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고 싶어서 들어간 절. 그리고 살아서 자신이 배운 것을 돌려 주려는 것이 법문이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와서 배운 것을 돌려주는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법정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쓴 게 된 글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절에 들어와서 삭발을 하고 양지바른 곳에 머리카락을 묻였던 그곳에서 "이 곳에서 잘 살아보겠습니다."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런 보경 스님의 이야기는 어쩌면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스님의 철학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나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율을 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수행자의 한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당신은 농부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는 이땅에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 당신이 밭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주시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부끄러움은 호미자루,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 생각은 호미 날과 작대기입니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들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소를 쟁기에 떼어놓습니다. 노력은 내 소이므로 나를 절대 자유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농사는 땅에다 짓는 농사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농사는 땅에만 짓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땅과 같은 마음의 밭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의 밭에다 영양분을 주고 마음의 양식을 키우고 자라게 한다. 그 밭에 양분을 적게 만들수도 있고 풍부한 자양분을 만들수도 있다. 말에도 보이지 않는 씨앗이 있다. 좋게 말하면 좋은 씨앗을 뿌릴 것이고 나쁜 말이고, 남의 흉을 보게 되면 나쁜 마음의 씨앗을 심게 될 것이다. 자신의 밭에 어떤 씨앗을 뿌리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좋게 말하는 마음을 가져라. 좋게 듣고 작은 향기조차 탐하지 말자.
공덕이라는 것이 보여지는 물질만이 공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공덕이 되는 것이다. 길에 눈이 와서 미끄럽지 않게 눈을 치우는 것도 공덕이 된다. 작은 일이지만 작은 만큼의 공덕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시비는 없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귀가 먹었는지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고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상태만을 고통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며 즐겁워지고 지루해지기도 하다. 결국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콩도 나누어 먹으라고 두쪽으로 되었듯이 혼자서는 살수 없다. 더불어 나태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겠다. 만날 때 보름달처럼 점점 쪼그라드는 친구보다는 초승달처럼 서서히 환해지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삶에서 현재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
|
단순한 일상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은 '도 닦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도 닦는 마음이란 곧 '꾸준함'이다. "속인은 길러 먹고, 중은 깎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속인들은 뭐든 강한 집착으로 붇들고 키워나가지만, 스님들은 버리고 낯출수록 존경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생각을 고치기는 쉽지만, 몸에 배인 습관을 고치기는 정말 어렵다. 몸을 유혹하는 가장 큰 요소는 '게으름'이다. 게으름도 탐욕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지 못해 항상 힘든 나의 하루 생활을 바로 고쳐볼 것이다. 도는 적절하게 삶을 영위해가는 즐거움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가까운 것에서 삶을 보지 않고 먼 곳에서 특별한 것을 찾는 마음을 머추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 좋게 보고, 좋게 말하고, 좋게 향기 맡고, 좋게 맛보고, 좋게 터치하과 좋게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삶을 정화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큰 영혼의 소유자이다. 평소 불만이 많은 나로서는 새게 들어야 할 말씀이었다.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을 이겨내야 하고 무엇보다는 화내는 것을 잘 참아야 한다. 탐내고 어리석고 성내는 마음을 부처님은 세 가지 독이라 했다. 한 생각 돌리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다. 나도 이제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해야 겠다. |
|
도심속 포교당 주지로 계시는 보경스님의 "주지일기"라고 할수 있는 책이다. |
|
저자의 출가전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 '귀대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대 주위를 빙빙 돌다가 위병소를 향하는 군인처럼' 시간을 보내다 표를 끊어 송광사행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애인의 군입대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한다. 과연 같은 마음일까. 그리고 절에 들어가 삭발한 후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람이 하나 생겨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하다. 남자들 군대 가서 처음 머리 짧게 깍는 기분과 비슷할까. 스님의 앞서 비유로 들자면 이 또한 비슷한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
|
우리가 잘 모르는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스님이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글로 녹여내는 것은 이제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믿음이 다르다고 하여 삶이 다르지는 않으니까. 법정 스님을 통해 얻었던 삶의 교훈과 가르침은 비단 세속인들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가 보다. 보경 스님은 서문에서 자신의 말과 글의 산실이 공교롭게도 법정 스님이라고 밝히면서 스님이 한 강연회에서 했던 말을 싣고 있다. 송광사로 출가하기 전부터 시작된 법정 스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이제 그와 함께 숨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일로, 영혼을 다스리는 지혜를 널리 나누는 일로 계속되고 있다.
보경 스님은 도심 속 법당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우리와 가까운 느낌이 든다. 도심 속 수행자로 살면서 어떤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는지 친절하게 말해주는 대목에서 내가 갖고 있던 스님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은 도심이든 시골이든 교회가 참 많고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목사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쩐지 스님은 산속 깊숙한 곳에서만 볼 수 있을 같아 도심에서는 그 그림이 연상되지 않는다. 물론 불교인들의 경우라면 당연히 이건 엉뚱한 생각에 불과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다양한 불교용어나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가지 사상들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관조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보통의 어른과 같은 향기를 느꼈다. 아마 그것은 이 책이 법정 스님이 쓴 책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말하자면, 그분은 스님은 스님이되 친구같은 스님이라는 것. 아마도 스님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친근함이 그가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풀어쓴 군데군데 묻어난다. 게다가 스님이 읽은 책에 대한 짧막한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정취를 느낄 수가 있다. 강의를 위해 대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또 어떻고.
사실 이 책에는 인용하고 싶고 여기에 소개하면 좋을 것 같은 문구들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일일이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 적어놓고 한번씩 들추기보다는 그저 스님처럼 세상을 표표히 소요할 마음가짐을 신발끈 묶는 것처럼 나는 오늘 단단히 동여멘다. 그런 기분으로라도 삶을 살아야겠다. 좋은 말씀을 듣고 좋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기원을 해주는 스님의 기운을 잘 받는 일이 되리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아스팔트와 시멘트 중간중간 그 작은 틈 사이로 기어이 비집고 올라오는 민들레처럼 나는 오늘 강인한 기운을 얻는다. |
|
사람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물론 동물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인간처럼 정교한 언어를 가지거나 문자를 가진 동물은 아직 이 지구상에는 없다. 말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말로 인해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자되세요’, ‘건강하세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등과 같은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도 좋고 힘이 솟는 느낌이 든다. 정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 한 마디지만 그 말 한 마디가 사람에 따라 주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은데, 실제로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남에게 힘이 되어 주는 말을 그리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항상 일에 찌들리고 세상 온갖 짐은 다 짊어진 듯이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 마음의 정화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송광사 서울 분원 법련사 주지인 도심 속 수행자 보경 스님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소망을 담아 쓴 글이다. 스님은 ‘진실한 일, 독서 수행, 자연의 도, 나 그리고 인연들, 고통, 그 뒤에’ 라는 주제로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들려준다. 스님은 간절한 마음과 신뢰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지혜를 얻기 위한 가장 간편하면서도 쉬운 방법이 독서임을 깨닫고 독서에 열중할 것을 권하며, 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을 이해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나’라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만큼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다가 닥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나가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스님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전혀 새롭거나 몰랐던 것들이 아니다. 다만 바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니 잊고 지내온 것들이다.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면에서는 사소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아예 잊고 지내온 경우가 많다. 이 책을 통해서 그와 같이 잊고 지내왔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며 미소를 담아 보내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음에 담아 두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마음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띄워 보내거나 어깨를 토닥여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세상이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
|
어느 집에 가면 마치 자신의 집인듯 편안한 곳이 있고 어떤 옷을 입으면 아주 오랫동안 입어왔던 옷처럼 편한 옷이 있다. 고교시절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출가준비를 했다는 보경스님은 절집이 자신의 집이고 입고 있는 승복이 자신의 옷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의심이나 미련없이 세속을 등지고 절집을 택한 스님의 길은 '지금 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종교수행을 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독서량을 가진 비범하신 분이기도 하다. 과연 스님이 소원이신 만권의 책읽기를 완성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종교지도자 라즈니쉬가 평생 10만권을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낮추어 맞췄다는 양이라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이미 5000권은 성공했다니 정말 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스님이시다. 매일 하루 책을 읽는다 해도 27년여가 걸리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가능할 일을 반이나마 이루셨다니 과연 스님의 머리속에는 세상에 대한 의로운 이치를 다 깨우치고 계실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속에 스님의 엄청난 독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미시마 유키오,하루키,가와바타 야스나리같은 작가들을 좋아하는데다 역사와 음식에 관한 책들까지도 모두 섭렵하다시피 하였으니 과연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라는 별호를 붙여드려할 모양이다.
'떠남이 전제된 터미널에 우리의 인생도 가끔은 이유 없이 남겨지는 때가 있을까? 문득 돌아보면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하겠지. 그대 어디로 가는가?' -86p
인생의 반을 살아온 나 역시도 이 귀절처럼 인생의 터미널에서 내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문득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걸까?
당나라 왕이었던 대중이 왕이 되기전 조카인 무종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깊은 산속으로 피신하여 만난 황벽선사에게 "스님께서는 예불을 올리는 뜻이 어디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부처에게 집착없이 예배를 올리고 있다는 대답을 듣자 그렇다면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지 않는냐고 반문하자 황벽 선사가 느닷없이 대중의 뺨을 세 대 얻어 맞고야 만다. 대중은 그 일을 잊지 못하다가 왕실에서 대중을 선종 임금으로 추대하자 벽 도인이 자신의 뺨을 석대 때린 것으로 삼생업이 다 소멸되고 왕위에 올랐음을 알고 삼생의 업을 다 끊어주신 위대한 선사라는 뜻의 '단제선사'라는 호를 내리게 된다.
나도 위대한선사를 만나 뺨을 백대라도 맞아 삼생의 업을 끊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봄꽃 보다는 여름꽃이 여름꽃보다는 늦서리에도 꿋꿋이 버티는 황국이 좋더라는 스님의 말씀이 나 역시 비슷한 나이이고 보니 절로 공감하게 된다. 아픈 치아를 주사가 무섭고 병원이 불편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견디지 못하고 치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글에서는 스님도 역시 치과 앞에서는 부처님의 공력ㅜ으로도 어쩌지 못하시는구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죄송스럽기는 했지만 그래서 난 보경스님이 옆집 친구처럼 한없이 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부족한 독서가 민망하게 만든 스님앞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가는 이 길이 가장 좋은 길이 되기를 기원해 주시는 스님의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기원을 해주고 있다면 어떨까요? 마음이 참 편안해지고 위안이 되고 행복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막상 이렇게 누군가에게 기원을 받고 싶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기원을 해 준 적이 있는지 문득 생각해보게 되네요.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기원을 받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기원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여기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좋고, 기원을 받지 않아도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원해주는 보경 스님이 있네요. 스님의 간절한 마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잘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 이런 간절한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또한 욕심과 거짓 등 나쁜 것들에 물들어 가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수행을 하는 보경 스님은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수행을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기는 하죠.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하지만 우리들은 진정 버리고 내려놓고 낮아짐으로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마치 어두운 밤,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배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불처럼, 삶에 지친 우리들을 위해서,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이가 있으니 우리들이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겠죠. 기원에는 어떤 간절함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말이죠. 그냥 단순히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 아니라, 건강을 기원합니다, 성공을 기원합니다, 라는 말 속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말 한 마디에 힘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호피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데, 그 비결을 바로 비가 올 때까지 한다라고 하네요. 과연 우리들은 기원을 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해 본 적이 있을까요? 책에서는 독서를 통한 수행이라든지 자연에서 해답을 찾고, 사람과 사람의 인연 등을 통해서 도를 찾는 수행자의 모습이 나오네요. 그런 수행을 통해서 과연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기원은 자신을 향한 기원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기원일 때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행복한 기원은 어쩌면 당신이 행복해지고 또한 내가 행복지고 우리가 행복해지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