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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설읽기는 하나의 도전임에 틀림없다. 주로 한문장 한문장에 밀도있는 내용이 있는 인문서적을 주로 읽어서 그런지 문학이 주는 장황하고 세밀하고 긴 묘사는 때로는 지루하게 느낄때가 많았다. 그래서 소설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은 나에게 매우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였다. 문학이 주는 길고 깊은 심연을 부드럽게 건드리는 감동과 여운을 알기에 문학읽기는 나에게 큰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보고 다시한번 세계문학에 도전해 보려고 마음먹고 잡은 책이 바로 일본 근대문학의 기수이자 근대문학의 형태를 확립한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이다. 일본문학을 선택한 것은 최근에 일본여행을 다녀와서 일본의 오밀조밀하고 일본인들의 작고 친절한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의 문학과 일본성을 알고 싶어서 <한눈팔기>라는 책을 선택해서 완독하게 되었다. 일단 책을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가장 중점에 두었던 것은 주인공 겐조와 그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와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메우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책의 가장 첫장면을 그의 양부인 시마다와 만나는 장면이다. 인물을 밝히지 않은채 그와 스쳐지나가면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과 느낌과 인물의 묘사는 분명 이 인물이 소설전체를 이끌고 나갈 뭔가 문제의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그리고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을 주었다. 그리고 아내와의 시시하면서도 마음깊이 일어나는 사소한 감정까지도 분명히 포착하였고 주인공 rps조의 사회적 위치와 금전적 어려움에서 오는 감정의 변화까지도 상세히 포착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 일단 이름이 재밌다. 일본식 발음은 우리식으로 무엇가 욕설같은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이 작가의 이름이 입에 유쾌하게 딱 달라붙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본의 위대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의 형태를 확립한 대문호이자 지난 천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라는 극찬의 평가가 이 책 뒷표지에 적혀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소세키 이후에 단 한 사람의 소세키도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일본 한작가의 평가가 올려져 있다. 단지 소설가 한사람 이상의 역할을 해낸 것이 분명하였다. 작가는 메이지 시대의 인물이라고 한다. 메이지 시대가 시작될 때 태어나서 메이지 시대가 끝날때쯤 사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 근대를 살아간 온전한 인물이며 그 변화의 시기에 영국을 유학한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고민과 근대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물이였다. 그가 쓴 많은 소설이 있지만 이 책 <한눈팔기>는 작가의 전기적 내용이며 그의 인물됨과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자전적 소설이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한 조영석 교수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 위해서 <한눈팔기>는 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먼저 <한눈팔기>를 읽으면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는 많은 일본문학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사후에도 뒷표지의 평가와 같이 많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강상중 교수는 그의 책을 통해서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고 그의 소설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그를 소개하고 있다. 강상중 교수가 이 작가에 대한 매우 좋은 평가를 내린 것이 또한 이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다. <한눈팔기>를 읽다보면 전체적으로 흐르는 어떤 소설적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내성적이고 우울하고 회색적이고 어둡고 소심하고 쫀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작가의 내면을 가장 잘 묘사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인물하나하나가 각각의 상황속에서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며 느끼는 외로움, 고독감, 이해받지 못하는 서글픔 등을 무덤덤하면서도 우울하면서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인간의 보편적 감정,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감정들을 가장 잘 포착한 작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섬세한 감정의 묘사가 읽는이로 하여금 지겨움과 내성적 감상을 느끼게하는 이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많은 자식들중 막내로 태어나 어쩔수 없이 짐으로 느껴진 주인공 겐조.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소설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살짝 보여질 뿐이다. 그래서 대화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서 겐조의 가정적 배경을 포착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잘 잡히지 않다가 중반을 지나면서 양부 시마다가 겐조를 찾아오고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서 겐조의 이러한 가정적 배경이 드러났을때부터 이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의 감정적 변화가 좀더 깊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주인공 겐조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동일화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시마다라는 사람에게 억지로 입양되고 양부 시마다가 그의 부인과 이혼함으로 다시 가난한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되는 참으로 기가막힌 인생을 살게된다. 그런 상황속에서 겐조는 스스로 반듯하게 자라게 되었고 일본 최초로 영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나름대로 지식인로써의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수성가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그의 성격은 좀더 고지식하고 배움이 없는 사람들, 특히 아내를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무시도 표면적으로 사람들을 깔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써의 허위의식 속에 철저히 감추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어쩌면 그는 늘 자기는 버려진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항상 그 안에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받은 기억이 없고 늘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겐조는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남편과 아버지로써 사랑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릴적 억눌린 기억과 억압된 감정으로 인한 상처였던 것이다. 받은 적도 없고 준적도 없는 사랑, 단지 그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뿐 겐조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게 나쁜 인물은 아니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지식인이라는 이면에 그러한 차가움과 냉정함을 스스로 감추며 더 외로운 존재로 전락했을 지도 모른다. 소설 전체에서 겐조에게는 지식인의 허울밑에 감추어진 고독과 외로움의 그림자가 깊게 달려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겐조의 주변인물들과 관계중 가장 안타깝고 공감적이면서도 읽는내내 왜 그랬을까하는 심정을 갖게한 것은 그의 아내 오스미와의 관계였다. 서로에게 사랑이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둘의 관계를 통해서 작가는 정밀한 감정과 의식의 묘사와 미묘한 부부사이의 갈등과 사랑과 애정의 관계를 탁월하게 결합해 놓았다. 부부관계가 다를바 없구나하고 공감을 느끼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내가 필요하고 말없이 자기를 도와주는 아내를 소중하게 느끼면서도 배움이 없다는 이유로 늘 무시하는 겐조. 그러나 아내가 임신으로 인해 가끔 생명이 위독해 질때면 지식인의 딱딱한 허위의식속에서 죽은 것 같았던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을 마지못해 비쳐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속에서 지식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소심하고 못난 외골수적인 겐조의 모습이 살짝 나의 모습에 투영되어졌다. 그의 아내 오스미는 겐조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귀찮게 하거나 눈치가 없는 무식한 스타일이 아니며 남편을 깊이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남편을 돕는 전형적인 일본인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았을때는 그의 아내 오스미는 함께 살아갈 때 아무런 어려움을 주지 않는 좋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겐조의 지식인으로써의 자존심과 허위의식을 알기에 말없이 그를 도와주면서도 남편의 무뚝뚝함과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고있지만 그것 또한 마음 깊이 감추며 사는 현명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겐조는 그녀의 배움없음을 무시하지만 그러한 무시하는 마음 역시도 참된 지식인으로써의 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겐조의 복잡다단한 어린시절의 아픔과 우울함과 그것을 지식인으로 감추려는 허위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백미가 겐조와 아내 오스미의 대화의 섬세한 감정의 묘사라고 생각하며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겐조의 아내 오스미가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였다. 안스러움과 사랑의 마음의 공존하는 그런 인물이였다. 이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 동양적인 부부관이 서로 비슷함을 느낄수 있었다. 그 외의 인물들과의 관계도 인간관과 인간관계의 세세한 점을 볼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아파서 항상 누워있으면서도 눈치없이 말이 많은 겐조의 누이. 그리고 그 누이를 조금도 돌보지 않는 철없는 매형. 시다미와 겐조와 결혼할 뻔 한 오누이. 등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주인공 겐조의 쓸쓸함이 더욱 부각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소설의 결말은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하고 끝난다. 가장 궁금했던 아내 오스미와의 관계를 어떠했는지, 그리고 형과 누이는 어찌되었으며 시다마는 계속 나타났는지..등등 하지만 이 소설을 명확하게 끝맺지 않는다. 책장을 덮었을 때 쓸쓸함과 허전함이 내 마음속에 불고 지나갔다.. 이 책은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삶을 보면 참 많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았던 인물이였음을 알수 있다. 작가는 바로 겐조였다. 그러한 삶의 무게를 통해서 그는 더욱 자신의 내면 깊이 들어갔으며 지식인이라는 실존을 가지고 살았으며 그토록 깊이 있게 인간의 내면을 간파하는 내적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이 이야기거리가 풍성하여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지만 작가가 주는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고민과 깊은 내성적 들여다봄은 읽는이로 하여금 우리네 인생과 삶이란 한바탕 불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라는 쓸쓸한 삶의 교훈적 잔상을 남겨주기에 충분한 것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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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를 시험기간 중 딴짓에 열중하는 행위에 비유하면 어떨까. 반항적인 청개구리처럼 현실이 주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당위'의 반대편을 선택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 그때의 쾌락이라는 것은 초조와 불안마저 뒷전으로 제쳐둔다. 하물며 겐조라고 이 유혹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가 처한 현실은 그랬다. 온갖 불만과 핑계로 뒤섞인 독백이라도 늘어놓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는 고립무원과 사면초가의 삶.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하지만 겐짱은 좋구나. 돈을 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우리하고는 생긴 머리부터가 다른 거지." 유학을 다녀온 (대학교 선생) 지식인이라는 허울은 양부모 가족들로 하여금 그에게 끊임없이 빈대 붙어 돈을 요구하기에 안성맞춤인 빌미였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개천에서 용 났다는 우리 속담에서처럼 그는 모든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출세한 사람이었으므로. 가난한 소시민에게 겐조는 우상이자 미다스의 손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학교, 도서관과 같은 감옥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말하는 겐조에게는 그 위에 반드시 미래의 자신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인생관이 있었지만, 그러한 보편적 소망일랑은 애초부터 실현이 불가능한 일임을 직감한다. 사사건건 빈정대며 나긋나긋하지 않은 아내와 살갑지 않은 자식들, 틈만 나면 돈을 뜯어내려는 양부모 가족들, 거기에 보증을 서 달라는 장인까지 이 숨 막히고 답답한 현실을 그는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지식인이라는 허상은 그런 거였다. 없어도 있는 척,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면 빚을 얻어서라도 돕기 싫은 사람을 도와야만 하는. "여자는 그런 때도 아이들 일을 생각해?" "당연하지요." 그러나 실상은 지진이 나자 처자식은 내팽개치고 혼자만 살겠다고 툇마루로 나가 뜰로 뛰어내리는 지질한 가장이자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일한 화풀이 상대인 아내와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소인배, 행여라도 아픈 아내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못 배운 주제에 너무나도 당당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며 가부장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독불장군.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대적 조류에 휩쓸린 인간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면? 돈을 뜯기는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겐조는 마지막으로 양부인 시마다에게 백 엔을 건네줄 손님을 보낸 후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거닐며 생각한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라고. 그러곤 그에 대한 답을 부정하고픈 절망감으로 끝내 울부짖고야 만다.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고.'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개척자인 이광수와 염상섭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사실이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루쉰이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가 소세키의 영향을 받고 문학으로 진로를 전환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소세키의 문학사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해설, 280쪽)
주인공인 겐조를 필두로 신랄하고도 첨예한 여러 캐릭터들의 생경함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죽기 일 년 전인 1915년에 집필한 이 소설은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고령의 부모와 형제 많은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작가 소세키는 두 살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가 그마저도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본가로 돌아온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아홉이었다. 일찌감치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에게조차 파양 됐던 경험은 시대적 상황(메이지 시대)과 맞물려 이후 죽는 날까지 그를 옥죄는 트라우마가 된다. 그리고 그 비애의 역작이 바로 이 작품 <한눈팔기>다. '나는 말없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어. 내가 죽어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작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었다고 한다. 그도 고독했을 것이다. 사방의 적들보다 가장 무서운 '자기 자신'이라는 적과의 사투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왜 아니 그럴까. 비단 회한뿐만이 아닌, 지난 했던 자신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애도하고 싶기도 했으리라.
시의적절치 못하게도 나는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읽었어야 할 이 작품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문>, <행인>에 이어 이제야 만나게 됐다. 접할수록 심리묘사에 탁월한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이라는 그의 칭호가 참으로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지 않은 문체로 몰입하여 읽을 소설을 원하시는 분과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정수가 궁금하신 분들께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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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짜피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 세상에는 모두 바보들뿐이니까요.” p248 겐조에 대해 아내가 생각하는 말이다. 주인공 겐조는 세상 모든 것에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고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관심하기도 하고 어떤 일에는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말이란 걸 자기가 생각하는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의무적인 단어만 하는 그런 사람이다. 『한눈팔기 』는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어린시설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자식이 많다는 이유로 다른 집에 양자를 준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가 겪는 생각과 일들을 이 책에서 그의 생각을 전해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가면서 읽게 되었다. 겐조가 어린 시절 양부모에게 가서 자란다. 그 부부는 겐조가 사 달라는 것은 다 사준다. 아무래도 자식에게 보상심리를 받고 싶고 그 보상을 물건으로 전해주고 보상을 받고 싶은가 보다. 부보님 중에 어느 부모님이 좋으니? 물어보는 것하며. 양부보가 좋아 친부모가 좋아 그런 것도 질문 중에 나오는데 정말 기가 막히다. 겐조라는 아이에게 양부모가 좋아하고 일종에 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양부모의 이혼으로 겐조에게 큰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게 된다. 다시 돌아온 친부모에게서 받는 서러움도 있고 어느 부모가 진짜ㅂ무일까하는 어린 시절 갈등으로 성장한 아이다. 그에게 최고는 어른이 돼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서러움을 받기 실어서 일 것 같다. 어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갈에서 양아버지를 보게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겐조집에 찾아온다. 역시 그 사람이 겐조에게 요구하는 것은 돈이다. 모든 이들이 겐조가 성공을 하니 겐조가 아주 부자일거라 생각이 든다. 겐조는 모든 일이 귀찮아지면 그냥 서재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심지어 부부간의 대화도 거의 단절이다. 생각과 말이 일치가 되지 않고 그냥 내던지게 되는 겐조. 아무래도 겐조의 어린 시절 성장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성장 과정이 좋은 사람을 중요시하나보다. 환경을 이만큼 중요하니 나도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하고 싶다. 겐조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은 모두 가난한 것 같다. 양아버지가 겐조에게 돈을 요구하고 양엄마도 찾아와 버스비라도 받아간다. 참 기가 막힌다고 생각한다. 버릴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자식이라고 노후를 책임지라는 것인지? 물론 겐조의 이런 어린 시절 과정이 없었다면 부모를 책임지는 건 자식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겐조의 성장과정을 본다면 이건 아니라고 본다. 가난한 누나 거기에 매형은 바람피우는 것 같고. 누나는 많이 아프다. 가난하지만 겐조는 누나에게 용돈을 얼마씩 준다. 거기에 형도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망막해 보인다. 모두다 겐조를 의지하는 건가? 왠지 겐조의 인생이 무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내와 갈등이 최고다. 아내를 사랑하는데 표현 못하는 남편, 너무 자기중심 적에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서 표현이 부족한 건가? 많이 안타까웠다. 내가 볼 때 겐조는 표현능력을 배우지 못해서 인생이 이렇게 딱딱한 사람 재미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인생에서 겐조가 책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천만다행이다. 돈을 끝내 받아내려는 양아버지는 정말 대단하다. 없기에 없다고 하지만 한사람을 어릴 적에 책임지지도 못하고 그 친부모에게 키워준 돈까지 다 빼앗아가고 이제 와서 이렇게 받아내려고 하다니? 성공했으면서도 항상 쪼달리는 것 같은 겐조 확실히 주변에 그에게 의존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재미나게 잘 읽어졌다. 사람의 일상이 저렇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인생이 저렇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겐조가 한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p278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여러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많이 일어난다. 지겨운 가난이 이제 끝이라고 생각해도 다시 이어지고 안 좋은 일들도 반복해 일어나고 물론 좋은 일 행복한 일도 반복해 일어난다. 아마 우리의 인생은 돌고 도는 그런 인생 같다. 잠시 나에게 일어난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 일어날 행복을 먼저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책속에서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냉정한 인간이 아니야. 단지 내가 가진 따듯한 애정은 밖으로 내보일 수 없게 만드니까 자꾸만 이렇게 되는 거야.” p59 아내에게 변하는 자신을 한탄해본다. 그리고 남의 책임으로 몰고 간다. “이거야 원. 야금야금 내 등골을 빨아먹을 작정이야. 처음에 단번에 함락시키려다가 거절당하니까 이번에는 빙빙 돌면서 한 발짝씩 다가오는군. 참으로 지겨운 놈이야.” p153 "걸려든 당신이 나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조심해서 얼씬 못하게 했다면 좋았을걸.” p153 겐조의 생각대로 양아버지가 자꾸 돈으로 조여 온다. 아내가 말도하지 말라고 해도 겐조는 어떻게 그럴 수 없기에 당해주는 것 같다. “단지 남편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사람을 존경하라고 강요받는다면 저는 그렇게 못해요. 만약 존경을 받으려면 그만큼의 자격을 갖춰서 제 앞에 나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남편이라는 호칭 따윈 없어도 상관없으니까요.” p192 아내를 무시하는 겐조를 보며 아내가 느끼는 말이다. 물론 아내도 겐조에게 존경심이 조금은 없는 것 같다. 서로 부부간의 존중해주는 자들만이 서로 존중을 받을 것 같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것은 없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이 존중하고 사랑하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서로 부부간, 가족, 부모, 자식 여러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위에서 말했듯이 살아온 환경이 아주 많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자식은 돈을 벌어다주는 기게도 아니다 물론 남편도 그렇다. 부인은 아기만 키우고 무시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사람이 아닐까? 우리 사랑하고 존중해주고 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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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나쓰메 소세키 <자식과 부모의 인연은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자신을 반영한 겐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무엇을 얘기 싶었던 것일까? 서재 안에서 혼자서 책과 싸우는 지식인의 고독함 아니면 평소 자신보다 아래였다고 여긴 사람들이(아내, 이복 형, 이복 누이) 자신 보다 현명하게 판단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겐조를 통해서 지식인의 오만함 면을 보여 준 것은 아닐까? 스스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여긴 겐조가 시마다의 아부(감정적인)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통해서 인간은 완전히 이성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얘기한 것은 아닐까? 겐조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어린 시절에 겐조는 친척집에 양자로 입적했다. 시마다·오쓰네 부부의 양자로 지내면서 몇 년간 같이 지냈지만, 그 후 본적으로 이적했다. 그들은 그 동안에 겐조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가 말썽을 부리거나 어리광을 피울 때도 그를 혼내지 않고, 그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그리고 수시로 겐조에게 “너의 부모가 누구냐”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해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면 그만 두었다. 겐조는 그 당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도록 자신을 세뇌시켰다고 언급할 만큼 지독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한 교육에 지친 겐조를 위해서 그들은 또 다시 겐조에게 값비싼 장난감 및 옷을 맞추어 주었다. 몇 년 뒤, 그들 부부의 이혼으로 겐조는 다시 본가로 옮겼다. 그 후, 이 곳에서 계속 성장을 했으며, 외국으로 유학까지 갔다 왔다. 예전의 말썽꾸러기, 천덕꾸러기 였던 그가 외국문물을 접한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나타났다. 시마다는 겐조를 찾아왔다. 어린 시절, 화끈했던 시마다는 어디 가고, 돈이 없어 돈 달라는 노인네 모습으로 찾아 왔다. 그 이후에도 시마다는 후줄 그러한 차림으로 찾아와서 돈 달라고 했다. 그의 예전 부인이였던 오쓰네도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요청했다. 겐조는 그들의 요구를 번번히 들어 주었다. 몇 번 찾아온 시마다는 점점 예전으로 돌아 갔다. 잠시 동안 겐조의 아버지 였고, 화끈한 성격인 시바다로 말이다. 어느 연말에 시마다는 새해에 필요한 게 있으니 라면서 겐조에게 200엔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겐조도 그 당시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아내가 자신의 옷을 전당포에 맡길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겐조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돈을 줄 당위도 필요도 없다 라면서 한푼도 줄 수 없다 라고 성난 목소리로 강경하게 말했다. 시마다는 그 날 빈 손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시마다의 지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서 겐조에게 ‘시마다의 현재 상황’을 언급하고 시마다를 도와줘야 한다면서 돈을 요구 했다. 하지만 겐조는 이를 거부했다. 그 사람은 겐조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게다가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인연을 끊을 때 선생님계서 시마다씨에게 써준 문서가 아직 저쪽 수중에 있습니다. 이번기회에 목돈을 건네고 그 문서를 받아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겐조의 입장에서 그 문건은 어떠한 효력도 없는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가했다. 그러한 종이로 협박을 하면서 돈을 빼앗으려는 시마다에게 화가 났지만, 겐조는 시마다의 형편을 생각해서, 그 문건을 사겠다 라고 말하고 시마다와 인연을 끊었다. 겐조가 시마다와 오쓰네를 마주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혐오감과 뒤바뀐 처지를 생각했다. 시마다와 오쓰네가 어린 그에게 값비싼 물건을 사주면서 환심을 얻으려 했고, 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에게 확답을 요구하면서 세뇌까지 시켰다. 그랬던 그들이 성공한 겐조 앞에서 궁핍한 차림으로 마주앉아 상냥하고 예의바른 자세로 대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돈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겐조는 측은함을 느꼈다. 과거에 잠시나마 부모와 자식 관계로 맺어진 인연인데, 한때 자신에게 괴로움을 안겨준 부모였을 지라도 부모는 부모였다. p113 이성은 그들은 외면하고 매몰차게 대해야 한다지만, 감성은 그들의 현 처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게 여겨, 그들의 요구를 번번히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앞에 있는 노인들은 자신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돈을 보고 왔다. 한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겐조가 돈을 많이 벌거라고 짐작해서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 했다. 자신들의 행했던 짓들은 기억하지도 않고, 그에게 잠시나마 부모였던 자신들 도와 주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의 집에 자주 찾아갔다. 그런 그들을 겐조가 끝내 거부했지만, 그는 그것이 결국 끝낼 수 없다 라는 점도 알았다. p278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한번 맺은 인연은 쉽게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다고 말이다. 인간이 쓸모가 있을 때 인연의 실은 이어지고 쓸모가 없어지면 그 실을 끊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서 그 실도 변화되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이어진 것 뿐이다. ps. 1년전 이 소설을 읽고 달라진 관점을 보면서, 예전의 나의 상황과 생각을 달라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같은 소설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읽혀지고, 깨닫는 것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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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의 균열 또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소설로 알려진『한눈팔기』는 과거에 잘못 맺은 관계가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올바른 관계는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쓸모의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자식이 많았던 겐조 아버지에게 또 하나의 자식 겐조는 장애물에 불과했습니다. 3~7세는 여전히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지만 겐조는 시마다 부부의 양자로 지냈습니다. 양부모라도 사랑으로 키울 수 있지만 시마다 부부는 겐조를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여겼습니다. 부부가 이별했으니 물건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가치가 떨어진 물건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겐조는 본가로 돌아오게 됩니다. 늙은 시마다와 오쓰네는 각각 겐조에게 나타나 겐조를 키운 것은 자신들이라며 돈을 요구합니다. 배다른 누이는 그에게 용돈을 올려달라고 하고 장인은 보증을 부탁하고 사직한 매형은 이자로 생활하기 위해 겐조에게 돈을 빌려가라고 합니다. 겐조는 형, 누이나 매형, 장인, 시마다와 오쓰네의 시선에선 출세한 사람이었지만 학력 수준만 높았지 융통성 없고 외곬인 성격 탓에 사회생활을 잘 하는 편은 못 됐습니다. 당연히 수입도 많지 않았습니다.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행위에 돈이 개입되는 것은 거래이지 올바른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많은 관계에 돈의 개입되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서글프지만 가족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잠깐의 인연을, 가족의 끈을 매개로 삼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참 하찮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행한 과거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관계를 끊으면 되지만 끊지 못하는, 끊을 수 없는 관계 또한 존재합니다.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담기는 관계들이 그러합니다. 가족이데올로기가 그의 사고에도 박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교육 받은 지식인이니 미천한 그들보다 낫다는 사고도 했을 것입니다. 겐조는 그의 고백처럼 많이 배웠음에도 아내는 남편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확실히 모순 덩어리입니다. 자신이 부모의 소유물로 자랐음을 인식하면서도 아내 역시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소유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소통도 불가합니다. 교육을 좀 더 받았다고 해서 특별한 사고를 하는 건 아닙니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268쪽) 분명한 건 인간이 태어난 건 과거의 잘못 맺은 인연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경쇠약과 위궤양은 수시로 그를 괴롭혔고『한눈팔기』를 쓰기 전 나쓰메 소세키는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나쓰메 소세끼는 주변의 관계에 한눈을 팜으로써,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자조가 엿보이지만 소통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비로소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그에게 불편을 느끼는 것은 그에게서 외면하고 싶은 나의 단점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11월도 반이 지났습니다.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초겨울은 한눈을 팔아도 좋은 계절이니까요.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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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알다시피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천 엔짜리 지폐에 들어갈 정도니까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었을 거다. 내가 이 작가를 알게 된 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재미난 풍자소설과 <몽십야>라는 환상문학을 통해서였다. 전혀 다른 접점을 보여주는 두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이미지를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올렸던 것 같다. 왠지 한눈에 확 잡히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작품 <한눈팔기>를 읽고 나서, 조금은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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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문고전 읽기가 대세다. 한 달에 한권도 책을 읽지 않는 우리 나라 현실에서 어렵고 딱딱한 책을 읽으라고 하니, 아무리 대세라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마전 문학동네에서 '롤리타'를 샀는데 거기에 보니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었다. 이 전집이 고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전 책이므로 나름 고전읽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100여권의 책을 엄선하여 2011년에 출간을 하였는데,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책과 롤리타 밖에 없었다. 이제 고전에 첫발을 내딛으려고 한다. 그 중 첫 책이 나쓰메 소세끼의 '한눈팔기' 이다. 문학동네는 이 책을 '한눈팔기는 자전적 색채가 가장 강하다. 이는 이 작품을 쓸 시점에 그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소개했다. 이 구절이 마음을 사로잡아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1867년에 태어난 그는 2년간 영국에서 유학을 한 재원이었다. 지금도 외국에 유학을 했다고 하면 한번 더 쳐다보게 되는데 그는 지금으로 부터 100여년 전에 이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영국 유학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꺽일 때 나를 구한 한마디(부키)'라는 책을 보면 그의 힘든 시절에 대한 짧은 소개가 있다. '화려한 이면 뒤에 알고 보면 나쓰메 소세끼는 사실 일본 최초의 은둔형 외톨이였다. 한달 보름을 배를 타고 영국에 가보니 한달 숙박비용이 180엔인데, 정부에서 주는 돈은 150엔이었다. 영어도 잘 되지 않았고, 신체 컴플렉스까지 겹쳐서 그는 은둔하게 되는것이다. 많이 쇠약해진 상태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본에서는 그가 미쳤다고까지 생각을 한다. 그 후 그는 영문학이 아닌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나름 요약^^)' 겐조는 자식이 많은 집에 태어나 일찍 다른 집에 양자로 들어가고, 양부모가 이혼하자 다시 친부모집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친아버지는 그에게 관심은 없고 교육조차 시키려 들지 않는다. 형들과 이복 누이가 있지만 정은 없다. 형식상 친분만 유지하는 정도이다. 세월이 지나 겐조가 유학을 다녀오자 주위의 형제들 이복누이가 조금씩 손을 벌리기 시작한다. 그에게 관심없던 아버지에게 조차 월급의 반을 주게 되고, 이윽고 양부, 양모가 차례로 그를 찾아와서 끝내는 돈이야기를 꺼낸다. 한 때 잘나가던 장인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양부는 많은 돈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돈을 못주겠다고 하자 사람을 보내어 타협안까지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겐조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것을 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겐조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체면' 때문에 허세를 떨게 된다. 당장 자신의 집에는 생활비가 없어 옷을 팔고 가재도구를 팔고 있는 중인데도, 양부 양모가 와서 돈 이야기를 하면 조금씩은 주게 된다. 겐조는 외국물을 먹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사고할 것 같지만 실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유학을 했고 지식인이기에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못한다. 사실 그의 생각을 나타내 주는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겐조는 아내를 무식한 사람으로 밖에 여기지 않아 늘 무시하지만, 아내의 말이 곧 겐조의 생각임을 독자들은 알게 된다. 말은 못하고 혼자 궁시렁 거리고, 서재에 혼자 앓아눕는 모습을 보면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쓰메 소세끼는 겐조를 통해 자신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오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독자들에게 말해준다. 겉으로 보기엔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자 엘리트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애정결핍'이라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또한 불우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를 더욱더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문체는 참 쉽다. 감정 묘사가 짙지 않다. 하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어서 다른 작품도 접해봐야겠다.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한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의 번뇌와 아픔을 함께 읽는다면 성공적으로 '한눈팔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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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주어지는 1초 뒤의 상황도 예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은 과연 예상할 수 있을까? 건강이 좋지 않다면 어느 정도 죽음을 예상하며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겠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면 많은 것이 아쉽고 애통할거란 생각이 든다. 그 애통함을 줄이는 방법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만약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간 살아온 삶을 글로 정리한다면 과연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다. 오로지 죽음에 모든 것이 맞춰져 지나온 삶을 후회하고 번민하며 슬픔에만 젖어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쓸 시점에 그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해설 중)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짜증이 났었다. 문체는 좋았지만 우유부단하게 끌려 다니는 주인공 겐조의 모습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이 작품을 쓸 시점이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제야 조금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소설로 쓴 작품이 결과적으로 자서전이 되었다’는 해설처럼 소설이지만 저자 자신의 삶이 녹아있는 이 작품에 마음껏 쏟아 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기울어 있는 가세, 갑자기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는 양부, 평탄치 못한 부부관계, 화목하지 못한 가족,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들이 겹쳐 우울한 분위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울분을 토했다.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는 양부에게 큰 소리 치라고, 답답한 서재에서 나와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시켜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 없이 겐조의 내면에서만 풍랑이 불 뿐 겉으로 보기엔 평이한 날들이 이어져갔다. 양부가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는 짜증스런 사건이 아니었다면 조금 남다른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일기를 쓰는 듯 착각해도 될 만큼 잔잔한 글이었다.
저자는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보내지고 부모의 이혼으로 본가로 돌아오지만 제대로 가문에 입적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성장과정과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저자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자서전을 쓸 목적이 아닌 작품이었음에도 그의 삶과 너무 닮아 있어 자전적이 소설이 되었다. 그래서 우울함과 불평불만, 분노의 말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너무나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쪽)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하는 말로 그나마 부부관계가 조금은 개선되려는 것 같아 안심이 놓였다. 그의 말대로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는 것처럼 그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고독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스스로도 느끼지 못한 내면의 복잡 미묘함. 그 일부분이 이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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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조는 금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그 욕망에 어울리지도 않는 유치한 머리를 온힘을 다해 굴리는 노인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움푹 들어간 눈을 지금 램프의 유리 갓에 대고서 연구라도 하는 듯 어두운 불빛을 응시하는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이렇게 늙었구나'
시마다의 일생을 한마디로 응축한 이 말을 눈앞에서 음미한 겐조는 자신은 과연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는 신(神)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때 그의 마음에는 분명히 '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만약 신의 눈으로 꿰뚫어 본다면 자기 일생도 이 욕심 사나운 노인의 일생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 (본 책 48장 중)
어떤 때는 책의 내용이 책을 읽어나가는 나의 호흡과 너무나 긴밀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치 지난 일기를 보는 듯 오래된 감정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애잔해진다. 주인공 겐조는 어린 시절 양자로 갔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온다. 허나 본적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못한 그는 누구의 가족으로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유령이 된다. 그렇게 인생이 접힐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다행히 머리가 명석하여 나름의 지식인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눈치만 보며 살아온 유년 시절 때문인지 자신의 마음을 곧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늘 생활 속 사소한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인가. 그는 늘 서재를 안식처 삼아 자신의 일을 하며 생각을 쌓고 세계를 해석해 위안을 삼는다. 그런 그는 남들이 보기엔 세상물정 어두운 외곬수 지식인일 뿐이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누군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사업을 할 수가 있나. 세상 물정도 어둡고 집안에 누구 하나 도움 줄 사람도 없는데. 꼼꼼히 돈 욕심을 많이 부려야지. 도대체 너의 욕망은 무엇이냐. 나는 대답한다. 나의 욕망이 다만 인문학적이기 때문이야. 이 대화는 대단히 심각하다기 보단 반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 와중에 튀어나왔다. 서로 웃고 말았지만 나에게 그 이상의 답은 없다. 나는 차비와 밥값, 그리고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때 고민없이 바로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잔고만 있다면 그다지 고민이 없다. 결혼은 했지만, 그런 태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아내는 생활비라는, 내가 필요로 하는 금액에는 비할 바 없이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아내는 돈을 좋아하며, 살림살이를 늘리는 데 재미를 느끼고, 온갖 식자재와 다양한 그릇, 요리도구를 사용하는 데 큰 기쁨을 누린다. 요즘은 첨언을 한다. 결혼 후 한가지 욕망이 더 생겼다. 나의 부인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하는 욕망.
겐조는 불행하다. 내 보기에 딱 'ebs 부부가 달라졌어요' 코너에 등장할 법한 부부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늘 삐뚤어진 말을 뱉는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못 배운 탓이다. 소리내어 뱉는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구석이 있다. 우리들은(겐조와 나는) 말을 뱉기보다는 삼키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겐조도) 여전히 부인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집에 들어왔으면 부인의 상태를 좀 보고, 표정이 어둡다 싶으면 우리 부인 오늘 힘들었나 보네? 하고 물어야지. 지금 그 태도가 왜 그래? 같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 나보고 어두운 표정을 지어서 걱정을 시키지 말라는 거야, 아니면 정말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물어야 하는 거야? 아차 싶은 나는 부인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읊은 다음 잘 기억해 두려고 노력한다. 유물론자라면 그들이 하는 실천에 방점을 찍어야지, 일어나지도 않은 의도와 사상 때문에 책임을 물어서 연대하지 않는게 진정 유물론자들의 투쟁인가 라며 겉돌던 나보다 생활에 나의 부인은 철저히 유물론자이다.
어린 시절에, 그러니까 나에게 초등 말 쯤에서 중등 그 언저리에 '케빈은 12살'이라는 외화 드라마가 있었다. 또는 '비밀일기'라는 고 또래의 아드리안 몰이라는 아이가 주인공인 일기 형식의 소설이 있었다. 그때 주인공이 12살쯤이었다면 이 책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물론 고민의 내용이 또래 사춘기 여학생이 아닌 인문학적인 질문이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 있는 거겠지.'
- (본 책 97장 중)
'나의 욕망이 다만 인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할 만한 분들 중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일기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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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다른 이야기는 어떨까 싶어 한눈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인 소설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한눈팔기의 주인공 겐조처럼 어린 시절 입양과 파양, 유학의 경험이 있기에 소설적인 요소가 가미되었겠지만 그의 생각들이 어느 정도 녹아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겐조라는 인물은 그 시대에 많이 배운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성격은 그리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내를 대하는 태도 또한 거북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파양했던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들은 연을 끊고 살았는데 갑자기 만나자고 사람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연락도 없던 사람이 왜 자꾸 만나자고 할까. 그 이유는 바로 돈이었습니다. 아내는 처음부터 거절하라며 탐탁지않아하지만 겐조는 아내의 조언을 무시하며 알아서 처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는 싫은 소리 못하는 겐조는 여지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기 시작하고 목돈도 빌려주게 됩니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잠깐 친정에 가있는 정도로 불만을 표현하지만 겐조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혼전의 편안함을 느꼈다며 방안에 벌렁 누워있을 뿐이죠. 아내는 밤늦게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그런 아내를 향해 "왜 밤에 일찍 안 자는 거야?"라며 미워합니다. 히스테리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아내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집안살림을 꾸리기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얼굴도 많이 야위었고 아파서 누워있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겐조는 그런 그녀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습니다.
아내가 진통이 와서 아이를 낳는 것을 지켜보는 겐조의 행동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산파가 오기도 전에 아이가 나왔습니다. 딸입니다. 겐조는 세번째 아이도 딸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를 위해 한 것이라고는 아내가 준비해둔 산후 준비물에서 솜을 찾아 위에 얹어준 것 뿐이었습니다.
아내가 친정이 무척 힘들다며 말합니다. 집에 들렸던 장인이 날이 너무 추워 겐조가 입지 않는 오래된 외투를 입고 돌아갔단 말을 남깁니다. 겐조는 제가 느끼기엔 정말 한없이 나쁜 남편이고 나쁜 사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마디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한탄하는 겐조의 아내를 보며 우리네 그 시절 여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해야하는 스트레스가 책의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정말 불편한 상황들이 실감납니다. 커다란 사건을 정말 잔잔한 느낌으로 들려주는데 이야기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 몰래 기모노를 전당포에 잡힌 요전의 일을 떠올렸다. 겐조는 언제 자신이 형과 같은 처지에 빠질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했다."
남들이 보기엔 유학까지 갔다오고 하녀도 부리고 있어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겐조 또한 언제든 벌면 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겐조의 아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은 아이에게 맞는 옷이 없어서 밖에 내보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기모노를 전당포에 잡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생활비를 어떻게 쓰는지 검사를 한다면서 정작 어디서 뭘 쓰고 있는지는 제대로 보려하지 않습니다.
아! 이 책 속의 상황들은 현실의 저라면 정말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입니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정말 답답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어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던 건 나쓰메 소세키가 이런 겐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책의 마지막 문구를 읽으니 안타까운 겐조의 미래가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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