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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그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널 만나기 전까지 나도 독수리 같은 남자였어. 널 만나기 전까진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길 위를 날아다녔어. 널 만나기 전까지 나도 강한 남자였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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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가 너무 크다. 출근 카드, 식당 카드, 보험 카드, 지하철 카드를 가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평범한 삶의 흐름에 합류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60-61)
남
인생에서 발을 헛디딜 수 있다는 걸 일찍 알아버린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어떤 사람이 될까? 무엇을 무기로 살으며, 얼마나 무방비 상태가 될까?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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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에겐 윤리란 게 있다. 이웃을 짓밟지 않는다. 나쁜 놈들은 회사라는 늪에 인생을 건다. 놈들은 월급 명세서에 적힌 이름과 정체가 다르다. 한 등급, 한 지수 올리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 놈들이 원칙이라는 걸 저버린 지 오래다. 원칙이라는 게 있기라도 했다면.
여
서른 살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극복했다.
남
티보는 혼자 살고 싶었다. 덥고 동시에 추웠다. 편두통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몸이 이상했다. 그의 몸은 공터였다. 버려졌지만 주위의 무질서와 연결된 땅. 그는 몸에 전류가 흘러 안으로 폭박할 것만 같았다. 도시가 그를 숨 막히게 한다. 그를 억누른다. 그는 도시의 우연이, 도시의 파렴치함이, 도시의 거짓 친밀함이 진절머리 났다. 도시의 위선적인 쾌활함이, 도시의 부질없는 다양성이 피곤했다. 도시는 성가신 거짓말이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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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틸드는 파트리시아 르튀가 말하는 약자에 속했다. 보이지 않는 자, 쭈그러진 자, 침묵하는 자.이제 마틸드는 화장실 옆 사무실에서 시들어간다.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이 상황이 멈출 이유는 없었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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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틸드에게 회사는 그녀를 으깨는 곳처럼 보인다.
남
사랑은 하기도 전에 퇴색했다. 헛발질만 하다가 지쳤다. (187)
도시에 살기 전까지는 도시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그토록 노쇠할 줄은. 도시의 초췌한 얼굴, 노화된 면모, 완벽한 고독감의 체취를 알지 못했다. 도시가 그런 악취를 풍길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히고 있다는 걸 몰랐다. (188)
드라스만 부인 같은 노인을 티보는 수백 명도 넘게 만났다. 도시가 의식도 못한 채 품고 있는 사람들. 혼자 죽어 몇 주 뒤, 썩는 냄새가 진동할 때, 천장으로 기어 올라간 구더기가 보일 때에야 발견되는 사람들. (190)
남
티보는 1분이 아까울 정도로 바빠서 파리응급의료그룹 의사들을 회사로 부르는 간부들을 매주 만난다. 그의 직업이 맞은 변화 가운데 하나다. 요통, 경부통, 위장 장애, 근골격 장애 등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에 날로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티보는 이제 척 보면 안다. 일에 중독된 사람, 일을 잘 하는 사람,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사람. 모두 멈추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다. 티보는 다른 측면, 동정의 뒷면도 알고 있다. 모든 게 푹 퍼지는 순간,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는 순간, 그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끼어드는 순간, 그들이 제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날뛰는 순간, 그들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알고 있다. 티보가 매주 보는 건 또 있다. 피곤에 지친 사람들, 수면제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 과열된 전구처럼 나가떨어진 사람들, 배터리처럼 방전된 사람들. 월요일 오전부터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더 이상은 못 버텨서.
여
마틸드는 그녀가 느리게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10센티미터 힐을 신고도 역까지 뛰어갔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서둘러 뛰면서 여섯시 사십분에 떠나는 VOVA를 탈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242)
방금 사직서를 냈다. 후회도, 안심도 되지 않았다. 허무하다고나 할까. (245)
남
그는 1년에 환자 3,000명을 본다. 그는 그들의 염증과 가래 기침, 마른기침, 중독, 편두통, 불면증을 안다. 그는 그들의 고독을 안다.
남
빽빽하고 무질서한 인파에 밀려 도시는 언제나 자신의 리듬, 자신의 분주함, 자신의 통행 시간을 강요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시는 외로운 길을 가는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공간이나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 외에는. (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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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주관적 서평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중 한명의 책이다. 2011년 우리나라에 발생되었고 10년의 세월이 지난 책이다.델핀 드 비강은 이 책을 집필 할 당시 리서치 기관의 간부로 일을 하며 지친 일의 끝나는 시간부터 어렵게 집필 해 온 글이다. 델핀 드 비강과 아니 에르노는 조금 닮아 있다. 두 명의 작가는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델핀 드 비강은 불꽃으로 따지면 파랑색 불꽃이며, 온도는 더 높다고 보는 이유는 사회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그의 책의 내용들 때문이다. 반면 비강이 존경하고 책을 참조한다는 아니 에르노의 책은 붉은 색의 불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개인의 욕망,본능에 기반한 책의 소재와 문체가 그런 느낌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두 명의 성인 직장인이 도시라는 곳에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비강의 글의 특징인 저자의 개입없이 담담함으로 쓰여진 책이다. 우리에게 도시는 낮과 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화려함과 쾌락을 주는 동시에 도시의 위선적인 쾌활함,거짓 친밀함을 가진 양면성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을 뱉어낸다. 회사에서 존재감을 잃은 사람이나 사랑에 목말라 있으나 찾지 못하는 인간들을 도시는 친절하게 보듬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두명의 두 주인공이 운명처럼 만나 영혼의 안식처가 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그리고 도처에 그런 순간들을 장치해 둔다... 하지만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그리고 이 책 또한 작가의 실화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런 로멘스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난 비강이 분명하게 아니 에르노의 뒤를 잇는 계보의 작가라고 본다. 비강은 실화를 비탕으로,충실한 마음,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 에르노의 문체들이 숨어 있슴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예전에 아니 에르노는 잘 노는 모범생으로 표현했고,델핀 드 비강은 잘 노는 모범생을 필터로 한번 걸러서 나온 모범생이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렇게 좋은 작가들은 커가는 신인 작가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는 프랑스 문학을 난 좋아한다. 그들만의 독특한 문체와 난해한 문장들도 있지만 또한 깊이와 인간의 본연을 흔드는 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의 시간은 두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도시라는 지하 세계로 출근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두 주인공이 빠지는 지하라는 마음의 공간의 허무함이라고 느끼며 책을 마무리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만나는 시간은 나에게는 오롯한 명상의 시간 같은 즐거운이 있다. 인친님들의 명상과 같은 책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에는 작가 두분의 삶도 궁금하다....묻지는 말기를.. 두분은 알지도 모른다...한분은 글을 아끼는 분이고,한 분은 아픔을 지키는 분이다...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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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루 델빅이라는 필명으로 '배고픔 없는 나날들'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거식증으로 고통받던 경험을 살린 자전적 소설로서, 실제로 작가 자신의 몸무게가 35킬로그램까지 내려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첫 소설에 대한 호평에 힘입은 그녀는 낮에는 사회연구소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들었다. 아무래도 표지가.. 너무 '프랑스 작품' 다웠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작품은 '예술성'에 치중했을거라는 인식이 강한게 사실이다. 그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내 손을 잡아요 라는 짤막한 문구 하나를 믿고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숨죽인 채 도시의 고독을 건너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독백이 이루는 대화, 델핀 드 비강의 장편소설 '지하의 시간들'은 일상의 무자비한 폭력, 더 나아갈 곳 없는 고독, 사랑의 아픔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 감정의 깊이를 한층 더 정교하게 세공해낸 작품이다.
마틸드는 매일 지하철 9호선에서 1호선, 그리고 다시 RER D선으로 갈아탄 다음 베르 드 메종까지 출근한다. 매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똑같은 지하철 복도를 지나 똑같은 열차로 갈아탄다. 매일 같은 시각,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회사에 나타난다. 아무런 객관적인 이유도 없지만 벌써 몇 달 전부터 직속상사 자크에 의해 따돌림을 당해온 마틸드는 회사에서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마틸드는 묵묵히 시간을 견딘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친구들, 가족에게까지도 숨길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한다. 5월 20일, 자신을 구해줄 남자가 나타날 거라는 점쟁이의 예언도 거짓말 같기만 하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 날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녀의 지친 삶을 모두 뒤로하고. 그녀의 힘과 약점을 뒤로하고. 현기증, 두려움, 기쁨을 아는 남자. 그녀의 웃음 뒤에 보이는 눈물과 눈물 뒤에 나오는 웃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남자. 이해할 남자. 하지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는 법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할까. 현실에서는 스쳐 지나가거나 충돌할 뿐이다. 그들은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가끔 여자에게 질문하는 상상을 한다. 날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의 지친 삶을 모두 뒤로하고. 현기증, 두려움, 기쁨을 아는 여자.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당장. 다른 여자를 원할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를, 살갗을, 체취를?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또다시? 그럴 힘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그에게서 무언가가 잘려나간 걸까? 이제 그에게 무언가가 모자란 걸까? 결핍된 걸까? 다시 시작하기. 또다시. 그게 가능할까? 그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다른 때였다면 끝까지 싸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그 대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순간이 온다. 갖고 있는 재산보다 더 많아지는 순간. 그때는 게임에서 손을 떼야 한다. 졌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더 추락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때 뭔가가 부딪혔다. 핸드백이나 가방일 것이다. 그는 몸을 숙여 왕진 가방 같이 생긴 걸 주웠다. 마틸드는 그의 앞을 지나쳤다. 남자의 눈길이 그녀의 몸짓을 쫓다가 등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그 눈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 그 무엇도 마주할 수 없었다. 몸 전체가 서 있는 데에만 집중했다. 왕진 가방을 든 남자는 지금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선로에 너무 가까이, 불안정하게 서 있었다. 빽빽하고 무질서한 인파에 밀려 도시는 언제나 자신의 리듬, 자신의 분주함, 자신의 통행 시간을 강요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시는 외로운 길을 가는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공간이나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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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전해졌던 '프랑스 작품'다운 느낌.. 그랬다. 델핀 드 비강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지하의 시간들'은 그런 느낌이 강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 없이 무채색의 건조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이 작품의 배경, 도시는 그런 느낌을 전해줬다. 달라지는 것 없는 지루한 일상, 애써 달라지려고 한발짝 내딛었지만 더 끔찍한 일상이 돌아오기만 할 뿐인 음울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 이 소설의 배경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 불리며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의 도시'라 부르는 파리다. 그런 파리를 작가는 줄곧 우중충하고 암울하기만한 회색 빛의 삭막하고 끔찍한 곳으로 묘사한다.
조금 들여다보면 그 실상은 충분히 이해된다. 프랑스 전체의 0.25%에 이르는 면적에 전인구의 약 6분의 1이 집중해 있는 파리는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수도에의 집중현상이 심한 프랑스 파리는 세계 제4위의 인구밀집 지역이다. 더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행지로서의 파리가 아닌 그곳에서 살아가는(이 작품에서는 살아가는 보다 살아내는..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에서의 파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살아내는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도시일 뿐이다.
"날 사랑할 수 있겠어요? 지친 삶을 모두 뒤로하고." -마틸드 아주 작은 바람, 아주 작은 눈부심만으로도 넘어질 것만 같다. 그녀는 그렇게 약해진 지점에, 균형을 잃은 지점에 와 있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조화를 잃은 그곳에.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그녀를 기쁨으로 충만케 하거나 절망시킬 수 있는 투과 지점에.
"널 만나기 전까지 나도 강한 남자였어." -티보 그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잊고 있었다. 그런 걸까? 사랑이라는 거. 나약해진 마음? 매 순간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의 서툰 대답, 단 한 번의 잘못된 단어 선택 때문에 모든 걸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한 자아?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 비참하고 더 허망한 것이 있을까?
이 안에서 델핀 드 비강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하루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며 그들의 음울한 감정을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자신의 손을 잡아줄, 끔찍한 일상으로부터 구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마틸드와 티보.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수백 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을 뿐 그들의 공통점은 없다. 하지만 서로 닿지 않는 곳에서 읊조리는 두 사람의 독백은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 닮은꼴이다.
위에 담아둔 둘의 대사는 독백이다. 하지만 실상은 같다. 일상의 무자비한 폭력, 더 나아갈 수 없는 고독, 사랑의 아픔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라고 소개되는 이 작품에서 '담담함'의 완성을 이루는건 그들이 '서로를 모르는 두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도시는 티보의 독백에서 표현된 것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교차로들이 끝없이 펼쳐진 땅일 뿐이다. 그래서 질식할 것만 같은 우중충한 도시.. 를 묘사하는 작가의 문체는 지독하게도 고독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내는 공간에 대해, 그리고 살아가는 스스로에 대해 같은 생각을 떠올리는 마틸드와 티보는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작품 안에서 강조되는 5월 20일이라는 날짜는 서로 닮아있는 두 사람이 같은 장소,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이게 되는 하루다. 뭔가 특별한 일,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날. 뭔가 심각한 일, 돌이킬 수 없는 일. 독자는 이 하룻동안 함께한 독백들 안에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너무 음울하기만 해서 놓칠 것만 같은 도시의 서글픈 느낌은 두 사람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때까지의 담담한 긴장감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의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
무채색의 작품. 그림자의 작가라는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기억에 담아둘 작가가 한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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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드의 감정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스쳐지나가고 또 다시 찾아오는, 별 다르지 않은 일상이 숨막히게 느껴지는 어느날의 감정이다. 불현듯 구원을, 누군가를, 사람을, 사랑을, 꿈꾸고 싶을 때, 그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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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다음 역을 향해 달리는 동안 마틸드는 몸을 안쪽으로 더 밀어 넣었다. 몇 센티미터를 더 확보하고, 내렸다 타지 않으려고 꿋꿋이 버텼다. 절대 놓아선 안 된다. 공기는 포화 상태다. 사람들의 몸은 조밀한 하나의 지친 덩어리로 융합되었다. 웅성거림은 침묵에 자리를 내주었고 사람들은 다들 힘든 걸 꾹 참는다. 턱은 열린 창문을 향해 올라가고 손은 버팀목을 찾는다. -66쪽 빽빽하고 무질서한 인파에 밀려 도시는 언제나 자신의 리듬, 자신의 분주함, 자신의 통행 시간을 강요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시는 외로운 길을 가는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공간이나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 외에는. -268쪽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도시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교차로들이 끝없이 펼쳐진 땅”은 사랑과 인연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지하철에서, 자동차 안에서 ‘지하의 시간’,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두 주인공을 도시는 포로로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275쪽,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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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시간들
이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내 손을 잡아요, 내 팔을 잡아요, ... 우리 같이 싸워요.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 .....모든 걸 막아줄 사람, 그만이라고 소리쳐줄 사람, 책임져줄 사람...정오가 되면,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웃으며 말하겠지. 보세요. 이제 끝났어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다. 굉장히 감정이 없는 듯한 문체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인간을 그린다. 인간적인 모습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게,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델핀 드 비강 작가를 사람들은 그림자의 작가라고 한다. 이 소설을 짧게 말하자면 인간의 고독에 관한 소설이다. 우울하기도, 감성적이기도,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과한 감정을 만들지는 않는 듯 해서 더 여운이 남고 무언가 마음 속에 내려앉는 느낌이다. 이 소설은 두 사람,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독백이 대화를 이룬다. 사람은 아픔을 겪는다, 사랑을 하면서, 이별을 하면서, 자신이 나약하게 느껴지면서,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불안감에서... 지금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세상일까, 단 것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받을 때, 우리는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라고 느끼면서 산다. 산에 조용히 살살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이 소설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산들산들하지만 길게, 강한 남자였지만, 마냥 약한 사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많이 보게 되었다. 거울을 보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았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겉으로는 강해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다. 여린 자신의 내면을,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그 내면을 강하게 다그친다. 강해져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원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솔직히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외로움에 조금은 정직해졌다고 생각한다. 외로워하기 싫고, 고독한 자신이 싫었지만, 왠지 고독과 슬픔에 조금은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두 남녀는 어떤 미래를 낳을지, 저자는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글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와닿으면서, 내 안에 녹아드는 느낌이 너무 좋았던 소설이었다.
마치 커피 한 잔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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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도시 속에서의 여인와 남자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는 닮아있으면서도 맞닿아 있지 않다. 그둘이 닿을락 말락 하면서 다시 인연은 넘어가고 마지막에서야 그 둘은 또 다른 우연으로 인연이 되고자 하지만 그저 스쳐지나감으로써 끝맺는다. 그래서 허탈감도 들었다. 솔직히 도시 속에서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하는 주인공 남녀가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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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 듯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 가는 듯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시간은 찾아 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개인적이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혼자 감내 하는새, 그 고통은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잠식해 점점 삶의 의욕을 잃게 되죠. 하루하루가 점점 깊은 진창으로 걸어들어 가는 느낌이고. 주위와의 감각은 멀어져 정신은 한없이 어두운 공간에 떠돌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이 상황이 깨어졌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숨쉬는 것만으로도 벅차 오도가도 못하는 현 상황을 타개할 기운의 한줌도 남아있지 않은...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다가도 그때까지 못견딜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초조하게 다가오죠. <지하의 시간들>은 대도시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두 남녀의 이야기 입니다. 자신만만하고 야심있던 세아이의 엄마였던 마틸드는 어이없는 일을 계기로 직장상사의 계략에 빠져 갈데없이 망가져가고, 의사인 자크는 사랑없는 여자를 사랑한 죄로 혼자만의 세계에 몸부림 칩니다. 작가는 두사람이 소울 메이트인 듯 이야기 전개를 풀어 가지만우연히 만난 두사람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더구나 자크는 마틸드의 수호 부적마져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죠. 이 처럼 작가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누구나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회사 직원들도 어긋난다 싶으면 간단히 동료를 내버리고, 사랑하던 사람도 아니다 싶으면 물건 버리듯 버리고 가버리는 삭막한 요즘 도시의 사람들 말입니다. 사람은 의외로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사람을 보며 힘을 얻기도 하죠. 이런 사람도 있는데...하며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누군가 힘을 얻었으면 한게 아닐까요? 깊은 슬픔의 수렁에서 헤어나오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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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61페이지, 22줄, 22자.
두 사람(마틸드 드보르와 티보)의 시점에서 글이 병행 처리됩니다. 앞부분에 마틸드가 점을 치러 가서 5월 20일에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읽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의 대부분은 그 5월 20일의 하루에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일상생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가면 둘이 한 공간에서 만나지요. 기대가 잔뜩 부풀어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마틸드는 상사 자크에게 내몰리는 신세입니다. 따돌림을 당해서 업무에서도 조직 내에서도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점을 변환시켜서 읽어보았습니다. 마틸드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시점. 공교롭게도 모든 내용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갑니다. 즉 글은 마틸드가 억울한 피해자여도 맞고, 무능력자여도 맞습니다.
티보의 경우엔 학교에서 사고로 손가락을 잃는 바람에 외과계열로 진출하지 못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주치의로 지내다가 파리로 와서 뜨네기처럼 호출을 받아 (실제로는 중개소에서 지명해 주는 장소로) 현장의 환자를 만나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일부러 안정된 환경을 벗어난 인간이지요. 그러므로 글 중에서 마틸드에게 안정을 찾아주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하는 게 정상입니다.
감상이라는 건 감정이여서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제 밤에 읽은 다음에 느꼈던 것을 쓸까 하다가 자제하고 아침에 일어나 작성했더니 그것들이 확 빠져나가 버렸네요. 남은 건 위의 부스러기들뿐. 일전에 읽은 [길 위의 소녀]랑 분위기가 비슷하네요. 역시 같은 작가라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겠죠?
130415-130415/13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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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야하지 않을까? 오늘 쯤은 마틸드와 티보가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5월 20일, 오늘은 마틸드의 힘겨운 싸움이 결판날 것이라고 나 또한 기대했다.
마틸드의 시계는 느리게 흘러간다. 남편과의 사별 후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충실한 생활을 하던 마틸드의 평온한 삶에 균열이 온 것은 아주 작은 계기였다. 처음에 마틸드는 균열의 발생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은 균열은 서서히 마틸드의 생활을 잠식했고, 결국 마틸드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회사에서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진다. 자크를 위시한 그들은 마틸드의 존재를 부정하고, 괴롭힌다. 다 큰 어른임에도, 남편의 죽음이라는 큰 경험을 했음에도 마틸드는 그 상황을 견디는데 목숨을 걸다시피한다. 엄마의 낌새를 감지한 아이들의 썰렁한 유머와 사랑의 표현이 마틸드의 끈을 지탱해준다. 티보는 사랑을 줄 줄 모르는 릴라에게 드디어 이별을 통보한다. 벽을 보듯 무표정한 릴라의 얼굴, 티보의 괴로움에 공감할 줄 모르는 릴라에게 끝없는 상처를 받은 티보는 온몸의 힘을 끌어내어 이별을 통보하고도 하루종일 릴라를 기다린다. 릴라를 만나기 전 '강한 남자'였던 티보,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서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갈망에 들뜬 표정으로 그 순간을 버틴다.
누구나의 마음에 있는 허전한 자리를 마틸드와 티보는 선명하게 드러낸다. 바쁜 일상에서는 잠시 잊고 살 수 있는 그 자리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가한 시간이 날 때 혹은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필요할 때 문득 그 자리가 느껴진다. 텅 빈 상자같은 그 곳, 문득 문을 열고 그 자리에 들어설 때 느끼는 싸늘한 공기와 허무의 냄새를 견디기 어려워 우리는 끝임없이 관계를 욕망하며 그 존재를 거부하는 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그 존재를 느끼면서도 누구나 부정하고 싶은 그 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이 소설이 그래서 더욱 슬픈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읽는 내내 다들 마틸드와 티보가 언제쯤 만날까 기대하게 한다. 오늘 5월 20일은 마틸드의 어둠에 희미한 빛이라도 새어들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인형같은 릴라에게 상처받은 티보에게 따뜻한 마틸드의 모성이 다가올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날이 오늘이기를 기대한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