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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말로 시작했지만, 사실 최근 들어 지구에 자연재해가 최근 강도가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원자로 폭발같이 인재는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이러한 시기에 “동물 권리 선언”이라는 제목은 그 뉘앙스가 재앙의 시초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의식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식용으로써의 동물, 그리고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책임질 의학, 과학으로써의 실험재료로만 보아도 충분히 손가락질 받을 만 하니까 말이다. 동물들이 사람처럼 말로써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다면 어떤 권리를 선언할 것 인가.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는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책을 한참 읽을 때 조차 저자가 말하는 동물의 입장과 그들을 대변하는 소리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하지만 나는 무조건적으로 동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며 사랑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이기심으로 인한 실험으로만 미국에서 매년 백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죽어간다. 또한 식용으로 세계에서 매년 270억 마리의 소와 돼지, 닭 등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들은 모두가 인간의 입장에서 동물을 생각하고, 동물은 열등한 존재라는 의식이 전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수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질병과 생명의 연장을 위해 희생되지만 그를 통해 개발된 특효약들은 동물들을 위해 쓰여질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하고, 식욕을 위해 희생 되어 지고 있는 가축 또한 동물은 생명 자체로 인식되어지지 않고, 존중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모피 한 벌을 만들기 위해 40마리가 넘는 밍크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서커스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이 일생의 90%이상을 좁은 우리나 족쇄에 묶여서 지내고 있는 것 또한 우리들은 알고 있을까? 사람의 유희를 위해 사냥이나 경마, 투우 등을 통해 수십만 마리의 동물들이 안락사를 당한다. 이 또한 누구의 선택으로 안락사가 되는 것일까. 과연 동물들이 그러한 행동들을 안락사라고 생각해 줄까? 우리의 식탁에 오를 생선들을 잡기위해 곧곧에 펼쳐진 그물때문에 지느러미가 잘리고 상처입는 어류들을 우리는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객관적인 통계자료 앞에선 나 또한 매우 화가 나고 인간이란 존재가 부끄러워 진다. 하지만 내가 동물들을 위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일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방법은 극단적인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동물들을 위해 육식을 중단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소들. 그들이 도축장에서 도축되길 기다리며 어떤 고통을 받을지 나는 알 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적 생명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무분별한 죽임에 관해 책을 읽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 조차 변화되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쩌면 내 기준에서도 동물은 개나 고양이이고, 소나 돼지는 음식일 뿐일까? 내가 먹는 것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일뿐 돼지나 닭은 아닌 것일까? 책을 통해 분개하고 부끄러움을 가지지만 결국 그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바꾸기는 불가능 한 것인가? 나는 과연 동물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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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상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가 많습니다. 현대인류보다 앞서 살았던 고생인류가 지금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이유라던가, 한때 지구생물의 상층을 구성하던 공룡이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라던가, 맘모스가 전멸한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한에서 살고 있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호랑이를 비롯해서, 최근 들어 멸종위기에 몰려있는 동물 가운데 상당수는 사람의 남획이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의 영향으로 야생동물의 삶의 터전이 급속하게 좁아지고 있는 것도 야생동물의 멸종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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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나도 동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세계에는 굶주리는 어린이도 많고, 학대받는 아이들도 많다. 더구나 같은 민족인 북한은 늘 기아에 허덕인다고 하지 않은가. 강아지를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을 사람에게 쓰는 것이 더 보람있지 않냐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우리 집에 두 마리 개가 들어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도 소중하고 동물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 반려동물이 없는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고 웃기도 하고 가당치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과 동물은 엄연히 다른 존재들이고 동물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다. 사람은 사람이고 동물은 동물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좀 씁쓸하다. 내 곁에 매일 함께 지내는 개들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내가 바뀐 인식은 이렇다. 예전에 백인들은 흑인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그들과 다르다고 해야 마음껏 혹사시키고 잔혹하게 대하는 자신들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에게는 영혼이 없으며, 영혼이 없는 존재는 고통도 없다라고까지 하면서 자신들과는 다른 종으로 취급했다. 현재 이 말을 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이것처럼 동물과 인간을 분리하는 것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 있는 심장이 모든 동물에게도 있으니까.
이책을 쓴 저자는 이런 내 생각에 근거를 더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동물에게도 사람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동물에게도 사람 사이에 왕래하는 온정을 나누어야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 크게 공감되는 몇 가지는 아래와 같다.
-우리는 왜 우리의 온정 발자국을 확대하고 동물 선언문을 존중해야 할까? 우리는 왜 동물들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을 더 잘 대우해야 할까?
1. 동물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1.동물은 우리의 친구이자 반려자이기 때문이다. 1.동물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1. 동물이 있기에 우리는 인간 일 수 있기 때문이다. 1.만약 동물이 사라진다면 우리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1.지구를 해치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등등
저자는 서문에 우리와 동물이 모두 '온정으로 맺어진 공동의 연대'임을 밝히고 우리가 그들에게 더 마음을 써야하는 여섯 가지 이유로 이 책을 구성했다.
우리가 동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하는 여섯 가지 이유
1. 모든 동물은 지구를 공유하며 우리는 더불어 산다 2. 모든 동물은 생각하고 느낀다 3. 모든 동물은 온정을 느끼며 온정 받을 자격이 있다 4. 교감은 배려로, 단절은 경시로 이어진다 5.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들에게 온정적이지 않다 6. 온정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와 세상에 도움을 준다
내가 그랫듯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게 베푸는 온정보다는 사람에게 더 온정을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은 자연히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온정을 베푼다고 말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마음이 냉정한 사람은 없다는 말과 통했다.
이 책에는 세계 각 국을 다니며 동물을 관찰하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애를 쓴 저자의 노력과 경험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잔인한 내용도 있지만 또 그만큼 동물을 지키려고 애쓴 사람의 이야기도 나와있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동물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장난감이 아닌 만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었다. 아직은 고기가 맛있고, 고기를 완전히 끊을 수 없지만 고기가 원래 동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육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반려인들이 다른 고기는 먹어도 반려동물은 절대 먹지 않는 것처럼 인류가 육식을 조금씩만 줄여도 인간에 의한 동물들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공장형 농장에서 생산되는 고기가 어떻게 사람과 지구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지를 안다면 육식 소비는 줄어들 것이다. 채식 위주의 생활에 동참하는 것이 동물과 사람들에게 다 좋은 식습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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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게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가하는 실험일지라도 만일 그 결과가 인간의 중요한 의학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이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 라는 한 법대 교수의 물음에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한 가지 기준에 달려있다. 하나는, 만일 당신이 동물을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 동등한 생물체로 인정하는 경우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래도 인간이 무엇보다도 최우선되어야 하는 고차원적인 인격체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 두 경우라면 답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고 위의 물음에 답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전자의 입장이다. 당연히 동물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함께 공존해야 하므로 더 이상의 동물학대와 이용가치로서만 무자비하게 희생되는 걸 막자고 말한다. 그래서 급기야 동물권리선언까지도 주장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저자의 이런 주장이 너무 오버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자연을 지키고 동물을 보호하는데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격을 지닌 동등한 존재로 보는 건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니냐고 말이다. 동물들이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아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의식까지 가지고 있다고 하면 쉬이 믿으려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 그들에게 묻고 싶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이미 몇 차례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한 여성이다. 그녀가 동물과 이야기하고 감정을 주고 받는 걸 보면 도저히 저 동물이 우리 인간과 뭐가 다를까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아 우리와 소통이 안 될 뿐 동물들은 저마다 인간처럼 아픔과 슬픔, 즐거움과 희망을 다 느낄 줄 아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이디와 교감하는 동물의 행동들을 본다면 오히려 자자의 주장에 고개가 더 끄덕여질 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오늘부터 당장 육식을 끊고 모든 동물실험을 금하며 동물들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 있는 본래의 선함을 믿고 조금씩 그들에게 온정을 베풀자고 말하는 것이다. 당장의 불편과 과학의 발견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학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다. 각종 약품들과 실험아래 처참하게 죽어간 많은 동물들(단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실험용으로 간단하게 변종되어 버려지는 이 동물들의 희생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하기 위한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수십년간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이 책의 내용들은 그저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그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온 많은 사례들을 알려주어 더욱 그의 설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 나아가 우리가 진정으로 동물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발전보다는 먼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만나볼 미래가 온전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땐 우리는 그의 동물권리선언이 결코 허무맹랑한 말이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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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원시시대 사람은 나약한 존재였다고 배웠다. 더 오랜 시간 전에는 사람이 유인원에 가까워서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의 모습은 동굴에 은거하고 무리지어 다니며 다른 동물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숨어 지냈다고 배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독립 개채로 보았을 때 다른 동물들에 비하여 힘을 가진 능력이나 공격 수단 등을 고려하여 보아도 우월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구상에 이렇게 나약한 동물인 인간의 위협은 다른 동물들의 생존을 그리고 그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며 자신만의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게 지구상의 동물들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최상위 포식자인양 그들을 사육하고 그들을 즐거운 미각의 대상으로 여기며 지구를 하나씩 점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진화생물학자이기도 하면서 생태학자인 마크 베코프는 이런 인간의 행동을 동물의 관점에서 같이 살아야할 지구라는 환경에서 동물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을 고려하며 동물 권리 선언이라는 여섯 가지의 항목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말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그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듯하다. 많은 관점이 있겠지만 마크 베코프의 논지의 관점은 단순하다. 동물이 의식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아니 인류로 간주하여 그들이 동물 권리 선언을 한다면 동물의 입장에서 어떤 권리를 주장하고 인간에게 어떤 부분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여섯 가지의 주요 관점에서 본다면 동물과 인간이 이 지구를 공동으로 상용함에 있어서 어떻게 동물을 대하여야 할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논지에는 많은 반박할 수 있는 인류가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고민 역시 마크 베코프는 고민하고 있으며 그 해결 방안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논지 중에 인류의 고민을 몇 가지 언급을 한다면.
육식을 주로 하는 인류의 습관에 있다. 육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다음 내에게 관심있게 다가온 부분은 동물 실험이다. 백신을 만들고 임상실험을 하는 인간을 대신하여 병원균에 대한 증상 혹은 백신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동물들에 대한 인류의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이다. 이러한 문제 말고도 인류는 동물과 지구상에 같이 존재 하면서 어떤 동물에 대하여서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혹은 애정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다른 동물에게는 그렇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왜 개를 먹는 것은 불편하게 여기는 데 반해 돼지를 먹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179쪽) 이런 부분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는데 걸리적 거리는 문제는 단 포괄적 미래를 바라보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인류가 살아남는데 다른 동물의 멸종은 결국 인간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이다.
우리 주변에는 동물이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그리고 자신들끼리의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하는 동물을 보면서 특히 못성애와 집단 규율등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다른동물들 역시 감성을 지니고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인간의 편리를 위하여 아니 현 시대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세대이다 보니 애써 왜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보다 현실적으로 북극의 곰의 숫자가 줄어들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은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 낸 일은 아니다.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일에 멸종이라는 삭막한 단어를 접한 동물의 입장에서 아니 엔스로모피즘이라는 의인화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우리가 가하는 동물들의 부당한 행위가 좀 더 수월하게 이해 납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최근 관심이 급증하는 먹을거리와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비 위생적인 상황에서 자라는 먹을거리의 위해함을 말하는 많은 글들이 있다. 우리의 생활에 동물들 역시 인간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고통 받기도 하고 그로 인해 간접 고통을 받기도 한다. 지구를 빌려 쓰는 인류의 입장에서 후손에게 좀 더 좋은 지구 환경과 동물들과 어울리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어쩌면 동물 권리 선언 보다 더 중요하고 같이 공동을 만들어 가야 할 지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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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주어진 열악한 환경에 생존 본능 위해 많은 극복의 노력을 해오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냈지만 그 동안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간과한 것들 중 하나는, 우리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극도의 이기주의에 입각한 그리고 생활의 안이한 편의만을 위해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체들과 공생하는 법을 애써 무시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의 자연을 생각해보면 인간에 의해 무차별적인 자원의 남획과 더불어 무자비한 개발로 인해 인간을 위한 생활권의 영역은 필요이상으로 넓어졌지만, 여타 동물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서서히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로 인한 자연환경의 급작스런 변화로 이제 인류 존속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만큼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는 이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동물과 협력하며 자연에 함께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성장위주의 개발에만 전력하는듯해 보인다.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어느 특정한 생물체 위한 공간이 아니며, 함께 평화롭게 어울릴 때만이 유지 될 수 있는 항구적인 장소이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 각자의 삶을 모색해가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곳곳은 이러한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단순히 인간에게 이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파괴되어 가고 있으며, 그 동안 인간과 함께 거주해왔던 많은 동물들 역시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손에 의해 극히 차별과 멸시와 죽임을 당하면서 그들의 자취는 어느새 소리 없이 조용히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듯하다.
이 책은 지구상의 많은 여러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지금까지도 생명의 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경시되어 왔던 상황에서, 우리가 태어나면서 고유적으로 지니게 되는 인간으로서 살 권리를 갖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그들만의 공간에서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간섭 없이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그릇된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서로 공존하는 삶의 방법을 새로이 구축해야함을 강조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모두 6가지의 이유를 들어 동물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은 지구라는 공간을 서로 공유하면서 더불어 살고 있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생각하는 힘이 있으며 결국 서로가 교감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유지할 때만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지구 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에는 그 동안 우리가 동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내용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리고 알고 있는 지식마저도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사실 이전 우리 인류가 동물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적대적인 행위 등을 보인 것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것에 있다고 보면 오늘날의 그것은 오직 인간을 위한 실험대상이나 단순한 취미나 오락의 대상으로 점점 확대되어 동물학대의 전형적인 형태로 바뀌어 있음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동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갑각류의 대표적인 생물인 게는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기억하며, 까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거북이는 초월적인 사랑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것은 동물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감정이나 과거의 기억, 의식과 같은 것이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이기에 이제는 그들을 우리와 같은 동등한 주관적인 존재로 인정해야만 하며 앞으로 관계도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우리는 깊이 인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위험이나 죽음의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헌신한 동물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요즘 반려 동물로 인식되는 개와 고양이의 경우 예전과는 달리 많은 보호를 받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는 많은 동물들이 무지한 인간들에 의해 학대와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삶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해 인간들에 의해 이런 저런 이유로 사라지는 동물들의 수는 지금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동물들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가는 것과 맞물려 앞으로 먹이사슬과 관련하여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향후 지구의 환경에 어떤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지 심히 우려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이제라도 눈을 뜨고 열린 마음으로 동물과의 적절한 유대와 교감을 통해 지금 처해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동물들에 가지고 있는 그릇된 사고방식이나 근본적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인류 미래의 삶을 위해서라도 단순하게 넘겨버릴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가야 할 때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따라서 그가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동물권리 선언을 바탕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공동체적인 운명으로 함께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하루라도 빨리 정착되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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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 이효리가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겠다는 소식에 논란이 일고 있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녀가 얼마 전까지 한우홍보대사였다는 점이 아마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유기동물보호운동에도 앞장서며 자신이 기르던 사랑스러운 애완견과의 일상을 팬들에게 보여주던 그녀가 한우홍보대사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이, 한우자조금위원회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불특정다수인에게도 논란의 여지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구제역으로 홍역을 치른 한우단체가 계약이 끝나자마자 불현듯 채식선언을 하고 나선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녀를 나쁘게 생각할 자격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마크 베코프는 강하게 부정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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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구제역의 공포는 우리에게 경제적, 환경적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내 새끼들”을 산 채로 묻어야 하는 농민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제는 침출수 피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CNN에서는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는 돼지떼의 살처분 장면이 보도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이 동물에 대한 연민보다는 국격 훼손에 대한 우려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다. 영문도 모른 채 산 채로 구덩이 속에 떠밀려 들어간 동물들의 모습, 침출수 문제가 철저하지 못한 살처분 과정인 것도 크지만 구덩이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비닐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렇게 살처분을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최종 행선지는 도축장이 되었을 터인데,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동물의 권리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까지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짐짓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동물행동 연구가이자 휴메인 소사이어티 유니버시티의 정교수인 마크 베코프는 이 책을 통해 “개는 안으면서 소는 먹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각 동물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필요한 의해 결정된 것이며, 우리는 이른바 종 우월주의 speciesiem을 토대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동물을 학대하고 상습적으로 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야생”이라는 말 역시 그 자체로 가치가 투입된 용어로 무언가 통제 밖에 있음을 시사하는데, 동물이 야생인 것은 오로지 인간의 시각에서 그런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인간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는 무책임한 사고로, 우리로 하여금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일례로, 금붕어의 기억은 3초를 넘지 못해서 어항이 아무리 작아도 항상 새로운 장소와 물체를 발견했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에 대해 한 15세 소년은 이것이 물고기를 작은 어항에 가둬두고도 죄책감을 덜 느끼려는 사람들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붕어들이 최소 6일간 경험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이 정기적으로 사용될 경우 무한정 유지 가능하다고 밝혀낸 소년의 실험은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에 의해 설득력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이미 전세계인들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탄소발자국의 개념을 차용하여 온정의 발자국 compassion footprint을 넓히고 지속시킬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소 발자국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온정의 발자국은 반대로 이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온정이 온정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동물에게 온정을 베푸는 방법을 배울 때, 온정은 쉽게 다른 종들에게 번지고 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을 든다. 더불어 동물과 온정적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동물도 사고하고 인지하며 교감한다는 등의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동물과 온정적으로 공전하면 비로소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삶도 윤택해 질 것이라 역설한다. “당신은 방금 식사를 마쳤다. 아무리 도축장이 우리 눈에 안 띄는 곳에 감춰져 있다 해도, 실제로 동물들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한 사례, 그리고 신비롭다고도 표현될 만큼의 동물과의 교감 경험을 기술하며 동물들의 진정한 복지를 주장한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탄소 발생의 실질적인 주범은 육식임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우리가 입 속으로 누구를 집어넣느냐 하는 것은 하나의 도덕적 행위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의지하는 도시의 어린이들이 매일 햄버거를 먹는 것은 애당초 <고기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감정적 부조화”의 개념을 통해 사람들이 도축장에서 자기 집까지의 물리적, 감정적 거리 덕분에 개념적인 단절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고 전한다. 동물원과 서커스, 투우는 물론이고 동물 실험해서 행해지는 인간의 잔혹함을 비평하며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저자의 논리는 기존의 사고관과 비교하여 다소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동물의 교감이나 사고에 대한 사례가 지나치게 한두 가지 종에만 국한이 되어 있고 감상적인 측면이 과한 면도 없지 않아서 중간중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동물 실험의 제한된 유용성이나 비용문제, 윤리적 문제들을 보면 동물 실험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가 차츰 인도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러한 온정적인, 감성적인 논의가 소위 “등 따시고 배부른” 이야기라는 비판을 비켜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반려동물을 위한 초호화 호텔이나 자신의 개에게 억대의 유산을 물려주고 떠난 부자에 관한 기사를 누구나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후반부에 동물의 권리에 앞서서 문화적 배경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방어막을 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실제로 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인간이 동물들과 하나의 자원을 놓고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그들에게 왜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느냐고 우리가 비판할 권리를 없음을 인정한다. 대신 그는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을 보호하기 보다는 사냥을 나가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방향의 발전을 이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동물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개체임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지구를 함께 쓰고 있는 우리는 그들과 연대하고 공존해서 살아가야 함을, 그것이 바로 다시 인간을 위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가 개별적인 개체들의 변화가 모여서 더 새롭고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외친다. 자연 속의 선량한 존재인 우리들은 무심코 지나치던 개별 동물들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받아들이고., 지금보다 더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연관을 많이 반영한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주인공인 원주민 여인이 “너의 영혼은 신께서 거둬가시고 너희의 몸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 이 곳에 남을 거야.”라며 죽은 동물에게 조의를 표한다. 역사적인 규모의 자연재해 소식들이 넘쳐나는 근자에는 더욱 대자연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모든 생물들에 대한 동반자적인 인식이 더욱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생각을 바꾸고 조금씩 노력하면 더 적게 희생하고 더 많이 행복해 지는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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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그들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먹기 위해 소, 돼지 등을 키우고 도살할 때도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며, 동물원이나 서커스 등에서 학대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기도 하고 각종 동물실험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동물들도 많다. 동물행동을 연구한 콜로라도 대학교 생태학 교수 마크 베코프는 이 책 <동물 권리 선언(원제 The Animal Manifesto)>에서 우리가 왜 동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 종 우월주의(speciesism)로 인하여 동물을 '하등 동물'과 '고등 동물'로 분류하고 특정한 동물 종을 차별하거나 착취하고 있다. 이러한 종 우월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을 정당화한다. 한국에는 없지만 미국에 '야생 동물 관리국(CDOW)'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의 '관리'는 곧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나타나는 야생 동물을 사살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야생을 길들이고 자연을 관리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야생 동물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땅이기도 하다. 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인간만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 역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하고 감정을 갖고 있다. 인간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인간과 상당히 많이 닮은 점이다. 인간 중심의 사고로는, 동물은 인간처럼 생각하거나 고통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추정하곤 한다. 하지만 동물들도 자기들 무리의 동료가 죽으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고,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기억한다. 과학적인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각류인 게는 고통을 느끼고 기억하며, 침팬지는 낚시 도구를 이용해서 흰개미를 잡으며 돌고래는 일종의 레시피를 따라 껍질을 벗기고 두드려 먹물을 제거해서 갑오징어를 먹는다. 또한 코끼리는 매우 사회적이며 고도의 감정적 지각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인간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불만을 행사하기도 하고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종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한다. 확실히 그런 것이, 개나 고양이를 보면 그들은 사람에게 애정 표현도 하고, 음식이나 기타 사물에 대한 기호 역시 존재한다(우리 집의 견공은 계란 노른자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리고 동물도 '온정'을 가지고 있으며, 온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동물은 다른 동물들이나 사람을 돕고, 사람들 역시 동물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꼭 자신의 종에 대해서만 그러한 온정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빙 중 근육 경련으로 위기에 빠진 다이버를 흰 돌고래가 구하기도 하며 화재로부터 새끼 고양이들을 지켜낸 개도 있다. 고릴라 우리 안으로 떨어져 부상을 입은 어린 소년을 어미 고릴라가 안아서 안전하게 출입구로 데려다 준 일화는 유명하다. 배수관에 갇힌 자기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1마일의 거리를 달려간 어미 오리의 모성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렇듯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동물들은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낸다. 일종의 '도덕적 지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동물들을 일방적으로 이용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일삼기도 한다. 도축장에서의 잔혹한 도살과정과 공장형 농장에서의 비인간적인 사육 환경, 서커스나 로데오에서의 공공연한 동물 학대,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모피 농장 등 인간에 의해 이용되는 동물의 수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 역시 실제 서식지와 동떨어진 환경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고 있으며,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동물 실험으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죽거나 고통을 겪는다. 차라리 동물원에 동물들을 가둬 놓으며 많은 예산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래 살아가던 곳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 예산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또한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동물실험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거나 해서, 될 수 있는 한 고통받는 동물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인도적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저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단번에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고기를 먹는 양을 줄임으로써 소와 돼지를 키우며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식량자원의 낭비도 줄이고 도살당하는 동물의 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것이, 사실 우리는 영양소적인 면에서 고기를 어느 정도 섭취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처럼 많은 양의 고기를 섭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채식주의자가 될 의향은 딱히 없다. 고기를 그다지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가 되면 밖에서 식사를 할 때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여러모로 따져야 할 점이 많다. 제3세계에는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는데, 먹을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저것 가려가며 먹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저자 역시,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음식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제3세계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어떤 남아공 여성의 의견을 예로 들며 우리의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동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는 역시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참 마음에 드는 부분인 것이, 지금까지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나 동물보호주의자들은 정작 사람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경 파괴와 고통받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제3세계 사람들의 빈곤과 기아 혹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런 것이 나를 환경보호나 동물보호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꽤 온건하고 현실주의적으로, 그런 점이 그들과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비록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동물에 대해 인간 중심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인간들이 동물과 함께 사이좋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구를 위협하는 탄소 발자국의 반대 개념인 '온정 발자국'을 우리는 더욱 확대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구입하거나 잔혹한 방법으로 채취되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먹지 않는 것 역시 이러한 온정 발자국을 확대시키는 일이 아닐까. 가끔 보이는 종교적 근본주의자 혹은 과학 만능주의자들의, 인간만이 우월하고 영혼을 갖고 있으며 동물과 자연은 마음껏 착취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참 불편하게 느껴진다. 인간 역시 자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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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 발자국...이 말이 이 책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