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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극한 슬픔과 상실감을 다룬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제목은 '가장 마지막까지 지닌 것(자식/생명)'을 의미하며, 작가의 실제 아들을 잃은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이 ‘형님’과의 전화 통화를 형식으로, 자기 삶과 상처, 기억을 길게 독백하는 이야기다. 화자는 전화번호를 잊어버리는 경험에서 시작해 기억과 존재의 불안, 고독을 드러낸다. 그녀는 아들 창환을 민주화 운동의 격변기 속에서 잃었고, 그 상실은 이후 삶의 모든 가치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형님은 전통과 체면, 제사와 며느리 역할을 중시하는 인물로, 화자에게는 ‘절벽 같은 침묵’과 ‘통곡의 벽’ 같은 존재다. 증조모 제사를 잊어버린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화자는 아들을 잃은 뒤 제사, 체면, 물건, 남의 시선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대신 화자는 울고 싶을 때 울고,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며, 흐지부지 돈을 쓰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화자는 기억의 붕괴를 두려워하면서도, 육체가 기억하는 삶의 방식, 예컨대 몸이 저절로 집을 찾아가는 일, 빈집에 들어와 죽은 아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들 속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은하계와 광년 같은 천문학적 지식을 ‘주문’처럼 외우며 개인의 고통을 우주적 무의미 속에 잠시 묻어두려 하지만, 그 주문마저 듣지 않게 된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중증 장애가 있는 동창의 아들을 병문안 간 경험이다. 죽은 아들을 둔 화자는, 살아 있으나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의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 앞에서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이 통곡을 통해 화자는 자신을 꾸며온 강인한 어머니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비로소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화자는 더 이상 울음을 억누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늘 강하고 냉정하던 형님이 울음을 보이자, 오히려 불안해한다. 형님은 자신에게 언제나 울음을 받아내는 ‘통곡의 벽’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내면’을 극도로 솔직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흔히 비극 이후의 삶은 극복이나 승화의 언어로 포장되기 쉽지만, 이 글은 그 모든 위안을 의심한다. 은하계 주문조차 무너지고, 이념도 무력해지고, 체면과 도리도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않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화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느끼는 가장 정확한 감정 표현처럼 느껴졌다. 삶은 계속되지만, 숨이 막히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상태를 버티기 위해 화자는 버리고, 흐지부지 쓰고, 혼잣말하고, 울음을 미뤄두는 삶을 선택한다.
형님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갈등 상대가 아니라, 시대와 가치의 화신이다. 침묵과 체면, 정확한 제사 날짜와 며느리 역할을 중시하는 형님 앞에서 화자는 늘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화자가 끝내 붙잡는 것은 설명이나 정당화가 아니라 ‘울 권리’다. 마지막에 형님이 우는 장면은 화자가 의지해온 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상실을 ‘극복해야 할 사건’으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고통은 극복되지 않는다. 다만 울고, 숨 쉬고, 하루를 넘기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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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전집을 읽으며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이라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감탄할 수 없었다. 아니, 감히 문학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1988년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운 뒤 찢어지는 가슴으로 써 내려간 피 묻은 일기이자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제목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내게 남은 마지막 하나, 즉 생명 혹은 고통을 의미한다고 한다. 책 속의 화자는 끊임없이 신에게 되묻는다. "한 말씀만 하소서." 도대체 왜 내 아들이어야 했냐고,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울부짖는다. 평소 선생님의 소설에서 보였던 그 날카로운 유머와 여유는 온데간데없다. 자식이 죽었는데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자신의 육체를 혐오하고, 살아있는 것 자체를 형벌로 느끼는 어미의 모습만이 처절하게 남아있다.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다. 활자가 아니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읽는 기분이었다.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스무 살의 내가 '참척(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는 그 역설적인 문장 앞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슬픔의 밑바닥을 본 것 같아 한참을 울었다. 이 책은 박완서 문학의 가장 어두운 심연이다. 하지만 이 처절한 애도 과정을 통과했기에, 선생님의 후기 작품들이 그토록 따뜻하고 깊어질 수 있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너무 아픈 책이지만, 박완서라는 작가를, 아니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책이다. 마음이 단단한 날에 읽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