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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르르 꿀꿀 / 장수진] 불태우는 시의 조각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장수진] 불태우는 시의 조각" 내용보기
가끔, 나를 난감하게 하는 시집이 있다. 별다른 감동이 없고, 북마킹을 해야 할 시들도 별로 나오지 않는 시. 더더군다나, 이 시집엔 해설조차 없다. 그래서 시집이 왜 나왔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경우. "술은 뒤집혀 / 불타고 // 불은 부리가 되어 / 탄 숲을 새의 눈 속에 넣고 // 날아갔지 // 돌아오기 위해 //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 심부름을 했지 // 불은 내 거야" - <친애하
"[사랑은 우르르 꿀꿀 / 장수진] 불태우는 시의 조각" 내용보기

가끔, 나를 난감하게 하는 시집이 있다. 별다른 감동이 없고, 북마킹을 해야 할 시들도 별로 나오지 않는 시. 더더군다나, 이 시집엔 해설조차 없다. 그래서 시집이 왜 나왔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경우.

 

"술은 뒤집혀 / 불타고 // 불은 부리가 되어 / 탄 숲을 새의 눈 속에 넣고 // 날아갔지 // 돌아오기 위해 //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 심부름을 했지 // 불은 내 거야" - <친애하는 비애> 전문

 

어쩌면, 이 시집 불태우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왠지 냄비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데 / 그럼 안 되겠지 / 울고불고 / 라면 먹다 미치면 안 되겠지" - <어느 날 여탕에서 문득> 일부

 

안되는 건 안되는 거지. 당연한 걸.

 

"비 오는 소리가 짜락짜락 나 / 문 쪼께 열어보니 넘실넘실혀 걍 / 죽겠어 깐딱하면" - <*폭우 혹은 사랑> (*전남 담양 폭우 피해자 진봉덕 님의 인터뷰)

 

200페이지가 넘는, 단권의 시집 분량 치고는 꽤 많은 분량. 정말, 깐딱하면 죽겠는데, 오히려 짧은 시집보다 더 빨리 읽히는 건 왜일까.

 

"죽음은 어떤 걸까 // 어제 밥을 짓던 한 여인이 // 오늘 수만의 군중 앞에서 // 큰 소리로 선언문을 읽는다는 것은 // 그때 한 사람이 // 한 움큼의 태양을 손아귀에 쥔 채 // 군중 밖으로 // 영원히 사라진다는 건 어떤 걸까" - <질문들> 전문

 

이 시집은 순식간에 읽고 순식간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 실제로 불태울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 불태워 버리는 거야. 그게 이 시집의 의도가 아닐까. 그래도, 몇 편의 파편은 남겠지. 이 순간이 아무 의미없었다고 말하기엔. 사랑은 우르르 꿀꿀, 그냥 그렇게 넘어지니까.

 

 

h******o 2018.05.13. 신고 공감 6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