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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미술인가 (의미 있는 미술 입문서)
"그렇다면 무엇이 미술인가 (의미 있는 미술 입문서)" 내용보기
이 책은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다 (p.1)   책의 제목부터 격렬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의 시작 부분은 무척 당혹스럽다.  글쓴이는 미술책에서도 봤고 미술관에서도 봤던 작품들을 미술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미술 작품 같지 않은 것들을 미술이라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미술과 미술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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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다 (p.1)

 

책의 제목부터 격렬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의 시작 부분은 무척 당혹스럽다.

 글쓴이는 미술책에서도 봤고 미술관에서도 봤던 작품들을 미술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미술 작품 같지 않은 것들을 미술이라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지 마구 알고 싶어진다.

  글을 쓴 이는 이렇게 얘기한다. 미술은 근대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미술이란 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화랑이나 미술사, 미술 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p.28)고 언급한다. 그런 제도를 활용해서 특정한 일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기획된만들어진이 아니라경우에 미술이 된다는 설명이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든 누군가는 이것을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했을까? 다산을 비는 주술의 의미든 알지 못할 다른 의미든 어떤 의미를 지녔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어딘가에 전시되어 관람의 대상이 되도록 의도해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다. 저 비너스는 원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후대에 와서 미술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보여짐으로써 미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적 물건들에 미술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우리들이며, 사실 그러한 단어는 원시인들에게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 개념을 창조했으며, 사실상 우리 자신만의 용도를 위해 이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p.31)

  우리 대부분은 모나리자를 안다. (조용필의 노래 제목 말고.) 어떻게? 미술책에 실린 도판을 통해서거나 TV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거나 혹은 직접 봤거나 등.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세 차례 모나리자의 그림에 다가갔지만 그때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 앞에 있어서 제대로 실물을 감상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실물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 즉 온갖 문화영역과 대중매체 속의 수많은 복제품을 통해서 모나리자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 즉 복제물이 오리지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p.59).

  결국 글쓴이는 미술이 근대의 문화적 범주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현대의 미학 기준에 따라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문화를 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개념을 얘기하는 긴 첫 장 이후로는 어떻게 미술이 태동되었는지 어떤 변화와 전복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다. 일종의 미술사가 전개되는 셈이다. 이 부분들에 대한 요약은 생략한다. 책을 읽어보라는 뜻이다.

 

페이지마다 얘기가 나눠져 있는데일부는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앞뒤 맥락을 떠나서 아무데나 열어서 읽어도 그 페이지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있다. 페이지마다 사진을 찍듯이 읽기를 할 수 있는 구성이다. Chapter 안에 담긴 내용들은 페이지 별로 하나의 얘기를 다루면서 전체로는 연결된 얘기를 한다. 독특한 구성이며 길게 쓴 내용에 자칫 지칠지 모를 독자를 위해 고안한 디자인으로 여겨진다.

  책은 이미지를 많이 담고 있어서 글자 수의 부담은 없는 편이다. 이미지는 모두 흑백으로 담겼는데 맥락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글 자체도 전반적으로 쉽게 씌어져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몇 군데 개념을 명확히 잡고 가야 하는 부분들이 보인다. 아울러 옮긴이가 추가한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과 본문의 문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한 부분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책 정보를 보면 원본은 1995년에 발간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흐른 지금, 20여년의 기간 동안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 미술에 관심 있는 이에게 도움이 될 책으로 추천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술가들은 우리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도전하기 때문에 예언자적 구실을 한다. 그들은 우리 문화를 계몽적이고도 어떤 때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재현하며 새로운 개념새롭게 보는 방식을 위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다. (p.289)

a******9 2019.08.09.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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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공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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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심있으면 읽어 볼만 한책, 추천합니다! 표지도 마음에 들고, 책 크기는 생각보다 작고 두깨는 얇다면 얇고 적당한 편이었습니다앤디 워홀이란 사람의 미술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면, 그런 사상의 미술을 좋아한다면 더 편히 읽힐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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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심있으면 읽어 볼만 한책, 추천합니다!
표지도 마음에 들고, 책 크기는 생각보다 작고 두깨는 얇다면 얇고 적당한 편이었습니다
앤디 워홀이란 사람의 미술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면, 그런 사상의 미술을 좋아한다면 더 편히 읽힐거 같아요
s********7 2024.10.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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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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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美術)’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그림 · 조각 · 건축 · 공예 · 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 · 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예술에 대한 로망은 있으나 재능은 없어 문외한인 내가 초보적으로나마 즐기는 문학, 음악과는 달리 미술은 항상 난해한 분야였다. 즉각적인 감동 또는 거부가 가능한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미술 작품에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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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美術)’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그림 · 조각 · 건축 · 공예 · 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 · 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

예술에 대한 로망은 있으나 재능은 없어 문외한인 내가 초보적으로나마 즐기는 문학, 음악과는 달리 미술은 항상 난해한 분야였다. 즉각적인 감동 또는 거부가 가능한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미술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권위자(또는 텍스트)의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예컨대 칸단스키나 뒤샹의 작품들) 그럼에도 한편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들을 존경하여, 그들의 삶과 에피소드를 다룬 글은 흥미롭게 마주한 편이었다. 교양인 - 처럼 보이기 위해 - 으로서 충족해야 할 지적 허세(?)를 위해 이 책을 펼쳤을 때, 나의 무지함은 미술미술이 아닌 것의 구분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책에 따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작품조차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문화와 권력의 심사를 통과한 역사적 산물이다. 하여 오늘 날의 미술의 개념에 의하면 아담의 창조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닌 것이다. 식자(識字) 또는 부자(富者)들의 고상한 취미로서의 의미이든, 사회 저항적 참여 예술로서의 산물이든 미술은 검증된 학계의 제도권 내에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렇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으로 폭넓게 포함되는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상업적인) 팝아트까지, 기존의 권위를 파괴함으로써 얻게 된 소위 독창성조차도 새로운 권위를 소유한 진부함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 작품의 창작자도, 전파자도, 감상자도 이런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감상자로서의 나는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예술가들이 (‘부자유 속에서의 자유로움 추구라는 모순 속에서도)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기여하는 데 지지의 시선과 응원의 힘을 보태는 한정된 역할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믿는 대로 본다.(Believing is Seeing)’이다. 보는 대로 믿는(Seeing is Believing)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 책의 주제와 다소 무관한 사견을 덧붙이자면,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자본의 가치로 환원하는 물질주의 시대에서, 보이는 예술인 미술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믿는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에게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하는 도덕적인 사람에게서,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성직자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듯이, ‘() · () · () · ()’은 서로 통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세상을 본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미술가들은 우리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도전하기 때문에 예언자적 구실을 한다. 그들은 우리 문화를 계몽적이고도 어떤 때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재현하며 새로운 개념 - 새롭게 보는 방식 - 을 위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다. (중략)모든 것이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에 기여하고 또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자신과 세계를 보는 방식일 뿐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는 삶의 강력한 방식이기도 하다.” - 본문 중에서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19.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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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을 흔드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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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술가 만 레이의 흑과백(1926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프리카 가면과 키키 라는 백인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아 보였기 때문에 뭐라 설명할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흑과백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차이는 흑과백이라는 색깔인데 그때는 색깔을  느끼지 못하고  같다는 생각만 나고 그냥 계속 보기만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미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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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술가 만 레이의 흑과백(1926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프리카 가면과 키키 라는 백인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아 보였기 때문에 뭐라 설명할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흑과백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차이는 흑과백이라는 색깔인데 그때는 색깔을  느끼지 못하고  같다는 생각만 나고 그냥 계속 보기만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미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고 마음에 울림이 있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즉, 단순히 말한다면 예술지상주의, 혹은 미술을 좀 신성시 한다고나 할까, 미술은 미술 그자체,즉,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해 왔는데...

 

책 앞부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 이것은 미술이 아니었다, 바로 옆쪽에는 그 모나리자 그림에 콧수염을  그려놓은 뒤샹의 그림에는 이것이 미술이다, 라고 말하는 데서... 뭔가? 이것은...우리가 알고있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는거 아닌가? 애들 장난같은 짓을 해놓은 그림은 미술, 그 유명한 모나리자 그림은 미술이 아니었다고 하니 충격이었다.

 

앞부분에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 작품들은 미술의 여러제도들 (화랑이난 미술사, 미술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말이다.

이후의 내용도 재미있다. 읽다보면 그 뚱딴지 같고 난해(?)한 현대의 많은 미술작품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래서 책을 읽어야돼'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책이다.

 

 

l********f 2019.04.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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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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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Anne Staniszewski, 「Believing is Seeing: Creating an Culture of an Art」선정성을 추구하는 우리 출판계가 선정한 제목은 반드시 미술제도론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미술과 非미술을 판단하는 기준은 미술제도가 그것을 미술로 승인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술학교, 화랑,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 미술사가, 비평가, 경매장, 아트페어, 수집가, 후원기업 등으로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역)" 내용보기



Mary Anne Staniszewski, 「Believing is Seeing: Creating an Culture of an Art」


선정성을 추구하는 우리 출판계가 선정한 제목은 반드시 미술제도론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미술과 非미술을 판단하는 기준은 미술제도가 그것을 미술로 승인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술학교, 화랑,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 미술사가, 비평가, 경매장, 아트페어, 수집가, 후원기업 등으로 구성된 미술제도는 작품의 교환가치를 결정한다. 미술사 교과서에서 도판으로나 볼 수 있는 근대 이전의 명작들은 그것이 제작되고 거래되는 맥락 자체가 오늘날의 메커니즘과 전혀 다르다. 18세기까지 예술 작품은 왕, 교황, 귀족의 독점적인 후원이나 아카데미의 교리에 입각한 공인에 의해서만 존재 가치를 부여 받았고, 그것을 소유한 계층의 권력과 부를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 같은 미술제도의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지금 우리의 관점에만 얽매여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것은 반쪽짜리 이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시대는 시각적 산물을 만들고 시각적 산물은 시대를 만들어 간다.


“이미지들과 우리의 삶은 때때로 서로를 반영한다.” 63


이 책의 주제는 저 인용문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인용문을 한 번 더 푼 문장이 마지막에 페이지에 나온다.


“모든 것이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298


두 언명을 통해 저자가 철저히 예술의 사회사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사회사는 사회를 통해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조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를 예술 작품 속에서 실현하고, 예술에 녹아든 고귀한 철학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같은 주제 의식은 매우 합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남긴다. 


한 작품 속에 깃든 철학이 이 시대에 해악이 아닌 도움이 될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사회에 실천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 예술은 모두 수장고에 가둔 채 빛을 보지 말아야 하나? 한 시대에 이상적으로 간주되는 가치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님이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면, 우리는 다른 시대, 그리고 다른 맥락에서 변화될 양상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되나?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올바름의 시대에 유미주의자가 설 곳이 있는가?


하루면 너끈히 읽을 이 작은 책을 덮더라도 당연히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이 시공간을 외부에서 관조할 수 없고,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 흘러 가다가 부지불식간에 백골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동시대 예술가들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작품 속에 녹여냈는지, 그 예술이 얼마나 많은 관람객들과 효과적으로 조응하면서 이상적인 실천의 열매를 맺어왔는지는 명철한 후손들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20세기 초반까지 빈번하게 예술 제도를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했던 아방가르드들의 헌신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분명 수긍할 구석이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예술가들이 그 현실의 테두리 안에 갇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치고 있는지를 누군가는 주목해야 하고, 더 실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비평의 역할일진데, 비평이 오히려 제도의 열혈 앞잡이로 전락한다면 그야말로 곤란하다. 아무리 견고한 제도라도 바꿀 수 있다. 숟가락으로 땅을 파서 교도소를 탈출한다는 클리셰가 삼류 공개방송 코미디로 끝나지 않도록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한 가지 덧붙여, 올바름의 시대에도 유미주의자에게는 자기 영토가 있다. 비록 그 영토가 무르고 질척질척한데다가 낮은 울타리로 성기게 둘러져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있기는 하다.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s 2019.04.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