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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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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을 읽고 우리가 평소 비평이란 것을 하는 것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평소에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공부도 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혀 알지 못하고서 비평을 할 수도 없고 그 대상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평한 것을 읽다보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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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을 읽고

우리가 평소 비평이란 것을 하는 것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평소에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공부도 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혀 알지 못하고서 비평을 할 수도 없고 그 대상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평한 것을 읽다보면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인 것 같다. 평소에 거의 대하지 않았던 비평집을 우선 대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저자에 대해서도 처음 대하였고, 작품집도 처음 대하였다. 중견 비평가로서 그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 현장의 안과 밖에 일어나는 많은 변화를 다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중에서 관심 분야에 대한 비평꺼리를 찾게 되고, 작품을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의 한국소설을 중심으로 하여서 안팎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중심으로 걱정과 기대의 뒤섞임 속에서 문학의 안팎을 둘러보고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자 나온 작품집이라고 한다. 2010년까지 쓴 글들을 반영했다고 하니 최근의 내용까지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소설의 탈현실과 반휴먼, 고독한 농담과 유희의 세계는 속깊이 숨은 우울이 소설의 육체적 증상으로 탈바꿈해 나타나는 일종의 전환히스테리 증상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따라서 한국소설들이 한국사회의 ‘정상적인 실패’의 증거로서 그 자신의 실패를 음미함으로써, 제각자의 우울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런 소설과 맥을 같이 하여 비평 또한 그러했다는 점이다. 비평도 한국소설의 우울과 함께 살았고, 그에 공감했고, 때로는 그들이 모르는 그들 자신의 우울을 대신 앓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이 죽은 뒤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라 하면서 비평을 ‘유령/증상’이라 하였고, 이번에는 ‘비평의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안과 밖을 살피면서 한국소설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글, 김소진부터 김훈까지 이어지는 작가들의 소설 분석, 권여선, 김사과, 천명관, 윤성희, 강영숙 작가에 대한 글, 박민규, 권여선, 정미경과 편혜영, 김애란과 전성태, 김인숙 작가의 작품론 성격이 강한 글, 괴물의 정치학, 질투와 중독, 공포의 근대와 편집증, 세속비평의 즐거움 등 영화에 대한 글 등을 싣고 있다. 솔직히 많이 어렵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비평집을 통해서 나름대로 비평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른 비평집에 대해서도 관심과 함께 자주 대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아울러 갖게 되었다.

m***3 2011.03.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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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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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문학을 접할 때 잘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자신만이 갖고 있는 허용범위 내에서 수용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나역시 책을 읽을 때면 나의 상황에서, 또는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주인공을 바라본다. 좀 더 넓게 시야를 바라보면 좋겠지만 자신만이 갖고 있는 감수성과 인식의 차이에서 틈이 벌어지곤 한다. 혹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소설에서 주인공이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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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문학을 접할 때 잘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자신만이 갖고 있는 허용범위 내에서 수용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나역시 책을 읽을 때면 나의 상황에서, 또는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주인공을 바라본다. 좀 더 넓게 시야를 바라보면 좋겠지만 자신만이 갖고 있는 감수성과 인식의 차이에서 틈이 벌어지곤 한다. 혹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소설에서 주인공이 갖는 시각에 동조나 반감을 보인다.

 

<비평의 우울>은 문학평론가로서의 우리문학을 진단하며 바라본다. 문학을 접할 때 비평으로서 바라보는 문학의 첫 발걸음은 쉬이 떼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우리가 가져온 문학의 시선에서 어떻게 시선이 바뀌고 달라졌는지 그는 진단한다. 김훈, 김소진, 강영숙, 편혜영, 권여선, 김사과, 천명관, 김애란, 김인숙 등 친숙한 작가 또는 매니아적인 작가와의 작품을 뜯어본다.

 

일반인이 보는 소설과 평론가로서의 시각으로 보는 소설은 분명 다를 것이다. 책 자체도 풀어쓰는 말이 아닌 그들의 언어로서 소설을 이해한다. 뭉쳐진 언어로서 쓰이는 말이라 한 단어, 한 단어 이해를 하며 글을 읽었다. 처음 문학을 접할 때는 줄거리 위주로 책을 읽었지만 언젠가부터 줄거리 뿐만 아니라 소설의 골격이나, 작가의 문체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글을 읽고나면 깊은 상념이 아닌 단편적인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가 왜 그 인물을 그렸을까 하는 의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비평은 어렵지만 문학이 영화의 원작으로 흘러가 다시 영상으로 살아나고 다시 그것이 글로 되살아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와 문학이 되풀이되어 흘러가는 모습을 문학 비평 뿐만 아니라 영화의 무대에서 문학의 줄거리를 읽을 수 있다. 한 때는 우리나라 소설이 별로 재미없어 하던 때도 있었다. 국어교과서에 나온 우리문학을 시험공부로서 대할 때마다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그 작품을 알아야 하니 재밌는 소설도 그저 반감만 들 뿐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출판된 소설을 읽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그리고 흘러간 시간의 누군가의 삶에 대한 보편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판타지적인 것이 가미되고, 스릴러처럼 가슴이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좋은 소설도 많이 나온다.

 

<비평의 우울>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문학을 정리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때 다시 읽어보고 싶다. 더듬더듬 읽어나갔지만 소설을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해 알려준 책이었다.

l****9 2011.04.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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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 소설의 숲에서 생각 나무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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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나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바다를 짚고 일어나 육지가 아니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 사이로 나만의 생각을 갖는 사람이.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어지럽혀 있던 퍼즐같던 이야기가 문득 해답을 찾아 환한 봄 햇살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내가 투자한 생각 한 줌이 1등으로 당첨되었습니다. 내용만 쫓기 바쁘다가 그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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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나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바다를 짚고 일어나 육지가 아니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 사이로 나만의 생각을 갖는 사람이.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어지럽혀 있던 퍼즐같던 이야기가 문득 해답을 찾아 환한 봄 햇살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내가 투자한 생각 한 줌이 1등으로 당첨되었습니다. 내용만 쫓기 바쁘다가 그 글을 쓴 저자를 보게 되고 ’작가의 말’을 유심히 읽게 되고 뒤이어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었을 때, 소설은 그 내용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제야 그 소설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2년 전에서야 배운 큰 깨우침이었다. 


우연히 현대 소설을 중심으로 갖은 토론을 하는 동아리에 들게 되었고, 나는 막연히 좇고 있던 소설에 대한 선망을 조금 구체적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동아리의 수업 방식에 따라 꾸준히 여럿 소설을 읽게 되었고 말할 거리를 쟁여놓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곤 했다. 그러다가 식상하지만 전형적인 생각을 나도 떠올리게 되고 넘어서 좀 더 논리적으로 생각을 풀어내다가 멀리 섬처럼 놓여있던 의문을 하나로 연결지을 때도 있었다. 소설은 생각이 모일수록 원숙한 세상이 되었다. 매번 사람들의 생각을 한마디씩 얹은 소설이 더 재밌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한두마디의 비평은 항상 소설의 길잡이가 되었다. 


소설의 자투리처럼 놓인 ’해설’이 아닌 비평만으로 이뤄진 비평집을 처음 보게 되었다.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비평집에서 소개한 소설을 읽지 못하고 비평을 읽었다. 분명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소설만 읽다가 읽는 비평은 ’생각의 방법’을 쉽게 소개해주었다. 저자의 비평은 따라가기 쉬웠으며 내 생각을 갖기보다 저자의 생각을 배우는 식으로 비평을 읽어보았다. 아직 저자의 비평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런 저런 말을 얹을 수 없지만 전문 비평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 같다. 능숙한 비평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속을 맴돌았다.  




a*******6 2011.04.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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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 - 김영찬 비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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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비평집 제목에 ‘우울’이라는 문학적 단어를 사용했을까? 문학의 논리적 해석에 문학적 단어를 사용한 김영찬 평론가의 시각은 정당한 것일까? 평론가의 시각이 보는 현대 한국문학의 흐름은 그렇게 우울한가.   김영찬 비평집 ‘비평의 우울’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 소설의 최근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된다. 2000년대 한국소설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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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비평집 제목에 ‘우울’이라는 문학적 단어를 사용했을까? 문학의 논리적 해석에 문학적 단어를 사용한 김영찬 평론가의 시각은 정당한 것일까? 평론가의 시각이 보는 현대 한국문학의 흐름은 그렇게 우울한가.

 

김영찬 비평집 ‘비평의 우울’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 소설의 최근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된다. 2000년대 한국소설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현재의 사회를 보는 시각이기에 더욱 긴장된다. 젊은 소설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현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고 있는가? 김영찬 평론가의 평가는 ‘그렇게 우울하다’라는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한 소절을 들려주며 소개한 김사과의 소설에 대한 설명은 현대 한국인들의 극단적인 자기분열과 강박관념 그리고 현실을 벗어나려는 극단적인 현실파괴의 폭력을 자세히 소개한다. ‘죽음의 씨앗, 눈먼 자의 탐욕/시인들은 굶주리고 아이들은 피 흘리네’라는 핑크 플로이드의 처절한 노래가사를 읽지 않아도 평론가 김영찬이 소개하는 소설가 김사과의 소설은 그로데스크하다.

“김사과 소설은 이 모든 측면에서 특이한 돌연변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를, 그간 한국문학에서 억압되어왔던 ‘분노 자본’의 폭력적 귀환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다.”(188쪽)

 

이 책 ‘비평의 우울’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 어려운 문학적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읽기를 방해한다. 가령 박형서의 소설을 설명하는 “이 소설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서는 물질적 가능성에 대한 옹호 위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발상과 방법 자체를 소설의 무대에 올려놓는 자기 지칭적(self-designating) 소설로서의 울림을 얻는다”(126쪽) 와 같이 어렵다. 서너 번을 읽어야 그의 냉혹한 주장을 이해할 수 있으니, 아쉽다.

 

그러나 제2부 ‘돌아오는 ....... 증상들’에서 ‘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것’이라는 제목의 평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참으로 소설 읽기의 기쁨과 평론 읽기의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김훈 소설이 전하는 ‘밥’에 대한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주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기가 막히게 좋다. 밥을 먹기 위해 싸우고 정치를 하고 전쟁을 하는 인간사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김훈 소설의 현실반영을 평론가 김영찬은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그것은 소설가 김훈이 자신의 에세이 ‘밥벌이 지겨움’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준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중략)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37쪽)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경제를 위한 정치, 경제를 위한 언론, 경제를 위한 문화, 경제를 위한 인간이 매일 재창조 되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생각이 없이 경제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은 가치의 문제를 논하는 것을 불허한다. 오직 절대 가치로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김영찬 비평집 ‘우울한 비평’은 그런 한국사회를 직시하고 있는 2000년대 한국의 소설가들의 시각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들의 소설 형식은 기존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고, 소설속 내용도 기막히게 기묘해서 비현실적인 상황이 지배한다. 우울한 2000년 한국사회를 보는 소설가의 우울한 글쓰기를 평가하는 평론가의 마음이 어찌 우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비평의 우울’일 것이다.

j*****p 2011.04.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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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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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눈물이 났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향해 질주하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또 만날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기를 희망한다. 책 속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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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눈물이 났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감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향해 질주하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는 날은 또 만날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기를 희망한다.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은 책 속의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을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책을 읽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을 쓴다는 것과 그 소설을 비평한다는 것은 은밀히 문학을 통해 소설가와 비평가가 인간의 내면을 공유하는 행위가 된다. 그들의 은밀한 공유를 나는 “비평의 우울”이라는 책 속에서 만났다.

발상과 문법의 반복은 죽은 상징이다. 관습화 되어 한국 소설은 자기도 몰래 자기 충족적 자율성을 만들어 가는, 부정적으로 부각되는 스펙터클이다. 사실 말을 근사하게 풀어 놓았을 뿐 이 말의 의미는 비슷한 기법으로 쏟아져 나오는 2000년대 문학 현상에 대한 충고이다. 김영찬 평론가의 2000년대 문학에 대한 정리는 상당한 공감을 준다. 즉, 그는 “그들의 문학은 모든 것을 모른 체하거나, 비켜가거나, 그래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훌쩍 비약해버리거나, 그러지 않으면 속으로 삭이고 체념해 버린다. 그것은 가혹한 근대의 마성에 대한 대타의식을 내면의 자양으로 눌러 담기보다 그것을 내면의 바깥으로 느슨하게 유희적으로 풀어헤쳐버리는 문학적 태도다. 그것이야말로 2000년대의 무력하고 왜소화된 주체가 폐쇄적인 세계의 우울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방법인 동시에 그 자기 방어를 거꾸로 문학적 창조의 원천으로 돌려세우는 방법이다”라고 한다.

추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내는 그의 평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세대의 원형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김영찬 평론가는 2000대의 최대 유행이 되어버린 상상화 된 자아의 모습을 김애란, 이기호, 김중혁, 박형서 등의 소설 속에서 발견하여 들려주는데, 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세계는 작가의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라 말한다. 부풀려진 듯 한 동시대와 떨어진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을 읽을 때는 지루했다. 그러나, 가장 동시대에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작가들에 대한 김영찬의 “비평의 우울”은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이 시대를 우울한 시대로 본다? 그럼 이 시대의 우울은 어떠한가? 김영찬은 그러한 우울의 전후를 박민규의 [아침의 문]으로 들려준다. 나는 “비평의 우울” 속의 우울 종결자 같은 종이에 쓰인 유서가 기억에 남는다. 우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부정으로 가득차 있어서 희망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어느 시대, 어떤 모습으로든 문학은 저 나름의 우울을 앓기 때문이다. 우울이나 어둠은 빛과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표현임을 나는 기억한다.

 

f******2 2011.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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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우울(김영찬 비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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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소설 속의 일들이 정말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예전엔 정말 그랬었다.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꼭! 나에게 일어날 것만 같은, 그래서 읽었던 소설을 곰곰히 되씹어 보기도 하고, 그 내용들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나와 연관시켜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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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소설 속의 일들이 정말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예전엔 정말 그랬었다.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꼭! 나에게 일어날 것만 같은, 그래서 읽었던 소설을 곰곰히 되씹어 보기도 하고, 그 내용들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나와 연관시켜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위를 둘러봐도 거의 대부분의 소설들이 역사적인 팩션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지도 못하고, 고등학교 때 [소설 = 허구] 라는 공식을 허물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새로운 형식의 소설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치상 정체되어 있으면 썩는 게 자연의 섭리라지만 소설에서만큼은 정체되어도 썩지 않길 바랐었다. 현진건의 소설에서 김첨지의 불안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운수 좋은 날’ 이라고 외치던 그런 아이러니를 소설에서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데 그런 소설을 발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으니 참! 우울하고도 또 우울하다.

 

눈에 익고 귀에 익은 작가들과 그들의 친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만나니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역사적인 모티브로 시작해서 독자들의 가슴 한구석을 날카로운 메스로 도려내듯 가슴 찡한 여운을 들려주었던 김훈 작가도 보이고, 요 근래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던,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너무 빨리 읽어서 아쉬움만 쪽쪽 빨아댔던 천명관 작가도 눈에 들어온다. 천재들은 빨리 단명한다던 말을 믿지 않는 나였는데,  한 작가의 죽음을 통해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고, 지금은 그의 소설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커서 더욱 반가웠던 김소진 작가. 또 현 시대에 괴물처럼 나타난 권여선, 김사과, 윤성희, 강영숙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고, 우울이라는 멜랑콜리를 소설에 접속시킨...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여성팬을 확보한 박민규 작가와 우울을 섬뜩한 공포로 만들어버린 정미경 작가와 편혜영 작가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작가들과 그(그녀)의 작품들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서 곪은 부분과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고 있는 김영찬 평론가와 그의 책 『비평의 우울』이다.

 

여기에 나온 책들을 전부 다 읽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점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따라가기가 벅찼던 게 사실이다.

김영찬 평론가가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의도는 알겠는데 실상 그 속으로 들어갈라치면 얕은 지식과 폭넓지 못한 독서력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거기에 이 책에 나온 모든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해 김영찬 평론가가 말하는 날카로운 지적들은 실로 대단함을 넘어서 난해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김소진의 소설은 ‘사이(in-between) 의 소설이다. 돌아보자. 투박하고 리얼한 밑바닥 민중의 삶과 언어를 소설의 중핵으로 끌어안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얼핏 그의 소설에 드리워진 ’1980년대’ 를 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성이라는 불가피한 폐해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그것과의 의미 있는 단절을 보았다. (108쪽)

 

김사과의 소설에는 과잉(excess)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 과잉의 배후는 분노의 파토스다. 소설의 인물들이 어느 순간 정신을 놓아버리고 무서운 살인자로 돌변하는 것도 그들 안에서 돌연 치받아오르는 분노 때문이다. 분노는 그렇게 그들의 의식의 점령한다. 가령 남편에게 이유 없이 구타당하던 엄마는 갑자기 정신이 나가 아빠를 삽으로 때리며 “피가 흥건한분노를 표출하고, 여자친구가 자기처럼 고추장을 먹지 않는 데에 분노한 ‘나’는 그녀의 몸에 고추장을 쏟아 발라 붉은 찱흑으로 빚은 인형”으로 만들어버린다. (179쪽)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하루 빨리 이 책에 나온, 내가 읽지 않은 소설들을 찾아서 읽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 읽은 뒤 다시금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들과 그 때의 느낌은 천지차이일 것이리라. 또한 책 이름은 『비평의 우울』이었지만 그 속내는 2000년대에 나온 소설들을 바람직하게 읽을 수 있는 해설서같은 느낌도 받았고, 어떻게 해야 우울과 비평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알려 준 문학 참고서와도 같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소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이 책의 책머리 글이 아직도 내 귓가에서 맴도는 것은 그의 소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진실했기 때문일테고, 그의 마음 속에 대한민국에서 씌고 있는 소설들을 지키고자 하는 돈키호테같은 정신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소설은 결국 실패의 기록이며 그 실패를 음미하는 우울의 고백이다. 애당초 그러했다.

루카치를 빌리자면, 날 때부터 소설은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 헤매는, 하나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의식의 모험이었다. ‘의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소설은 그것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의미의 결여와 상실을, 소설은 제 몸으로 앓는다. 우울이란 바로 그런 증상의 이름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울은 소설의 존재를 떠받치는 불가피한 증상이다. (5쪽, 책머리 中에서)



YES마니아 : 로얄 n*******o 2011.04.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