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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는 귀한 말씀을 통해서 나의 속사람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으로 마음이 채워져야 할때 마음이 요동치고 바람이 불고 여러 가지의 생각이 가득 차 있다면 은혜속에서 영적인 충만감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나를 비우는 연습을 통하여 나의 욕심 나의 자만 이기심을 비우고 영적으로 성령님을 모시어 이기심으로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살아나간다면 어느 순간보다 더 행복하고 기쁠 것입니다. 내 자리 내 자아를 주님께 성령님께 내어 드리고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실 때 그 분은 당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주님께서 피값으로 산 온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은헤 속에 살려고 한다면 먼저 내 마음을 비우면 주님 성령님께서는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대학 학창시절 주님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힘들게 공부하던 시절 물질적인 풍요는 있었지만 불신가정으로 인하여 핍박속에서 오로지 주님만을 붙잡으면서 공부하던시절 어떤 때보다도 주님께서는 나의 힘이 되어주시고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인도 해주시지만 ... 즉 내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성령 충만의 은헤 경험속에서 순간 순간을 살아갈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을 하라 원수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원수를 사랑하고 주님께 맡기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etc. 주님의 약속을 준행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렵지만 행하고 믿고 의지한다면 성령님의 기쁨 성령님의 은헤를 마음껏 맛볼 것입니다. 이제는 내 자아를 깨뜨리고 성렬님을 의지하며 온전한 사랑을 전하고 사랑하면서 살기 원합니다. 사회 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 행정을 통하여 한 사람의 공직자로서 많은 사라믈에게 꿈과 희망를 들여주면서 그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고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한 사람의 죄인이라 욕심, 이기심등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한 사람이지만 사랑의 빚만 지면서 성령님의 인도속에서 남은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분들 먼저 비우면 채워주시고 먼저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한다면 그 마음속에서 사랑과 용서와 자비가 넘쳐 날 것입니다.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처음에는 피곤하고 힘이 들었으나 날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에 따라 영혼이 살 찌는 것과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체험을 하고 나니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즐겁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어느 행복한 약보다도 행복했습니다. 나를 비우고 성령님으로 마음을 채운다면 지구촌의 모두가 행복하고 전쟁이 없어질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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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인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과의 멋진 만남을 소개합니다. 오늘의 설교 내용중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엎드려 기도하고 일어나 전도하자"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총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마지막 말씀을 마태복음에서 마지막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마태복은 28장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입교하고, 여러 모양으로 직임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애써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이제껏 지내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이 모든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의뢰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시고 나를 주장하시게 되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는 일이 하나님의 사역에로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이 멋진 말씀이 제 생활 중에서도 나타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무늬만 신자가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적 변화를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 제목으로 올 한 해를 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평상시 고백하던 찬양이 바로 찬송가 204장 입니다. 1절-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2절-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것과 하늘의 영광 보이도다 3절-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멋진 찬송입니다. 내 생활의 찬양이 멋진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고 채워주셔야 가능한 일이기에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연약함을 만져주시고 간섭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오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개합니다. 믿는이로서 하나님께 소원을 올리고 '설마, 하나님께서 들어주실라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이기에 조금도 의심치말고 간절히 드려지는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앤드류 목사님은 이 책의 2장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신뢰하는 믿음 부분에서 성정이 급하고 올곧았던 베드로의 믿음을 주목하게 합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믿음을 목격하고 확신에 찬 삶을 살게 했던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신앙생활의 비결을 배웁니다. 그것은 '이리로 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을 때, 예수님처럼 능력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나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고, 겸손한 마음을 구하고,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는 일, 더욱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 등 하나님과 나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린 후에는 그분의 능력으로 다른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든일이 먼저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겸손히 구해야 한다.
p.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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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예언사역, 치유사역, 축사사역 등과 같은 집회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성령충만인가? 방언을 받지 못했던 자가 기도 하던 중 갑자기 방언을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전적으로 아니다'라는 것이다. 저자 앤드류 머레이는 성령충만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성경말씀에 대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배시간에 기도하며 찬양하다가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진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령충만함이란, 바로 이 책의 타이틀처럼 '나를 비운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성령충만의 절대조건이다. 자신을 비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포기하지 않았으면서 '나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거짓된 모순은 없을 것이다. 내 심령 안에 '나'라는 더러운 옛자아가 펄펄 살아있는데, 어떻게 그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 질 수 있겠는가? 자신을 비우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성령님이 내주하실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해진다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나를 비운다는 의미이다. 내 심령을 가난하게 비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가난해진 심령, 비워진 심령 안에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심령을 가난하게 해야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자아를 포기하지 않았으면서, 아직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서, 아직 희생의 삶을 살길 원하지 않으면서 입술로는 성령충만을 간구하고 있다면,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단어 그 자체에 의미가 담겨있듯이, '그리스도 예수처럼 살아가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예수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갈 수 없다. 인간은 철저하게 무능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는 성자 하나님께서 걸으신 발자취를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운 자는 가능하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능하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포기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정말 예수를 쫓아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내 자신을 비워야 한다. '자아'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우상이다. 모든 우상들의 뿌리가 바로 '자아'일 것이다. 자아는 죄의 근원이다. 자아가 없으면 죄도 없다. 내 안에 자아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만큼 내 안에 죄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이유는, 바로 이 자아라는 존재가 인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비워야 한다. 이 자아라는 우상을 버릴 때 비로소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나를 비우는 만큼 예수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법을 깨닫길 원하는 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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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하나님의 복을 구하고,기대하고 누릴수 있게 우리를 인도 하신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런 결과가 나타나도록 역사하신다. 성령님은 하나님나라가 임할때 우리가 그 충만함을 받아 누리게 하신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거나 그분을 본받으거나 그분의 삶을 모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우리인간은 자아와 자기 자신의노력을 포기 할줄 아는 법을 배워야한다. 성령을 믿고 주님을 알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먼저 주님께 구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것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안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말씀을 듣는데 하신말씀이라 참으로 실감하고 자기 자신을 먼저 믿고 실천하고 나중에 성령님이신 하나님을 찾은다면 정말 그게 올바른것일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정말 약하고 부족한게 많습니다. 내 삶에 주님이 빠진다면 생각도 할수 없지요. 주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수유하고 계신이유는 자신의 삶으로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시기 위함이랍니다.우리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시작하신 일을 온전히 이루시도록 그분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어디를 가던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또 내가 주님을 잊고 사막에서 헤메고 있을때도 세상에 빠져서 나혼자서도 모든것을 잘하고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때도 주님을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셨더라구요. 바로 그 순간에는 깨달지 못하고 자신에게 상처가 생기고 마음에 구멍이 생길때 그때서야 내가 주님을 외면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화가나면 너무나 무서운 주님 자신을 향상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주님 간절히 원하고 향상 주님안에서 거하시는 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시는 주님 내 자신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본받음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을 가르치셨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그리스도처럼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현 시대에 예수님, 또 하나님, 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그나라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집에 있으면 하루에도 여러번 그런 사람들이 대문을 두드리고 있다. 또 교회에서는 이상한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믿어야 한다고 자신들 밖에 구원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빠져든이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절실히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한번 빠져 들어가면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하는 그곳 내 자신이 주님을 믿고 있지만 그런 질문을 할때가 있다. 보며늘 진실이 아닌데 왜 그런것일까 그런 사람들은 왜 그곳을 갔를까 한다 물론 우리는 주님을 믿고 그리스도 처럼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삶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그럼 삶을 사시도록 도와 주어야한 가능하다. 우리는 너무나 고귀하고 신성한 그리스도의 삶을 내 마음데로 절대 흉내조차 낼수 없다. 언제가 담임 목사님께서 그럼 말씀을 하셨지요. 내 마음 내뜻데로 절대 함부로 성경을 해석할수 없고 설교말씀을 준비 하실때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말씀을 준비하신다고 하셨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실때에 내 삶이 진정한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
우리가 사는 집에 온갖 해충과 뱀들이 득실거리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우리가 사는 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해도 괜찮을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만이 거하셔야 할 자리에 많은 것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장악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만 온전히 내어드리자. --- 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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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이미 우리에게 부여하셨기에, 우리가 원한다면 그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가 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성경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육과 영의 마음 전쟁이다. 누가 승리하도록 내 성전을 내어주고 있느냐란 문제다.
일전에 읽었던 오 할레스비의 <영의 기도>에서 영의 기도를 드리는 처음 시작은,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앤드류 머레이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능함을 주님께 아뢰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로 얼룩진 자아로 잔뜩 힘이 들어간 내 생각을 빼야하는 순간이다. 나는 할 수 없고, 오직 주님께서만 가능함을 믿는 것이 자신의 무능함을 아뢰는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의 주인 행세를 하는 자아를 깨뜨리는 시작이며,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첫 단계이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며 앤드류 머레이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제발 그 하나님 나라가 내게 주어질 것이란 것을 믿으라는 메시지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를 얼마나 사람들이 믿지 못하면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말하는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나였다. 모든 내용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다. 하나님은 받은 줄로 온전히 믿고 구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믿음인가?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수차례 넘어진 사건들은 단순하지 않은 마음과 생각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의 메시지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며 비워진 내 마음을 주님과의 교제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삶이란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친히 소개해주신 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숨에 몇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주께 쳐서 복종시키는 깨어짐의 시간이 있어야 하며, 성령님을 통해 깨달아진 진리를 곱씹으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올라가는 계단과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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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항이고, 때로는 목표이기까지 한 경우들이 많이 있다. 사실 어느 누구든지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싶고,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성령충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교회에서 뜬 구름잡기식으로 막연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성령충만이라고 하는 것이 감정적인 충만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한국의 기독교가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성령충만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축복을 갈구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감정적인 부분으로만 치우쳐서는 자칫 잘못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을 지적하면서 이 책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경험하고,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축복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천국이 죽어서만 가야되는 곳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내 마음이 먼저 천국이 되어야 되고, 그리고 가정이 천국이 되어야 하고, 교회가 천국이 되어서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다가 다시금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성령충만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약속을 의지할 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충만이 부어짐으로 인하여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의 모습이 180도 달라질 수 있었다. 제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인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전혀 기도에 힘썼더니 가능했다. 이것은 요엘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주시마고 약속하셨던 예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구하는 모습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충만하게 임하실 것이다. 이렇게 성령충만을 받았다면, 삶의 모습이 달라질 것인데, 그 달라진 모습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하기에 3부에서는 그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과 매일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에서도 사도들이 여전히 말씀과 기도에 힘쓰지 않았던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 전 존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우리의 전존재를 맡겨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기 대문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성령충만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의 약속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성령충만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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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성령 충만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형식적인 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스가랴 4장 6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로 마음을 채우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루고자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마음에 채우게 된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돈을 써서라도 명예를 얻고자 한다.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마음속에 쾌락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은 술 생각으로, 어떤 사람은 도박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이 있다.
폐에 공기가 조금밖에 없으면 건강하게 생활하기가 어렵다. 폐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야만 혈관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 온 몸에 활력이 생겨난다. 그와 비슷하게 성경은 성령을 받았다거나 성령의 임재를 조금 체험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성령 충만을 격렬한 감정, 곧 강하고 힘찬 느낌을 갖게 하는 하늘의 영광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성령 충만이 항상 그런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이 임할 때 감정이 격렬해지며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셨어”라는 복된 황홀감을 느끼는 신자도 있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신자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머레이는 1860년 자신이 시무하는 남아프리카 교회에서 불꽃기도 부흥을 체험했는데, 폭포수 같은 기도와 더불어 성령 충만이 온 회중에게 임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한 믿음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령 충만에 이르는 단계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나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나는 성령 충만을 허락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셋째는 “나는 성령 충만을 받고자 한다.”이다. 넷째는 “성령 충만을 꼭 받게 될 것이다” 나를 온전히 주님의 팔에 맡겼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은 믿는자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라고 약속하셨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성령이 임할 때 내 마음에 하나님나라가 임한다.’ 내 마음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주인 행세하는 자아를 몰아내고 예수님으로 네 마음을 채우라고 한다. 2장은 ‘예수님의 약속을 의지할 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반쪽 신앙생활에 만족해야 한다. 3장은 ‘주의 성령을 의지하여 온전한 사랑 안에 거한다.’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복종하라고 한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찬송을 많이 해야 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는 우리는 서로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피차간에 복종하는 자세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환경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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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라>는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1828-1917의 생애를 살아간 남아프리카의 선교사요, 목사였다. 그가 태어난 지 193년이나 지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성령의 능력은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하는 능력인 “성령충만”에 대해서 강조한다. 성령충만처럼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어떤 교파는 너무 성령충만을 강조하고, 어떤 교파는 성령충만을 무시한다. 앤드류 머레이의 성령 이야기는 성령의 실제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마음에 임기에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아를 몰아내고 예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채우는 것이다. 내가 억지로 성령충만을 만들 수 없다. 내주하시는 주님을 의지할 때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을 의지할 때 성령충만의 은혜가 임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은 바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다. 만약 성령충만하지 않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반쪽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온전히 사모하게 될 때 성령충만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주의 성령을 의지할여 온전한 사랑에 거하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이다. 매일 신선한 공기를 들어 마시는 사람은 폐가 건강할 수밖에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매일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는 사람의 영은 건강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매일 매일의 삶은 영적 건강을 유지하게 만들어 준다. 나를 비우지 않고서는 성령께서 임하실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나의 욕망과 나의 소망, 나의 꿈마저도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포기하는 연습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세상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반드시 임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한 이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충만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넘어 능력으로 충만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를 주님은 여전히 기다리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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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건강을 항상 유지하듯이, 내 속에 항상 기쁨을 충만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내면의 평화를 유지한 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느껴지나 이는 성경을 비추어 보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단 한가지의 조건이 있는데, 이것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이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그분의 왕국을 세울 때 나는 천국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아직도 고민과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것일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탕자의 비유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눅15:29-32) 탕자의 비유를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린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향해 큰아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여기서 주요하게 보야야 할 것은 아버지의 대답이다.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이 문구를 비추어 보면 사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큰 아들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을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성령님께서 내 속에 내주하심으로 내가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데 내가 그 천국을 맛보고 있지 못했다면, 혹시 탕자에 나오는 큰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나를 위해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시기를 간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자신은 복을 누렸던 적이 없으며, 그것을 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에 그것을 구했다면 받지 못한 것은 왜일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짓이란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84: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우리가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이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를 ‘의로운 자’라고 칭해주신 그 분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령님의 내주를 아예 구하지 않거나, 아니면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할지라도 사실 마음으로는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는 절대 옳으며 절대 선이라는 명제하에 우리는 한가지의 확실한 추론을 얻을 수 있다. 만약어떤 약속의 말씀이 진리이고 사실이라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구했지만 그 약속대로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진리를 뺀 나머지가 잘못되었다(약속대로 구하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성령님을 완전히 의지해서 그 분을 통해 참된 행복과 기쁨의 삶을 누리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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