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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설교집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간혹가다 탁월한 설교집(사실은 저와 코드가 맞는 설교집이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을 만나게 되는 기쁨 때문에, 유명하다는 설교자의 설교집 중에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설교자의 설교집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읽어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기대 이상의 설교집을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 담임목사님의 설교에 아무런 감동이나 도전을 받지 못하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된 교회에서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설교를 듣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라 할 수 있는(사실은 저술하신 것이 아니라 설교하신 내용을 다른 분이 정리한 것입니다만)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래 저래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습니다. 그분의 설교 뿐만 아니라 인품이나 영성에 있어 따라올 목회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분이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후임으로 오셨던 담임목사님들이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설교는 잘하시는데 인품과 영성이 부족하다고 욕을 먹고, 어떤 분은 인품이나 영성은 뛰어나신데 설교가 부족하다고 욕을 먹었다고요. 성도들이 한경직 목사님의 수준과 후임 목사님들의 수준을 계속해서 비교했기 때문에 후임 목사님들의 스트레스가 대단했고, 결국에는 쫓겨나다시피 사임을 하시고들 말았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임영수 목사님이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잠시 계셨을 때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은 바 있었는데, 그 목사님의 설교조차도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설교인가 하고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는 옛날 분 설교가 뭐 그리 대단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저 옛 추억에 젖은 나이 든 성도들의 괜한 까탈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집의 첫 설교를 읽으면서부터 그러한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설교집의 첫 설교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의 회개에 관한 본문을 설교하신 내용이었는데, 그 강도가 회개한 다음에 예수님을 변호한 일에 대해 설명하시는 부분을 보면서 그의 회개가 참된 회개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로 하여금 그러한 변화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올바로 바라보면 회개하지 않을 죄인이 없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제 입으로 하여금 아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고, 그 위의 명패를 보았고, 십자가에 달린 그분을 보았을 때 이 강도가 회개한 것처럼,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해 주는 설교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도전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설교들이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는데 첫 인상이 강렬해서였는지 이 첫 번째 설교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설교를 읽는 동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책을 읽는 데 많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 설교집을 읽으면서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느꼈던 것은 참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설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히 본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교해 가는 가운데, 해석이나 적용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 외에 어떠한 사족도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예화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설교의 내용 전개 속도가 상당히 빨랐습니다. 설교를 읽어가는 동안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묵상의 깊이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각각의 설교가 설교된 연도를 확인해 보니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설교하신 설교들이더군요. 그런데 오늘날의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와 비교했을 때 전혀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 앞서 나온 다른 설교집들도 모두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시리즈가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설교자들에게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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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 모음집을 통해서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책의 표지에 실린 '명품설교'라는 표현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내용만큼은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를 들여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 우러나오는.. 진솔한 삶의 고백이 탁월해 보인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깨달은 바를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청중들에게 도전케 하는..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한 편의 강연을 듣고 있는 것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과 동시에..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듯 하다..
이처럼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입으로만 전하는 설교가 아니었다..
실제 삶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을 토대로 말씀에 비추어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선배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도 감사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날마다 최선을 다해 맡겨진 사역에 매진할 것으 결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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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 섬기는자 그래서 그가 더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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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운전은 하면 할수록 도로에 나가면 초보때보다도 더욱더 조심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초보때는 내 차가 가는 것만이 중요하고 앞으로 가는 것만을 신경쓰지만 운전이 익숙해지면 상대방에 대한 방어운전을 더욱더 신경쓰고 다른 차들의 흐름도 살피면서 운전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사고들을 접하면서 보면서 더욱더 차를 운전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것일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코자 외치는 부르짖음이라는 뜨거운 생각이 마음을 점령한 것을 느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 한다고 하신 말씀처럼 진정 믿는자들의 모습속에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했다.
운전중에 감시카메라가 몇 미터 앞에 있다는 안내음을 들을때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무의식중의 당연한 행위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카메라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그만큼 걸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곳을 지나치는 순간 또다시 속도는 기준을 웃돌고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 길을 간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함을 애써 갖추려하고 말씀에는 무조건적인 아멘을 하지만 교회를 나와 성경책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에게는 세상속에 익숙함이 다시금 갑옷이 되어 믿지 않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속에서 전투태세를 갖추며 살아간다. 세상에서 질 수는 없고 너보다 낮은 자리는 용서가 안되고 마지막 하나라면 반드시 나이어야 한다는 철저한 삶의 모습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을 .........
하지만 그것들 모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예배시간에만 하나님을 깨닫는 천하고 어리석은 믿음들이 아직도 넘쳐난다는 것을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어느 한 순간에도 우린 모습 삶의 모습들이 변화되어야 하고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설교이다. 커다란 외침이 아니라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설교이다. 그렇다. 나에게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깨달음" 그 자체이다.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깨달음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행해야 하는 믿음의 확신들을 깊이 새겨주는 귀한 말씀들이다.
말씀을 듣고 우리는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양심과 마주할때 비로소 우린 죄를 깨달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이 말씀에 많은 은혜들을 받기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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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 섬기는자, 그래서 그가 더 그립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추앙 받을만한 인격으로, 청렴했고 낮은자 섬기는자의 모습으로 말씀과 행동으로 본을 보인 한경직 목사의 구원설교를 담은 책이다.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읽으면서 그 분이 살다가신 삶의 한 단면을 설교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면서 사시는 분들은 유창한 설교를 하지 않아도 삶이 그대로 설교로 전해지기 때문에 말로 애를 쓰거나 자신의 설교를 자랑하려 들지 않는다.
1992년 종교 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20세기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목회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소천한 후 지금까지도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요 섬기는 자,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 인격과 덕망이 회자되며, 온유와 겸손, 경건과 사랑의 모범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목사님이 집 한 채 통장 하나 갖지 않았던 청렴결백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말만 유창하게 외친다고 모두 설교가 아닌 것은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모으는 것은 웅변이나 화술로 배워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말을 유창하게 하거나 감동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설교자의 인격과 삶이 조화롭게 일치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바른 삶과 바른 인격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서도 얼마든지 설교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영적인 지도자의 바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설교를 하는 강단이 때로는 자신의 말, 설교를 뽐내려고 올라서는 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설교를 평가 받으려고 서는 곳이 되어서도 안된다 "설교는 그 형식과 음성이 전부가 아니다.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신앙 체험과 신앙 형성이 중요하다"
설교가 그리 유창하지 않아도 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는데 그 교회를 섬기시는 담임 목사님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오게 된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설교자 스스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 보다도 양들의 아픔을 우선하고 겸손하고 청렴한 분들의 교회인 것을 알 수 있다. 설교로 성도들의 마을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고 설교자는 단지 위탁된 도구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종종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집 중에서 이 책은 3번재 책인 구원을 담은 설교집이다. 오늘날 교회가 구원과 회개의 죄사함을 외치기 보다는 일순간적인 축복만을 외치는 경향이 있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은혜 보다는 일상생활의 복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축복된 삶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시류를 쫓아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던져 주기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강단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주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우리 주님만을 바라 보게 하는 간결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통해, 죄와 유혹이 횡행하는 삶 가운데서 부딪히는 온갖 시련과 환난, 핍박과 질곡에서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살도록 일깨워 주는 설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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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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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진리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솔직히 한경직 목사님을 가까이에서, 또는 직접적으로 한번도 만나 본 적도 없고, 인터넷으로도 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서 구원이라는 진리에 대한 설교를 접해보니, 여전히 목사님의 통찰력과 영성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한경직 목사님은 당신을 병문안 온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들에게 "목사님들 예수님 잘 믿으세요."라고 말씀하셨던 일화로 유명하시지만, 그가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설교하고,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것은 목사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성경적인 설교를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위해서 목사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진리는 역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전히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주요내용은 목차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셨던 목사님의 치열한 삶과 설교자로서의 고뇌를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시대의 강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지고, 십자가가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하기에 많은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개독교라는 말을 듣고, 교회가 타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이 대부분 미국식 성공주의식 복음주의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 축복이 전부인 양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졌고, 또 심리학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양, 잘못된 설교를 하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다. 예수 그리스도는 뒷전이고, 물질주의적 성공과 심리적인, 그리고 마케팅적인 기법들을 활용하는 교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도 옳은 모습일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한경직 목사님의 책을 보면, 꾸준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사역을 따라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요, 유일한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사실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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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집이 시리즈로 나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명품설교 시리즈라 이름하여 1권이 절기 설교이고, 2권이 시사 설교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3권이 바로 이 책 구원 설교 모음집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훌륭하신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분의 설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직접 하신 설교를 이렇게 책으로라도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구원 설교라면 얼마나 중요한 설교들일까 생각하니 참 기대가 되었습니다. 구원에 초점을 맞춘 설교가 있는가 하면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성화 설교가 있을텐데, 둘 중 구원설교가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구원설교만 수십편을 모아놓고 마음껏 접할 수 있다니 참 귀한 책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톤 자체를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고 하네요. 실제 설교이다보니 언제 한 설교인지도 명시가 되는데 1960년대 설교부터 있어서 더 놀랐습니다. 그러면 세대 차이가 좀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세련된 설교처럼 논리적이지는 못했지만 지금 들어도 시대의 차이를 못 느낄 만큼 세련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해서 설교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원 설교라 해도 이미 구원받은 사람도 사실은 또 듣고 또 들어야 할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너무나도 그 구원의 깊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십자가에 철저히 기초한 한경직 목사님의 구원 설교 날마다 들어도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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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의 구원설교 모음집 - 낮은 자, 섬기는 자, 그래서 그가 더 그립습니다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교회를 사랑한 20세기 선견자 추양 한경직 목사님의 구원 설교 모음집편으로 나온 세번째 책입니다. 말씀과 행동으로 성경을 풀어내고 강해해주신 설교들을 책으로 만나보게 된 느낌이란..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위로와 은혜를 설교 고전,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그의 생애와 신앙의 체험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 성장했고 나라잃은 설움과 울분이 가득했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분. 가족없이 타지에서 폐결핵으로 투병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게 되었고 그 은혜로다 주의 일에 헌신하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피난민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사랑의 봉사자, 한국 교회 성장의 최고 기여자, 세계 선교와 평화 확산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완수하고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소천하신 후 한목사님께 남겨진 재산은 만년에 타고 다니던 휠체어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가지 몇 점과 생필품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청빈하게 사셧던 그분의 삶을 전해주는 부분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들을순 없지만..그분의 힘있는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엔 남다름이 있었다고 하지요. (저도 책에서, 많은 분들의 한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부분에서) 명확한 주제를 단순하고 간결한 말로 설교를 해주셨기에.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향을 더 전달해 주신 분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당신 시대적 상황과 현장감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연도,사건, 인명등 일부 중복되는 내용을 담았다고 편집자주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 마치 주일예배를 드린 후 .. 이번주일에 주신 성경구절을 묵상하고 ..찾아보고 .. 한번쯤 저를 담금질하는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어려운 주제도 쉽고 단순하게 전달해 주셨던 그분의 설교 모음들을 읽고.. 성경책의 구절들을 찾아 다시 묵상해 보는 것도 또다른 은혜와 접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둔 부분은 .. 아침 기도를 시작할때 그 구절들을 읽고..제게 지혜로움으로 하나님 말씀을 잘 온전히 들을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책은 한번은 다 읽고..다시 첫장부터 읽게되며 묵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요. 제게 남다른 하나님과의 교제로 다가서게 하신 부분은.. 누가복음 15장 11-32절.. 탕자의 비유입니다. (한목사님이 1958년 8월 27일 주일예배)에 해주신 설교시라고 합니다.벌써 50년이 지난 설교내용인데.. 가슴패기에 쿡하고 가르침이 오십니다. 우리가 잘아는대로.. 15장엔 비유 셋이 있습니다. 잃은양의 비유, 잃은 돈의 비유.잃은 아들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는 탕자의 비유라고도 하는데요. -내용은 이렇슴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둘째 아들이 행한 일을 기록하고. 다음은 맏아들의 행동과 아버지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각도의 해석보다 믿는 사람의 의미로 생각해 볼때 맏아들은 율법주의적 신앙 생활을 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고. 둘째 아들은 많은 죄를 저질렀으니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볼수 있다고 풀어주십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둘째 아들은 재산중에 분깃을 먼저주라고 말하고 먼나라로 가버립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육신의 향락과 쾌락, 정욕의 만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육체와 생명, 거기에 속한 능력,재능을 소비해 버립니다.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가 된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고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아들을 맞이합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환영의 파티를 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대하십니다. 아무리 큰죄를 지었을 지라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어떦든지 돌아올 기회를 주시며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기쁨으로 영접해서 아들로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런데 이야긴 끝이 나지 않고 맏아들로 넘어갑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며 책임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날도 종일토록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멀리서 풍악이 울리고 동생을 맞이하는 파티가 열린것에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어 크게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가 나와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누가 15:31-32)
"내가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김이 없나이다'라고 맏아들이 말합니다. 교훈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맏아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소위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진 모습이라고 말이지요 다른 사람은 술 먹지만 나는 술 안먹고 다른 사람은 허랑방탕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괜찮다. 그사람보다 낫다는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아들이 교만의 죄에 빠졌기에 아버지가 죄인사랑하는 것을 시기하는 죄에 빠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둘째아들이 정욕대로 방탕하고 간음하는 육신의 죄를 지었다면 맏아들은 교만한 죄, 시기하는 죄, 스스로를 의롭다하는 정신의 죄를 지은겁니다.
목사님은 권고합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육신의 죄는 회개하나 교만의 죄, 시기의 죄와 같은 정신의 죄를 회개 하지 않아 교회든 사회에서든 분쟁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둘째 아들 또는 맏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각자 자신을 살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게요...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살아갈 일입니다. 온전치 못한 저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의지하고 진정한 신앙인으로 하나님보시기엔 가장좋은 모양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하였든지 그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며 돌아왔을때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기쁨으로 환영하며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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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목사님의 명품설교 시리즈 3번째다. 먼저는 절기설교집이었고, 두 번째는 시사설교집,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것이 구원설교 모음집이다. 그는 고인이 되셨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 말씀의 역동성을 느낀다. 그래서 설교가에게 설교는 생명과도 같다고 말하는가. 설교가는 이 땅에서 그 수를 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여전히 남아 이 땅 민초들의 마음을 살핀다.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한경직목사님의 설교가 가지는 위치는 남다르다. 그리고 그의 구원설교는 개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복음의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그의 설교는 195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의 설교까지 다양하지만, 3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주의 복음으로 구원을 초청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강산이 변하고 많은 것들이 변질되고 있을 그 때에도, 수도 서울 그 도시 한 복판에서 그는 구원의 메시지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목사님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회개한 강도가 받는 축복이며,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요, 숨겨진 우리의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이전의 삶을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행위이며, 자기의 양심과 마주하는 시간이고, 나를 발견하는 은혜의 자리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행위는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양의 문으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말하기를, “인생의 어두운 길을 바로 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두 가지의 등불을 주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있는 이성과 양심이라”(p.127)고 말씀한다. 양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 주신 하나님의 율법’인데, 우리는 이러한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양심은 우리로 그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과 양심은 죄 가운데서 잠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에서 잠을 자다가 실패한 예는 유두고, 요나, 삼손, 노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p.121) 또한 강팍한 마음은 우리로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헤롯왕은 위대한 세례요한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구원을 얻지 못했다. 아그립바와 벨릭스도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설교를 들었지만, 구원을 못 얻었다.”(p.202)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인생의 방향이 잘못된 경우인데, “백두산 천지를 보면 하나는 서해로 흐르는 압록강이요, 다른 하나는 동해로 흐르는 두만강이다. 천지에 있던 물방울은 본래 한곳에 있었으나 며칠 후에는 수천 리 다른 거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물의 흐르는 방향이 다른 까닭으로, 베드로와 가룟유다를 통해 보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p.305)
한경직목사님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잠깐일 뿐이고 거짓되고 장차 없어질 어두운 생명을 가진 우리의 심령 속에서 참되고 사랑이며 빛인 영원불멸한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은 죽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는 그때부터 얻는 것입니다.”(p.294) 또한 그에게 있어 구원이란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인데, 양의 문이신 주님은 그 문을 통과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시고 밟히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아내시고, 오늘도 든든히 우리의 구주가 되어 주신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은 모두 위엣 것을 향하게 된다고 한목사님은 설교하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혔으나, 빌4:4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위를 향한 그의 영혼의 눈이 열려서 하늘나라의 영광과 권세를 보았고, 그의 신령한 귀가 열려서 천군천사의 할렐루야 찬송을 들었습니다. 집사 스데반은 순교의 순간에도, 영혼이 위를 향해서 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와 그 우편에 서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p.310) 우리는 위로부터 온 존재들이기에, 위를 보고 위로 들림받는다. 이것이 구원의 은총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총 41편의 구원설교 중에 구약본문은 총 10편이 있다. 한경직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어떻게 신약과 구약의 본문들로 구원설교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신약의 본문들에 매여 있는 나에게, 구약의 복음적 설교, 구원의 초청이 언제쯤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경직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1950년대에도 선포된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30년이 넘게 그가 강단에서 지켜왔던 구원의 복음을 나도 지켜가야 하리라 마음먹게 된다. 책의 소제목처럼, ‘나의 자랑이 오직 십자가’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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