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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역사전집을 이것저것 많이 보려고 노력중이예요 하나의 전집만 보는 것 보단 여러전집을 보며 부족부분을 채워 나가고 있는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기존 전집들과 틀리게 패자의 입장에서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설정이 재미있더라고요 법정공방을 통해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라이벌들의 대결이라 읽다보면 저도모르게 몰입해서 보고있더라고요. 교과서 속 역사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다보니 아이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초등역사전집이예요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재판 첫째 날 호국 신앙의 상징, 팔만대장경 재판 둘째 날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재판 셋째 날 팔만대장경은 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을까?
고려의 모든 백성들이 몽골 침입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규보 VS 당시 고려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최 씨 정권 때 본인의 주도하에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최우 . .
팔만대장경은 1231년 몽골 군이 침입해오자 부처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전쟁 중에 적을 물리치지 않고 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저는 순간 내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 사실은 전쟁무기였나?라는 생각도 잠깐 해봤어요 ㅋㅋㅋ
왜 전쟁 중에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초조대장경에 대해 알아야 해요.
초조대장경은 거란 군이 고려에 침입했던 1011(헌종 2년)에 부처님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것이에요. 이 초조대장경을 만들면서 거란 군이 고려에서 물러나게 되자, 고려인들은 대장경을 만들면 외적이 물러간다는 믿음이 생겼고 몽골이 침입하자 또다시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이죠.
*고려-불교를 숭상하여 국교로 정했음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부처님께 기원하여 그 문제를 풀고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였음. 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몽골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도 함.
팔만대장경은 오자와 탈자가 거의 없는 유일한 경판이며 그 내용도 가장 정확해요 그렇기에 팔만대장경은 세계 최고의 불교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또 무려 7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잘 보존되어 있어요. 이는 우리 선조들이 대장경판을 보존하기 위해 수다라장과 법보전을 지을 때부터 위치, 온도, 자연 현상 등 모든 것을 계산했기 때문이라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뿐이 말할 수 없네요
전 세계가 인정하는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에요 앞으로도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오랫동안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조사된 과학적인 근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최 씨 정권 때 팔만대장경 관련 사실을 일부 왜곡했다고 보인다는 결론이 났네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고 왜곡되었던 역사를 바로잡으며 제대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도서였어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초등역사전집 <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를꼭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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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속 역사이야기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18 이규보 대 최우 왜 고려는 팔만 대장경을 만들었을까?
1236년부터 16년 동안 8만 여매의 규모로 완성된 팔만 대장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다. 당시 고려의 집권자 였던 최씨정권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로 옮기고 백성에게는 섬이나 산성으로 피하라고만 했다. 한국사 법정을 찾은 이규보는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팔만 대장경을 만들기위해 어떤 기구를 설치했는지 판각사업에 참여한 이는 누구인지를 최씨정권과 일본학자들의 왜곡으로 가려진 역사를 바르게 알리고 싶다면서 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국보 제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중이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리자 1236년 부터 16년간 걸쳐 다시 만든것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험에 빠지자 나라를 지키기위해 저항하는마음과 함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부처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질 당시 최씨 정권이 집권하고 있어 그들의 의해 만들어진것으로 알고있으나 실은 이규보가 건의하여 팔만대장경을 만들도록 명령하였다고 한다.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은 원고 이규보가 최우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유는네가지로 설명하고있는데 그중 하나의 이유중 팔만 대장경의 판각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사실로 볼때 수많은 고려사람들이 적극 참여했음을 알수있다라고 이유를 설명해주네요.. 책으로만 본 팔만대장경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방학을 맞이한 우리아이들과 함께 눈으로 꼭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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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스토리 읽어가면서 스스로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이번에 펼쳐 본 한국사법정의 내용은 한국사 속 인물들을 모아 재판을 벌이 원고 이규보의 주장 책을 보면서 그림,글 그리고 다양한 사진자료로 역사속으로 빠져들수있는 요소들이 풍부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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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 이규보 VS 최우 - 자랑스러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대장경을 알아보다... * 저 : 최연주 * 그림 : 손영목 * 출판사 : 자음과모음 역사를 배우면서 기록되어진 문서로만 보다보니 잘못 알고 있던 사례들이 나중에 연구를 통해서 다시 수정되는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팔만대장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보 제 32호. 세계의 문화 유산이기도 한 팔만대장경. 몽골 외세의 침입에 고려의 백성들이 나라를 지켜달라 기원하며 만든 것입니다. 이를 여지껏 오해하여 최씨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다라고 알려져 있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선 이런 역사의 왜곡을 제대로 짚어내고자 하는 이규보의 노력이 남겨 있습니다. 최씨 정권의 최측근이기도 했던 그가 어떻게 최우를 상대로 소송을 냈을까요. 그 이야기 속에 팔만대장경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 몽골의 침입에 다 버리고 피난을 떠난 최우. 그일을 기록했던 팔만대장경의 일부인 1236-16 문서가 사라진 것을 두고 의심하는 이규보의 재판 의뢰. 재판은 총 3일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말엔 대장경이 무엇인지부터 해서 왜 호국 신앙의 상징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죠. 둘째 날엔 이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과정을 상세히 짚어봅니다. 마지막 날엔 어떻게 우리의 보물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지막편에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요. 자랑스러움이요^^ 유명한 해외의 여러 관광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런 문화유산이 분명 많았을텐데 안타깝고 속상적이 종종 있었거든요. 팔만대장경을 비롯해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잘 배우고 잘 알아서 잘 간직해서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버린 후 다시 1237년(고종24)부터 16년간 만들었다고 합니다. 총 8만여 매에 달하고 8만 4천 법문이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우죠. 만들기도 힘들었을테고 양도 많았던 대장경. 얼마전에 신문박물관에서 본 도구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을때 일일히 글자를 다 파내어 찍던 신문들. 그모습이 대장경을 보면서 다시 생각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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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이규보 vs 최우 우리나라에서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재가 사방에 많이 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유독히 반도라는 특징을 살려서 다른 나라가 침략하기 좋은 배경을 가지 다리적 역할의 나라이었기에 침략이 많았다. 침략을 전쟁으로 맞대응 한것이 아닌 불심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다른 접근이 아닐련지 아니면 지배자의 계락으로 백성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알 수 없는 이면들을 버리고 문화재 하나만으로 접근한다면 대단한 팔만대장경이라고 생각한다. 8만여 매의 규모로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팔만대장경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기에 한번쯤 정확한 배경을 배우는 것이 정확하다. 팔만대장경이 최씨 정권 시대에 만들었다고 것외에 문인인 이규보가 최씨 정권과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가려진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알리고 싶다며 한국사법정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이야기는 구성이 됩니다.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 줄 있는 히튼 카드처럼 역사를 보는 새롱운 식견을 제공해준느 책으로 먼저 한국사를 접하고 읽어본 아이들이 읽으면 사관도 배우면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주체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주는 책입니다.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때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만든 사실 이면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설명해주면서 교과서에서 배우는 위대한 유산이 아닌 팔만대장경을 느끼고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보다 좀더 깊이있게 알아가면서 <고려사> 1251년(고종38)의 기록에 따르면, "현종 때 판본이 임진년 몽골 병사에 의해 불타 버렸다. 왕이 여러 신하와 함께 다시 발원하여 도감을 설치하고, 16년 만에 그 일을 마쳤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 본문 66쪽 이글속에서 만들면서 싸우면서 죽어간 조상들을 느끼기 부족했던 것을 이책을 통해 다 느낄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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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비밀을 한국사법정에서 만나는 시간을 갖어보네요. 법정에서 펼쳐지는 역사이야기라는 흥미로운 면도 있지만, 새롭게 알게되는 역사이야기는 아이들이 역사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아이가 역사논술 수업도 받고, 큰 아이는 한국사 중급시험을 치기도 했지만, 한국사를 알기에는 쉬어가는 부분도 있고, 법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증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것 같아요.
16년 동안 8만여 매의 규모로 완성된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잘못 알려진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동국이상국집을 쓴 이규보가 한국사법정을 찾아왔습니다.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피란을 떠났던 사람이 주도하여서 전 재산을 팔만대장경을 써 버렸다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규보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역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 호국 신상의 상징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팔만대장경은 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겠죠...^^
책을 읽고나니 너무 어려서 해인사를 다녀왔다는 기억에 다시 한번 해인사를 찾고 싶어지네요. 아이들의 기억에는 없을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국사법정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새로워지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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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때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만든것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책 제목에 대한 의문이 너무 쉽게 풀려버렸네요.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 이번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어떤 문제인지는 책을 보며 찬찬히 알아가려 합니다.
책을 보기 전 아이의 교과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교과서에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내용이 2쪽 분량정도입니다. 사진 자료와 간략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교과 과정에서 배운 것은 팔만대장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어떠한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 정도의 내용입니다. 아이의 사전지식이 겨우 2쪽 분량의 내용이기에 한권을 책을 만나면서 아이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며 받아들일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 사회 5-1 >
이번에는 김딴지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맡게 된 것일까요? 팔만대장경은 고려의 백성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 만든 것인데 최우가 만든 것이라 한것은 부당하다며 이규보가 소송을 합니다. 이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이 소송릉 통해 팔만대장경이 무엇이며 언제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 하나씩 알아갑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보다 좀더 깊이있게 알아가니 아이가 역사를 보는 눈이 좀더 넓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고종을 중심으로 전 계층이 힘을 모아 만든 것입니다. <고려사> 1251년(고종38)의 기록에 따르면, "현종 때 판본이 임진년 몽골 병사에 의해 불타 버렸다. 왕이 여러 신하와 함께 다시 발원하여 도감을 설치하고, 16년 만에 그 일을 마쳤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 본문 66쪽
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팔만대장경에 대한 내용정리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교과과정에서 배운 내용에서 더 나아가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기에 읽은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아이는 팔만대장경을 만든 정성에는 놀라워했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만드는만큼 직접 나가 싸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 하네요. 아이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사건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에 우선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역사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아가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으로 역사를 바라볼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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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 (고려사) 최우와 이규보의 대결속에서 팔만대장경의 제조 배경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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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때가 고려시대이다
역사 유적지가 없다라는 이유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그동안은 드라마에서 다루어지지 않던 시대였다가 무신, 신의와 같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면서 부쩍 고려시대에 관심을 가지게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덕분인지 아이가 요 근래 참 재미있게 만난책이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8편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였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나면서 느낀건 그동안 팔만대장경이 있다라는 사실만을 인지했을뿐 정확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다라는 사실이었다
알려주는 사실만을 주입했던 방식의 상식들이 아직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라는... 그렇게 당연한 역사를 왜라는 생각속에 몰아넣으며 사고하게 만들고 되짚어 보며 지식의 깊이를 주고 있어 역사공화국 시리즈가 참 좋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시기는 1236년 몽고장군 살리타이가 고려를 침공했을 당시였다.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있던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당하던 1011년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약으로 불에 타 소실된 후 4년 뒤 고려는 팔만대장경 조판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는 우리나라의 우수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합천 해인사의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중이다.
고려자기와 함께 고려의 위상을 말해주는 팔만대장경, 거기엔 고려와 몽고, 무신정권과 고려왕조, 강화도 피신과 같은 당시 고려사의 모든것들이 집약되어있었다.
고려는 불교의 국가였었다. 게다가 거란의 침입당시 초조대장경을 완성하며 침략으로부터 벗어났던 경험은 대장경의 힘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리타의 첫번째 침입때 불에 타 소실되면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칠 새로운 힘이 필요하게된다. 책에서는 그 팔만대장경 제작은 과연 누가 주도했을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속에서 당시 고려와 몽고의 관계, 백성과 무신정권 왕권의 3각구도를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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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도감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여, 강화도 성 서문 밖 선원사를 거쳐 ㅈ선 태조때 해인사에 옮겨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것이 백성의 주도였을까, 아님 제 2대 무신정권이었던 최우인가? , 미약한 권력이나마 왕권을 유지했던 고종의 명이었을가 ?
그동안 살펴볼 생각을 못했던 대장경의 간기엔 그 비밀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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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언제 조판을 했는지, 왜 했는지에 대한 비밀들, 그 속에서 우린 누구 한사람이 아닌 (최우) 권력을 쥐고 있던 없고의 상관없이 고려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염원했던 작업이었음을 알게된다.
또한 " 황제의 명을 받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 라는 문구를 찾음으로써 고려가 화에의 나라임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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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벚나무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 그 유물의 제작과정에서 우린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접한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풀어가는 역사지식 역사공하국 한국사법정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편견을 갖기 쉬운 역사를 전방위적 접근으로써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지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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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가 아닌, 팔만대장경을 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제작과정에서의 정성과 마음,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담긴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그 속에서 팔만대장경을 제대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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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신'이라는 역사드라마가 끝났는데 고려시대 최씨 집권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통해 팔만대장경이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 시리즈 18권 《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를 읽게 되면서 최우와 『동국이상국집』의 저자인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 두 사람이 주장하는 입장을 고려해 볼 때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팔만대장경은 1237년부터 16년 동안 8만여 매의 규모로 완성되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무인 세력인 최씨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최씨 정권의 측권이라고 평가받던 이규보가 팔만대장경은 최씨 정권이 아니라 고려의 백성이 단결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최우를 고발하면서 한국사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진다.
재판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대장경을 '초조대장경'이라고 부르고, '속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버리자 만든 것이다.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판각하기에 좋게 나무를 자르고, 판자를 소금물에 삶고 그늘에서 말리는 과정을 거치며 판각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갖추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목재뿐만 아니라 팔만대장경 제작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져 있는 인명과 법명을 조사한 결과, 대략 2만 7천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들었는가? 다시금 팔만대장경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열려라, 지식창고'에서는 문화재의 의미와 팔만대장경이 고려의 대외적인 자주성을 강조했다는 사실, 세계 기록 유산에 관한 정보를 싣고 있다. 피고와 원고측의 증인으로 나선 정안, 대승, 천기 대사, 수기 대사, 살리타, 다나카의 역사적 증언을 들어보는 재미도 꽤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고려의 시대적 상황을 알게 되면서 팔만대장경이 왜 만들어졌는지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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