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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입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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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입은 용   이 책을 읽기 전에, 신문 기사 한 꼭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2017년 7월) 5일(현지시간) 오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찾으면서 고인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부인이 윤이상 묘소를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여사는 경남 통영시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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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입은 용

 

이 책을 읽기 전에, 신문 기사 한 꼭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20177) 5(현지시간) 오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찾으면서 고인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부인이 윤이상 묘소를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여사는 경남 통영시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전용기로 옮겨와 윤이상 묘소에 심었다. 윤이상의 살아생전 향수를 늦게나마 달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윤이상은 동서양의 세계관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 세계적 작곡가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의 이름과 작품이 일반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시달려 온 탓이다. 윤이상의 음악은 그가 베를린에서 숨지기 겨우 1년 전에야 윤이상음악제 등을 통해 한국 땅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윤이상은 상처 입은 용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게재 일시는 2017.07.06 15:08.

이 기사에서 상처입은 용이란 말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해당하는, 윤이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상처입은 용윤이상(1917917199511)의 전기다.

 

이 책은 2005년 윤이상 서거 10주기를 맞아 출간한 윤이상 상처입은 용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만듦새를 새로이 하여 출간한 책이다.

 

먼저 이 책의 저자는 루이제 린저다. 우리에게는 생의 한가운데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작가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경위가 이 책, 9쪽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전기물(傳記物)인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

일방적인 진술 형태가 아니라, 대담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즉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가 나누는 대화로, 윤이상의 생 전체를 다루고 있다.

 

윤이상의 생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에서의 유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

석방과 새 출발

 

책은 그러한 대담을 중심으로 하여, 루이제 린저의 서문 책을 쓰게된 경위 등 과 윤이상 연보와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에게 질문을 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한국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가령 이런 것도 있다.

 

양반이란 게 뭡니까?”(26)

 

윤이상의 집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중에 루이제 린저가 묻는 말이다.

질문이 우리에게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지만, 루이제 린저에게는 특별한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이런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한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 할지라도, 외국인의 시각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이해하려고 추가 질문하는 내용들이 이어지니, 그보다 좋은 역사책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일단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다.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

특히 박정희, 그가 자기 권력을 위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여기 윤이상이란 한 개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입은 피해, 그리고 독일을 무대로 벌어지는 기막힌 정보부의 악행, 헛발질 등, 그게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게 부끄럽다,

 

그리고 윤이상이란 인물, 새삼 경외의 마음으로 그를 조명하게 된다.

어찌보면 역사의 희생자이면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음악계에 남긴 그 족적들이 새삼 놀랍다.

 

나는 여태까지 그를 그저 동백림 간첩사건의 일게 피해자라고만 여겼지, 음악계에 남긴 그의 발자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간첩사건으로 유명해진 음악가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음악계에서 유명한 그였기 때문에 동백림 사건이 더 조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동백림 사건에 해당되지 않았더라면 동백림 사건은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동백림 간첩사건에서 윤이상이 당한 고초

 

어느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독일에서 한국으로 납치되어 들어오게 된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그가 당한 고초 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 본다.

 

그들은 내 손발을 묶어 통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땅에서 1미터 반 정도 높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얼굴위에 흠뻑 젖은 천을 올려놓고 그위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립니다. 그러면 천이 입과 코위에 딱 달라붙어 질식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정신을 잃으면 그들은 묶은 천을 풀고 의사를 불러왔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주사를 놓고 내가 숨을 돌리면 또 물고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주사를 놓으면서 고문을 했습니다. ....,,, 여섯 번인가 그 이상 주사를 맞았을 때 나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169)

   

루이제 린저, 역시

 

또한 루이제 린저를 한 작가로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모습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 자신도 1944BBC 방송을 몰래 듣고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말한 탓에 군사교란과 반역죄목으로 체포 구금된 적이 있고, 사형선고의 위협 속에 있다가 미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경험이 있기에.....>(304)

 

루이제 린저(1911430- 2002317)는 독일의 소설가로, 1944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위와 같은 정권의 쓴 맛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니 윤이상과는 동병상련?

 

다시, 이 책은 

 

루이제 린저가 이 책을 썼는데, 그녀의 기여도는 

책의 말미에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공저로 펴낸 홍은미가 글을 하나 써놓았는데, 그 중 이런 말이 있다.

 

린저의 언어는 독자에게 윤이상이라는 작곡가와 그의 음악을 알아보는 것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과 그들이 빚어내는 예술 가치 전반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더하여 음악적 전문성에 있어서도 손색이 없다.>(301)

 

루이제 린저는 이 기록을 남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 보고의 필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당신과 같은 운명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몇 백명, 몇 천명이나 있다는 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쓸 필요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의 운명은 하나의 모델이니까요라고....>(181)

 

이 책을 읽다보면, 윤이상이란 존재, 그저 추상적으로 동백림 사건으로 고난당한 음악가로 흐릿하게만 알아 오던 사람의 모습이, 점이 보이고, 선이 보이고 드디어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여 드디어 그의 모습 전체가 보이게 된다. 그의 걸음 걸이, 행동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게 만들어 준다.

 

윤이상, 그리고 그가 살았던 역사, 한국의 정치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음악도, 루이제 린저도 알게 되는 일석 삼, 사조의, 한권 읽고 열권 읽은 것 같은 기쁨을 얻게 되는 뜻밖의책이다.

s***h 2017.09.27.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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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 입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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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용". 역시 거장의 판단과 표현력으로만이 가능한, 웅대한 인물 규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타인)를 두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음이 그 자체로 발화자의 그릇 크기를 증명하는 건데, 그런 대단한 규정의 대상이 되는(되었던) 분이야 또 엄청난 분이 아니어서는 안 되겠죠. 상대를 "용"으로 부른 분은 80년대 학번, 혹은 그보다 이전세대들도 잘 아시는 독일(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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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용". 역시 거장의 판단과 표현력으로만이 가능한, 웅대한 인물 규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타인)를 두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음이 그 자체로 발화자의 그릇 크기를 증명하는 건데, 그런 대단한 규정의 대상이 되는(되었던) 분이야 또 엄청난 분이 아니어서는 안 되겠죠. 상대를 "용"으로 부른 분은 80년대 학번, 혹은 그보다 이전세대들도 잘 아시는 독일(서독)의 큰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이며, 린저 여사에게 용으로 불린 분은 우리 겨레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윤이상 선생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두 거인, 두 마리 용의 대화, 대담"이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물론, 컨텐츠의 메인은 윤이상 선생님이지만, 우리는 과분하게도 덤처럼 루이제 린저 여사의 날카롭고 지성적이며 정의로운 면면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평범한 독자에게는 책 한 권을 통한 대단한 대접이고 특권이며 행운입니다.

이 책은 루이제 린저, 윤이상 선생 모두 정정하게 활동하시던 1970년대 후반에 집필되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도 집중 조명되는 "그 사건"의 길고 긴 파장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서는 발표, 판매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정면으로 그 본질을 훼손당하는 참담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죠. 물론 이 책은 "그 사건"에 대한 개인적 기억의 술회에 중점이 놓인 건 또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재출간본의 서문에도 잘 나오듯, "철학, 문화인류학, 음악 등의 영역을 자유자재 종횡무진 넘나드는" 두 사유의 거장이 치밀한 소통을 이루고, 이 행복한 만남을 엿보는 독자들이 스스로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배움터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뜻밖인 건, 윤이상 선생이 개인적으로 "그 사건"에 대한 피맺힌 소회를, 최대한으로 자제하며(엄청난 정치적 음모, 추문의 최대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한을 털어놓기보다는 이를 민족 전체의 아픔과 인류사적 문제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평가는 독자 레벨에서 공감하기에 앞서, 대담자 루이제 린저 여사가 아웃라인을 선제적으로 잡아 주는 태도입니다.

"그는 경상도 양반 가문 출신이다. 이들의 체면 의식, 도덕관념은 남들 앞에 알몸을 드러내는 걸 극히 꺼린다. 그게 정당한 고백이고 권리를 갖춘 고발이라 해도, 행여 자신의 권리 주장 때문에 타인에게 작은 피해가 갈 수 있음을 염려해서이다." 린저 여사는 이처럼, 얼핏 보아 이해가 안 되는 "용의 상처 가리기"에 대해, 자신 나름의 이해와 공감을 투영하고 독자를 이끕니다. 물론 그런 양반 가문의 위신, 지조, 자제에 대해서는 우리 한국 독자들이야 누구보다 깊고 정확한 동감의 투영이 가능하기에, 그런 친절한 안내는 (우리들에게야) 과공처럼 비춰집니다만, 여사의 영민한 지성이 어쩜 저리도 (당사자가 일일이 말로 표현 안 했건만) 본질을 절묘히 꿰뚫었을까 하는 감탄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또, 벽안의 외국 지성인이 이처럼 우리의 집단 내력, 전통의 유대를 이제 자신의 거대한 정신 속에 한 요소로 접수, 편입했구나 하는 긍지도 느낄 수 있겠고요.

개인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부당한 겁박과 위협은, "그 사건"에 한해서 윤이상 선생이 겪은 고난은 아니었다는 게 또한 비극입니다.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 선생은 일제말 조선인 전체를 상대로 이뤄지다시피한 징용의 와중에도 이미 희생이 되었고, 본인의 술회에 따르자면 "대나무 조각을 손톱 밑으로 밀어넣는" 지극히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독자가 참담한 느낌을 받는 건, 야만적이고 분수를 모른 채 준동했던 이민족 지배 체제의 행태와, 독립이 이뤄진 후 이 땅에 들어선 같은 민족의 정부의 그것이, 서로 유사한 특성을 보였다는 점 때문이죠. "어쩜, 그들이 하던 짓과 이들의 만행이 이처럼 닮을 수 있을까?" 손발톱 밑에 무엇을 집어 넣어 고통을 주는 방식은 일제 때 꽤 광범위하게 유행했나 봅니다. 저 역시 가까운 분으로부터 비슷한 얘길 자주 들었거든요. 공교롭게도 그분도 윤이상 선생과 같은 고장에서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성장기를 보냈고 말이죠 ㅎㅎ.

윤이상 선생이 이승만 정부에 대해 회상하는 바는 다소 특색이 보입니다. "...그는 독립투사로서 항일의지만큼은 투철했으나, 정치인이나 경세가로서 철저히 무능했던 탓에 단기간에 전 민족을 빈곤선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평가는 그 이면에, 이승만 집권기에 오히려 이전보다 경제상황이 더 악화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대조군이 일제 말기, 즉 공출을 통해 겨레 모두가 끼니를 굶다시피한 극한 상화이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양반이란 무엇입니까?"

이 심오한 질문에 대해, 윤이상 선생의 답변, 그리고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 적은 여사의 선명한 문장 덕분에,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라지만 제3자의 객관적인 필터를 통해 입체적인 이해가 다시 한번 가능해집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전통적인 훈육을 받고 자라났기에, 그는 본인의 자유혼, 예술혼이 극구 피하는 가부장의 한 자락 개성을 결국 못 떨쳤음을 진솔히 고백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그가 성장 과정에서 넉넉히 입은 문화적 혜택의 영향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습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 샬라핀(Фёдор Иванович Шаляпин)의 중후한 음색이, 그의 어린 시절 정신과 영혼의 볼륨과 색채를 풍성히 꽃피운 한 자양이었음을 그는 행복하게 술회합니다.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주로 독일 평론가들이 그를 겨냥해 한 말이지만, 너무 엘리트 티를 내느라 음을 어렵게 꾸미고 구성을 난해하게 잡는다는 식이었죠. 하지만 태생으로부터 입은 신의 축복이 아니라면, 다른 속물 근성 가득한 이들이 어떤 흉내를 내고 싶어도 못 낼 천재만의 날렵한 행보이기도 합니다. 루이제 린저는 이 대담 내내, 신이 빚은 용(그녀 자신은 물론 무신론자에 가까웠습니다만)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유념하여 해석하고 교감합니다. 이 역시 린저 여사 자신이, 동양적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기에 가한 소통이었겠습니다. 기사의 손에 의해 찔리고 정복되고 포획되어야 할 괴수로서의 용이 아니라, 피안의 진리와 신비를 지녔기에 숭배와 일체의 대상으로서 말이죠.

이 책, 그리고 동시대 외국 언론에는 KCIA로 더 잘 알려진 소위 "남산의 중정"은, 지금 이 책이 구술된 시점 기준으로 외국(프랑스, 서독, 그리고 몇 년 뒤 일본에서까지)의 주권침해를 참 대담하게도 저질렀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북한이 전세계를 향해 도발하는 그 배짱을 연상케 하는데, 이건 당연한 소리지만 전혀 자랑이 못 됩니다. 무슨 불량청소년이 비뚤어진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개기는 꼴 아니겠습니까. 어른이 되었으면 어른만의 방식으로, 불만이 있든,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하든, 제 의사를 표현하고 호소해야 마땅하죠. 참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브링크맨십으로, 처음엔 남의 요구를 들어 주는 척하다가 결국 한 걸음 더 나간 도발로 상대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수법(서독, 프랑스 정부의 정치범 감형, 석방 요청에 대해 수긍하는 듯하다, 나중에 다른 정치범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걸로 응수)도, 이때 남한 정부와 하는 짓이 꼭 닮았습니다.

대담 형식으로 일관하지는 않고, 동백림 사건에 대한 린저 여사의 정리와 평가, 해석이 별개 챕터로 삽입되었으니 현대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꼭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린저 여사만의 명쾌하고 심오한 해석으로, 윤 선생의 대표작인 오페라 <심청>에 대한 짧은 해석도 실렸는데, 윤 선생에 대한 개인 팬이 아니라도 서양 고전 음악에 대해 취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고 새길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v*****7 2017.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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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용龍,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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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불리는 작곡가 윤이상, 그의 세계적 명성에 비해 그의 조국인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낯선 편이 아닌가 합니다. 나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도 그러했거든요. 도리어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 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고통받았던 시인 천상병을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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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불리는 작곡가 윤이상, 그의 세계적 명성에 비해 그의 조국인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낯선 편이 아닌가 합니다. 나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도 그러했거든요. 도리어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 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고통받았던 시인 천상병을 제가 워낙 좋아해서, 찾아본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기억 속에서 흩어져 있던 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바로 알쓸신잡이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예악(Reak,禮樂)이 너무나 놀라웠거든요. 분명 서양의 악기로 연주하고 있는데, 그 소리는 한국의 전통 악기 소리처럼 들렸으니까요. 그 동안 양악과 국악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인 거 같네요.

상처받은 용龍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출간된 책인데요. 음악가 윤이상과 소설가 루이제 린저의 대담집입니다. 처음에는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윤이상의 음악적 시원始元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아차 싶었답니다. ‘시원始元’, 한자 그대로 이해해도 되는 것인지 멈칫 할 정도로 저에게는 낯선 단어여서, 그의 음악만큼 조금은 난해한 책일 수 있겠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렸죠. 처음에는 책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던 삶의 한가운데로 신선한 감동을 주었던 루이제 린저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음악가로서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윤이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더군요. 특히나,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있던 그가 항일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부분이 그러했어요. 음악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말, 그렇게 재능과 열정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정말 잠깐만 현실에서 눈을 감으면 자신의 꿈에 다가설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찰나의 외면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너무나 담백하더군요. 그리고 나름 열심히 찾아봤던 동백림사건에 대한 루이제 린저의 르포르타주 역시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재조명되어야 할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윤이상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음악제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고국을 찾지 못한 이유 역시, 거기에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사실 저에게 윤이상의 음악은 낯선 충격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의 입으로 들을 수 있는 설명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도움이 되더군요. 앞으로 음악을 감상할 때마다 참고하기 위해, 그 부분들만 따로 정리해놨을 정도입니다. ‘소등 신호 아래서라는 첼로 협주곡 중간의 모놀로그 장면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네요.

깊은 정적이 시작됩니다. 나는 혼자 감방 안에 있습니다. 나는 사형이 구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살아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안에 쓰고 싶은 음악이 아주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죽음에 반항하지만 결국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던 밤에 나는 절에서 울리는 목어 소리를 들었습니다. 근처 절에서 스님들이 심야에 회향하며 독경을 하는 소리였습니다. 당신은 그 목어가 어떤 울림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계시지요? 그것을 불국사에서 들으셨을 테니까요. 마치 무거운 물방울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반향판 위로 떨어지듯, 둔탁하면서도 음악적으로 울린다고 했습니다. 한밤의 정적 속에서 그 소리가 울립니다. 나는 이 울림을 듣고 승려들은 죄수가 죽을 때마다 절의 목어를 울리는 모양이라고 상상했습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강박관념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나는 죽음에 대한 불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반항과 굴복, 고통과 편안함이 이 작품에 있는 것입니다.”

a******e 2017.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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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포니 속의 헤테로포니, 윤이상의 삶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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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논한 '불멸의 예술가'에 관한 책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로맹 롤랑의 베토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로댕,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등이 그러했다. 여기 뒤늦게나마 접한 명저 한 권을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루이제 린저의 윤이상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들 가운데는 '재승덕'의 경우도 적지 않은데(로댕과 피카소처럼),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은 모두 재주와 덕성을 겸비한 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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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논한 '불멸의 예술가'에 관한 책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로맹 롤랑의 베토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로댕,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등이 그러했다. 여기 뒤늦게나마 접한 명저 한 권을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루이제 린저의 윤이상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들 가운데는 '재승덕'의 경우도 적지 않은데(로댕과 피카소처럼),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은 모두 재주와 덕성을 겸비한 걸출한 예술가라서 더욱 존경스럽다.


『윤이상, 상처 입은 용』(RHK, 2017)은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과 대담을 나누며 그의 일생과 음악 철학 등을 두루 논하고 있는 명저다. 두 분 모두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라 한다. 책 제목 ‘상처입은 용’은 윤이상의 어머니가 꾼 태몽에서 기인하지만, 진보적 예술가들에 대한 박정희 군사정권의 대규모 정치조작인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1967년 윤이상은 강제로 서울로 납치되어 악질적인 고문을 당하고, 북한 간첩으로 몰려 2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게 된다.


루이제 린저는 “도교 철학, 현대음악, 독재하의 정치적 압박과 투옥 경험,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활동”이 네 가지를 두 사람 우정의 공통된 기반이라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에게 동양사상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도교 철학이 기반이 된다는 얘기는 작곡의 정신이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음의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윤이상의 무조음악이 서구적인 포스트모던성을 논하기 앞서서 이미 도교철학의 정수와 직결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무조음악은 일반적인 작곡법에서 강조하는 조성의 법칙을 파괴하거나 극복하는 새로운 구성원리를 추구한다.

윤이상의 음악에는“자유, 순수, 절대에 대한 욕구와 바람”과 '퇴은'의 정신적 기질이 농후하다. 그가 남한 사람의 성정을 개인주의적이고 심미적인 기질이 강하다고 본 것과 일맥상통한다. 윤이상의 현대음악은 통영 어부들의 남도창, 음악극 오광대 놀이, 무당의 굿판 등 유년 시절에 경험한 청각적 인상들이 깊이 녹아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통영 바닷가, 그곳은 윤이상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윤이상은 아버지와 밤낚시를 하며 들었던 어부들의 남도 노래를 추억한다. 아마 명말 장대의 『쾌원도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와 비슷한 정취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여든 살 푸른 물결 한 사람의 늙은이
갈대꽃 강물 위에 푸른 안개 자욱하다
세간의 이런저런 좋고 나쁜 일들일랑
이 좋은 밤 달 밝은데 낚시 통이나 챙기리(정민 역)

윤이상은 청년시절 항일운동에 가담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기도 했고, 거기에 영양부족이 겹쳐서 결핵까지 앓게 된다. 해방 후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고아들을 모아 키우는 육영사업에도 참여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본업인 음악교사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같은 학교 여교사 출신의 이수자 여사와 결혼하게 된다.


독일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연고가 없던 터라 우선 파리로 유학을 떠나 국립음악원에서 토니 오뱅과 피에르 르벨에게 각각 작곡과 이론을 1년간 배우게 된다. 그후 베를린에서는 보리스 블라허와 요제프 루퍼 밑에서 작곡법을 공부한다. 다름슈타트에 출품한‘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초연이 호평을 받고, 네덜란드 콩쿠르에 보낸‘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도 호평을 받게 된다. “동양 음의 이미지와 서양 작곡 기법의 훌륭한 융합”이라는 평이다. 1960년에 작곡한 ‘교향악적 정경’이 6세기 고구려 사신도 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명이 매우 신선하다. 사신도에서 균형잡힌 긴장감을 음악으로 표현해 낸 것이 놀랍다.

윤이상은 현대음악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예와 흐름을 구축한 세계적인 음악가다.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의 음악을 ‘음악의 융단’에 비유한다.


“당신 음악은 내겐 마치 음향의 직물과 같이,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음색과 음 조직 속에 크고 작은 단편이 '걸려 있는' 소리라는 직물의 반복 진행과 같이 생각됩니다.”(130쪽)


참고로, 윤이상 본인이 비교적 선호한 자신의 작곡기법에 대한 비평적 해석은 요제프 호이슬러가 말한 '폴리포니 속의 헤테로포니'이다. 

z***a 2017.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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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 입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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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통영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통영? 윤이상?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은때라 베토벤, 모차르트 등 유명 작곡가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사람 이름이 나오길래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현대 음악 분야계에서 위상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이후 윤이상의 삶에 대해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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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통영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통영? 윤이상?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은때라 베토벤, 모차르트 등 유명 작곡가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사람 이름이 나오길래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현대 음악 분야계에서 위상이 상상을 초월하네요. 이후 윤이상의 삶에 대해 읽어보면서 그의 음악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현대 음악이라 어려워서 그런지 처음에는 듣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네요.


'윤이상 상처 입은 용' 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책으로 루이제 린저와 대담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유명 문학가였던 루이제 린저와 깊은 친분이 있었다니 몰랐네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형식이라 책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어떤 집안에서도 그랬듯 음악은 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특히 장남이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윤이상도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유학을 떠나네요. 경제적인 상황도 어려웠고 나이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만약 그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취미로만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뛰어난 작곡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후 서로 소식도 전할 수 없었는데 같은 분단 국가였던 독일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편지를 보내거나 상대방을 방문도 할 수 있었네요. 이런 환경에서 베를린에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친인척과 친구를 찾기 위해 북한 대사관과 연락하는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정부에서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강제 납치 및 고문까지 불사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했는지 상상조차 쉽지 않네요. 세계 유명인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의 석방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후 음악 관련 한국 정부의 공식 초청에서도 불안감을 느낀 점은 이해가 되네요.


책을 읽다보니 정말 많은 곡들을 작곡했네요.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면서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음악 세계도 대해서도 잘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동양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한 장점을 살려 현대 음악계에서 인정 받는 작곡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세계의 평가와는 달리 고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안타깝기도 합니다. 책을 통해 음악 뿐만 아니라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음악도 다시 한번 들어보고 통영에도 여행 겸 음악당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p***s 2017.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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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윤이상 상처 입은 용 - 음악사의 영웅인가 시대의 희생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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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술가를 그가 남긴 예술적 세계로만 평가 하지 못하고 정치적 사건과 연루시켜 평가하는 시대적 상황과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백석과 마찬가지로 어느 싯점까지 금기시 되어 오던 이름이었다.그의 이름을 내가 알게 된 시기는 90년 중반이었고 그 이전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엄청난 음악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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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술가를 그가 남긴 예술적 세계로만 평가 하지 못하고 정치적 사건과 연루시켜 평가하는 시대적 상황과 조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이상-

이라는 이름은 백석과 마찬가지로 어느 싯점까지 금기시 되어 오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내가 알게 된 시기는 90년 중반이었고 그 이전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엄청난 음악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이유가 음악에 무관심한 문외한인 탓도 있었지만 이 거장의 음악에 대해 교과서나 음반 시장에서 교육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건 아무래도 1967년 동베를린 간첩 사건(동백림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이념의 성향이나 이적행위의 경중고하를 막론하고 걸면 걸리는 시대적 배경이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69년 음악가들의 항의와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에 힘입어 석방되었고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95년 베를린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 '94년에 서울,부산, 광주 등지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개최되고 나서야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최소한 나에게)각인되기 시작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그 다음 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대중에게 가까이 느껴지지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시 그의 묘에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을 식수했다는 뉴스로 그는 또 한 번 이슈가 되었다.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평가하기엔 그를 너무 모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든 간에 그가 남긴 음악적 쾌거는 분리되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적 행위를 했든 간첩이었든 자기 분야에서 명성만 얻으면 그 모든 것이 면죄부를 받아 죄사함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개개인이 가진 성향으로 인해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재까지 빼앗지 말았으면 싶은 이기다.

(사실, 내가 윤이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때 자수 간첩 오길남의 인터뷰를 읽었다. 늘 그런건 아니지만 먼저 들어 온 정보가 똬리를 틀고 있는데 뒤에 들어 온 정보가 그 똬리를 풀어 내쫒은 다음 그 자리에 들어 앉기란 결정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건이나 제보가 있기전까진 흔들리는게 사실이다.)


책 이야기를 하자.

내가 고등학교때 겉멋으로 읽었던 유리알 유희(고등학생인 내가 이해하기엔 좀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었다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ㅠ)의 저자 루이제 린저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글로 옮긴 책이다.

루이제 린저라는 이름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었던 먼 이국의 작가가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난 (실은 엄청난) 음악가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부터 벅차게 다가온 책이었다.

루이제 린저의 남편이 작곡가여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철학, 문화인류학 등의 영역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의 질문에 이 대담집은 깊은 진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질문자가 대화를 이끌어 간다는 말처럼 루이제 린저의 질문은 윤이상 삶을 관철해 보이고자 하는 집념인 동시에 그의 내면과 정신세계까지 설득해 보이는 날카로움과 이해가 있었다.

보이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부분에서는 힘을 실었고 아프고 힘든 부분은 끄집어 내어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파고들었다.

윤이상의 대답도 진솔했고 꾸밈이 없어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양반 가문에 두번째 아내로 들어 온 어머니의 슬픔과 고향 통영에 대해 느끼는 애잔하고 아름다운 풍경, 어린시절의 에피소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지만 양반가의 체통으로 제를 올리고 시를 읊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 아내와 아이들,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견해, 정치적 희생과 이념의 잣대에 대한 얘기는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더 쉽게 읽혔다. 그도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시절을 거쳐 삶을 견디어 왔고 수월치 않은 세월을 견디고 음악적 입지를 굳히기 까지의 시행착오와 주변의 시기어린 험담과 충고를 극복하고 수용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유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석방과 새출발의 순으로엮어간 윤이상의 일대기는 윤이상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이 거장이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배경은 충분히 설명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을 관통하는 윤이상의 생각이라 믿고 싶다.

그가 무슨 말을 했든 어떤 행동을 했든 집권자의 이념에 맞물려 평가받고 해석되어져 온 증황이 많긴 했지만, 이 책이 그가 베를린으로 귀화한 후 오래지 않아 쓰인 책이고 그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선 쓰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가 보인 행적들이 순수 예술가의 입지에서인지 핍박 받은 세월에 대한 반대 급부였는지에 대해선 시간이 역사가 재평가 해주리라 생각한다.


대담집의 대부분 내용이 그의 음악적 행보와 쾌거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문외한인 나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고도 가늠할 수없었던 얘기들이 많았다.

다만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입지에 올라있었고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비상하는 용이었음을 느낄 뿐!

'72년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배우들의 모습은 분명 서양인인데 옷과 배경은 한국의 것이라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과 윤이상이 추구했던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인간애와 민족애를 느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전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그를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과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예술가가 생겼다는데 개인적인 의의가 있는 책이다.

어쨌기나 힘든 질곡의 세월 음악으로 이겨내고 음악으로 극복한 그의 한 생애에 하트를 보내는 바이다. 




a********3 2017.10.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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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루이제 린저 [윤이상 상처 입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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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의 통영 편에서 윤이상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로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통영을 빛낸 예술가로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렇게 추앙받고 있는 분인지는 몰라서 말이다.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백남준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윤이상 작곡가에 대해서는 너무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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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의 통영 편에서 윤이상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로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통영을 빛낸 예술가로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렇게 추앙받고 있는 분인지는 몰라서 말이다.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백남준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윤이상 작곡가에 대해서는 너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까웠었는데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도 알게 되고

윤이상 작곡가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참 좋았다.

단순히 한 음악가와 소설가의 대담집 성격을 넘어 윤이상 선생의 인생과 정신을 중심으로 집약된 철학,

음악, 문화인류학, 한민족 통일문제 등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드는 명저라는 소개글처럼

윤이상 선생의 현대음악사적 비중과 동서양 경계를 허무는 담대한 세계사적 비전을 엿볼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용기를 주고,

분단된 우리 민족에게 민족 화해와 문화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민족운동가

윤이상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다. 이 책은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의 대담집인데,

그의 일대기를 비롯해 그의 작품, 그리고 그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루이제 린저가 직설적으로 묻고 답하고 있어 그의 치열한 생의 기록이 담겨 있다 할 수 있다.

그가 어떻게 음악을 만났는지, 왜 항일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유학과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어땠는지, 동베를린 사건은 어떻게 발생했고 그 이후 어땠는지...

음악가의 삶이자 역사의 기록이었다.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그에게

어부들의 뱃노래부터 파도소리까지 모든 것은 음악적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열세살 때 왜 자신은 다른 사람이 악보로 그린 것만 불러야 하고 연구해야 하나,

왜 내가 스스로 음악을 쓰면 안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작곡을 시작했다고 하니

거장은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긴 하다. 유교적인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음악 공부를 금지시키고

상업 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열일곱 살 때 음악을 하러 서울로 갔다고 하니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집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융합한 음악적 신념도 신념이지만 질곡의 시대를 넘어오며 겪었던 겪어야 했던 

고초와 그 과정이 인상 깊었다. 1944년 항일 지하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하였고,해방 후 1952년까지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마흔 살이 되던 1956년 본격적으로 유럽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열세살에 스스로 작곡하기로 마음먹은 장면에서 천재는 다른가봐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마흔 살이었다니 나도 아직 늦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7년까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고, 다시 독일

서베를린 음악대학으로 갔다. 졸업과 동시에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를 담은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 음악을 시작으로

그는 유럽 각지의 음악제, 콩쿠르에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으로 세계 음악계를 사로잡았다.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에서 대편성관현악곡 '예악'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작곡가로 주목받게 되고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 음악어법과 결합하여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평가도 얻었다. 그러던 중 1967년 정권이 조작한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사건’으로 강제 송환되어 

2년간 복역을 하게 되는데,당시 그의 구명을 위해 전 세계 예술인들이 뜻을 모았다고 한다.

1969년 다시 독일로 돌아갔고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군사독재 시대에 맞선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인정받지만 정작 조국에서는 잊혀진 작곡가...

가슴 한켠이 찡해왔다. 음악적 성취를 이뤄가던 시기 정치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가

공부와 작곡 외에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그가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정치적인 의식에 눈을 뜬 이유를 우리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유학생, 학자, 예술가, 이민자들이 어떻게 한순간 간첩단으로 조작되었는지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의 전모를 보니 정말...

독제 체제에 의해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운명이 얼마나 가혹했을지...

윤이상 선생의 예술가적 위업도 대단하지만 인류애와 민족애가 더 크게 전해지는 책이었다.


t******1 2017.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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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윤이상, 상처 입은 용 - 윤이상, 루이제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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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초 통영에 갔을 때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이라는 생각만 했지 실제 그와 관련된 장소를 노력을 들여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윤이상 작곡가의 이념 논란으로 '윤이상 기념공원'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도천테마파크'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현 영부인이 7월 독일방문 당시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통영 동백나무 한그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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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7월 초 통영에 갔을 때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이라는 생각만 했지 실제 그와 관련된 장소를 노력을 들여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윤이상 작곡가의 이념 논란으로 '윤이상 기념공원'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도천테마파크'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현 영부인이 7월 독일방문 당시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통영 동백나무 한그루를 심으면서 윤이상 이름 되찾기 운동이 촉발되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이름을 정식으로 담은 기념관이 다시 오픈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을 요즘말로 하자면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어 평생을 조국을 등지고 살게 만든 죄를 어떻게 속죄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책은 1977년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의 대담집으로 2005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것이다. 윤이상의 음악 세계와 그의 인생관 및 철학, 그리고 그에게 일어났던 동베를린 조작사건의 전말과 그 후 그의 음악들에 관해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정리된 대담집이라 하겠다. 물론 음악을 잘 알지 못한 나로서는 전문적인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윤이상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하는데에는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꿈과 역량을 맘껏 펼치기도 전에 반일 지하 운동으로 투옥되고 고초를 겪다가 해방을 맞이한 후 자신의 진정한 꿈의 실현을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늘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던 그에게 박정희의 군사 쿠테타 소식이 전해진다. 그것에 대한 그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대화를 인용해본다.


윤이상 : 기본적으로 내 경우에는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고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음악가인 나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밖에 없습니다. 즉 내 예술적 양심에 따라서 의식의 순수성과 광대한 차원을 향한 고도의 요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 대해 당신에게 말했던 걸 다시 떠올려 보세요. 그는 단지 학자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책을 읽고 시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홍수가 나 집이 잠겼을 때는 그 자신이 몸소 제방을 쌓는 일을 도왔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예술가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만인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하고 따라서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단기간의 임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광대한 발걸음에 영향을 줄 수는 없고, 아주 일부만을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p290)


   예술가로서의 그의 이러한 작은 책임을 간첩혐의를 씌워 납치해서 고문을 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사형을 구형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루이제 린저는 이 동베를린 간첩조작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야욕을 고발함과 동시에 미국과 독일의 방관자적 태도까지 비판하고 있다. 그 후로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여전히 그의 음악이 나에게는 쉽지 않겠지만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의 음악에 대한 많은 저술들이 나온다면 그가 음악 속에 담아내려고 했던 한국적인 정서들과 초현세적인 도의 정신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l********d 2017.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윤이상, 상처 입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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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티비를 보다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작곡가로서 윤이상 선생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핏 지나가는 말을 들은 기억뿐인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역시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난해하고 어려울지라도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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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티비를 보다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작곡가로서 윤이상 선생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핏 지나가는 말을 들은 기억뿐인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역시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난해하고 어려울지라도 어느 순간 그 음악에 감동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지금도 나는 윤이상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를 찾아서 듣고 있는 중인데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두어번은 들어봤던 이것 말고 오페라 심청을 찾아 듣고 싶었는데 찾을수가 없었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동백림 사건으로 잡혀왔다가 풀려났고 세계적인 음악가이지만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그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고 그토록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끝내 고향땅 통영을 다시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것 정도이다.

책을 읽으며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을 통해 그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사실 앞부분부터 집중되는 그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 빨갱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그는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고 오히려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어 있다"(290)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저 음악가이고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음악가에게 정치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내 예술적 양심에 따라서 의식의 순수성과 광대한 차원을 향한 고도의 요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예술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만인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야만 하고, 따라서 정치에 도움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단기간의 임무일 수밖에 없습니다"(290)

그래서 그는 일제시대하에 자신의 소신과는 달리 무장혁명을 생각하기도 했고, 전후에는 집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고아원 시설을 운영하려고 하기도 했다. 고난의 시대를 겪은만큼 그의 삶 역시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했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유학생활을 견뎌내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윤이상, 상처입은 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삶의 여정이 그래서일까 생각했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그의 태몽과도 연결되어 지은 제목인 듯 하다. 용이 승천하는 꿈은 대단한 인물이 나올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용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나라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말이죠. 게다가 나를 감금하고 고문하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실제 우리나라 민중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민중 자신도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갇혀 있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독일 시민이 되었다고 해도 나 역시 한국 민중이며 한국 민중을 사랑해왔고, 사랑하고 있습니다"(282)

특별한 인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기 수십년 전 같은 날 태어났고 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윤이상 선생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갇혀 예술가로서의 그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 그의 마음은 한국 민중이며 한국 민중을 사랑했는데 말이다. 한국을 사랑한 진짜 한국인, 세계적으로 그 음악성을 인정받은 천재적 예술인으로서의 윤이상 선생에 대한 존경과 평가는 이미 늦었지만 이제 뒤늦게나마 제대로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r***2 2017.10.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