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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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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랍다. 이 소설이 대단했다. 정말 그 생각만 든다...읽기 잘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갈등을 녹여낸 고전이다.러시아 문학을 자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적거리다가 조금 열었는데..엄청났다. 소설에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엄청난 흡인력!!! 책의 줄거리를 말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왜냐하면 이 책에 담긴 것들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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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랍다. 이 소설이 대단했다. 정말 그 생각만 든다...
읽기 잘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갈등을 녹여낸 고전이다.
러시아 문학을 자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적거리다가 조금 열었는데..
엄청났다. 소설에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엄청난 흡인력!!!

책의 줄거리를 말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에 담긴 것들은... ‘우주’를 닮은 것 같기 때문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다고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을...
나는 그저 말하네. 대단했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었다!!!!

 

b****n 2011.03.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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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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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최근에 읽은 러시아 문학이 없어서 부끄럽다. 또한 아직도 접하지 못한 러시아 작가들이 너무나 많아 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자신 없어진다. 톨스토이는 나와 성향이 안 맞아서 대표작만 겨우 읽을 정도였다 치더라도 늘 이반 투르게네프가 마음에 걸렸었다. 제대로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 세계에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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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최근에 읽은 러시아 문학이 없어서 부끄럽다. 또한 아직도 접하지 못한 러시아 작가들이 너무나 많아 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자신 없어진다. 톨스토이는 나와 성향이 안 맞아서 대표작만 겨우 읽을 정도였다 치더라도 늘 이반 투르게네프가 마음에 걸렸었다. 제대로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 세계에는 무지했는데, 이번에는 꼭 만나리라 다짐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펼쳐들었다.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을 소장하고 있음에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 좀 더 글씨가 크고 최근에 번역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품들은 출판사별로 비교하며 읽는지라 소장하고 있는 책은 다음에 읽어도 될 듯 싶었다.

 

  초반엔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약간 주눅 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왜 이제야 이런 책을 만났을까 하는 탄식이 자연스레 터져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내 성향에 꼭 들어맞는 소설이었고, 오랜만에 러시아 문학을 제대로 만난 것 같아 독서를 하는 내내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을 읽어냈다는 후련함보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내면을 지배했다. 다시 러시아 문학에 열정을 불태우고 싶을 정도로 무척 반갑고 고마운 소설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두 세대의 갈등을 보여주고자 제목을 『아버지와 아들』로 지은 것처럼 작품 속에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등장한다. 그러나 옮긴이도 말했듯이 소설속의 논쟁과 갈등은 현재의 실질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공을 초월한 세대 간의 보편적 갈등, 동시대의 삶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한 묘사, 중부 러시아의 자연에 대한 서정적 묘사,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성격묘사'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좋아한 것도 이런 세세한 묘사와 장황스러운 대화체, 끝 간 데 없는 수다스러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담고 있는 러시아인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곤 했는데, 이반 투르게네프도 그러한 매력을 작품을 통해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다양한 인물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 하며, 당시의 사회문제들을 필두로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것, 거기에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까지 보태 19세기 러시아로 편입한 듯한 착각이 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작품 속의 아들 세대는 아르카디와 그의 대학 친구 바자로프였고, 아버지 세대는 아르카디의 아버지 니콜라이와 큰아버지 파벨이었다. 바자로프는 아르카디를 따라 그의 고향에 잠시 머물면서 갈등을 일으키는데 특히나 파벨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니힐리스트라고 소개할 정도로 모든 것에 비판적이고 어떤 것이든 인정하지 않는 바자로프는 사사건건 파벨과 충돌했다. 바자로프가 보기에 파벨은 낡아빠진 귀족주의자 행세를 하는 자였고, 파벨이 보기에 바자로프는 버릇없고 뻔뻔하고 예의도 모르는 자였다. 둘의 문제가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라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어느 사회건 겪는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는 섣부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와 신세대가 나란히 동시대를 살아가지 않으면 내부의 붕괴는 뻔 한 법이고, 충돌을 방치하게 되면 화합과는 멀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중심선상에 팽팽하게 맞선 바자로프와 파벨이 있었으니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바자로프가 좀 더 공손하고, 자신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논리정연하게 말했더라면. 파벨은 귀족의 본보기를 내면까지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그들이 결국 결투까지 하게 되는 것을 목도하고, 끝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현재의 수많은 대립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속의 논쟁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중심이라고 말할 순 없다. 아르카디와 바자로프, 니콜라이, 파벨이 겪는 사랑도 있었고, 가족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던 바자로프는 매력적인 과부 오딘초바에게 사랑을 느끼고, 지금껏 자신이 추구했던 사상과 어긋나는 마음에 혼란스러워한다. 오딘초바도 바자로프에게 호감을 갖긴 하지만 모든 것을 그에게 걸기엔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아르카디 또한 오딘초바에게 첫 눈에 반하고, 오딘초바와 바자로프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고 나자 바자로프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아르카디가 바자로프와 오랜 우정을 깊이 나누었다고 할 순 없지만, 최근에 친해진 그들은 오딘초바가 아니었다면 나름대로 잘 지냈을 친구였다. 바자로프는 아르카디의 집에서 평화롭게 지내지 못했지만, 아르카디는 바자로프의 극성인 부모를 만나 좋은 인상을 남긴다. 바자로프를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부모님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끼고, 바자로프가 부모에게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젊은 혈기인 그들, 구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시골생활과 따분한 집은 갑갑할 뿐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당장 도시를 향했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키워가며,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논쟁하고, 안락함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아르카디는 결국 오딘초바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고, 오해와 충돌로 인한 거리감으로 멀어진 바자로프와 결별하게 된다.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게 된 바자로프는 아르카디에게, 그리고 오딘초바에게 이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그를 열렬히 반기는 부모가 있었지만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로 인한 즐거움을 오래 선사하지 못한 채, 장티푸스로 죽은 시신 해부에 참여했다가 감염되어 허무하게 죽고 만다. 그가 그렇게 추구했던 니힐리즘을 이 모든 사건들도 인해 빠져나왔건만 예고되지 않은 죽음 앞에서 그의 사상은 철저하게 들어맞고 말았다. 죽음 직전에 오딘초바에게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었노라 고백은 했지만 그만 빼고 모두 나름대로 행복한 것 같아 쓸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논쟁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자신만의 미래를 개척해 가던 청년이 스러져 버린 것은 '러시아의 1860년대는 아직 바자로프의 때가 아니라는 투르게네프의 객관적인 현실인식'과 철저히 마주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장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며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저자의 말처럼 사랑의 무기력이 헛됨이 아님을,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렇듯 정치적, 가족, 사랑, 심리적인 면까지 두루 가춘  『아버지와 아들』은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메시지를 선사한다. 때로는 철학적인 사색 앞에 감탄하기도 하고, 능글맞은 비유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오랜만에 달게 읽은 소설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단박에 반하고 말았다. 100년이 훨씬 지난 소설을 읽고 이렇게 즐거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지닌 의의는 크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인간군상 속에 그야말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저자의 역량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뿐이다.

s****m 2011.03.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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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세계문학전집]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내용보기
나의 느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여타의 책과 달리  제목만으로도 아 ~  떠올리게 되는 세계 문학이라 불리우는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책을 만날때면 읽는것도 쓰는것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세계문학을 접할때면 많은 긴장감이 엄습한다. 과연 잘  이해할 수있을까 이 나이쯤 되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읽고싶은 마음에 앞
"[세계문학전집]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내용보기

나의 느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여타의 책과 달리  제목만으로도 아 ~  떠올리게 되는 세계 문학이라 불리우는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책을 만날때면 읽는것도 쓰는것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세계문학을 접할때면 많은 긴장감이 엄습한다. 과연 잘  이해할 수있을까 이 나이쯤 되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읽고싶은 마음에 앞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만 같아 자꾸만 주저하게된다.

러시아의 거장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만날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다 읽고 난 지금 난 그러한 나의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왜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지의 이유를 찾았다. 우선은 책이 분명 가병운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공감을 하게된다.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묘사한 2세대간의 이야기를 만나며 이것이 고전의 묘미이구나 ,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속에서 이제 막 사회의 첫발을 띄고있는 신세대와 세상의 모든것을 알고있는듯한 기성세대의 두 세대간 삶을 바라보는 사고방식과 인생관을 보는 내내 나와 아이들 지금 우리사회의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비교하고 있었다. 

23살의 아르카디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자 친구인 바자로프와 함께였다. 학문을 탐닉하는 학생에서 나폴레옹과 맞서 싸웠던 조국전쟁의 승리자인 장군의 아들이요 지주의 아들로 돌아온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바자로프라고하는 니힐리스트(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 친구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과 눈이 있었다.

고요함과 팽팽한 긴장감의 변화속에서 이루어지고있는 아르카디와 그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페트로비치의 관계,  친구 바자로프와 큰아버지 파벨 페트로비치의 대립과 언쟁속에서 우리는 19c 변화하고 있던 러시아의 사회상을 바라보는 보수파와 급진파의 대립을 보게된다. 매일 해부하며 연구하고 있던 바자로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있는 러시아의 모습과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신세대의 모습이었다면 지주귀족을 대표하고 있던 파벨은 그나름의 확고한 귀족주의에 대해 역설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자존심에서 의무의 감정, 그래요.바로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오.  나는 시골의 벽촌에 살고 있지만 스스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 내 안에 있는 인간을 존중하오 - 파벨
당신이 그렇게 자신을 존중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 공익을 이해 어떤 도움이 되나요, 당신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아도 그렇게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겁니다.  - 바자로프
민중의 현 상태가 그걸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요구를 실행해야만 해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만족에 빠질 권리가 있습니다. - 아르카디

내가 말하고 시은 건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야. 그들은 늘 바뻐서 자기 존재의 하찮음에는 신경도 스지 않아. 사소한 일에 매달리느라 자기 존재의 시시함을 언잖게 여기지 않는거야... 그런데 나는.... 그저 권태와 증오만을 느낄뿐이네...

 아르카디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서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다면 바자로프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자신만이 옳다 주장하는 젊은이를 보는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사랑이었다. 자기 색깔이 뚜렷하고 대단한 미모와 자신감을 갖춘 오딘초바를 향한 한 마음이었다. 거기에 오딘초바의 동생 카챠와 친구 아버지의 여자인 페네치카도 있었다.

러시아 사회문제들을 지적하고 묘사하는 세밀한 이야기속에서 아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부모님, 그러한 사랑이 당연함을 넘어 귀찮게까지 생각하는 아들, 감정적으로 끌릴수밖에 없는 이성의 관계, 남자들간의 우정과 대장부끼리의 결투까지 참으로 많은 요인들이 가미된 최고의 책이었다. 이해하기 쉽기에 감동이 배가되고, 낯설지 않기에 공감하게되는 부분이 많다. 많은 사상과 논쟁들이 담겨져있음에도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고전이요 문학 예술이구나 순수한  감정을 느끼게된다.

지나온 시간만큼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나며  이것이 바로 고전이구나 싶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있어 영원한 숙제일 수 밖에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좁혀지지 않는 이해관계를 이 고전속에서 정리했다. 그러한 내게 남겨진 숙제는  요즘 한창 삐거덕거리는 딸과 남편이 이 책을 읽게 만드는것이다.



d****0 2011.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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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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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청년성장소설이다. 스물세 살의 주인공이 그 당시 사회의 젊고 확고한 신세대적인 사고와 아버지의 구세대 사고와 논쟁을 벌인다. 우리 가족들 간에도 흔히 있는 갈등이지만 소설 속에서 읽으니 더 새로웠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독자에게도 사고의 성장을 주는 소설이 문학작품의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 역시 그러한 부류의 문학소설이다. 문학소설을 읽는 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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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청년성장소설이다. 스물세 살의 주인공이 그 당시 사회의 젊고 확고한 신세대적인 사고와 아버지의 구세대 사고와 논쟁을 벌인다. 우리 가족들 간에도 흔히 있는 갈등이지만 소설 속에서 읽으니 더 새로웠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독자에게도 사고의 성장을 주는 소설이 문학작품의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 역시 그러한 부류의 문학소설이다. 문학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내 심장 속에 비타민을 먹이는 일과 같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아르카디는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자로프는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인 니힐리스트이고, 아르카디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니힐리스트인 그를 존중한다.

이 책 속에서 바자로프는 계속해서 실험하고 연구하는 인물이다. 구세대를 향해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마치 세상으로 나아가는 융합점을 찾기 위해 탐구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바자로프가 개구리를 잡는 걸 보고 아이들이 무엇에 쓸 것인지 묻는다. 그는 개구리의 배를 째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거라고 대답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아직 경험하지 않아서 아들들은 작은 두려움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의 큰아버지가 논쟁을 벌인 부분은 그 당시 러시아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하찮은 일에 몰두하면서 예술이니 무의식적 창조니 의회제도니 변호사 협회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떠들어대는 동안, 한편에서는 일용할 양식 문제가 제기되고 조잡한 미신이 우리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주식회사들은 정직한 인간이 부족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파산하는 걸 보았습니다. 정부가 신경 쓰고 있는 그 자유라는 것도 우리에게 이롭지만은 않을 겁니다.” 불신과 부패가 가득한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것을 바꿀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젊은 바자로프. 당시 러시아의 그런 문제점들을 비판은 하지만, 어찌해 볼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로 당시 러시아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두 젊은이가 어두운 그늘 속에서 헤매지만은 않는다.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는 오딘초바라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둘의 사이는 점점 어긋나게 된다. 결국 아르카디는 오딘초바가 아닌 오딘초바의 동생인 카챠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다. 그리고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답게 그녀(오딘초바)를 사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바자로프는 장티푸스에 걸려 죽은 시체를 해부하다 상처에 균이 옮아서 앓다가 죽는다. 삶에 순응하고 아르카디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데, 그의 젊은 반항적 기질과 갈등은 바자로프의 죽음으로서 사라지게 된다.

작년 말이었다. 툭하면 언성이 높아지며 아이와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었다. 뭔가 큰 잘못이나, 혹은 말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부딪히는 걸 피하려고 대화가 민감하게 흐르면 적당하게 얼버무렸다. 아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이의 생각을 읽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니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끝까지 내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부모로서 나의 의무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심정과 비슷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책 한권을 읽고 나니 헛 헛웃음이 나왔다. 이 책 속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의 작은 갈등을 엿보고 나니 이것도 성장의 한 과정이구나 싶었다. 시대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생각은 다르겠지만, 인간 삶의 구조는 비슷한 행태의 세대 간의 갈등을 겪는 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학작품을 통해서 3월의 둘째 주말은 나와 아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f******2 2011.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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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 그 고루하고도 신선한 흐름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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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은 문학 수업시간에만 주구장창 들었을 뿐 사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톨스토이, 도스토 예프스키, 목로주점, 나나, 이 낯설고도 친숙한 이름들이란 기실 읽어봐야지 하고 책을 집었다가도 외우기 결코 쉽지 않은 길고 어려운 이름들에 금방 놓아버리게 했던 것이다. 자, 이번엔 큰 마음을 먹었다. 지인이 '이 책 정말 재밌어.' 후회 안할걸? 하고 건네준 책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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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은 문학 수업시간에만 주구장창 들었을 뿐 사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톨스토이, 도스토 예프스키, 목로주점, 나나, 이 낯설고도 친숙한 이름들이란 기실 읽어봐야지 하고 책을 집었다가도 외우기 결코 쉽지 않은 길고 어려운 이름들에 금방 놓아버리게 했던 것이다.

자, 이번엔 큰 마음을 먹었다. 지인이 '이 책 정말 재밌어.' 후회 안할걸? 하고 건네준 책 <아버지와 아들>. '어려워보여!' 하고 밀어놓다가 슬금, 집어들었다. '이번에야말로'하는 오기. 거기다 이 책이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추천사까지!

어려우면 그만 둘테다. 하는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책장을 술술 넘어갔다. 어라, 하는 사이에 100페이지가 지나버리고, 재밌는데.. 하는 사이에 책장이 덮였다. 이게 바로 러시아문학의 매력?

'너희 젊은 것들은...' '요즘 어린 아이들은..' 이라는 말을 안 듣고 자란 세대가 있을까?
이 책에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두 세대가 등장한다. 혁명이라는 말이 낯선 귀족계급의 아버지세대와 혁명에 열광하는 젊은 아들세대이다. 그들은 니힐리즘을 내세우며 모든 것들은 허무하고 의미 없는 것이라 치부한다. 반면에 아버지세대는 원칙과 관습을 내세우며 이것들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들의 접점은 없어보인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세대는 어떤 세대와도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특히나 원칙과 전통을 중시하는 아버지세대들과는 더욱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단 한가지, '젊은 날의 열정적인 사랑'은 예외다. 귀족주의에 빠져 탁상공론만 일삼는 아르카디의 큰아버지 파벨과 아르카디의 친구 바자로프는 가장 극심한 대립을 보이지만, 파벨의 젊은 시절 사랑 이야기는 이후 펼쳐진 바자로프의 사랑과 묘하게 겹치며 미소를 짓게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원체 '~주의'같은 이성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보니, 본인을 니힐리스트라 칭하며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바자로프에게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것이다.

7~80년대 대학생이었던, 우리 아버지 세대를 생각해 본다. 군사정권에 대한 반항과 혁명의 세대. 그러나 내가 자랄 때 싸우고 반항했던 그 아버지 세대는 '보수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들도 그 이전 세대에 격하게 반항했던 세대였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버지 시절의 '음악'을 생각해 본다. 지난 설의 <쎄시봉 콘서트>는 특히 내게 감동이었다. 아버지들의 정서와 젊은 세대의 정서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감성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감성은 이념에 우선한다. 그리고 이것이 극명하게 다름에도 같은 정서로 아버지와 아들들을 이어주는 그 매개체인 것이다.

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그 세대차이와 세대를 뛰어 넘는 보편의 매커니즘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친숙하지 않은 나라, 러시아의 이야기임에도 페이지마다 웃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까닭은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지금 나와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p*********y 2011.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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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내용보기
한낮의 무더위가 지나가면 저녁이 오고 또다시 밤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괴롭고 지친 사람들은 조용한 은신처로 돌아가 달콤한 잠을 잔다...(309)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지진계처럼 세밀하게 기록한 사실주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아버지와 아들을 읽기 전에 수없이 들은 내용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정치현실이 어떠한 것이었던가,에 대한 물음도 없이 덥석 이
"아버지와 아들" 내용보기

한낮의 무더위가 지나가면 저녁이 오고 또다시 밤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괴롭고 지친 사람들은 조용한 은신처로 돌아가 달콤한 잠을 잔다...(309)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지진계처럼 세밀하게 기록한 사실주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을 읽기 전에 수없이 들은 내용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정치현실이 어떠한 것이었던가,에 대한 물음도 없이 덥석 이 책을 집어든것은 굳이 기록문학적인 소설로 읽고 싶지 않고 또 그가 비유한 내용들을 내가 얼마나 알아들을 수있까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짐작이 되는 사회정치적 현실의 흐름이 있기는 했지만 굳이 그것을 따라잡지 않는다고 해도 이 책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비유하며 읽을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릇 위대한 고전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은유가 기가 막히게 당시의 사회현실과 문화를 넣는구나,하며 감탄을 했었던 것처럼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역시 억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편의 문학작품이면서 또한 동시에 당시의 사회정치 현실을 치밀하게 표현해 내어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인간은 모두 스스로를 교육해야만 하네. ... 그리고 시대에 관해 말이 나왔는데, 왜 내가 시대에 좌우되어야만 하나? 오히려 내가 시대를 지배해야지."(55)

과거로부터 현재에까지 이르는 세대간의 갈등,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 보수와 진보를의 대립속에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철학적 사색, 자신의 이성과 감성이 뒤엉키는 연애감정 등 아버지와 아들에서 보여지는 이 이야기들은 19세기의 러시아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런것들이 19세기의 러시아를 알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문학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물론 세대간 갈등뿐 아니라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계급간의 갈등도 담고 있어서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은 정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끼게 된다.

"...... 거기에 있으면, 아들에게 더 가까이 있고, 아들과 관련된 추억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기도, 그들의 눈물이 헛된 것일까? 정말로 사랑, 그 성스럽고 헌신적인 사랑이 무력한 것일까? 오, 아니다!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장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316)




r***2 2011.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