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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조고화두 염불시수... (허운)
"조고화두 염불시수... (허운)" 내용보기
책을 읽다보면, 삶의 격조를 높이는 배움이 있거나 마음이 절로 충만해지는 깨달음이 있을 때 희열과 책 읽는 보람을 느낀다. 귀한 인연이 닿아 선인들의 사자후(獅子吼)가  뇌리를 스치는 번개로 다가올 때 오성(悟性)은 열리고 지혜가 쌓인다. 사유(思惟)하길 좋아하는 타고난 습성 탓인지,  분석하고 논리적인 비판형 서양철학 보다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가진 묵상형 동양철학에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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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삶의 격조를 높이는 배움이 있거나 마음이 절로 충만해지는 깨달음이 있을 때 희열과 책 읽는 보람을 느낀다. 귀한 인연이 닿아 선인들의 사자후(獅子吼)가  뇌리를 스치는 번개로 다가올 때 오성(悟性)은 열리고 지혜가 쌓인다. 사유(思惟)하길 좋아하는 타고난 습성 탓인지,  분석하고 논리적인 비판형 서양철학 보다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가진 묵상형 동양철학에 많은 끌림과 느낌이 있다. 종교에 어떤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하지만 아무래도 내적 성향상 믿음의 기독교 보다는 깨달음의 불교 쪽에 관심이 더 간다(하지만 불경보다는 성경을 훨씬 더 읽었고, 스님의 가르침 보다 목사님 설교를 더 많이 들었다. 성경은 신구약 참 많이 읽었다). 학부시절에 서양철학에도 빠져보았지만 어느 정도 읽고나자 동양적 여백이 곧 마음을 채우고 만다. 내 마음이 그러함을 그때야 확실히 알았다.

이렇듯 동양의 잠언이나 사상서를 잡으면 괜스레 약간의 설레임이 가슴을 채운다. 이번에 손에 잡은 책은 근· 현대 중국불교의 선지식(善知識)이신 허운(虛雲, 1840~1959)스님의 흔적을 찾아가며 그 뜻을 기리는 책이다. 허운스님은 세간의 나이로는 120세, 승려가 된 햇수로는 101세로 입적하시었다. 임제종 43세, 조동종 47세,  위양종 8세, 법안종 8세, 운문종 12세의 법맥을 이은 선종의 선사로, 격동의 중국 근대사에서 점차 쇠락해 가던 중국 불교의 선풍(禪風)을 지켜온 율사이며 강사이다. 중국 근세사의 격변 속에서 파괴된 사찰의 복원과 불교 부흥에 힘써 제자들을 교육시키고 중생들을 보듬은, 20세기 전반 중국 불교계의 가장 존경 받던 고승이 허운 화상이시다. <사진은 113세 때의 스님과 116세( 홍콩의 허운스님 추모 홈페이지에서는 이 사진을 120세때 사진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어느 소스가 맞는지 모르겠다. http://blog.youthwant.com.tw/famscl/famscl/2556/) 때의 사진이다.> 


스님은 보타산에서 경을 읽다가 43세에 발심하여 보타산을 출발해 오대산까지 3보1배(三步一拜, 세걸음을 걷고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한번씩 하는 것)의 배행(拜行)을 결심하여 45세 때 오대산에 도착하였다. 출가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 참괴(慙愧, 부끄러움. 불교적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어 사전을 한번씩 찾아야만 했다)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비바람을 가리지않고 꿋꿋이 절을 하며 오대산을 향한 스님. 강소성-->안휘성-->하남성-->산서성의 4000km의 여정은 상상조차 쉽지가 않다.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었지만 이 3년간의 예배로 인해 스님은 번뇌를 제거하고 보리를 증득했다고 훗날 회고하며,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35쪽)고 한다. "하나의 나쁜 습관을 버리면 곧  하나의 광명을 얻을 것이요, 열개의 번뇌를 참아내면 곧 정각에 오를 수 있다."...


1895년, 스님이 56세 동짓달 팔칠 셋째 날 밤 6번째 향이 고요히 타오를 때, 사미가 다관으로 따라주는 차를 받다가 뜨거운 찻물이 손에 튀어 찻잔을 떨어뜨렸다. 이때 잔이 깨지는 소리에 홀연 깨달음으로 법열(法悅)에 잠겨 오도송을 읊는다.(46~47쪽 참조)
 
잔이 바닥에 탁 떨어져 / 깨지는 소리 분명하고 뚜렷하니 / 허공은 산산히 부서지고 / 허황된 마음 그 자리에서 고요히 쉬었네.
끓는 물이 손에 튀어 잔을 깨트리니 / 집은 부서지고 사람은 죽은 듯 입이 있어도 할말을 잊었네 /봄이라 꽃향기 곳곳에서 가득하니 / 산하대지가 그대로 부처로세.

杯子撲落地,響聲明歷歷;虛空粉碎也,狂心當下息。燙著手,打碎杯,家破人亡語難開;春到花香處處秀,山河大地是如來。(이 책에는 燙著手가 燙着手로 되어있는데 오기라고 생각한다.)


허운선사의 선사상은 이미 참선요지(參禪要旨)란 책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보다 자세한 것은 그 책을 참조해도 좋을 일이나, 이 책에서는 간단히 풀어내고 있다. 허운스님이 제시한 도를 깨치는 4가지 선결조건(인과를 깊이 믿어야 한다,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굳은 신심을 지녀야한다, 수행의 길을 정했으면 반드시 일관되게 나아가야한다)은 재가불자들도 새겨 들을 말씀이다.
참선의 목적은 무엇일까? 항상 궁금했던 의문에 대한 답의 단초를 잡아낸다.
<참선의 목적은 마음을 밝혀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明心見性)이다. 자기 마음의 오염이 없어지면 자성(自性)의 참모습을 본다. 즉 오염(汚染)이란 바로 망상과 집착이며, 자성이란 곧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말한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이 똑같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가지고 있다. 망상과 집착을 여의는 그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요, 그렇지 않으면 곧 중생이다.
다만 중생은 과거세 오래전부터 생사의 구렁텅이에 오랫동안 빠져 있어 번뇌가 가득하므로 그 자리에서 망상을 벗어나 본래 성품(本性)을 바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참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하는 선결조건으로 먼저 망상을 버려야 한다. 233쪽>
그렇다면 어떻게 망상을 버릴 것인가? 스님은 '마음을 쉬면 곧 깨닫는다(歇卽菩提)'고 한 쉼(歇)이 중요하다고 한다. 곧 "온갖 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萬緣放下 一念不生"는 두  구절의 말씀이 실로 참선의 선결 조건이라는데 정신이 번쩍든다. 한마디로 일체를 놓아라는 말씀이시다.
 
조고화두(照顧話頭ㆍ화두를 비추어보라), 염불시수(念佛是誰ㆍ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 스님의 법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두가 염불시수라고 한다. 이 네 글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수(誰)!, 이 '누구인가' 화두는 참으로 참선의 묘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데... 아둔한 말학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가 되고 만다.

사실 이 책이 잘 편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 정운스님이 허운화상의 발자취를 순례한 기록과 허운화상에 관한 평전 두 부분으로 나뉘다보니 많은 내용이 중첩되어 나온다. 스님의 사상을 많이 설명하기보다는 허운스님과 관련한 동시대의 스님, 제자들의 소개가 많아 스님의 전체를 보기엔 좋으나 산만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앞서 깨달음을 실천하신 허운선사의 생애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숙세의 인연' 임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스님은 1959년 10월 13일. 제자들에게 계(戒)의 중요성을 유언하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되고 입적하신다. 비불자에겐 덧없는 책일지 모르겠으나 불자에겐 소중한 마음의 서적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염을 세워본다. ㄴㅁㅇㅁㅌㅂ ㄱㅅㅇㅂㅅ...



리뷰 총점 종이책
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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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스님에 대해서는 막연히 그 분의 이야기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정운 스님이 서운 선사의 발자취를 쫓아 그 분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이룩한 업적 그리고 중국 불교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선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한다. 그가 중국 불교계에 헌신했던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중국 불교계의 법맥을 통합했고 발전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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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스님에 대해서는 막연히 그 분의 이야기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정운 스님이 서운 선사의 발자취를 쫓아 그 분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이룩한 업적 그리고 중국 불교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선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한다. 그가 중국 불교계에 헌신했던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중국 불교계의 법맥을 통합했고 발전시켰으며 중국 불교의 선지식을 확고히 다졌다.

 

내용은 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정운 스님이 허운 선사의 행적을 찾아 떠나는 순례여행기로 구성되어 있고 2장은 허운 선사의 평전으로서 그가 생전에 행했던 업적과 가르침이 잘 요약되어 있다.

 

허운 선사는 19세기 중반에 태어나 195912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다. 1949년 중국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중국 공산당은 승려들을 환속시키거나 불상과 탑을 훼손시키는 등 중국 불교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허운 스님 역시 112세 무렵 운문사변으로 말 못할 고난을 당하셨고 116세 무렵에는 자아비판마저 당해야 했다. 스님 자신뿐만 아니라 스님을 모시던 승려들이 모진 고문에 입적하거나 실종되는 등 큰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1840년 복건성 천주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사망했고 양모인 왕 씨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의 관리였는데 40세에 이르도록 후손이 없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열심히 불공을 드린 끝에 얻은 외아들이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이 깊었던 그는 이미 17세 때 몰래 출가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외아들이 출가하는 것을 강경하게 반대해 허운을 두 명의 처와 결혼시켰지만 그의 출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외아들의 출가에 화병을 얻어 사망하고 양모인 왕씨와 두 명의 처는 후에 허운의 뜻을 받들어 비구니가 된다.

 

허운 스님은 43세 무렵 보타산을 출발하여 오대산까지 4000km가 넘는 길을 31배를 하며 순례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참회의 목적으로 떠난 길이었지만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심하게 병을 앓아 사경을 헤매기도 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나가다 들렀던 절에서는 허름한 그의 행색 때문에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고 편히 쉴 곳도 없이 고난의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3년이 소요된 대여정은 끝이 났다. 그가 죽을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를 도왔던 문길이란 사람이 문수보살의 화신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의 의지만은 하늘도 감동시켰음이 분명하다. 그는 참기 힘들었던 그 고행을 통해 번뇌를 없앨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나의 나쁜 습관을 버리면 곧 하나의 광명을 얻을 것이요, 열 개의 번뇌를 참아 내면 곧 정각에 오를 수 있다."

 

49세 무렵 허운 스님은 아미산에서 티베트·부탄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스리랑카 ·미얀마 성지를 순례했다. 그 때 고민사의 주지로부터 부탁을 받고 향하던 중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겨우 고민사에 도착했으나 몸이 심하게 아팠던 그는 소임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그가 소임을 거부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매질했다. 물에 빠져 겨우 목숨을 건진 이에게 험한 매질이 가해졌으니 허운은 죽음만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그 때 보덕사 주지 덕만이 허운의 딱한 사정을 설명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허운 스님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 앞에서 늘 초연했으며 자신을 위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스님이 63세 무렵 또 한 번 물에 빠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재난을 겪을 때마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재난은 곧 단련이다.

많은 수행자들이 얻으려 해도 쉽게 얻지 못하는데 나는 재난을 통해 교훈을 얻고 있으니, 나는 행운이 많은 사람이다. 번뇌는 깨달음이고, 재난은 오히려 행복이다."

 

허운은 선사지만 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재건한 사찰에는 항상 장경루를 지어 손수 가져온 불교경전을 보존했으며 불교 수행시 계율을 엄격히 지켰다. 그리고 제자들을 지도할 때도 염불··주력·간경 등 폭넓은 방법을 적용시켰다.

 

대신 그는 수행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수행의 일관됨을 강조했다. 참선의 목적은 마음을 밝혀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이라고 한 그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다 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망상을 없애고 집착과 분별을 소멸시켜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전에 아버지의 부음에도 고향을 찾지 않았으며, 출가한 양모와 두 처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일체 중생이 평등함을 가르쳤다. 사람, 축생, 무정물마저도 평등하니 차별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는 자비심을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축생물도 축원하여 주었으며 죽은 후에는 장례를 치르고 묻어주었다. 그는 비구니를 위한 사찰건립에도 신경을 썼으며 비구니들도 구족계를 받을 수 있도록 불교 규정을 바꾸었다. 허운 스님은 불법을 깨달음에 있어 남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으며 외국인들도 차별하지 않아서 제니스라는 미국 여성에게도 계를 주었다.

 

허운은 선지식을 확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등 중국 불교계의 귀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며 전쟁과 혁명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중생들의 아픔 또한 외면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고 평생을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몫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승복 몇 벌이 전부였다고 하니 부귀와 명성은 멀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해야 하겠다.

 

스님이 하셨던 법문 중 하나를 끝으로 리뷰를 마칠까한다.

 

대해는 물도 있어야 하고 또한 파도도 있어야 한다.

잔잔하고 고요한 것을 물이라 하고 세차게 용솟음치는 것을 파도라고 부른다.

파도가 잔잔하고 고요할 때는 물이라고 하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지만 용솟음치는 파도가 있음으로 해서 잔잔한 것을 물이라고 부른다.

세차게 용솟음치는 현상이 없었다면 파도라는 거짓 이름조차 생겨날 수 없으며 잔잔함이라는 가명조차 생겨날 수 없다. 즉 잔잔한 물이나 파도는 모두 인간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거짓 이름에 불과하다.

 



l*******e 2011.02.24.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 근현대의 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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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스님은 청나라 말기, 국민당, 공산당으로 세대가 바뀌는 불운한 시대에 사셨던 분이다. 불교를 미신으로 치부했던 시절에 19세에 출가하였다.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의 출가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고행한 것 외에는 열반하신 120세까지 대부분 중생 구제에 인생 전부를 바쳤다.   책은 허운 스님에 대한 신문 연재인 전반부, 그리고 후반부는 스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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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운 스님은 청나라 말기, 국민당, 공산당으로 세대가 바뀌는 불운한 시대에 사셨던 분이다. 불교를 미신으로 치부했던 시절에 19세에 출가하였다.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의 출가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고행한 것 외에는 열반하신 120세까지 대부분 중생 구제에 인생 전부를 바쳤다.

 

책은 허운 스님에 대한 신문 연재인 전반부, 그리고 후반부는 스님의 평전이다. 많은 사진이 실려 있어 현장감있게 읽을 수 있는 전반부와 좀 더 객관적으로 스님의 일대기, 당시 중국의 정치, 외교 상황을 알 수 있는 후반부이다.

 

불교는 나의 종교인 개신교와 크게 다른 점이 출가를 한다는 점이다. 속세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버리고 오로지 참회와 고행을 반복한다. 거기에 스님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국민을 돌보았다. (자신도 철저하게 몸뚱아리밖에 없었지만...)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비록 개신교이긴 하지만 늘 목사님은 갈구하시는게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하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종교이든지 자신의 안이만을 바래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할 부분은 평전편에 있는 허운의 선사상이다. 스님의 교육관과 불사 정신, 비구니, 여성에 대한 평등 사상을 비롯하여 스님의 계율에 철저한 깊고도 대쪽같은 사상을 만날 수 있다.

 

'혼탁한 세상에 불교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면, 승려가 계율을 청정히 지켜 중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스님의 지론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생에 임하면 절대로 혼탁한 세상은 없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b****n 2011.03.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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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처럼 한 세기를 살다간 허운 스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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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스님은 청나라 말기,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세대가 바뀌는 불운한 시대에 사셨던 분이다. 암울한 중국 땅, 개혁세력이든 반란세력이든 공산당이든 불교를 미신이라고 치부했던 시대에 생존했던 그는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고, 중국불교 재건을 위해 힘 쓴 분이었다. 불교와 스님에 관해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불교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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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스님은 청나라 말기,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세대가 바뀌는 불운한 시대에 사셨던 분이다. 암울한 중국 땅, 개혁세력이든 반란세력이든 공산당이든 불교를 미신이라고 치부했던 시대에 생존했던 그는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고, 중국불교 재건을 위해 힘 쓴 분이었다. 불교와 스님에 관해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불교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불교의 맥을 이은 스님의 업적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널리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허운 스님에 대한 일화나 전기는 거의 신화적인 내용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신기하고 기이한 일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내용보다 몇 배는 더 놀라운 일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120살이라는 생존기간도 놀랍고 열반하기 직전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고 하니 스님이 내뿜는 기운은 정말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43세의 7월 보타산 법화암에서 출발해 45세의 5월 오대산 현통사까지 여러 사찰들을 3보1배하였다는데, 4000km를 3년 정도의 시간동안 고행한 스님의 예배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중국을 잠깐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 고통을 스님은 나쁜 습관 하나를 버리는 것쯤으로 여기고, 열 개의 번뇌를 참아 내면 곧 정각에 오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고통을 감내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5번 정도 왕복 거리를 배행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쓰여 있다.

 

어디 그뿐인가. 112세에 공산당 병사들에 의해 신체적 가해를 당했다고 하는데, 가부좌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병사가 화가 나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리다가 떠나자 그때부터 무려 9일동안 스님은 입정에 들어섰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이 돌처럼 되는 것이다.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리 오래 있었냐는 말까지 도통 믿기지가 않는다. 대학교 교양과목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승려들의 장시간 입정삼매를 말하면 믿지 않는다는 저자의 얘기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도 엿볼 수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잠시 5분도 못 앉아 있으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밖에.

 

허운의 사진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중국본토를 비롯해 대만과 홍콩 등 수십여 사찰에 허운기념당이 있고, 사리탑만 해도 여러 곳에 모셔져 있을 정도로 중국 승려들이 그를 대하는 존경심은 실로 대단하다. 이 책은 성심사로 출가하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정운 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허운 스님의 행적을 따라 중국사찰을 다녀온 여행기가 주를 이룬다. 전반부는 신문에 연재한 원고이고, 후반부는 허운에 관한 평전이다. 아무래도 전문서적의 느낌이 들지만 전설처럼 들리는 허운 스님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법정 스님이 펴낸 책의 경우처럼 훌륭한 선인의 좋은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님으로 한 세기를 살다간 사람의 뒤를 활자로나마 밟아보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또한 적잖은 재미를 안겨준다. 

j*****n 2011.02.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운]행동하는 선각자, 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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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관련 서적보다는 불교관련 서적을 훨씬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내가 후자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내가 접했던 두 범주의 작품들 중 불교 서적이 기독교 서적보다는 비교적 종교색이 옅었기 때문이었다. 불교도가 아닌 타 종교인 혹은 비종교인이 읽었을 때에도 별다른 종교적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종교에서 조금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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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관련 서적보다는 불교관련 서적을 훨씬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내가 후자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내가 접했던 두 범주의 작품들 중 불교 서적이 기독교 서적보다는 비교적 종교색이 옅었기 때문이었다. 불교도가 아닌 타 종교인 혹은 비종교인이 읽었을 때에도 별다른 종교적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종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종교 서적은 인생길을 걸어 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덕분에 나는 정운 스님의 『허운』을 집어 들었다.

저자 정운 스님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허운 선사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허운』은 크게 전반부의 허운 행적 순례기와 후반부의 허운 평전으로 구성되어있다. 중간 중간 저자가 찾아간 사찰과 주변 자연환경, 여러 승려들의 사진과 경전 등, 다양한 사진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상세한 각주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가 읽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종교색이 짙었다. 이는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작품으로 다가오겠지만 종교를 떠나 어떤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본인 같은 독자들은 자칫 지루함에 빠져버릴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른 중국불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신선했다. 또한 전반부의 정운 스님의 순례기는 읽는 이가 따라가기에 쉽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어 상당히 재미있다.

 

‘허운’, 이 책의 제목이자 중국 불교계에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준 승려의 이름이다. 허운은 청나라 말기․국민당․공산당으로 바뀌는 불안한 시대를 살다간 중국의 대표적인 승려이다. 불안한 시기의 중국은 매번 불교를 앞세워 핍박했고 그때마다 허운도 모진 일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안전한 인접국으로 떠나지 않고 중국에 남아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허물어져가는 사찰을 재건하고 제자들에게 경전을 전하며 선각자로서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것이다. 극도로 청빈한 생활을 하며 기본적인 권리마저 내려놓고 선사 허운은 불교사회 안에서 불평등한 존재였던 여성을 가장 먼저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다. 특히 서양 여성에게 최초로 법명을 내려준 일화는 매우 인상 깊었다. 때문에 그가 입적한 이후(1959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행동하는 선각자, 허운의 가르침은 현재진행중이었다.

g****g 2011.02.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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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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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불교서적을 읽는 것을, 불교인이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을, -이둘 외에 다른 종교끼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불문하고 각각의 가르침 속에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가르침이고 그것에 배제시키고 버려야 할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불교서적이다. 중국 근현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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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이 불교서적을 읽는 것을, 불교인이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을, -이둘 외에 다른 종교끼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불문하고 각각의 가르침 속에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가르침이고 그것에 배제시키고 버려야 할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불교서적이다. 중국 근현대 불교의 선지식이라 불리는 허운이란 스님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 뜻을 기리는 책이다.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첫째 장에서는 허운 스님의 행적 순례를, 둘째 장에서는 허운 스님의 평전을, 셋째 장에서는 약전, 발자취를 나타낸 지도, 법맥도를 다루고 있다. 이 책 <허운>은 재미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약간의 재미와 또 배울 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허운(虛雲) 스님은 청나라 말기에서 국민당, 공산당으로 세대가 바뀌던 때인 1840년에서 1959년까지의 인물이고, 120세에 열반하셨다고 한다-책을 읽고 난 후 저절로 높임말을 쓰게 되었다-. 허운 스님의 120 평생을 반으로 나누어 60세 이전에는 스스로를 위한 수행을 하셨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생 구제를 위한 삶을 사셨다. 분명 대단하고 존경받을 삶이었을 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허운 스님은 불교 수행의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첫째, 인과를 깊이 믿어야 한다.

둘째,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셋째, 굳은 신심을 지녀야 한다.

넷째, 수행의 길을 정했으면, 반드시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

가 그것이다. 

  또 조고화두(照顧話頭:화두를 비춘다)와 염불시수(念佛是誰: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가 등장하는데 특히 ‘수(誰:누구인가)’는 참선의 묘법이라 하여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선과 정토, 유심론과 유물론에 대해서도 다루어지고 있으니 책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허운의 제자들도 기록되어 있는데, 도륜, 본환, 정일, 불원, 정혜, 일성, 관정의 활동 역시 찾아볼 수 있었다.

솔직히 불교와 관련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내게 이 책은 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관념적인 것들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허운 스님의 희생적이면서도 선한 삶의 행적을 따라가 보고, 그분의 가르침과 사상의 내용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있었다. 아마 이 책은 읽는 사람들 저마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k*******5 2011.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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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을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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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보았을때는 막연히 딱딱한 지식을 전하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 생각과는 다르게 책일 술술 쉽게 읽혀지는 것이다. 저자인 정운스님이 직접 중국 현지를 순례 하며 중국 근현대 선사인 허운 스님이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거기서 얻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나간 덕분에 마치 내가 저자와 함께 동행 순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페이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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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만 보았을때는 막연히 딱딱한 지식을 전하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 생각과는 다르게 책일 술술 쉽게 읽혀지는 것이다. 저자인 정운스님이 직접 중국 현지를 순례 하며 중국 근현대 선사인 허운 스님이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거기서 얻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나간 덕분에 마치 내가 저자와 함께 동행 순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페이지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있던 사진들은 더욱 생생한 현장을 느끼게 해주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가끔 모르는 불교 단어들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감원 환진의 발언으로 인해 허운은 대중 앞에서 향판으로 매를 맞았다'라는 부분에선 '감원 환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사전을 찾아보다 결국 앞뒤 맥락으로 이해하며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불교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 같다. 불교에 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내용들이 훨씬 많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크게 두 부분 - 허운스님의 운남성 행적 순례와 허운 스님에 관한 평전 - 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특히 제 1장에 해당되는 스님의 행적 순례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재난을 겪으면 쉽게 쓰러지기 마련인데, 스님은 '이런 재난을 겪을 때마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재난은 곧 단련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 구절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왜 내게만 이렇게 시련이 있는거야라며 한탄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시련이 오히려 나에게 약이 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이 책을 통해 스님에 관한 오래된 편견 하나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어릴적 중국영화에서는 스님들이 절대 고기를 먹지 않는 모습을 종종 접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안에 존재하는 스님들은 무조건 고기는 안 먹고 채식을 하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육식을 하는 스님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티베트의 승려들이 육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티베트의 대다수 지역의 땅은 비옥하지 못하여 농경이 발달하지 못한데다, 티베트 주민의 대다수가 유목민인 덕분에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식량이 가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님들은 당연히 채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런 환경에서 채식을 고집하는 건 불교의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허운스님이 입적하시는 부분이었다. 결코 거창하지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스님의 마지막 모습에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허운스님이 떠난 자리에서는 100여 과의 큰사리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사리가 나왔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스님의 선사상이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허운 스님은 불교 수행에 있어' 첫째, 인과를 깊이 믿어야 한다, 둘째,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셋째, 굳은 신심을 지녀야한다, 넷째, 수행의 길을 정했으면 반드시 일관되게 나아가야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꼭 불교 수행이 아니더라도 이 네가지는 누구나 가슴에 새겨두면 좋은 이야기 인 것 같다.

p********0 2011.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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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스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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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독서기간: 2011년2월19일-2011년2월21일 이 책은 중국의 선사 중 한 명인 허운 스님의 행적과 사상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스님에 대한 책도 변변하게 읽어보지 못했는데, 중국의 스님에 대한 책을 읽기가 약간의 반감도 있었으나, 저자인 정운 스님의 주장대로 종교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생각을 고쳐먹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허운은 청나라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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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독서기간: 2011년2월19일-2011년2월21일


이 책은 중국의 선사 중 한 명인 허운 스님의 행적과 사상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스님에 대한 책도 변변하게 읽어보지 못했는데, 중국의 스님에 대한 책을 읽기가 약간의 반감도 있었으나, 저자인 정운 스님의 주장대로 종교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생각을 고쳐먹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허운은 청나라와 중국의 현 사회주의 국가가 태동하는 시절의 사람으로, 이 기간은 불교에 대한 탄압이나 반대운동이 거세던 시기였다. 허운은 이 시기에 있어서의 중국 불교의 기틀을 잡고 부흥을 유발한 선사이다. 즉, 허운은 불교의 ‘법‘을 주요시 한 인물로, 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고 사찰에 경전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사찰들의 부흥과 스님들의 계율적인 정진을 유도하였다.

본 서를 통해서 왜 스님들은 출가를 하고 속세와의 인연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는 지도 알고 싶었다. 또한 허운을 통해서 중국 불교 사상도 알고 싶었다. 본서에서는 허운의 출가과정과 출가 후 속세와의 관계, 그리고, 허운의 사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불교도 그러하지만,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이고, 자기 본래의 모습(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인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수행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전반부의 내용은 기행문의 구조를 띄고 있으면서도, 기행문다운 정보제공의 역할은 약간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s******3 2011.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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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불교용어지만...불교를 접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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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인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가 다르다.. 그래서 책을 펼쳐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타종교를 포용하는게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던가~~라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겉표지의 묵직한 하드커버와 허운 스님의 장엄한 자태가 나를 위축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가는데... 앗~ 생소한 불교용어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했는데.. 물론 용어를 찾아가면서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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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인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가 다르다..

그래서 책을 펼쳐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타종교를 포용하는게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던가~~라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겉표지의 묵직한 하드커버와 허운 스님의 장엄한 자태가 나를 위축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가는데... 앗~ 생소한 불교용어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했는데.. 물론 용어를 찾아가면서 읽을 수도 있겠으나,,,글읽기 몰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므로.. 문맥을 통해 용어를 이해하는 형식으로 읽어갔다..

 

책은 크게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허운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기행을 통해 기고했던 글을 모아놓은 글을 엮은 내용이고, 2부는 허운스님에 대한 평전이다..(3부는 행적순례도 및 일러두기 형식이니 제외한다)

 

평전을 먼저 하고, 기행을 나중으로 구성하는 게 오히려 내게는 읽지가 더 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가의 의도는.. 아마 기행내용이 좀 더 쉬울것이니... 기행내용을 먼저 하고 평전을 나중으로 구성한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나 역시나 기행문을 읽으면서.. 뒤쪽에 평전내용에 궁금증을 생기게 하여.. 끝까지 읽게금 유도하는데 좋은 구성이었던 듯 싶다. 글 내용도 불교용어만 제외하고는 읽어내는 데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비불교인이 읽기에도 그닥 어려울 일은 아닌듯 싶다.

 

어렴풋이나마 불교의 종파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의 불교에 대해서도 처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페이지 곳곳에 생생한 사진과 함께 하여 이해하는데 보다 용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내게는 소수민족인 티베트에 대해 정운스님이 운남성을 거닐며 소감으로 쓴 문장드리 와 닿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느껴졌다.

 

불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본받음과 깨달음에 더 많은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나, 비불교인이 내나 읽는데에는 생소한 불교용어를 문맥적으로 해석 및 유추 가능하기 때문에 상관없긴 했다. 

 

이제껏 보도 듣고 못한 중국의 위대한 승려 한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불교인이었다면 타종교인 나보다는 더한 감명을 받을수 있는 책일거라 생각된다. 나로써는 다소 생소한 독서경험이긴 하였으나, 이렇게 일부러 본인관심사가 아닌 문외한 분야에 대해 한번쯤 접하고 느껴보는 것 역시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든다.

 

 

u******n 2011.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