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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이란 수백만여 종의 동식물, 미생물, 그들이 담고 있는 유전자,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 등 지구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풍요로움1)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물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유전적으로 단순한 집단은 그만큼 진화적 적응력이 약화되어 장기적인 환경 변화와 늘 새롭게 바뀌며 공격해오는 병원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2) 게다가 더욱 불행한 것은 20세기 이후 인류의 급격한 증가와 그에 따른 생태환경의 파괴로 인해 생물다양성 파괴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19세기 후반 이후 소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주도해 온 기독교의 가르침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흔히 말하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랄까? 이들은 창세기 1장 28절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자연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그것을 정복하고 관리할 자격을 부여3) 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고방식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알을 잘 낳는 닭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온 바람에 우리가 기르는 닭들은 사실은 거의 ‘복제 닭’ 수준으로 유전자 다양성을 상실했다. 정말 언젠가 제대로 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으면 거의 모든 닭들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우리는 메추리 알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닭의 조상인 동남아시아 정글의 멧닭(jungle fowl)을 데려다 다시 가축화 과정을 가져야 한다. 만일 멧닭마저 야생에서 멸종하고 만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4)이라는 점이다. 1966년에 발견된 황금두꺼비가 불과 38년 만에 모든 개체가 사라진 것을 보면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데에는 의외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머지 않는 장래에 우리는 “닭”을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스터 섬의 경우를 보면 400년 경에 폴리네시아인들이 이 섬에 왔을 때에는, 큰키나무들이 무리지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이스터 섬에 정착하였던 사람들은 고구마와 바나나를 재배하기 위하여 큰키나무들을 베었고, 이 목재를 이용하여 돌고래 사냥에 필요한 배를 만들었으며, 베어낸 나무를 이용하여 거대한 석상들을 바닷가로 운반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야자나무를 베어내고, 그 씨들을 사람들과 쥐들이 전부 먹어버리자, 이스터 섬에는 더 이상 야자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됨으로써 야자나무를 이용하여 석상들을 운반할 수 없게 되고, 또한 돌고래 사냥에 필요한 배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돌고래 고기를 먹기가 힘들어지자, 섬에 살던 조류에 사람이 의존하게 되었고, 조류들도 종류와 개체수가 감소하였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원주민의 수도 감소하였다. 이스터 섬에 독일 탐험가들이 도착하였을 때에는, 식인습관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5) 어쩌면 이스터 섬의 원주민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 인류의 최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자연에 대한 관점을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가르친6) 소위 “동양사상”의 자연관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동시에 생물다양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확대와 보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스터 섬의 비극이 지구의 비극으로 확대/발전(?)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옥의 티
⇒ 큰키나무들의 화분은 칠레에 분포하는 칠레포도주야자나무와 비슷한 야자나무로 추정되었는데, ~ 큰키나무가 사라지면서 돌고래 뼈도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스터 섬에 정착하였던 사람들이 고구마와 바나나를 재배하기 위하여 큰키나무들을 베었고, 이 목재를 이용하여 돌고래 사냥에 필요한 배를 만들었으며, ~ 하지만, 이런 식으로 큰키나무를 베어내고, 그 씨들을 사람들과 쥐들이 전부 먹어버리자, 이스터 섬에는 더 이상 큰키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됨으로써 큰키나무를 이용하여 ~ 처럼 “큰키나무”와 “야자나무“가 혼용된 표기를 “큰키나무”나 “야자나무“ 가운데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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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뉴스를 통해 멸종 위기 생물에 대한 짧은 보도를 들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보도를 접하고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래서 그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여느 날과 같이 도서관에 간 나는, 도서 진열대에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생명’이라는 제목의 책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생물다양성이 무엇인지, 왜 줄어들고 있는지, 생물다양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했다. 책을 채 몇 장 넘기지 않고, 세계자연보전연맹이 2004년 황금두꺼비가 완전히 절멸한 것으로 보고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금방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더는 21세기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자극을 받아, 생물다양성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생물다양성 감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 활동과 관련된 서식지 파괴나 외래종의 침입, 기후 변화라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 때문에 생물다양성 감소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특히나 눈여겨본 것은, 생물다양성이 우리 삶에 주는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다. 달에서 사람이 산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고 한 데일리의 말은,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쉬운 예였다. 생태계 서비스를 물자, 문화, 부양, 조절 서비스로 나눈 부분은 생물다양성이 우리 삶에 어떤 혜택을 주는지 잘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매년 장마철이면 홍수로 큰 손해를 입는 지역을 본다. 2011년 여름에 발생한 우면 산 산사태는, 숲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조절 서비스를 무시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한 인간의 잘못이 여과 없이 드러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종들은 다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 균형을 깨는 일은 그 어느 구성원에게도 궁극적인 이득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도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태적 제한 속에서 살아야 하고 지구의 청지기로서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인류 문명은 자연과 생물, 생태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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