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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베아트리스와 버질 - 얀 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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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화형식을 빌어서 쓴 소설이라고 하길래 그런 형식의 책은 본적이 없어서 궁금함에 이르러서 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작으로 꽤 인기가 있었고 이 책은 오랜 공백후에 나온 책이다.이 소설의 주인공이 두번째 소설을 내고 큰 성공을 거둔 작가는 왠지 저자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다른 책을 또 썼고 그 책을 출간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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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화형식을 빌어서 쓴 소설이라고 하길래 그런 형식의 책은 본적이 없어서 궁금함에 이르러서 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작으로 꽤 인기가 있었고 이 책은 오랜 공백후에 나온 책이다.이 소설의 주인공이 두번째 소설을 내고 큰 성공을 거둔 작가는 왠지 저자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다른 책을 또 썼고 그 책을 출간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와는 다르게 편집자들이 반발했고 결국 그는 글을 그만 쓸 결심을 한다. 그래서 그는 살던 곳을 떠났고 커피와 쵸콜렛을 파는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래도 그에게는 독자들의 편지와 소포들이 계속 오는데 그것을 보던 어느날 형광펜으로 표시가 된 복사된 소설이 담긴 소포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그 소포를 보낸사람이 지은 것으로 생각이 되어지는 어떤 희곡의 한부분을 발견한다. 그 희곡의 처음 부분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두 주인공의 대화였는데 배를 먹어 보지 못한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이 배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는 부분이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배가 무엇인지 알고 먹어본적도 있어서 버질이 설명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수 있었지만 그걸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베아트리스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했얼 법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을 사람에게 비유해 보자면 가령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알고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치자.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또한 그걸 설명해줘야 하는 나도 답답하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 그것이 먼저 배운 사람으로써의 도리고 그것이 선생이라는 직업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초반부터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책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꼈다.

주인공은 주소만으로 그 소포를 보낸 사람을 찾아가고 그냥 흘낏 보려고 했지만 박제사라는 그의 특이함 덕분에 또한 그를 알아본 박제사 덕분에 그들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주인공은 그 희곡에서 말하던 베아트리체는 박제된  당나귀 그리고 버질은 박제된 원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희곡 속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이름은 단테의신곡에서 길을 잃은 단테를 연옥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와 천국의 안내자인 베아트리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박제사가 쓰고 있는 희곡에 대해서 도와주기로 약속을 하는데
 우여곡절끝에 희곡을 듣고 보게 된 그는 나중에야 이 희곡이 자신이 쓰고자 했던 책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베아트리스는 아무 이유도 모른체 고문을 당했고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고문한 그 소년들을 만나 그 손에 버질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희곡은 끝이 난다.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 상태로 그대로 흘러가고 보존되고 기억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또는 인간이라는 이 동물의 한 집단이 잘 살아가야 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아서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살이라는 또는 전쟁이라는 역사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단 동물의 입을 빌어서가 아니어도 단지 우리 민족이 아니기때문에 죽여서는 죽임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화형식을 빌어서 희곡의 형태를 빌어서 쓰고 있지만 이 소설은 다분히 예전에 있었던 역사를 비판하는 글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글일수도 있겠다. 이 지구상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아니 죽여야만 하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분란이 일고 있는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바래본다.

이달의 사락 b***8 2011.03.03.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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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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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의 무려 9년만의 신작.젊은 작가 '헨리'는, 대성공을 거둔 처녀작에 이어 후속작으로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과 논픽션을 플립북(앞뒤가 모두 표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양쪽에서 시작되서 가운데서 끝난다)형태로 출판할 생각이었다. 의욕적으로 구상한 이 컨셉이 출판사로부터 보기좋게 거절당하자 헨리는 잠시 집필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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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의 무려 9년만의 신작.

젊은 작가 '헨리'는, 대성공을 거둔 처녀작에 이어 후속작으로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과 논픽션을 플립북(앞뒤가 모두 표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양쪽에서 시작되서 가운데서 끝난다)형태로 출판할 생각이었다. 의욕적으로 구상한 이 컨셉이 출판사로부터 보기좋게 거절당하자 헨리는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아내와 함께 캐나다를 떠난다.

새로운 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헨리에게 그가 유명작가임을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우편물이 날아든다. 거기에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성 쥘리앵의 전설)과, 희곡 대본이 들어있었다. 대본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2명의 등장 인물이 서양배를 주제로 밑도 끝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과 성 쥘리앵의 전설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헨리. 동봉된 메모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수수께끼에 끌려 주소를 찾아간 헨리는 어느 박제사의 가게에 도착한다. 이 가게에서 헨리는 박제상태의 베아트리스(당나귀)와 버질(원숭이)과 조우한다. 연로한 박제사는 헨리에게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을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음침하고, 무례한 이 박제사에게 헨리의 애견도 아내도 직감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내지만, 희곡 '베아트리스와 버질'에 기묘하게 이끌리기 시작한 헨리는 계속해서 박제사를 찾아간다. 마침내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와 성 쥘리앵의 관련을 깨달은 헨리는 돌연 자신이 놓여진 상황에 아연실색한다.

맨처음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의 나의 반응은 "What the F**k?"이었습니다. 첫부분은, 마텔 자신이 이 <아트리스와 버질> 처음 썼을 때의 실제 편집자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그가 다른 도시로 옮겨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계속됩니다. 그리고나서 한동안은 수께끼의 인물이 보내 온 플로베르의 단편이 지리하게 이어지다가, 다음에는 서양배에 대한 알 수 없는 대본입니다. 이것만으로 270 페이지 남짓한 책에서 벌써 70페이지 이상입니다. 점점, 이것은 혹시 실패작이 아닌가....하는 의심스러운 기분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만, 틀림없이 무언가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 수수께끼를 쫓아 계속해서 읽어 나갔습니다.

이후에도 특별히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박제사는 무례한 괴짜이고,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 속의 메타포는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때부터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존재가 서서히 마음속에 스며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헨리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이해되고, 아연실색 합니다. 거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우화적인 표층 밑에 그야말로 묵직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그러한 깊은 소설이었던 것입니다.

문예 작품으로서는 높이 평가 받을만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만, 과연 <파이 이야기>와 같은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파이이야기는 어떤 레벨의 독자라도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즉, 작품의 깊이를 이해 할 수 없어도 재미있다고 느낄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처음 100 페이지 가량을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사물의 의미나 상징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면 마지막 헨리의 놀라움이나 수치심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든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인내하면 끝까지 읽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깊은, 아주 깊은 소설입니다. 상징의 힘, 우화의 힘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으면 처음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야기의 테마는 '속죄'. 그리고 이책을 읽으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필요합니다.

p********a 2011.03.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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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은 일에 어떤 이름이 붙여질까?
"우리가 겪은 일에 어떤 이름이 붙여질까?" 내용보기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가 겪은 일에 어떤 이름이 붙여질까? 글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는 물음이다. 이런 물음에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헨리 로트라는 작가의 분신에 해당하는 인물과 더불어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곡의 작가인 박제사 노인을 등장시켜 답하고 있다.    "헨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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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가 겪은 일에 어떤 이름이 붙여질까? 글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는 물음이다. 이런 물음에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헨리 로트라는 작가의 분신에 해당하는 인물과 더불어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곡의 작가인 박제사 노인을 등장시켜 답하고 있다. 

 

"헨리가 소설을 쓴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메워야 할 구멍이 있었고, 해답을 찾아야 할 의문과 색칠해야 할 캔버스 조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열망과 호기심과 환희가 뒤섞이는 곳에 예술의 기원이 있기는 하다. 헨리는 결국 그 구멍을 메웠고, 의문에 해답을 찾았으며, 캔버스에 색을 칠했다."(7쪽)

 
헨리는 5년간의 각고 끝에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과 평론을 플립북 형식으로 완성한다. 이런 독특한 형식을 사용한 이유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문학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문학은 대개 다큐멘터리나 일화적 형식을 띠었고 생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회고록이 대세였다. 그런데 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그래서 헨리는 소설과 평론의 형식으로 집필한다. 문제는 다소 앞서 나갔던 작가의 컨셉이 편집인과 서적상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점이다. 이에 헨리는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아내와 함께 캐나다를 떠난다.

 

작가인 헨리는 전세계 곳곳에서 독자들의 편지를 받는다. 어느 날 그에게 매우 색다른 우편물이 도착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호스피테이터 성 쥘리앵의 전설'과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희곡 대본이 들어있는 우편물이었다. 이 우편은 헨리라는 이름의 박제사가 보낸 것으로 밝혀진다. 흥미롭게도 작가 헨리와 동일한 이름이다.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이 희곡 주인공인데, 이들의 이름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것이다. 즉 길을 잃은 단테를 연옥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버질)와 천국의 안내자인 베아트리체(베아트리스)에서 유래한다. 평생 배를 먹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이 배가 어떤 과일인지 설명하는 부분이 희곡의 서막에 해당한다. 우편에 동봉된 메모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플로베르의 단편 소설은 특정한 부분에 노란 형광펜을 칠해놓았는데 주로 쥘리앵의 동물 사냥과 학살에 관한 내용이었다. 쥘리앵의 이야기는 왜 박제사 노인이 박제사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전체 희곡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상호텍스트로 작용한다.

 

애견 에라스무스를 데리고 산책 중이던 헨리는 박제사의 가게인 '오카피 박제상회'에 도착한다. 가게에서 헨리는 박제가 된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보게 되고, 박제사 노인은 헨리에게 자신의 희곡을 완성하는 걸 도와달라 부탁한다. 박제사는 자기가 쓴 희곡을 헨리에게 읽어주면서 등장인물마다 목소리를 다르게 낸다. 베아트리스는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했고, 버질은 상대적으로 활달하게 말했다. 이는 원숭이가 영리하고 민첩하고 당나귀가 우직하고 근면하다는 고정관념과 부합한다. 박제가 되어 전시된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모습은 이러하다.

 

"버질은 베아트리스 위에 자연스레 앉은 모습으로 박제돼 있었다. 버질의 엉덩이와 두 다리, 그리고 쭉 뻗은 팔 하나가 베아트리스의 굽은 등 모양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끝부분이 둥그렇게 말린 긴 꼬리는 베아트리스의 등과 옆구리에 편히 기댄 모양으로 흘러내렸다. 따라서 베아트리스가 갑자기 움직일 경우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다른 팔은 굽힌 무릎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도록 펴고 있어 무척 편안하게 보였다. 또한 버질의 입은 열려 있고 베아트리스는 고개를 약간 돌리고 귀도 살짝 돌린 모습이어서, 버질은 뭔가를 말하고 베아트리스는 열심히 듣는 것처럼 보였다."(103쪽)

 

박제사의 말에 따르면 박제나 역사학이나 연극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박제-역사-연극이라는 '재현'의 삼중 비유가 가능해진다. 박제도 재현이고 역사도 재현이고 연극도 재현이다. 박제사는 동물들의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다. 박제사가 동물의 죽음에서 삶의 기억을 추출해 세련되게 다듬는 것처럼, 역사학자도 과거를 재구성하고 이해하려고 과거에서 찾아낸 물질적 증거를 연구한다. 서식지 환경인 디오라마에 동물들을 배치하는 일은 무대에서 배우들의 위치를 결정하는 일에 비유된다. 박제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가죽이나 깃털의 훼손 여부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재현의 성공 여부도 증거의 충분성에 있다. 가죽의 손상이 박제의 한계를 틀지우는 것처럼 역사학에서도 증거가 너무 손상되면 사건을 온전히 해석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박제든 역사적 해석이든 연극 연출이든 "잘못된 작품에는 어떤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잘못된 작품에는 어떤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날림으로 박제해 동물을 망치는 행위는, 그 동물을 재현해낼 수 있는 유일한 재료를 없애버린 것과 같고, 우리를 기억상실과 무지와 몰이해의 늪에 던져버리는 죄악이다."(123쪽)

 

희곡의 공간적 배경을 살펴보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셔츠나라'에 있다. 세로 줄무늬 셔츠의 나라다. 셔츠 나라는 독일과 폴란드와 헝가리를 간접 지시하고 유대인 수용소의 줄무늬 수용복을 직접 상징한다. 이처럼 희곡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를 우화적으로 재현한다. 야생동물에 대한 소년의 사냥은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겹치게 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죽음은 박제로 남아 자신이 겪었던 참혹한 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z***a 2013.05.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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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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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의 책으로 그때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베아트리스는 당나귀이고 버질은 고함원숭이인 것이다.   베아트리스는 배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여태 살아오면서 배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 먹어본 적 역시 없다.   그런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은 배의 모양이나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허기진 배를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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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의 책으로 그때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베아트리스는 당나귀이고 버질은 고함원숭이인 것이다.   베아트리스는 배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여태 살아오면서 배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 먹어본 적 역시 없다.   그런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은 배의 모양이나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헨리가 독자로부터 받은 희곡의 처음이다.

 

  헨리는 단 하나의 소설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그에게는 수많은 독자들로부터의 편지가 오고, 원고가 오기도 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등장하는 이 희곡 역시 어느 독자가 그에게 보낸 원고이다.   은근히 그를 사로잡는 희곡, 헨리는 희곡을 보내준 독자를 찾아가게 된다.   그는 박제사로 헨리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노인이었다.   박제사 헨리, 무심하고 무뚝뚝하고 여튼 살가운 면이라고는 없다.   다만 헨리에게 자신이 쓴 희곡을 낭독해주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전부이다.   박제사 헨리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나오는 이 희곡을 쓰는데 평생을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오랜 세월을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작품을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박제사 헨리는 그의 희곡 속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박제를 헨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박제하게 되었는지도 들려준다.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는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같은 느낌의 희곡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차츰 박제사 헨리가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느겨지게 된다.

 

  헨리는 홀로코스트적 관점의 책을 쓰고 싶어한 작가이다.   홀로코스트를 색다르게 다루고싶어했던 그, 박제사 헨리의 희곡을 보면서 그는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의 그 끝이 너무나 참혹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과 고문에 시달린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을 쓴 헨리가 박제사가 된 이유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저질러진 후 어떤 것이 구해질 수 있는지 그 의문을 풀기위해 증거를 남기고자 박제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희곡을 살인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마음이 묵직해져 옴을 느끼게 되는 강한 바람이 일어나 스쳐감을 만나게 된 책이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즐긴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은 작가 헨리에 의해 다시 탄생하게 된다.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의 글은 마지막 장에 수록되어지는데, 무척이나 깊은 생각의 강을 건너게 만들고 있다.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등장하지만 그 동물들의 이야기가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어대던 베아트리스와 버질, 그들은 박제가 되어 헨리의 가게 안에 있었고, 희곡의 그 주인공들이 되었다.   한때는 생명이었으나 이제는 박제가 되어 그때를 기억하게 만드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의미심장한 철학적 이야기가 담겨진 책이었다.

m******i 2011.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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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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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얀 마텔이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의 전작이며 그가 유명해 지는데 도움이 되었던 파이 이야기를 읽어 보진 않았다.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거론 될 만큼 유명 했고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접했었다. 그러했기에 이번 작품 역시 선택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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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얀 마텔이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의 전작이며 그가 유명해 지는데 도움이 되었던 파이 이야기를 읽어 보진 않았다.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거론 될 만큼 유명 했고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접했었다. 그러했기에 이번 작품 역시 선택에 있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의 중점은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 표현 방식이 사람의 모습이 아닌 파이 이야기 때와 비슷한 동물의 모습을 빌려 말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가 알고 있는 또는 일반적인 매체를 통해 습득한 일반적인 상식 정도의 선에서 글을 써 내려 간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두 동물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필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동물들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둘의 대화에서 오는 단순한 행위들이 예전 유대인이 겪었던 어떤 행위와 매우 흡사하며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 둘에게 투영시켜 독자에게 보여 줌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일들과 연관을 시키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 헨리가 구상을 하고 써내려간 작품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만 들었다면 나 또한 홀로코스트, 나치라는 생각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중 작가 헨리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서 생각하다가 보니 결국 이 둘의 모습이 이렇게 보여 졌을 뿐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글들에 두 동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던 유대인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박제사 헨리 역시 자신의 목소리만 빌려 말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행동들을 다시금 바라보고 되새김으로서 그가 이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작가 헨리에게 박제사 헨리는 그의 도움을 통해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서 자신 행한 행위에 대한 죄 값을 받기 위한 고해성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처음 작가 헨리에게 보낸 글에서 보여주듯 인생의 한 조각을 용서 받으면 인생 전체가 전부 용서가 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소설의 모습들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조그마한 용서가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잘못된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생각하도록 만들었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결국 이 책은 하나를 위한 아픔을 전해 주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야기이지만 보다 보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이 세상의 모습에 쉽사리 수긍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s****9 2011.03.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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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방식으로 던져진 거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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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로 부커 상 최대의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얀 마텔의 최신작. 무슨 사과 파이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은 제목의 책을 집어 읽어 내려가면서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색다른 표현이라는 카피가 맘에 들어 별 망설임없이 읽게 되었다.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는 헨리가 어느 날 괴상한 성격의 장의사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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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로 부커 상 최대의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얀 마텔의 최신작.

무슨 사과 파이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은 제목의 책을 집어 읽어 내려가면서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색다른 표현이라는 카피가 맘에 들어 별 망설임없이 읽게 되었다.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는 헨리가 어느 날 괴상한 성격의 장의사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다만 그 전에 '예술적 관점에서 홀로코스트를 바라 본다' 는 작가 자신의 생각을 헨리를 통해서 피력한다.

인류의 가장 추악한 역사 중의 하나인 홀로코스트.

우리 또한 비슷한 아픔을 일제 치하에서 겪었기에 더욱 그 아픔이 절절하지만,

실제로 그 악몽을 겪은 이들에게는 감히 어떠한 것의 소재로 쓰일 수 없는 일종의 불문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은, 작가 자신에게는 삶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서사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직업을 삼고 있으므로

예술적 서사로 어떠한 사건을 담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한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번 좌절을 겪은 상태에서 만난 장의사와 그가 건네는 희곡 작품.

 

고함 원숭이와 당나귀라는 기묘한 조합.

더군다나 그들의 이름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이름이다.

배(과일)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하는 이 기묘한 희곡이 어느 순간부터 극중극 이상으로 작품을 지배한다.

과연 이 희곡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이며,

전체 작품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결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계속하여 궁금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독자는 작품을 읽어감에 따라

또 하나의 장치로 배치된 플로베르의 작품의 해석과 함께 전체 구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잔인성과 해소, 회복, 감춤, 도피, 순수함 등등의 여러 가지 감성들이 결말 부분에서 한꺼번에 드러나며

마지막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에서 어느 것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이 모든 감성과 사건들이 홀로코스트에 대비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하며 또 다른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새롭게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되돌아 보는 많은 플롯과 복선들.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사건에 대해 색다른 방식으로 던져진 질문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되 쉽게 매조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러한 독특한 방식의 서술을 택한 저자가 의도하는 바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l*****4 2011.03.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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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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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형식으로 씌여진 이 책은 원숭이와 당나귀. 두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와 같은 종인 인간에게는 냉소적이지만, 동물들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말은 책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 실제로 동물보호법을 최초로 만든이가 히틀러기 때문이다.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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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형식으로 씌여진 이 책은 원숭이와 당나귀. 두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와 같은 종인 인간에게는 냉소적이지만, 동물들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말은 책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 실제로 동물보호법을 최초로 만든이가 히틀러기 때문이다.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죽인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며 이를 최초로 법재화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중적 행위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나타난다는 것이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폭력성, 그리고 선택에 대해 말한다. 

성공한 소설가 헤리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존의 사건 중심이 아닌 새로운 시점으로 홀로코스트를 바라보고자 한 시도가 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결국 그는 집필을 포기한다. 소설쓰기를 그만둔 헤리에게 한권의 희곡이 배달된다. 희곡의 제목은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은 한번도 배를 보지 못한 당나귀 베아트리스에게 원숭이 버질이 배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보지 못한 형태, 맡아보지 못한 향, 먹어보지 못한 맛에 대한 묘사를 보며 이 내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야기가 우화형식이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비유가 등장하기 때문에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 
만약 내가 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배를 설명하려면 어떤방식으로 해야할까? 혹은 배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상대의 설명만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혹시 정보를 왜곡하게되면 어떻게 될까? 버질이 말하는 '배'가 홀로코스트를 비유한 것이라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선택'이라고 하는 숙제를 던져주며 마무리된다.
이야기는 어렵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사건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물들의 비유를 통해 인류가 다시는 과거와 같은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제대로 아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고 본다.

홀로코스트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그 선택이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d****a 2011.03.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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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 얀 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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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34회 부커상 수상작인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이 9년 만에 내 놓은 신작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당나귀를 등장시킴으로써 우화형식을 통한 이야기 전개를 고수하고 있다. 주인공인 헨리는 이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며, 여러가지면에서 그는 저자인 얀마텔을 닮아 있다.꼬박 5년이 걸려 써낸 그의 새책은 나치스와 수많은 부역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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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34회 부커상 수상작인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이 9년 만에 내 놓은 신작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당나귀를 등장시킴으로써 우화형식을 통한
이야기 전개를 고수하고 있다.


주인공인 헨리는 이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며, 여러가지면에서 그는 저자인 얀마텔을 닮아 있다.
꼬박 5년이 걸려 써낸 그의 새책은 나치스와 수많은 부역자들에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임을 당한
수백만의 유대인에 관한 책으로써 소설과 평론으로 1부와 2부를 나누어 앞뒤에 맞붙인 형태인
플립북으로 엮고자 했다.

홀로코스트는 그동안 역사적 사실주의로만 표현되어 왔었기에 이제는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에서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글쓰기를 중단했다.

휴식과 환경의 변화가 절실했던 헨리는 아내와 함께 대도시로 이주하여 강아지 에라스무스와 고양이
멘델스존을 입양하고, 쵸콜렛 카페라 할 수 있는 쵸콜린 로드에 일하는 한편, 연극에도 참여했고
클라리넷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헨리 부부는 대도시 생활에 적응했고 어느덧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게 되었다.


헨리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마음 한구석에 메워야 할 구멍이 있었고, 해답을 찾아야 할 의문과
색칠해야 할 캔버스 조각이 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격려야말로 헨리에게는 진정한 위안이었고, 그래서 그는 모든 독자들의 편지에
진심어린 답장을 잊지 않았는데, 그가 대도시로 이주한 이후에도 독자들의 편지는 배달되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헨리에게 배달 된 커다란 봉투가 하나 있었으니 그 안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
'호스피테이터 성 쥐리앵의 전설' 복사본과 짤막한 희곡이 함께 들어있었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모가 덧붙여져 있었다.

그 희곡의 제목이 바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베아트리체(베아트리스)와 베르길리우스(버질)라는 이름을
차용하여 써내려간 희곡을 쓴 장본인은 오카피 박제상회를 운영하는 또 다른 헨리였다.

그리하여 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중심축에는 작가 헨리와 박제사 헨리의 희곡에 대한 열정적인
대화가 있고, 희곡 속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의 대화가 또 하나의 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니 일단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 거였다.
당연히 주인공인 작가 헨리의 새소설일 거라 생각했던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낯선 대도시의
낯선 박제사가 쓴 희곡이었던 것이었고, 이미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인지 그들의 끊임없는 대화들을 끊기있게
놓치지 않고 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와는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배'에 관한 묘사에 몰두해 있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는
참으로 독특했다.
한번도 배를 본 적도, 먹어 본 적도 없는 베아트리스를 위해 그 모양과 색깔과 크기와 맛에 이르기까지
그 세세한 묘사들에 열중인 버질, 그리고 머릿속에 배의 이미지를 그려내느라 최선을 다하는 베아트리스.
그렇게 시작 된 그들의 대화는 지독히 상징적이다.


희곡의 서막 세번째 페이지에서 나는 거의 쓰러졌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키득키득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데 말하고 싶어
목이 간질간질해오지만 책을 읽을 여러분들을 위해 그 재미있는 부분에 대한 누설은 하지 않기로.
동물을 등장시킨 우화답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두 헨리가 말했듯이 그들의 소설이나 희곡은
어린이를 위해 쓰여진 것이 결코 아니었고 특히 희곡은 더욱 그랬다.

"내 이야기에는 어떤 줄거리도 없다. 내 이야기는 살인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박제사 헨리의 말처럼.

모든 것은 책 마지막에 한꺼번에 폭발한다.
끈기있게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 마지막에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며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책 <베아트리스와 버질>
작가 헨리가 박제사 헨리에게 그리고 그의 희곡에 빠져들게 된 것처럼, 나도 그들의 대화에 그리고
희곡 속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 속에 완전히 빠져들고야 만다.


작가 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의미를 만들어가는 소리이고, 회화가 의미를 만들어가는 색이듯이,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얀 마텔은 유대인도 아니고 동유럽인도 아니며 독일계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예술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작가로서의
어떤 의무감을 느꼈다고 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 2% 미만만이 고통스러운 시련에 대해 글을 남기거나
증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작가 헨리가 구상했던 플립북처럼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의해 말문이 닫혀버린
무수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나무 곁에서 함께 맛있는 배를 먹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며...
책 마지막 쉽지 않은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에 동참해 보며...
그들을 기억하며...

 

w*****h 2011.03.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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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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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 주인공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단테의 <신곡>의 두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당나귀와 원숭이죠. 이 책은 단테의 신곡이 그러하듯 독자를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이 책의 놀라움은 우리시대 가장 끔직한 사건중 하나로 여겨지는 홀로코스트를 사실적이지 않은 세계에서 사실적이지 않은 두 주인공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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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 주인공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단테의 <신곡>의 두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당나귀와 원숭이죠.

이 책은 단테의 신곡이 그러하듯 독자를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이 책의 놀라움은 우리시대 가장 끔직한 사건중 하나로 여겨지는 홀로코스트를

사실적이지 않은 세계에서 사실적이지 않은 두 주인공의 대화로

충분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글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첫 대화에

배를 묘사하는 장면을 집어넣어 자신의 불안감을 알립니다.

 

배를 먹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베아트리스를 위해 버질은 말로 배를 묘사 합니다.

(서양배 입니다)

바닥이 둥글고 넙적하지만 위로 갈 수록 가늘어져.

호리변 보다는 적고 훨씬 멋있어 거의 대칭적으로 가늘어져.위쪽 절반이 아래쪽 절반 위로

한가운데 똑바로 올려져 있다고 생각하면 돼.

.

.

.

이런식으로 9 페이지에 걸쳐 배를 묘사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한번 먹어본다면 좋을텐데~"로 끝맺음 맺습니다.

무언가를 말로 표현하려 할 때 자신이 알고 있다해도 100% 상대방에게 그것을

전달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걸 나타냅니다.

이 책을 그냥 우화적 소설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안에 작가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다해도 제대로 전달될지 모른다는 거죠.

줄무늬 셔츠위를 헤매다니며 자신들에게 닥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서로를 위로하는 두 짐승과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박제사가 

어떤 관계인지...

헨리가 모든것에서 홀로코스트를 읽어내는 시각이 무엇을 본것인지에 관한건

전적으로 독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겠죠. 

읽는 내내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가볍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 > 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k***9 2011.03.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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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먹먹함이 이런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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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8월 한달동안 한권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에 잡히지 않더니... 9월도 연휴가 끼었고, 마음이 붕붕~ 떠서 그랬던가... 이제야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에게 일상으로 되돌아 옴은 어쩌면 책 읽는 시간의 그 흐름을 잡았다는 것일게다. 일상으로 돌아옴에 흐름을 잡아준 책 얀 마텔의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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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8월 한달동안 한권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에 잡히지 않더니...

9월도 연휴가 끼었고, 마음이 붕붕~ 떠서 그랬던가...

이제야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에게 일상으로 되돌아 옴은 어쩌면 책 읽는 시간의 그 흐름을 잡았다는 것일게다.

일상으로 돌아옴에 흐름을 잡아준 책 얀 마텔의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도 각인 된 책이었는데, 역시나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대단한 책이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 여기서는 희곡이 들어있다.

무대에 올리게 되는 시나리오.

바로 <20세기 셔츠>란 제목의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의 이야기.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이야기 하기 위한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호스피테이터 성 쥘리앵의 전설>

책의 주인공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연관 검색어로 인용된 단테의 <신곡>.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잔혹성으로 떠오르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 학살.

이런 유기적인 관계의 흐름 위에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 화자는 필명을 쓰는 헨리란 유명작가와 의문의 독자가 보낸 희곡

시나리오에서부터 만남에까지 이어진다. 의문의 독자는 박제사로 헨리에게 도움을 구한다.

신이 습작한 글이 있는데 글의 느낌과 생각을 말해달라고 한다.

박제사의 글이 바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란 기구한 운명에 처한 당나귀와 원숭이다.

희곡에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들이 담겨져있다.

그  대화들은 결코 느긋하지 않다. 그들은 배가 고팠고, 아팠고, 힘겨웠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셔츠'라는 나라의 등허리 지역이다.

이름과 지명 하나에도 우화적인 의미가 깃들어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 두려움의 복선이 깔린 듯해서 더 먹먹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이야기과 박제사의 관계가 읽고 있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문을 당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안전과 행복은 절대우위일 수 없는 환경에 처해져있다.

인간에 의한 고문의 잔혹성은 전쟁이 남기는 아픈 상처 이전에 인간이 어쩜 저렇게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규정짓는다. 그 잔인함은 비단 그 시대만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동물 학대란 이름으로 계속

자행되어지고 있으니깐..... 그리고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호스피테이 성 쥘리앵의 전설>에서

어릴적 그렇게 영민하고 잘났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쥘리앵이 어떻게 잔인한 동물 살인자가

되었는지 아무런 감정의 기복없이 차갑게 보이는 박제사의 이미지가 오브랩되어지는지... 섬뜸했다.

박제사의 작업실에 진열된 수많은 동물들의 두렵고 놀란 눈.

무엇보다 거기엔 슬프고 처량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있었다. 뭔가 헨리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사람들이 박제사를 쉬쉬하며 피하는 이유가 있었다.

단지 헨리는 독자로서 이상하고 차갑고 괴기스러웠지만 박제사를 최대한 배려한게 아니었나싶다.

이 관심과 배려가 자기 몸에 칼을 들이대기까지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죽였던 그 소년의 광기가 되살아난 것일까? 아니면 쥘리앵이 살아돌아 온 것일까?

아무런 죄책감없이 그는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거절한 작가를 찔렀다.

 

두 동물의 등장을 통해 역사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재도 그 잔인한 역사는 다른 덧씌워진 형태로 현재 진행형이다.

잔인한 인간은 그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건재하다는 것을 박제사를 통해 알게된다.

알려져야 되는 역사, 발가벗겨진 과거의 그 역사,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어진 그 역사가

너무 아프고 가슴 먹먹하다. 지금도 머릿 속에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나눈 이야기가 퍽이나 다정스레 들리는데...

 

l*****5 2014.09.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