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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그저 밥벌이를 해야 하는 직장이라면 선생님은 얼마나 학교 가기 싫을까. 녹음기 재생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는 것처럼 몇 십 년 동안 똑같은 것을 가르치고, 정년퇴직이 몇 년 안 남은 늙은 선생님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교실에서는 선생님도 학생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학생들이 곧 교재가 되어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함께 공부해야 할 내용이 바뀌고, 선생님도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마음이 있으며, 때로는 학생에게 배우기도 하는 선생님이라면 다를 것이다. 탁동철 선생님 같은 이는 아이들이 특정 시간을 이끌도록 한다고도 한다. 그런 선생님에게 하루하루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축복이리라.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라서 행복한 교실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선생님은 그런 축복을 받지 못했다.
선생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새 학교가 사라져 버리거나 무너졌다는 뉴스를 듣고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뉴스는 나오지 않는다. 선생님은 학교 가기가 싫다. 매일 아프다는 핑계로 결근하고 싶다. 병원에 입원하면 더 좋고, 방학이 길면 좋고, 달력에 빨간 날이 더 많으면 좋겠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반 아이들을 혼자 맡아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게다가 3학년을 맡은 첫날부터 유리창을 박살낸 정지용은 골칫거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파마머리. 장난기로 눈이 반짝반짝, 날렵한 동작에 잔머리 굴리기 대장. 그 똑똑한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싶지만 녀석은 도통 관심이 없다. 그저 선생님 신경을 자극할 궁리만 할뿐이다.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이 한 말이 “완전 올드 선생님이다.”였으니 처음부터 어긋난 관계다.
지용이의 말썽이 정점으로 치달은 일은 현장학습으로 놀이공원에서 일어났다. 4월의 따사로운 봄볕이 결코 달갑지 않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잘 따라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아이들을 이끌었지만 지용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신이 나 있다.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콩콩 뛰고,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것처럼 쌩쌩 돌아다닌다. 아이들을 ‘귀신의 집’에 들여보낸 뒤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서가 울며 다가온다. 곱게 빗었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넘어졌는지 무릎은 까져 피가 나고 있다. 지용이가 그랬다고 한다. 선생님은 드디어 폭발한다. 지용이가 나오자 소리친다. “너! 이럴 거면 집에 가!” 선생님은 소리를 지르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뜨거운 콧김을 훅훅 내뿜는다. 그런데 그게 사달이 되었다. 지용이가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용이는 오지 않는다. 선생님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학교로 출발할 시간이 넘어간다. 다른 반 선생들이 별일 없을 거라 위로해 준다. 하지만 애들에게 더 신경 좀 쓰지 그랬냐고 힐난하는 듯하다. 젊은 여선생들 보기 민망하다. 어느새 보고를 받았는지 교장한테 전화도 온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귀는 물론이고 머리까지 멍하다. 모두가 돌아간 뒤에야 지용이는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큰소리다. 어쨌거나 무사해도 다행이다. 둘은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 김밥을 까먹으며 배를 채우고, 지용이가 알려주는 새로운 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얼굴을 맞대고 셀카를 찍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지용이에게 자율 활동 시간을 맡겨 보기로 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새삼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선생님은 자기가 학생 책상에 앉아 수업 받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엉뚱하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선생님 엉덩이가 근질근질하고 들썩거렸다. 수업시간에 칠 기막힌 장난이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큭큭 웃음이 나왔다. 쉿! 이 보이 선생님에게 비밀이다. 미리 알려 주면 재미없으니까. 하지만 기대하시라. 올드 선생님이 간만에 학교를 떠올리며 웃었다. 진짜로, 아주 슬쩍. 피식. (6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