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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봄이면 씨 뿌리는 데 따라댕기면서 씨두 같이 뿌리구, 밭을 매면 한 손으로 밭두 같이 매고, 모를 심구면 모를 심구는 데 따라댕기며 모춤이라두 나르구, 벼를 베는 데 가서 벼를 못 베믄 볏단이라도 나르구, 겨울이 돼 낭구를 하믄 낭구하는 데두 따라댕기구, 눈이 오면 눈두 쳐내구,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리구 그때마다 그런 일이 힘들믄 오늘 거도를 잡았던 일 생각하구. 세상에 이 거도를 한 손으로 잡고 켜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다. 이 세상에 꼭 두 손이 필요해 니가 못할 일도 더러 있겠지만 힘이 들더라두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야. 그러니 이 당숙 말 단단히 새겨들어라.” 지금도 나는 그날 한 손으로 거도를 잡고 그것을 통나무 사이로 밀어넣고 잡아당기던 젊은 세일이 아저씨의 장한 모습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머릿속에 그려낼 수가 있다. (38 - 39쪽 발췌)
한 쪽 팔만 성한 해파리 아저씨에게 할아버지가 살아갈 요량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아저씨는 두 다리와 왼팔을 쓰지 못한다. 신체 중 온전한 것이라곤 오른팔밖에 없다. 그래서 걷는 것도 쩔뚝쩔뚝도 못 되는 찔룩찔룩이다. 거기에다 아이들 손목처럼 가는 왼손은 아예 옆구리에 꼬부라져 붙어버렸다. 몸만 온전하지 못한 게 아니다. 정신 연령도 초등학교 중학년 아이들 수준이다. 그런 몸과 정신으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처지다. 그러니 할아버지로서는 해파리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알려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며 스스로 살아가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해파리 아저씨에게 돈이라도 있을라치면 누구보다 먼저 손을 대던 친척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해파리 아저씨가 살아갈 수 있도록 뒤를 봐준다. 아들을 살려준 은인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농경사회 마을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에서 가능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숙모
아저씨와 숙모는 유별난 부부의 정으로 잘살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노새 같은 해파리이지 나무꾼이 아니었다. 아이 둘을 낳고도 선녀는 떠나고 말았는데, 아저씨는 그런 나무꾼도 되지 못했다. 두 분이 함께 산 지 15년이 되던 해 삼척 봉사에게서 기별이 왔다. 숙모를 구박하고 아들과 갈라놓았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때 낳은 아들이 벌써 장성해 열일곱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숙모 또한 어린 생각 속에서지만 여러 날을 고민했을 것이다. 남들처럼 몰래 떠난 것이 아니라 마지막 길을 떠날 때 아저씨와 함께 큰집으로도 인사를 왔더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앞까지 아저씨가 따라갔는데, 저쪽에서 다시 기별을 받고 날을 잡아 자기를 데리러 온 여러 사람 앞에서 숙모는 아저씨를 안고 그렇게 오래도록 울었다고 했다. (78 - 49쪽)
해파리 아저씨 일생에서 가장 희망찼던 날들은 숙모와 함께 지내던 시절이었으리라. 장날마다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새벽밥을 짓는 아내가 있었고, 비록 바르게 서지 못하는 몸이나마 근면하고 성실하게 움직일 근력과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서로가 사랑하면서도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을 둘은 순순히 수긍한다. 숙모가 떠난 다음 아저씨의 말년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마지못해 밥을 지었고, 그것을 큰집에서 가져다주는 찬과 함께 겨우 죽지 않을 만큼씩만 먹고 살아 다들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구호 양곡조차 아저씨에겐 남아들아 차례로 구석자리에 쌓아 두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스러져 갔다. 참으로 힘들게도 살다가 간 사람. 착하고, 용하고, 바르게 살다간 사람. 이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사랑을 떠나보내고도 미움을 남기지 않은 사람. 60년을 살았는데도 세상 어느 한구석에라도 자신이 살아온 그 기구한 삶의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