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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Ferdinand Drucker,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경영자문가, 교육자, 작가로 현대를 대량생산원리에 입각한 고도산업사회로 보고, 그 속에서 기업의 본질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전개한 학자로, 스스로는 "사회생태학자(soc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경영학의 전문내용을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을 고안하는 등 미래 사회의 변화와 인간이 사업과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조직화되는가에 대한 탐구에 관한 내용을 주로 연구하였다. 이 책은 논문이 아니라 드러커가 대학생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발표한 강의 원고들을 모아서 재정리한 것으로 1940년부터 1950년, 60년, 70년, 80년, 90년 2000년대의 강의로 구분했다. 그의 강연 주제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이론이 되어서 각 장을 읽는 것으로 거시적으로 각 시대의 주요 이슈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피터 드러커를 경영학자로 알고 있었고 그의 저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의 강연에서 무척 놀랐다. 굉장히 철학적이었고 사고가 폭넓게 제시되어서 한 강의 강의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1940년대의 강의에서 실존주의와 전체주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강연을 듣듯이 무조건 들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시한 이야기에 사고를 하며 읽어야 했다. 그리고 철학적 관점과 철학자에 대해 찾아봐야 했고 그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했다. 아마 방대한 그의 저서의 대부분을 읽었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훨씬 편했으리란 생각은 든다. 이렇게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것은 어느 부분에서 어떤 사고를 해야 하는지 집어주는 점이랄까. 두루뭉수리하게 도덕적이거나 결국은 그러할 것이 예견되는 결론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확고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자신 있게 어떤 문제에 대해 분석해나가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가 자신이 고객과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그들이 영리기업에서 일을 하든 혹은 비영리 조직에서 근무하든 간에, 어려운 일은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일이라고 한 것은 나 역시도 앞으로 기업이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공감을 했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리더들의 의식’ 혹은 ‘사람들의 의식’ 빼고는 다른 건 모두 바꾸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하니 결국은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도 모른다. 「page32⋆ 적어도 이 강의의 목적과 관련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인간이 당당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철학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그런 철학이 갖는 힘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가 큰 슬픔을 견뎌 내야 하는 것과 고뇌의 시대에 죽을 각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키르케고르 역시 인간으로 하여금 죽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신앙은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살고자 하는 의지를 제공해준다.」 피터 드러커에 대해 인상적인 점은 그가 나이가 60이 넘는 시기인데도 연구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러커의 39권의 저서들 중 3분의 2가 65세를 넘긴 후에 출판되었다고 하니, 자연생태학자가 생물학적 환경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인간이 만든 환경을 연구하는 데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고 충분히 스스로 정의할 만했다. 무겁고 진중하고 깊이가 있는 강의였다. 피터 드러커를 좋아하고 잘 알든, 혹은 그를 잘 모르든, 혹은 그의 명성만 익히 들어왔던, 어느 누구가 읽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좌절하게 되고 조금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조금은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의 역량에 기가 죽게 되고, 그럼에도 그의 강연을 대신하고 있는 글귀들을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여기게 되리라. 이러한 이유로 지금 그는 죽어 여기에 없지만 그의 영향력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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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명한 학자이다. 짧게 소개하자면 양차 세계대전 때,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 온 전형적인 다방면에 능통한 유럽의 지식인 이었다. 경영학자인 그는 스스로를 ‘사회생태학자’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으로 피터를 알게 된 것도 신입생 때였다.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보라색 하드커버의 ‘피터 드러커 자서전’이 그와 첫 맛남이었다. 글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피터 드러커의 인격적인 모습에 매료된 거 같다. 우리가 주로 ‘경영’ 하면 떠오르는 냉철하고, 세속적인 판단력보다, 그의 사고에는 인간을 중시하는 깊은 배려가 묻어 있다. 30p - 실존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인간의 실존은 비극과 절망 속에서의 실존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결국 자아의 부정에서만, 인간은 해탈을 통해서만, 그리고 무의 경지를 통해서만 유일한 대답을 찾은 동양의 현자들이 옳았다. 키르케고르보다 더 나아간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키르케고르는 다른 하나의 대답을 제시했다. 인간의 실존은 절망 속에서가 아닌 실존이, 그리고 비극 속에서가 아닌 실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존은 신앙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죄의 반대는 덕행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다. (중략) 인간의 실존은 신앙을 통해, 오직 신앙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통해서만 개인은 보편적인 실존이 되고, 고립된 실존이기를 중당하고, 의미 있는 절대적 실존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을 통해서만 진정한 윤리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신앙을 통해서만 사회 속의 실존도 또한 진정한 박애 속의 실존이 된다. 의견 : 일단 나는 이 구절을 인용해서 신앙이나 어떤 종교의 당위성을 설파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구절에 인용된 키르케고르의 관점을 통해 ‘실존’ 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요약하자면 실존은 극단적인 두 방향성, 삶과 죽음을 통해서도 관찰될 수 없고, 신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략의 부분에는 성경의 아브라함 얘기를 예로 든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제사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 복종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실존은 무엇인가? 희생을 드리려는 신실함인가? 아니면 살인의 의도인가? 아니, 처음부터 희생을 드리려는 마음은 없었고, 오직 하나님에게 자신의 복종심을 표시하려고 한 것이라면 얼마나 경멸스러운가. 그의 실존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로서 아브라함이 지녔던 의도를 우리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심지어 아들인 이삭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 의로움은 그의 실존이 된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실존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 누군가는 삶과 죽음에 제한된 존재가 아니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은 삶과 죽음을 통해서 가능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얘기를 우리 수업의 주제인 ‘과학’에 적용시켜 보자. 과학 이론은 어떻게 실존이 될 수 있는가? 뉴턴의 의도를 통해서인가? 아인슈타인의 의도를 통해서인가? 우리는 이들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억지로 끌어다가 붙이는 것처럼 보여서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한 번 해보도록 하자. 그러면 키르케고르의 말을 적용했을 때, 과학 이론의 실존 역시도 신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91p - Back to the BASIC 그렇다. 우리는 최신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본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도 전문 분야에서만 일하고 있고, 오늘날과 같은 정보 시대에 다른 사업 분야나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의견 : 기본의 중요성, 나는 대학교육이 이 기본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대학교육은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취약할 수 있음과 학생들이 얼마든지 전문가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p - 창틀을 넘어 바라볼 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예측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나는 예측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1929년에 배웠다. 내가 최초로 얻은 점잖은 직업은 한 주요 영자신문이었는데 1929년 10월 그 신문에 나는 뉴욕 증권거래소의 하락세는 오래갈 수 없다고 예측했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예측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나는 예측하는 대신에 그냥 창 밖을 내다보기만 한다. 의견 : ‘예측을 하지 않는다. 다만 창 밖을 바라볼 뿐이다.’ 이 명제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창틀’이다. 예측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어떤 정형화된 틀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미 형성된 어떤 틀을 이용해 바라본다는 것이 아닐까? 213p - 네트워크의 중요성 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지 거듭 연구해 왔다.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또 어떤 전문 분야에 근무했는가 하는 것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나이, 같은 전문분야, 그리고 동일한 배경을 가진 사람의 경우, 상황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알고 있고, 성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어디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상황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갖는 또 다른 차이는 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적이 없었다. 되풀이하거니와, 그것은 당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즉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사이의 균형문제이다. 그리고 자신을 조종하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진정 네트워크가 의미하는 바이다. 그것은 인기를 얻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도구로써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 의견 : 모형을 하나 만들어보자. A대학과 B대학, 두 대학만이 존재하고 있다. 두 대학은 동일한 역사를 가지고, 매년 마다 동일한 능력을 가진, 동일한 수의 졸업생들을 배출해왔다. 그런데 이상변수가 한 번 발생하게 된다. A대학교의 졸업생 중 특출난 인재 하나가 생긴 것이다. 이 인재는 자기만 잘 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동문들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 확장됐고, 사회에는 A대학교의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더니 A대학교는 명문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패러다임은 결코 쉽게 깨져지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B대학교에서도 더 뛰어난 인재들이 나왔음에도 이들은 개별적으로 A대학교가 형성한 네트워크와 경쟁하려고 하거나 다른 동기들이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에만 의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남들과 다른 스펙을 쌓기 위해 불철주야 책만 붙잡고 있는가? 그동안 소홀했던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잠시 전화를 붙들고 연락해보자. 그들은 당신이 필요할 것이다.
236p - 지식사회의 생산도구 점점 더 지식사회의 진정한 투자는 기계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근로자의 지식 속에 들어있다. 지식이 없이는, 기계가 아무리 진보되고 또 정교하다 해도, 기계는 생산성을 올릴 수 없다. (중략) 경영의 진수는 기술이나 일하는 절차 그 자체가 아니다. 경영의 진수는 지식으로 하여금 생산성을 올리게 하는 것이다. 경영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적 기능이다. 그리고 실무 차원에서 경영은 진정 인문 예술이다. 의견 : 괜히 경영학의 아버지가 아니다. 진정한 투자는 기계나 도구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부터가 당시의 굉장한 혁신이다. 때문에 ‘경영은 진정 인문예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학을 사회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떠올랐다. 279p - 그들은 대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울 수 있는 점은 관료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면역력이 크고 또 끈질긴 것이라는 사실이다. 관료의 면역력과 지구력이 높은 것은 그들이 그 정도로 강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체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선진국에는 주도적 집단이 있고, 또 그들은 주도적 집단으로서 보편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나라들에는 대체 세력이 없다. 역사를 연구해보면 주도적 집단이 대체 세력을 갖지 않는 전통을 가진 국가들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관료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일본이나 세계의 이익이 된다고 너무 확신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관료가 그 권력적 지위를 잃게 된다면, 그것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견 :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그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되자 않았던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지식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한 번 고착화된 패러다임은 쉽게 대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시장이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뿐만 아니라 정보자체도 넘쳐나기 때문에 과학이론이든, 유행에서든, 소비상품에서든 서로 대체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순식간에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한 종교 내에서도 수많은 분파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갈수록 더 할 것 같다. 284p - 탈규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만약 탈규제를 한다 해도 지나치게 좋아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을 이해하려면, 일본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경제적인 측면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류이다. 일본사람들은 사회 문제부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사회가 너무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탈규제는 경제적 효과는 있지만 사회적 위험이 따른다. (중략)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자 한다. 미국에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제반 가정들은 어쩌면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관료주의와 리더십 그룹은 별개의 것이고 예외라고 가정한다. 아니다. 관료주의와 리더십 그룹이 동일하다는 것은 모든 선진국에서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그 탈규제는 일본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재무적 차원에서 탈규제는 옳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옳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빠른 속도의 탈규제는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초래할 것이다. 의견 : 규제와 탈규제, 이 둘은 번갈아 우위를 점하면서 아직까지도 대립하고 있는 개념들이다. 피터가 이 강의를 하던 당시 미국은 탈규제의 목소리가 높았던 때였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일본에게도 강요하였다. 그러나 일본에게 탈규제는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의 일본의 관료주의는 확실히 비효율적이었지만, 사회적 방향성을 생각할 때는 필요한 것이었다. 즉, 규제와 탈규제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서도 공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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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피터드러커의 책은‘경제인의 종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 시기에 전체주의가 등장한 사회적 현상이나 배경을 어찌나 정확히 파악했는지 70년 전에 씌여진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작은 문구 하나도 고칠 게 없을 정도이다. 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씌여졌음에도 파시즘과 나치즘을 정확히 해석하고 있었다.‘경제인의 종말’의 내용은 이후 피터드러커의 40여권의 저서에서 검증되고 확인되면서 그의 통찰이 시대를 앞서 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번 책 ‘피터드러커 강의’는 그가 평생 했던 강의 중에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33개의 강의를 모아 놓은 책이다. 그나마 내가 조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1940년대 강의는 두 개 뿐이었다. 대신 최근 1980년대부터 2000년대 강의가 다수 있었다. 시대별로 강의가 구별 되어 있어서 그의 강의를 읽는 동안 시대의 흐름 또한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경영에 있어서 피터드러커를 빼놓을 수 없게 되기까지 그가 분석했던 것은 단순한 현상의 분석이 아니었다. 그의 강의에는 항상 통찰(洞察)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떨어져 있는 개개의 현상들을 꼬챙이로 꿰듯 하나의 이론으로 모아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피터드러커의 강의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하나만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문에서 릭 와츠만이 밝혔듯이 그는 원가회계를 언급하다가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다시 방향을 바꾸어 고등교육이나 의료 제도의 역사에서 교훈을 따왔다고 한다. 각자 별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하나의 큰 꼬챙이에 엮는 일은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수많은 경영학자들 사이에도 유독 그를 정상에 서게 한 것이다. 그는 단순한 경영 논리도 사회나 종교, 문학, 예술 등을 빼놓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 엊그제 아이패드 발표회에서 스티브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It'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is not enough. It's tech married with the liberal arts and the humanities. Apple의 DNA는 단순한 기술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양·인문학과의 결합입니다. 나는 잡스의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물론 그의 말이 단순히 회사의 이미지 제고나 판매전략 수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어느 CEO가 우리는 인문학을 다룹니다 라고 말하겠는가. 잡스나 드러커는 공통적으로 한 가지 분야, 즉 기술과 경영이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는 그 고유의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단순히 기술 개발과 우수한 지도자의 냉철한 경영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기업들에게 이 둘은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목적만을 보고 직진으로 달려가는 기업이 최고가 아니며, 결국 그들은 도태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여느 인문서보다 더 읽기 어렵다. 나는 몇 번씩이고 같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음에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넘겨버린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자세히 적지 않은 이유는 아니다. 나는 책 속의 나무 하나하나의 아름다움보다는 숲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자가 피터드러커의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들은 개개로 아름답고 빛나지만 그 가치는 모여 있을 때 진정으로 찬란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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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에 선배가 결혼을 한다. 선배와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을 때, '피터 드러커 탄생 100년 기념 컨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받아 온 가방에 컨퍼런스 로고가 인쇄돼 있어, 선배는 피터 드러커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했다. 그는 취업 준비를 하며, 경영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었기 때문에다. 공학도에게도 잘 알려진 피터드러커는 공대 출신 CEO에게도 많이 읽히는 위대한 경영학자이다. 나도 그의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경영학이 전공이 아닌 탓에 상식 선으로 넘어갔다. 도서 < 피터 드러커 강의 >(랜덤하우스, 2011)를 통해 연도별로 정리된 그의 강의 모음을 읽게 되었는데, 조금 더 높아진 수준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러나 역시 실사례를 통한 그의 설명에서 통찰력을 보았으며, 위대한 경영자로 추대되는 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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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잡지 대담으로 Book Review를 대신하고자함
■ 인터넷의 진정한 영향에 대해 질문)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질문) 그렇다면 인터넷이 미친 영향 중 특히 주목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 신경제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 그래서 수익성이 있을까요? ■ 컴퓨터의 한계에 대해 질문) 하지만 컴퓨터 산업은 사업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커 보입니다만 ■ 경영 컨설팅·대공황·연방준비제도에 대해 질문) 그러한 실무경험의 결여로 인해 경영학이 어떠한 손실을 입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 선생님께서는 요지프 슘페터와 존 메이나드 케인즈로부터도 배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질문) 그렇다면 사람들이 조직이나 전체경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 이 예화를 통해 선생님이 주려는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질문) 오늘날 연방준비제도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 선생님께서 존경하는 경영학자가 있습니까? 질문)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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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위대한 분을 알게된지 솔직히 얼마되지 않았다. 신랑이랑 티비 강연을 보다가 강연자가 계속 피터 드러커를 언급하길래 누굴까? 했었는데 신랑이 피터 드러커를 아냐고 물었을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한번 검색해본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정말 위대하다고 밖에는 어떤말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피터 드러커 강의를 만나볼수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쁘다. 1부 첫번째 1. 인간의 실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렇게 무거운(?) 느낌의 책은 정말 오랜만인것같다. 나의 경제관념을 경영관념을 조금이나마 발전시킬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펼쳤는데 솔직히 조금 어려운 부분이 많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피터 드러커가 말하고 싶은 부분들은 어느정도 느껴지고 알수있었던 시간이였던것같다.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경제 현상을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한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사상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을 이 책을 통해서 들어볼수있어서 나의 생각의 깊이가 조금은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너를 생각하는 수준에서 우리를 생각해볼수 있는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정말 존경스럽고 덕분에 나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는 소망을 품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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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2006년 96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타계할 때까지 숱한 강연을 했다. 이 책에는 대학생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강의한 서른 세개의 강의 원고가 담겨있다. ‘기업의 개념’(1946), ‘경영의 실제’(1954)부터 ‘21세기 지식경영’(1999)까지 지금까지 피터 드러커가 저술한 39권의 서적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터 드러커 관련 저서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책을 통 털어서 이 책이 가진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의 관심 분야를 어떤 식으로 확대해 나갔는지 또 60년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은 드러커의 학문적 성과가 어디에서부터 연유했는지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정리했기 때문에 긴세월에 걸찬 강의 내용을 통해 드러커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터 드러커의 생애를 살펴보면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해 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거쳐 3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과 공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1933년 그가 청년일때 나치 독일을 싫어해 런던으로 가서 국제 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후 1937년 미국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저술활동에 들어가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간했다. 또한 그는 GM이라는 대기업에서 직접 경영을 배웠다. 초기 드러커의 경영사상을 잘 나타내는 저술인 <기업의 개념 Concept of the corporation>은 GM의 경영자들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드러커는 항상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 동부 뉴잉글랜드에서 교편을 잡고 대학강단에서 가르치기도 하면서, IBM, 록펠러, 시어스(Sears), 로빅 등 미국 굴지의 대기업들의 컨설턴트로써 미국 비즈니스의 허와 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첫번째 강의인 ‘인간의 실존은 어떻게 가능한가?’(1943)를 읽어보면 경영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이나 철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경영학이라는 학문적 뿌리가 정립되기 이전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것 같다.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치가 전 유럽을 휩쓸면서 드러커의 초기 저서와 논문의 일부를 소각시키고 금서로 분류했던 시대였으며 1940년대 당시의 시대적 조류였던 실존주의의 영향이 그의 학문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현대적 경영관리 사상은 1954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즉,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그 해 펴낸 역저「현대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경영자들이 산업사회의 두드러진 주도 그룹으로 등장했다고 자신있게 단언한 것이다. 즉, 대부분의 다른 학문분야와 비교해 볼 때 경영학은 이제야 하나의 학문분야로서 유년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매니지먼트, 즉 경영관리 행위가 인류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기본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를 하나의 학문분야와 업종으로 인정하고 연구한 것은 최근에서야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경영관리는 신뢰와 인정의 대상으로서 대접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즈니스 스쿨들이 오랜 경륜과 축적된 지혜를 지니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연륜은 비교적 일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피터 드러크의 1950년대 이후의 강의부터가 본격적인 경영학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지속적이면서 완전한 고용을 유지하는데 따르는 문제들(1957)'에 대해서 1960년대에는 '거대조직의 경영(1967)'미국 기업에 영향을 끼칠 세계경제와 사회 구조의 변화(1977) ,정보에 기초한 조직(1994) ,지식근로자와 지식 사회(1994) ,세계화에 대해(2001) 이다. 드러커는 20세기의 중심 사건으로 “대규모 조직의 등장”을 꼽았고, 71년에 “환경과 일자리가 서로 충돌 코스를 달리는 것”을 내다봤다. 때로는 놀랄 만큼 신랄하다. “1950년 이후 정부의 프로그램들 중에 효과를 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언급이 대표적이다.
“드러커 교수님의 경영 이론을 요약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겠습니다만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40여 년간 경영에 대해 연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고바야시 가오루 교수가 피터 드러커를 인터뷰하면서 마지막에 질문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드러커는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조직이 명령과 통제 중심에서 책임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후기 피터 드러커교수는 트렌드에 대한 예측과 대비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곳곳에 도사린 위험과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였으며 경영 연구를 그 자체로서 하나의 학문, 즉 경영학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영학을 사람과 권력, 가치와 구조의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달리 말해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진정한 인문 예술로서의 경영’이 되도록 만들었다.” 는 것이다. 만년에 드러커는 자신이 가장 의미있게 공헌한 바가 무엇인지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60년전 나는 경영이 조직사회의 구조를 형성하는 기관이자 기능이 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경영이란 ‘기업경영’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조직들의 통치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회고한다.
전설적인 GE의 전 회장 잭 웰치도 “스승”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드러커의 탁월성의 근원을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를 연결시키는 씨너지 감각과 끝없는 자기 변화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드러커를 만든 요소는 딱 하나로 짚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인생 경험과 지식들이 어우려진 사람이다. 청년 시절부터 드러커는 3년 또는 4년마다 새로운 주제를 선택해 공부한다. 그 주제는 통계학, 중세역사, 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하다. 3년 정도 집중해서 파면 터득은 못해도,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 습관을 60여년 이상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인생역정들이 강의와 저서에 담겨있는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드러커는 경영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그의 대표적인 지식경영 이론은 특히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러커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오히려 더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가 남기고 간 메시지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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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한 권 읽고 싶었다. 아니 가지고 싶었다고 해야 좀 더 솔직한 이야기 일 것 이다. '경영학의 아버지' 혹은 '경영을 발명한 사람' 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사람 '피터 드러커'의 강의를 모아 놓은 책 <피터 드러커의 강의>를 만나보았다. 처음 내 손안에 이 책이 들렸을 때 너무나 기쁜 마음에 다른 생각없이 바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진도가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주말 시간을 보내고 가벼운 책을 나눠서 읽고 그러다 보니 오늘에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논문 형태의 글이 아닌 대학생과 전문가를 위한 강의 원고들을 모은 모음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43년 베닝턴 대학교의 교수 시절 강의 한 <인간의 실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부터 시작하여 2003년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에서 강의 한 <기업의 미래 4 - 지식 생산성이 유일한 경쟁력이다>까지 1940년대부터 10년단위로 2000년대까지 총 33편의 강의록을 엮어 놓은 책이다.
책을 읽어가며 시대를 떠나 공통적으로 느낀 점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끝없이 움직여야 한다' 혹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논문이 아닌 강의록 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시대가 넘어가고 다른 시대에 강의를 한 내용도 그 내용이 연계가 되는 것을 느낀다. '생산성'에 대한 강의에 대한 것은 실물에 대한 부분(1957)에서 지식에 대한(2003) 생산성으로의 진화 혹은 전환이 예언은 아닐지라도 경제 혹은 경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아닌 누구나 쉽게 읽고 들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의라서 더욱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터 드러커'는 총 39권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그중 3분의 2가 65세를 넘긴 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음악가 베르디가 말한 문장과 삶에 영향을 받았을까? 베르디의 맹세 "나느 완벽을 추구했다.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 도망갔다. 분명히 말해 나는 한 번 더 시도해 볼 의무가 있었다."가 '길잡이'가 되어 글을 쓰고 또 썼다고 하니 그의 삶은 열정으로 가득찬 것이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1971년 클레어몬트 대학교 연례 강좌 시리즈의 일환으로 <환경의 정치학과 경제학>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세상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로 강의를 마쳤다. 결론으로 접어드는 그의 문장 하나 하나가 그의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잘못을 들춰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잘못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는 것은 경제학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것 같다.
'피터 드러커'의 강의 중에서 중반부 이후에 나오는 자원봉사 혹은 비영리 단체의 강의들은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내용이기도 하며 나 스스로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의에서 자신의 딸의 이야기 처럼 내가 하는 일이 결과와 동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공헌'에 대한 보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책임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 책 <피터 드러커의 강의>가 꼭 경제/경영 책이라고만 하고싶지 않다. 물론 비중이 크기 때문에 분류를 하자면 경제/경영이 되겠지만 나 개인의 멘토가 될 수도 있고 때때로 수없이 쏟아지는 자기 개발서 보다 더 가까이에 두고 찾아볼 '지혜의 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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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60여 년에 걸쳐 경영, 경제, 사회에 대한 강의 내용을 담은 이 책 <피터 드러커 강의>는 1940년 버몬트주 베닝턴대학교에서 처음으로 한 철학 강의를 시작으로 2003년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95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강의한 강의 원고를 엮고 있다. 대학생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한 강의 원고들을 모은 것으로 피터 드러커의 알찬 강의를 직접 듣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강의 내용도 60분에서 90분을 기준으로 하고있어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중 하나다.
이미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의 강의 내용들은 지금도 아니 이후로도 계속 충분히 살아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강의 내용은 신앙, 개인의 중요성, 글로벌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드러커에게서 본 받아야 할 건 무수히 많이 있지만 60세를 넘은 나이에도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꼭 본 받아야 할 정신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지쳐도 금방 포기하고 마는 나와 비교하면 역시 대가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어 크게 반성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대별로 나열되어 있는 강의내용을 따라가다보면 드러커가 어떤 분야로 관심을 넓혀 갔는지를 발견 할 수 있다.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주요 사건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인해 미래를 파악하는 것은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는 얼마전 읽은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미래를 파악하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경영은 철학부터 사회학, 인문학, 예술 분야 등 어느 한 부분도 놓쳐서는 성공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드러커에게서 그 의 생각을 느낄 수 있다. 그 또한 철학 교수, 경영 학자, 경영 컨설턴트, 저술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그는 각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사회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닌가 싶다. 현장을 중심으로 기본에 충실하는 모습들이 이런 사회 전반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시대를 앞서 간 경영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에게서 귀한 강의를 들었다. 드러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증을 통해 살아 남은 것이므로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각들이 사상들이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본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드러커 전 생애에 걸친 최고의 강의들을 집대성한 전무후무한 책' 이라는 띠지의 문구가 허언이 아님을 실감한다. 경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지식은 개선되어야 하며 도전 받아야 하고 끊임없이 증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은 소멸한다. - 피터 드러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