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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해도 이전 책에서도 오묘한 제목과 강렬한 표지로 기대감을 주었는데
첫 시작을 하면서 무엇인가 비어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들의 쓸쓸한 기록.
작가님의 메시지가 비어 있는 중심에서의 죽음인지, 비어 있는 곳을 채우려는 희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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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화가, 가수, 성악가, 작가- 에게 나는 예술가라는 하나의 이름을 붙이곤 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의미의 직업인이 아니라 적어도 나에겐 예술가로 여겨질 뿐이기에.
중심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강한 집착에 대한 부정이야말로 정작 중심을 잃은 것이 아닐까! * 샹그릴라 : 히말라야 고지대 농부들은 - 모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고 일체의 결핍도 없는,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상향을 샹그릴라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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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무슨 의미일까. 책의 뒷면에는 -아이를 밸 수 없는 자들의 쓸쓸하고 참혹한 퍼포먼스- 라는 한줄이 있다. 항상 상상만 해본다. 그 감정이 어떤지. 빈방의 표지에는 남자 여자 각각 한명씩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남자는 심각하게 신문을 보고 여자는 한쪽팔을 걸치고 피아노를 두드려보고 있다. 그들 사이에 뒤쪽으로 문이 보인다. 서로 다른 것을 하고 있는 사람.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뭔가는 없는 듯하다. 정서적 빈방을 상징하는 것일까?
[비지니스] 책을 사놓고 아직 손에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빈방]을 먼저 읽게 되었다. p7 여기 함께 묶인 여섯 편의 연작소설은 아이를 밸 수 없는 자들의 쓸쓸하고 참혹한 퍼포먼스를 꼼꼼히 기록한 것이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은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환영], [아가미], [천개의 아침]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들이었다. 책을 편식하는 나는 아마도 자모의 덧글소통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었던 책들이었을 것이다. 빈방을 읽는 동안도 가슴이 답답했다. 연작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주배경은 주인공의 방안. 별똥별은 누군가 나를 훔쳐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시선을 의식한채 생활하는 나. 결국 누군지 쫓아가보고, 그 주인공은 한 노파였다. 화가인 나의 화판에는 노파가 들어가 있게 된다. 빈방은 나, 혜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아기를 가지고 싶다던 혜인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나이많은 남자에게 내일 시집을 간다. 그전에 나를 찾아온다. 그런 그녀를 이발소주인에게 데려다준다. 항아리야항아리야에선 늙은 여류작가가 나온다. 작가는 우물 밑을 볼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집에는 항아리가 있다. 한밤중 아가하면서 울부짖던 그녀는 어느날 새벽 드라이버, 망치,게보린이 있냐고 전화를 했다. 나는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다음날 그녀는 질 좋은 명주천으로 층계참에서 목을 맨채 발견된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틈입자, 임산부인 그 소녀는 나의 방, 침대에서 아이를 놓는다. 중학교 1학년 겨우 열세살. 미숙아 아기는 이틀만에 죽는다. 감자꽃 필 때 용암사 주지 원행스님, 올해 일흔일곱이다. 같은 절 헌신적인 보살님을 종취급한다. 죽기전에 반평생을 같이 한 그녀보다 나를 더 믿는다. 아들에게 통장을 넘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감자밭의 벙어리농부, 집으로 찾아간 나는 그의 또렷한 음성을 듣는다. 죽은 아내사진 앞에 진수성찬과 오늘임자귀빠진날여.라는 한마디. 원행스님의 아들들은 보살님에게 절을 비우라고 했다. 나는 보살님을 만날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아 만나자는 그녀의 청을 못들은 척한다. 보살님은 대들보에 목을 매단다. 벙어리농부는 햇빛아래 그의 밭에서 죽는다. 흰건반검은건반 결혼후 승승장구해서 바쁘게 지내 나에게는 연락도 방문도 없는 혜인. 나는 시내의 이발소 앞에서 그녀를 본다. 이발소에서 일하던 오목렌즈 그녀는 "모두 쓰레기들이야"라는 말한마디와 참혹한 현장을 뒤로하고 떠난다. 읽는 동안 답답했다. 나의 예술감흥이 작.가.님.을 따라가기엔 부족한 것일까. 글을 적는 동안도 답답하다. 이 글을 끝내면 아마도 해방감을 맛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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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작 단편집이고요, 6편의 단편이 실렸고 동일화자와 주인공으로 연작인 작품집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집, 아 골 때리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박범신 쌤을 좋아하는 독자인지라 살짝 편애하는 면이 없지 않은데 이 작품집은 그럼에도 골 좀 때려주시더만요. 말하자면 내용이, 작품을 쓴 작가와 꿈보다 해몽을 좋아하는 평론가나 이해할 수 있을까, 도무지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작품 여섯 편이 그것도 내리 깔려있으니 260쪽의 얇은 분량임에도 읽기가 아주 곤혹스럽더만요. 박범신 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렇게 패쇄적이고 꽉 막혀있는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왜, 일반 독자 따위 니들이 예술을 뭘 알겠어, 하며 작정하고 쓰는 소설가들이 있잖아요 왜. 뭔 소리인지 자기만 아는 얘기를 작가가 주야장천 늘어놓으면 평론가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순문학의 기수니 어쩌니 해가며 저 별은 나의 별을 의미하며 그리하여 안드로메다가 가까웠으니 독자들은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회계하고 더 나아가 한국 문학이 발전하지 않는 것은 느그들이 죄다 무식한 놈들이라 그런 것이여, 하는 뭐 그런 분위기 말이죠. 이 소설이 그렇네요. 그래서 좀 의외였습니다. 박범신 쌤이 이런 소통은 개나 줘버리고 잘 모르겠으면 니가 무식해서 그런 거니까 꺼지시던가, 하는 글을 쓰셔서. 다른 작가 같았으면 당장 꺼졌을 텐데 그래도 전작 중인 어른의 작품인지라 어찌어찌 문장 읽는 맛이나 씹어가며 자근자근 왔습니다만, 마치 순문학이 지구를 수호라도 하는 것처럼 믿는 공격적인 냥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권해줄 수 없는 작품집이라는 게 저의 솔직한 소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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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빈방》은 한마디로 문학적으로 구현된 '아르 브뤼'(Art Brut)다. 자궁을 모티브로 작가 내면에 있는 원시적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를 되도록 여과없이 담아내고자 한 작품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읽으면서 현기증이 나거나 몸살 기운이 느껴진다면 이야기를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후가 아닐 수 없다. '아르 브뤼'는 아마추어 화가 및 정신병자, 어린이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다. 총 6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빈방》은 용인 읍을 배경으로 '중심이 빈 인간'들이 겪는 실존적 고통과 거세 혹은 불임의 절망감, 그리고 존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악하는 추태를 그리고 있다. 정신병자의 야생의 거친 그림들과 이미지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느낌이다.
내용을 떠나서 '빈방'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형상화될 수 있다. 가령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릴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릴 수도 있다. 작가는 빈방을 주로 불모, 불임, 거세, 결핍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설정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빈방'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자궁'의 이미지가 강하다. 소설에서는 '속 빈 항아리' '빈 젖''묘지'처럼 불임 자궁을 상징화하는 다른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화가 자신이 창조에 대한 욕망을 상실하고 그 어떠한 예술작품도 더 이상 생산해내지 못하는 '예술적 불임자'다. 부정적인 빈방과 대립되는 대조적 이미지도 나타난다. 불임 자궁으로서의 빈방 이미지와 반대되는 것은 수많은 씨앗을 잔뜩 품고 있는 노오란 '해바라기'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궁의 상징으로 나타난 해바라기는 파울 클레의 <세네치오>와 연결되고, 이 역시 '빈방'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대립되는 긍정적인 상징물로 등장한다.
텅 비어있는 방은 언제나 침입자나 틈입자를 부르는 법. 화가 '나'는 야수처럼 자신의 빈방에 들어오는 침입자와 틈입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편, 그 역시 다른 이의 빈방을 훔쳐보는 침입자이기도 하다. 가령 화가는 늙은 여류작가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작가의 매우 정태적인 생활을 훔쳐보는 관음증을 보여준다. 소설에 제시된 불임 자궁을 가진 인물들은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늙은 여류작가와 용암사 보살, 그리고 화가가 그러하다. 화가는 사랑했던 모든 것을 집 안에 넣어둔 채 자기 스스로를 집에 영원히 유폐시키는 방식으로 자살한다. '빈방'을 자신의 시신을 넣은 '묘지'이자 '엄마의 자궁'으로 디자인한 셈이다.
한편, 화가와는 정반대로 존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악하는 탐욕의 인물들이 있다. 패션디자이너 혜인과 소녀 임산부, 지하 이발소 주인, 용암사 주지 원행, 이발소 안마사 오목렌즈 등이 그러하다. 혜인은 아이보다 화려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늙은이에게 시집을 가고 이발소 주인과 사통한다. 퇴폐 이발소 주인은'빈 젖을 빨고 자란 사람'으로 야수적인 폭력성을 온몸에서 풍기고 있다. 원행 스님은 죽는 순간까지 통장을 챙긴 탐욕의 인물로 절을 돌보는 보살을 노예처럼 부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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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연작소설. 작가는 불임의 시대를 살아가는 빈 것들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 존재들은 텅 빈 방에 갇혀 있다. 그 방은 부단히 채워 나가지 않으면 안될 현대인의 삶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삶이다. ------------------------------------------------------------------------------ 박범신? 은교? 뭐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바로 샀다.. 이게 내 실수였다.. 은교를 책이나 영화로 본건 아니고 막연히 보고싶다.. 봐야되는데.. 라고 생각만 가지고 있던 차에 은교저자 박범신이란 이름만 보고 책을 사다니... 이 책에 대해 찾아보지도 않고... 사실 찾아봤다고 해도 샀을지도.. 인터넷에 이 책을 쳐보니 평도 꽤 좋고 내용도 이해하기 쉬울 것처럼 되어있어서.. 근데 직접 사서 읽어보니 이건.... 내가 멍청한거겠지만.. 책 자체는 굉장히 좋은 책일텐데 별이 0점인건 순전히 내가 멍청한 탓이오... 책이 너무 어렵고... 이해도 안되고... 나는 그냥 평소 읽는것같은 소설을 생각하고 샀는데 이런 머리 쓰면서 읽어야 되는 책이라니.... 멘붕이.. 내용을 막 꼬고 이런건 아닌데 그냥 다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이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쉽게 읽으면 당연히 소설이니 쉽게 읽히고 그냥 내용만 보자면 아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겠다 라고 느낄 수 있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보면 도대체 작가의 의도가 뭔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름만 보고 너무 쉽게 책을 질러버린 내탓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