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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영화화된『위대한 개츠비』의 국내 개봉에 맞춰 이래도 될까 싶은 정도로 각 출판사마다 사활을 걸고『위대한 개츠비』 홍보에 발벗고 나섰다. 2013년 상반기 출판계를 결산한다면 아마 ‘위대한 개츠비’가 1위로 랭크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와 더불어『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관심도 영화계와 출판계를 중심으로 한동안 뜨거웠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다음과 같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 미국 모너니즘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191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시어도어 드라이저의『시스터 캐리』(1900)을 읽어야 하고 193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존 스타인벡의『분노의 포도』(1939)를 읽어야 하듯이,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1]고 할 정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재즈시대, 로스트 제너레이션 등으로 표현되는 당시 1920년대의 미국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묘사해낸 작가로 평가된다. 잘생긴 외모와 문학적 재능, 낭만적 기질, 젤다와의 열정적 사랑과 결혼, 작품의 상업적 성공 등도 그의 작품만큼이나 매우 드라마틱하다. 피츠제럴드는 이미 23살에 부와 명예를 모두 갖게 되지만, 지나친 낭비와 사치스러운 생활로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갈등에 빠지게 되고, 문학적 재능도 허비하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친다. 그런데 그의 낭비와 사치생활, 이로 인한 무분별한 작품활동은 모두 그의 아내였던 젤다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피츠제럴드가 부에 대한 강박을 가졌던 것도 상류사회의 호화로움과 파티에 빠진 것도,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잡지 등에 기고를 하며 재능을 낭비한 것도 모두 사치스럽고 정신질환까지 있던 젤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마치 정설처럼 굳어져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러한 평가를 사실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한 번쯤이라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라면 이 전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심지어 여성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굳어진 여성에 대한 평가들을 별 의심없이 수용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반성하는 차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똑똑한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역사는 어쩌면 현대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제 이름을 가지지 못한 때 철저히 ‘익명’에 가려져 있다. ‘사치스러운’, ‘정신질환을 앓은’, ‘불륜으로 부부관계를 망친’이란 수식어 외에 우리가 젤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낸시 밀포드가 쓴 『젤다 Zelda』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데, 이 책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문학사상에서 그리고 역사상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이자 남편을 망친 장본인으로 인식되고 평가되어온 젤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악녀’라는 타이틀 뒤에 철저히 익명으로 존재했던 ‘젤다’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피츠제럴드의 전기에서 젤다는 남편의 재능을 질투하고 남편의 창작 능력을 파괴하려고 했던 아내로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정신병으로까지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젤다는 평생 정신병을 앓았으며 1947년 입원해 있던 병원에 불이나 죽는다. 그런데 낸시 밀포드는 이 전기에서 젤다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밀포드에 의하면 실질적으로 배우자가 가진 문학적인 재능에 질투심과 위협을 느낀 것은 젤다가 아니라 스콧이다. 스콧이 소설을 완성하기 전 젤다가 먼저 소설을 쓰자 불같이 화를 낸 일화도 전한다. 우리에겐 그저 ‘스콧 피츠제럴드의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은 아내’로 알려진 젤다는 사실 재능 있는 소설가였으며 그림과 무용에도 두각을 보였다. 젤다는 그녀가 가진 재능들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혼생활 동안 젤다의 천재성은 무참히 파괴되었고, 이로 인해 젤다는 크게 상처를 입었다는 게 낸시 밀포드의 입장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것인가를 감안하고 동의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젤다에게 스콧과의 결혼 생활은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쇼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꿈과 재능을 파괴하고 상처만 남겼다. 남성으로서 스콧이 ‘결혼’이라는 제도 하에서 아내인 젤다에게 요구한 것은, 우리가 부부 사이에서 흔히 겪는 그러한 갈등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그동안 ‘스콧피츠제럴드의 아내’로서 단지 몇 줄로 짧게 약술되었던 젤다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낸시 밀포드에 이르러서야 젤다가 피츠제럴드를 망친 게 아니라 피츠제럴드가 젤다를 파괴시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도 있고 성공에 대한 꿈과 야망도 있던 여자가 결혼을 통해, 혹은 사회라는 큰 벽을 대하면서 어떻게 망가져가는가라는 측면에서 읽다 보면 이것이 비단 한 여성의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가이자 화가이자 무용가였던 한 여성의 인생을 재조명하다 보면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가슴 깊이 사무친다. 그러나 낸시 밀포드의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이 남성인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크게 언급되거나 중요시되지 않는 실정이다. 의식의 균형, 사고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국내에서 이 책이 출판되길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올 상반기 한국 출판계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작품에 보여준 열화와 같은 관심은 어렵더라도, 적어도 ‘젤다’라는 인물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출판인들의 예의이자 의무라는 생각도 든다.
낸시 밀포드가 이 책을 저술한 게 1970년이다. 벌써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젤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인생을 망친 악녀로만 평가되고, 심지어 여성 작가나 독자들까지도 그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 리뷰에 삽입된 이미지는 1970년에 발간된 초판과 한정판의 표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