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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를 생각하면 세계테마기행이란 프로그램에서 「체 게바라의 마지막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체 게바라의 마지막 격전지인 유로 계곡과 체가 잠들어 있는 곳 라 이게라 마을’로 떠났던 여정이 떠오른다. 〈체 게바라 평전〉을 비롯해서 그의 관련 서적들을 읽는 사람들을 보아 왔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체 게바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아 떠난 길에서 나는 예상 밖의 인물과 마주치고는 혼비백산했다. 39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볼리비아에 잠들어 있는 한 남자의 열정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체 게바라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그의 인생 전환점을 맞게 되는 계기가 된 여정을 기록한 책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구입하였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학고재에서 출간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어느 혁명가의 최후(2011.1.31.)』를 보았을 때 체 게바라의 마지막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척 반가웠다. 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는 공간이기에 혁명가라는 칭호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일기는 1966년 11월 7일부터 시작된다. 볼리비아에서의 게릴라 활동이 시작되고 약 4개월 동안 출신이 다른 대원들 간의 반목, 해이한 군기와 계속되는 이탈, 익숙하지 않은 지형과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곤란을 겪는 내용이 담겨있다. 불어난 물 때문에 강을 건너다 대원 두 명을 잃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1967년 3월 23일 정부군과의 첫 교전에서 포로 열네 명을 잡고 정부군 작전계획을 압수하는 등의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원들 간의 불신, 쿠바와의 연락 두절, 인명 손실, 농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의약품과 보급품의 확보 지연 등 게릴라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정부군의 추격을 피해 산악지대로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고립되는 어려움에 처한다. 그리고 1967년 10월 7일자로 끝나는 일기에 가까워지면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탈락자와 배신자도 나오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오랫동안 앓아오던 천식이 심해지면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글도 자주 등장한다. 1967년 10월 8일 체 게바라가 유로 계곡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면서 그의 일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활동 상황, 대원들의 분위기, 정부군의 움직임 등 볼리비아에서의 게릴라 활동이 어디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일기는 체 게바라가 힘들고 지치고 불안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매일 새로운 다짐을 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시간을 갖게 해 준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듯이 보여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매일 일기장을 펼치면서도 어느 순간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될 시간이 올 것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39살의 젊음은 그렇게 꺾였다.
체 게바라가 게릴라 활동을 하던 몇 개월간의 발자취는 ‘체의 길’이란 이름으로 관광명소가 되어 매년 삼천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내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길이 아마도 ‘체의 길’이 아닌가 싶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비참한 생활을 하는 민중들을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고 여긴 체 게바라는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뒤로하고 게릴라가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기록이 여기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어느 혁명가의 최후』에 담겼다. 볼리비아에서 잠든 체 게바라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의 열정이 잠든 볼리비아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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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를 엿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그 내면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 노트에 하루도 빠짐없이 펜을 들어 글을 적어나가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읽기를 읽고 나니 오래전에 썼던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매일매일 기록한다는 자체의 성실함과 하루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대척점이 되는 되는 것은 아닐까.
한 혁명군의 일기가 공개 되었다. 1985년부터 볼리비아 중앙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가 이번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는 그의 일기. 그 일기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체 게바라다. 체가 죽기 이전에 배낭에서 발견된 이 일기는 1966년 11월 7일부터 그해 말 12월 31일까지 기록이 담겨져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는 게릴라들의 활동과 그의 단상들이 적혀져 있다. 군더더기 없는 필치지만 짧은 필체 속에서도 그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그는 짧지만 매일매일 기록을 남겼다. 한 달의 일기를 채우고 나면 그는 월말 평가를 통해 자신의 병력을 점검하고 아군의 전력에 대해 평가하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적어 나갔다.
그간 체 게바라의 이야기는 <체 게바라의 평전>과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통해 접했다. 다만 평전을 읽다가 도무지 읽히지 않아 접었지만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익숙한 인물 중 한명이다.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엘리트였고 졸업직전에 남미여행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목격했다. 특히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었던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면서 혁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 쿠바 하면 절로 떠오르는 체 게바라지만 그는 쿠바를 떠나 1966년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반군 지도자로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게릴라 투쟁이 실패로 끝나고 끝내 라 이게라에서 총살 당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런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 시간의 체 게바라의 여정을 짚어보았다. 주로 게릴라 군의 일정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상황에 대한 추측들이 담겼지만 딸의 생일날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도 엿 볼 수 있었다.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그는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주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여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일으킨 그의 모습은 개인적인 행복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면서도 그 뜻을 이루려고 했던 한 혁명가였기에 더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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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최후를 다룬 글을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리더스다이제스트는 예상대로, 혁명수출을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볼리비아에서 무장 게릴라 활동을 벌인 공산주의자 체 게바라의 약식재판도 없는 처형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서술했다. 모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고려한다면, 과연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으로 지난 세기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칭송받은 인물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다년간 외교사절로 활동한 김홍락 볼리비아 대사의 세심하면서도 유려한 번역으로 만나게 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어느 혁명가의 최후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게 해주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볼리비아 일기>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게릴라 전사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1966년 11월부터 이듬해 10월 볼리비아 유로계곡 전투에서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처형되기 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쿠바에서의 성공 후, 어떻게 보면 전 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인민을 해방하겠다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호응하는 열혈 혁명전사로 거듭난 체는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를 다음 혁명의 전초기지로 결정한다. 쿠바에서의 게릴라 활동이 체의 생애 가장 빛나는 성공의 순간이었다면, 볼리비아에서의 그것은 역설적으로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육필로 쓴 볼리비아에서 일기에는 무장 게릴라 투쟁 성공에 대한 확신과 30대 후반 게릴라 전사의 신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외부와의 연락 두절,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반목, 현지 농민 계급의 밀고 그리고 식량 부족으로 인한 끝없는 보급투쟁의 과정은 볼리비아에서 체의 실패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온다. 바티스타 독재정권 타도와 외세축출이라는 뚜렷한 목적으로 투쟁의 대오를 이뤘던 쿠바에서와는 달리, 나름대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출된 바리엔테스 정권의 토대는 체 게바라와 마닐라(쿠바의 암호명)의 예상과는 달리 강건했다. 게릴라 활동의 필수적인 민중의 지지와 지원도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헤게모니 다툼도 한몫했다. 설상가상으로 쿠바, 볼리비아, 페루 같이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체의 게릴라 부대는 활동 초기부터 불화와 반목으로 지도자 체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그들이 주로 활동하던 리오그란데 강 유역의 정글의 기후와 지형에 적응하지 못한 게릴라 부대는 그 지역 농민의 길 안내에 의존해야 했고, 친정부적인 성향의 길라잡이들은 그들의 활동을 그대로 미국 군사고문단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전달했다. 식량이 떨어져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게릴라 부대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기강 해이와 부주의로 대원들이 희생되면서 이탈자도 속출했다. 한 때 정부군을 상대로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활약을 벌이던 체의 게릴라 부대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투쟁을 계속한다. 8월 말 바도 델 예소 전투의 패배와 호아킨 부대의 전멸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다가오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다. 번역을 맡은 김홍락 대사는 최후의 유로계곡 전투와 라이게라에서의 처형으로 갑자기 끝난 체 게바라의 마지막 일기를 친절하게도 에필로그와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참가했던 게릴라들의 약력으로 보충 설명해준다. 원래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생포할 때만 하더라도, 처형계획이 없었지만 그에 동조하는 세력의 준동을 우려한 볼리비아 정부는 복잡한 재판 과정을 생략하고 그를 처형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체와 그의 동지들이 꿈꾸던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꿈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대신 라틴아메리아 곳곳에서 우익 군사독재로 인한 부정부패와 쿠데타의 악순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게릴라 지도자답게,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냉정하게 매일매일의 사건을 기록하고 월말에는 냉혹한 평가로 자신과 혁명과정을 비판했다. 동시에 피할 수 없었던 동지들의 희생 앞에서는 문학가를 능가하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쿠바와 콩고에서 사선을 넘으며 투쟁했던 카를로스 코예요(투마)와 엘리세오 레예스 로드리게스(롤란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게릴라 지도자가 아닌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마지막을 맞았던 볼리비아의 라이게라와 리오그란데 유역은 이제 유명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최후를 맞은 체 게바라의 후광이 여전히 낙후된 지역에 살고 이들에게 비추고 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 다시 읽는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실패한 게릴라 전사의 마지막 기록은 그래서 더 멜랑콜리한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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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누구인가? 쿠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겨우 한 줄 정도의 설명으로 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란 생각을 했다.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성공한 뒤, 1966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투쟁을 하다가 다음 해인 1967년 정부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하며 최후를 맞는다. 이 책의 내용은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반군 지도자로서 게릴라를 이끌던 시기에 쓴 일기다. 주로 게릴라 활동 상황을 상세히 적은 보고서 느낌이 강하지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체포되기 전날까지 썼다는 것은 이 일기가 체 게바라에게는 특별한 삶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체 게바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왠지모를 치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혁명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치밀하면서도 꼼꼼하며,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이 아니고서는 마지막까지 투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는 대단히 노력하는 리더였으며 혁명가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그의 삶은 성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원래 혁명은 영웅적인 인물 하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그래서 운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혁명의 결과로 그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대원들을 격려하며 사기를 높이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단호한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의 모습이 바로 그의 삶이다. 만약 그가 평범한 의사의 삶을 살았더라면 몸이 아픈 환자들만을 치료했겠지만 혁명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중남미의 곪아터진 사회구조를 개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혁명, 개혁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할만큼 상징적인 된 것 같다. 1967년 6월 14일의 일기를 보면 마지막 문장이 다음과 같다. "......이제 나는 서른아홉 살이 되었다. 게릴라 전사로서 내 미래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지금 현재로서는 아직 '양호한' 상태다. 해발고도 830미터." 바로 이 부분에서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된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혁명가도 자신의 나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는 천식으로 심한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체포될 당시에는 발이 퉁퉁 부어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나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조차도 불굴의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서른아홉 살의 나이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매일을 긴박하게 투쟁하며 살아야 하는 게릴라의 삶이 어찌보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포기하지 않는 치열한 열정이야말로 체 게바라가 남긴 가장 의미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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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 붐처럼 일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책이 되고 영화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질 순 없다는 생각에 덩달아 책 한 권을 구입했다. 붉은 표지에 검은 음영으로만 표현된 체 게바라를. 하지만 책장은 생각만큼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혁명가의 일생이라 그런가? 만만치 않군. 이 한마디를 끝으로 책장을 덮어버리고 난 구미가 당기는 말랑말랑한 책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읽다가 도중에 그만둔 책은 내게 부채감으로 남아있다. 언제든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따로 책장에 쌓아두다가 한계를 넘어서면 박스에 담겨진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예전에 읽다가 제쳐둔 책이 떠올랐다. 게릴라를 펼치던 체 게바라가 생포당할 때 지녔다는 배낭에 있었다는 일기와 몇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이 책이 출간됐다는 소개 자료를 보니 호기심이 일어났다. 혁명가로 이름을 떨친 그의 마지막 기록이, ‘일기’란 단어의 내밀한 느낌이 더해져서 더욱 궁금해졌다. 책은 ‘1966년 11월 7일.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로 시작해서 이듬해인 1967년 10월 7일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체 게바라는 그가 속한 게릴라 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해놓았다. 이를테면 부대원들의 변동사항이나 정찰한 내용, 부대원의 이동거리에서의 특이점, 전투가 벌어졌을 경우에는 누가 참가했으며 어떻게 진행됐는지, 앞으로의 계획이나 회담내용, 변동사항처럼 게릴라 부대의 활동을 보여주는 것들을 비롯해서 대원, 혹은 체 게바라 가족의 생일, 대원들이 부상을 입거나 질병,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또 적은 인원으로 효과적인 전술을 펼치기 위해 그들은 틈나는대로 훈련을 거듭했고 때로 게릴라 부대의 상황이 어떤지, 정부군의 움직임에 대해 알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진척상황을 남기기도 했는데 일 년이 안 되는 11개월 동안 메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적은 것, 적게는 단 한 줄(특별한 사항 없음) 많게는 한 장까지, 일기의 말미에 해발고도까지 기록하고 월말엔 ‘월별평가’까지 한 것을 보아 체 게바라가 얼마나 꼼꼼한 인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쿠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웅 체 게바라, 그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이기에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치열한 일상을 생생하게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초반엔 나의 짐작이 맞아떨어졌다. 볼리비아 혁명에 성공해서 남미혁명의 교두보로 삼고자 체 게바라의 의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후반으로 향할수록 그들의 부대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정부군의 눈을 피해 깊은 산으로 피신하기도 했고 의약품이나 물자의 보급이 늦어져 난항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 체 게바라는 지병인 천식이 더욱 심해져 고생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한계점에 다다른 모습이 보여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1967년 10월 7일을 마지막 기록으로 다음날인 10월 8일 체 게바라는 유로계곡에서 정부군에 체포되어 10월 9일엔 살해된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게릴라이기도 했던 체 게바라. 그래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야할지 부상병을 치료해야할지 주저하고 갈등했다고 한다. 생명의 존귀함, 고귀함을 아는 그이기에 분연히 혁명의 길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비록 서른아홉이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혁명가 체 게바라. 그의 삶을 이 책의 짧은 일기로 모두 알 수는 없다. 일부이긴 하지만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난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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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체’는 혁명과정에서 게바라 스스로가 붙인 이름으로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란 뜻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멕시코에 망명 중이던 쿠바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면서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고 쿠바의 산업부 장관과 국립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이후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고 사라졌다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투쟁의 지도자가 되어 나타났으며 만 서른아홉에 총살당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체 게바라의 전부이다. 알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야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체 게바라가 낡은 붉은 색 대학노트에 쓴 1966년 11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쓴 일기와 갈색 인조가죽 다이어리에 쓴 1967년 1월 1일부터 1967년 10월 7일까지 쓴 일기가 실려 있다. 그는 수필집, 서한문 등 많은 유작을 남겼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 이틀 전까지 스스로 기록한 마지막 유작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1966년 11월 7일에 시작한 그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날부터 시작된 일기는 1967년 10월 8일 유로계곡에서 정부군의 매복에 걸려 체포되고 10월 9일 총살로 생을 마감하기 이틀 전인 10월 7일까지 계속되는데 일기를 살펴보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달이 끝날 때마다 월말평가를 기록해 게릴라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향후 계획을 기록했다. 일기를 보면 게릴라 대원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생일과 몸의 상태까지 기록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대원들의 건강은 의사이자 지도자였던 체 게바라에겐 중요한 문제였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생일까지 기록한 것을 보면 다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꽤 인간적인 지도자였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든다. 두 살 때부터 천식을 앓았던 그는 게릴라 활동 내내 천식을 앓았고 수시로 급박한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지만 기록을 빠트리지 않았다. 저자에 의하면 체 게바라는 전장의 상황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게릴라였다고 한다. 이제 나는 서른아홉 살이 되었다. 게릴라 전사로서 내 미래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지금 현재로서는 아직 ‘양호한’ 상태이다.(172쪽) 인용문은 1967년 6월 14일 일기의 일부로 이날은 체 게바라의 생일이다. 그의 ‘미래’를 살고 있는 나는 더 이상 그의 ‘미래’가 없음을 알기에 이 글은 많이 아렸다. 8월 8일의 일기에는 통제력을 잃어 말의 목에 칼로 찔러 상처를 낸 일을 적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반성하고 다시 불가능에 도전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토록 철저히 기록을 하고 자신의 나라도 아닌 볼리비아의 혁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저자의 말처럼 쿠바 혁명을 볼리비아를 넘어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까지 확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꽃샘추위에 낫지 않는 감기로 만사가 귀찮은 나는, 한 개인으로의 ‘나’로 사는 일도 버거운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이 들었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사람마다 각자의 몫이 있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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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읽고 사람이 하나의 기록을 꾸준히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내 자신도 일 년의 일기쓰기 도전을 해서 정말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무리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뿌듯한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그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좋은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 이후 항시 생각은 있지만 실천은 해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조그만 수첩에 메모 식으로 해오는 것은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일기의 좋은 점은 역시 철저한 기록성이다. 내 자신의 나이 오십대 중반이 넘어섰다. 요즘 기억력이 계속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노년이 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자꾸 서글퍼지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때 일기 같은 기록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유용할 것인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확이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는 ‘쿠바의 두뇌’라고 불리울 정도로 활동을 많이 하였다. 쿠바에서 요직을 맡으면서 권력의 일선에 있다가 돌연 쿠바를 떠난 뒤에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반군 지도자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게릴라 투쟁을 이끌었던 체 게바라의 투쟁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라 이게라에서 총살당함으로써 파란 많은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런데 체 게바라가 생포되었을 당시에 가지고 있던 올리브 그린색의 배낭에는 두 권의 일기와 몇 장이 사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체 게바라의 게릴라 투쟁 당시의 최후의 기록인 셈이다. 그 기록은 쿠바의 카스트로에 의해 1968년 '볼리비아 일기'로 발간되었고, 이번에 읽게 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그 책을 번역 출간한 것이다. 그의 일기는 1966년 11월 7일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새로운 여정의 첫 페이지 내용이 인상적이다.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라는 말로 첫머리를 열고 있다. 그리고 1967년 10월 7일을 마지막으로 그 기록은 끝이 나버린다. 체 게바라의 최후가 어떤지, 그들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일기로 대하는 인생 역정은 더욱 더 실감이 와 닿았다. 우리가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영화나 평전 등이 많이 남아 있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번 나온 죽음 앞에 선 체 게바라의 전설적인 게릴라 일기를 국내 최초로 스페인어 원전의 깔끔한 번역을 통해 수월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책 하단에 나와 있는 설명들은 이 시대와 지명을 읽히는데 많은 도움과 공부를 하는 시간도 되었다. 역시 영웅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불굴의 혁명가의 한 사람인 체 게바라에 대해서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 되었다. 역시 독서는 멋진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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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대해 내가 어렴풋이나마 가지고 있는 인상은 강렬한 붉은색 표지의 그 유명한 책,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과 체 게바라 티셔츠가 전부다. 그나마도 『체 게바라 평전』은 여러 해 전에 우연찮게 내 책장 한구석에 꽂힌 이후 다시 펼쳐 들지도 못했다. 그저 여기저기 주워들어 그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해 게릴라 투쟁을 벌였던 혁명가로, 살아서도 영웅이었지만 죽어서는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으로 전설화됐다는 것을 대략 알고 있을 뿐이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도 전설적인 혁명가의 마지막 기록이라는 데 작은 호기심을 느껴서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이렇게 체 게바라의 일기를 처음 읽기 시작한 동기는 다소 가벼웠고 아주 사소했다. 하지만 자필 일기 속에 남겨진 체 게바라는 마치 구경꾼처럼 그의 마지막 모습을 훔쳐보려는 내 보잘것없는 호기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1967년 2월 24일 1967년 5월 18일 1967년 5월 20일 1967년 6월 14일 1967년 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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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서른아홉 살이 되었다.
게릴라 전사로서 내 미래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지금 현재로서는 아직 ‘양호한’ 상태다. -1967년 6월 14일의 일기 중에서.
어느 혁명가의 최후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체가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한 후, 혁명을 꿈꾸던 1966년 11월부터 그가 정부군에 붙잡히기 전 날인 1967년 10월 7일까지의 기간 동안에 쓴 일기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생의 혁명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인텔리이며, 쿠바혁명을 이끌었고,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혁명 활동을 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혁명을 계획하고 활동하던 중에 볼리비아에 뛰어들었으나 체포되어 바로 총살을 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는 11월 7일의 일기에서 그가 붙잡히기 전까지, 체 게바라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남겼다. 산악 지대를 탐험하는 과정, 식량 상태, 대원들의 심리 상태, 정부군의 움직임 등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아끼는 대원이 총상으로 사망하자 자식을 잃은 듯 슬퍼한 아픔의 흔적도 있다.
나는 동료들이 전사할 때마다 그들의 시계를 유족에게 전달해주었고 투마는 진작부터 시계를 유품으로 내게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투마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의 손에 이 시계를 물려준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늘 투마의 시계를 품에 지니고 다닐 것이다. –p180
체는 마지막 어려워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10월 8일 유로 계곡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고 만다. 그래서 그의 일기는 클라이막스에서 뚝 끊긴 영화처럼 멈춰있다. 그리고 체는 라 이게라 마을의 시골 학교로 이송된 후, 바로 다음날인 10월 9일에 정부군에 의해 처형당함으로써 혁명가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역사가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체는 볼리비아 국민의 협조도 얻지 못해고, 정부군에 의해 잡혀서 처형을 당했지만, 그가 게릴라 활동을 벌였던 볼리비아 오지 마을은 ‘체의 길’이라는 관광명소로 만들어지고, 생을 마감한 라 이게라 시골학교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매년 3천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지처럼 여겨져서 아기의 탯줄을 체의 사진 앞에 바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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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혁명가의 뜨거웠던 일기를 읽으며 들었던 첫 생각은, 사실 좀 엉뚱한 것이었다. 바로, 혁명도 '노가다'구나... 라는 것이다. 이 일기 속에서 그들이 전투를 벌인 회수보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물품을 숨기기 위해 땅굴을 파고, 훈련을 하고, 정탐을 나가고 이런 활동의 기록이 훨씬 많다. 그나마 그들이 벌인 전투도 희생을 감수한 '게릴라 전'이었기에 그렇다.
죽음을 4개월도 채 남기지 않았던 시점, 체가 서른 아홉을 맞이하며 쓴 일기에서 체는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인생의 비슷한 시점을 통과하고 있는 나에게 참 울림이 있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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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야기를 이야기할 때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중 한명이 체 게바라다. 아르헨티나인으로 쿠바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셔츠의 사진에서 였을 것이다. 서른 아홉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체 게바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던 차에 나온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가 왠지 시선을 끈다.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5남매중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의학공부를 했다. 하지만 당시 두 번의 남미 여행은 체 게바라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서민들의 가난한 생활을 몸소 체험하면서 빈곤에 대한 해결책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하고 54년엔 멕시코로 망명해서 쿠바의 독재정권을 전복시킬 준비를 하던 중에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다. 카스트로으 신임을 받으며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아 쿠바의 국가농업개혁 연구소 산업부장을 맡게 된다. 그 뒤에 쿠바의 국립은행총재와 공업장관을 역임하게 된다.
이후 65년 3월부터 소식이 끊겨 사망설이 퍼졌으나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를 남기고 또 다른 내전이 있는 콩고로 향한다. 66년에는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최후를 맞게 된다.
"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라고 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1966년 11월 7일부터 67년 10월 7일까지의 체 게바라의 일기로 미완으로 끝난 볼리비아에서의 이야기다.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반군 지도자로 있으면서 쓴 이야기로 게릴라 활동 상황이 상세히 적혀있다. 정부군에게 체포되기 전까지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이 일기를 읽다보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터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라는 이름은 혁명과정에서 게바라 스스로가 붙인 '체'는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를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렵고 억압받고 사는 다른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살다간 위대한 혁명가인 체 게바라. 체 게바라가 국적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쿠바인, 아르헨티아인, 볼리비아인, 페루인, 에콰도르인 등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I am Cuban, Argentine, Bolivian, Peruvian, Ecuadorian, etc... You understand.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모르는 사람들은 무슨말인가 싶겠지만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셔츠의 사진 프린트물에 있는 혁명가로만 알고 있지만, 외국에서의 체 게바라의 입지는 실로 대단하다고 한다. 신격화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혁명이나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때 그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한다. "침묵은 다른 방식으로 펼친 주장이다.(Silence is argument carried out by other means.
)"라는 그의 명언이 요즘같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대에 더 와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