 '나무나이'로 '노거수'를 '오래된 나무'라고 하면 얼마나 쉽고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일인가(-165쪽) 정말 그렇게만 해준다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은이가 찾아간 절은 많았다. 찾아가는 발걸음속에서 나는 그 절의 역사와 유래와 참맛을 보게 된다. 지은이만의 눈길로, 마음으로 읽는 절의 이미지를 나도 함께 보는 것이다. 한 귀퉁이의 작은 돌부처가 더 정겨울 수도 있으며 보물이 아닌 것이라해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 자리에 있어주니 더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포장되어진 어떤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들로부터 울림을 전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절에는 詩가 있어야 한다. 절은 한 권의 詩集이어야 한다. 이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詩란 말씀 言자와 절 寺가 결홥된 것,이라는 지은이의 말이 속깊게 다가온다. 詩가 있는 山寺를 찾아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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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따라 절에 자주 가곤 했지만 부모님께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는 동안 나는 밖에서 주변 풍광들을 구경하곤 했다. 절 자체의 고즈넉함을 좋아할 뿐 종교로서 불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도 처음엔 나와 같은 생각이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몇 번을 권유하셨지만 요지부동이셨던 지라 어머니께서도 권유를 포기하시고 혼자 절을 올리시고 아버지께서는 나처럼 대웅전(大雄殿) 마당에서 탑과 탱화들을 둘러보시곤 하셨다. 그러시던 아버지께서 지금은 절에 가시면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신다. 아버지께서 절을 올리기 시작한 때가 바로 하시던 사업이 실패하시고 친구 분께 서주셨던 보증이 잘못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던 시절 무렵부터라고 한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으로 심사가 어지러우셨던 아버지께서 대웅전 부처님께 간절히 절을 올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절로 마음이 움직여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게 되었고, 어느새 가슴 속에 맺혔던 울분과 원망이 말끔히 씻겨나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셨다고 한다. 지금도 불교를 정식으로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 - 그 대상이 부처님일 수 도 교회의 예수님일 수도 있다. 즉 대상을 한정하지 말고 - 에게 무릎을 꿇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다 보면 교만했던 마음이 절로 사라지고 지극히 겸손해짐을 깨닫게 되고 욕심으로 들끓었던 마음도 어느새 평온함을 되찾게 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절에 가시면 꼭 어머니와 함께 절을 올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지금부터 소개하는 정찬주 작가의 남도 절 순례기인 <절은 절하는 곳이다(이랑/2011년 2월 14일)>을 보신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싶어 책 표지 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작가 이력을 살펴보니 작년에 참 감명깊게 읽었던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소유>를 쓴 바로 그 “정찬주” 작가였다, 그 책에서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으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순례한 남도의 작은 사찰들을 소개하는 글을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은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작은 절들과 인연 따라 조우한 순례의 기행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추천한 작은 절들만 찾아 떠난 자연스러운 여정으로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자신을 맑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 글을 쓴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법당에 들어 절하는 것이 더욱 절절해지는, ‘아! 절은 절하는 곳이구나“하는 단순한 깨달음을 자각한 것처럼 독자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무심코 순례하다 보면 자기 자신만의 깨어 있는 눈을 찾게 되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책 본문에 들어가면 남도(南道)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절 43 곳을 “옳거니 그르거니 내 몰라라”, “산이든 물이든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이라네”라는 선향(禪香) 가득한 네 개의 문구로 나누어 각 절마다 작가가 직접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절에 얽힌 전설들, 작가의 감상들을 7~8 페이지의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중 승보 종찰이 된 조계산 송광사 못지 않게 역사적 유례가 깊은 동명사찰인 종남산 송광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신의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손녀 딸 몸을 빌어 아들 내외를 혼내준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지리산 칠불사,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공포 소설인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에서도 소재로 쓰였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절은 절하는 곳이다”라는 소개글이 달린 영구사 운주사 등이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작년 이맘때 참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금강스님/불광출판사)>인 바로 달마산 미황사 소개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작년에 저 책을 일고 앞으로 남도로 떠나는 내 여행 길에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와 함께 금강스님이 보내주신 초대장인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이 함께 할 것이며 오래전부터 꿈꿔온 보길도 여행길에 미황사에서 들려 한 참을 머무르게 될 것 같다고 감상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사찰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시는 금강스님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P.57~58)을 설명하는 문구인 “미황사 노을에는 금강 스님의 발원이 담겨 있다. 미황사 노을이 절과 땅끝 마을 사람들, 서해 바다와 외로운 섬들을 한 가지 빛깔로 물들이듯, 스님의 마음 또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차별 없이 신명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59 라는 미황사 소개글 마지막 문구를 읽고 나니 미황사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또한 나처럼 불상을 향해 절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노악산 남장사 편 머지막 문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불상을 향해 절하는 이를 우상을 믿는 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장사의 소박한 법당 앞에 무심코 한번 서보거나, 자기 내면에 자리한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법당 마룻바닥에 앉아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그렇다. 불상이란 우상이 아니라 순간적이나마 삼독三毒을 씻고 홀연히 만나야 할 미소 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 P.217 즉 종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해보는 일종의 거울로서 불상을 대하라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작은 흉터는 그냥 지나쳐 버리듯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찬찬히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슴 속 수많은 생채기들을 발견할 수 있고 결코 풀릴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가슴 속 응어리 또한 어느새 풀어낼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그래서 다음 번 절에 갈때는 나도 대웅전 부처님 앞에 서서 내면의 자화상과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절을 올려봐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남도 여행은 줄곧 계획만 세울 뿐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는 지라, 설사 절에 가봤더라도 유명 대찰(大刹) 위주였는지라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모두가 가본 곳이 한 곳도 없어 그저 이렇게 책으로만 가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한정된 분량에 많은 절들을 소개하다 보니 각 절들의 보다 많은 정취와 풍광을 접할 수 가 없던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여운에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을 들춰 보았다. 남도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절들이 눈에서 쉬이 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번 본가인 대전에 내려갈 때 이 책을 아버지께 선물해드릴 예정이다. 남도 쪽 절을 자주 찾아가셨던 터라 아시는 절도 많으셔서 꽤나 반가워하실 것 같다. 그리고 언제 떠날지 모를 나의 남도 답사 여행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와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과 함께 이 책 <절은 절하는 곳이다>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절들의 풍경 속에 나 자신도 하나의 풍경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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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숲에서 누구는 외롭다. 그리고 누구는 사람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이 심란하다. 살아가는 일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버거운 일이기도 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는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그럴 때 책은 좋은 친구가 되는데 <절은 절하는 곳이다>가 그랬다.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의 작은 절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해진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남도를 좋아해서인지 언젠가는 나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예전부터 어머니와 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는데 언제가 되더라도 이 책을 떠올리며 꼭 가봐야겠다. 종교에 관계없이 절이란 곳은 누가 들어서건 간에 마음에 이는 칼바람을 잠재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저자의 마음이 공명하여 큰 떨림이 되었다.
일단 저자가 정찬주였기에 이런 책이 나왔을 테지. 노을의 황금빛깔로 물든 미황사를 보며(책의 사진.) 어느 가을 보았든 이름 모를 절의 풍경이 선했다. 눈부시게 빛이 나서 서까래며 벽면 등을 물든 고운 빛을 정확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는 모습 그리고 불심과 다도에 조예가 깊은 그답게 글 곳곳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좋았다.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 고유의 풍경이나 느낌이 있는데 책에서 풍기는 게 딱 그였다. 갑자기 <하늘의 도>라는 그가 쓴 책이 떠오른다. 발자국을 남기며 눈 위에서 걸음을 떼던 모습과 책 등장인물의 내면이 혼재되 시공간을 무너뜨리는 듯하다.
위에서 말했듯 저자의 문장력과 더불어 여러 절에 대한 간략한 설화 등과 사진이 함께한다. 특성상 많은 곳을 짤막하게 소개하다 보면 지루할 만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번에 읽지말고 쉬어갈 때마다 펼쳐야 할 책이었다. 유마사에서 '살아있는 부처를 무서워하라'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역시 설화의 일부라 전체를 소개하지는 못하고 큰소리로 꾸짖는 말을 옮겨본다. "너는 종이에 그린 부처는 무서워하면서 어찌 살아 있는 부처는 무서워하지 않느냐!" (109쪽.) 어쩌면 어디선가 들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는데 그곳이 유마사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유명한 운주사의 거지부처가 문득 보고 싶어진다.
저절로 절하게 하는 거지부처이다. 욕심도 사랑도 미움도 다 버린 무욕無慾의 얼굴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복잡한 나로서는 결코 닮지 못할 얼굴이다.
(290쪽.)
설화는 당시 상황의 재현이다. 민중이 바라는 희망을 담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절마다 간직한 역사에서 꺾이지 않는 희망이 보인다. 시詩가 말言과 절寺이 합쳐졌다며 절에서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되돌아보라는 저자의 말 또한 잊지 못하겠다. 침묵의 언어는 시가 된다고 했으니까.
절의 수를 줄이고 더 자세하게 실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순례길에 만난 절들이라 하나하나 그에 걸맞은 풍경을 독자에게 전한다. 수행이 수행자만의 것이 아니듯 책을 접하는 독자 또한 자신만의 수행을 정진하라는 거 같다. 미래나 삶에 대한 행복한 기대감보다 더 떨리는 것은 현재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아는 일이다. 그리하면 수없이 내 몸과 마음이 부서져 망가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맑은 차 한 잔 우려내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단순한 절소개서가 아닌 명상서처럼 마음을 안아준 책이었다. 물론 저자처럼 불심까지 있다면 더욱 몰입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의 일기예보란 게 없는 우리 모두에게 한순간이나마 마음의 고요를 보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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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때 불자인 척 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 불교를 믿으셨던 할머니를 따라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절에 가곤 했었다. 절이 바로 동네 뒷산에 있었기 때문에 절에 큰 행사가 있지 않을 때도 종종 친구들과 놀러가곤 했었다. 동네가 외진 시골이었기에 특별히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없었고, 어른들은 모두 농사일에 바쁘셨다. 그때 우리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때로는 맛있는 간식도 얻어 먹을 수 있는 곳! 바로 절이었다. 덕분에 절은 당시 어린 나의 놀이터였다. 아!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스님의 일손을 거들기도 했었다. ^^;; 벌써 20여년 전의 일인지라 그때 절에 머무르셨던 스님의 성함도, 스님의 얼굴도 기억이 흐릿하다. 그럼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래서 그런지 현재는 불자가 아님에도 '절'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낌다. 그때의 산세와 그때의 평화로움이 자동적으로 생각나기 때문이다. 2년 전 쯤에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을 때, 친구가 바람을 좀 쐬러 가자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절에 가볼래?" 했었다. 특정 절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절'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럼 좀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정상 멀리 가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근처의 작은 절에 가서 기웃(?)거리고 왔었는데 생각했었던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생각하고 갔었는데 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좀 부산했던 것 같다 - 아니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 졌었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 '절'이라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읽어보고 싶었다. 가끔 TV에서 절에 대해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보가 많지 않았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았고..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이렇게 절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는 책을 보고 싶었다. 책은 저자분께서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의 여러 절을 직접 답사를 하신 후에 쓰신 책이다. 절에 관련된 이야기나 발걸음을 옮기면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 그리고 절에 관한 정보-가는 길이 짧게나마 적혀 있다 - 들. 예상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하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다루고 있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산 속에 위치하여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절들과 그에 속해 있는 탑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산중불교'라는 말-원래는 그렇지 않았다가 조선 이후 불교 억압정책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절'이라고 하면 고요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우리 동네에만 해도 도로변에 절이 두 곳이나 자리잡고 있는데 몇 년째 봐도 어색한 모습이다. 이건 단지 내 편견일 수도 있는데 과연 차들이 쌩쌩 달리는 시끌벅잡한 곳에 위치한 절에서 '수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물론 수행이라는 것이 마음의 문제이니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제 겨우 이 책을 딱 한 번 읽었다. 그래 그런지 그냥 좋았다라는 느낌이 대부분이다. 한 번 읽고 고이 간직해야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두고 두고 읽는 편이 이 책에게도, 내게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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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려면 산꼭대기까지 오르고 내려가려면 바다 밑까지 가라. 만덕산 백련사 차의 대가 어연스님께서 기거하시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백련사를 백련사답게 만드는 것으로 세가지를 꼽고 있다. 첫 번째는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겠다는 원묘국사의 백년결사 정신이거, 두 번째는 차를 만들어 마심으로써 정신을 맑혀왔던 다사(茶寺)의 전통이고, 세 번째는 만경루(萬景樓)에서 보이는 만 가지의 경치다. (풍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그 세번째 이유에 가장 끌린다) 다산 정약용과 형 정약전과 인연이 깊다는 나한산 만연사 동림암, 서포 김만중의 추모제를 진행하던 호구산 용문사, 책에 소개된 작은 절 중 유일하게 섬 제주 땅에 있는 제주 원당봉 불탑사의 유래가 재미있었다. 사람은 피곤할때 자연속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좋다. 믿는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책을 외면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책은 무엇을 믿으라는 말보다 그곳에 대한 좋은 점을 알려주어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물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에 좋은 곳을 소개해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쳐주고 싶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속에서 활력을 되찾을수 있는 자연의 산물이니까. 크고 화려해서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그런 곳이 아니다. 전통과 명망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면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작고 아담해서 사람을 그리워하고, 찾아가면 마냥 반가이 맞아줄것 같은 곳들만 책에 들어 있다. 부모 몸을 빌려 태어난 자리가 육신의 고향이라면,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하는 정신의 고향도 있을 법하다. 쌍봉사는 내 영혼을 맑게 해주었던 고향이다. (p.311) 초로의 나이가 되어 쌍봉사 부근에 편히 누워 쉴 자리를 잡았다는 저자 정찬주님을 한번쯤은 찾아가 다듯한 차 한잔과 함께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다. 그길고 그가 추천하는 암자를 찾아 마음의 수양을 쌓아보고 싶다. 몸과 마음이 피곤에 지칠때 잠시 머물다 와도 좋은 그런 장소를 만들어보고 싶다. 아직은 어린 딸이 자신을 추스릴수 있을 때, 그때가 내가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찾아 잠시 머물다 와도 좋은 때이겠지 싶다. 정찬주 전남 보성 출생, 그간 펴낸 책은 장편소설『소설 무소유』,『산은산 물은물』,『인연』등 총 6편과, 산문집『암자로 가는 길』,『암자로 가는 길2』를 비롯 8편이 있으며,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가 있다. 그가 현재 머무는 집 이불재(耳佛濟)는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이란다. 세상 살이와 거리를 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의 뜻이 이불제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듯했다. 과연 나도 세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그런 삶을 살아갈수 있을까, 그럴수 없기에 더욱 그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저자 정찬주님은 크고 화려한 절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아담한 절을 찾아 세속에서 벗어나 명상에 잠기며 작은 자유로움을 찾는 것이다. [암자로 가는길], [암자로 가는 길 2]를 통해 정찬주라는 사람을 알게되었고, 이제 그의 발자취를 밟아가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스님보다 오히려 더 많이 절을 찾아간 사람, 그리고 이 책 [절은 절하는 곳이다]를 마지막으로 그만의 안락한 거처 이불재(耳佛濟)에 칩거를 생각하고 있어 그의 마지막 서적이 될지 모르는 이 책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찾게 되는 또 하나의 재미 책속의 책! 『금강경』,『구운몽』,『사씨남정기』,『소설 김지장』,『선문염송』,『한국사찰전서』,『완문절목』,『간화정로』,『청매집』, 『신증동국여람승람』,『대둔사지』,『삼국사기』,『삼국유사』,『해동고승전』,『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금강경청룡초소』, 다치하라 마사키의 『겨울의 유산』, 김동리의 『등신불』,『악학궤범』,『극락전 중수기』,『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고대 인도 성전『바가바드 기타』,『세계건축대사전』,『가야산 정진불』,『천수경』,『반야심경』 작가에게 작은 절을 찾아가는 길은 내면에 자리한 미소 짓는 부처, 즉 ‘참된 나’를 만나는 구도의 여정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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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앞에서 한동안 명상에 잠긴다. 짧은 순간이지만 범종소리에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나와 범종소리가 하나 되니 한 생각조차 스며들 틈이 없다. 마치 범종소리에 나라고 고집하는 내가 사금파리처럼 산산이 깨져버린 듯하다. 내 육신과 의식은 비로소 청정한 시공時空에 머문다. 무아의 상태다. 찰나의 법열이지만 충만이 목에까지 차오른다. 범종소리는 계속해서 허공으로 울려 퍼진다. - '두륜산 대흥사' 중에서
삼독三毒을 씻어내는 순례길
이 책의 저자 정찬주는 30여 년 동안 특유의 구도적 문체로 불교적 사유가 담긴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 살아가던 그는 수행자가 진리를 구하듯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남도 산중에 집을 지어 들어앉았다.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라는 집 이름에는 산중에서 자연의 섭리를 좇아 있는 듯 없는 듯 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이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이 땅의 암자와 선방을 순례하며 삶의 지혜를 깨닫는 글로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깊고 고요한 곳에 자리한 작은 절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산은산 물은물>, <인연>, <하늘의 도>, <백제대왕>, <만행> 등이 있고,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암자로 가는 길2>,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등이 있으며, 현재 이불재에서 농사일과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작은 절들과 인연 따라 조우한 순례의 기행문이다.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남도 산중에 이불재耳佛齋라는 집을 지어 들어앉은 그는, 그동안 이 땅의 암자와 선방을 순례하며 삶의 지혜를 깨닫는 글로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욕망,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을 씻어내고자 깊고 고요한 곳에 자리한 작은 절 43곳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악산 남장사
노악산 북쪽엔 북장사, 남쪽엔 남장사南長寺가 있다. 남장사의 옛이름은 장백사長柏寺였다. 남장사는 상주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중국에서 도의국사와 함께 공부했던 진감眞鑑선사는 노악산으로 들어거 장백사에서 선문을 개창한 다른 구법승들과 달리 구름처럼 모여든 제자들에게 선禪을 지도하기도 하고 범패를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장백사는 '범패梵唄의 최초 전래지'였다.
진감선사는 선승이자 풍류를 아는 낭만주의자였을 것이다
극락보전
모악산 용천사
용천사龍泉寺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절을 먼저 보지 않는다. 절 옆에 '왜 이제 왔어요'하고 부르는 꽃무릇을 먼저 찾는다. 작가 역시도 꽃무릇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산자락으로 올라가 상념에 잠긴다. 꽃무릇. 사람들은 이를 상사화想思花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천사의 누각도 상사루다. 꽃과 잎이 운명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이다. 즉 꽃이 피면 잎이 사라지고, 잎이 나면 꽃은 자취를 감춘다. 그렇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셈이다.
꽃무릇이 들풀처럼 피어 있다. 그리움이 사무쳐 발화점에 와 있는 느낌이다. 절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신파극 같은 얘기지만 말이다. 한 여인이 용천사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사모하였다. 여인은 미망인이었다. 여인은 스님이 죽은 지아비처럼 남자로 보였다. 그러나 스님은 애원하는 여인을 꾸짖었다. 그래도 여인이 절에 찾아오자 스님은 멀리 떠나 소식을 끊는다. 세월이 흘러 여인은 병들고, 결국 어느 여름 날 용천사 옆에서 죽는다. 바로 그해 가을, 여인은 잎을 내밀 새도 없이 꽃으로 먼저 환생한다. 그 꽃이 바로 꽃무릇이다.
나라면 여인을 맞아들여 한평생 아들 딸 낳고 살았을 것이다. 해탈보다는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 아닌가. 시간이란 영원한 것이다. 금생의 해탈을 미루고 내생에 서로 도반으로 만나 도 닦으면 어떤가.
봉명산 다솔사
소쇄한 솔바람이 파도소리를 내는 그런 소리를 선가禪家에서는 송도활성松濤活聲이라 한다. 즉 깨달음의 공간에서 오롯하게 듣는 솔바람 소리라는 뜻이다. 작가는 다솔사에 갈 때 꼭 아침에 간다. 아침 햇살이 아른거리는 다솔사 오솔길을 걸으면 좋은 기운을 내뿜는 아침 솔숲 향기가 코 끝과 그리고 깊은 폐부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다솔사의 제1경景은 역시 절 초입의 솔숲이다. 하지만 다솔사의 솔率은 소나무와 상관없는 말이다. 이는 주산인 봉명산이 주변의 많은 산들을 통솔하고 있는 형세이므로 다솔多率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효당 최범술(11904~1979년) 스님이 일꾼들을 데리고 절 주변에 소나무, 편백나무, 차나무 등을 심고 가꾸면서 거대한 숲이 형성되었다.
여기서 효당이란 인물을 살펴보자. 그는 일제강점기 때 출가한 후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지사이자,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정치가, 국민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차를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한 수행자였다. 다솔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양루大陽樓가 있는데, 이곳은 소설가 김동리가 젊은 시절 광명학원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야학의 수업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다.
김동리가 <등신불>(1963년)을 집필했을 때 이용한 요사채의 방도 있는데, 지금은 복원돼어 있다. 효당은 김동리의 결혼 주례도 서주었고,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방까지 배려했던 것이다. 단체 학생 관람객들은 이곳 '김동리의 방' 앞에서 교과서에 나온다고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다솔사의 제2경景은 법당 뒷편에 펼쳐진 차밭이다. 효당은 사람들에게 '다도무문茶道無門'이란 글을 즐겨 써주었다. 나도 지금 이 글을 표구해서 액자로 지니고 있다.
효당의 차밭
지금 작가가 가는 곳은 제3경인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내가 누구인지를 되돌아보는 공간이다. 만해 스님이 정진했던 전각이다. 만해 스님처럼 화두를 들고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열여섯 나한님들의 각기 다른 얼굴을 보고만 있으면 된다. 눈길이 오래도록 멈추는 나한님이 있다. 그렇다. 웃는 나한님을 따라 나도 마음속으로 하하하 웃는다. 번뇌는 어느새 저만큼 달아나버리고 텅 빈 마음에 무언가 충만해진다. 그것을 안심이라는 부르는 것일까.
영구산 운주사
목이 잘린 불상
구층석탑(보물 제796호) 뒤편에 있는 불상을 만나는 순간에도 나는 불상이 된다. 목이 잘린 불상이지만 편안하다. 내면의 내 영혼도 역시 상처투성이가 아닌가.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무리 지어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도 절 안에서는 미완의 탑이 되고 목이 잘린 불상이 된다. 그렇다. 자신이 탑이고 부처인 줄 모르고 천불과 천탑을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운주사雲住寺의 이름대로 절에서 구름 한 조각을 찾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인생이 바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한 조각의 구름이 아닌가. 운주사를 찾는 사람 모두가 운주사인 것이다.
사람들은 운주사의 불상과 탑들을 보고 못생겼다고도 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고도 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좌선대에 앉아 분별하는 마음을 벗어던져 보라. 눈과 코와 입이 어수룩하고 희미한 그것들을 껴안고 있는 운주사가 얼마나 장엄한 화엄의 바다인지 알게 되리라. 홀연히 '나'라는 교만을 버리게 하고, 절하게 하는 곳이 운주사임을 깨닫게 되리라.
와불
절에는 시詩가 있어야 한다
절은 한 권의 시집이어야 한다. 시詩란 말씀 언言자와 절 사寺자가 결합된 것이다. 속기俗氣를 털어버린 수행자의 탈속脫俗한 말은 곧 시가 되는 것이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저마다 깊은 역사와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작은 절을 찾아가는 길은 우리 내면의 '참된 나'를 만나는 구도求道의 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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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이 복잡하고 머리를 식히러 가고 싶어하면 절에 가고 싶다고 한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를 합친것이라 한다. 절에 들어서 마음 비우고 스스로 되돌아보라고 침묵의 언어는 시가 된다고 하신다. 이 글을 보면서 사람들이 머리가 복잡하면 절에 가고 싶어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본다.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머리가 맑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책은 정찬주 작가님이 절을 다니면서 절을 소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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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절을 찾은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근래 들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어서 자연히 산사로 향하는 발길도 뜸해졌다. 마음이 번잡할 때 조용한 암자야말로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될 텐데, 정작 바쁘다는 핑계로 절은 몸과 마음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소설가 정찬주의 남도의 작은 절을 순례기 <절은 절하는 곳이다>가 출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몸이 안 되면 마음이라도 떠나면 되는 법! 그의 안내를 받으며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43곳의 절을 둘러보았다.
먼저 이 책은 열자마자 꽤 의미심장한 글이 눈에 띤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낱말이다. 절에 들어서 마음 비우고 스스로 되돌아보라. 침묵의 언어는 시가 된다.
지금껏 허투루 보아 넘겼던 ‘시’라는 한자어로 풀어놓은 저자의 생각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책의 머리글을 읽은 다음 목차를 살피며 가장 먼저 살펴본 절은 ‘비슬산 유가사’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 위치한 절이라 반가움이 앞섰던 점도 있지만, ‘유가사’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버스를 타고 비슬산 유가사로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리도 제대로 모르던 여학생들끼리의 나들이는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지나던 등산객의 도움으로 겨우 무사귀환 했다는 안타까운 결말로 끝이 난다. 그 때 이후 비슬산은 등산을 하러 자주 다녀왔지만 여러 갈래의 등산로 가운데 ‘유가사’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유가사’ 역시 이 책에서 사진으로 처음 만난다. 그리고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합장한 스님의 단정한 뒷모습과 절 주변의 풍경이 바로 ‘유가사’였다.
이런 개인적인 사정으로 ‘유가사’를 얼른 만나보고 다시 차례대로 저자의 순례를 따라가게 되는데 처음에는 책의 소개에서 “작은 절”이라 하여 말 그대로 작은 암자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유명 사찰이 제외하고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절을 저자는 “작은 절”이라 표현한 것 같다. 같은 듯 보여도 절에는 저마다 구전되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절을 지키는 스님과 절의 역사, 문화재 등이 어우러져 고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맑은 기운이 책 속의 문장과 사진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또한 첫머리에서 조용히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그 깨달음이 곧 시가 된다고 표현했던 만큼 <절은 절을 하는 곳이다>에는 좋은 시구(詩句)나 법문 등이 소개돼 있어 반복해 읽을수록 긴 여운을 남긴다. 불교문화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갈한 문체로 써내려간 저자의 여행기는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더욱이 이 책에 실린 사진들도 모두 정찬주 작가의 솜씨라는데 전문 사진작가의 사진 못지않다. 무엇보다 역사와 불교문화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사색을 통한 성찰의 시간까지 안겨준 이 책은 메마른 일상을 촉촉이 적시는 단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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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절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을 따라 걷는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낱말이다 절에 들어서 마음 비우고 스스로 되돌아보라. 침묵의 언어는 시가 된다.> 첫 페이지에 시를 이야기하는 문구가 고즈넉하게 나를 반긴다. 산문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사천왕상이 나를 노려보고 있으나 <이 곳을 지나면서 속세를 잊으라는 듯... 속세의 것들은 내가 맡아서 모두 물리치겠다는 듯...> 편안하다. 눈으로 들어서는 세계는 이미 내가 산문을 넘었음을 이야기한다. 남도의 땅에 고즈넉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43개의 절들이 소개된다. 암자나 절 순례기는 이 책이 마지막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쓴 책.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책을 통해 알게 한다. 절에 가면 그 절이 다 그 절 같아 보이지만 각자의 사연은 모두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도 해남에 갔다가 미황사에 들렀다. 남도에 갈 때면 대흥사는 여러 번 갔었는데 미황사는 처음이었다. 단청이 화려한 산문을 지나면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그득하다. 찻집 뒤로 동백나무 숲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한창이다. 동백나무 숲의 봄은 저리도 요란하게 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청을 입히지 않는 대웅전 앞에 선 순간 사람들이 왜 미황사를 극찬하는지 알 듯했다. 대웅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의 자태. 처마의 곡선이 거의 일자에 가까운 수평선을 형성하고 있는 팔작지붕은 하늘을 향하는 듯 하면서도 땅을 굽어볼 줄 아는 지혜를 품은 듯 단정하다. 아무 칠도 되어있지 않은 나무기둥에서는 숨을 쉬는 듯 골이 그대로 이다. 저 육중한 기와지붕을 어찌 저리 받치고 있을까? 날마다 숨을 들이 쉬고 내쉬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연을 품고 있는 듯한 대웅전... 작가는 그렇게 민낯의 미황사 대웅보전을 ‘석양이 황금빛깔로 단청’했다고 표현했다. 절을 나오면서 스님 한분을 만났다. 아주 후덕한 모습의 스님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조심스레 다가오시더니 오색염주를 주머니에서 꺼내시고선 아이들 손에 걸어주신다. 절에 오래 다녔지만 늘 방문객에 불과했던 나에게 이런 호의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낮 시간에 스님을 직접 뵙는 일도 흔하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종교를 떠나 그 따뜻했던 손길은 산사의 공기만큼이나 청명하고 맑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이 다 똑같을 것 같은 절을 어쩜 이렇게 제대로 표현했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미황사는 예부터 1천 불이 출현한 곳으로 1천불이란 금강스님(이 절의 주지스님)과 인연 맺은 땅끝마을 신도들, 서정분교 아이들, 미황사를 찾아온 모든 사람 중에 있다는 것이다. > 모두가 차별 없이 신명나고 행복해지기를 미황사에서 지는 노을을 보며 저자가 염원했듯이 어떤 거부감도 없이 손을 내밀어 주신 노스님의 철학이 그대로 미황사를 1천불이 함께 하는 절로 만들어 간다는 느낌. “문화재는 바삐 스쳐 가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다. 애인을 만나듯 자주 찾아주고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봐야만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듯 그가 오래 바라보고 자주 찾아가고 교감을 이룬 끝에 만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많이 잊고 살았던 절집에 대한 향을 오랜만에 맡은 듯하여 반갑고 기뻤다.
미황사 대웅전
산사를 내려서는 길에 만난 스님 한 분 은강이에게 오색염주를 손수 끼워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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