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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가물에 콩나듯 거의 읽어 보지를 안했지만 '한밤의 궁전'을 통해 암울했던 시대와 황량한 공간,치열한 추격전과 함께 스릴이 넘치는 환상을 느끼게 했다.쌍둥이 부모를 살해한 자와할과 그들을 지켜 주려는 사람들과 자와할의 행적등이 어둡고 을씨년스러우며 공포심을 자아내게 하는 공간에서 진행이 되는데 쌍둥이 벤과 쉬어의 비극적인 운명과 부모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쌍둥이는 범인을 잡아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불사르게 되고 이는 이언등 7명이 주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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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판타지스릴러를 처음접한건 천사의 게임이었다 이후 9월의 빛을읽었고 아쉽게도 안개의 왕자는 아직 읽지 못했다. 안개3부작중 마지막이야기 한반의 궁전을 이제막 읽었다. 역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표의 판타지와 스릴러의 결합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밤의 궁전의 시작은 컬커타의 그밤을 갖이 겪은 이중 이언이 화자가되어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가내리는 깊은밤 한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가고 있다. 그의 품에는 두명의 아이가있다. 그남자는 지친상태였지안 품안의 아이를 살려야한다는 목적으로 달려고 있다. 드디어 아이들의 할머니품에 아이들을 넘기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면 되돌아서 그를 쫓는 이를 기다린다. 그런 그앞에 검은그림자가 나타나 아이들을 찾지만 그의 입은 열리지 않고 죽는다. 그를죽인 그림자는 아이들을 찾을 것이라고 맹세를한다. 세인트 패트릭스 보육원문앞에 아이를 부탁하는 편지와 함께 아이를가 발견된다. 그와 동시에 원장인 카터앞에 자신이 자와활이라는 남자가 아이의 행방을 묻지만 카터는 아이의 존재를 부정한다. 자와활은 16년후에 아이를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자와활은 16년뒤에 돌아올 것인가? 세월은 흘렀고 보육원의 아이들중 7명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비밀결사대를 만든다 차우바 소사이어티는 한밤의 궁전이란 비밀아지트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서로의 우정을 키워나간다. 16세가되면 세인트 패트릭스를 떠나야한다. 16년뒤에 찾아온다는 자와활 그가 찾는 아이는 누구일까 차우바 소사이어티는 자와활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중 한아이 벤이 자와활이 찾는아이다. 그런 그날밤 같이 살아난 아이는 어디에 운명은 세인트 패트릭스 보육원을 중심으로 자와활이 찾는이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자와활과 벤 그리고 벤의 또다른 가족사의 비밀이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멤머를 중심을 서서히 들어나게된다. 인도라는 신비의 나라와 빈곤과 빈부의 격차 그리고 그들의 발목을 잡는 식민지의 조국의 상황과 맞물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판타지와 스릴러를 표방하는 한밤의 궁전속에서 벌어지는 불의쑈는 환상이다. 탄타지가 아니라면 절대 있을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자와활이라는 인물의 미스테리함 그리고 그는 왜 아이들의 쫓는것일까 진실은 나의 상상밖의 이야기가 들어난다. 마지막으로 가장 불쌍한 존재 악의 화신으로 느껴지던 자와활의 선택은 결국 인간의 선한마음은 내면에서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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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을 즐기는 방법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소설을 즐기는 데에는 최소한 세가지의 방법이 있다. 즉, 한 편의 소설을 읽을때 최소한 세가지의 관점에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인데, 등장인물, 특히 화자나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을 이러한 방법을 따르고 있고, 작가들 또한 독자들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곤 한다. 아주 평범해서 어떤 독자라도 거울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보편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이야기를 진행하게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엔 이야기의 주인공은 화자가 바라보는 제3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화자인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엔 서술시점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독자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화자에게 이입될 수 있다. 독자는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 혹은 화자의 실제 경험담을 듣는 듯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다.
두번째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방법인데, 등장인물들 중 화자와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에게 집중해서 읽는 방법이다. 어느정도 볼륨이 있는 직품이라면 주인공이나 화자 외에 이야기의 축을 이끌어가는 안타고니스트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니, 그렇게 프로타고니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들 주변에는 흥미로운 조연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주 쉬운 예로, [배트맨]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에서 프로타고니스는 '배트맨' 이다. 당연히 안타고스트는 '조커' 나 '펭귄' '캣우먼' 등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아주 흥미로운 조연들이 있으니, 바로 고담시의 형사과장이자 배트맨의 조력자인 '짐 고든' 형사. 그리고 배트맨의 오랜 친구이자 웨인가의 집사인 '알프레드' 이다. 그 밖에 배트맨의 사이드킥인 '로빈' 이나 고든의 딸인 '오라클' 그리고 후에는 강력한 안타고니스트로 변모하는 투페이스 '하비 덴트' 검사 등도 있다. 이런 주변 인물에 집중해서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알프레도의 입장에서 '배트맨' 영화를 다시 보아도 아주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세번째는 작가의 다른 작품군을 폭넓게 읽어봐야 가능한 방법인데,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며 읽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책을 정독해서 읽고, 읽은 뒤에 그 내용을 곱씹어 사색해보는 타입이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경우엔 '장 도미니크 보비' 의 [잠수복과 나비] 나 '키토 아야'의 [1리터의 눈물] 을 접한 뒤에야 진지하게 생각해본 방법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오로지 언어영억 문제풀이를 위한 독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속독법엔 몇가지 스킬이 있는데, 아마 왠만한 분들은 다 아실만한 방법들이다. 눈으로 읽는 단계를 거쳐, 대각선으로 읽기, 주어구와 서술구 나눠 읽기, 동사만 읽기, 명사만 읽기 등등 말이다. 20대 중반까지는 나 역시 이런 독학한 속독법에 익숙해져서 '정독' 을 하는 책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듯, 눈을 깜빡거려서 한권의 책을 완성했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를 손에 들었을 때, 그렇게 쉽게 술렁술렁 읽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신이 마비된 장 도미니크 보비가 힙겹게 완성한 한 권의 얇은 책. 과연 그 안에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까. 나비처럼 날고 싶은 영혼을 끈덕지게 붙들고 있는 잠수복 같은 육체안에 갖혀서,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철자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을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나아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작품들엔 그와 같이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가지 방법만 이용하더라도 책 한 권 읽는데 한주일은 우습게 넘어간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동안 설렁설렁 읽은 책들도 다시 손에 들게 된다. 내가 놓친 인물들 한명 한명들이 다 사랑스러워 진다. 5번도 더 통독한 폭풍의 언덕에서도 새로운 인물들과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이후에 만난 작품들 중에 '루이스 사폰' 의 [천사의 게임] 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접하게 되었다. 유럽 특유의 모호함과 서양 특유의 뚜렷한 분할, 스페인 특유의 음울함과 유럽 특유의 낙천적임이 말도 안되게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소설이었다. 지금 막 종장을 덮은 [한밤의 궁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마음을 단순히 선과 악 - 그리고, 그 중 악에 속한 부분은 한없이 잔인하고 끔찍한것으로 이분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점을 가지고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뚜렷한 인과관계 속에서 개연성 있는 스릴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며, 권선징악의 동화적인 결말 또한 너무 2차원적이다. 확실히 가장 최근작인 [천사의 게임] 에 비하면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준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콱 박혀진 베이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야기 내내 평면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루이스 사폰이라는 작가가 초기작부터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한밤의 궁전]의 이야기는 인도의 캘커타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캘커타의 한 보육원에 살고 있는 7명의 고아 소년들. 절친한 친구사이인 동갑내기 소년둘 중 리더인 '벤' 의 출생의 비밀과 무시무시한 악당인 '자와할' 과의 숙명적인 대결. 작가는 애초에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디테일하게 그리려는 의도를 완전히 배재하고, [대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벤과 소년들은 피할 수 없는 [대결] 을 인지하고 그것을 준비해 나간다. 등장인물들의 성장이 그려지는 부분은 이 부분에서 아주 잠깐이다. 단호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에 맞설 수 밖에 없음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 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소년은 어른이 된다.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대결] 그 자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벤' 이 아닌 평범하기 짝이없는 소년 '이언' 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중간중간 편지문을 등장시킴으로서 이야기의 화자가 '이언' 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주지시킨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인도의 [캘커타] 라는 도시 또한 상징적이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 모든 유럽인들이 황금이 넘치는 낙원.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신화와 전설의 나라, 인도. 각종 도시 괴담들과 정령,악령, 불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트레이트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훌륭하게 자리잡아 나간다.
작품은 확실히 작가의 초기작답게 이야기를 간결하고 적확하게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적당히 독자들을 속이기도 하는데, 그 부분은 '자 이제부터 독자들을 속일겁니다' 라는 암시를 드러내 버려서 오히려 더 긴장하고 집중하게 만든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나를 속이는 걸까? 어느 부분을 어떻게 속이는 걸까?' 라고 의심하며 바짝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대결부분에 대한 정신없고 스펙타클한 묘사도 굉장하다. 아마 책의 클라이막스부분에서 책장을 덮은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오싹함과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사폰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는 낯설지만 익숙하다. 흔히들 서양 문학의 정서 전달은 보다 직접적이고, 한국 문학은 보다 우회적이라고들 한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호러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면, 헐리웃 작품은 베고 썰고 죽이는 살인마들이 눈 앞에 불쑥 불쑥 등장하며 깜짝 깜짝 놀래킨다. 한편, 한국 영화는 뭔가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고, 나올락 말락 하다가,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며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루이스 사폰은 독자들의 감정을 그 두가지를 아주 잘 활용하며 쥐락 펴락 한다. 그리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우며 대단히 능숙하다. 명확하지만 몽환적이고, 뚜렷하지만 음울한데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 역시 참 다들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벤의 이야기가 중심이기에 큰 비중 없이 배치되어 있지만, 한 명 한 명이 모두 개성적이다.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욱 길게, 많이, 오래 보고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주변에 멤돌게만 할 수 있었을지. 작가도 아주 아쉬웠을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을 품고 있다. 위에도 언급했듯, 선과 악의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지만, 누구나 양심이 가로지른 라인이 존재한다. 그 라인의 이쪽 편은 선이고, 저쪽편은 악이다. 때로는 선과 악이 혼합된 영역도 있으며, 그 두 가지가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삶의 대부분의 일에서 사실 선과 악을 구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너무나 완벽한 '악' 을 분별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그 감정이 무엇으로부터 파생되었는지 생각해내는 것이다. 때론 사랑에서 파생된 행위가 악한 것으로 규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오에서 파생된 행위가 선한 것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없다. 증오는 언제나 악이다. 이분법적인 구분을 싫어한다고 몇번이나 언급했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안 한 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수 많은 것들 중에서 두 가지를 나눠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 경우일 터다. 증오는 반드시 악을 파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한다면, 삶은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서 언제나 지글거리며 나의 살을 태워낼 뿐일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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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 여전히 달가워 하지는 않는다. 세상과는 동떨어진 미스터리하고 괴기한 이야기가 그저 유치하다,고만 생각했던 이유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그 까닭이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 이른바 모든 아이들의 ‘제 2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리포터」 시리즈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자세한 내용까지는 생각이 안나지만, 그때 당시, 지금도 물론 밸라, 혹은 벨라 라는 별명을 가진 나에게 ‘안녕, 벨라요정. 난 헤르미온느야.’ 라고 시작되던 그 편지를 첫 문장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의 강력한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분명 그때의 나라면, 그 편지를 찢어버렸겠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편지함 상자에 자신의 자리 한켠을 마련하고 있다. 난 아마 그것을 읽으며 욕설을 내뱉으며 상자에 던졌겠지. 그런데 그런 내가, 「해리포터」 그것을 읽었다. 그것도 3일이라는 최 단시간 내에 마지막 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를 말이다. 때는 대학 일학년인 스무 살. 모델 구상을 해야하는데, 딱히 마땅한 도안이 떠오르지 않아 눈만 빙빙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과오빠가 중학생인 자신의 동생에게 읽힌다며 대출받아놓았던 책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손에 들고 우리 중학교 때도 참 많이 읽었었는데,라며 운을 떼고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재미있네 -.
그 이후로도 평생 읽을 것 같지 않던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책을 (내 나름대로) 꽤 많이 접했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했던 「위저드 베이커리」 ,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에 국한될 줄만 알았지만, 그 역시도 로맨스에 판타지라는 밑바탕이 깔려있었던 「시간 여행자의 아내」 와 「트와일라잇」 , 그리고 이번에 읽은 청소년 판타지인 「한밤의 궁전」 - 이 책을 겨우 몇 장 넘겼을 때만 해도, 추리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미치도록 화창한 봄날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실례인데, 라며 책을 펴들었으니까.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기에, 음산하게 그려진 표지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리라. 아니, 실은 책을 읽고 난 후부터도 역시 100페이지가 넘어가기 전까지도 난 그런 장르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 중간마다 그가 비를 멈추게 한다던가, 백지 상태의 편지가 몇 시간 후에 채 마르지도 않은 빨간 잉크로 써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충분한 복선이었음에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일곱명 중 (어쩌면 여덟명) 한 아이, 이언. 그의 독백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에워싼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의 시작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누군가의 독백을 듣게 된다는 것은 김이 빠지는 일이기에, 또,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야기를 읽고 다시 읽어보기로 하고, 과감히 건너뛰기로 한다. 독자들이 직접 작품과 맞닥뜨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그의 말처럼. 그래서 나에게 이 이야기는 1916년 후글리 강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남자가 갓난쟁이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무작정 달리고, 누군가 그의 뒤를 밟으며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남자는 아이들을 ‘아르야미 보세’에게 무사히 양도하지만, 그녀는 아이 둘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아이만을 캘커타의 한 보육원에 맡기게 된다. 아이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차우바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의 아이들과 비밀 결사단을 만들고, 보육원에서 내보내야 할 나이인 16세가 되어 이제 2주 후가 되면 그 보육원에서 나가 홀로 설 준비를 해야한다. 그때,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아이를 찾던 그 사람. 자와할. 그는 무엇때문에, 아이를 쫓고, 무려 16년동안이나 기다려왔는가.
이 책은 분명, 가독성은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길어질수록 늘어지며 헐거워지는 것을 보기가 힘겨웠고, 끝내는 작가에 따라 나 역시도 슬렁슬렁한 마음으로 책을 보았던 것을 고백하다. 그 까닭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집어내자면 - 혹여, 이 이야기가 영웅 스토리를 살리고자 했다면, 인물 묘사가 아쉬웠음을 얘기한다. 독자는, 아니 나의 경우는 대개 이런 식의 소설을 마주할 때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끌어갈 만한 또 다른 인물을 구축해놓는다. 그리고 홀로 저자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가며, 이럴 땐 이 사람이 나와줘야 하는데,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벤’은 이미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단 한명의 인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들이 적어도 비밀 결사단에 의해 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니, 구지 그렇게 따지자면 ‘벤’ 역시 스스로 한 일은 하나 없다.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했을 뿐. 어찌됐건 난 ‘벤’을 제외한 ‘마이클’을 잡아놓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어떤 인물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아, 단 한 사람. ‘피크 중위’ - 내가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인물들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언의 독백을 통해서였는데, 고작 세 장만을 통해 인물을 알아가기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그 세 장에는 ‘누구는 어떻고~’ 식이었는데, 그것이 아닌, 그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독자 스스로가 ‘아, 이 아이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고, 부족한 때에 작가가 끼어들어 다른 인물을 통해 부연설명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갖는 것이다, 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독자 개개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다 맞추진 못하지만, 인물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는 점은 추리 혹은 판타지 소설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 설령 그런 장르의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배경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지 않는 이상 결코 뒷전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번 째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점이었다. 특유의 개성도 없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리저리 굴린다 한들, 내 머릿 속에는 제대로 각인되어 있는 아이들이 없다. 그저 인도 박물관 도서관에서 자와할에 관련된 서류를 찾는 아이들이 있었고, 역사 상단에 둘러쳐진 돌출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고, 지터스 게이트 역사 제일 상단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으며, 터널에 있었던 벤이 있었다. 라는 것밖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그 시점들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이 역시 첫번 째의 까닭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세번 째는 ‘권선징악’ -. 과연 이 책이 청소년 판타지라서 그럴까, 글쎄. 이야기의 마무리가 결국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구나, 라고 체념하는 데에는 작가에 대한 희망마저 실린 것이다. 작가의 책을 난 이 책으로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은 셈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사실 처음 자와할에게 쫓기던 피크 중위를 볼 때는 이 책이 흥미진진하겠구나, 생각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겠구나,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야기란 도입부보다 클라이맥스에서 독자를 안달복달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때 손을 놓았다. 또한, 처음에 궁금증을 자아내던 것들은 노부인의 한 번의 거짓말로 인해 한꺼번에 틀어지고, 진실을 이야기할 때 즈음에 설레야 할 이야기들이 설레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앞서 말했듯, 헐거워진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끝이 나고, 책장을 다 덮은 후에도 뭔가 모를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작가가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아비의 사랑일까, 그들의 우정인가, 그도 아니면 정말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권선징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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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성쌍둥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너무 궁금했다. 판타지라고도 했다. 어드벤처라고도 했다. 시대적배경이나 자세한 내막도 모른채, 다만 이란성쌍둥이의 기묘한 해프닝에 대한 단서만을 붙잡고 그 단서만으로도 너무나 궁금해져버린 나였다. 어린아이들의 모험담이라니 살짝 어렸을때 봤던 영화 <구니스>나 <피터팬>을 떠올리며 맥이 풀려지려했지만, 읽기도 전에 맥이 풀리지 않는건 순전히 저자의 명성이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9월의 빛>,<안개의 왕자>와 함께 안개 3부작으로 유명하다는 이 소설은 나를 다독이기 충분했다. 저자는 스페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무대는 인도 캘커타이다. 이 소설을 쓰기위해 인도를 충분히 방문을 했는지, 아니면 인도에서 원래 생활을 좀 하셨는지 알수는 없지만, 인도인이 아니면서 인도가 배경이고 인도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다니 참 의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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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지라 소설 <바람의 그림자(La Sombra del Viento)>로 2001년 스페인에서 무려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고, 세계 30여 개 국에서 20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현존하는 스페인 작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Carlos Ruiz Zafon)”의 명성만큼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의 책들을 만나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드디어 그의 신작인 <한밤의 궁전(원제 EL PALACIO DE LA MEDIANOCHE/살림출판사/2011년 2월)>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첫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스릴과 긴장감으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탁월한 재미를 주는 판타지 스릴러 소설이었다. 1916년 5월 인도 캘커타, 갓 태어난 쌍둥이 아이를 가슴에 품은 영국군 군인 마이클 피크 중위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 밤의 어둠과 집요하게 쫓아오는 추격자들을 간신히 따돌리고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아르야미 보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는 추격자들을 멀리 유인하지만 총알로 머리에 구멍이 났음에도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금세 아물어 버리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자와할”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다음날 새벽, 아르야미 보세는 두 아이 중 남자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밀봉된 편지와 함께 “토마스 카터”가 운영하는 “세인트 패트릭스 보육원” 문 앞에 놓아두고, 보육원을 방문한 자와할은 아이의 존재를 부인하는 토마스 카터에게 16년 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 찬조금을 내려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32년 5월 24일 보육원에 맡겨졌던 쌍둥이 남자 아이 “벤”은 자신의 친구들인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과 함께 성인 축하파티를 치루게 된다. 그날 밤 아르야미 보세와 손녀" 쉬어"가 원장 카터를 찾아와 아이들 맡기게 된 사연을 털어놓고, 카터 원장은 “벤”이 바로 16년 전 맡겼던 아이라고 일러준다. 그날 새벽녘 카터 원장에게 자와힐이 찾아오고, 원장실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카터원장은 크게 다친다. 병원에 호송되기 전 원장은 벤에게 아르야미 보세만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다음날 벤은 친구들과 함께 아르야미 보세를 찾아가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 즉 아버지 "찬드라 차테르기"와 어머니 "킬리안"의 이야기와 "자와할", 그리고 이제는 폐허가 되어 버린 지터스 게이트 역사의 끔찍했던 화재 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차우바 소사이터티 멤버 아이들은 각자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지는데, 그중 한 아이가 지터스 게이트 역사를 조사하던 중 실종되고 만다. 아이들의 조사로 과거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음이 있음을 알게 된 벤과 쉬어는 아버지가 남겼다는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쉬어가 자와할에게 납치를 당하고, 아르야미 보세의 집 또한 불타게 된다. 진실을 알기 위해 할머니인 “아르야미 보세”를 다시 찾은 벤과 일행은 숨겨진 진실을 다시 듣게 되고, 모든 사건이 시작된 곳이자 쉬어와 친구가 잡혀 있는 지터스 게이트 역 폐허 현장으로 향한다.
이미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리고, 이 세상은 온통 미치광이와 위선자들만 가득하다는 자와할의 외침을 간단히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저런 물음에 말문이 막혀 그대로 주저앉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벤과 쉬어, 그리고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굳건한 우정과 신뢰로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초자연적인 공포와 어쩔 수 없는 희생에서 비롯된 깊은 슬픔마저 극복해내고 진정한 성인 통과의례를 의연히 치뤄낸다. 어쩌면 사폰은 이 책에서 아무리 진실이 충격적이거나 무섭더라도 결코 회피하거나 또는 그대로 순응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하고 극복해내는 용기야 말로 어른이 되기 위한 진정한 덕목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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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이라 이름붙인 일곱 소년, 소녀들의 열여섯살 아지트. [돈키호테]의 작가 이후 최고의 팬층을 지녔다는 스페인 작가 사폰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인도 캘커타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내가 네 안에서 살아갈 거다, 쉬어. 너의 머릿속에서, 너의 영혼 속에서, 네 몸 안에서." 자와할이 대답했다.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네 입술은 나의 입술이 되어 있을 것이고, 네 두 눈은 내가 보는 것을 보게 될 거야. 내일이면 넌 불사신이 되어 있을 거다, 쉬어. 아마도 더 바랄 게 없을걸?" (중략) "널 사랑하니까, 쉬어... 너도 이런 말 들어봤을 거다. 사람들은 늘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죽이고 산다는 것을 말이야." (p.284)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이 얼마나 덧없는 지를 보여주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또 그 반대라는 우스갯소리는 아마도 철학적 사고에서 나왔거나 경험한 누군가가 진정을 담아 내뱉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절대적인 친절이란 거, 사랑이란 거 없을 지도 모른다. 타인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지독하게 자신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처럼. 살아가는 게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많이 했다. 지루하게 살 바엔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쩜 지루할까. 왜 지루한가. 내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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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다른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를 구매해 놓고 읽지 못하다가 <안개의 왕자>와 <9월의 빛>을 구매해 놓고 있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안개3부작이라고 하지만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아 이야기가 이어지는지 모르겠지만 환타지적인 스릴러라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이 책은 16세 소년과 소녀들이 악과 대응하여 이겨내는 이야기다. 요즘 읽은 책중에서 <달과 게>도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였고 이 책도 그렇지만 <7년의 밤> 또한 사춘기 소년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를 이라고 있으니 다른 책들과 비교하게 되었다.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아직 자아가 완전하게 성립되지 않았지만 어른에 끼고 싶어하는 아이들,그런 소년 7명이 모여 서로의 능력을 한데 모아 어른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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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은 그 동안 별로 읽지 않았던 장르의 책이기 때문에 작가인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주목 받으며 천재 판타지 스릴러 작가라는 칭호를 받는 작가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물론 그가 발표한 <한밤의 궁전>이 <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의 왕자 - 오르페우스호의 비밀>와 함께 ‘안개 3부작’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주로 청소년 도서를 중심으로 책을 읽다가 판타지 스릴러 장르의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과연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를 하며 읽었고 책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다. 1916년 5월 캘커타의 피크 중위는 폭우를 뚫고 두 갓난아이를 아르야미 보셰에게 전하고는 자신의 뒤를 쫓아온 자와할(Jawahal)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아르야미 보셰는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아이는 세인트 패트릭스 보육원의 카터 원장에게 맡기고, 다른 한 아이는 자신이 데리고 몸을 피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하게 길러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1932년 5월 25일 만 16세가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일곱 멤버인 벤과 이소벨, 시라지, 로샨, 마이클, 세스 그리고 이언은 졸업생들을 위한 송별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 노부인과 함께 보육원을 방문한 소녀 쉬어를 자신들의 멤버로 받아들인다. 다음 날 보육원에 화재가 나고 노부인(아르야미 보셰)을 찾아간 벤과 친구들은, 벤과 쉬어가 쌍둥이 남매이고 그들의 아버지 라하와즈(Lahawaj) 찬드라 차테르기와 어머니 킬리안을 살해한 살인마 자와할이 그들마저 죽이려 맹세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그들을 죽이러 나타날 것이기에 몸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벤과 쉬어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로 결심하고,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끔찍한 공포를 알지 못한 채 벤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도서관과 지터스 게이트 역 등으로 조사를 하러 간다.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멤버였고, 특히 벤과 가까웠던 이언이 자신들이 겪었던 무시무시했던 사건을 들려주는 현재의 시간이고, 다른 둘은 벤과 쉬어가 태어났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해인 1916년, 그리고 벤과 쉬어를 해치기 위해 자와할이 돌아온 1936년이 그것이다. 벤과 쉬어 그리고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은 자와할에 맞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 찬드라 차테르기 필생의 역작이었고 그가 최후를 맞았던 지터스 게이트 역사와 자와할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찬드라 차테르기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지은 집을 찾기도 하지만 이소벨을 시작으로 해서 시라지, 쉬어가 차례대로 자와할에게 붙잡히고, 아르야미에게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불의 영혼 자와할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듣게 된다. 남은 친구들마저 모두 자와할에게 잡힌 지금, 과연 벤과 쉬어는 증오로 가득한 자와할을 막을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이 과거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과연 자와할의 정체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었다. 불붙은 기차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악령이 과학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과연 임산부를 해치고 16년이 지난 뒤에도 그 아이들을 죽이려고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에 대한 아르야미의 첫 번째 이야기는 진실의 반만을 들려준 것으로 책을 읽는 내내 빠진 퍼즐 조각으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친구들의 조사도 벽에 막힐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긴가민가 의심해 오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만, 너무도 강력한 자와할의 존재 앞에서 긴장은 전혀 줄지 않고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지 숨을 죽이게 만든다. 이 소설의 긴장은 쌍둥이를 구한 피크 대위의 죽음으로부터 16년 뒤 보육원에 자와할이 나타나며 고조되는데, 작품의 끝까지 자와할의 정체를 감춤으로써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한밤의 궁전’은 캘커타에 있는 거대한 버려진 폐가로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의 아지트로, 그들이 보육원을 빠져나와 몰래 비밀회합을 갖던 곳이다. 어둡고 불길한 작품의 내용과 어울려 한밤의 궁전이라는 이름은 소설 전체에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작품의 마지막 캘커타에는 찬드라 차테르기가 자신의 책에 남긴 ‘시바의 눈물’에서처럼 하얀 눈이 내린다. 마치 캘커타를 흉악한 도시로 만들어 버린 저주가 풀렸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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