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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애 했던 평화의 언어]와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 타인의 고통을 아파하는 여린 마음으로
"[삼켜애 했던 평화의 언어]와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 타인의 고통을 아파하는 여린 마음으로" 내용보기
강함이 아니라 겁 많고 여린 마음이 병역거부를 결심케 햇다는 것.  임재성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에서 비슷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어제(5월 2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준규 씨의 소견서를 읽으며 그 여린 마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평화롭지도 평화를 지키지도 못하는 군대 제가 어린 꼬마인 시절, 그 때만 해도 TV에
"[삼켜애 했던 평화의 언어]와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 타인의 고통을 아파하는 여린 마음으로" 내용보기

강함이 아니라 겁 많고 여린 마음이 병역거부를 결심케 햇다는 것. 
임재성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에서 비슷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어제(5월 2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준규 씨의 소견서를 
읽으며 그 여린 마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평화롭지도 평화를 지키지도 못하는 군대
 
제가 어린 꼬마인 시절, 그 때만 해도 TV에선 매주 우정의 무대도 했고 9시뉴스에선 곧잘 무기홍보와 한국군대의 강성함, 북한의 악독함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정치에 관심 많던 저는 선거나 정당, 정치인, 통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군대가 어떻게 해야한다거나 혹은 군인에 대해 생각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군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던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생물학적인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겪게 되는 문제가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군대 대해 관심을 갖게 시작된 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입니다. 군대에 대해 사람들에게 듣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군대에서 겪게 되는 폭행과 폭언, 지극히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내부 생활, 2년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내야하는 것에 따르는 괴로움 등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듣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처럼, 가지 않으면 좋지만 가지 않을 수 없고, 또 군대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그 당시엔 저도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여느 학생들처럼 하루에도 수십 대에서 많게는 백대가 넘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시달려 고통스러웠던 저는 때리는 않는 선생이 되겠다며 교대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교대에선 복학생과 ROTC를 중심으로 한 남자단합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학내에서 남단이라고 불렸던 이것은 남자들끼리 모여 선후배간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명목 하에 선배의 권력을 확인받고자 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선배들의 일방적인 지시를 수용하기를 요구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폭언과 때로는 폭행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문화는 남단에만 그치지 않고, 노골화의 수준의 차이는 있었지만 학내문화 전반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것이 학내문화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군사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저에게는 조금씩 다른 생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작은 새내기 때 들었던 ‘왜 꼭 통일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막연히 통일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온 저에게 남북 간의 문제의 핵심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평화’라는 단어와 늘 함께인 ‘군대’와 ‘전쟁’에 대한 고민은 제 안에서 조금씩 살을 붙여갔습니다.

학교에서의 군사주의 문화를 통해 군대라는 공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있던 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군대에 대한 스스로의 마지막 질문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국군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방어를 하는 군대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존재함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파병을 통해 한국군이 평화를 목적으로 방어를 하는 군대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고, 미국군의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라크는 평화는커녕 폭력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통해 군사력이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전쟁의 끔찍함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동시대에 벌어지는 관타나모 수용소 사태 등은 전쟁이라는 건 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해주었습니다.


두 가지 경험

저는 2005년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책에 자신이 원하는 펜으로 이름을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교수는 학교에선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검찰에서도 교수의 “체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들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일로 저는 엄청난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거의 3개월 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 혹시라도 잠이 들면 늘 그를 죽이거나 그가 나를 죽이는 꿈만을 꿨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그를 죽이고 나도 죽는 것이 나의 꿈 이었습니다.

휴학 후 집안사정으로 학교에 돌아가야만 했던 저는 교수들은 비웃음을 날렸고 학생들로부터 사정은 알지도 못한 채 도망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끔직한 학교생활에서 곁에 남아있어 준 것은 당시 제 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별을 통보받은 저는 제 곁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에 그녀의 뺨을 때렸습니다.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제 오른팔은 끔찍해져 있었습니다. 오른팔을 떼내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오른팔로 밥을 먹고 이렇게 글을 쓰는 뻔뻔한 저를 보며 폭력적이고 끔직한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 몸은 그런 나를 잊지 말라는 것인지 눈을 감으면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던 왼쪽 뺨과 왼쪽 허벅지는 딱딱한 돌처럼 느껴지고, 폭행을 했던 오른손은 피가 잔뜩 묻은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저를 보면서 군인으로서의 나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총을 들고 소위 “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그 총을 사람을 죽이는 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 때 내 모습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살인이었습니다.

앞서 두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두 가지 일은 전쟁에서 겪게 되는 살인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교수의 폭행은 잊을 수도 분노하지 않을 수도 없고, 아직도 끔찍했던 내 손이 만든 붉은 뺨이 생각나는데 전쟁 속에서 내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벌인 살인으로 인해 그를 아끼고 사랑했을 가족과 친구들이 가질 분노, 매일 같이 온 몸이 피투성이로 보일 제 자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도, 그런 분노를 만든 나를 용서할 수도 없음을 말입니다.

 
여린 마음

저는 맞는 것이 어릴 때부터 싫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덜 맞을 수 있는 모범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맞지 않아도 다른 친구들이 맞고 있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중학교 때의 대규모 체벌, 고등학교 때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행당한 후 검게 변한 엉덩이, 대학시절 남단과 교수 폭행까지 언제나 고통과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고 싶었지만 한 것이라곤 중학교 때 떨면서 적었던 학교게시판 글, 남단을 불참하고 썼던 자보, 교수를 고발하는 소극적인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아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는 겁 많고 여린 내 마음이 미웠습니다. 

하지만 폭력에 아파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게 한 것도, 내 폭행 이후에 나의 끔찍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리고 내가 전쟁의 끔찍한 살인자가 되어 그것을 바라보게 한 것도, 도망치기 좋아하고 잘 아픈 여린 제 마음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수 있게 하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강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군대도 갔다가 왔는데...”라고 하는 건 이런 맥락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강함은 약함을 폄하합니다. 그 정도쯤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다치지 않게 서로 아끼면서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저처럼 겁 많고 여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군대도 말입니다. 수개월을 연습하고 그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적이라고 계속 쇠뇌하고도 전쟁터에선 다른 한명을 죽이지 못해 수만 발을 쏘고, 살아서 돌아와선 살인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하는 여린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공격할까 다른 많은, 더 큰 총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겁 많은 사람들, 저와 같은 여리고 겁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도 저와 같이 더 이상 총 드는 일 없이 평화롭기만을 바라는 것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목소리라도, 겁이 나겠지만 평화를 얻으려면 총을 놓아야하지 않겠냐고, 그것이 함께 바라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 여린 마음은 제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도망치라고. 군대에서 도망치라고. 내가 피투성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에게 약해도 된다고 아픈 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2011년 5월 2일 입영일
이준규

 

d********9 2011.05.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감옥 보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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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강의석씨의 병역거부 선언이 이슈가 되었다. 예외없이, 자칭 애국용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대한민국 남아로 태어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다니, 하필이면 최근 연애인들의 해병대 러쉬가 일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군대만큼 대한민국에서 민감한 주제는 없는 것 같다. 군가산점 문제가 대두될때마다 여대 홈피로 침공하는 키보드워리어의 나라, 여성운동단체 및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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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강의석씨의 병역거부 선언이 이슈가 되었다. 예외없이, 자칭 애국용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대한민국 남아로 태어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거부하다니, 하필이면 최근 연애인들의 해병대 러쉬가 일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군대만큼 대한민국에서 민감한 주제는 없는 것 같다.
군가산점 문제가 대두될때마다 여대 홈피로 침공하는 키보드워리어의 나라, 여성운동단체 및 여성 가족부는 쓸데없이 예산만 낭비하는 없어져야 할 기관으로 전락하는 나라. 연평도 포격때 자기한테 총 한자루만 달라던 코만도들의 나라(어느 유명한 작가도 위급시에 총들고 나가서 싸우겠다고 해서 순식간에 영웅이 되기도 했다.그 이후 그 작가 책은 거들떠 보지 않게 되었다), 술 안주로 삽겹살이 아닌 군대에서 펼쳐진 무용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거의 90%의 내용은 아주 정말로 사기다)

이런 나라에서 병역거부라니 얼토당토 없는 소리다. 그래서 지금도 감옥에 있는 수백명의 병역거부자들.
대한민국 법중에 타인에게 그 어떠한 피해를 입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어떠한 물질적,신체적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1년6개월의 징역형(100%다,집행유예는 꿈도 꾸지 마라)을 받는 사례가 이것말고 또 있을까? 법의 정의는 개에게나 줘야 할 판국이다.(돈주고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인간은 집행유예가 아주 멀쩡히 되는데 말이다.)

이 책은 실제 병역거부로 1년6개월의 징역을 에누리 없이 다 채우고 나온 임재성씨의 글이다.
대학원 논문을 보충하여 낸 책으로 병역거부에 관한 인식을 바꿔줄 바이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선은 대체복무제
강의석씨 뉴스때도 마찬가지로 모든 관심이 병역거부 자체에만 몰리고 있지만, 실상 병역거부 선언의 진실은 대체복무제이다.-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기준의 진실이다. 이미 수많은 나라(우리랑 사정이 비슷한 대만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에서 시행하는 심지어 유럽에서는 전쟁이 한창인 1차대전,2차대전때 오히려 이러한 제도를 실행하였다.

기실 대한민국은 연간 10만여명이 유사대체복무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갖가지의 병역특례제도들이 있다. 비근한 예로 가수 싸이가 병역특례로 복무했다가 불인정 당해서 두번이나 군대가게된 바로 그 제도다. 여기에 병역거부자들이 주장하는 대체복무제가 추가되는 것이다.대한민국도 이미 노무현정부때 대체복무제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었고,국방부에서 2009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대강의 틀은 이렇다. 누구나 쉽게 할수 없는 아주 극한의 사회현장에서 군 복무기간의 2배를 대체 복무하는 안이다. 그것도 집단생활로써 (즉 군 내무반 생활처럼) 그러나 왠걸,정권이 바뀌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위대한 대통령..

대한민국에서 병역거부가 이슈되는 것은 또한 그것의 대부분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차지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그 초인종 소리.. 기독교인 천만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이단이라고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들의 문제에 콧방귀도 안뀌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인지 참 기독교인들의 기준이 이해가 안가지만(하기사 신앙이란 인간의 머리로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누가 이야기 하더라만).

30년 가까이 군인이 통치한 나라. 어찌 보면 이러한 발작증세들은 그 원인이 쉽게 보일수도 있다.
일제시대 부터 이어온 군사병영주의 나라에서 그 근간을 거부하는 인간이 대접받을수 있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이제는 무력이 아닌 평화의 관점에서 병역거부운동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핵심 내용인것 같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어떠한 공감대-공감대는 커녕 대체복무제가 먼지도 모르고, 뉴스에서조차 언급이 안되니-도 형성되지 못한 이 사회에서 그 최전선인 병역거부운동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본다. 저자는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도 그 논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거부의 거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미친 군사나라에서는 마치 꿈속의 유토피아처럼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p.s 1 리뷰를 좀 멋있게 써서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는데,글솜씨가 별로라 저자한테 미안하다.
p.s 2 혹시 이 글을 보고 '군대는 갔다왔냐?'라고 생각하실분을 위해 밝히지만, 26개월(2년2개월) 만땅,아니다.날짜가 잘 안맞아서 26개월 하고도 이틀을 더 추운 군영에서 육군 땅개로 복무했다.

c******1 2011.04.28. 신고 공감 1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