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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흉내도 내고, 어른들의 옷도 입어본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어른들이 가는 곳도 몰래 가보고, 어른들처럼 말도 해 본다. 그렇게 다들 어른이 되어간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면 그때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어차피 나이가 들면 다 어른이 되는 것인데.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주디 블런델의 [그 여름의 거짓말]에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에비'라는 소녀가 나온다. 소설의 배경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흔히 이야기하는 전후 특수를 누리는 미국사회이다. 에비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친구와 함께 담배 모양의 초코렛을 빨면서 담배를 피는 시늉도 하고, 엄마가 바르는 '치명적인 사과 색깔'의 립스틱도 바르고 싶어 한다. "소녀들은 거품이 이는 것 같은 드레스에 코르사주를 달고 있었는데, 스커트는 부채처럼 펼쳐지며 발목까지 내려왔다. 전쟁 중에는 군인들을 위해 물자를 절약해야 했기 때문에 짧은 스커트를 입었지만, 이제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커졌다. 자동차도, 빌딩도, 스커트도. 그리고 향수! 창가에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글가드나아와 이브닝파리의 향기였다. 마음속에 있던 욕망으로 인해 나는 두근거렸다. 저 소녀들처럼 되고 싶었다. 엄마처럼 금발의 미인이 되고 싶었다. 스커트가 풍성한 드레스를 갖고 싶었다." (P51)"
에비의 엄마 베브는 당시 인기를 끌던 금발의 영화배우 '라나 터너'를 닮은 미인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에비를 나았고, 지금은 새아빠 조와 함께 퀀시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조가 옛 군대 동료의 전화를 받더니, 쫓기듯 플로리다의 휴양도시 팜비치로 놀러가자고 말한다. 에비는 마냥 좋기만 한다. 꿈에 그리던 켈리포니아의 팜비치라니! 하지만 새아빠 조와 엄마 베브와 도착한 팜비치는 휴가철이 끝나서인지 썰렁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곳에서 피터라는 남성을 만난다. 피터는 에비를 처음으로 여자로 대해준다. 그는 에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선 너는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아는 소녀처럼 걷지 않아. 정말 애석한 일이야!" (P95) 그래서 에비는 이제 예쁜 소녀처럼 걸으려 한다. "다음날 나는 내가 얼마나 예쁜지 아는 것처럼 걸으려고 노력하면서 로비를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P98) 피터와 에비의 데이트를 감시하기 위해 엄마는 에비와 함께 피터를 따라다닌다. 함께 영화도 보고, 해변에 드라이브도 다닌다. 그런데 새아빠 조는 피터를 대하는 행동이 이상하다. 함께 군대에서 근무했다던 피터를 조는 극도로 경계한다. 그리고 엄마와 피터와의 묘한 행도들, 이제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 신경질적인 다툼이 계속된다. 에비가 예상했던 핑크빛 분위기는 이제 점점 어두운 분위기로 변해간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병에 든 우유 냄새를 맡아보고 내일이면 상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시리얼에 부어 먹는 것처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P156) 허리케인이 부는 날 아빠와 엄마, 그리고 피터는 에비만을 남겨둔채 낚시배를 타고 호수로 나간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만이 돌아온다. 이제 에비는 어른들의 진실을 알았다.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 선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갔으니, 어른들의 행동을 해야 한다. 그는 아빠와 엄마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했다. 그것이 어른들의 행동이었으니까.
어린 에비는 항상 엄마처럼 되고 싶어했다. 새아빠 조가 하는 일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다. 얼른 어른이 되어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에비는 어른이 되어가며 어른들의 거짓말의 세계를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른들의 어둡고 잔인한 세계를. 에비는 비록 그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지만, 결코 그 세계 속에 동화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나는 조와 엄마와 함께 살 것이다. 그 외에는 갈 곳이 없다. -중략- 하지만 내가 그들의 딸로 지내면서 토스트를 먹고, 데이트를 끝내면 집으로 돌아오고, 접시를 닦는 동안, 나는 내 자신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할 테지만 엄마처럼 되길 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우습지 않은 농담에도 절대로 웃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건 아마도 힘든 일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강했다." (P359) 그러나 에비가 과연 그 여름의 거짓말 사건의 트라우마를 이기고, 강한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거짓말 세계에서 처름 가졌던 그 결심과 순수함을 계속해서 지킬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읽었다면 에비의 결심을 백프로 응원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의 잔인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이 없다. 세상은 어린 소녀의 결심 정도는 순시간에 바꾸어 버릴 정도로 잔인하니까. 그럼에도 에비의 결심을 응원한다. 인생은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싸우기로 결심하는 의지자체가 중요하니까. 에비의 의지가 어른들의 거짓말에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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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거짓말 주디 브런델 지음 문학동네
초반부터, 젊고 멋진 피터 콜리지를 두고 두 모녀가 줄다리기를 벌이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기운이 돌기는 했지만, 애써 이를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연정을 느끼고 로맨스를 형성하는데는 비교적 우호적이지만,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며 유혹하는 상황은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편견을 갖고 있나 보다……. 2008년도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작가 주디 블런델이 데뷔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을 내걸고 쓴 소설이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밤마다 소설을 써내려간 끝에 결국 작가가 된 주디 블런델은 그동안 주드 왓슨이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주목받아왔다. 2008년에 바라본 1945년의 플로리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2차 대전 직후의 뉴욕과 플로리다의 텅 빈 휴양지를 배경으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의 성장을 그려낸 이 소설은 '뛰어난 미스터리이자, 생생한 등장인물이 살아 숨쉬는 영리한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미국도서관협회, 스쿨라이브러리저널에서 뽑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쟁이 주는 상처, 전쟁터에서 싸웠던 전우들은 다시 사회로 나가 삶을 개척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후의 혼란 상황? 플로리다는 대학시절 친구 아이들 넷을 끌어안고 제 2의 인생을 꿈꾸며 찾아간 곳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가 몹시 보고싶어졌다. 1945년이 아니라 2016년 현재 플로리다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18장까지 읽다가 날도 너무 지나치게 덥고... 진도도 참으로 안나가서 뒤의 해설을 읽어보았다, 반칙인 줄 알면서도……. 책 소개글에서 미스터리라는 단어에 끌려서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읽었다. 미스터리라고는 하는데 과연 어떤 방식의 미스터리일지, 누구의 어떤 거짓말일지 그저 궁금해하면서 들춰본 해설을 통해 중후반은 비교적 수월하고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다. 2016.8.20.(토) 두뽀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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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날 그날을 보내는 것이 딱히 나쁘지 않았고, 굳이 빨리 어른이 되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역시 어른은 빨리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지금의 나를 진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이 책, <그 여름의 거짓말>의 주인공 에비는 나와 다르다.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에비의 꿈이다. 어쩌면 지나치게 예쁜 엄마에게 늘 조금은 주눅이 들어 있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나 동경하던 어른의 세계가 사실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곳이라면? 한발짝 내디딘 그곳에서 만난 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면? 열다섯 소녀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지만, 그런 현실이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직후.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라 황량하기까지 한 플로리다의 휴양지에서 에비는 피터라는 잘생긴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새아빠의 군대 후임이자 부잣집 둘째아들이고 예일대학교를 나온 피터. 첫사랑에 눈이 먼 에비에게는 이 남자가 동화 속 왕자님 같을 테지만, 나 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이 남자 어쩐지 수상하다. 에비의 새아빠와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불편한 관계가 된 건지, 에비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에비의 엄마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수상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에비 역시 피터에 대한 진실을 서서히 알아차린다. 그리고 피터에 대한 진실은 엄마와 새아빠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까지 모두...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에 후반부에 벌어지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사고는 그 전말이 책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에비도 우리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고의 전말이 무엇이건 그것에 상관없이 에비가 이 책의 결말에서 택한 행동은 굉장히 용기 있는, 진짜 어른다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꽤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은 주인공에게 언니로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스릴러 같은 면도 있고(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뒷이야기가 엄청나게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엇다), 동시에 성장과 어른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 진실과 정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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