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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인간사랑, 2011)은 식민지 아일랜드 모더니즘에 대한 이글턴, 제임슨, 사이드의 강연 담론을 엮은 논문집이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와 시인 예이츠의 문학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통해 서구 제국 중심의 '보편적 모더니즘'을 탈피하여 아일랜드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필드 데이 극단이 기획한 제5회 연속 강연회에서 발표된 테리 이글턴의 「민족주의: 아이러니와 참여」, 프레드릭 제임슨의 「모더니즘과 제국주의」, 그리고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예이츠와 탈식민화」를 엮은 책이다. 사이드의 논문은 《문화와 제국주의》에도 그대로 재수록된 내용이기에 낯설지 않았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필드 데이 극단이 매우 생소할 것이다. 1980년에 설립된 필드 데이 극단은 북아일랜드 데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필드 데이는 문화와 정치의 상호작용에 주목하고, 예술을 구체적인 행위로 볼 뿐만이 아니라 한 문화의 전체 역사가 깊이 각인된 것으로 본다. 필드 데이는 이념적으로 IRA의 무장투쟁이 고취하는 민족주의 내러티브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를 허구적 신화로 간주하는 수정주의에 반대한다. 민족주의 신화를 폐지하려는 목적을 지닌 '아일랜드 역사의 수정'에 천착한 수정주의는 문화와 정치를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고, 문화적 산물의 자율성을 신봉한다. 노트르담 대학 영문학 및 아일랜드학 교수인 셰이머스 딘은 아일랜드 민족주의는 영국 민족주의의 모방물이자 파생물이고 그 자체로 지배와 예속의 이데올로기를 존속시키고 발전시켜온 현대 식민주의의 결과물로 본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문제점, 즉 해방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민족주의의 내적 요인은 아일랜드 민족주의가 그 자체를 억압하고 있다고 느낀 영국 민족주의를 필요에 따라 변경한 모방물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영국 민족주의의 공모관계는 상호대립적인 상투적 관념들을 만들어 왔으며, 이 공모관계의 가장 해로운 결과는 바로 종교적 분파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토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20-1쪽)
19세기의 서구는 프랑스와 대영제국이 아우르고 있는 세계였다. 관례적으로 제국주의 시대는 아프리카 쟁탈이 벌어진 1870년대 후반기에 시작되었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사이드는 제국주의 시대가 훨씬 더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또한 근대 유럽 제국주의 자체가 그 구성에 있어서나 근본에 있어서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해외 통치 양식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사이드는 제국주의의 중심에 유럽중심주의가 존재하고, 서구의 타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수십 년에 걸친 제국주의 팽창기에 유럽 문화의 중심에는 억제되지도 않고 누그러지지도 않는 유럽중심주의가 있었다. 유럽중심주의는 경험과 영토, 민족, 역사를 축적하여 연구하고 분류하고 입증했는데,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백인 기독교 유럽의 문화와 이념에 종속시켰다. 이러한 문화적 과정이 제죽주의의 기원과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적어도 제국주의의 중심에 있다고 동의할 수 있는 경제기구와 정치기구에 대비되는 중요하고 유익하며 활력을 주는 요소로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유럽중심적 문화가 비유럽 세계 혹은 추정상의 주변 세계에 관한 모든 것을 체계화하고 관측했다는 것인데, 그 체계화와 관측이 너무나도 철저하고 정밀해서 다루어지지 않은 항목도 없고, 연구되지 않은 문화도 없으며, 점유되지 않은 민족과 땅도 없을 정도였다."(119쪽)
19세기 영국의 제국적 민족주의와 유럽중심주의는 문학적 전통을 통해 부단히 재현되고 재구성되었다. 문학비평에서는 콜리지(1772-1834)에서 토마스 칼라일(1795-1881), 매슈 아놀드(1822-1888), T.S. 엘리엇(1888-1965), 리비스(1895-1978)까지 영국 민족주의 쇠락의 내러티브를 재현했고, 소설 분야에서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셉 콘라드(1857-1924), 키플링(1865-1936), E. M. 포스터(1879-1970), D.H. 로렌스(1885-1930) 등이 제국의 영토와 기타 해외 영토에서 영국성이 실패한 점에 대해 성찰하고 있었다.
문화적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의 팽창에는 낭만주의 사조의 역할이 컸다. 일단 낭만주의의 정치적 목표는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민족적 부르주아계급의 문화적 패권을 확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였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민중문화의 가치를 부각시켰고, 고전주의적 그리스로마 문화의 색채를 띠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기들 편으로 끌어당겼다. 문화적 민족주의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1744-1803)는 잃어버린 민중문화의 재건을 호소하고 민담과 민중신화가 민중이 스스로를 진솔하게 표현한 창조적 산물임을 설파했다. 그 무렵의 유명한 독일 작가 거의 모두가 민족문학 재건이라는 헤르더의 문학적 강령에 영향을 받았다. 노발리스, 요한 횔덜린, 아우구스트 슐레겔, 프리드리히 슐레겔, 프리드리히 셸링, 카를 오트프리트 뮐러와 같은 이가 바로 그러한 새로운 낭만주의 세대였다.
이글턴은 정체성의 정치학과 보편성과 특수성의 대립 개념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내부의 신구교간의 갈등과 아일랜드와 영국간의 갈등과 이로 인해 구조화된 분파주의와 민족주의가지닌 근본적인 모순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아일랜드 소설가 조이스를 새롭게 읽어낸다. 제임슨은 모더니즘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전지구적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체제 전체에 대한 인식지도 그리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영국 소설가 E.M.포스터의 작품과 조이스의 작품에 나타난 넓은 의미의 형식을 분석하여 제국의 모더니즘과 식민지의 모더니즘 사이의 차이를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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