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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침팬지 인형을 선물 받고 침팬지에 남다른 애정을 품게 된 동물행동학자 제인구달은 야생동물이 많은 아프리카 케냐로 가서 야생 침팬지를 자연 서식지에서 연구하는 선구자적인 일을 시작하여 동물학 박사로 사람과 동물이 어울려 사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구제역 파동으로 무고한 짐승들을 산 채로 처분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동물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지구 저편의 사람이 떠오른 것은 부끄러움이 더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생존하려는 소와 돼지의 욕구는 울부짖는 소리로 아비규환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앞에 스러져 간 동물들의 생명은 어떤 의식도 치르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이뤄졌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을 읽으며 동물들을 대하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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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글을 쓴 할에게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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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코트를 입고서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안고 가는 여성, 돼지고기는 거부하지만 고등어는 먹는 ‘채식주의자’ 훨씬 흔한 쥐 실험은 놔두고 유독 원숭이 실험 연구자에게만 테러를 가하는 과격 동물보호운동가, 잔혹하다며 투계를 비난하면서 해피밀 세트의 치킨 버거는 맛있게 먹는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아닌 것 같은데 허점과 모순 투성이인 동물에 대한 태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는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속시원한 느낌은 줄 책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책이라 생각했다.
예전에는 고기와 생선을 다 먹지 않았지만, 사회 생활을 위해서 생선은 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소한의 생존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소극적으로 나만의 기준으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함께 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 억지로 고기도 먹고, 잘 먹는 척 허세부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 하나의 화두처럼 다가왔고,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기본적인 것, 그 ‘기본’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동물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있어서 그리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생각도 철저하게 하게 되었다. 나는 도덕이라는 잣대로 어느 선까지 인간에게 이용되는 동물을 보고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용납하고 이해하는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치를 떨며 비난을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자체가 모순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다. 이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 이 책은 그 두께 만큼이나 꽤나 무거운 주제의 글이었지만, |
![]() 어찌보면 간단한 얘기일지 모른다. 사랑과 관심도 평등해야 한다는. 하지만, 잘 생기고 호감가는 사람이 있고 특별할 이유없이 비호감과 홀대의 대상이 되는 이도 있듯 다양한 동물들에게도 이와같은 사례들이 존재하는 세상. 그 속에서 정상참작은 되더라도 항상 정답으로 인정되어선 왠지 불편하고 곤란한 동물을 향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얘기. 난 저자의 강하진 않지만 분명한 메세지가 느껴지는 동물에 관한 여러 시선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귀여움과 반려동물로써의 수많은 강아지와 개들의 삶과 그러면서 착해 보이는 큰 눈망울을 가진 수많은 소들은 우리의 식탁을 위해 식재료로 대부분 삶을 그냥 이해하기엔 그냥 일상이라며 받아들이기엔 혼란스럽고 판단근거들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꼭 이 책 저자에 의한 그 생각의 시작이 아닐지라도. 동물을 바라보는 많은 혼란스런 판단근거들.... 맹자의 책 속엔 제물로써 양과 소의 얘기를 비교한 구절이 있다. 양이 도살되는 걸 본 후 그 대상이 소로 바뀐 얘기. 둘다 동물인데 그 차이가 뭔지 묻는 왕에게 맹자는 답한다. '소 죽는건 못 봤으니까'... 정확한 얘기로써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듣고 느꼈던 당시의 느낌으로만 이 구절을 난 기억을 하고 있는데 간단한 얘기이면서도 왠지 무척 슬퍼던 기억 또한 왠지 새롭다. 위 이야기를 듣는 당시에도 새롭게 알게된 얘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얘기였단 기억과 함께, 이런저런 사고의 전환도 또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희석되고 전처럼 돌아갈 것이란 추측이 당시 나를 더 먹먹하게도 했던거 같다. 맹자의 구절은 분명 동물보호에 관련된 게 아니라 전반적인 인생속 깨달음을 주제로 한 것이겠지만 이 책의 주제와 가장 일맥상통하는 얘기도 될 수 있을것 같다. 책엔 여러 동물들의 얘기가 등장한다. 실수로 동물원 악어우리에 떨어진 아이를 먹은 악어와 그 사건이 주는 절망감에 악어를 죽인 사육사. 악어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는 동물사랑의 감정에서가 아닌 인간의 도덕이 아닌 본능으로 사는 악어의 어떤 점이 이 사건을 100% 이해해야 되는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란 생각들. 애완 고양이들과는 상반되는 안락사 되는 수많은 길잃은 고양이들. 육식동물의 밥이 되는 먹이용 동물들의 삶. 어떤 동물의 목숨이 귀하고, 우리가 동물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동물들의 어떤 모습들에서 사랑을 느끼는지. 저자의 목소리는 강하거나 대개가 가진 일반적인 상식들이 잘못됐다고 강한 정정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을 쭉 읽다보면 인간의 동물을 향한 관념들을 독자로 하여금 각자가 지닌 동물을 대하는 고정관념들을 다시 이해하고 정립해야 될 것 같단 강한 느낌들을 주고 있다. 강아지만 인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기엔 너무 다양한 수많은 동물들, 인간의 좋은 관심을 받고 살면 좀더 좋을 다양한 동물군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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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여기서 어렸을 때라고 하면 초등학생 까지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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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절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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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것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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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책 제목에 끌렸다. 특히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 난 직후라 더욱 그랬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먹는 동물들의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왜 우린 어떤 동물,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의 생명에는 특별히 민감해지면서 우리가 자주 섭취하는 돼지나 소, 닭에 대해서는 무딜까? 왜 어떤 동물은 사랑하고 왜 어떤 동물은 혐오하게 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이라는 책 제목 내에 내 모든 의문점이 담겨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명을 다루는 인간의 모순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흔히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어렸을 적에 동물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거기서 말하는 동물은 개, 고양이, 햄스터 등등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동물에 국한되지 않았던가? 잠시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동물animal의 뜻을 짚고 넘어가자면, [동물(動物)] 「명사」 1. 『생물』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 현재 100만~120만 종이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약 80%는 곤충이 차지한다. 원생동물부터 척추동물까지 23개 문(門)으로 분류된다. 주로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며, 운동, 감각, 신경 따위의 기능이 발달하였다. 소화, 배설, 호흡, 순환, 생식 따위의 기관이 분화되어 있다. 2. 사람을 제외한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와 같이 동물의 범주에는 곤충도 포함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물학대라는 것이 커다란, 울음소리를 낼 줄 아는 문(門) 외에 고통의 소리 하나도 전혀 내지 못하는 곤충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어릴 적에 메뚜기 다리 하나, 잠자리 날개 하나 떼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는지 말이다.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몇이나 될까? 우글우글 모여있는 개미떼들을 마구 겁주며 헤치는 일을 해보지 않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동물학대와 인간에 대한 폭력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듯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우리 존재와 인접할수록 점점 더 후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도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는데 투계꾼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투계 중에 날카로운 칼날에 찔려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애지중지 키운 자신의 닭들을 투계판으로 내밀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투계꾼들. 좋은 것을 먹이고, 자유롭게 뛰놀도록 내버려 두며 말 그대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키운다며 당당하다. 어떻게 보면 좁은 닭장 안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사람들의 고기가 되는 식용닭들보다 나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래도 그게 과연 사랑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다가 인간의 오락을 위해 죽어가는 투계와 최소한의 복지도 누리지 못한 채 인간의 식욕을 위해 죽어가는 식용 닭. 혼란스럽다. 이러한 모순적인 모습은 쥐의 사정에서도 드러난다. 실험용으로 쓰이며 귀한 대접을 받던 쥐가 그 우리를 탈출해 실험실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에게 병균을 옮기는 흔한 들쥐로 바뀌어 헌팅hunting의 목표가 되고 죽음을 맞이 하게 되는 일, 집에서 키우던 쥐의 죽음에는 예쁜 무덤을 만들어주고 추모하는 반면 부엌을 돌아다니던 쥐의 죽음에는 그저 그 시체를 뒷뜰에 집어던지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모순적인 모습. 누구에게나 동등한 절대적, 무조건적 중립 윤리관을 고집하는 게 마냥 옳은 일일까? 멀쩡한 침팬지나 오랑우탄을 실험에 쓰기 보다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실험용으로 쓰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는 주장이 더욱 이러한 의문을 들게 한다. 인간의 비일관적인 윤리적 잣대는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건 우리가 사고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다. 저자는 무조건적으로 일관된 윤리 보다는 동물적 본능인 야후가 오히려 인간다움의 표현이라고 말하며 또한 도덕적 직관은 변화하기 마련이라 사람은 종종 야후와 새로 타협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중 윤리 잣대에 부끄러워하고 미안해 할 줄 안다. 이러한 점이 바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아닐까?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야후에 너무 충실해져 우리의 이중적인 윤리 잣대에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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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던 금붕어 두마리를 내 방으로 옮겨 키운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막상 방에 들여놓으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여. 외로워보여 친구 세마리 입양해 넣어주고 상막해보여 수초 여러포기 사다가 심어주고 물위로 뻐끔올라오는게 안쓰러워 산소여과기까지 달아주었다.
그렇게 슬슬 정성을 들이던 어느날 밤새 한마리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밖에 나와 바싹 마른채로 죽어있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옮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정리를 하고 부엌으로 나가보니 아침밥상에 오르려고 준비중인 조기 한마리가 보였다.
방금 내가 장례(?)를 치뤄준 물고기와 비슷했다. 그런데 나는 기른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금붕어가 죽어있을때는 마음 아파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아침밥상에 오를 조기튀김은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순간 이런 모순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개고기는 절대 안된다고 얘기하면서 무슨 이유로 소와 돼지는 식용으로 정당화 되는지.. 공장식시설에서 평생 알만 낳다가 고기까지 내어 주기 위해 하루에도 엄청난 양이 도살되는 닭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그런식으로 유통되고 조리되었을 치킨과 계란은 어찌 그리 맛잇게. 자주 먹는지..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이런생각을 주기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제목부터 나의 흥미를 끌었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이라니 내가 항상 찜찜해(?)했던 부분에 대해 뭔가 명쾌하게 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안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가 피하고 싶어하는 진실들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닭, 돼지, 소를 도살하는 과정부터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의 유형들까지 분류해 놓았고. 심지어 동물실험 방법까지.. 하지만 참고 읽었다.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은 다르기에..(이미지 없는 책이라는게 너무 다행이였다)
반면 행복한 부분도 있었다. 나같이 용기 없이 실천하지도 않으며 마음 속으로 괴로워하는 이가 아닌 자신의 신념대로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들을 읽을때면 대리만족감과 왠지 모를 든든함까지 생겼다. 특히 사람들은 귀여운 외모의 동물들에게만 측은한 마음을 갖고 편중된 봉사를 실천하게 된다는데 (동물보호 리플렛 메인이미지에 덫에 걸리 뱀대신 우리에 갇힌 반달 가슴곰을 쓰는 이유다)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바다거북의 알을 위해 매일 새벽알의 위치를 파악하고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고 미쳐 바다로 나가지 못한 새끼들을 도와주는 등 봉사를 하는 사람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이 책의 결론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이런 도덕적 비일관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대보다는 김빠지는 결론이었지만 옮긴이의 말에서 더 공감가는, 아니 위안 삶을 수 있는 글귀를 찾아냈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이해했다. 모순은 위선의 탈이 아니며 도리어 진정한 자비를 위한 타협이라고...'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이 육식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진화의 산물이라고. 나도 이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동물성이 필요한 생활을 피할 수 없다면 좀 더 과정을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말끔하게 포장된 부위별 고기를 먹으면서 이 것이 어떤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되는지는 외면한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하고 난 후, 취미로 즐기던 밤빛송어 낚시도 그만두고 송아지 고기도 더 이상 먹지 않으며, 지역에서 싱싱한 계란을 사먹고 '방목한'닭고기에 기꺼이 돈을 더 낸다고 적었다. 알게 되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진실을 깨닫게되면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기에.. 이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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