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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시작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상처받았던, 아니 스스로 상처를 주었던 나를 치유하고 싶어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지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만남을 일년간 유지한 것도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전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가 욕심을 부렸던 것도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잘 하고 싶었기에 열심히 했지만 그것이 남들에게는 억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놓치고 살았을 것이다. 완벽하고 싶어 스스로도 통제하게 되고 주변사람들도 통제했다.
문제덩어리가 바로 나였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남들보다 나를 더 이해하였다면, 그들도 더 잘 이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다고 많이 좋았졌다고 말할 수 없다. 어느새 옛날 버릇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나는 고쳐할 점이 많은 사람이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노력을 계속하다고 보면 잘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 검열과정'이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혹은 하는 과정에도 끊임없이 내가 지금 하는 일에 혹시 오류가 있는지, 제대로 성공할 수 있도록 진행되는지 등을 검열하고 의심하며 문제점이 발견디면 이를 지체없이 수정하고, 어떤 위험이 발견되면 멈추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자신에게는 생략하고 다른이에게만 적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나도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써 강요를 했다. 그러다보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듯이 서서히 나의 모습이 들어나고 제대로 되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고 짜증과 화를 냈다. 그러다보니 무수히 많은 책을 통해 스스로 정리해 보고 문제점을 보고 도망가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면서 이제서야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못하는데 남들만 못한다고 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회나 가정이나 같다. 내가 옳다고 하기전에 상대방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 옳은니 듣지 않고 내 말대로 하면 되는데 말이 많냐는 소리나 듣게 된다. 그러다보니 소통이 되지 않고 공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산다. 매일매일 살기위해 노력하다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시달리고 건강했던 몸도 예전같이 않다. 그것이 구조조정과 관련이 되면 심각해진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구조조정 때 생존자 중 절반가량은 직장 스트레스가 증가햇으며, 탈진을 호소하며 불안감에 시달리는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사무직 종사자 386명을 대상을 조사했더니 80%가 사내 구조조정 이후 정신적 혼돈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소통을 하면 공감도 되니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이 이야기를 잘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적절한 질문이 필요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해는 것이다. '잘 듣고 있으니, 어서 이야기를 해줘.' 그런 몸짓언어가 말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 순간은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온 마음으로 듣는 것 만큼 소통의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이고 공감에 가는 빠른 길이라는 것을. 그런데 잘 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잘 들어야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한는 것만으로 소통과 공감이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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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룬 다양한 사회의 축소판이 직장이라고 봐도 무방할까? 거대한 사회에서는 보기 싫으면 피하면 그만일 수도 있으나 직장에서는 그것이 허락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끝끝내 버티어내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어차피 얼굴을 늘 마주해야 한다면 좋게 지낼 수 있었음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직장에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장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아닐지 싶다. 일이나 학업이야 처음에는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법인데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정답이랄 게 없다 보니 언제나 이제 막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아기마냥 나는 헤매곤 한다. 어쩌면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한 편으로는 이런 책을 읽어도 실천치 않는다면 소용이 없음을 아는지라 약간의 회의감도 부인치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이라고, 저자의 생각이 그러하기에 아마도 제목에 소통&공감이라는 두 단어를 언급한 게 아닐지 싶다.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라면 기본일 수 있는 요소이다. 상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충분한 마음이 없다면 둘은 불가능하다. 마음이 아무리 충실하게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스킬이 없으면 이에 있어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내 진심을 상대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보편적인 영역에 해당되는 방식을 사용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어찌 생각하면 조금은 서글픈 현실에 직면한다고 할까나. 그래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인 이는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나에게 있어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사소통의 방식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케이스가 주어진 가운데 나에게 해당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 많이 소심한 축에 속하며 완벽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경향이 짙은 나에게 도움이 될 거 같은 부분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싫다/좋다의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못하는 경우가 그러했으며(나는 왜 거절하지 못할까? Or 괜히 얘기했다 본적도 못 찾으면), 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소외감의 힘), 그리고 최근에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새 업무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감의 해소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두려움 속에 숨겨진 생동감을 찾아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리 행동했는데 저렇게 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예시들을 읽다 보니 현명한 행동이라는 게 쉽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소통과 공감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겠지 사실 모두가 완벽할 순 없어서, 내가 겪는 어려움을 다른 사람이라고 전혀 모르진 않을 것이다. 매사 자신감 넘쳐 보이거나 활달한 이들도 내면에는 표현치 못할 나름의 어려움이 쌓여 있을 것이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라는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어찌 풀어야 현명한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 즈음 진지하게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상대를 받아들일 혹은 상대에게 다가갈 준비가 된 사람일수록 보다 긍정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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