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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첨밀밀로 잘 알려진 진가신 감독, 그리고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로 얼굴을 각인시킨 금성무, 노래 잘하는 홍콩 배우 장학우에 대장금으로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했던 지진희가 참여한 이 영화 퍼햅스 러브는 2006년에 만들어진, 뮤지컬 기법이 도입된 영화입니다. 홍콩 반환 후, 우리가 흔히 홍콩 감독, 홍콩 배우들로 부르는 이들이 중국 대륙의 배우와 자본과 급격히 결합할 때에 만들어진 영화죠. 영화 속 여주인공 주신(저우신)의 경우는 중국 절강성 출신의 여배우랍니다. 첨밀밀 때만 해도 대륙에서 내려온 촌뜨기 남자와 대륙에서 내려왔음을 숨기는 똑소리 나는 여자의 홍콩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젠 배경 자체가 중국 대륙 본토의 북경을 무대로 하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 유통기한이 정해진 통조림을 구하며 이별의 슬픔을 달래던 그 남자 금성무.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홍콩에서 북경으로 올라와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우리로 치면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쯤 되는 캐릭터인데 그런 그의 눈에 노숙자 같은 몰골의 여인이 보입니다. 그 여인이 이 영화의 여주인공 주신이 맡은 손나 캐릭터에요. 남자는 여인에게 호의를 베풀고 나이트클럽 댄서 같은 직업을 가진 여인은 남자와 친해집니다. 배우로서의 꿈,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여인은 현실에 지쳐 있었죠. 그런 여인에게 남자는 일용한 양식과 영혼의 안식을 줍니다. 문제는 이 여인의 마음이에요. 허황되어 보이기까지 한 꿈을 꾸고 있는 여인은 일개 대학생인 남자의 곁을 떠납니다. 영화판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로 치면 충무로를 기웃거리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러던 차에 만난 미국 남자가 있습니다. 배우 시켜주겠다, 미국에 같이 가자고 말하는 사기꾼의 꼬임에 빠져버린 여인은 노리개 역할을 해야함을 알고 있음에도 사기꾼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여인은 청년에게 이별의 선물인양, 하룻밤 정을 통합니다. 그렇게 호의를 베풀면서도 여인을 안아보지 못했던 청년이었는데 여인이 먼저 그의 품에 안깁니다. 그렇게 영원히 자신의 여자가 될 것 같은 하룻밤이 지난 뒤 여인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립니다. 남자의 마음에 그 여인이 가득찼던 그날 밤이 지난 뒤 여인은 사라졌지만 남자는 여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여인이에요. 사기꾼은 여인을 버린 채로 떠나고 여인은 남자가 있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꽁꽁 얼어붙은 강둑에서 괴로워합니다. 여인을 찾아낸 남자는 다시 한 번 여인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여인은 남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지 않습니다. 또다시 떠나가는 여인. 남자는 뒤늦게 영화를 전공하는 친구로부터 여인이 그 친구를 따라나섰음을 알게 되죠. 출세의 계단으로 이 남자 저 남자 기웃거리는 여인.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여자는 까르띠에 광고판에 크게 얼굴이 새겨진 중국 최고의 여배우로 나타났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대학생이었던 남자 역시 배우가 되었습니다. 홍콩의 스타 배우가 된 남자는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북경에서의 영화 촬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영화의 여주인공이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던 바로 그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남자가 얼마나 많은 통조림을 찾아다녔을까 왕가위 식으로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한때의 연인이자 사랑의 배신자인 여자를 만나는 남자의 심정은 복잡합니다. 복잡하기는 여인의 심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밑바닥에서 구르고 굴러 최고스타가 된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고 합니다. 톱스타로서의 자신의 모습만 보여줄고 하지요. 숨기고 싶은 과거를 아는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여인은 모른 체 합니다.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란 제목의 프랑스 영화처럼 남자는 여인에게 북경 어디에서 우리 만난 적이 있죠? 라고 계속 묻지만 여인은 그것을 부인합니다. 남자는 집요할 정도로 여인에게 자신과의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 속 뮤지컬 영화 촬영 장면과 남자와 여인의 과거 이야기, 촬영장 안팎에서의 두 사람의 갈등 상태를 어지러울 정도로 섞어놓는답니다. 게다가 갈등은 두 사람의 것만이 아닙니다. 현재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영화 감독 니웨(장학우)와 여배우 손나(주신)는 연인 관계였죠. 여자에게 옛 남자가 찾아오고 그 남자의 계속되는 접근에 끝내 여자가 마음을 허락하고 마는 그 짧은 순간을 감독 니웨(장학우)가 목격하고 맙니다. 서커스 단장과 단장의 애인 무희, 무희의 첫사랑 남자와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 속 뮤지컬 영화는 실제 장학우, 주신, 금성무가 연기하는 세 남녀의 상황과 점점 일치해갑니다. 질투와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감독은 서커스 단장 역을 맡아서 연기하며 여인에 대한 자신의 분노와 실망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되죠.
그렇다고 옛사랑을 찾은 남자(금성무)가 예전처럼 순수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통조림 까먹으며 눈물이 마르도록 달리기만 하던 왕가위 영화 속 금성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 영화의 남자는 사랑의 옛 추억을, 여인의 굳어버린 가슴 속에 다시 새기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여인이 떠나고 혼자 남아 힘들던 시절 남자는 자신의 심경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했었답니다. 그리고 그 녹음된 내용을 여인에게 들려주죠. 남자의 절절한 감정에 동요된 여인은 그때 그랬던 것처럼 남자와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 시절의 행복감을 떠올리며 잠에서 깨어난 그녀, 침대 위에 있어야할 남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는 새로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만 남겨두고 떠났죠. 그 테이프 속에는 여인의 마음을 찢어놓는 매정한 말들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여인을 그리워했던 남자는, 마침내 찾아온 여인에게 그동안 그리워했던만큼 아프게 하기로 작정한 듯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단꿈에서 채 깨지 못한 상태로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의 플레이버튼을 눌리는 여인.아마도 남자가 자신을 그리워하는 가슴 절절할 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였겠죠. 남자가 녹음해놓고 사라진 매정한 말들에 상처를 입은 여인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때 남자는 홍콩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합니다. 비행기 표 두 장을 준비해뒀음을 새삼 깨닫은 남자는 여인의 곁으로 급히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인을 안아주죠.
공리와 장예모처럼, 여배우와 영화 감독 커플이던 손나(주신)과 니웨(장학우). 감독은 여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금의 애인인 감독은, 그녀가 그동안 그래왔던 자신을 키워줄 남자를 찾고 찾던 중에 선택된 또 한 명의 계단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여인을 사랑했던 감독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말았죠. 영화 속 서커스 단장 역을 맡아 무희로 분한 그녀의 뺨을 때리고는 갓 만들어낸 시나리오라고 둘러대고 말죠. 두 남자의 애정과 분노, 실망과 집착이 그녀를 둘러싸고 여인은 현재의 애인과 지난 날의 연인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진가신 감독은 이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담당한 인물은 지진희가 맡은 캐릭터에요. 버스 기사에서 기자, 영상기사에서 뮤지컬 배우, 요리사 등으로 역할을 계속 바꾸며 등장하는 지진희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사랑싸움의 안내자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등장한 지진희는 북경의 곳곳을 오가며 세 남녀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설명해줍니다. 과거를 숨기려던 여인은 과거를 다시 한 번 안게 되고, 그리움과 배신감으로 상처 입었던 남자는 다시 한 번 찾아온 사랑으로 그 상처를 메꿉니다. 질투심으로 불타던 감독은 뮤지컬 속 한 장면을 통해 집착 대신 놓아줌을 택하게 되구요. 이러한 과정은 지진희의 눈을 통해 보여집니다. 이제 여배우 손나(주신)와 영화감독 니웨(장학우)는 헤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죠. 공리와 장예모가 영화로 다시 만나듯 말이죠.
영화의 마지막, 마치 심야식당의 한 장면 같은 씬이 이어집니다. 지진희는 혼자 남은 감독인 니에(장학우)에게 음식 한 접시를 갖다줍니다. 맛있게 면요리를 먹던 감독(장학우)은 사랑을 시작하는 내용의 영화를 찍겠다고 말하죠. 손나와 니에가 만났을 때, 니웨가 손나에게, 손나가 니웨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를 영화화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잠시 후 지진희 앞에 금성무가 나타납니다. 커피를 주문하는 금성무에게 지진희는 장학우에게 줬던 것과 같은 요리를 갖다주죠. 두 남자에게 같은 요리를 가져다준 것은, 한 여자를 향한 두 남자의 사랑, 두 남자의 집착과 슬픔이 같은 것이라는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요. 베를린 천사의 시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진희는 북경 어딘가에 위치한 건물의 위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봅니다.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 중에선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에 지쳐버린 남녀도 있겠지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배우들은 각자 흩어집니다. 남자(금성무)는 혼자 남은 손나(주신)에게 전화를 겁니다. "북경을 잊지마." 그리움을 못이겨 유통기한을 정한 사랑이 싫다며 애꿎은 통조림만 까먹던 남자 금성무는 그렇게 중경삼림에 이은 북경삼림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손나(주신)에게 지진희가 찾아옵니다. 지진희가 내민 것은 감독이 만든, 그녀와 그가 만났던 지난 날을 생각하게 만드는 한 권의 책입니다. 니웨(장학우)가 앞서 말했던 바로 그 영화의 시작이 되는 이야기들이 실린 책이죠. 혼자 남았지만 헤어진 것은 아닙니다. 집착과 분노를 버린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세 남녀를 차례로 만난 지진희는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추억을 남기고 그곳을 떠납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극중극이라는 형식을 도입해서 남녀 배우들의 감정을 고조시켰던,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를 일견 떠올리게도 만드는 이 영화는 한국 배우 지진희가 출연하여 국내에서도 잠시 화제를 모았었죠.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의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졌던 탓인지 그즈음엔 홍콩영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부쩍 식어 있어서였는지 국내에선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중화권 영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있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중경삼림, 타락천사에서의 금성무가 보여준 캐릭터의 뒷이야기 같기도 하고 지난 날 공리와 장예모 감독의 관계가 저러진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제법 그럴듯하답니다. 사실 여배우와 감독간의 사랑 얘기, 여배우의 지난 과거 얘기야 누구 하나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 사랑과 집착, 분노와 그리움을 숨가쁘게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솜씨가 다들 대단한데 그 중에서도 한국배우 지진희와 여배우 손나 역을 맡은 주신의 연기에 주목해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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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햅스 러브라는 제목은 영화 속 노래 가사처럼 돌아보면 더 뚜렷해지는 사랑의 추억을 감싸안는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지워진 사랑을 일깨우는 도우미로, 진가신은 천사 몬티를 등장시킨다. 저마다 삶의 주인공인 우린 가끔 지나온 시간들을 무리하게 지우곤 하는데, 편집의 희생자는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연인일 수도 있다. 몬티의 일은 그렇듯 누군가의 인생이 잘못 편집됐을 때 잘린 필름을 찾아 배달해주는 것이다. 퍼햅스 러브는 정통이나 본격이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 뮤지컬로, 따지고 보면 뮤지컬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을 따라간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감독은 극이 지루해질 법한 순간에 춤과 노래로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와 극중 뮤지컬에 별도의 생명과 소임을 불어넣어, 끊임없이 서로를 돋우고 영향을 주고받도록 구성했다. 운명의 장난, 엇갈리는 사랑으로, 멜로영화가 허하는 최대치의 스릴을 선사했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현재와 과거와 극중극을 바쁘게 오가는 퍼햅스 러브의 감정과 사건의 밀도는 약한 편이다. 인생을 영화에 비유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지나온 인생 몇권을 통째로 리와인드하게 만드는 그런 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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