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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간, 나를 포함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늘 입술로 고백하는 말,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 <예수를 위한 바보>. 이 책의 저자 데이빗 케이프 목사는 그리고 20여년이 넘게 때로는 환영받기도 하고,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종,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을 따라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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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한 바보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얘기하셨다. 점점 바보가 되어져 가는 것 같다고... 세상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는 모습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기꺼이 바보가 되기를 행복해 하는 바보들을 만날 때 마다 내 영혼은 진동한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영혼구원의 비밀을 펼쳐보이시는 하나님께서 미련해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것들로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듣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가운데 하늘의 역사를 펼쳐보이신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반적 상식, 효과적인 방법, 모두가 환호하는 것들과 상관없는 어리석고 미련한 바보가 되어 단지 순종의 모습으로 그 행진을 멈추지 않는 예수를 위한 바보행진이 이 책에 가득하다. 예수님을 위해 행복한 바보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모두와 나누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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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듯이, 예수님처럼 주님이 명령하시는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무릎을 꿇고 다른이의 발을 씻어주는 사역을 한 사람의 이야기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절절하게 와 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 순례길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되든 개인적인 축복이요, 감동이 될테지만, 여기 이 사람이 걷는 여정은 자신의 삶보다는 주님의 뜻을 그대로 따를뿐인 발걸음'이었다. 솔직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적 순종이라는 생각도 든다. 길 위에서 만나게되는 어떤 어려움이나 두려움도 주님의 뜻에 맡기고 묵묵히 따르는 종'의 모습을 한 그의 여정.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이루시고자 하는 사역의 길 위에서 어떻게 축복이 내려지는지 그의 뒤를 따라가 본다.
책 표지에서처럼 대야가 달린 나무 십자가를 메고, 발을 씻길때 필요한 물을 담은 물통, 수건, 의자 등 20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지고 "예수님이 씻긴 발은 행복한 발입니다"라고 쓴 티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순수하게 섬기는 종의 모습이다. 어떻게보면 천진난만해 보이고, 그런 순전한 믿음과 순종이 이런 여정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흑인의 땅이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 하지만 소수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지배해왔고 그로 인해 이 곳은 오랜 기간 억압받고 불평등한 땅이었다. 그 곳을 자신의 발로 걸으며 가난한 자, 아픈 사람들, 누구든 영혼의 상처를 살피시는 주님이 원하는 곳에서는 어디든 십자가 대야에 그들의 발을 씻기며 막혔던 영혼을 순환 시키며 걷고 또 걷는다.발 씻기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지, 예수님을 모르는 곳에서 그 분이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는지 설명한다는것이 쉬울리 없을 것이다.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간혹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외면 받기 일쑤이고 믿는 자라 할지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거부감이 들때도 있었던거같다. 하나님이 데이빗에게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인간적인 나'를 내려놓고 주님이 보여주는 것에만 순종하는 절대순종'을 바라신다. 그걸 따르는 삶은 결코 녹녹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사람,모든것들을 내려놓기를 주저하고 싫어한다. 그런데 그 모든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원하는 자신으로 누군가의 발을 씻어주는- 결국 이것은 다른이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일 것이다 -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그 길 위에서 불길 속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케 하시고, 부당한 대우와 외면 중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일들이 기적처럼 이어진다. 무엇보다 그의 아내와의 동행으로 동역의 힘과 안식처를 얻는것같아, 하나님이 도우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예비되고 준비되어있고, 또한 끊임없이 훈련되고 시험당하면서 더 단단한 일꾼으로 거듭나는구나 싶었다. 눈 앞에 걱정이 태산같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헤쳐나갈 방법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나 자신을 내려놓는 순종'이 곧 하나님이 바라시는 산 제사가 되지 않을까.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7 -
인생의 길 위에서 각자의 인연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은 영위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행복을 만끽하기도 하는게 사람의 길'일 것이다. 믿는 사람이 다른 것은 주님과 그 여정을 함께 걷는다는것. 우리의 처음과 끝에 언제나 무한한 사랑과 애정으로 걱정하며 안타까와하며 동행하시는 주님의 보이지 않는 발자욱을 뒤로 하며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위험한 순간에도,외롭고 홀로 걷는다 느끼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신다는것에 감사한 마음이 울컥 들어버렸다. 언제나 섬김'보다는 자기의 은혜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들어가는게 아닌가 뒤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했다. -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십자가는 언제나 전진한다 -
한 사람의 섬기는 자'가 전파하는 선한 영향력이 지구 전체를 들썩이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무릎 꿇는 순종'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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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Luke)'의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들로 가득하다. 믿음이 있다면 약 1900년 전의 그 역사들을 믿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말이다. 우리 자녀들이, 그 후의 자손들이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의 이 책을 읽을 때, 마치 사도행전을보듯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믿으려고 하지만, 믿지만, 정말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하면서... 아주 좁고 험난한 길에 초대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바보(?)처럼 순종한 자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어디까지 보여주시는지, 또한 얼마나 신실하게 돕고 인도하시는지 얼핏보게 되었다. 엄청나게 놀라운 일들로 가득한 이 책! 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이 눈물 나도록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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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아무리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모든 사역과 삶을 내려놓고, 이렇게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기본 근저에는 예수님을 위한 바보가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자리잡아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목회자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반응은 좀 어떨까? "저 목회자 저거 또라이 아니야? 제 정신은 박혀 있나?" 아마도 그런 생각과 비판들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조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었다.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삶에서 지속적인 패배의식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그것들을 붙잡고 놓치 않으려는 유아기적 유치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들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곳 저곳을 다녀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유익하게 잘 읽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역시 말씀이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계획해보고, 다시 실행해도 보지만, 그 결과를 제대로 알고 인도해 나가시는 분은 여전히 하나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씻기는 단순한 사역이었지만, 그 사역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도 여전히 하나님이셨고, 그 사역을 통해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신 분도 여전히 하나님 이셨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기대해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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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한 바보’... 이 세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바보가 되어 나타났다. ‘행복한 발’을 위해 살아가는 그의 삶이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오직 주님 말씀 앞에 자신의 전부를 순종으로 드려 예수님 가신 길을 기꺼이 걸어가며 행복을 전하는 그는, 단 하루의 삶조차도 실천하기 두려워하며 고민하는 신앙인들에게 많은 생각과 메시지를 준다. 그 실천의 삶, 첫 발을 띠기 위한 결정은 ‘예수님을 위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족한 것임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마음과 자세가 일치되어 모습으로 드러날 때, ‘순종’이라 자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감동과 감탄으로 고개를 숙이게 하지만 이렇게 귀한 삶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다. 어떻게 삶에 적용하며 결정해야 할지 나만의 숙제를 주님께 나아가 묻고 풀어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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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첫 반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만나는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일 뿐으로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로부터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여겼던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보면 단순한 발 씻겨주는 운동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딱히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또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랑은 상관없는 하나님의 사람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이다. 꼭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꼭 나는 하나님의 일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는 그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자진 납세해버렸다. 아는 언니가 설교 말씀 중에 우리가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그 위대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듣게 된 후로, 어떻게 우리가 그럴 수 있냐고, 정말로 우리가 그런 영광스런 존재이냐고 호들갑을 떨고선 성경에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씀을 찾아내 너무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나를 열외시켜버렸을 때, 아마 하나님께서도 내가 그 언니를 봤을 때의 기분이셨을 것이다. 내겐 그 ‘제사장’이란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무심코 듣고 넘기지만,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빗 목사님이 경험하신 일에서만큼은 주춤하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그런 영광스런 하나님의 종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 듯 하다. 그들도 공개적으로 나가는 일에 스스로 얼간이로 느낄 수도 있고, 두려워 떨 수도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준비된 종이었으니까. 난 아니고!! 그런데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께 처음 명령을 받은 후 14개월이 지나서야 첫 사역을 시작한 것을 보니까 조금씩 내 마음이 변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해 보이는 세족식을 준비하는 데 있어 1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도 놀랍지만, 책을 보면서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사역이라는 것도 내게는 진짜 놀라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이 책을 두고 별천지에서나 온 소식쯤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해주실 거라는 정말 무책임하고 막연한 믿음이 내겐 있었다. 책에서 등장한 일이니까 당연히 선한 길로 모든 것을 예비하실 것이라는 그냥 믿음이. 이 한국 땅과는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진 남아공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동시대에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한국, 아니 수원 땅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발을 씻겨주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행하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쓰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으로 보는 복음의 능력이기에 나는 색안경을 끼고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나는 아직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데이빗 목사님은 아마도 그런 모든 그리스도인, 즉 머리로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이해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는 그런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분명 무서웠고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특히 남아공에는 소웨토라는 백인들은 거의 거주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인,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사람의 생명이 귀하지 않는 지역이 있는데, 목사님이 처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고 두려웠는지 그것은 하나님만 아신다. 하지만 두려워하다가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는 진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 목사님에게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일이 있을 때, 걸을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며 한편으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걸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느낄 순 없을 때가 많아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영적으로 끊임없이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요청에 반응을 해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방언의 은사도 나는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 그것을 보시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도 항상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씀 중 한 가지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나오는 그 말씀이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무엇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온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려고 하는 것이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테니까.
하나님은 믿되, 그의 복음의 능력을 못 믿는다는 것이 말은 안되지만, 어찌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심하다. 그날 입을 것, 그날 먹을 것, 그날 쓸 것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세상의 주권이 다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나는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난 세상의 지혜와 모든 통찰력을 구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한 이야기는 사실 이런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뜻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지혜와 모든 서적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바로 얻어지는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내가 진정 집중해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이지 생활을 위한, 혹은 생계를 위한 지혜나 지식이 아니였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굶겨죽이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혹시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을 사서 하며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바로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구하고 나아가련다. 정말로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나에게 오길 기대한다. 내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 기회를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나의 종을 부르셔서 세족식을 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정말 하나님의 어리석은 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전반부를 보고 위험 속에서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데이빗 목사님이 순종하시는 내용에서 감동받고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속에는 감히 목숨까지도 내어놓았는데 더 이상 할 사역이 뭐가 있냐 하는 오만함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진짜 오만한 생각이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무지막지하게 축소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데이빗 목사님만 바라보고 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정말 놀라웠다. 한 지역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 영적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가 같이 그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일, 한 나라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까지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똑같이 섬기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좋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치유의 역사와 수많은 영혼들의 회심, 견고한 죄의 진들의 파괴는 읽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체험할 수 없다. 청년부 목사님께서 복음에 미친 자 하나가 공동체를 바꿀 수 있고, 그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 우리 공동체가,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우리 직장이, 우리 도시가, 우리 나라가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이렇게 부패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나라가 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각이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정말 우리는 바르게 서있지 못했다. 14개월 동안 데이빗 목사님이 세족식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하셨을 때 일어난 일을 보자. 그 때 초등학생 둘과 사모님이 살고 있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끌 차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차를 도난당했다. 그리고 부엌에서 사모님이 몸을 틀다가 무릎 관절이 탈골된 사건이 일어났다. 무릎 탈골되어 봤는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난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잘못해서 왼쪽 무릎이 삐긋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무거운 이불만 왼쪽 다리로 밀기만 해도 바로 탈골이 되었다. 그 고통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다리를 든 채로 아무것도 만지지도 못한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려야 할 뿐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저절로 멀쩡해지는데 그 순간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만약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냐나고 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목사님 부부는 기도 먼저 했다. 하지만 차도 없고 시간이 지나가도 무릎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보고 수술을 결정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셨단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에게 차가 있고 건강이 온전하면 네게 맡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일을 하라.”
난 가끔 말한다. “하나님, 전 그 때 너무 아팠어요. 그 때는 정말 힘들었고요. 그 땐 제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수두룩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 선대하며 축복하며 종처럼 섬기지 못할 때의 내 변명들이다.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그저 내가 아프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문제는 항상 핑계를 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신다. 내가 충분히 하지 못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지켜보신다. 그것이 진정으로 믿음일 테니까 말이다. 상황이 되고 여건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그것이 정말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도 된 양 그렇게 자기합리화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일 때, 가장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정말로 내가 어려워지면 찾게 되는 이가 바로 내가 믿는 이이니, 여기서 내 믿음을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어서 하길 바라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을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가능할 때도 하길 바라신다. 왜냐하면 세상을 상대로 이긴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있으니까!!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은 정말 크고 놀라울 만큼 방대해졌다. 그의 삶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의 사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길을 돌려 중동지역으로 들어가셨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그것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은 종이다. 아마도 그 다음은 우리가 아닐까. 우리가 그를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이 발걸음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권적으로 드러나는 역사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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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십자가 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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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의 사역을 보면 문득 떠오르는 물건과 단어가 있다 바로 나무로 만든 대야 십자가와 순종이다 나무로 만든 대야 십자가는 종의 마음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정말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역 도구 였다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것 처럼 모든 이들의 발을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발을 씻겨주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신 목사님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목사님의 사역을 보면 하나님앞에 절대 순종 하는 모습을 계속 느끼게 된다 순종은 정말 지키기 힘든 것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은 절대 순종으로 많은 이들을 치유케 했으며 회개의 역사를 일으킨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이런 사역을 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책을 읽는 독자들은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한 자가 되길 기도한다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을 보면서 느낀점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들어 쓰시는 것을 또한 느낄수 있었다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을 보면서 그냥 우린 하나님의 도구 인것을 볼수 있었다 머리는 주님이고 우린 그의 몸의 지체가된 우린 그저 하나님의 도구인 것이다 주님은 명령만 하시고 그 몸의 지체인 우린 그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되는것이다 우리도 주님께 절대 순종하면서 이 마지막 시대를 믿음으로 순종으로 살아가야될것이다 이책의 제목처럼 우리도 예수님 한분만을 따라가는 바보가 되길 그분을 위한 바보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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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한 바보”라는 제목처럼 ‘나는 과연 예수를 위해서 바보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 이의 말처럼 아마도 나 역시 자격미달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지 않아야할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무모한 줄 알면서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신앙의 성장 역시 나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지만 자꾸만 접하게 되고 따라하다 보면 최소한의 발전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물론 세상에는 실제로 이러한 삶을 사는 신앙인이 있는 줄 안다. 그런 분들은 예외이다.) 세상에 대하여 초연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보다 높은 신앙적 이상을 던져주는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저자는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맹목적인 것 같지만, 확실한 목표를 안고서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증명하였다. 가식적인 말과 책임지지 못할 말, 심지어는 남을 속이는 말이 난무하는 근간의 세태 속에서 어쩌면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신앙의 진실성’을 향한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육체적, 경제적, 또는 정신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보다 낮은 이를 위한 부름에 순복하는 저자의 신앙적 자세는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사안이다.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자들이 보다 높은 신앙적 이상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참 된 신앙의 길이란 물질의 풍족도, 명예의 충족도 아닌, 오히려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철저히 버리신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